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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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혁명군은 대원시림을 뚫고 단숨에 1 000여리를 북상하였다. 처음 한동안 죽을 기를 쓰며 따라오던 적들은 유격대의 행군속도가 갈수록 높아지자 마침내 떨어지고말았다.

그것은 휘풍동에서 서북방향으로 약 200리남짓 상거한 함지박같이 생긴 골짜기였다. 휘풍동지경에서 떠나 하루면 가댈 길을 실로 천리가까운 로정을 톱아 빙글빙글 돌아온셈이였다.

유격대를 놓치고 숲속에서 갈팡질팡하던 적들은 주변을 정찰한 결과 그것이 다름아닌 저희네 부대의 주둔지어방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놈들은 어쩔수 없이 바로 코앞에 있는 자기네 부대로 돌아가버렸다.

《참 기가 막히단말야. 그놈들의 마음속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시니 그놈들이 혼이 나지 않고 어찌겠나.》

허줄한 토스레차림을 한 인섭이가 감탄해서 중얼거렸다.

《저놈들이 설마 우리 장군님께서 제놈들을 돌려보내려고 여기까지 끌고오신줄은 꿈에도 모르겠지요?》

최병규는 원래가 수집은 성미라 자기 마음속의 격정을 조심스럽게 터놓았다.

《동무들, 조심하오. 저기 다리목에 기관총을 걸어놓지 않았소?》

정찰조를 책임진 김태규가 강기슭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인섭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그들은 지금 올기강기슭에 매복해있었다.

《이제 다리를 건너온 세놈이 어디론가 없어지지 않았소. 그런데 저 무덤같은것 우에서 무엇이 번쩍했소. 철갑모가 를림없소. 저게 뭘가?》

김태규는 계속 강가를 이쪽저쪽 감시하면서 중얼거렀다.

올기강기슭을 따라 3등도로가 남북으로 뻗어나갔다. 그 길을 따라가면 한가닥은 화룡으로 통하고 증봉산을 넘으면 안도에 이른다고 한다. 강건너 백일평쪽에서 건너오는 나무다리 량쪽에 적들이 경비초소를 세웠는데 류동보초가 다리를 오락가락하기때문에 건너편쪽에 있는 그 수상한 축성물의 정체를 이쪽 산등성이에서는 알아낼길이 없었다.

놈들은 최근 강기슭에 새로 병영을 짓느라고 매일 한개 중대정도의 작업인원이 저 다리목에서 돌아친다는 농민들의 말이였다.

《암만해도 내려가보는것이 낫지 않겠는가?》

인섭은 눈덕을 비비며 쏘아보다가 아무래도 똑똑치 않으니 짜증비슷하게 말했다.

《내려가다니? 잡혀서 소동을 피우자구··· 무슨 궁리가 있소?》

《궁리야 무슨 궁리가 있겠소. 어떻게 업어넘겨야지.》

《흥, 태평이군. 우리 정찰에 근거하여 사령관동지께서 작전을 세우신단말요.》

《그러니 똑똑히 해야 할것 아니우다?》

《하긴 그것도 그래. 그럼 나하고 같이 가볼가?》

《싫수다. 소대장동무야 왜놈장교흉내나 냈지 농사군흉내는 틀렸어요. 갈바에는 최동무하고 가는게 낫겠소다.》

《제가 무슨 책임자같군. 그럴것 없이 저놈들 한놈 잡아오는게 어떻겠소? 동무도 뭐 변장이 신통한것은 못돼. 그러니까 저 아래쪽여울로 강을 건너가서 매복해있다가 한놈 업어오는것이 두루 편할것 같구만.》

《그럼 그렇게 합시다. 내가 가서 업어올가요?》

《그것도 좋지만 동무는 또 누구하고 같이 가자고 하겠으니 차라리 여기서 엄호나 하오. 내 제꺽 갔다오겠소.》

《흥, 소대장동무가 가고싶다면 곱게 그렇게 말할것이지··· 내가 언제 누구를 데리고가겠다고 하기나 한것처럼··· 그럼 제꺽 갔다오시우다. 에- 따분한 정찰도 있군. 병규동무, 우리는 여기서 담배나 한대 피우장이.》

태규는 든든해보이는 이를 허옇게 드러내고 웃으며 인섭의 등을 툭 한번 치고는 새초밭으로 사라졌다.

《날래기는 날래단말이야. 오늘 어떤놈이 저 손에 걸리겠는지 명금이 밭은놈이지.》

《다리목으로 가자고 우기는건데 그랬소다. 이건 심심해서 견디겠소다.》

《하는수없지. 》

인섭은 얌전하면서도 은근히 고집이 있는 병규를 곯려주듯 저 혼자 씩 웃고는 벌렁 풀밭에 드러누웠다.

하늘에서도 오래간만에 구름속을 헤치고 나온 초여름의 해빛이 신선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이때 다른 한조의 정찰조인 김준삼이네 소조는 아침나절에 현성안을 한바퀴 돈 다음 부대로 돌아오는 길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지난 장마행군때 봉천려단 1대대의 포로 황진국을 통하여 장조부대의 주력이 올기강기슭에 주둔하였을뿐아니라 안도, 돈화, 화룡을 련결하는 도로분기점에다 축성물공사를 벌려놓았다는것을 아시고는 적의 기도를 인차 간파하시였다.

올기강기슭의 적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머지않아 놈들이 이 여름에 유격대를 화룡현경안의 좁은 지역에다 봉쇄해넣으려고 하는 중요거점이 마련될것이였다. 따라서 이것을 사전에 짓부셔버려야만 놈들의 사기를 꺾어놓고 인민들에게 힘을 줄것이다. 아울러 적들로 하여금 광활한 전선에 병력을 널어놓지 않을수 없게 할것이며 결국은 더 많은 무력을 두만강기슭으로 끌어오게 할것이다. 그때에는 놈들을 한꺼번에 큼직하게 타격하고 단숨에 몸을 날려 광활한 전선으로 날아갈수 있을것이였다.

그리하여 사령관동지께서는 올기강기슭에서의 적의 군사적기도를 똑똑히 확인할뿐아니라 그것을 놈들의 전반적인 동태와 결부하여 파악할 목적으로 넓은 지역에 정찰조를 파견하셨던것이다.

김준삼이네 소조는 그중 멀리 파견된 정찰조였다. 그래서 기간도 넉넉히 정해주시였다. 그러나 워낙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대원시림을 꿰질러 100여리반경을 즈루밟아야 하니 길을 다우치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은 현성을 빠져나오자 갈 때와는 달리 곧장 큰길을 따라 남쪽으로 걸었다. 현성에서 얻은 수확은 특별한것이 없었다. 주변농촌에서 장보러 온것처럼 가장한 그들은 가게방 이외의 곳은 출입하기도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거리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는사이 적지 않은 인간들을 접촉할수 있었고 두루두루 얻어들은 말도 적지 않았다.

화룡거리에서 특징적인것은 수많은 군대와 경찰무력이 밀려들어있다는것이였다. 본시 있던 독립수비대외에 현성에 새로 증강된 부대는 길림 1려단이라고 했다. 2려단은 흔적도 없었다. 그놈들이 올기강기슭에 도사리고있다는것이 어느모로 보나 사실인듯 하다.

《이놈들이 이제는 압록강쪽의 무력을 얼추 끌어다놓은것 같소. 그런데 2려단만은 보이지 않으니 올기강에 그놈들이 있다는것이 틀림없을것 같소.》

김준삼은 이미 숲 저쪽으로 멀어져가는 현성쪽을 돌아보며 혼자말처럼 말했다.

《<신선대>라는것은 뭡니까?》

내내 남만쪽에서 싸우다가 지난 가을 남패자에서 7련대에 편입된 최동무가 물었다.

《그런게 있소.》

하고 김준삼은 무겁게 말했다.

《말하자면 왜놈들이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을 <소멸>하겠다고 특별히 조직한 부대지. 순전히 포수들로만 조직된 제일 악질적인 부대요. 그놈들도 유격대식으로 한다는거지. 산에 익숙한 포수들에게 훈련을 주어서 산으로 내몬단말이요. 그 대장이라는놈이 전에는 리도선이라고 천하 못된놈이였는데 재작년 여름에 4사동무들에게 맞아죽었지. 지금은 어떤놈이 하는지 모르겠소.》

《리도선의 형이란놈이 한답니다. 리도일이라고···》

리성림이 수굿하고 앞장서 걷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건 동무가 어떻게 아오?》

김준삼은 미덥지 못하다는듯이 잠시 성림의 뒤모습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내가 무산에 있을 때 들었습니다. 동생의 원쑤를 갚겠다고 자진해나섰답니다. 연길, 화룡일판에서는 소문이 났댔습니다. 땅뙈기나 가지고있던놈이 호의호식 다 집어던지고 총을 메고 나섰으니 독한 마음을 먹었을것입니다. 어찌나 악질로 구는지 <신선대>다 하면 울던 아이들도 입을 다문다고 합니다.》

《흥, 그렇다면 이번에 그놈을 또 잡아치워야겠군.》

얼마 안가서 길가에 큰 동네가 나타났다.

《저것이 유통사가 산다는 태평촌이우다.》

정찰경험이 많은데다가 이 지대를 잘 안다고 해서 성림이와 함께 안내격으로 따라온 박용태가 걸음을 멈추고 말하였다.

그들은 이 어방에서 다시 숲속으로 들어갈 작정을 하고있었다. 태평촌근방은 유통사보위단이 돌아치기때문에 현성보다 더 위험하다는것이였다.

길가에 숨어서 한동안 동네를 살펴본 다음 숲속 오솔길로 길을 잡았다.

하늘을 볼수 없는 밀림속이라 얼마나 왔는지 대중할수 없었지만 해가늠을 해보면 그럭저럭 30리는 실히 왔을 때였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오솔길은 다시 큰길로 이어졌다. 큰길이 다시 나지는바람에 일행은 긴장되였으나 살펴봐야 동네도 인가도 보이지 않고 한적한 3등도로가 뻗어있을뿐이라 마음놓고 큰길로 나섰다.

그런데 불과 한참을 못가서 뒤에서 워낭소리가 따라왔다.

일행은 길가 나무그늘에 숨었다. 마차를 살펴보니 한쪽은 황부루, 한쪽은 새까만 가라말이 끄는 쌍두마찬데 재빛포장을 씌운 고급승용마차이다.

《괜찮은데요. 》

박용태가 준삼이에게 속삭였다.

《이 어방에서 저런 마차를 타고다니는 사람은 현성의 큰 관리나 유통사밖에 없습니다. 잡아올가요? 뭘 알아낼수 있을것입니다.》

준삼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주변에는 총소리를 울려봐야 당장 달려올 적이 있어보이지 않고 뒤는 길가에서부터 곧장 밀림이였다. 다른 정찰조들이 여러곳으로 떠나기는 했지만 자기네가 현성에 들어가서 알아낸 자료는 충분한것이 못되였다. 그가 보기에도 마차의 주인을 잡아족치면 무엇인가 게워놓을것 같았다.

《마차는 여기다 세워두고 최동무가 타고있소. 누가 물으면 주인이 소변보러 간것처럼 하오. 다짜고짜 저 큰나무아래까지 끌고오시오. 부르죠아란 아예 첫참에 혼을 내주어야 길이 잘 드오.》

준삼은 이렇게 말하고 제먼저 숲속으로 들어갔다.

마차는 삽시에 매복지점에 들이닥쳤다. 박용태가 그리 덤비지도 않고 길복판에 나서서 말고삐에 손을 뻗쳤다.

《이게 어떤놈이야! 저리 썩 비켜서지 못해!》

말이 대가리를 휘저으며 멎어서는바람에 마부령감이 허리를 일으키고 채찍으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령감님, 좀 쉬여가시지요. 와-와-》

박용태가 능숙하게 말고삐를 잡고 말대가리를 다둑거리며 씩 웃으니 마부는 눈이 퀭해져서 새삼스럽게 사위를 휘둘러보았다. 권총을 뽑아들고 마차 량옆에 붙어서서 다짜고짜 문짝을 열어제끼는 두 젊은이를 보자 어지간히 건장해보이는 마부도 두 무릎을 사시나무떨듯 하였다.

그러나 더 놀란것은 마차문을 열어젖힌 유격대원들이였다. 시누런 견장을 단 경찰이나 군대 아니면 배뚱뚱이 토호같은것을 머리속에 그리고있던 그들은 우선 뜻밖에 풍겨오는 향수냄새에 코살을 찌프렸다. 이어 호피탄자우에 동그마니 앉아있는 해반주그레한 얼굴과 산뜻한 여름옷차림을 한 녀인의 모습에 눈이 화등잔같이 되였다.

《뭐야? 어서 끌어내시오.》

아직 영문을 모르는 박용태가 말고삐를 잡은채 소리쳤다.

《끌어낼것 있어요? 내가 나가지요.》

누가 대답하기 전에 이런 목소리와 함께 날씬한 처녀가 발디디개에 한발만 걸치고 길우에 성큼 내려섰을 때 박용태도 깜짝 놀랐다.

세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이런것도 과연 끌고갈만 한 가치가 있겠는가 하는것을 말없는 가운데 의논하는것이였다.

《당신들은 뭐예요?》

처녀는 눈섭 하나 까딱 않고 세사람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이미 첫참에 혼을 내줄 기회를 놓쳐버린 세사람은 저으기 난감해져서 대체 어디서 이런 괴이한 물건이 나졌을가 하고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하여간 끌고갑시다.》

성림이 이렇게 말하며 숲속으로 턱질을 하였다.

《우리가 무엇인가는 이제 곧 알게 될거요. 어서 걸으시오.》

《말투를 보니 강도는 아닌것 같군요. 당신들은 대체 이게 누구네 마찬지 알기나 하고 이런 행동을 해요?》

《덕분에 그게나 좀 압시다. 이게 누구네 마차요?》

박용태가 비로소 정신을 수습하고 앞으로 나섰다.

《현경찰국장 유경문씨의 마차쯤 알아두고 이런 길목을 지키는게 좋겠는데요.》

수련이는 새침해서 이렇게 말하고 재빨리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자기딴에 상당한 효과를 기대했던 그 말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뭐 현경찰국장? 그렇다면 바로 맞다들었군. 역시 내 눈이 틀림없단말이요.》

박용태가 이렇게 말하며 다짜고짜 수련이를 숲속으로 떠밀었다.

《이건 뭐예요?》

수련이는 비로소 파랗게 질리며 소리쳤다.

《마차주인이 아닌것이 유감이다. 어서 걷기나 해.》

수련이는 유경문을 끌어댄 자기의 옅은 꾀를 혀를 깨물고 후회하며 무시무시한 숲속으로 걸어갔다. 답답한 생활, 끝없는 탐욕과 간계, 음모가 인간의 모든 정신령역을 침식해버린 무시무시한 사회, 그런가 하면 온갖 비렬하고 속된것이 우글거리는 따분하고 너절한 분위기에 극도의 혐오감을 가지고 무엇인가 머리가 핑 돌만큼 자극적인 그 어떤 사건을 기다리며 살아온 수련이였다.

한밤중에 가병들을 꾀여내여 술을 먹이고 황진국을 빼내준것도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귀여워해주던 농민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무엇인가 그 토담속의 인간들을 놀라게 해주고 그들이 당황해서 돌아가는것을 보고싶은 얄궂은 심리가 더 많이 작용하고있었던것이다. 건강때문에 벌써 1년째 학교에 나가지 않았지만 자기 마음에 있는 말은 한마디도 할수 없는 교원생활이 벌써 싫증난지 오랬다. 지금 학교로 돌아가지 않는 주되는 원인은 건강에 있는것이 아니라 어용교과서의 랑송자노릇을 더는 하고싶지 않은 권태감에 있었다. 그렇다고 그 역겨운 생활, 역겨운 인간들과 대담하게 인연을 끊어버리고 나설 용기는 부족하였다.

언니를 비단옷가지속에서 시들어간다고 못살게 욕하고 마침내는 울려주기도 했지만 그자신 자기의 출로를 찾지 못했다. 어디에 가면 참된 생활이 있고 참다운 인간들을 만날수 있을가? 무엇인가 비상한 사건이 기다려졌다. 허구한 낮과 밤을 독서속에 보낸 수련이가 꿈꾸지 않은 생활이 어디 있으랴. 그는 공상속에서 이딸리아강도들의 환상적인 소굴에도 가보고 보헤미야의 산중에도 가봤으며 지어 화성의 정복자들속에도 끼여보았다.

그렇게 기다리던 비상한 사건이 마침내 눈앞에 벌어졌다. 그러나 우중충한 밀림속으로 한걸음한걸음 발길을 옮겨놓을 때 수련이의 마음은 랑만적인 꿈에만 잠겨있을수 없었다. 그는 아래다리가 후들거렸으며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눈앞이 캄캄하고 겁이 앞섰다. 그는 끔찍이도 깊이 들어가는것만 같아 절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마부는 수굿하고 뒤따라오는데 그는 이미 모든것을 단념해버린듯 철색얼굴을 무표정하게 쳐들고있었다. 그뒤로 따라오는 청년이 무의식중에 권총을 옆차기에 건사하려다가 도로 꺼냈다. 부드러운 그 얼굴빛으로 보아 어쩐지 그에게 사정하면 동정을 받을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한가닥 희망이 떠올랐다.

수련이는 주춤거리며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직 멀었는가요?》

성림은 이윽히 그 녀자를 바라볼뿐 말없이 걸으라고 권총으로 앞을 가리켰다.

수련이는 다시 절망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불과 여라문걸음 앞에 웬 사나이가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진대통우에 조용히 걸터앉은 그 사람은 어찌나 태연하던지 자기앞으로 사람들이 다가오는것을 전혀 못보는것 같이 생각되였다.

《마차는 유경문의것이라는데 속에는 이런 부르죠아처녀가 앉아있습니다.》

박용태의 랑패한듯 한 말을 듣고서야 김준삼은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곧바로 수련이를 쏘아보았다. 허줄한 농군차림을 했지만 그쯘한 체격과 높은 이마, 날카로운 눈뿌리 어디에나 지성이 내풍기고있었다.

수련이는 무서운중에도 어딘가 낯익어보이는듯 한 어렴풋한 인상을 받았다.

《유경문이와 어떻게 되오?》

날카로운 눈빛에 비해서는 뜻밖이리만큼 부드럽고 또 세련된 말씨였다.

수련이는 상대가 무지막지한 폭한들이 아니라는것을 눈치채고 차츰 가슴이 진정되기 시작하였다.

《우리 형부예요 》

《형부라는것은?》

준삼이 역시 속으로 난감한것을 느끼며 시들하게 물었다. 악질이면 악질이고 그렇지 않으면 좋은 사람이고 어느편이든 계선이 명확해야 무엇인가 일할 거리가 있겠는데 유경문의 처제라는것은 전혀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저의 언니가 그 집에 시집을 가서···》

《그것은 알만하오. 그런데 동무가··· 말하자면 당신이 왜 그 집 마차를 타고다니는가말요?》

《전 언니한테 병 간호하러 갔댔습니다. 언니의 병이 나아서 집에 돌아가자니까 그 사람들이 마차를 내주었습니다.》

수련이는 여기서 자기가 약간 거짓말을 하고있다는것을 깨달았지만 상대방이 유경문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있다는것을 눈치챈 그때부터 저도모르게 자기가 유경문이와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것을 은연중 말투에 풍기려고 애쓰게 되였다. 그것이 마음 한구석에 꺼림직하였지만 한편에서는 자기가 유경문이나 그 일가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것은 어디까지나 사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집이 어디요?》

《봉산동입니다. 저는 목단강에서 교원질을 하고있는데 요즘 건강이 좋지 못해서 집에서 놀고있습니다.》

《교원? 흥미있군, 그럼 당신도 알만 하겠는데··· 가만 저 사람은 마차분가?》

《그렇습니다.》

하고 박용태가 대답하였다.

《그럼 용태동무는 저 사람을 데리고가서 뭘 좀 알아보오. 마차에는 최동무가 있지?》

《그렇습니다.》

《됐소. 그래 당신도 불편한대로 여기 좀 앉소. 무서워할것은 없소. 좀 놀란것 같은데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요.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해 들은 말이 있소?》

수련이는 앉을념을 못하고 서있다가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바람에 안도의 숨이 새여나갔다.

《들었어요. 들어도 아주 많이 들었어요. 김일성장군님께서 신출귀몰한 전법으로 왜놈군대와 경찰을 무자비하게 족치신다는 소문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몰라요. 이번에도 우리 형부가 경찰을 끌고 유격대를 치러 간다고 나갔다가 죽을 고생을 하고 몸살에 걸려서 돌아왔는걸요. 그럼 당신들이 조선인민혁명군인가요?》

수련이는 흥분하여 재빨리 말을 섬기고나서 두사람을 번갈아보았다. 역시 처음부터 어딘가 느낌이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예감이 맞았다고 생각하니 머리속에서 흔적없이 사라졌던 랑만적인 꿈이 되살아났다.

김준삼은 그 녀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따로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앉으시오. 허허허, 유경문이가 몸살에 걸렸단말이지. 그자가 <토벌>에 나온줄 알았더면 진작 잡아치울걸 유감스럽게 됐군. 그래 지금 그자가 어디에 있소? 당신네 형부라고 하는 그 유경문이말이요.》

수련이는 묻는대로 짤막짤막하게 대답을 하면서 계속 커다란 호기심을 가지고 두사람을 관찰하였다. 자기를 데리고오던 청년은 심문에 그닥 흥미가 없는지 가끔 이쪽을 볼뿐 생각에 잠겨있다. 우중충한 토호의 토담속 비단이부자리와 기름진 음식때문에 해이되고 타락한 저속한 인간들을 멀미나도록 보아온 수련에게는 신록이 무성하여가는 숲과 같이 청신한 정신과 약동하는 젊음과 발랄한 지성을 느끼게 하는 근육이 발달한 몸매며 솔직하고 간명한 말투며 허식을 모르는 몸가짐에 다감한 마음이 끌리였다. 게다가 그가운데 한사람은 볼수록 낯이 익었다.

이야기가 끝나갈무렵 수련이는 마침내 묻고야말았다.

《저도 사실 이 현실이 견딜수 없이 역겨워요. 그런데 실례지만 혹시 당신은 연길이나 룡정같은데 계신적이 없으신가요?》

《그건 왜 묻소?》

김준삼은 초면의 인테리처녀에게서 적의 동태, 특히 길림1려단과 봉천2려단의 움직임에 대해 캐여묻다가 불쑥 뜻밖의 질문을 받고 떨떨해졌다

《어쩐지 낯이 익어서요.》

《가만, 당신은 목단강에서 교원질을 한다고 했지? 그럼 학교를 목단강에서 다녔소?》

《아니요. 학교는 연길에서 다녔어요. 그때 동무들가운데는 조선학생도 많았어요.》

《그렇다면 어디선가 만났을수도 있지. 간도땅치고 내가 못다녀 본데라고 별로 없으니까. 그렇지만 아가씨가 그때 나를 어디선가 만났다 해도 그걸 여태 기억하고있다는것은 잘 믿어지지 않는군요.》

준삼이는 잘라서 말하고 다시 마라초를 말기 시작하였다.

수련이는 일부러 푸접없이 굴려고 하는듯 한 그의 거동을 찬찬히 바라보더니 확신에 차서 말했다.

《당신은 나를 조심하시는군요. 그건 아마 당신들의 립장에서 볼 때 응당한것이겠지요. 그러나 나는 벌써 당신을 어디서 봤는지 알아냈어요. 당신은 룡정에서 중학교를 다녔지요? 학교의 축구선수였지요? 당신은 그때 벌써 유명한 학생이였어요. 나도 한때 당신이 번개처럼 뽈을 몰고갈 때 열광적으로 박수를 친적이 있어요. 당신은 유도선수라고도 하더군요.》

《허, 이것은 지나친 영광을 베풀지 않는가요? 아가씨, 그런 부르죠아 처세술을 쓰기에는 아가씨도 너무 나이가 어린것 같고 또 대상도 적당한것 같지 않소. 내가 당신하고 특별히 구면이 아니라 해서 당신을 필요이상 엄격하게 다루지는 않을테니 아가씨의 형부같은 인간들의 흉내는 내지 마시오.》

김준삼은 속으로 좀 당황한것이 사실이나 아무래도 파악이 없는 녀자앞에서 자기 정체를 밝힐 필요도 없고 또 그것때문에 특별히 놀랄것도 없다고 생각되여 적당히 구슬려 넘기였다.

《너무 성내지 마세요. 나는 이런 숲속에서 당신을 만났다는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테니까요.》

《나를 만났다는것을 감출 필요는 없소. 뭐 나를 언청이로 본것도 아니고 녀학생때부터 박수를 쳐주었다니 잘못하면 아가씨네 집에서 무슨 오해라도 할가봐 걱정이 갈뿐이요.》

《어마나···》

수련이는 얼굴에 홍조를 띠우고 가볍게 부르짖었다.

사건의 시작은 어마어마하였으나 종말은 싱거웠다.

마부와 함께 다시 그 따분한 생활과 련결된 한적한 촌길에 단 둘이 남았을 때 수련이는 방금 자기네가 겪은 일이 꿈같이만 생각되였다.

《참, 이런 무서운 세상에 의로운분들도 있군요 》

수련이 이상으로 놀랐으나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마차의 자기 자리에 도로 앉게 된 마부는 멍하니 숲속을 바라보는 수련에게 중얼거렸다.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말하세요.》

수련이는 비상한 그 무엇으로 충만되여있으면서도 조용히 설레이는 숲을 깊은 생각에 잠겨 바라보다가 마차에 올라탔다. 자기 일생에 단 한번밖에 차례지지 못한 뜻있는 생활에로의 비약의 기회가 허무하게 지나가버린것만 같은 아수한 생각이 가슴을 애틋하게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