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10

 

10

 

산 하나를 넘자 대밀림이 시작되였다. 백두산에 뿌리를 박고 동서로 길게 내뻗은 큰 산줄기에 잇달린 산들은 오를수록 산세가 웅장하고 험해졌다. 게다가 키가 20m씩 되는 아름드리 이깔나무의 바다가 끝간데없이 펼쳐져있었다.

밀림속으로 얼마 들어가지 않아서 날이 어둡기 시작하였다.

하늘은 흐리고 밀림은 깊어서 묵은 잡초덤불속에 가까스로 드러나던 희미한 오솔길은 인차 어둠속에 묻혀버렸다.

어느 산등에서 숙영지를 잡았을 때 지휘관들이 사방을 둘러보니 그것이 그 아근에서는 그중 높은 봉우리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어찌다 성긴 나무 정수리사이로 별 하나가 반짝거렸는데 그것은 숙영지와 거의 수평으로 바라보였다. 머리우에서는 별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대원들은 지쳐서 인차 잠들어버렸다. 급히 동네를 떠나기는 했지만 깊은 숲속에 들고보니 적정이 당장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우등불가에서 잠들지 못하시는 사령관동지의 근엄한 안색을 읽은 오중흡은 아무래도 이 자욱하게 흐린 숨가쁜 밤이 무사하게 끝나지 않을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한 우등불가에서 중대장 박태진과 함께 근 1시간이나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자신이 말수더구가 적은 사람인데다 박태진이 역시 말이 없는 사람이였다. 몸매가 담찬 대신 키가 작고 눈이 반짝거리는 이 청년은 무슨 일에나 몸가짐이 무겁고 침착하였다. 실수는 없었지만 아무 일을 맡겨도 너무 재는것이 많은 그를 데리고 급한 정황에 부닥치게 되면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중대장동무, 잠이 오지 않으면 나하고 같이 바람이나 쏘이지 않겠소?》

오중흡은 일어서며 태진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그러지요. 그럼 누굴 데리고가는것이 어떨가요?》

《그래, 하지만 아직 안자는 동무들이 있소?》

《신길남동무네를 대기시켜놓았습니다.》

오중흡은 이윽히 태진을 바라보았다. 그런것을 지시한적은 없었다. 그러나 생소한 산중에서 더구나 사령관동지께서 적정이 있을수 있다고 말씀하신 뒤끝이라 대원들을 다 재우고도 그중 끌끌한 소대만은 재우지 않고있는 그가 새삼스럽게 미더웠다. 그러나 오중흡은 자기 심중을 일체 내색하지 않고 앞서 걸음을 옮겨놓았다.

그가 100m도 못 갔을 때 박태진이 소리없이 따라왔다. 뒤돌아보니 신길남이를 비롯한 10여명의 대원들이 뒤따르고있다.

아까 별빛이 보이던 등성이에 나섰으나 그 별빛은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두껍게 흐려있던 중천의 구름이 어느새 하늘전체를 삼켜버린듯 하다. 캄캄해서 뭐가 뭔지 가려볼수 없었다. 다만 숨가쁘도록 내리누르는 흐린 공기만이 력력히 느껴진다.

산등성이를 타고 한참 올라가니 숲은 더욱 빽빽해졌다. 숙영지가 그리 멀지도 않겠는데 방향도 가려볼수 없을만큼 깡그리 어둠속에 파묻혀버렸다. 음향도 별빛도 모든것이 녹아없어졌다.

한 대원이 무엇에 걸리여 나가넘어졌다. 넘어져서는 어디에 또 걸렸는지 인차 일어나지도 못하고 비칠거린다. 맨뒤에 따라오던 오중흡이 그를 부축해주며 낮게 속삭였다.

《조심하오. 저쪽은 비탈이요.》

《묵은 칡넝쿨이 마구 엉켰소다.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할게지.》

그는 보이지도 않는 무릎의 흙을 털며 앞사람들이 듣도록 일부러 크게 중얼거렸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강정섭이다. 정섭이를 특별히 입대시키신 사령관동지의 뜻을 받들자면 처음부터 신을 단단히 신겨 그를 어엿한 유격대원으로 길러내야 할것이다.

오중흡은 정섭이의 소매를 잡아채며 엄하게 속삭였다.

《조용히!》

《왜 그럽니까? 적정이 있습니까?》

정섭이는 놀라서 목소리를 죽이고 물었다.

《그 누구요? 떠드는게?》

저만치 앞서가던 박태진이 어둠속에 걸음을 멈추고 엄하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요. 어서 나가오.》

오중흡이 쭈밋거리는 정섭이의 앞을 막아서며 이렇게 말하자 박태진은 마음이 놓이는지 다시 발걸음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멀어져갔다.

정섭이는 뗑해서 련대장을 힐끔 돌아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순찰을 나간다고 해서 따라서기는 하였지만 이 어두운 밤 철문속에 든것 같은 밀림에서 그처럼 목소리를 죽이면서까지 조심을 해야 할 대상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그였다. 차라리 어둠과 숲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진 그는 이럴 때 좀 여럿이 떠들썩하게 걸었으면 을씨년스런 생각이 덜할텐데 하는 생각까지 해보았었다.

《오늘밤 적정이 있을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

오중흡이 그의 귀전에 대고 속삭였다.

《들었습니다. 마을에서부터···》

정섭이는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것을 느끼며 그런 기분을 타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건 누구의 말씀이요?》

《제 듣기엔 사령관동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것 같던데요.》

《그렇다면 적이 이 어방에 있는거요.》

오중흡의 말은 겨우 알아들을만큼 낮았으나 쇠뭉치같이 묵중하게 울리였다.

《이 숲에 말입니까?》

정섭이 놀라서 새삼스럽게 사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앞에서 《쉿》 하는 목소리가 전류처럼 흘러왔다.

정섭이는 그자리에 굳어지고 오중흡은 소리없이 잡초덤불사이를 빠져 앞으로 갔다.

《무엇이 있소?》

《모르겠습니다. 잘못 봤는지···》

신길남이와 나란히 무릎을 꿇고앉은 박태진이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못 보다니? 동무가 잘못 본단말이요?》

오중흡은 그럴수 없다는듯이 어둠속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산의 밋밋한 륜곽이 가까스로 느껴질뿐 실지 육안에 걸리는것은 없었다. 산의 륜곽이 느껴지는것을 보면 무던히 높은데 올라온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습기찬 바람이 나무잎들을 흔들며 지나간다.

《보오!》

오중흡이 태진의 무릎을 흔들었다.

막막하도록 넓게 펼쳐진 어둠의 바다 한가운데 빨간 점이 피여올랐다. 바늘구멍만 한 그 점은 광막한 공간에 떠오른 오직 하나의 점으로서는 너무나 작았지만 유일하다는 그때문인지 선명하였다.

태진이 조금이라도 거리를 가까이 해보려고 몸을 앞으로 구부리며 목을 뽑았지만 그때 벌써 그 점은 사라지고 없었다.

《반디불 아닙니까?》

신길남이 옆으로 다가오며 속삭였다.

《이게 어느때게 반디불이란말이요? 보오, 또 나타났소.》

오중흡은 무엇인가 짚이는것이 있는지 이제는 별로 긴장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담배불이요.》

《예?》

《냄새가 나오. 한 5리 되는것 같소 》

5리라는 말에 대원들은 설마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저마다 떡심이 풀리여 련대장곁으로 다가왔다.

《중대장동무가 몇동무 데리고 가보시오. 틀림없이 놈들의 숙영지 같소. 얼마나 되는지, 어디서 오는놈들인지, 뭘 가지고있는지 알수 있는껏 알아오시오. 난 사령부에 돌아가야겠소.》

1시간 지나서 습격전투가 진행되였다.

대마록구방향과 현성쪽에서 몰려온 경찰《토벌대》들의 혼성부대는 래일새벽에 옥돌골, 휘풍동 일대를 포위하여 유격대를 《일망타진》하려다가 불의습격을 당하여 숱한 주검을 질질 끌고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격전이 끝난 새벽녘부터 드디여 비가 쏟아졌다. 동은 트려다가 말고 어둠은 자욱한 비안개뒤에 숨어 물러가지 않았다.

오중흡이가 7련대의 일부 력량으로 적을 달고 곧장 북상하였다.

기본대렬은 은밀히 동북방향으로 구붓하게 선회하였다. 7련대의 나머지성원들은 곽성규중대장의 지휘하에 사령부대렬과 함께 행군하였다. 신대원 강정섭이도 여기에 끼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