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11

 

11

 

얼마를 갔는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비는 그냥 쏟아진다.

《이런, 제기-》

강정섭이는 너무 비가 퍼붓는바람에 잠시 눈을 감고 걷다가 아름드리나무에 부딪쳐서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졌다. 벌써 몇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른다.

처음에 련대장이 련대의 기본력량을 데리고 떠나가버렸을 때 어쩐지 자기는 축에서 빠진듯 하여 섭섭한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던게 행군을 시작하여 반나절쯤 지나자 그런 생각 저런 생각 다 없어지고 그저 쉬고싶은 생각뿐이였다.

비발이 눈코를 뜰수 없게 들이치는데 너무 숨이 가빠 입을 벌리면 입안으로 비물이 마구 쓸어들어왔다.

격검채로 얻어맞은 어깨, 허리, 구두발에 채인 정쟁이, 칼에 찔린 넙적다리며 어깨-온갖 상처가 다 쑤시고 결린다. 머리가 훗훗하는게 열도 나는것 같다. 첫째 숨이 가빠서 못견디겠다.

(내가 이럴수가 있는가?)

너무 가쁘다나니 이런 생각도 떠올랐다. 처서판에서는 힘꼴이나 쓴다는 축이였고 산이나 숲에 들어서는 자기도 막힐데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못견디겠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한줄로 늘어서서 말없이 걷는데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는 몰라도 자기처럼 나무에 부딪치거나 넘어져 뒹구는 사람은 없었다. 대오에서 떨어졌다가 헤덤비며 달려가는 사람도 없고 힘들다고 두덜거리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이 대오에서 제일 병신같은게 강정섭이 자기다. 기분이 나쁘지만 사실이 그런것을 어떻게 하는가. 한참을 더 가니 기분나쁜것도 다 없어지고 나는 신대원이니까 그럴수밖에 없지 않느냐, 좌우간 좀 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휴식명령은 아무리 기다려도 내리지 않는다.

다시 산 하나를 넘어서자 이깔나무숲은 성기여지고 봇나무와 쇠스래가 듬성듬성 들어찬 혼성림이 나타났다. 얼마후에는 드문드문 공지도 보이였다. 이어 모래와 돌자갈이 깔린 골짜기다. 가운데로 탕수가 흘러간다.

틀림없이 여기서 휴식하겠지 하고 사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어둠을 째는 번개처럼 《행군속도를 높일것!》 하는 구령이 들려왔다.

주춤거리던 대렬은 또다시 숨가쁘게 내달렸다.

골짜기를 건너가서 다시 앞을 막아선 산 하나를 넘어서서야 비가 억지로 멎었다. 멎어가지고도 시원히 개일 생각은 않고 이슬비를 날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정섭이는 입안에서 욕설을 퍼부었다.

《더러운놈의 하늘!》

다시 골짜기를 건느고 산 하나를 또 넘어서서야 비로소 휴식이 선포되였다.

마른나무를 찾는다는것은 행군보다 결코 헐하지 않은 일이였다. 그러나 구대원들은 진창을 밟고다니면서도 어디서 쏘시개감을 구해와서는 곧 우등불을 피워올렸다.

정섭이는 우등불곁에서 한심하게 해여지고 부풀어난 발바닥을 들여다보며 기가 막힌 생각이 들었다. 물집이 잡힌데다 물속을 차며 걷다나니 발바닥의 굳은살이라는것이 온통 불어나서 제갈래로 밀리고 헤쳐져 새빨간 생살이 석류속처럼 입을 벌리고있다.

다시 행군을 시작하면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저러나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는것이 우등불의 화기가 따갑도록 바투 다가앉아도 턱이 덜덜 떨리고 이가 절로 맞쪼인다.

기가 막혀 고개를 들어보니 우등불에서 피여오르는 연기와 젖은 옷가지들이 마르는 김이 한데 어울려 골짜기에는 푸른 안개가 자욱히 서리였다.

열걸음도 못되는곳에 작식대의 우등불이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 주런이 내건 소랭이안을 주걱으로 저으며 연신 재채기를 하는 철구아주머니를 불안스럽게 곁눈질해보신다.

《담요를 쓰고 불곁에 좀 눕지요.》

이런 따뜻한 목소리가 울리여온다. 그러니 저 아주머니도 나처럼 행군에 녹초가 된 모양인가.

별안간 급한 발자국소리가 울려왔다.

모두 놀라서 돌아본다. 방금 지나온 큰 산마루에서 총소리가 터져올랐다.

행군명령이 떨어졌다.

이런 일에 익숙한 유격대원들은 어느새 행장을 갖추고 늘어섰다. 벌써 선두대오는 골짜기를 건너 저쪽에 길게 뻗어나간 산턱으로 붙었다. 그 산너머에는 비구름에 가리워 형국을 가려볼수 없는 산그림자가 첩첩히 이어져있었다.

정섭이가 가까스로 발싸개를 다시하고 일어서니 구수한 강냉이냄새가 창자를 우벼내는듯 하다. 오늘 종일을 굶었다. 다 익어가는 저 강냉이를 어떻게 하는가?

그가 허리를 구부리고 신들메를 하는 사이 작식대에서도 바삐 돌아갔다.

《이 일을 어찌오?》

철구아주머니가 벌렁벌렁 끓는 밥가마를 내려다보며 한심한듯이 중얼거렸다.

《배낭을 얼른 꾸려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불타는 우등불을 이리저리 헤쳐놓으며 말씀하시였다.

채옥이와 금숙이가 달려왔다. 재봉기를 뜯어 진 금숙이는 제 배낭우에 맹물이 끓던 소랭이 몇개를 포개서 덧짐쳐얹었다.

《철구아주머니, 먼저 떠나세요. 채옥동무, 철구아주머니를 좀···》

빨갛게 익은 얼굴에서 줄줄이 흘러내리는 땀을 소매로 씻으며 김정숙동지께서는 채옥이를 미덥게 돌아보시였다.

채옥은 잠시 냉과리가 진 연기를 피워올리는 우등불을 기가 찬듯이 내려다보더니 《알겠어요.》하고 짧게 대답했다.

《녀성동무들이 더 고생이구나.》

정섭이는 서글픈 어조로 중얼거리고 길을 떠났다. 배고픔도 고달픔도 참을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 그놈들한테 매를 맞은때문인가? 신대원이 돼서 그런가?

다시 행군을 하자니 반지빠른 휴식이 오히려 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주는것 같았다.

엎친데덮친다고 또 비가 쏟아졌다.

풀밭도 다 안고넘어가도록 탕수가 쏟아져내리는 물매 급한 산을 톺아올랐다.

모두 물참봉이 된데다가 진탕을 뒤집어썼다.

정섭이는 앞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깐힘을 썼다. 창대같이 쏟아지는 비속에 길도 없는데를 한줄로 늘어서서 톺아오르기때문에 대렬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영낙없이 외토리가 되고만다. 나무밑에 누가 쓰러져서 신음소리를 낸다 해도 알아볼 사람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정섭이는 대렬에서 떨어질가봐 겁이 나서 걸음을 다우친다는것이 아래도리가 휘청거리는바람에 엉덩방아를 찧고 미끄러졌다. 겨우 일어나서 푸-푸- 비물을 불며 앞을 내다보면 삼대같이 들어찬 이깔나무숲속을 비줄기가 채찍처럼 마구 두들겨대는데 한줄로 늘어선 행군대렬이 아득히 멀어져뵈여서 다시는 따라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유격대생활이 이렇게 시작될줄은 상상도 못해보았다. 산속에서 살며 싸우려니 고생을 하리라는것은 짐작했지만 설마하니 비때문에 이렇게 못견딜 지경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야, 급하구나-)

이런 소리가 종시 입밖으로 새여나오려 하였다.

이때 저만치 떨어진 곳을 두사람이 지나간다.

《넨장, 지난 겨울에는 눈도 퍼붓더니 이제는 또 비로군. 어디 실컷 퍼부어봐라. 아무렴 눈속에서 견디였는데 비를 못견딜가···》

박인섭의 목소리다.

《비도 급해요.》

최병규가 기관총을 추스르며 대답한다.

이제는 후위로구나. 저런 유명한 기관총수들도 급해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 어느 정도 위안도 되였다. 그러나저러나 저 사람들까지 지나가버리면 뒤에는 적들이 있을뿐이다.

(에- 일어나야지, 내가 주저앉아버리면 나를 특별히 입대시켜주신 장군님께서 얼마나 섭섭해하실것인가.)

정섭이는 총대를 지팽이삼아 짚고 가까스로 일어났다. 그리나 얼마를 못가서 아까 그 가파로운 굽인돌이에서 다시 미끄러졌다. 그는 진창속에 머리를 구겨박은채 역증을 터뜨렸다.

《에잇, 차라리 놈들이 오면 쏘아제끼고말겠다!》

그러고는 마침 옆에 서있는 이깔나무밑둥에 등을 대고 퍼더앉아 고개를 푹 떨구고 눈을 감았다.

《개같은놈들, 오기만 해봐라. 내가 여기서 후위노릇을 할테니···》

다시 중얼거렸으나 말끝은 잘 맺혀지지 않았다.

가슴이 허전하고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혁명을 하겠다고 따라나선 내가 이런 무인지경에 홀로 앉아 죽기를 기다리다니··· 그래도 손가락 하나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디 다쳤어요?》

따뜻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정섭이는 꿈속에서처럼 그 소리를 들으면서 별안간 울고싶은 생각이 났다. 사람의 목소리가 그렇게도 그리웠다.

《못걷겠어요?》

정섭이가 대답을 안하니 부드러운 손길이 한쪽팔을 부축한다.

꿈속에서 듣는 소리가 아니였다. 정섭이는 고개를 돌렸다.

김정숙동지시였다. 커다란 배낭에 배낭만한 자루를 덧짐쳐얹고 그우에 소랭이를 세개나 포개서 지셨다. 거기서 문문 김이 피여오른다. 그러다나니 어깨에 걸치신 짧은 기병총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가로 서있었다. 빽빽한 나무사이를 지날 때면 총신때문에 고생하실것이다.

《웬일입니까?》

정섭이는 놀라서 되물었다.

《식사준비하던거 거두고 오느라고 늦었어요, 시장하지요? 시장해서 앉아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정섭이의 멍든 자리가 푸릿푸릿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살틀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아니요. 배고프지는 않아요. 넘어져서··· 넘어진김에 쉬여간다지 않아요.》

정섭이는 어쩐지 김정숙동지의 맑은 눈동자앞에 방금전의 자기 마음속이 비치일가봐 겁이 났다.

《그래 좀 쉬였어요?》

《예-》

정섭이는 투정을 하듯 억지로 대답하였다.

《그럼 얼른 일어나세요. 방금 출발했는데 벌써 쉬면 되겠어요. 사령관동지께서 인차 따라오시게 됐어요.》

《예?》

정섭이는 후닥닥 일어났다.

《사령관동지께서 뒤에 계십니까?》

《모두 힘들어하기때문에 사령관동지께서 몸소 후위부대를 거느리시고 오시지 않아요.》

정섭이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겨우 더께가 앉았던 입술이 터져서 피가 배여나왔다. 그는 말없이 걸음을 옮겨놓았다.

아까 미끄러졌던 굽인돌이에 이르자 김정숙동지께서 먼저 올라가서 손을 뻗치시였다. 그러나 정섭이는 그 손을 차마 잡을수가 없었다. 아까 작식대 우등불에서 본 어수선한 정경이 떠올랐다.

지금 지고계시는 짐만 해도 여느 대원들의 곱이나 된다. 그런데 이 비속에 김은 왜 저렇게 피여오를가? 정섭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김정숙동지의 손은 못본것처럼 하고 그중 가파로운 모퉁이를 성큼 올라섰다.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올라서는건데···하고 생각하는 순간 아래도리가 비칠하였다. 한쪽 무릎을 꿇으며 다시 미끄러져내리려 할 때 김정숙동지의 두손이 뻗어왔다. 가까스로 몸을 가누고 일어서자 커다란 배낭과 자루가 얼굴을 스쳐지났다.

후끈하는 더위가 온몸을 덮치였다.

《아니?》

새삼스럽게 배낭을 바라보니 배낭에서도 자루에서도 세찬 김이 피여오른다.

(강냉이로구나. 삶던 강냉이로구나···)

정섭이는 언덕마루에 멍하니 서버렸다. 벌렁벌렁 끓던 소랭이가 떠오른다. 황황 불타던 우등불이 눈을 지지였다. 출발명령이 떨어졌을 때 우등불을 헤치며 냉과리를 여기저기 쥐여뿌리며 덤벼치던 녀대원들의 모습이 얼른얼른 눈앞을 스치였다.

(녀대원들이 고생을 좀 더하는것쯤으로 생각했지, 반편같이 ···)

그 벌렁벌렁 끓던 소랭이를 그대로 쏟아넣어가지고 오신것이다. 저 배낭에서 줄줄이 흘러내리는 물은 비물이 아니라 끓는 물이다.

《이제는 내리막길이 돼서 숨은 덜 가쁘겠지만 더 잘 미끄러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걸음을 옮겨놓으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밝게 웃고계시는 그이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정섭이는 진심으로 사과하고싶은 생각이 치밀어올랐다.

《그 자루는 저한테 주십시오.》

《예?》

김정숙동지께서는 놀란듯 되묻더니 말씀하시였다.

《정섭동무, 고마와요. 그러나 그런 생각은 안해도 일없어요. 어서 가자요. 이번에 휴식하게 되면 꼭 식사를 보장하겠어요. 강냉이가 이제는 거지반 흐물흐물해졌어요. 구수한 냄새가 나지요?》

정섭이는 이처럼 놀라운 일을 하면서도 그렇듯 소박하게 말씀하시는 김정숙동지의 숭고한 인품을 온몸으로 느끼며 김일성장군님의 전사가 되기 위하여서는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의 깊이와 높이 그리고 힘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것을 어렴풋이 깨달은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