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13

 

13

 

유경문은 불과 며칠동안의 추격전에서 몸살을 만나 현성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태평촌 큰집에서 쓰러져버렸다. 김일성장군의 유격대가 무섭다는 말만 들었지 실지 제몸으로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였다. 이번만 해도 그것이 실지 제몸으로 김일성유격대를 겪었다고 봐야 하겠는지 어떤지 똑똑치 않았다.

시마끼란놈이 뒤에서 음흉수를 꾸미고 혼마가 또 음으로 양으로 자기를 못미더워하는 눈치를 챈 유경문은 괜히 결기가 치받쳐 《경찰토벌대》를 따라나섰던것이다. 말이 경찰국장이지 총 한방 쏘아본적 없는 그가 《토벌대》를 지휘할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현경찰국장이 직접 《토벌》에 나섰다는 그럴듯 한 너울을 씌워주었다. 그러나 그 너울도 첫날뿐이고 우선 숲속에서 구질거리는 비때문에 화려한 껍데기는 싹 벗어지고말았다. 회양동 못미쳐서 야숙을 하다가 재밤중에 유격대의 습격을 만난 때로부터 연 사흘동안 사슬에 묶이운 개처럼 유격대를 따라다닐내기 죽을 고생을 하였다. 유격대는 그렇게 끌고다니다가 어느 숲속에서 개배때기를 걷어차듯이 기관총 일제사격을 한번 되게 퍼부어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다시는 찾을길이 없었다.

유경문은 어떻게 하라느냐는 《토벌대장》의 질문에 대해 끙끙 앓음소리로 대답하고 그길로 태평촌으로 마차에 실려왔다.

집이라기보다 성이라고 해야 할 이 엄청나게 크고 요란한 집대문앞에서 동생 주경무가 집안의 노복, 사병들 수십명을 거느리고 마차를 맞이하였다.

얼핏 고개를 돌려보니 동생은 시세에 따라 협화복을 입고 모자까지 쓰고 나왔는데 조금만 도수가 오르면 종들을 호령하여 대렬경례라도 시킬것만 같았다. 전보다 달라진것은 한집안 우글거리던 보위단이 푹 줄어들고 총마저 빼앗겨서 다른 노복들과 크게 구별되지 않는 점이였다. 그래도 보위단장 유청백이만은 커다란 목갑권총을 차고 눈알을 불량스럽게 굴리고있다.

유경문은 8촌인지 9촌인지 된다고 해서 집안일에 헌신적으로 나서는 이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기는 몇촌이라고 헬수 없을만큼 먼 친척들도 그렇고 지어는 타고장, 타성 사람들도 유통사의 일이라면 누구든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삼촌 유상춘이 자식이 없어서 그 어마어마한 재산이 누구의 손에 넘어갈지 모르는판이라 어떻게 알랑거려서 그중 몇잎이라도 뜯어내보자는 꿍꿍이들이다.

이제는 아저씨도 환갑이 넘었으니 단념하고말았지만 자식을 보겠다고 숙모를 여덟씩이나 얻어들이고 간곳마다 기생첩을 만들며 야단칠 때는 아닌게아니라 형세가 어디로 기울어질지 모를 형편이였다. 지어 어떤 계집은 왕청같은 군서방의 씨를 받아가지고 유상춘의 피줄이라고 내바치는년까지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경무가 그런것을 이악스럽게 밝히는데다 아저씨 역시 바람이 나기는 해도 그따위 롱간에 넘어갈 어수룩한 위인은 아니였다. 그럭저럭 이제는 로인자신도 이 태평촌 본댁에 눌러앉아 바깥출입을 삼가게 되고 세상공론도 유통사-유상춘의 재산은 큰조카, 작은조카에게 각각 반분되리라는데로 고착되였다.

한때 륙국통사라는 별명까지 들으며 동양3국을 안다니는데 없이 돌아치던 유상춘도 나이들고 어수선하던 시국 또한 《만주국》창건과 함께 그럭저럭 대세가 정해지자 더는 통사로서 돌아칠 여지가 없게 되였다. 그는 《만주국》이라는것이 생겨나자 진작 제집에 물러나 틀고앉았다. 처음 한동안은 광산이요, 정미요, 잡화요 해서 여러 기업에 손수 손을 뻗치기도 하였다. 통사시절에 이미 닦아놓은 경제적지반도 있고 안면도 넓어서 9.18사변전후의 혼란된 시국에 편승한 그는 수많은 리권을 손에 걷어넣었다. 돈은 곽지로 긁어들이는것처럼 그의 손아귀로 쓸어들었다. 나라가 망했는데 집안이 번창한다는것이 꺼림직했던 그는 호협한 지사들을 륭숭하게 대하는 한편 토담을 높이 쌓고 100여명의 가병을 길렀다. 이 보위단은 화룡일판에서는 그중 잘 조직된 무력이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무기들이 그런 길로 해서 유격대로 넘어간다는 군부와 치안당국의 판단에 의하여 총을 다 바치게 되고 수자도 푹 줄어든데다 경찰의 지휘하에 들어가게 되여 유통사의 서슬은 저으기 꺾이였다.

그는 보신에도 치부에도 일체 무관심해져서 책과 화초를 벗삼아 여생을 보내고있었다.

드넓은 후원에 크게 역사를 벌려 련당을 파고 그 기슭에 전각 한채를 지어서는 스스로 자기 호를 따서 벽파당이라는 현판을 써붙였다. 그리고는 3년째 벽파당에서 나오지 않았다.

경문이 련당가까이 가니 열어젖힌 별당의 한 창문가에서 거문고소리가 울리여나왔다.

요즘 유상춘의 사랑을 받는 나어린 몸종이 타는것이였다.

경문이 마루우에 올라서자 인기척에 놀란듯 거문고소리는 문득 끊어지고 방금까지 침상에 걸터앉아있던 로인이 뒤로 드러누웠다. 다 보기 싫다는 소리다.

《숙부님, 그지간 기체 편안하십니까?》

경문이 침상앞에 가 넙적 꿇어앉으며 절을 하자 상춘은 놀란듯이 상반신을 일으켰다.

《음, 너 경문이가 웬일이냐?》

뻔히 알고있으면서 물으니 경문이는 또 뻔히 아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

《제 이번에 저 두만강기슭쪽으로 공산유격대를 토벌하러 갔댔습니다.》

《공산유격대를?》

상춘은 금시초문이라는듯이 눈을 흡뜨더니 야릇한 어조로 물었다.

《내 전년에 듣기는 공산유격대가 다 없어졌다고 하더니 이제 또 토벌을 하러 다닌다니 웬일이냐?》

경문은 속으로 괘씸한 생각이 들었으나 역시 정중하게 대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때는 다 없어졌지만 또 새로 생겼습니다. 세상이 어수선하니 한번 가라앉았던 불도 다시 번지군합니다.》

상춘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득 생각이 난듯이 목청을 가다듬고 말하였다.

《객사에 버들가지는 해마다 푸르른데 님은 한번 가고 돌아올줄 모르더라는 옛시가 있느니라, 봉산동에는 가봤느냐?》

《언제 그럴 사이가 있습니까. 이담에 짬봐서 가보도록 하지요.》

《하곡선생을 만나거든 한번 놀러 나오시래라. 내가 요즘 희귀한 호로병 하나를 얻었는데 하곡선생의 감정을 좀 받아봐야겠다.》

봉산동이란 경문의 처가고장이요 하곡선생이란 바로 그의 장인인 리경하의 호였다.

《가게 되면 그렇게 전하지요.》

경문은 뜨직하게 대답하고 이어 그 누구에게도 흥미없는 이야기를 한 10분 지껄이다가 벽파당에서 물러났다.

《얘 춘매야, 그 창문 열어제껴라. 누가 왔다가거든 곧 창문을 열어젖히라고 하지 않더냐.》

뒤에서 삼촌의 역증어린 목소리가 울리여왔다.

경문은 뒤덜미가 벌개졌다. 아무리 삼촌이지만 사람을 너무 업신여긴다. 자기는 하늘에라도 올라가있는듯이 세상 모든 일을 속된것으로 치부하려드는 그가 오히려 가소롭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든 감정을 숨길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처럼 철없이 놀아나는 로인을 탓하다가 노염을 사면 이 엄청난 재부를 다 잃어버릴수도 있는것이다.

경문은 자기 방에 돌아와서 다시 자리를 하고 드러누웠다. 실지 견딜수 없을만큼 사지가 지끈지끈 쏘고 골이 웅웅 우는것이 앉아있기가 바빴다.

동생 경무는 현성으로 의사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다. 현경찰국장이 《토벌》에 나갔다가 촉한을 만났다는 소문이 쫙 퍼지게 되였다. 문병 오는 사람이 그치지 않았다.

경문은 사람을 봐가며 중환자흉내를 곧잘 내였다. 그러면서도 매일아침 벽파당에 문안인사 드리러 가는것은 잊지 않았다.

어느날 아침 경문이가 벽파당에 갔다가 심심한김에 후원기슭을 거닌다는것이 어느새 중문가까이까지 나갔다. 그 바깥은 보위단실이였다. 거기서 사람의 비명소리가 울리여왔다. 사람의 비명소리는 경문에게 가장 귀에 익은 소리였지만 이 안온한 토담울타리안에서 들어본지는 퍽 오래 되였다.

그는 무슨 금지된 구경이라도 보러 가는 소년처럼 발소리를 죽여가며 중문을 빠져나왔다.

《그래 네놈이 직접 김일성장군을 보았단말이냐?》

찢어지는듯 한 보위단장 유청백이의 목소리가 비명소리를 압도하였다.

경문은 놀라서 주춤 멎어섰다.

김일성장군을 보다니 대체 무슨 소린가? 그는 잠시 문밖에서 엿듣다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안타까와 문을 밀치고 방안에 들어섰다.

컴컴한 구석쪽에 책상을 놓고 앉아있던 유청백이가 사납게 눈을 희번덕거리며 치떠보다가 경문을 알아보고 벌떡 일어났다.

《형님이 어떻게 이런델 다 나오십니까?》

《집안에서 웬 소란을 피우며 야단이냐?》

경문은 점잖게 한마디 하고 방안을 살펴보았다. 가병들을 다스리던 이 보위단실은 아무런 장식도 빛갈도 없는 휑뎅그렁한 토방바닥인데 한쪽구석에 길다랗게 침상을 매여놓았고 반대편 한가운데에 유청백이가 늘 틀고앉아 호령질을 하군하는 투박한 책상이 하나 놓여있었다. 같은 솜씨로 만든 나무걸상 하나가 책상앞에 놓여있고 똑같이 생긴 긴 걸상 하나를 책상옆으로 비껴놓았다.

그 긴 걸상아래 맨 토방우에 웃동을 벗기운 한 사나이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등때기에는 벌써 시뻘겋게 구렝이가 감겼다. 유청백이 손에 쥐고있는 말채찍으로 어지간히 조겼다는것이 한눈에 알렸다.

《이건 뭐냐?》

경문은 마치 물건을 가리키듯이 발끝으로 웃동 벗은 사나이를 가리키며 재차 물었다.

《탈주병입니다. 봉산동놈인데 장조네 려단에 복무하던놈이라는군요. 이번에 유격대토벌에 갔다가 내빼왔답니다.》

《유격대토벌? 그자들이 언제 토벌을 나갔단말인가?》

경문은 아직 봉천부대가 《토벌》에 나섰다는것은 모르고있었기때문에 떨떨해서 물었다.

《형님은 아직 모르는군요. 1대대가 몽땅 떨어나서 대마록구근방까지 나갔댔다는데요.》

《사실인가?》

경문은 혼마에게 속았다는것을 깨닫고 탈주병에게 소리쳤다.

탈주병은 잔뜩 겁먹은 눈으로 경문을 처다보더니 우들우들 떨며 말했다.

《사실입니다.》

《언제?》

《이젠 열흘나마 됐습지요.》

《열흘?》

그러고보면 자기네와 거의 같은 시기에 떠난것이다. 혼마란놈은 자기에게는 아무런 귀띔도 안해주고 따로 봉천부대를 내보냈다. 혼마의 립장에서 보면 그럴만한 근거도 있고 권한도 있겠지만 경찰이라는것이 결국 그의 단순한 리용물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생각하니 밸이 꼴렸다. 그 역증을 30남짓돼보이는 불쌍한 탈주병에게 퍼부었다.

황진국이라는 그 탈주병은 이미 유청백에게 다 고해바친 이야기를 매 조목마다 매와 발길질을 당해가며 새로 공손하게 아뢰였다.

《몇대대야?》

하고 유경문은 갈비뼈가 앙상한 탈주병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예, 1대대올시다.》

《대대장이 누구야?》

하고 이번에는 면상을 쥐여박았다.

진국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코를 들이마시며 잠시 떨떨해있었다.

《왜 대답이 없어?》

경문은 정갱이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두번째타격을 받고야 진국은 정신이 번쩍 들어서 서둘러 대답했다.

《류종구올시다. 류소좌올시다.》

《그래 왜 탈주했다구?》

유경문은 군사지휘능력에 있어서는 거의 까막눈이나 다름없었지만 역시 경찰우두머리라 사람 치는데는 묘득이 있었고 또한 깊이 감추어둔 속심을 뽑아내는 요령도 대체로는 알고있었다.

보통 환경과 신변에 대한 극히 초보적인 자료를 묻는데 매우 혹독하게 굴던 그는 상대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습관적으로 초조해지는 눈치를 채자 슬쩍 기본문제를 끄집어내였다.

《저 사실 저는 탈주한것이 아닙니다. 그저···》

《뭐야?》

경문은 자기의 타산이 빗나간것을 보고 꿱 소리쳤다.

《그놈이 여간 질기지 않습니다.》

옆에서 청백이가 끼여들며 소리쳤다.

《임마, 탈주라는게 별겐줄 아느냐. 부대에 돌아가지 않으면 탈주병이지.》

경문은 청백이가 곁들어나서는것이 맞갖지 않았으나 억지로 참고 단순한 화풀이에 지나지 않는 심문에 어지간히 열중해버렸다. 제일 관심을 끄는것은 유격대의 실태였다. 진국은 유격대를 으리으리하고 요란하게 묘사한다. 부대의 규모며 장비, 보급상태 등 무엇이나 구체성은 하나도 없고 그저 굉장하더라, 무시무시하더라는것인데 그것이 경문이뿐아니라 청백이까지도 이 심문을 어느쪽으로 물고가야 할지 방향을 떨떨하게 만들었다. 김일성유격대를 굉장한것으로 확인하는것이 사실에 가깝고 또 필요한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는것으로 보는것이 유리하겠는지 한순간 갈피를 잡을수 없게 되였다.

이때문에 생겨난 사색의 공간을 그들은 매질로써 메꾸었다. 만일 이때 대문으로 승용마차가 들어서고 이어 경무가 의사를 데리고 나타나지 않았던들 황진국은 무슨 대답을 해도 속을 편안하게 해줄수 없는 심문때문에 적어도 반죽음은 당했을것이다.

《아니 편찮은 몸으로 왜 이런데 나와있습니까. 어서 가십시다. 의사가 왔습니다.》

경무는 흥분하여 시뻘겋게 피가 번진 형의 얼굴을 근심스럽게 바라보며 소매를 잡고 끌었다. 그러면서 청백이더러 지청구를 댔다.

《아니 자네는 눈치도 없이 이런 일에까지 형님께 근심을 끼쳐서야 되겠나.》

《일이 잘 안됐어요. 허지만 더러운 자식! 너 이담에 죽을줄 알아라. 형님, 어서 들어가보시지요. 뒤일은 내 료량해서 잘 처리할터이니···》

《아니다.》

경문은 동생에게 잡힌 소매를 뿌리치며 어마어마하게 말했다.

《이놈은 매우 중대한 국사범이다. 현경찰국에서 취급하도록 해야겠다.》

이러고있을 때 수련이가 날씬한 여름옷차림으로 나타났다.

《아이 여기들 모여서 뭘 해요?》

하고 그는 어수선한 방안을 두리번거리더니 경문을 보자 놀란듯이 다가왔다.

《아저씨는 어쩌면··· 난 아저씨가 그렇게 용감하게 밀림으로 들어가기까지 할줄은 정말 몰랐어요. 부상은 어디에 당했어요?》

경문은 얼굴을 찌프렸다. 수련이가 또 자기를 놀려주려 일부러 여기까지 묻어왔구나 하고 생각하니 그 뽀얀 볼따귀를 구렝이가 감기도록 갈겨주고싶었다.

《부상은 무슨 부상, 그런데 넌 아직 학교에 안돌아갈 작정이냐?》

경문은 년장자답게 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배워줄게 뭐 있어요, 의사선생이 한 1년 쉬여야 한대요. 그래서 집으로 가는 길이예요. 그런데 이 사람은 웬 사람이예요?》

수련은 경문이 어른티를 차리는것이 우습다는듯이 도톰한 아래입술을 비쭉 내밀며 실쭉해서 한마디 대답하고는 땅바닥에 꿇어앉은 사나이를 호기심에 차서 바라보았다. 전신에 멍들고 터진 자리가 널려있는 그 사나이는 고개를 푹 떨구고앉아 어깨를 우들우들 떨고있었다.

《아니 이게 황서방 아니예요?》

수련은 빡빡 깎은 머리 정수리에서 돈잎같은 상처를 보자 한동네에 사는 농사군임을 인차 알아보고 놀라서 부르짖었다.

《아가씨.》

사나이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고 가련한 목소리로 낮게 불렀다. 면목이 없다는듯 송구해서 바라보는 황진국의 커다란 눈구석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괴여있었다.

《왜 이렇게 됐어요? 왜 잡혀왔어요?》

수련은 황진국의 어지럽고 끔찍한 몸을 서슴없이 어루만지며 다급하게 물었다.

《아가씨, 죄를 지었어요. 유격대<토벌>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였어요. 그래서···》

《그래서 이렇게 매를 맞았어요?》

《매를 맞았어요. 보위단장나으리한테 예순대나마 맞고 국장나으리한테 마흔대남짓하게 맞았어요.》

《그럼 백대도 나마 맞았게요?》

수련은 놀란듯이 부르짖으며 유청백이를 돌아보았다.

《얘 수련아.》

경문은 엄하게 불렀다.

《너 안으로 냉큼 들어가라. 그놈은 중대한 범인이다. 함부로 말을 걸어서는 안된다.》

《아니 공산군에게 포로가 됐다가 왔다는데 불쌍한 사람이 아니예요. 그런걸 이렇게 때리면 어떻게 해요?》

《철없는 소리 작작하고 썩 들어가지 못해!》

경문은 깨진 종이 빗맞은것처럼 어칠한 소리를 질렀다.

수련은 얼굴이 해쓱하게 질려서 세사람앞을 씽하고 지나더니 문을 쾅 닫아버렸다.

《저런 계집애가···》

경문은 뒤쫓아가 한마디 하려다가 가까스로 참고 입맛을 쩝 다셨다.

《형님, 갑시다. 이놈은 청백이에게 맡겨두지요. 이런 소소한 일에까지 관심할 필요가 있나요. 불편하신 몸을 가지고···》

경무가 싹싹하게 말하며 등을 떠밀어서 경문은 마지못해 안채로 돌아왔다.

나살이나 건사한 의사는 그의 피둥피둥한 몸을 세심히 진찰하고나서 피해망상증의 징후가 있고 심장이 비대해졌으며 가벼운 감기기운이 있다고 진단하였다.

의사가 왔다간 다음부터 유경문은 별안간 심장이 아프다고 소리치기 시작하였다. 온 집안이 유경문의 침대곁에 모여 걱정들을 하였으며 다시 의사를 부르러 보내야겠다고들 말하였다.

그날새벽에 황진국은 세치나 되는 통널문에 주먹같은 자물쇠를 해단 문을 어떻게 빠져나가서 감쪽같이 탈출해버렸다.

이튿날 수련이는 봉산동 자기 집으로 간다고 으리으리한 유통사네 대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