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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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구네 일행은 농사동주재소에 와서 취조를 당하면서야 비로소 일이 정섭이때문에 벌어졌다는것을 알았다. 그것도 정섭이가 무슨 일을 치고 어디로 내뺐다는것을 어렴풋이 짐작할뿐 다른것은 통 알길이 없었다. 놈들은 덮어놓고 사람을 치고 박으며 정섭이 간곳을 대라는것이였다.

아무리 다그쳐도 이쪽에서 댈것이 없고 또 사실자체가 너무나 명백했기때문에 한밤중에 사람들은 내놓았다. 그러나 도강증을 압수한채 내주지 않았다. 보매 정섭이의 사건이 락착되기 전에 훌 강을 건너가버리면 후에 다시 취조할 일이 생길수도 있는데 그런 때 랑패를 볼가봐 그러는 모양이였다.

이튿날 남정들이 번갈아 주재소에 찾아갔으나 막무가내였다.

놈들이 심술을 부리는 까닭이 차츰 밝혀지자 필네는 답답하게 객주집에 남아있을 재미도 없거니와 첫째 이 일이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 또 정섭이가 어디로 내뛰였다면 그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신사동에서 어떤 젊은이가 왜놈장교를 패주고 산으로 뛰였다는 소문이 주막집에도 번져왔다. 그러던게 다음날에는 왜놈장교를 패준것은 젊은이가 아니라 늙은이라는 말이 돌아가더니 한편에서는 역시 왜놈장교를 패준것은 젊은이인데 그 젊은이가 달아났기때문에 할아버지를 대신으로 잡아갔다는 말도 돌아갔다.

여러 사람이 나가서 두루 수소문한 결과 정섭이대신 할아버지를 신개척에 있는 자위대영창에 잡아가둔것은 거의 확실한듯 하였다.

그래도 제눈으로 본것만 같지 못하고 또 정작 그렇게 됐다면 그 집 형편이 어떨것인가 생각하니 필네는 한시도 가만있을수 없었다.

일행가운데는 자기네도 그 사건에 련결되여있는셈이고 또 친분으로 보아도 찾아가는게 도리가 옳다는 사람도 있고 공연히 찾아가서 그놈들의 눈에 뜨이면 재미가 없다는 공론도 있었으나 필네는 큰 마음먹고 길을 떠났다.

전날 할아버지와 헤여지던 그 고개마루에서 내려다보니 벌써 동네꼴부터가 무슨 재화를 입은것 같은 랭기를 풍기였다.

정섭이네 집은 초상 치르고난 뒤끝처럼 어수선한 풍경에다 괴괴한 침묵으로써 필네를 맞이하였다.

필네가 저도 모르는사이 두려움에 차서 발소리를 죽이고 집안팎을 살펴보는데 느닷없이 떨어진 웃방문을 넘겨뜨리며 경섭이가 달려나와 매달렸다.

아이의 얼굴에는 쥐마당을 그려놓은 눈물자국과 함께 아직도 공포의 그림자가 가셔지지 않고있었다.

한순간에 떠도는 소문이 모두 사실이였구나 하는것을 깨달은 필네는 말없이 경섭이를 와락 그러안았다.

깨여진 옹배기쪼박이 한마당 널려있고 재털이가 토방에 떨어져있었다. 문의 돌쩌귀가 빠져나간것만 보아도 로인이 순순히 잡혀가지 않았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아이구, 필네가 아직도 안갔구만.》

정섭이의 어머니 역시 울어서 뗑뗑 부은 얼굴을 내밀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된거예요?》

필네는 경섭이를 끼고 그 까칠한 머리를 쓸며 앓는 녀인쪽으로 다가갔다. 정섭이의 어머니는 인차 대답을 하지 않고 필네를 이윽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필네도 더 물어볼 말이 없었다. 이제는 물어보나마나 뻔한 일이였다.

《내 정신 좀 보지. 이렇게 앉아있을 사이 없네. 어서 떠나라구, 여기 있다가 큰일나겠어. 그놈들이 무시로 찾아든다네.》

《찾아오겠으면 오라지요. 우리도 도강증을 빼앗기고 잡혀있어요.》

《그래?》

정섭이의 어머니는 기가 막힌듯 서둘러대던 팔을 맥없이 놓고 주저앉아버렸다.

《어머니.》

필네는 병든 녀인의 살이 쑥 빠진 앙상한 손을 제 손바닥우에 올려놓고 쓸었다.

《할아버지가 상하지는 않았어요?》

《왜 안상했겠니, 밤중에 느닷없이 달려들어 묶자고드니 그러지 않아도 기가 성한 로인이 고분고분 끌려가자고 하시겠니. 바라지가 저 지경이 되였으니 늙은이가 어떻게 성하기를 바라겠니? 그런데 도강증은 왜 빼앗았더냐?》

《모르지요. 경섭이 형하고 가까운 사람들이니까 행여나 해서 그러겠지요.》

《에그, 덩치가 커다란것이 무슨 재구를 이렇게 저질러놓았단말이냐.》

녀인은 치마끈을 눈굽으로 가져가며 넉두리를 하였다.

잠시후 필네는 사건의 경위를 대충 듣고는 정섭이의 어머니가 떠미는바람에 그 집 문전을 나섰다. 불쌍한 아낙네는 필네를 떠밀어내면서도 혹시 정섭이를 만나거던 행여 집에 얼씬 않도록 귀띔을 해달라고 신신부탁하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것 같았다. 산턱에 외따로 떨어진 정섭이네 집을 나와 《이시가와구미》밥집앞을 돌아서는데 스키모를 제껴쓴 사나이가 뒤를 따라왔다.

주먹코에 하늘소처럼 귀가 벌쭉한것이 보기부터 을씨년스러웠다.

동네를 벗어나자 그자는 옆에 붙어섰다.

《그 집에 누구를 만나러 왔는가?》

《할아버지랑 어머니랑 만나러 왔어요.》

《마침 잘됐다. 령감을 만나게 해줄테니 같이 가자.》

필네는 말없이 걸음만 다우쳤다.

될대로 되라지, 하는 생각이 옹골차게 맺혀들자 겁도 사라졌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쳐들고 꼿꼿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