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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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그냥 구질거리고 적은 꼬리를 물고 놓지 않는다. 어제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마속에 넣었던 쌀을 여섯번이나 도로 꺼내여 이고 달리시다가 마감에는 벌렁벌렁 끓는 가마를 그채로 머리에 이고 뛰지 않으면 안되시였다. 대원들은 그렇게 해서 익혀온 낟알을 넘기자니 뜨거운 감동이 치밀어 목젖이 잘 열리지를 않았다.

그처럼 낟알을 아꼈지만 계속되는 행군과 전투속에서 식량사정은 또 긴장되였다. 적들을 따돌리고 다시는 따라서지 못하게 결정적인 대책을 취해야만 하였다.

철구아주머니는 마침내 고열을 내며 드러누워 앓았다. 헛소리를 치는가 하면 이따금 의식을 잃군 하는 그를 이제는 부축해서도 걸을수 없어 들것에 눕혀 네사람이 메고갔다.

7련대가 돌아온 다음 행군방향을 서북방향으로 잡은지 사흘째 되는 날 조선인민혁명군은 엄청나게 큰 이깔나무숲속에 들어섰다.

하루종일 걸었지만 숲속에는 공지 하나 나지지 않고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솟은 거목의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해빛이 스며들지 못하여 바닥에는 풀도 자라지 못하고 해묵은 락엽만 무릎이 빠지도록 깔려있었다. 그런 락엽층을 뚫고 새로운 생명이 솟아나리라고는 상상도 할수 없었다. 날이 흐리고 비가 구질거리니 무장한 큰 대오가 가는데도 어쩐지 무시무시한 생각이 엄습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적들도 함부로 달려들 생각을 못하고 먼발치에서 졸졸 따라오기만 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기관총수들이 메고가는 철구아주머니의 들것채를 잡고 따라 걸으시며 몇번이고 말씀을 하시려다가 까실까실 튼 입술사이로 새여나오는 가냘픈 신음소리를 들으시고는 다음 기회로 미루군 하시였다.

철구아주머니는 정 고통이 심하면 담요밑에 얼굴을 파묻고 신음소리를 참으려 하는것 같은데 그때마다 이를 맞쪼는 소리가 새여나와서 들것을 들고가는 대원들의 얼굴에도 비지땀이 내솟게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차피 철구아주머니는 대오에서 떨어지지 않을수 없다는것을 깨달으시였다. 첫째 이런 행군에 견디지 못하는것이 철구아주머니자신이였다.

두시간 가까이나 계속된 강행군끝에 겨우 휴식이 선포되였다.

모두 숨을 헐썩거리면서도 몸을 놀리고있을 때는 그래도 나은 편이였다. 일단 휴식이다 하고 펄썩 주저앉고보니 그 누구도 다시 일어날 생각을 못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들것에 누운채 눈을 지그시 감고있는 철구아주머니의 검푸르게 질린 얼굴을 근심에 잠겨 바라보시였다. 사정없이 흔들거리는 들것우에서 고열에 시달리는 그가 다시 견디여주기를 바란다는것은 가망없는 일이였다. 그렇다고 이 무인지경 원시림속에 그를 어떻게 떨구어둔단말인가.

재영이가 달려왔다. 사령관동지께서 부르신다는 말을 들은 김정숙동지께서는 웬일인지 가슴이 두근거리시였다. 까닭없이 진작 이러한 부르심을 기다리고있었던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어디로 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령부가 있는 경위중대방향과는 반대쪽으로 방향을 잡는 재영이를 의아스럽게 바라보며 물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저쪽에 계세요.》

《그쪽에 무슨 일이 있어요?》

《사령관동지께서 초막을 짓고계십니다.》

《초막?》

김정숙동지께서는 더는 묻지 않으시였다.

며칠째 계속되는 행군과정에 한번도 눈에 뜨이지 않던 공지가 나졌다.

도끼소리가 울리여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웃통을 벗어붙이시고 나무가지들을 자르고 계시였다. 공지한가운데 세가닥으로 기둥을 세우고 꼭대기를 칡넝쿨로 동인 초막의 형틀이 이미 세워져있다.

《사령관동지, 명령대로 왔습니다.》

하고 보고를 올린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어 그이의 손에 쥐여진 도끼로 손을 뻗치며 말씀하시였다.

《제가 하겠습니다.》

《일없습니다. 어떻습니까? 꽤 견딜것 같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씀을 못드리고 땀이 내배이신 그이의 얼굴을 송구한 심정으로 바라보시였다.

《필요하시면 저희들에게 시키시지 않고 손수 이런 일까지 하십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너무나 안타까와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드리시였다.

《경위중대동무들이 다 지었습니다. 그 동무들이 지금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정숙동무가 보기에 어떻습니까? 철구아주머니는 아무래도 행군에 견딜것 같지 않습니다.》

《저도 걱정하다가 왔습니다.》

《이제 부대는 더 급하게 행군해야 합니다. 저놈들을 강기슭 못미처서 떼버려야 합니다. 그래놓고 아군이 유리한 지점에서 저놈들을 다시 끌어내다가 호되게 족치자는것입니다. 그러자면 우리가 힘겨운 행군을 해야겠는데 철구아주머니의 몸으로 그 행군을 견딜것 같지 못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잘라놓은 나무가지들을 가름대에 대고 두간두간 붙들어매여나가시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강봉수와 재영이는 옆구리에서 잘 벼린 총창을 뽑아내여 잎이 무성한 가지들을 적당히 다듬어가지고 한아름씩 안아날랐다. 저쪽에서 텅텅 하고 나무찍는 소리가 나는것으로 보아 경위중대의 누군가가 거기서 가지를 치고있는 모양이다.

초막이라고 하지만 풀이 귀하니 나무가지로 웃설미를 대자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여기다 철구아주머니를 당분간 떨구어두고 병치료를 시켜야겠습니다. 정숙동무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제가 잘 도와주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것 같습니다. 정말 이런 때 몸이라도 성해야겠는데 사령관동지께 이런 걱정까지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사람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모진 시련속에서는 앓는것이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철구아주머니는 젊지 않은 몸입니다.》

육체적부담을 두고 말한다면 누가 사령관동지만큼 힘든 사람이 있을것인가. 그런데도 사령관동지께서는 잠시의 휴식시간마저 다 바치시여 혁명의 운명전반에 대해 걱정하실뿐아니라 지어 이런 초막을 짓는 일에까지 몸소 손을 붙이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바로 그런것을 말씀드리고싶으시였다. 그러나 웬 까닭인지 말씀이 나가지 않으시였다. 철구아주머니를 정작 떨군다면 그가 고열을 앓는 몸으로 이 숲속에서 어떻게 견딜것인가 하는 걱정이 앞서기때문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불안스럽게 사령관동지를 지켜보시였다.

《사실 유격대의 길을 어떻게 지금부터 다 내다볼수 있겠습니까. 나는 며칠후이면 당장 돌아오고싶지만 싸움을 치르면서 나가야 하니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여기다 몸이 추설 때까지 남겨두는것이 철구아주머니를 위해서도 좋을것 같습니다. 외진곳이니 적들에게 발견될 걱정도 없습니다. 좀 외롭겠지만 어찌겠습니까, 넉넉히 잡고 한달쯤 참아야 할것 같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하늘을 쳐다보시였다. 구름속에서나마 해가 기울어진것이 알리였다. 을씨년스런 구름장들이 형체도 없이 몰키여 남쪽으로 성급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철구아주머니에게 여러 동무를 떨구어둘수는 없습니다. 지금 부대의 형편을 봐도 큰 전투를 예견해야겠으니 누가 한사람이 남아서 철구아주머니를 돌봐야 할것 같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사령관동지의 설명을 듣지 않고도 지금형편에서 한사람의 환자를 간호할 사람을 따로 떼낸다는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것을 쉽게 리해하실수 있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철구아주머니의 일이 그처럼 걱정스러우셨던것이다. 누가 함께 붙어있어서 간호를 해준다면 힘겨운 행군길에 들것에 누워 마구 흔들리는데 비길수가 없을것이다.

《정말 누가 남을수만 있다면 철구아주머니에게는 훨씬 좋을것 같습니다. 암만 봐야 열병같은데 그런 몸으로는 행군을 겪어낼것 같지 않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비로소 자신을 가지고 말씀드리시였다.

《그것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철구아주머니의 심정을 생각해볼 때 이 일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철구아주머니는 본시 외로운 사람입니다. 일가도 친척도 없습니다. 있다면 혁명전우가 있을뿐입니다. 그는 혁명의 품을 정든 제집처럼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런 동무가 인적없는 숲속에 홀로 떨어졌을 때 무슨 생각인들 안하겠습니까. 좋자면 몇사람 같이 있게 해서 그 동무가 외로와하지 않고 신심을 가지도록 해주어야겠는데 그럴수가 없습니다. 그대신 한사람이 남아도 아주 가까운 동무를 떨구어야겠습니다. 정숙동무 생각에는 누가 적당할것 같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간절한 눈길로 말씀없이 그이를 지켜보시였다.

그이께서는 김정숙동지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시려는듯 초막을 꾸리시는데 열중해계시였다.

가름대를 얼추 다 매놓으시자 한걸음 물러서시여 모양을 살펴보시는가 하면 이곳저곳 흔들어도 보시고 밀어보시기도 하시였다.

아무래도 든든하지 못하다고 보신곳은 칡넝쿨토막을 찾아내시여 덧얽어매시고 다시 흔들어보시였다.

초막은 한두사람이 거처하기에는 넉넉하리만큼 크고 넓었다.

재영이가 섬겨드리는 나무가지들을 단으로 묶으시여 두툼하게 엮어나가시는 그이의 얼굴에는 차츰 피곤의 빛이 감출수 없이 드러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더는 보고만 있을수 없어 그이의 일손을 도와드리시였다. 강봉수와 재영이가 날라온 나무가지들을 어찌나 두텁게 깔아나가시는지 어방없이 모자랐다. 재영이는 도끼질소리가 나는쪽을 향하여 《소대장동무, 아직 모자라요. 자꾸 찍으라요.》하고 소리쳤다. 그쪽에 아마 강철룡이 있는 모양이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손에 잡히는 가지들을 자르기도 하고 재영이가 쳐낸것을 나르기도 하시였다.

다시 나무단들을 가름대에 대고 엮기 시작했을 때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이께 칡넝쿨이랑 나무가지들을 엮어서 섬겨드리며 조용히 말씀드리시였다.

《제가 남는다면 사령부의 식사는 어떻게 보장하겠는지 걱정됩니다.》

《정숙동무, 남아주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손을 멈추시고 시름이 놓이시는듯 밝은 음성으로 되물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드릴 대답이 없으시였다. 그저 눈길을 떨구고 나무단만 섬겨드리시였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이런 일을 누구에게나 맡기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나는 정숙동무를 생각했습니다. 철구아주머니도 정숙동무가 옆에 있으면 마음을 놓을것 같습니다. 나 역시 정숙동무가 남아있으면 마음이 놓이겠습니다. 중태에 빠진 전우를 이런데 떨구어두고 가자니 내 마음이 가볍지 않습니다. 정숙동무, 어떻게 하겠습니까, 좀 수고를 해주시오. 한달이내에 꼭 찾아오겠습니다.》

《사령관동지.》

김정숙동지께서는 괴롭게 울려나오는 그이의 말씀을 듣자 자기가 너무나 그이의 깊으신 뜻을 받들지 못했다는 송구한 생각이 들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드리시였다.

《제가 남겠습니다. 사령관동지의 말씀대로 철구아주머니의 몸을 꼭 추세우겠습니다. 이제는 사령부로 돌아가주십시오. 제가 모든 차비를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내 마음이 놓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이미 다 된 초막을 다시 이리저리 살펴보시고 손질을 하시면서 우등불자리를 잡으시고 락엽을 손수 안아다 바닥에 깔고 그우에 귀한 새초를 멀리까지 가서 베여오시였다.

초막차비가 얼추 됐을 때 그이께서는 재영이를 휴식장소로 보내시여 조진범과 오백룡이를 불러오도록 하시였다.

두사람이 이 초막에서 날수 있도록 식량을 비롯한 차비를 갖추어주도록 하시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