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16

 

16

 

김준삼이네 정찰조가 화룡거리를 돌아다닐 그 무렵에 윤원구네 일행은 화룡에 도착하여 리호철이의 사무실 겸해 쓰는 장거리의 대서방 웃간에 려장을 풀었다.

하칠소토장을 떠나 20일이나 걸린 긴 로정이였다. 부지런히 걸었다면 넉넉잡고 1주일이면 대일 길을 왜놈경찰의 단련을 받고 아이가 앓고 마감에는 로자까지 떨어져서 동냥을 해가며, 품을 팔며 걷다나니 그렇게 엄청난 시간이 걸려버렸다.

리호철이는 거지꼴이 되여 도착한 그들을 당장 잡아먹을듯이 쏘아보다가 《팔자가 늘어졌군.》하고 이죽거리며 선자리에서 금천동으로 떠나라고 호령하였다.

춘길이의 눈이 번쩍거렸다. 뭉툭한 코와 큼직한 입, 코끼리눈같이 작게 반짝거리는 눈은 한없이 어질고 착한 그의 성미를 그대로 드러내고있었지만 이때만은 그 새초잎으로 째놓은것 같은 눈에서 류황같은 분노의 빛이 타올랐다.

《나는 못가겠소.》

이렇게 단마디로 잘라버린 그는 제 행장을 중국식 구들의 맨 구석에 쾅 메치고 비스듬히 드러누워버렸다. 일행중 그래도 걸을만 한 힘을 여태 가지고있는것은 그 한사람뿐이였지만 다른 일행들이 다리를 뻗어보지도 못하고 다시 길을 떠나게 될가봐 제먼저 밸을 내대고 드러누운것이였다.

《아니, 이 사람이, 자네 언제부터 그렇게 밸이 사나와졌나?》

리호철은 너무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언제부터랄게 있소. 우리는 금천동으로 오다가 망했수다. 넨장, 기왕 망한판에 하루 쉬고 가겠다는데 왜 땍땍거리우?》

전같으면 윤원구나 장대선이가 나서서 말렸겠지만 그들도 이제는 몸과 마음이 다 지쳐버려서 묵묵히 구들바닥에 보짐들을 내던지고 느릿느릿 걸터앉았다.

필네만이 보짐을 꼭 끼고 두꺼운 덧문 널장에 기대서서 음침한 거리를 바라보고있었다.

겉은 시꺼멓게 칠하고 안은 주토색, 혹은 진록색칠을 한 덧문들에 빨간 립춘방같은것이 얼룩덜룩 붙어있는가 하면 엄청나게 큰 종이수술을 매달기도 하고 새빨갛게 튀여놓은 통돼지가 가로누워 있기도 한 음식점이며 황아전이며 피물전 같은것들이 무시무시하게 생각되였다.

이제 다시는 정다운 사람들의 살뜰한 말을 들어볼것 같지도 않았고 두만강너머 두고온 그 포근한 산천을 밟아볼것 같지도 않았다.

황토먼지속에 떠도는 기름내, 파내, 한마디도 가려들을수 없는 떠들썩한 소음들이 빈속을 우벼내고 눈물집을 아프게 헤집기도 하였다.

그러나 필네는 입술을 앙다물고 지친 다리를 뻗디디고 서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러면 사람을 잡아먹을가, 이제 오빠만 만나면 같이 조선 가서 살면 되지.)

사나운 눈매로 일행을 쏘아보던 리호철이가 어떻게 마음먹었는지 별안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모두 지친 모양이군. 나도 기다리기에 지쳐서 짜증이 좀 났던건데 량해들하오. 그럼 좀 쉬다가 떠나도록 하지. 낮에 우리 외삼촌이 물품구입때문에 달구지를 가지고 올지 모르겠는데 그때 함께 가는것도 좋고···》

앞으로 실속있게 부려먹기 위하여 베푸는 선심이라는것을 잘 아는 사람들은 들은체도 않고 고개를 떨구었다.

리호철은 당꼬바지주머니에 두손을 지르고 회중시계사슬을 번쩍거리며 나가다가 필네를 가로떠보더니 역시 싹싹하게 한마디 했다.

《필네도 들어가 좀 누우라구. 이제 20리만 더 가면 제집이 있단말이야. 뜨뜻한 아래목과 구수한 이밥이 기다린단말야.》

어쩐지 참고있던 설음이 왈칵 쏟아지려 하였다.

제집-그따위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집이 그리워서 온 길도 아니고 뜨뜻한 아래목과 구수한 이밥이 그리워서 허위단심 그 먼길을 톺아온것은 더구나 아니다. 사람이 행색을 초라하게 하고 다니니 별것한테 다 수모를 받는것만 같아 새삼스럽게 자기 신세가 가긍하게 생각되였다.

호철이가 속들여다뵈는 느긋한 수작을 몇마디 더하고 사라진 다음에도 필네는 하염없이 떠들썩한 거리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갖가지 누데기를 온몸에 걸치고 너풀거리며 다니는 헌옷장사, 아가위를 꿴 짚뭉치막대기를 둘러멘 족두리모자,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게 구워내는 강낭지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희한한 광경들이 얼마든지 있었으나 필네는 서먹한 눈으로 까닭없이 웨치고 떠드는듯 한 그 사람들을 바라볼뿐이였다.

이때 그 소요속에서 불쑥 낯익은 얼굴이 떠올랐다.

김인수였다. 그는 장거리를 두릿두릿 살피며 붐비는 사람들사이를 빠져나오더니 강낭지짐장사앞에 무릎을 꺾고앉았다. 양복깃을 기세좋게 잡아헤치며 지짐장사가 종이에 두툼하게 싸주는 지짐을 받아서 무릎우에 척 놓았다.

어디서 돈이 났을가?

필네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일행이 먼길에 지치고 로자마저 떨어졌을 때 한목을 막아나선것이 김인수였다. 그는 동네에 들리면 큰 대문을 골라서 찾아갔다. 평생을 문명이나 예술의 도움 없이도 아무런 불편없이 살아온 시골부자들에게 김인수의 바이올린은 돼지목에 걸린 진주목걸이 같은것이였지만 어쨌든 그는 그 괴이한 나무통으로 기름때묻은 돈주머니에서 푼전을 털어냈고 허청간이든 행랑방이든 잠자리를 마련하였다.

김인수에게 신세를 적잖게 진 일행은 화룡거리에 들어서자 같이 금천동까지 가자고 끌었으나 그는 지금 당장 리호철이를 만나고싶지 않다고 하면서 후날 금천동에 찾아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딴길로 갈라져갔던것이다.

김인수는 지짐장사와 롱지거리까지 몇마디 나누고나더니 성큼 일어나서 곧장 이리로 다가왔다. 지짐꾸레미를 옆에 끼고 활기에 차서 걸어오는 그를 보니 필네는 몇해만에 다시 만나는듯 반가왔으나 맥이 빠져서 그냥 한자리에 서있었다.

일행을 기쁘게 해줄양으로 성급히 문안에 발을 들여놓던 김인수는 필네를 띄여보고 지짐꾸레미를 쳐들었다.

《보라구, 돈이 생겼어, 역시 큰거리가 다르단말야. 어서 들어오라구. 모두 잠들지 않았나?》

필네는 수선스럽게 말하는 그를 미소를 띠고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러자 웬일인지 김인수는 정색하고 문밖으로 되나왔다.

《참, 필네, 내 그러지 않아도 조용히 할 말이 있는데···》

필네는 인수의 구겨진 옷가지와 헐어빠진 깽깽이통과 누렇게 뜬 얼굴을 바라보며 다음말을 기다렸다.

《난 일자리를 하나 얻었어. 저 장거리에서 점심값을 벌자고 판을 벌렸더니 마침 그앞이 보천당약방이라는 신약도매상이야. 바이올린소리를 듣고 그 집 주인이 나와서 기웃거리더니 나더러 저네 약방 외교원으로 되지 않겠느냐고 묻더군. 바이올린을 켜며 약광고를 하라는거지. 뭐 까다롭게 생각할것 있나, 덮어놓고 선금을 얼마간 받아가지고 오는길이야. 헌데 필네생각이 나더라니 다시 말을 붙여보았지. 그게 딱 맞아떨어졌어. 마침 식모를 구하던 참이라는군. 어때?》

그러면서 김인수는 광산이 여기서도 산속깊이 들어가는데 거기 들어가기만 하면 아예 빠져나올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였다.

필네는 아닌게아니라 귀가 솔깃해졌다. 힘들고 구석진것은 다음문제고 오는길에 보아야 갈수록 산천이 낯설어지는데 이보다 더 깊은곳에 들어가서 오빠의 소식을 듣는다는것은 거의 가망없는 일같이 생각되였다. 그럴바에는 사람의 래왕이라도 많은 이런 곳에 있는편이 낫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

《허지만 나같은것을 그 집에서 받자고 할가요?》

《받지 않구. 그 집 주인도 보아하니 사람은 깬 사람이더군. 필네의 사정이야기도 하고 또 필네 일솜씨를 보면야···》

필네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미처 작정을 하기도 전부터 벌써 일행과 떨어지는것이 신의없는 일같이 생각되여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저 금천동까지 가보고 다시 나오면 안될가요?》

필네는 좀 겁먹은 눈으로 김인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무엇때문에··· 그러다가 리호철의 올가미에 걸리자구··· 떨어지자면 지금 떨어져야 한다니까. 내 그래서 저 사람들한테 알리기 전에 필네한테 먼저 말하는것이 아닌가. 인정이 그렇지 못해서 같은 자리에서 말을 꺼내면 필네가 남보기 위해서도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울거란말이야.》

그것은 김인수의 말이 그럴듯 하였다. 그러나 쉬 마음이 다잡히지는 않았다.

《그럼 좀 생각해보라구. 저 사람들이 시장하겠는데 이걸로 요기나 좀 시키고··· 필네도 들어오라구.》

이러며 돌아서던 김인수는 또 무슨 생각이 났는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일자리가 얼마나 귀한지 알아야 해.》

김인수는 장한듯이 이렇게 말하며 뜻밖의 소식을 전하였다. 그는 장거리에서 김준삼이와 리성림을 보았다는것이였다.

《그 경관놈이 이시가와구미든 호리모도구미든 제마음대로 붙여준다고 땅땅 큰소리를 치더니 웬걸 화룡거리를 헤매고있는것을 보면 다 틀린 모양이거던.》

필네는 긴장되였다. 인차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혹시 그들이 유격대인지 모른다고 수군거리던 생각도 선히 되살아났으나 짐짓 다잡고 물었다.

《누굴 그래요.》

《참 답답하군. 진호네랑 장대선아바이랑 한 광산에 있었다던 사람 생각 안나? 그 사람들이 유격대라고 대선아바이랑 춘길이랑 우기다가 말다툼까지 하지 않았나.》

《그 사람이 어디로 갔어요?》

필네는 성급하게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성문쪽으로 가더군.》

《왜 말을 해보지 않았어요.?》

《내가 약방주인하고 한참 계약조건을 가지고 의논을 하는데 바깥을 지나가더군. 뿌리치고 나갈 짬도 없었지만 만나서는 또 뭘 하겠나. 만나야 답답한 소리밖에 할게 있나.》

《그 사람들이 혹시 정말···》

필네는 무중 튀여나오려는 다음말을 가까스로 누르고 다그쳐물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멀리 갔어요?》

《이제는 퍼그나 갔을거야. 내가 주인하고 한시간나마 이야기를 한데다 장거리를 또 한참 돌아다녔으니···》

필네는 방금까지 김인수에게 품고있던 친근한 생각이 싹 얼어들고 정이 뚝 떨어졌다.

그는 공연한짓인줄 뻔히 알면서도 그 청년들이 사라져갔다는 성문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김인수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거듭 불렀으나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 세상은 끝없이 넓은것 같으면서도 알고보면 이렇게 좁기도 하다. 그 사람들이 정말 유격대원이라면··· 유격대원일수도 있지 않는가. 아니, 유격대이기가 쉽다. 그렇다면 그들은 장군님따라 무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나온것이 아닐가. 만약 그렇다면 유격대가 이 어방에도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사람들의 짬을 누비며 달리다싶이 걸어가는 필네의 머리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번갈아 떠올랐다가 사라지군하였다.

성문을 빠져나와 한참을 걸어가니 행인들은 다 없어지고 막막한 벌판이 끝없이 가로누워있었다. 역시 세상은 끝간데 없이, 손 붙일데 없이 넓고 푸접없어보였다.

엊그제 강건너에서 만났던 사람을 천리밖에서 다시 만나기도 하는데 우리 오누이는 왜 이렇게도 만나기 어려울가 이런 생각을 하니 불시에 눈앞이 보얗게 흐려들었다.

혹시 그들을 잡고 물어보았다면 실머리가 잡힐수도 있지 않았는가, 그러자 맥락없이 정섭이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럴수록 안타까운 마음 한구석에 김인수에 대한 원망이 자리잡았다.

무정한 사람이다. 그렇게 고생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인사말 한마디 건네는데 돈이 드는가, 금이 드는가, 실없이 사람의 슬픈 마음을 건드리는 슬픈 노래나 잘 부르면 뭘 하는가.

필네는 약방의 식모자리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정든 일행과 떨어지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아수한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 청년들이 사라져갔을 남쪽길을 오래오래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