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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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무를 처단해버린 다음 네사람은 길가에서 숲속으로 좀 들어가앉았다.

성림이가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장경수는 심상해서 지방공작을 간다고 대답하는데 금숙이의 표정은 굳어지더니 별안간 눈물이 글썽해졌다. 성림이의 질문이 어딘가 그의 가슴의 여린 부분을 건드린것 같았다.

무엇인가 곡절이 있는 모양이다. 재영이의 표정도 그러고보면 평범한것 같지를 않았다.

그들이 장군님으로부터 어떤 과업을 받고 떠난다는것을 알리 없는 성림은 아무래도 새길수가 없어 다시 말했다.

《아니 그렇게 낯빛이 굳어가지고야 어떻게 공작을 하겠소? 참 금숙동무가 이럴줄 몰랐구만.》

《그런게 아니요.》

하고 장경수가 방금 리룡철이에게서 빼앗은 비수랑, 증명서따위 소지품을 성림에게 넘겨주며 그답지 않게 심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지방조직에 가서 공작할 임무만 받은게 아니라 사실은 장군님의 부탁도 받고 간단말이요.》

《부탁이라니? 아니 장군님께서 하시는 일에 무슨 과업이 따로 있고 부탁이 따로 있단말이요? 장군님의 말씀이면 그게 그대로 우리의 혁명임무이지.》

《그러게말이요.》

하고 장경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사사로운 부탁이라고 하시면서 신양광산에 가서 한태혁의 누이동생을 찾아오라고 하셨단말이요.》

《뭐 한태혁의 누이동생!》

성림은 외마디소리로 되묻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신양광산이라면 자기가 있던 남사갱에서 10리안쪽에 있던 광산이다. 태혁이가 살아있을 때 그가 은근히 신양광산 이야기를 물은적도 있고 거기에 누이동생을 두고 왔다는 말을 한적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리운 조국땅에 와서 왜 그 생각을 못했는가.

《그래서 금숙동무를?···》

성림이가 떨리는 소리로 말하자 금숙이는 마침내 무릎우에 놓인 자그마한 보짐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달비를 들이고 쪽진 머리가 흔들리면서 피마주기름냄새를 풍겼다.

성림은 깊숙이 고개를 떨구었다. 조선혁명이 사령관동지의 인간에 대한 위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였다는 생각이 다시는 드놀지 않을 확신에로 승화되는것을 스스로 느낄 때 성림의 눈귀에도 가는 이슬이 배여나왔다.

성림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기는 신양광산 바로 옆굴에서 일했지만 한태혁이의 누이동생 생각을 못했다고 허심하게 말하자 금숙이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난··· 사실 태혁동무때문에 내가 동정을 받는다는것이 부끄럽고 송구해서 견딜수가 없어요. 나는 남몰래 우느라고 했지만 내 얼굴은 얼룩져보였던거예요. 그런 꼴을 장군님께서 보시고 걱정하시던것을 생각하면 장군님의 그 큰사랑앞에 너무나 송구해서 얼굴을 들수가 없어요.》

재영이도 심란한 얼굴로 앉아서 이제는 퍼그나 멀어진 청봉의 하늘을 바라보며 어른같이 석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이제는 그치라요. 이제 성림동무가 가서 우리를 만났다고 보고를 드리면 꼭 어떻게 하고들 가던가고 물으시겠는데 찔찔 짜면서 가더라고 하면 장군님께서 좋아하시겠어요.》

《이녀석 말버릇 봐라!》

장경수가 재영의 무릎을 철썩 치며 말했다.

《그만두라요. 자꾸들 그러니까 나두 마음이 좋지 않아서 그래요. 녀자 혼자 울어도 모르겠는데 나까지 울상을 짓고 다니면 우리 공작은 영낙없이 실패란말이요.》

《하기는 재영이 말이 옳아. 금숙동무, 이제는 눈물을 거두라구. 그리고 친정나들이 갔다오는 새각시답게 한번 아장아장 걸어보라구, 자 성림동무, 이런걸 가서 보고드려주게.》

장경수의 너스레에 네사람의 얼굴은 비로소 활짝 개였다.

금숙이는 치마말기에서 수은이 좀 벗겨진 동그란 손거울을 꺼내여 들여다보며 머리를 다듬었다. 단발한 머리라 아무래도 머리단장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성림이는 새끼손가락을 까부리고 귀밑머리를 달비밑으로 정성스레 찔러넣는 금숙의 모습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형수님, 그럼 잘 다녀오시우.》

성림은 오래간만에 이런 롱담을 하며 풍산으로 떠나는 일행과 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