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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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숙영지일판은 온통 웃음소리, 노래소리로 들썽들썽하였다. 격정에 사로잡혀 무슨 뜻인지도 모를 소리로 마구 웨치는가 하면 손나팔을 해대고 하늘을 향해 《우리가 왔다, 김일성장군님의 전사들이 왔다-》 하고 소리치는 동무도 있다.

껑충껑충 뛰는가 하면 끝없이 바람을 안고 달리기도 한다.

모든 노래를 밀몰아 수심가조로 불러제끼는 공인된 《명창》 강철룡소대장이 《자유가》를 부르며 손벽춤을 들고나오고 흥에 이기지 못하여 인섭이와 최병규가 씨름을 안고 돌아가자 숲속은 마침내 화끈 단 열정의 도가니로 변해버렸다.

《좋다-》

점잖은 7련대의 박태진중대장이 무릎을 철썩 내리치더니 어깨를 으쓱거리며 강철룡과 짝을 뭇고 돌아갔다.

그 모든 메아리가 하나의 화음을 이루어 가슴마다에 혁명하는 참된 보람을 뻐근하도록 안겨주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쁨에 몸부림치는 동무들을 보고있느라니 자꾸만 눈굽이 젖어들어서 홀로 깊은 숲속에 들어가시였다. 실컷 달려도 보고싶고 말없는 산천이나마 마음껏 쓰다듬고 안아도 보고싶으시였다.

얼마나 그립던 조국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저쯤 서있는 이깔나무를 향하여 달리시였다. 달려가던 기운으로 나무줄기에 팔을 휘감으니 그대로 나무를 안고 한바퀴 핑그르르 몸이 내둘리시였다. 그다음 고개를 번쩍 쳐들고 하늘을 쳐다보신다.

손바닥만한 파란 하늘에 반짝반짝 유리가루를 뿌리는것과 같은 해빛이 쏟아져내렸다. 눈을 쪼프리니 눈귀로 소리없이 눈물이 주르르 슴새여흘렀다.

고향 오산덕마루에 백살구꽃이 활짝 피여 그 꽃속에서 어머니며 오빠며 동생이 이제야 왔느냐고 손저어 부르는것만 같으시였다.

철도 들기 전에 하직한 조국, 그 조국으로 군복을 입고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이렇게 왔구나 생각하니 뭉클하는 감회가 가슴가득 차오르시였다. 공작임무를 띠고 신갈파와 도천리어간을 무수히 넘나들기도 하였지만 그때는 언제한번 마음놓고 울어볼수도 웃어볼수도 없으시였다. 장군님을 모시고 온 이날에야 고향땅에 찍혀진 자신의 작은 발자국을 되밟는듯, 참으로 부드럽고 포근한 어머니품에 안긴듯 싸움의 나날에 모질게도 억눌려오셨던 온갖 감회가 한꺼번에 되살아나 가슴을 두드리였다. 너무나 벅찬 생각이 뒤범벅이 되여 자신께서도 웃는것인지 우는것인지 종잡을수 없었고 그런것을 느껴볼 겨를도 없으시였다.

《어머니, 전 장군님을 모시고 어머니가 그렇게도 보고싶어하던 조국에 왔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머니가 누워계시는 아득한 부암의 하늘을 향하여 마음속으로 속삭이시였다.

눈에는 함빡 눈물이 어리였고 떨리는 입귀에는 웃음이 피여있었다. 평생소원이 이룩된듯 한 벅찬 감동이였다. 동시에 가슴 에이는듯 한 충격이기도 하였다.

가슴속에 부푸는 감회때문인지 몸은 잠시도 한자리에 머물러있을수 없으시였다. 어딘가로 훨훨 날아가고싶으시였다.

하늘에서 반짝거리는 해빛이 그이의 눈길을 다른데로 이끌어갔다.

엄청나게 큰 이깔나무 저쪽에 진달래가 여기저기 피여 흐트러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방금까지 입귀를 떨며 외우던 혼자말을 문득 그치고 한달음에 달려가시였다.

길손 하나 없는 이 깊은 숲속에 누구를 위하여 이렇게도 곱게 피여났는가. 진달래는 한물이 져서 연분홍 꽃물이 만첩으로 드리운 꽃잎끝에서 뚝뚝 흐를것만 같다.

저쪽에도 꽃이 있다. 아니 꽃만이 아니였다. 묵은 잡초의 떡잎을 헤치고 파란 새풀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청취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옆에 무수해도 있고 찟개나물도 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이 빛나시였다. 그것은 산나물밭이나 같았다. 그중에도 청취가 많다.

꺼멓게 퇴색하여 얼기설기 뒤엉킨 떡잎을 뚫고 파랗게 돋아난 청취의 새잎에서는 봄내가 확 풍겨오는듯 하였다.

한참 그 만만한 연록색의 잎을 쓰다듬으며 그윽한 눈길로 사위를 둘러보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옆차기에서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작은 치도를 꺼내여 나물밑을 우비시였다.

뿌리쪽에 묻어난 흙을 털어내시니 젖먹이의 살결같이 새하얗고 부드러운 밑줄기에 발깃한 혈색이 물들어있다.

코가 알싸하도록 봄내, 조국의 향취를 풍겨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제는 이 생각, 저 생각 다 버리고 나물을 캐는데 열중해버리시였다.

한잎한잎 우벼서는 부드러운 흙을 털어내고 곁묻어 일어난 떡잎을 다 골라내여 한쪽손에 쥐고 앞으로 나가시였다. 어느새 줌이 벌어져 어디다 건사할것인가 망설이는데 저만치 모록하게 우거진 관목덤불그늘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시였다. 씹어삼키는 흐느낌소리도 들리는듯 하시였다.

누굴가? 조국의 품에 안기여 눈물을 흘리는것은 유난스러운것이 아니였다. 장군님 모시고 10년세월 간고한 혈전의 길을 헤쳐온 지숙한 로대원도 듬직한 정치일군이나 지휘관들도 땅을 그러안고 눈을 슴뻑거리였다. 꽃포기를 그러안고 주르르 눈물을 흘리는 어린 대원들도 있고 진달래를 꺾어들고 흐느끼는 녀대원도 있었다. 자기가 운다는것을 감추려고 어색한 웃음을 짓는 전우들을 서로 바라보며 새로운 감동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누가 이런 으슥한 그늘에 혼자 와서 우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덜컥하는것을 느끼시였다.

《금숙이.》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다가가시였다.

금숙이는 소리없이 돌아보았다. 역시 눈에는 함빡 눈물이 괴여있다가 서둘러 가져가는 손등을 적시였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얼굴은 밝았다.

《언니예요? 아이, 무슨 나물을?》

금숙이는 입귀를 바르르 떨며 웃었다.

《왜 이런데 혼자 와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진달래꽃포기를 가운데 두고 나란히 앉으며 말씀하시였다.

《언니도··· 내가 울고있는줄 알아요?》

《울었다 해도 나쁠게야 있어요. 강철룡소대장동무도 눈이 벌개서 주먹으로 나무를 탕탕 두드리던데··· 허지만.》

《허지만 이 금숙이는 사정이 다르다는것이지요?》

하고 금숙이는 다잡아묻더니 대답할 사이도 없이 제절로 뒤를 이었다.

《나는 물론 그 동무 생각도 했어요. 이렇게 조국의 품에 안기니 멀지도 않은 곳까지 다 와서··· 글쎄 여기서 간삼봉이 얼마 되기나 해요. 그렇게 조국을 지척에 두고 쓰러진 그 동무의 일이 가슴을 허비기도 했어요. 그러나 한태혁동무가 바란게 뭐겠어요? 우리 조국땅에 장군님을 모시기 위하여 그 동무도 목숨을 바친게 아니겠어요. 네, 언니··· 난 여기 혼자 가만히 앉아 그런걸 생각하니 정말 그때 북대정자에서 장군님께 맹세한것처럼 그 동무몫까지 더 잘 싸워야겠다는 결의가 굳어지기도 했어요.》

《정말 금숙이는 어쩌면 이렇게 용할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진심으로 감동되시여 금숙이의 손을 어루만지며 길다란 살눈섭이 슴뻑거리는 처녀의 생동한 얼굴을 살펴보시였다.

《아이, 언니도··· 어린애처럼 그러네.》

금숙이는 날쌔게 몸을 날려 그이의 무릎에 부끄러운듯 얼굴을 묻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숙이의 어깨를 쓸어주며 숲에 가리워 보이지 않는 북대정자의 하늘쪽을 바라보시였다.

지난 겨울 갖은 시련을 겪고 후방밀영에서 나왔을 때 금숙이를 기다리고있은것은 태혁이가 가재수 백바위골의 혁명조직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다가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는 소식이였다. 전부대의 사랑을 받던 유명한 기관총수이며 유명한 익살쟁이기도 했던 한태혁의 희생은 유격대원들의 무쇠같은 가슴에 오래동안 피얼룩진 상처를 남겼었다.

그중에도 한태혁이를 남달리 사랑하고 심혈을 기울여 키워오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얼마나 큰 아픔을 겪으셨는가 하는것은 그를 장례지내던 날 천지를 메우며 퍼붓는 함박눈속에 밤이 지새도록 서계셨다는 이야기만 듣고도 짐작할수 있었다.

《그때 우리는 북대정자로 가다가 양지바른 들판에서 냉이밭을 발견했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금숙이는 아이들처럼 고개를 쳐들고 그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으슬막에 둘이서 나물을 캐러 갔을 때 사령관동지께서 오시지 않았어.》

《정말 언니, 난 어찌면 좋아요? 왜놈들때문에 슬픔을 안은게 나뿐이예요? 언니는 부모형제 다 잃지 않았어요? 우리 동무들가운데 누가 원한이 없는 사람이 있겠어요?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유난히 나때문에 그렇게 마음을 못 놓아하시니 난 어떻게 하면 좋아요?》

《장군님께서야 모든 사람의 슬픔을 다 한가슴에 안고계시지, 그런중에도 금숙이때문에 늘 마음을 못 놓으시는것은··· 그것은 아마 장군님께서도 한태혁동무를 잊지 못하시기때문일거야.》

금숙이는 부러지듯이 목을 꺾고 다시 김정숙동지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갑자기 어깨가 세차게 물결치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그리워하던 땅일가. 우리 조국은 얼마나 좋아! 그래서 이 땅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고도 우리는 이 땅에 안기니 이렇게··· 이렇게 눈물이 나도록 기쁜게 아니겠어.》

김정숙동지께서는 감동에 흐느끼는 금숙이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눈귀에서도 가는 이슬방울이 맺히여 주르르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총총한 나무가지사이를 뚫고나온 해빛이 그 눈물줄기에 아롱져 유리가루같이 반짝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