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9

 

9

 

천고의 밀림속에 밤이 깊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고 노래하던 대원들도 이제는 다 잠들었다. 하기는 오늘 로정이 간단치 않았다. 가슴에 안았던 흥분도 컸다. 그래서 밤을 새우며 노래할것 같더니 그믐달도 기울자 마침내 조국의 향취를 풍겨주는 풀밭에 볼을 대고 잠들어버렸다.

사령관동지께서도 고깔불빛에 비쳐보시던 지도를 접으시였다. 두개의 습격조는 이미 떠나갔다. 이제는 필요한 군사적조치를 다 취하시였다. 그래서 그런지 지도를 들여다보시면 등고선과 산줄기, 강줄기 같은것이 아니라 그리웠던 조국인민들의 생활화폭이 그대로 군용지도우에 펼쳐지는것이였다. 줄당콩더기 늘어선 동구길을 들어서면 매질을 한것 같은 마당이 있고 동기와지붕우에 박꽃이 주렁진 귀틀집이 있다. 아니다, 지금은 이른봄이라 씨붙임도 할지말지 한데 박꽃은 아직 없을것이다. 오히려 겨우내 쌓여있던 눈이 녹아내리면서 썩은 동기와짬으로 잡초가 돋아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차 그런 생각은 지워지고 또다시 빨간 고추를 널어놓기도 하고 제비둥지가 달린 처마끝에 씨강냉이를 매달아놓기도 한 철을 초월해버린 풍경이 떠오르는것이였다. 생각에 따라 그렇게 집모양, 동네모양은 달라져도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한모습으로만 그려지시였다. 부지런하고 마음씨 어진 할아버지들의 주름진 얼굴, 물레질에 손바닥이 갈라지고 베매는데 목이 다 쉬여버린 할머니들,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이를 달래다달래다 울어버리는 아낙네들- 번갈아 허공중에 떠올라 무엇인가 호소하고 애원하는 그 얼굴들을 그리실 때 장군님의 가슴은 그리움에 젖어드시였다.

《난 몰라, 난 몰라. 삼촌이 그랬는데뭐.》

방금까지 고깔불을 지키며 졸던 상철이가 어느새 모로 쓰러져서 잠꼬대를 한다. 솜털이 보르르한 도톰한 입을 벌리고 해죽해죽 웃는다. 삼촌과 장난질을 하다가 들킨 꿈을 꾸는가? 그에게는 이미 부모도, 형제도, 삼촌도 아무도 없다. 그래도 조국의 품에 안기니 고향집에 돌아온것만 같아서 삼촌과 함께 지내던 그 시절의 꿈을 꾸는것인가.

사령관동지께서는 상철이를 편안히 불무지곁에 눕히시고 담요를 덮어주시면서 이윽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어느새 웃음은 사라졌다. 아까 불무지를 손질하며 우리는 언제 마을에 들리느냐고 검질기게 캐묻더니 이제 또 무슨 꿈을 꿀것인가.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용히 일어서시여 풍바깥으로 나서시였다. 싸늘한 5월의 밤공기가 가슴에 스며든다. 하늘을 쳐다보시니 그믐때라 백사장의 모래를 쥐여뿌린듯 별도 많았다. 그 모든 별들이 저마다 할말이 있고 여쭐 사연이 있다는듯 눈을 깜빡거린다.

그것들이 모두 눈물을 글썽히 담고 바라보는 인민들의 눈동자같기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찬이슬 내리는 숙영지를 거니시였다. 잠든 전사들을 깨울가봐 소리없이 풍들사이를 걸어가시던 그이의 발걸음은 독립대대 숙영지를 좀 지나서 주춤 멎어서시였다. 웬 대원이 풍과는 퍽 떨어진 외딴 이깔나무그루에 등을 대고서서 하늘을 쳐다보고있었다.

어둠속에 잠시 살펴보시니 리성림이였다.

조국의 품에 안기여 잠들수 없는 사연이 많을 동무였다. 더구나 오늘 정찰에 나가 가까왔던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니 충격이 클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성림이와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싶으시였다. 그의 심정도 들어보고 그가 본 인민들의 생활형편에 대해 간접적이나마 더 좀 구체적인것을 알아보고싶으시였다. 아직 부대행동의 성격으로 보아 사령관동지자신께서 직접 인가에 들리시기는 당분간 어려울것 같으시였다. 그것이 단 며칠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그리워하던 조국인민들과의 상봉을 미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실 때 참을수 없이 안타까우시였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피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가까운 목재판에서 도끼소리를 듣고 찾아온 로동자를 몇사람 만나보셨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다가가시니 성림이는 놀라서 돌아섰다. 그가 소리칠듯 하기에 미리 손을 들어 제지하신 사령관동지께서는 낮게 말씀하시였다.

《나요, 왜 혼자 나왔소?》

《아, 사령관동지!》

《목소리가 너무 크오. 그래 왜 혼자 나왔소? 잠이 오지 않소?》

성림은 고개를 떨구더니 머뭇머뭇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잡으시고 더 좀 멀리 숙영지를 벗어나시였다.

《나도 잠이 오지 않소. 동무도 잠이 오지 않아서 나왔겠지?》

《그렇습니다. 암만해도 잠들수 없는데 자꾸 돌아누우니 옆사람을 깨워놓을것 같아서···》

《그건 그렇소. 잠든 사람들의 한복판에서 잠들지 못하고 뒤챈다는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요. 내가 그전에 지하공작을 할 때 변장을 하고 객주집같은데 들리면 모두 태평으로 코를 고는데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통 잠들수 없지··· 그럴 때는 애를 먹었소. 자, 여기 앉아서 이야기나 해봅시다. 여기쯤 나앉으면 아무도 모를거요.》

사령관동지께서는 거밋하게 누워있는 진대통을 가리키시며 성림이의 어깨를 눌러 먼저 앉히시였다.

성림이는 어쩐지 사령관동지의 말씀이 가슴에 스며드는것을 느끼면서도 그이께서 다 지새여가는 이밤중에 무슨 이야기를 하시자는것인지 짐작을 못하여 어리둥절하였다.

《내가 이제 오다가 보니 김준삼동무는 한잠이 들었더군. 낮에 특무놈을 놓쳐버렸다고 그렇게 분해하더니 벌써 다 잊어버린 모양이요.》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성림이곁에 허물없이 걸터앉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정말 성격이 좋습니다. 날카로울 때는 칼날같은데 누그러지면 꼭···》

성림이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쭈밋거렸다.

《누그러지면 떡반죽같지. 나도 짐작이 가오. 성림동무도 혁명을 하자면 성격이 그런 맛이 있어야 해.》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성림의 어깨를 쓰다듬으시였다.

《그래 오늘 정찰에 나가서 본 이야기를 좀 해보시오. 낮에는 정찰보고다보니 사실만 골라서 내놓았겠는데 여기는 아무도 없고 시간도 푼푼한 셈이니 본것, 들은것 다 이야기를 해보시오.》

《저 중요한것은···》

하고 성림은 벌떡 일어났다.

《자, 이러지 말고 앉아서 말하시오.》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급히 성림의 어깨를 눌러앉히며 말씀하시였다.

《그래 중요한것은 다 이야기했소. 경찰, 군대의 배치와 이동상태도 이제는 대체로 짐작이 가오. 낚시군으로 가장한 특무를 한놈만 잡고 한놈을 놓쳐버린것도 너무 분해할것이 없소. 우리가 미리 그럴줄 알고 습격조를 내보냈는데 이제 도망간놈의 보고까지 들어가면 효과가 더 클수 있소. 특히 경비도로의 개통을 앞두고 군대나 경찰들도 얼씬 못하게 엄중단속한다는것이 매우 흥미있소. 흠, 총독이나 경무국장놈이 내려오기를 기다린다고 했지. 아주 흥미있는것을 알아냈소.》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성림의 어깨를 쓸어보시면서 말씀하시였다.

《동무들도 느꼈겠지만 이건 아주 흥미있는 일이요. 그러니까 그놈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아도 다 알수 있소. 요점은 그게요. 그러니 이제부터 중요치 않다고 하는것을 말하란말이요. 나한테는 우리 인민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것이 따로 없소.》

사령관동지께서는 갑자기 어조를 낮추어 말씀을 이으시였다.

《성림동무, 터놓고 말하면 나는 우리 인민들의 일이 궁금해서 그러오. 어떻게들 사는지, 우리가 이태만에 조국땅에 온셈인데 그지간에 사람들의 생활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러니 말이요. 우선 동무들이 인민들과 접촉하던 이야기부터 빠짐없이 있는대로 다 말해보시오.》

성림은 비로소 사령관동지의 말씀의 뜻을 새겨들었다.

그는 잠시후 떠듬떠듬 말하기 시작하였다.

《중대장동무가 처음에 그 순사놈을 업어넘기기 위해 비위를 맞추어주고 나중에는 서로 어깨까지 두들기면서.···》

《준삼동무가 그렇게 푸접이 좋소?》

사령관동지께서는 본시 그런줄 알고 내보내시였지만 새삼스러운 흥미를 느끼고 물으시였다.

《어떻게 구슬려놓았는지 나중에는 그놈이 불평을 다 했습니다. 에- 경찰관이 십장인가, 나는 못해먹겠다, 너나 다 감독하라, 이러면서 저는 뒤전에 물러나앉고 중대장동무를 무슨 반장같은것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윤원구네랑 처음에 좋지 않게 보았습니다.》

《그렇겠지, 왜놈한테 알랑거린다고 생각했겠지.》

사령관동지께서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시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신사동에서 왔다는 청년은 일부러 나무를 중대장동무 있는데로 넘겨뜨려서 다칠번했습니다. 워낙 중대장동무가 몸이 날래니 무사했지 다른 사람같으면 다쳤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설복을 해도 귀를 잘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대장동무는 그 순사놈을 멀찌감치 밀어내놓고 판을 가르고 나서더니 보천보전투이야기를 꺼내더군요.》

《그래 반응이 어땠소?》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은 저도 놀랐습니다. 거기 별로 나쁜놈같은것은 없었지만 불과 10m도 못되는곳에 왜놈순사를 두고 그런 말을 꺼낼줄은 몰랐습니다.》

《준삼동무가 그만한 판단이야 못하겠소. 다 타산이 있었겠지. 그래 놀라더란말이지?》

《눈들이 둥그래졌습니다. 중대장동무는 자기가 유평에서 그 소리를 들었는데 가만 보니 왜놈들의 말은 모두 거꾸로 들으면 랑패가 없더라는것입니다. 왜놈들이 유격대를 다 없앴다고 떠들어대자 보천보를 들이쳤는데 요즘 왜놈들이 또 와짝 혁명군을 다 없앴다고 떠드는것을 보면 또 그때처럼 유격대가 쳐나올것 같다, 그래서 저놈들이 경비도로공사를 이모양으로 다그치지 않느냐, 이렇게 말을 떼놓자 사람들이 중대장동무곁에 줄줄 묻어다니게 됐습니다. 그다음에야 가슴깊이 품고있던 말을 시작했습니다. 정말 낮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인민들은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사령관동지께서 보천보를 치실 때처럼 다시 나오실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고있습니다.》

이야기는 차츰 생활적인데로 들어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럴수록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윤원구는 주름살이 늘고 퍽 늙었습니다. 아직 마흔밖에 안됐는데 얼핏 보면 늙은이같습니다.》

《그러니까 성림동무와 헤여질 때 그 사람이 서른대여섯 됐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사이 아이를 둘이나 죽였다니 겉늙을수밖에 없지. 그런데 데리고가는 아이가 또 앓는다면서?》

《뭐 자꾸 개핀다고 합니다.》

《개피는데는 아편이 약인데··· 미리 그런것을 알았으면 우리 군의한테 좀 얻어가지고 갈걸 그랬습니다. 앓는 애를 데리고 어떻게 천여리길을 그 고생을 하면서 가겠소?》

《···》

성림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사실 그는 벌목할 때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앓는 사람이 그 아이만이 아니였습니다.》

이윽고 성림이는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었다.

《그 류랑가수라는 사람도 기침을 쿨럭쿨럭하고 유곡에서 장보러 간다고 바구니를 몇개 결어가지고 떠난 로인은 허리증이 심하여 간신히 걸음을 옮겨놓는 형편인데 그렇게 강제로 부역에 내몰렸습니다.》

《앓는 사람이 왜 많지 않겠소.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그우에 그런 비인간적인 학대와 굴욕을 받으면서 고역에 시달리니 어찌 앓지 않을수 있겠소.》

사령관동지께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며 일어서시였다.

어느새 은하수도 숲정수리우에 낮추 드리워 길게 비껴갔다. 밤이슬에 사령관동지의 군복은 축축히 젖었다.

성림이는 몇번이고 우등불곁으로 가시자고 권하였으나 그이께서는 그냥 화전촌이며 처서판사람들의 이야기를 캐여물으시였다.

조국진군작전의 웅대한 구상을 품고계시는 사령관동지의 가슴속에 화전촌의 씨붙임이며 잇지 못한 지붕이며 하는것들이 그처럼 큰 비중을 가지고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있는것을 커다란 경탄속에 느낀 성림은 망국의 설음에 허덕이는 우리 인민이 김일성장군님을 해와 같이 따르며 목마르게 기다리는 진정한 원인을 새삼스럽게 깨달은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