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12

 

12

 

유격대가 떠난지 열흘가까이 지난 어느날 회양동에는 언제부터 온다고 소문이 돌던 리춘서의 처조카벌 되는 사람이 연사에서 건너와서 동네사람이 모두 갑성이네 집에 모여들었다. 변학철이라는 그 사람은 아직 서른전 젊은인데 고생깨나 한 모양으로 벌써부터 귀밑머리에 흰것이 섞였고 말투도 무게가 느껴졌다. 어딘지 바위같이 드놀지 않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였다. 그는 먼길을 온 사람같지 않게 동네를 돌아보더니 언젠가 사령관동지께서 드셨던 집을 손질하여 학교로 쓸 공론을 벌리였다. 처음에는 며칠 푹 쉬라고 권하던 동네사람들도 나그네가 그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바람에 끌려들어 이번에는 우리도 유격대들이 마을을 닥달하던 본때대로 학교를 한번 꾸려보자고 모두 발벗고나섰다.

이날 한낮경에 자욱히 비안개가 몰려오는 회양동고개길우에 새로운 길손들이 또 나타났다. 그것은 윤원구네 일행이였다.

그들이 국경 삼장다리에서 농사동까지 되끌려간 그때로부터 근 보름동안에 겪은 일들은 지금 돌이켜봐도 너무 기구하고 공교로울뿐아니라 난생처음 겪는 벅찬것이기도 해서 꿈같은 생각만 들었다.

대홍단전투가 있던 안날 리호철이가 농사동에 건너왔기에 윤원구네는 당장 도강증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해약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가겠다고 들이댔다. 리호철이도 급해나서 주재소며 경찰서에 드나들더니 겨우 도강증문제가 풀리게 됐다 했을 때 국경은 다시 절벽으로 막혀버렸다. 유격대한테 죽도록 얻어맞은놈들이 국경경비를 턱없이 강화한데다 신사동일판에 있던 인민들에게 밸풀이삼아 갖은 행패를 들이댔던것이다.

윤원구네는 유격대의 짐을 지고 간 강정섭이와 관련된 사람들이라 해서 다시 취조를 받게 되고 그 과정에 장대선아바이는 푸념삼아 이거야 종로에서 매맞고 한강에서 눈흘기는 격이 아니냐고 요시다에게 한마디 했다가 정갱이가 터지도록 얻어맞았다.

그럭저럭 로자만 불어먹으면서 한주일이나 단련을 겪고나서야 어제 가까스로 삼장다리를 건너서게 된것이였다.

이제는 누구나 목적을 잃어버린 공연한 길을 고생스럽게 가고있다는 생각을 품게 되였다. 이 세상 한끝까지 다 간다 해도 나라가 없이는 살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말은 옳은 말이였다. 그것은 무포강제부역장에서 만났던 그 날파람있게 생긴 청년이 한 말이였다. 그 청년은 그때 이제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선으로 쳐나오실거라는 예언도 하더니 그것 역시 맞아떨어졌다. 남사갱의 야학선생 리성림이도 그러루한 말을 했다. 그리고보면 그들도 다름아닌 유격대가 아니였을가 하는 추측이 갔다.

《참, 우리라는게 한심한 인생들이지. 그 야학선생이 남사갱에 있을 때부터 사회운동자라고들 하지 않았나. 그런 사람이 숲속에 도끼를 척 메고 나타났을 때부터 옳지, 이 사람이 유격대가 됐구나 이렇게 생각이 들어가야 제곬으로 뚫린 궁냥이겠지. 아 이건 김일성장군님께서 쳐나오신다, 이제 두고 보아라, 보천보를 들이칠 때보다 더한 불벼락이 왜놈들한테 떨어질게다 하고 송곳으로 귀구멍을 뚜지듯 해도 눈치를 못챘으니 이런 미련한 인생들이 잘살아보겠다는것부터가 잘못이라니까.》

장대선아바이는 요시다의 격검채에 얻어맞아서 무릎이 깨여진 한쪽다리를 절뚝거리며 누구에게 시비를 걸듯 말하였다.

《나는 그래도 이상한 생각이 조금은 들었소다. 자꾸 물어대는게 경찰서가 어데어데 있는가, 군대가 어데로 가던가, 목재판에 왜놈들이 얼마나 있던가··· 이런것들만 물으니까 암만해도 여느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던데요뭐.》

춘길이가 대선아바이의 한팔을 부축하며 말했다.

《여느 사람들과 달랐지. 그래서 다르다는것을 알았는데 춘길이는 왜 가만히 있었는가말이야? 다르다는것을 나도 느꼈지. 허지만 느껴서는 뭘해. 말로 해야지. 그건 다 소용없는 소리고 나는 그 사람들이 그때부터 장군님의 령을 듣고 기찰을 나왔던거라고 보네. 저 포태산으로부터 로은산까지 유격대가 쫙 덮였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우리가 그때 길우에서 만난 사람들가운데도 유격대가 얼마나 있었는지 모른단말이야. 그래도 우리들가운데 무엇을 비슷하게 생각한 사람은 춘길이 자네가 아니라 필네란말이야. 자네는 총소리를 듣고도 나와 마찬가지로 뻥해서 눈만 더부럭거리지 않았나. 그런데 필네는 유격대라는 말을 진호 애비가 꺼내자마자 30리길을 달려가서 왜놈들이 녹아나는 구경을 다하고 왔거던. 자네는 큰소리칠게 없어.》

《그러게 내가 어쨌다오다? 나는 본시 비슷하게 느껴가지고도 똑똑한 생각을 하자면 한참이나 걸려요. 아바이도 알지 않소다. 저 팔모갱 두더지굴에서 후산질할 때 락반에 뒤골을 얻어맞은 다음부터는 무스게 잘못됐는지 골이 뗑해졌단말이우다.》

《그래그래. 임자나 나나 노상 골이 뗑해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까 언제나 요모양 요꼴이 아닌가. 여북하면 무산땅에 유격대가 차넘치고 맹과니까지도 왜놈들 녹아나는걸 다 봤다고 소리치는데 우리는 눈앞을 지나가는 유격대와도 똑똑한 말 한마디 못해봤으니 이거야 원통해서 살수가 있나말일세.》

《이제는 그만하오다. 그러노라면 또 유격대를 만나게 되겠지오다.》

필네는 그들의 이야기를 한귀로 들으며 딴생각에 잠겨 걸었다. 그날 자기가 신사동으로, 대홍단으로 그렇게도 허위단심 달려갔던 까닭을 그들은 아직 모른다.

그렇기때문에 유격대를 눈앞에 보고도 놓쳐버린 필네의 그 원통한 심정을 알지도 못하고 좋은 구경을 했다고 부러워만 한다. 하기는 며칠씩 무산땅에 붙들려 고생을 하면서도 눈앞을 지난간 유격대를 못봤으니 그들의 분해하는 심정이 리해는 된다. 그러나 자기가 두주먹을 부르쥐고 달려갔던 30리길을 혼자 터벌터벌 되돌아오던 그 밤길같이 막막하겠는가.

필네는 지금 엷은 웃음을 입가에 짓고 다시금 희망에 넘쳐 걸어간다. 그날 대홍단에서 돌아오다가 신사동 정섭이네 집에 들려 날이 저물도록 할아버지와 어머니한테서 장군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 힘이 절로 솟구쳤다.

필네는 그날 들은 이야기들의 토막토막을 엮어 머리속에 장군님의 모습을 그리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옛말에 나오는 장수와 같이 으리으리한 갑옷과 투구를 두르고 긴 칼을 차고 수염을 기른 그런분이 아니시였다. 여느 유격대와 다름없는 차림을 하고계실뿐아니라 나이도 젊으시다고 한다. 그런우에 친부모도 미치지 못할만큼 가난한 사람들을 따뜻이 품어주시는 고마운분이시였다.

아, 단 한번만이라도 장군님을 뵈올수만 있다면··· 이런 열망에 가슴이 죄여들수록 필네는 그날밤 총소리를 듣자마자 그것을 유격대의 총소리로 알아채고 달려가지 못한 자신이 안타까왔다.

(정말 나도 골이 뗑해서 그러는 모양이지.)

이런 생각을 하자 안타까운중에도 우스웠다.

고개마루쪽에서 또 비가 퍼붓겠다고 안해에게 걸음을 재촉하는 윤원구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김인수는 맨뒤에 따로 떨어져서 절뚝거리며 따라온다.

한참 옥신각신하던 대선아바이와 춘길이는 다시 의좋게 껄껄 웃으며 고개를 넘어서더니 얼마 안가서 춘길이가 소리쳤다.

《동네요. 동네에 다 왔소. 비가 오겠는데 어서 걸읍시다.》

아닌게아니라 비방울이 후둑거리기 시작하였다.

일행은 반달음을 놓았으나 종시 비를 들쓰고야 동네에 들어설수 있었다.

산비탈을 내려서서 동구초입에 있는 초가집 추녀밑에 무작정 들어서는데 마침 젊은이 한사람이 물탕을 튕기며 달려오더니 길손들을 보고 알은체를 하였다.

《오늘은 회양동에 손님이 많다. 어디서 오시는분들이요?》

젊은이는 비에 젖은 머리칼을 손바닥으로 탁탁 털더니 말하였다.

《무산에서 오는데 금천동으로 가는길이외다. 주인이신가요?》

윤원구가 나서며 점잖게 말했다.

《예, 마음놓고 방으로들 들어갑시다. 장마가 이렇게 일찌기 드는 법이라고 어디 있습니까. 이제 곧 우리 집 어머니도 옵니다. 어서 들어갑시다.》

집주인이 싹싹하게 굴어서 일행은 퍽 마음이 놓이였다.

주인집 젊은이는 제먼저 구들로 올라가서 길손들을 청해들여다 놓고는 허름한 반닫이밑에서 헌 잡지 한권을 뽑아들고 말하였다.

《제 집처럼 마음 푹 놓고 앉아들있소다. 이제 어머니가 올거우다.》

그리고는 잡지를 옷섶안에 건사하더니 비속을 내달려갔다. 그는 성만이였다.

주인 없는 빈방에서 일행이 송구한 마음으로 앉아있는데 미구에 도롱이를 쓴 체소한 할머니가 들어왔다.

《에그, 이 장마에 길들을 떠나서 고생을 어찌 겪겠슴?》

할머니는 아들에게서 이미 손님들이 들었다는 말을 들었는지 도롱이를 털어서 기둥에 걸며 혀를 찼다.

친절한 모자간이였다. 아이들이 비를 맞아서 춥겠다고 걱정하더니 곧 부엌에 내려가 수수짚 한단을 지폈다. 그 불을 화로에 담아들고와서는 또 진철이를 안고 둥게질을 하였다.

할머니를 통하여 지금 동네에 귀한 손님이 왔는데 그 사람은 이 동네 골막집주인의 처조카벌 되는 사람으로서 마을청년들에게 글을 가르치기 위해 온 야학선생이라는것까지 알았다.

얼마후에는 그보다 더 놀라운 소식도 알게 되였다. 손님들이 무산땅에서 겪은 이야기를 하자 할머니는 펄쩍 뛰더니 얼마전에 바로 이 고장에도 김일성장군님께서 유격대를 이끄시고 오셨다는 이야기를 쉬쉬하면서도 끝없이 벌려놓았다.

비는 언제 들지 앞을 내다볼수 없었다. 좀 수다스럽지만 친절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을 쪼이고있으려니 비가 밤이 들도록 왔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격대원들이 며칠사이에 우물을 비롯하여 마을을 몰라보게 닥달해놓던 일, 늦어진 씨붙임을 도와주던 일, 유격대와 동네사람이 한데 어울려놀던 축구시합이야기 그리고 불시에 유격대가 떠나가고 김일성장군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날밤으로 북쪽산속에서 요란한 총질소리가 나더니 다음날 저물녘에 숱한 경찰놈들의 송장이 실려가더라는 이야기, 그 며칠후 다시 분서자리에 경관 다섯놈이 오기는 하였으나 이제는 전처럼 행패를 못하고 슬슬 돌아다니며 동네사람들의 눈치만 살핀다는 이야기-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비는 날이 저물어도 그치지 않았다. 하는수없이 윤원구일행은 려장을 풀고 묵을 차비를 하였다.

이튿날아침에 일행이 길을 떠나기앞서 필네가 대선아바이의 상처를 헤쳐놓고 삼장에서 산 빨간약과 고약을 바른 다음 다시 처매고있는데 골막집 갑성이와 상수네 아들이 막대기를 들고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갑성이의 이마에는 아직도 명주수건이 감겨져있는데 그것은 이제는 본바탕을 가려보기 어려울만큼 어지러워졌다.

필네는 처음에 어쩐지 마음이 끌리는 이 동네에 대한 고마운 생각과 리별의 허전한 생각이 들어 그 애한테 말을 붙였다.

《얘,넌 이마를 어쩌다가 상했니? 이리 오너라, 좀 보자.》

《싫어요.》

갑성이는 꽁무니를 사렸다.

《참, 너도 이 아지미한테 약 발라달래라. 아프지 않아.》

춘길이가 옆에서 이렇게 말하자 상수의 아들이 갑성이의 등을 떠밀었다.

《정말 아프지 않나요?》

갑성이는 여전히 꽁무니를 사리며 좀 겁먹은 소리로 물었다.

《이자식은 겁쟁이예요. 어제밤에 저희 집에 온 손님이 고쳐주겠다는것도 겁이 나서 내뺐어요.》

저희 집에 온 손님이라는것은 아마 새로 야학을 차리기 위해 왔다는 그 사람일것이다. 그러니 굳이 서툰 솜씨로 건드리지 않아도 될듯 하여 다시 돌아보지 않았더니 제동무의 겁쟁이라는 말에 승벽이 돋친 갑성이가 바지춤을 추켜올리며 앞으로 나섰다.

《내가 뭐 겁이 나서 그런줄 알아. 씨, 얼마든지 풀어봐도 겁나지 않아.》

필네는 웃으며 한껏 조심해서 동여멘 수건을 풀었다. 피가 말라붙은데는 미리 빨간약을 좀 발라서 추겨가지고 뗐더니 감쪽같이 떨어졌다. 나무그루턱에 째졌다는 상처는 깨끗이 아물어가는데 딱지가 떨어지는바람에 한쪽구석이 다시 터져 피가 배여나왔다. 필네는 대선아바이의 상처를 치료하는데 쓰던 약솜으로 피를 닦아내고 빨간약을 바른 다음 조갑지에 담긴 고약을 좀 떼붙였다. 본시 감겨있던 수건은 너무 어지러워서 한옆으로 밀어놓고 빨아놓았던 아바이의 붕대 한끝으로 단단히 동여맸다.

처치가 끝나자 갑성이는 야- 하고 상수네 아들을 따라 골목으로 내달아갔다.

《얘, 이것을 가지고가거라.》

필네는 풀어놓은채로 버려두고 간 명주수건을 뭉그려들고 불렀으나 아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짐을 꾸리며 어지러워진 자리를 거두다가 다시 그 명주수건에 눈길이 갔다.

《아니?》

분명 낯이 익다. 꺼멓게 피가 말라붙고 어지러워지고 구겨겼으나 진솔로 끊어낸 감인데다가 제손으로 슬가리를 마무리고 접어서 감친 자리가 뚜렷하다. 게다가 한끝에 지전 5원을 꽁꽁 싸서 매였던 매듭자리까지 그대로 나있지 않는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필네는 정신나간것처럼 수건을 뭉그려들고 동구밖으로 달려나갔다.

동네 한끝에 있는 우물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났다. 동네꼴에 비해볼 때 우물은 너무나 번듯 하였다. 유격대가 손질해주었다는 그 우물이 분명하였다.

아이들은 우물틀에 배를 붙이고서서 저마다 딸따리를 당겨보겠다고 승벽이였다. 그중에서도 이마를 처맨 갑성이가 제일 극성스러웠다. 딸따리줄을 잡아당겨서 나무드레박의 물을 동무들의 발밑에 좌르르 끼얹고는 다른 아이가 미처 손쓸새없이 또 줄을 잡아당기는 그 애를 겨우 한쪽구석으로 끝고갔다.

《얘, 이 수건 어디서 났니?》

《몰라요, 난 몰라요.》

필네의 표정이 하도 심각하니 갑성이는 겁이 났는지 비실비실 내뺄 궁리만 한다.

《얘, 정말,바른대로 대다구. 이 수건 가지고있던 사람을 찾자고 그런다.》

필네가 무릎을 꺾고앉아 갑성이의 얼굴을 이윽히 들여다보니 아이는 친절한 처녀의 너무나 간절한 눈길에 감동되였는지 비로소 입을 벌렸다.

《유격대가 처매주었어요.》

《유격대가?》

필네는 놀라서 받아외웠다. 이 수건이 이떻게 유격대손에 들어갔는가?

《그 유격대가 어떻게 생긴 사람이냐?》

《이 우물틀이랑 딸따리랑 만든 아저씨예요. 처음에는 바지저고리를 입고있었어요. 그러다가 군대옷을 입었는데 우리 대장질을 했어요.》

필네는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더 묻지 않아도 강정섭이다. 어디 가나 아이들과 섭쓸려다니는 그가 아니고 누가 아이들의 대장질을 하겠는가. 산판에 있을 때부터 나무 다루는 솜씨가 목수 찜쪄먹겠다고 하던 정섭이다. 게다가 바지저고리를 입고있다가 군복을 입었다는것을 보면 그가 유격대의 짐을 지고 두만강을 넘어섰다더니 이 마을에 와서 유격대에 든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였다.

갑성이는 어느새 또 제동무들쪽으로 달아나려 한다.

필네는 멍하니 서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 말했다.

《얘, 이 수건 나 주지 않을래?》

《가지라요. 얼마든지···》

갑성이는 그까짓 다 어지러워진 수건 아무짝에도 쓸데없다는듯이 한마디 내뱉고는 힝하니 달아났다.

필네는 수건을 꼭 뭉그려 줌안에 움켜쥐고 하염없이 북쪽하늘을 바라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실가? 유격대만 찾으면 장군님도 뵈옵고 오빠도 만나보고 그리고 이제는 유격대가 된것이 분명한 정섭이도 그속에서 만날수 있으련만···

그리움은 가슴을 우벼냈다.

어느새 동구길에 나선 일행이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필네는 눈물이 그렁해서 우물로 다가갔다. 말못하는 우물에 피가 통하는듯 정이 끌리였다.

아이들은 여전히 승벽을 내여 딸따리줄을 제가 차지하겠다고 덤빈다.

필네는 미끈하게 무어올린 귀틀벽 한옆에 붙어서서 싱싱한 송진내가 풍기는 기둥을 쓸었다. 귀틀도 기둥도 딸따리바퀴도 대충 도끼나 자귀로 아지를 치고 두드러진데만 껍질을 벗겨서 매끈한 맛은 없었지만 군데군데 하얀 이깔나무의 속결이 드러나서 연신 튕겨오르는 물방울에 번들거리는것이 어디라없이 곧고 결바르고 싱싱한 정섭이의 모습을 련상시켰다.

그가 장군님 품에 안기여 그이의 사랑을 받는다는 생각을 할 때 필네는 어느덧 자기도 그 품에 함께 안겨있는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럴수록 그리움은 숨가쁘도록 가슴을 죄였다. 이제 장군님의 품은 꿈속에서나 그리던 막연한 세계가 아니였다.

불시에 자기 생활과 바투 접근된, 안타까이 소리쳐부르면 인차 대답이라도 해주실듯 그렇게 가까이 느껴지는 품이였다.

《얘, 나 그 물 좀 주겠니?》

필네는 흥분에 입안이 바싹 말라들어 쉬여버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갑성이는 막 동무의 몸에 멋이 있게 끼얹어주려던 물통을 엉거주춤 쳐들고 필네의 눈물이 가랑가랑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필네는 입귀를 씰룩거리며 간신히 웃어보이고 물통굽에 깊숙이 고개를 수그렸다.

삼복에도 얼음같다는 물맛이 찡하니 가슴에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