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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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낱같은 초생달이 두텁게 깔린 구름짬을 누벼나갔다. 산촌은 으스레 밝아졌다가는 갑자기 캄캄해지군 하였다.

편벌장에서 호리모도며 《이시가와구미》의 도감독과 마주서서 무슨 이야긴가 나누고있던 리호철이가 피우던 담배를 그대로 휙 내던졌다. 담배불은 어둠속에 빨간 포물선을 긋더니 물동다리밑에서 꺼져버렸다. 그놈은 자전거를 뻗치고 정섭이를 기다리고있는중이였다.

《리상, 수고하겠소.》

호리모도가 한잔 걸쳤는지 혀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그놈 아예 천당에 보내주라니까.》

도감독이란놈은 딱따구리지팽이로 정섭이의 등을 쿡 지르고는 껄껄 웃었다. 그놈들은 《호리모도구미》사무실쪽으로 멀어져갔다.

리호철이가 자전거를 돌려세우며 하늘소에게 말했다.

《내 한걸음 먼저 갈테니 토벌대로 곧장 가지 말고 유곡작업소 사무실에 먼저 들리라구. 사무실에 없으면 무산옥에 있을테니···》

하늘소는 포승줄을 쥔 손을 바지주머니에 지른채 고개를 끄덕해보였다.

수라에 넘치도록 물이 그득 고인 물동가에서 정섭이는 걸음을 멈추었다. 물속에서 별들이 마치 영섭이의 눈처럼 해죽해죽 웃는다. 편벌장에는 새벽에 띄울 모양인 떼들이 조용히 흐느적거리고있다. 수라짬으로 새여나가는 물소리가 주절주절하는것이 꼭 뜻있는 속삭임소리 같다.

정섭이는 본능적으로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편벌장에는 사람그림자 하나 없고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봉식이는 어데 갔는가? 이밤에는 물동지기령감도 자리를 뜬 모양 막막한 숲만 물속에 어리여있다.

정섭이는 묵묵히 물동다리를 건넜다. 차라리 누구의 눈에도 띄우지 않는것이 좋을는지 모른다. 이꼴을 하고 묶여가는것을 누가 보았다면 그길로 집에 알려지겠는데 가뜩이나 편치 않으신 어머니가 얼마나 놀라실것인가. 정섭이는 고개를 떨구고 걸었다.

《이사람.》

오돌오돌 떨리는 목소리가 물동막에서 울려온다. 물동지기령감이다. 역시 사람이 영 없지는 않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 까닭없이 눈굽이 찡해졌다.

로인은 허둥거리며 스키모를 쓴놈의 눈치를 살폈다.

《이게 이사람 옷일세. 전날 여기다 벗어두고 간건데··· 입혀보내도 일없겠지?》

하늘소는 로인이 펼쳐든 처서군 큰저고리자락을 아래우로 훑어본다.

정섭이가 보니 봉식이가 입고가라던 그 큰저고리다.

《안돼, 손을 묶었는데 어떻게 입힌단말야.》

《걸치구라도 가게 해주오.》

《안된다는데···》

하늘소는 로인을 밀쳐버렸다.

《할아버지, 일없소다. 봉식이에게 내 인사나 전해주오다.》

《그럼 이거라도···》

로인은 덤비며 큰저고리주머니를 더듬더니 감자 두개를 꺼냈다.

《그게 뭐야?》

《감자요, 삶은 감잔데···》

《저리 비켜! 시간이 없다는데···》

하늘소는 이번에는 정섭이를 밀쳤다.

《이사람아, 입을 벌리게, 한개라도···》

로인은 옆에 붙어서서 정섭이의 입에 감자 한알을 밀어넣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정섭이가 비칠거리는바람에 감자는 데그르르 굴러나서 수라밑에 떨어지고말았다. 가는 파문이 일고 물속에 어리였던 쪼각달이 이지러졌다.

《죽일놈같으니···》

이렇게 중얼거리며 큰저고리를 한손에 드리운채 물동가에 맥을 놓고 서버린 로인의 모습은 오히려 묶여가는 정섭이보다 더 외롭고 더 서글퍼보였다.

정섭이는 끝없이 주절거리는 소홍단수를 따라 그냥 머리를 푹 숙이고 걸었다. 두지바위동네가 나타났다. 동네를 지나 얼마를 못 가서 흡사 뒤주와 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 그 바위에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있었다. 저우로 올라가면 영섭이에게 돌배를 따주던 그 돌배나무도 있다.

하늘소는 포승줄을 잡아챈다. 사람눈에 뜨이는것을 그놈도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정섭이 역시 이제는 그 누구가 봐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빨리 걸을 생각도 없어서 여전한 걸음으로 10여호 되는 동네를 한번 돌아보지 않고 지나쳤다. 초저녁인데도 불 켠 집 하나 없이 캄캄하다는것만은 어쩐지 가슴아프게 느껴졌다.

도룡봉마루가 저만치 바라보이는 버덩에 나섰을 때 앞에서 급하게 달려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리였다.

하늘소는 본능적으로 정섭이를 나무그늘에 밀어넣고 저는 권총을 뽑아들었다.

가까이 오는것을 보니 리호철이였다. 자전거는 어디다 쥐여뿌렸는지 맨몸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온다. 달려오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는 꼴이 무엇에 쫓겨온 모양이다.

《웬일이시오?》

하늘소가 길로 나서며 물었다.

리호철은 흠칫하고 멎어서더니 우선 《국민복》단추를 다 끄르고 숨을 태웠다. 가슴이 골풀무처럼 씩씩거리며 오르내린다. 그 짬짬으로 토막토막 찢어던지는것 같은 말마디들이 새여나왔다.

《유격대다!··· 대부대다! 산으로··· 소리를··· 소리를 내지 말고···》

《뭐요?》

하늘소는 유곡방향을 피끗 돌아보고나서 대들듯이 물었다.

《벌써 왔단말이요?》

《왔다, 왔단말이다. 내가 뭐라던가···》

호철은 벌써 풀밭을 헤치고 산턱으로 들어가며 술주정뱅이처럼 말했다.

《그럼 자위대로 가야 할것 아니요?》

《자위대쪽으로 가면 죽는다. 유격대가 지금 그리로 가는것이 틀림없다. 이리 와!》

하늘소는 정섭이의 포승줄을 끌고 자신없는 걸음으로 몇걸음 따라갔다.

리호철은 정신없이 한참 산으로 올라가다가 무엇을 보았는지 다시 흠칫 멎어섰다. 도룡봉마루가 벌써 기울어지려는 초생달빛아래 우렷이 떠올랐다. 그우에 총을 든 사람들이 서있었다. 저 아래쪽 길도 보이는데 껑충하게 선 전주대에 웬 사람이 올라가는것이 훤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호리모도구미》목재판으로 통하는 전화줄이다.

《야- 쫙 덮였구나.》

《경찰이 아닐가요?》

하늘소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미타한 소리로 말하였다.

《정신빠진 소리 하지 말아라. 네놈은 공산당을 그렇게 겪고도 몰라? 저것 봐라! 전화줄이 끊어진 모양이다.》

하늘소는 어둠속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건만 리호철이가 륙감으로 느끼는 그 모든것이 의심할나위가 없다는것을 깨닫고 우들우들 떨기 시작하였다.

리호철의 눈길은 정섭을 지켜본다. 도적고양이처럼 빛을 뿌리는 그 눈은 살기를 뿜고있었다. 정섭은 본능적으로 몸을 가드라뜨리고 숨을 죽였다.

리호철은 잠시 생각하더니 하늘소를 눈짓으로 불렀다. 무엇을 수군거린다.

《···총소리를 내면··· 소리도 못치게···》

이런 말마디들만 가까스로 들려온다.

정섭은 막다른 골목이라는것을 깨닫고 아래우를 살펴보았다. 나무라도 빽빽하면 좋겠는데 여기는 전날 화전을 일구다가 산불이 나서 앙상한 강대만 듬성듬성 남아있을뿐이다.

하늘소가 별안간 포승줄을 힘껏 잡아채더니 한손을 쳐들었다. 비칠하고 앞으로 어푸러지는 순간 그놈의 손에서 비수가 번쩍하는것이 보이였다.

《악-》

면바로 목을 겨누었던 칼은 정섭이가 넘어지는바람에 빗나가서 어깨를 찔렀다.

정섭이는 꼬꾸라지려는 몸을 가까스로 지탱하고 옆으로 돌아섰다. 두손을 다 결박당했으니 이놈들에게 꼼짝 못하고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무맥하게 칼을 받고있을수는 없었다. 하늘소가 재차 달려드는 순간 정섭이는 몸을 날려 그놈의 아래배를 걷어찼다. 칼은 넙적다리 어방을 째고 허공에 날아났다. 그놈은 벼랑에 뒹굴었다.

호철이가 권총손잡이로 정섭이의 정수리를 힘껏 내리쳤다.

정섭이는 다시한번 외마디소리를 지르고 뒤로 번져졌다.

하늘소가 일어나서 칼을 찾았다.

《야! 저것 봐라! 저쪽에서도 온다, 뛰여라!》

두놈은 쓰러진 정섭이를 한번씩 힘껏 걷어차고 산으로 올리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