제2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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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동마을은 생겨나자마자 고삭아버린 동네였다. 경찰분서가 있고 다섯놈이나 되는 경찰이 상주해있었다니 꽤 규모있는 동네같았는데 정작 눈앞에 나타난 마을은 다 실그러져가는 침침하고 습하고 질척질척한 산촌이였다.

언제 올렸는지 썩고 휘여서 처져내린 동기와짬에 능쟁이가 무덕무덕 자라나고 구새통굴뚝은 삐딱히 기울어졌는데 좁다란 골목길은 진흙으로 이겨져서 허리까지 치는 길가의 묵은 잡초에 황토진흙이 게발려있었다. 아래배가 훌쭉하고 갈비뼈가 알른알른한 개가 마치 승냥이처럼 꺼칠하고 성긴 털을 일으켜세우고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왔다.

장마가 시작되는 모양 궂은비가 이 무방비상태에 있는 동네를 사정없이 두들겨팼다. 귀틀막은 함빡 젖고 골목과 안마당까지 괴였던 비물은 거품을 물고 소용돌뿐 좀체로 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우장도 없이 쟁기를 메고 묵묵히 비속을 걸어갔다. 비를 피하기 위하여 서둘지도 않았고 비가 들기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집도 산천도 인간자체도 황페화돼버린듯 한 동네였다.

옥돌골은 여기서 10리가량 남쪽에 붙어있고 휘풍동은 동쪽으로 20리가량 더 나가있는데 모두 회양동에 속해있었다. 본시 사람이 먼저 거접하기 시작한것은 옥돌골이였다. 최근에 와서 이주민들과 도망군들이 일제관헌의 눈으로부터 더 좀 멀리 피해가기 위해 울짱을 박고 거적을 치기 시작한것이 회양동개척의 실머리로 되였다. 그러나 동네가 형성되자마자 왜놈들은 여기에 사방 50리를 통제할 경찰을 덜컥 들여앉혔다고 한다.

그런데다 최근에는 부락마다 보위단이 들어앉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강철룡이네가 가지고온 정찰자료에 근거하여 미리 박덕산의 지휘하에 한개 중대의 력량을 보내시여 휘풍동남쪽 장강동과 그 주변부락들의 적무력들을 휩쓸어버리게 하신 다음 휘풍동계선으로 진출하시였다.

회양동뒤산에 오니 날이 어슬어슬 저물어왔다.

해가 기울면서 퍼붓기 시작한 비는 저물어도 멎을줄 몰랐다. 유격대는 마을을 내려다보는 산기슭에 자리를 잡고 야영준비를 하였다. 동네가 100여호나 된다지만 가난에 쪼들릴대로 쪼들린 동네인데다 달팽이처럼 옹송그리고 사는 사람들의 생활감정이 우중충한 비속에 너무나 뚜렷이 느껴졌다.

경찰분서가 습격을 당한 사실을 두고 그들은 은근한 불안속에 닥쳐올 불행을 기다리고있는듯 하였다.

비는 멎기는커녕 차츰 굵어지더니 마침내 장대비로 변하였다. 몇몇 동네사람들이 쟁기를 메고 함뿍 젖어서 산기슭을 내려가다가 나무밑에 서있는 유격대를 띄여봤으나 일부러 못본척하고 곧장 마을로 들어갔다.

굴뚝들에서는 연기도 피여오르지 않고 밤이 깃들어도 불빛 하나 새여나오지 않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굵은 이깔나무가지를 치고 대강 걸쳐놓은 천막밑에서 밤을 지새우시였다. 잔뜩 물기를 머금은 산은 퍼붓는 비를 그대로 골짜기를 향해 내쏟았다. 깔고앉은 진대통을 반나마 삼키며 비물이 도랑을 지어 흘러내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마을로 내려가자는 지휘관들의 청을 엄하게 막으시였다.

《이 비속에 대부대가 내려간다면 마을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크지도 않는 동네에 페를 많이 끼치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하루밤 고생을 좀 하더라도 비가 들고 날이 밝은 다음에 동네에 들어가도록 합시다. 그래야 서로 더 반갑게 만날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러시면서 퍼붓는 비속에 옹송그리고있는 동네를 내려다보시였다. 동네는 보이지 않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직과장을 비롯하여 화룡지방의 연고자들과 담화를 계속하시였다. 밤이 깊어지자 수첩을 펼치시고 이해 여름에 벌려나가실 전반적인 정치군사활동에 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는 한편 당면한 주민지구에서의 정치공작과 조직을 꾸리기 위한 활동계획을 면밀히 세워나가시였다.

개울물소리가 높아지자 사령관동지께서는 동네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도록 하시였다.

혹시 물이 넘어나서 가뜩이나 실그러져가는 마을을 넘어뜨릴지 십상 모를 일이였다.

한밤중에 박인섭이와 최병규가 한조가 되여 동네를 순찰하였다.

《이게 반동놈의 동네가 아닌가요?》

최병규는 본시 과묵한 사람이나 어찌다 말을 하면 통 자기 속을 감출줄 몰랐다.

인섭은 진저리를 치고나서 얼굴을 타고내리는 비물을 뻑 훑어내리며 완전히 물참봉이 된 동무를 힐끔 돌아보았다.

동네복판을 지나 행길을 꿰고나가는 개울은 넘어나서 정갱이까지 물이 찼다. 그러나 이미 젖을대로 젖어서 걷어올릴 필요가 전혀 없는 그들은 평지를 걷듯 그 물속을 첨벙첨벙 걸어들어갔다.

《장군님께서 이 비를 그냥 맞으시게 하다니··· 허지만 어떻게 하겠소. 장군님의 명령인데···》

인섭은 비속에 타오르는 산기슭의 어슴푸레한 우등불빛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고는 내키지 않는 어조로 병규의 말에 대답하였다.

《별로 반동같지는 않던데 모르겠소. 워낙 까막눈들이 돼서 그런지···》

아무리 젖은 몸이지만 노박이로 비를 맞는다는것은 기분좋은 일이 못된다. 그래도 그들은 신수가 괜찮은 편이였다. 앞서 순찰을 돈 사람들은 대줄기같은 비속을 돌아다녀야 했던것이다.

《이게 그 분서라는데요.》

인섭은 산턱에 치우친 동네 한끝에 이르자 비소리를 요란하게 내는 양철지붕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양철지붕이라는것도 격전속의 총소리처럼 유난히 따갑게 두들겨대는 비줄기소리를 통해서 그렇다고 느껴질뿐 보기에는 그저 컴컴한 집 한채가 댕그렇게 서있었다.

《오늘낮에 얻어맞았으니 아직 소식을 모르고있는것 같소.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벌써 들어와서 뒤거두매라도 하겠는데···》

인섭의 말에 최병규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인섭은 또 비물을 푸-푸 내불며 숨가쁜 사람처럼 힘들게 말을 이었다.

《오늘 경찰이 녹아났으니 동네사람들이 놀라서 더 조심을 하는 모양이요.》

인섭은 그렇게 말하며 텅 빈 분서건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들어갔다.

문을 활짝 열어젖힌대로 두어서 비물이 현관앞에 가득 괴였다. 안에 달린 또하나의 유리문을 열어제끼자 오히려 바깥보다 더 찬 랭기가 씽하고 불어나왔다.

《가기요. 기분 나쁘오.》

최병규는 뒤에서 고개를 기웃해보더니 억눌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에 아직 뭐가 있을가봐 그러오? 걱정마오. 꽁지가 빳빳해서 내뛰였으니까. 처음에는 안나오겠다고 버드럭거리더니 바깥에 끌려나오자마자 발바닥이 날 살려라 하고 내뛰는데 참 볼만 하더군. 한놈이 좀 어물거리다가 소대장동무의 총을 맞았지. 그런놈들을 어디 경주하는데 내보내면 문제없이 일등을 할거요.》

인섭은 이렇게 말하며 병규쪽을 돌아보았으나 병규는 들은척도 안했다.

얼마후 그들은 분서자리에서 나와 반대편 동구쪽으로 걸음을 다우쳤다.

비발이 가늘어지면서 바람이 일었다. 나무밑을 지나면 나무가지들이 비발보다 더 굵은 물방울을 뿌려던졌다.

《여보시오.》

맨 마감집 추녀밑에서 나직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두사람은 우뚝 멎어서며 총을 내댔다. 절컥하는 소리에 놀란듯 《아이쿠.》하는 소리가 어둠속에서 울려나왔다.

《누구요?》

병규가 야무지게 호령하였다.

《저··· 저 갑성이 애비우다. 골막집···》

우들우들 떨리는 소리가 두서없이 중얼거린다.

마을사람들이라는것을 확인한 두사람은 총을 내리우고 다가갔다.

추녀밑에는 두사람이 있었다. 방금 갑성이 아버지라고 한 중년사나이는 키는 작으나 다부지게 생겼고 또 한사람은 느낌이 젊은 사람같은데 키가 크다는것밖에 인상을 가려낼수 없었다.

《저, 웬 사람들인가 해서 나왔어요. 혹시 낮에 그 일때문에 오지 않았는지 해서···》

《낮에 그 일이라니 경찰놈들 녹아난것말이우다?》

인섭이가 나서며 묻자 나이 든쪽이 젊은 사람을 돌아보며 당황하여 고개를 끄떡거렸다.

《예, 예, 그거말입니다. 그 일때문에 오셨다면···》

《뭐 별로 그 일때문에 온것은 아니우다. 그건 우리가 해치웠수다.》

인섭은 어쩐지 그들의 말이 무엇인가 떠보는듯 한것이 기분이 언짢았으나 참고 시원스럽게 말해주었다.

《예?》

중년사나이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 보라요.》

하더니 이번에는 뒤전에 서있는 젊은이가 나섰다.

《그러면 저 혁명군이 아니우다?》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이요.》

《그래요?》

두사람은 한꺼번에 웨치다싶이 받아외우더니 그다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잠시 침만 삼켰다.

《아이구, 그런것을 가지고···》

중년사나이는 잠시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사람 성만이, 어서 가서 알리게. 온 동네가 지금 숨을 못쉬고있수다. 우리는 영낙없이 왜놈 <토벌대>든지 유통사보위단에서 쳐나오리라 생각했지오다.》

성만이라는 청년은 비속을 껑충껑충 뛰여갔다. 몇집 건너 있는 귀틀집문이 벌컥 열리더니 불빛이 환히 새여나왔다. 불을 저렇게 켜놓고 문에다 포장을 치고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동네사람들이 저렇게 한구들 모여서 저녁때부터 공론들이지요. 혁명군은 경찰놈들을 치고갔으니 다시 올리 없고 이건 틀림없는 <토벌대>라고 내우기는데 나도 처음에는 그 말이 그럼직합디다. 그럴바에는 누구나 이판에 나서지 않는게 좋다, 왜놈이든 유통사보위단이든 분풀이를 하자고 들겠는데 애매한 두꺼비 떡돌에 치인다고 누가 무슨 봉변을 겪을지 아느냐, 이래가지구는 한구들 모여서 공론들만 했지오다. 그런데 암만 봐야 <토벌대>같질 않더란말이우다. 벌써 사람이란 이··· 느낌이라는것이 있지요.》

갑성이 아버지의 말은 어딘가 제 자랑 비슷한데로 기울어졌지만 이런 깊은 산속에서 비상한 사건을 겪은 동네사람들의 뒤숭숭했을 마음들이 환히 느껴졌다.

한방 모여있던 동네사람들이 문을 차고 달려나왔다.

나이든 한 로인이 비속에 머리를 숙이고 갈린 소리로 중얼거렸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셨다는데 나가 마중하지는 못할망정 이 비속에 한지에 모시게 하였으니 이런 죄가 어데 있겠습니까. 동네에 사람이 수백이나 되지만 모두 눈이 멀었지요.》

동네사람들은 인섭이네를 앞질러 유격대의 우등불을 향해 달려올라갔다.

차츰 가늘어지던 비발은 어느새 멎고 서쪽으로 줄달음치는 비안개의 뒤로 아직도 흐릿하게 젖은 달빛이 엉성하던 산촌의 풍경도 사람들의 마음도 밝게 비쳐주었다.

유격대는 인민들의 간청을 물리칠길이 없어 동네로 내려갔다. 그러나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널직한 마당들을 골라 몇군데 우등불을 크게 피우고 인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새웠다.

동네사람들은 저마끔 사령관동지를 자기 집으로 모시겠다고 번갈아 간청을 드렸으나 그이께서는 그들을 우등불두리에 불러앉히시고 살아가는 형편이야기를 나누어보자고 따뜻이 말씀을 건네실뿐 자신께서 인민들의 집에 드시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는 청을 못드리게 막으시였다.

하는수없이 동네에서 도회청같이 쓰던 빈집을 부랴부랴 손질을 하고 물걸레질을 해서 사령부를 그 집에다 모시기로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날밤 각 부대들이 숙영지별로 헤여져간 다음에 다시 지휘관들과 정치일군들을 부르시여 긴급한 회의를 여시였다. 여기에 정지성, 장경수, 류진옥, 박인섭이 같은 일반대원들도 불리여왔다.

때가 때인것만큼 회의참가자들은 무슨 문제가 제기되려나 해서 누구나 긴장되였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예상과는 달리 매우 부드러운 어조로 올해 여름에 급속히 변화발전하는 정세의 요구에 맞게 우리 혁명을 한계단 더 높이 끌어올리자면 유격투쟁을 강화하는 한편 광범한 인민들을 혁명의 편에 묶어세우기 위한 군중정치공작을 그 어느때보다도 활발히 벌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특히 혁명투쟁에서 지하공작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지하공작원이 지켜야 할 일반적원칙 그리고 그동안 조선혁명이 축적한 우수한 경험들과 방법상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다시한번 긴장되였다.

그이의 말씀은 수첩에 기록해두신것을 조목조목 들어가며 하시는 체계정연하고 풍부한 자료들로 안받침된것으로서 방금 동네로 내려오기 직전까지 준비해오신 말씀이였다. 참가자들만 보아도 지휘관들과 정치일군을 내놓고보면 이래저래 지하공작경험을 일정하게는 가지고있는 사람들이였다.

지금 동네에서는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이 엇섞여 우등불을 둘러싸고 최근에 진행된 춘기반타격전의 이야기를 나누며 와-와- 끓어번지는데 사령관동지께서는 벌써 수많은 지하공작원들을 떠나보내실 준비를 하시는것이였다.

회의참가자들은 그이의 말씀을 한마디 빠칠세라 꼬박꼬박 적어나갔다.

그들은 과업만 주시면 이밤으로라도 당장 떠나갈 마음의 준비들을 갖추었다. 그러나 말씀을 끝마치신 그이께서는 군중정치사업과 지하공작문제는 흔히 사령부에서 진행하는 학습의 하나이라는듯이 실제적인 과업은 내놓지 않으시고 앞으로 이 회양동일대에서 모든 동무들이 조선인민혁명군의 장한 기세를 보여줄뿐아니라 인민들을 교양하고 그들과의 혈연적련계를 강화하는 좋은 본보기를 만들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고 모임을 끝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