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1

 

제 2 편

1

 

녀대원들의 배낭우에서 진달래가 피여났다. 조국의 진달래였다. 새벽부터 한낮가까이까지 가렬한 전투가 있었고 철수전투 또한 어렵게 진행되였었다. 창평과 하삼수평쪽에서 힘겨운 전투를 치른 부대들은 사령관동지께 많은 걱정을 끼쳐드린 다음에야 돌아왔었다.

그런 힘겨운 싸움속에서 언제 꽃가지를 꺾어올 생각이 났는지 알수 없다. 어제 큰골에서 군정간부회의를 하는 동안 천막들에 꽂아놓았을 때는 가까스로 망울이 벌어지려 하더니 행군길우에서 연분홍빛 꽃잎이 벌써 여러잎째 피여났다.

강을 건늘 때 그처럼 조국의 향기를 풍겨주던 꽃이였다.

적탄이 비발치던 싸움판에서도 조국을 잊지 못해 떠나는 걸음을 멈추고 꽃을 꺾는 마음이 사령관동지께서는 측은하게 생각되시였다.

장산령릉선은 험하다. 행군대오는 비죽비죽한 바위너설을 골라짚으며 산줄기의 등을 타고나간다. 숲은 울창하지만 대규모적인 조국진군작전의 뒤끝이라 어디서 적정이 있을지 예견하기 어려운 길이였다.

강을 건너온지 이틀째 아무런 정황이 없다. 대홍단벌싸움과 철수작전때 적들이 두만강 두 기슭에서 발악하던것을 생각하면 이처럼 조용한 숲속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24일에 큰골에서 진행된 주력부대의 군정간부회의에서는 무산지구작전의 빛나는 승리를 총화하였으며 이해 여름에 진행할 조선인민혁명군의 조직정치활동방침이 제시되였다.

우리 혁명의 가지가지 추억이 얽혀있고 인민들 또한 조선인민혁명군을 목마르게 기다리고있는 백두산 동북부일대에서 적들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눌러놓고 혁명조직들을 복구확대하며 인민들에 대한 정치선전사업을 힘있게 벌리는것, 이것이 바로 회의에서 결정된 기본내용이다.

조직의 통보와 출판물자료에 의하면 적들은 이해에 《일적섬멸주의》요, 《진드기전법》이요 하면서 벌써부터 만만치 않게 나오고있으며 1939년도 《치안숙정》계획의 주요골자의 하나로서 《특별귀순공작》을 강화하여 혁명군대렬을 내부로부터 파괴하려고 갖은 흉모를 꾸미고있다는것이다. 전에없이 밀정망을 늘여놓고 호구조사와 지문제도를 강화하면서 검색, 검문을 대대적으로 벌리고있는 형편에서 정치공작원이나 정치공작조의 활동도 부대의 군사적엄호를 받으면서 유리한 지점에 림시활동거점을 정하고 진행하는것이 기본형태로 되지 않을수 없을것이였다.

회의에서는 이 모든것들이 구체적으로 타산되였고 세밀히 계획되였다.

그런데 그놈들이 백두산줄기를 가로질러오는것이 이렇게도 힘이 드는가? 혼마의 주력부대는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련합토벌사령부》에 배속된 수많은 지방무력들은 다 어찌되였는가?

(일제놈들에게 무슨 일인가 생긴것이 분명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국내에 들어가시자마자 받으신 이러한 느낌을 이제는 어느 정도 확정할수 있다고 생각하시였다.

그러고보면 일제가 또다시 쏘련에 대한 침공을 개시했다는것이 무근거한 말이라고만 봐서는 안된다.

김준삼의 말과 같이 그것은 얼핏 들으면 물론 황당무계한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청봉에서 느끼신 생각이나 지금 두만강대안에 넘어오셔서 받으신 인상을 종합해놓고보면 일제가 쏘련에 대한 침공을 다시 감행해나섰다고 보는 편이 훨씬 론리적이라고 생각하시였다. 왜놈들이 제놈들의 궁한 처지를 감추기 위하여 보도관제를 심하게 하니 일부 사람들이 좀 어리둥절한것 같지만 그런 잔꾀로써 진실을 가리울수는 없을것이다.

일제가 쏘련과 전쟁을 벌렸다는 말은 장경수가 혜산련락소에서 얻어듣고온 소문이였다.

그는 금숙이, 재영이들과 함께 풍산까지 나가 파괴된 지하조직성원과 련계를 맺고 돌아오는 길에 태혁의 누이동생을 찾겠다고 고진동까지 나갔으나 다 파먹은 페갱자리만 몇군데 돌아보고 빈손으로 돌아왔었다. 광산이 망하는바람에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렸다는것이였다. 두루 수소문한 결과 이태전까지만 해도 그런 처녀가 어느 밥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고있었다는 어설픈 말이나마 얻어듣고온것이 그런중에도 사령관동지께는 반가운 소식이였다.

《어쨌든 실머리는 찾은것이 아니요.》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시무룩해있는 장경수의 어깨를 치시며 금숙이를 위로하시였다. 금숙이는 사령관동지의 이번 과업가운데 자기에 대한 어버이사랑이 깊이 스며있다는것을 알기때문에 감격하여 오히려 밝은 얼굴을 하고있었다.

《첫술에 배부르겠소. 그만해도 큰 성과라고 봐야지. 이제 두고두고 찾아봅시다.》

풍산을 다녀온 일행과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 났었다. 때마침 회의가 막 끝난 뒤끝이라 장경수가 혜산련락소에서 듣고왔다는 그 소문-일제가 쏘련과 대판싸움을 벌려서 지금 많은 군대가 홍안령쪽으로도 가고 몽고쪽으로도 가고 장고봉쪽으로도 밀려가고있다는 소문때문에 지휘관들속에서는 또다시 론의가 분분해졌다.

《왜놈들이 이제는 더 급해맞게 생겼군.》

소박한 동무들은 이러루하게 말했다.

《모를 소린데···》

고개를 기웃하는 동무들도 많았다. 그중에는 다시 조국으로 쳐나가야 한다는 조급한 동무들도 없지 않았다.

《황당무계한 소립니다.》

하고 김준삼이 말도 안된다는듯이 중얼거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말을 유심히 들으시였다. 사실 그로 말하면 내내 지방조직과 반일부대공작에 단독으로 나가있었기때문에 자체로 정세자료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왔고 리론수준도 있는 편이였다.

《황당무계하다니? 련락소 동무들이 그런다고 하지 않소?》

강철룡이 모처럼 재미있는 판에 재를 치는것이 못마땅하다는듯 따지고들었다.

《그런 소문이 돈다고 하는것이지 누가 보고와서 하는 소리는 아니지 않소.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드니 왜놈들이 그렇게나 돼서 칵 망했으면 좋겠다는 소릴게요.》

김준삼은 여전히 문제로도 삼지 않았다.

《그럼 준삼동무 생각에는 그런 일이 도저히 있을수 없다는 소리겠소?》

사령관동지께서도 그의 견해가 흥미있게 생각되시여 웃음을 띠우시고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준삼은 벌떡 일어나더니 거침없이 대답하였다. 틀린 소리든 바른 소리든 자기의 생각을 감출줄 모르는 김준삼이라 대답은 언제나 시원하고 명쾌하였다.

《동무의 생각을 들어봅시다.》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다른 지휘관들을 둘러보시였다.

김준삼은 제강이나 내려읽듯이 대답하였다.

《제가 그지간에 신문을 빠짐없이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그럼 신문에 무엇이 났더라면 믿을번했습니까?》

《물론 그런것은 아닙니다만 그렇게 큰 사건이 신문에 전혀 반영 안될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쟁이란··· 저는 간단히 힘내기라고 봅니다. 일제는 지금 중국과의 전쟁에서 장기전의 진창에 빠져 숨을 헐떡거리고있습니다. 그 진창에서 다리를 뽑아보겠다고 화평교섭을 벌렸고 어떤놈은 무조건 철퇴하자고까지 들고나오는 판인데 그런놈들이 무슨 힘이 남아돌아가서 쏘련과 또 새 전쟁을 벌리겠습니까.》

여기까지 단숨에 말한 김준삼은 시무룩이 웃으며 덧붙였다.

《사실 그렇게만 됐다면 이제 누가 말한것처럼 우리는 그놈들의 뒤통수를 간단히 후려갈기기만 해도 꺼꾸러뜨릴수 있을것입니다.》

준삼의 말은 얼핏 들으면 그럴듯 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덧붙인 말은 그냥 스쳐넘길수 없는 말이였다.

준삼이가 앉은 다음에도 여러 사람이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대체로 김준삼이가 말한 선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때 말씀하시였다.

《이 문제를 속단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모두 신중히 연구하고 확실한 자료들을 수집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여하에 따라서 우리 혁명이 어떻게 될것처럼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되겠습니다. 오늘 회의에서도 거듭 강조된바와 같이 국제정세의 변화가 우리 혁명에 영향은 주겠지만 어디까지나 우리가 믿고 싸워야 할것은 우리 인민입니다. 이번에 우리는 조국에 진출해서 우리 인민의 혁명성이 대단히 높다는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 힘을 어떻게 조직하는가 하는데 우리 혁명의 승패가 달려있는것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갑자기 긴장된 동무들의 표정을 살펴보시며 말씀을 덧붙이시였다.

《그러나 국제정세의 변화가 우리 혁명에 주는 영향도 큰것이 사실입니다. 그런것만큼 정세의 변화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그에 알맞게 우리 혁명의 전략전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준삼동무의 말과 같이 오늘날 일제가 쏘련에 대한 침공을 감행한다는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마디로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속단해버릴 문제도 아닙니다. 본시 일본제국주의라는것이 광포하고 그만큼 론리도 궤도도 없이 내닫는 놈들이기때문에 리치만을 따지고있을수는 없습니다. 남의 나라에 대한 침략이 제국주의본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것이라면 쏘련에 대한 침략을 무엇때문에 못하겠습니까. 실례로 일제는 작년에 벌써 장고봉사건을 도발한바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일제군벌두목놈이 지난해말에 다시 <정면전선>을 또 하나 펴야 한다고 떠들어대서 말썽이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것은 이 문제가 결코 황당무계한 일로만 볼것이 못될뿐아니라 충분히 있을수도 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이 문제여하에 따라서 우리 혁명이 어떻게 될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혁명의 승패는 우리 인민의 힘에 달려있습니다.》

그때부터 김준삼이는 심각해졌다. 조국진군작전의 거대한 승리에 다소 들뜬 기분으로 가볍게 제 생각을 드러냈던 다른 지휘관들도 새삼스럽게 이 문제의 중요성을 깨달은듯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사령관동지자신께서도 줄곧 그 생각이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 생각하시는것은 만몽국경선에서 벌어졌다는 사태의 진상자체가 아니였다. 그 진상은 왜놈들이 아무리 감추려 하여도 미구에 해명되고말것이지만 문제는 그것이 우리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겠는가 하는것이다. 일부 동무들가운데는 아직도 남의 불에 게잡자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럴수록 태동하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처하여 조선혁명의 핵심력량인 인민혁명군 대원들을 우리 혁명의 원리로 더욱 튼튼히 무장시키며 그런 기초우에서 광범한 인민들을 조직결속해야 한다는 확신이 그이의 걸음걸이에 더한층 무게를 보태주는듯 하였다.

발자국소리에 돌아보시니 조진범이가 난처한 표정을 하고 따라온다.

《웬일입니까?》

《사령관동지, 별난 청년이 대렬뒤를 자꾸 따라옵니다.》

《별난 청년이 따라오다니? 그렇다면 왜 후위에서 그냥 두었소?》

사령관동지께서는 뜻밖의 말에 놀라시였다. 유격대의 행군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알만한 동무가 돼서···》

조진범은 자기가 말을 잘못한것 같아 어물거린다.

《그것은 무슨 말이요?》

《신사동에서 짐을 지고 왔던 동뭅니다. 대홍단에서 전투할 때도 우리를 잘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입대를 시켜달라고 그냥 따라옵니다. 왜놈들한테 얻어맞아서 눈등이 부어오르고 다리도 절뚝거리는게 좀 별났습니다.》

《군수관동무.》

사령관동지께서는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몸에 상처를 입은것이 무엇때문에 별나단말이요? 아마 동무가 말하고싶은것은 딴데 있겠지.》

그러시면서 사령관동지께서는 타이르시듯 말씀을 이으시였다.

《강건너까지 짐을 지고온 동무들은 대체로 목재판로동자들이고 다 좋은 동무들이였소. 모두 입대시켜달라고 열렬히 희망했지만 우리는 국내혁명력량을 강화해야겠기에 모두 설복해서 돌려보냈소. 그 만호동무 형제나 봉식동무같은 좋은 동무들도 다 돌려보내지 않았소? 그런데 왜 그 동무는 돌려보내지 않았소?》

《그 동무도 다 돌려보냈댔습니다.》

조진범은 난처한 빛을 짓고 변명하였다.

《처음에 좀 떼질을 쓰다가 혁명을 하는데는 반드시 총을 잡아야만 하는것이 아니라고 타일렀더니 그럼 알겠수다 하고 없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오늘아침나절부터 후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쫓아도 그냥 따라옵니다.》

《그 동무가 따라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뭐 말도 안합니다. 누가 말을 붙이자고 기다리면 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행군을 시작하면 슬금슬금 나타납니다. 후위에서 련대장동무가 야단치지 전 정말 곤난합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진범의 엄살을 보시니 어처구니가 없어 그만 웃음을 터뜨릴번하시였다.

그저께 장산령집결장소를 떠나면서 강건너까지 물건을 지고 따라온 인민들을 돌려보내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이틀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웬 청년이 따라온다는것이다.

《그 사람이 이 숲속에서 이틀이나 우리 뒤를 밟았단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뭘 먹고 따라옵니까?》

《뭐 먹기는 어렵지 않을것입니다. 집에 가라고 도중식량이랑 주어보냈으니까 그걸 먹고있을것입니다.》

《허허허, 집에 가라고 준 식량을 먹으면서 따라온단말입니까? 그래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웬일인지 유쾌한 심정이 되시여 밝은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글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저로서는···》

조진범은 딱한 표정을 짓고 사령관동지의 안색을 살피며 말끝을 흐리였다.

이때 대렬 앞쪽이 술렁거리였다.

아침에 휘풍동방향으로 내보낸 정찰조가 돌아온 모양이였다.

《저 사령관동지.》

김일성동지께서 앞쪽에 시선을 돌리시는 눈치를 채자 조진범은 안타깝게 불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못들으신척하시고 걸음을 다우치시였다.

예견하신대로 강철룡과 장경수, 박인섭이가 돌아왔다. 강철룡은 사령관동지께로 곧장 달려오고 장경수와 인섭이는 오백룡에게 손짓, 몸짓을 섞어가며 무슨 말인가 섬기고있다. 그들의 어깨에는 보지 못하던 장총이 한자루씩 메워져있었다.

《사령관동지, 정찰조는 명령을 수행하고 돌아왔습니다.》

강철룡은 변장을 한채 거수경례를 하고 격식대로 보고를 하였다.

《그래 어떻습니까? 동네가 있습니까?》

《예, 동네가 있습니다.》

하고 강철룡은 옆차기에서 목책을 꺼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전에없이 서두는 그를 제지하신 다음 오백룡을 향해 부대를 휴식시키고 지휘관들을 부르라고 이르시였다. 그리고 조진범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였다.

《휴식시키면 그 동무도 쉬게 될테니 조동무도 가보시오. 가서 잘 타일러 돌려보내도록 하시오.》

조진범은 힘있게 경례를 붙이고 돌아섰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듯 한 빛이 도는것을 눈치채시였으나 이번에도 그이께서는 못보신척하시였다.

오중흡이 맨먼저 달려오고 이어 8련대장과 박덕산, 준삼이도 달려왔다.

《강철룡동무가 동네들의 형편을 정찰해왔습니다. 들어봅시다. 그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강철룡은 한 30리 된다고 하고 장경수는 20리 남짓하다고 하여 두사람의 견해가 대립되였다.

《동무는 어떻습니까?》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웃으시며 인섭의 의견을 물으시였다.

인섭은 아예 자기는 나설 차비를 안하고있었기때문에 처음에는 좀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인차 정색하고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소대장동무는 한 30리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20리쯤밖에 걷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저으기 흥미를 느끼시고 진지하게 물으시였다.

《그건 저 소대장동무의 성미가 그렇기때문에···》하고 인섭은 철룡의 눈치를 흘끔 살피고나서 뒤를 이었다.

《소대장동무는 골짜기마다 샅샅이 훑고 갈림길만 나지면 몇마장씩 혼자 들어갔다가 되나오군 합니다. 그사이 저희들은 옴짝하지 말라고 해서 편안히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있었습니다.》

《뭐 여기는 소대장동무네 고장이라고 해서 어찌나 주인행세를 하는지 우리는 그저 따라갔다가 왔습니다.》

하고 장경수도 한마디 보탰다.

《허허허, 소대장동무가 제고장 재세를 좀 한것이 사실인 모양이군. 그런즉 하는수 없습니다. 소대장동무가 다 보고를 하도록 하시오. 그래 동네형편이 어떻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상 덜퉁한듯 하면서도 승벽이 있고 의리가 두터운 강철룡의 소박한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씀하시였다.

《이 동무들이 공연한 소리를 합니다. 제가 뭐 제고장이라고 해서가 아니라 사실 이 모퉁이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느모로 보나 제 책임이지요. 그래 두루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그랬을뿐입니다. 그런데 정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그 말이 꼭 맞았습니다. 제가 혁명하러 나서기 전에 이 모퉁이에도 사냥을 더러 나왔댔는데 알아볼만 한데는 하나도 없습니다. 저 본부라는데로 나가는 큰 신작로같은게 가로세로 건너가고 옥돌골어방에는 여라문채 되나마나한 동네가 있었는데 가보니까 그 10리쯤 북쪽에 백여호 잘되는 새 동네가 또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휘풍동에는 보위단이 있고 그 남쪽에 장강동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거기에도 경찰이 있습니다. 휘풍동으로 들어가자면 장강동에 있는 놈들까지 다 쳐버려야 할것 같습니다.》

강철룡의 보고는 지도에 기재되지 않은 새 동네가 나타났다는것을 제외하고보면 대체로 다 예견한것들을 확인한외에 별다른것이 없었다.

그런데 보고의 마감무렵에 가서 강철룡은 뜻밖의 소리를 하였다.

《회양동에 경찰이 있다길래 찾아갔습니다. 가보니까 네놈이 있는데 분서 뒤마당에 아편이랑 심어놓고 대낮부터 밀주를 퍼마시고있는놈들입니다. 그래 찾아들어가서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이다 하고 말했지요.》

《대낮에말입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우쳐 물으시였다.

《어찌 외진곳인지 대낮이나 한밤이나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 반항을 하지 않았소?》

《반항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놈이 총을 뽑아드는척 하길래 쏘아죽였더니 그 틈에 다른 세놈은 모두 꽁무니를 빼고말았습니다. 따라가서 쏘아죽이자고 보니까 어찌나 혼이 났는지 총이랑 옷이랑 다 벗어팽개치고 내뛰는 꼴이 두어두면 우리 유격대를 괜찮게 선전해줄것 같아서 내버려두었습니다.》

강철룡은 비로소 어깨에 멨던 장총을 내려놓았다. 장경수와 박인섭이도 잔디판우에 소리 안나도록 총을 나란히 놓았다.

긴장됐던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보고를 하는 세사람의 얼굴은 긴장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이 사실을 어떻게 보시겠는지 몰라서 조마조마해하는 눈치들이였다. 처음 리수를 댈 때부터 조금 버성기게 느껴지던 감정의 파문이 사실은 이 사건에 바탕을 두고있었던것이다. 경찰을 잡아서 적의 동태를 똑똑히 알아내야 하지 않겠는가고 처음 말을 낸것은 장경수였다고 한다. 그런데 강철룡이 그 말을 받아서 그게 좋을뿐만아니라 여기에 사령부를 모시기 위해서는 아예 그놈들을 까눕혀야 한다고 우기고나섰다. 사령부를 모실 자리에 미리 불질을 하는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박인섭이가 미타한 소리를 했고 장경수도 나중에는 박인섭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강철룡은 작든크든 적들을 두고야 어떻게 사령부를 모실수 있겠느냐고 더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사실 네놈쯤 되는 적들을 쳐눕히자면 세사람씩 갈 필요도 없는것인데 만일을 위하여 한껏 조심을 두느라고 셋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는것이다.

《중대장동무도 떠날 때 저보고 몇번이나 강조했지만 사실 적들이 무슨 꿍꿍이수를 꾸밀지 모른단말입니다. 그렇기때문에 경찰같은것을 그냥 둘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넋이 빠져서 내빼는 놈들이야 구태여 총질을 해서 소란을 피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강철룡은 다시 지휘관들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공연히 오백룡이까지 끌어들이며 미리 누울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동무, 남을 거들지 말고 어서 보고나 마저 드리시오.》

덕산이가 무겁게 말하자 강철룡은 흠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놈들이 혼이 나서 내뺐으니 제힘으로 돌아올것 같지는 못합니다만 아무래도 그놈들이 어디 가서 보고를 할것 같고··· 간후에 알아보니 그놈들가운데 한놈은 어디 출장을 가고 없었다는것입니다. 그 분서라는것이 아마 대마록구에 본부를 둔 경찰서의 분서같습니다.》

강철룡은 회양동의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어놓은데다 세놈을 산채로 놓아준것때문에 저으기 걱정이 되는 모양 연방 다른 지휘관들의 눈치를 살폈다.

《일없습니다. 그놈들이 아마 무산지구에서 울린 총소리를 듣고 겁이 나서 벌벌 떨고있었을것입니다. 그러다가 조선인민혁명군이다 하니까 들고뛰였을것입니다. 소대장동무의 말대로 이제 도망친 놈들이 어디 가서 보고를 한다 해도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해 굉장하게 떠들것이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나쁠것이 없습니다. 장차 우리는 한개 동네가 아니라 이 백두산동북부일대를 모두 그렇게 만들어서 적들이 도처에서 벌벌 떨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동네형편은 어떻습니까?》

《사실은 그렇습니다. 저희들 생각에도 사령관동지께서 제시하신 큰골회의 방침을 관철하자면 그까짓 한두놈의 적들때문에 몸을 사릴 필요가 없을것 같습니다.》

강철룡은 사령관동지께서 자기들의 행동을 지지해주시자 대번에 기가 올라서 사위를 휘둘러보더니 마을형편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였다.

《마을사람들은 모두 어찌나 기가 죽었는지··· 그놈들 댓놈이 자그만 동네에 틀고앉아 왕노릇을 했답니다. 그런데다 유통사네 보위단이 마구 뜯어가고 또 사람까지 마구 패고친다지 않습니까. 이 일판 땅은 몽땅 유통사네 땅인데다 유통사네 조카가 또 현경찰국장이랍니다. 그러다나니 경찰분서라는것이 꼭 유통사네 출장소같이 돼있답니다.》

《화룡땅에서는 간데족족 유통사이야기로군. 강동무도 유통사의 땅을 부쳤다고 했지?》

사령관동지께서는 무엇인가 석연치 않는것을 느끼시며 물으시였다.

《예, 그렇습니다. 화룡일판의 땅을 절반가까이나 차지하고있으니까 누구나 그놈에게 명줄이 매이지 않을수 없습니다.》

《전에 내가 유격대를 조직하려고 돈화에서 이쪽으로 나오니까 그때도 유통사 보위단문제가 시끄럽게 제기되였습니다. 그때로부터 10년가까이나 흘러갔는데 아직 그놈이 사람들의 운명을 모두 제 손아귀에 걷어넣고 쥐락펴락하는 모양이니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시 길림에서 먼저 이 지구로 파견되여나왔던 최서범이 조직을 확대할 생각보다는 유통사를 처단해야 한다, 유통사 보위단을 까눕혀야 한다고 열을 올리던 생각이 떠오르시였다.

조선혁명군성원들과 공청의 핵심들을 동만 각지에 파견하시고 몸소 오가자의 농민들속에 들어가시여 대중을 혁명화하는 본보기를 창조하신 그이께서는 커다란 포부를 안으시고 돈화를 거쳐 간도땅에 나오시였다. 돈화에는 벌써 적지 않은 청년들이 공청파견원 주위에 모여있었다. 그들을 핵심으로 하여 유격전쟁을 벌릴 웅대한 구상을 품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화룡땅에서 최서범의 외곬으로 뚫린 과격한 주장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몇밤을 밝히셨는지 모른다. 그후 화룡유격대는 건전하게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최서범이도 성장하여 오늘은 1방면군의 중요한 부대를 책임지고 떠나갔다.

그런데 최서범이가 학생복을 입고 그처럼 처단해버리겠다고 벼르던 유통사는 근 10년이 돼오는 오늘도 여전히 화룡땅에서 활개를 치고있을뿐아니라 그때보다 세력도 지반도 더 커져서 왕거미처럼 화룡땅을 그 수많은 다리로 움켜잡고있는것이다. 예감에 앞으로 유격대가 백두산동북부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벌리기 위해서는 어차피 이 유통사문제를 처리해야 할것 같았다.

《경찰이 우리 부대가 온것을 알고있었습니까?》

한참이나 지난 다음 사령관동지께서는 일상적인 어조로 물으시였다.

《내뛴놈들말입니까? 아마 그런 소문을 얻어듣고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럴수도 있습니다. 내버려두시오. 우리는 어차피 이 여름에 유격투쟁을 본격적으로 강화해야 합니다. 그놈들이 내뺐으니 어디 가서 고해바칠것입니다. 유격대의 대부대가 백두산동북부에 나타났다는것은 적들에게도 충격을 주겠지만 인민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수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조국에 나가서도 느껴지는것이 많았지만 인민들은 원쑤들에게 짓눌려 힘겹게 살아갑니다. 시련을 이겨내자면 뻗치고 설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 신념을 주기 위해 우리 혁명은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할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인민도 내버려두면 혁명할 생각을 못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기서 잠시 말씀을 끊으시고 생각에 잠기시였다. 그러나 인차 그 생각을 털어버린듯 고개를 번쩍 드시고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럼 강동무는 돌아가보시오. 사령부는 경위중대, 8련대, 독립대대와 함께 이제 바로 그 휘풍동, 회양동 일대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거기에 가서 판을 벌리고 군중정치사업을 들이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7련대는 올기강 서쪽에서 동경평, 상대동, 원풍동 같은 집단부락들의 적을 제압하고 사령부로 와야겠습니다.》

강철룡과 장경수, 박인섭은 벌떡 일어났다. 경례를 붙이고 돌아서려던 강철룡은 잠시 쭈밋거리더니 괴춤을 들추어 차곡차곡 접힌 신문 석장과 편지 한통을 꺼내놓았다.

《이거 우리가 막 분서에 쳐들어갔을 때 배달부가 가져오는걸 받아왔습니다.》

강철룡이네가 떠나간 다음 사령관동지께서는 천천히 나무밑을 거니시였다. 박덕산은 고개를 숙이고 나무막대기로 무엇인가 땅바닥에 글을 새기고 오백룡은 탄알을 꺼내여 하나하나 닦고있다. 김준삼은 주린 사람이 음식상을 마주한듯 방금 강철룡이가 꺼내놓고간 신문을 성급하게 들여다본다.

오중흡이만이 무엇이 마음에 걸리는지 자기 련대가 있는 후위쪽을 가끔 돌아보며 사령관동지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숲속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내리누르는듯 축축히 젖어보이는 하늘이 무겁게 드리워있었다. 바람 한점 없었다.

별안간 생각에 잠긴 조용한 분위기를 깨뜨리며 상철이의 목소리가 울리여왔다.

《안돼요. 사령관동지께서 회의를 하시는중이라지 않아요.》

그다음 나이 지숙한 목소리가 무어라고 웅얼거리고 이어 또 상철이가 야무지게 잘라 말했다.

《지금은 안돼요. 아까 사령관동지 만나뵙고 다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안돼요. 더구나 사민까지 데리고와서···》

지휘관들의 눈길은 자연히 그리로 쏠리였다.

깊은 생각에 잠겨 나무밑을 오락가락 거니시던 사령관동지께서도 그리로 눈길을 보내시였다.

《조진범동무가 아닙니까?》

《그런것 같습니다.》

하고 오중흡이 일어나면서 말씀드리였다.

《여간 질긴 동무가 아닙니다. 그만큼 말했는데 그냥 따라오는 모양입니다.》

《누구말입니까? 신사동에서 왔다는 동무말입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아까부터 그러리라 짐작하시였던 일이지만 큰 호기심을 가지고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좋은 동무이고 각오도 높은 동무같습니다.》

오중흡은 말은 당장 가서 쫓아보낼듯이 하면서도 은근히 그 청년을 두둔하면서 말씀드리였다.

《련대장동무가 만나봤습니까?》

《예, 아까 조진범동무가 자꾸 조르길래··· 자기는 할 말 다했는데 듣지 않으니 어떻게 해달라고 해서 제가 만났습니다.》

《그래 만나보니 어떻습니까? 왜 꼭 유격대에 들겠다는것입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웬일인지 그 청년의 대답에 왼심이 쓰이시는것을 느끼시며 오중흡의 고정한 모습을 지켜보시였다.

《뭐 긴 말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덮어놓고 사령관동지를 만나게 해달라고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자기 사정을 다 아신다고 합니다.》

《내가 사정을 다 안단말이요? 그건 누구요?》

《우리 련대동무들은 신개척에 나갔기때문에 보지 못한것 같은데 아마 전날 사령관동지께서 몹시 걱정하시던 그 로인의 손자같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우리 할아버지를 부축하시고 우리 집까지 오셨댔다고 기세를 올립니다.》

《그럼 강로인의 손자로구만. 칼을 맞고 돌아왔다더니 용히 살아나서··· 또 여기까지 따라왔구만, 만나봅시다. 내가 그 로인의 부탁을 저버릴수야 없지 않소. 그 로인이 그때 손자를 부탁한다고 거듭 말하더니 바로 이것이였소. 만나봅시다. 원쑤들과 용감하게 싸운 청년인데 만나봐야지.》

사령관동지의 말씀이 떨어지자 지휘관들은 모두 제일인듯 기뻐하였다. 오중흡이가 전에없이 덤비며 뛰여갔다.

잠시후 그는 정섭이를 데리고 다시 나타나서 보고를 드리였다. 그뒤로 조진범이며 전령병들도 따라와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더벅머리총각을 지켜본다.

정섭이는 어리둥절해서 장군님의 웃음띠우신 얼굴을 바라보더니 멀찍이서부터 두손을 읍하고 머리를 깊숙이 숙이였다.

《장군님, 문안인사를 드립니다. 제 신사동 사는 벌목부입니다.》

어찌나 긴장되였던지 말이라는것이 모두 토막토막 끊기여서 몇번이나 숨을 갈아쉰 다음에야 가까스로 이렇게 말했다.

그가 머리를 깊이 숙이는 바람에 정수리에 부풀어난 상처와 그 밑에 장닭볏같은 머리카락이 유난히 뻗두룩하게 두드러져보였다.

정섭이의 소박한 말투며 어쩔줄 몰라하는 거동이며 외양이 모두 우습강스러웠지만 순진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서둘러 다가가시여 정섭이의 두손을 잡아쥐시였다.

《동무가 강로인의 손자로구만, 잘 왔소. 내가 무척 보고싶더니 이런 동무였구만. 동무들, 이 손을 보시오.》

하고 장군님께서는 수집어서 어쩔줄 몰라하는 정섭이의 손을 지휘관들에게 쳐들어보이시며 말씀하시였다.

《어릴 때부터 어찌나 도끼질을 했던지 마치 쇠돌같소. 이런 손을 가지고도 그놈들에게 그렇게 매를 맞아야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요? 그래 이게 그놈들에게 얻어맞은 자리요?》

사령관동지께서는 깊숙이 떨구고있는 정섭이의 뻗두룩한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장군님!》

정섭이는 그만에야 그 커다란 덩치를 그대로 장군님의 가슴에 쓰러뜨리며 안기였다.

《그놈들이 얼마나 때리는지··· 저만 아닙니다.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막 때립니다. 우리 산판사람들은··· 다···》

정섭이는 아버지에게 억울한 사연을 일러바치는 아이들처럼 끅끅 목메이며 분하고 억울하던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래 다 알아, 그만두라구. 혁명군이 되겠다는 대장부가 이렇게 쉽게 울어서야 되나···》

사령관동지께서도 눈시울을 슴뻑이시면서 정섭이의 떡판같은 등을 어루만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