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7

 

7

 

이무렵 삼지연쪽에서 두사람의 행인이 신작로를 따라 걸어오다가 굽인돌이어방에서 벌어진 참경을 먼발치서 띠여보고 얼른 길가의 덤불속에 숨어서 동정을 엿보고있었다.

둘 다 후리후리한 키에 날파람이 있게 생겼는데 나이 좀 들어보이는쪽이 더 검실검실하고 가로찢어진 눈이 유난히 빛을 뿌렸다. 척 보는 인상에 벌써 갖은 풍상을 다 겪어서 웬만한 일에는 눈섭도 까딱 안할 그런 느낌이였다. 몸을 봐도 굵직굵직한 골격이 늘씬늘씬한게 탄력에 넘쳐서 마치 살과 뼈로 되여있는것이 아니라 강철로 빚어놓은것 같았다.

《에익! 내 저놈을 쏘아버리겠습니다.》

젊은쪽이 얼굴이 해쓱하게 질려서 입술을 푸들푸들 떨며 손을 괴춤으로 가져갔다.

《성림동무, 정신이 있소?》

눈이 가로찢어진 사나이가 얼른 성림의 후들거리는 손을 꽉 움켜잡고 낮게 속삭였다.

《임무를 잊어버렸소? 또 무슨 재구를 치자고 이러오. 손을 싹 거두오.》

이처럼 엄하게 상대를 눌러놓은 사나이는 비분에 글썽거리는 성림의 눈을 이윽히 들여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참아야 하오. 더 큰 복수를 해야 할게 아니요. 그런데 왜 그렇게 흥분했소? 동무야 왜놈들의 행패를 처음 보는것도 아니지 않소? 저기 누가 아는 사람이 있는게 아니요?》

성림은 잠시 고개를 수굿하고있더니 정찰조를 책임진 김준삼을 바라보며 애원조로 말했다.

《중대장동무, 내가 흥분한것은 아는 사람이 봉변을 당하기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저기 저 고리멜빵을 지고있던 사람은 윤원구라고 전에 내가 고진동광산에 있을 때 잘 아는 사람입니다. 가족들 걱정때문에 운동에는 관계하지 않았지만 사상동향은 괜찮은 사람입니다. 고진동에서도 살길이 막혀 허우적거리더니 종시 어디로 또 흘러가는 모양이군요. 그런데···》

하고 성림은 준삼에게 잡힌 손을 슬그머니 뽑아내며 짧게 한숨짓고나서 이었다.

《이제 말하는걸 듣지 못했습니까. 저까짓 왜놈순사 한놈이 무엇이길래 저런놈에게 저 숱한 사람들이 코를 꿰여 끌려다닌단말입니까. 저 발버둥치는 아이를 보십시오. 내가, 내가 조국의 이런 현실을 물론 처음 보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난 겨울에 바로 이런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의무와 신념을 똑바로 새기지 못해서 과오를 범한 내가 아닙니까. 이제 정신을 차리고 짓밟히는 조국의 현실을 보니 참을수 없습니다. 총을 차고있는 나까지 무엇때문에 참는단말입니까. 중대장동무, 저놈을 제낍시다. 총소리를 내지 않고도 감쪽같이 해치울수 있습니다.》

《성림동무, 거 참 야단났구만.》

하고 준삼은 이제는 별로 말릴 생각도 없다는듯이 돌아앉아 길가를 살폈다. 신작로 굽인돌이에서는 이미 나무치는 작업이 벌어져서 밸풀이겸해하는 도끼질소리와 신세타령처럼 쓰르릉거리는 톱질소리가 울려오고있었다. 요시다는 때마침 유곡쪽에서 나타난 로인 두사람을 또 억지다짐으로 나무찍는데 끌어넣느라고 게사니청을 돋구고있었다.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야 준삼은 말을 이었다.

《성림동무, 제 밸이나 풀고 기분이 나는대로 돌아치는것이 혁명이 아니요. 지난 겨울의 행군을 생각해보오. 사령관동지께서 바로 우리 조국의 이런 참상을 구원하시려고 그 험한 길을 헤쳐오시지 않았소. 그래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면서 그 시련을 이겨냈소? 동무는 참을성이 없는게 야단이야.》

성림이는 고개를 푹 떨구고앉아 숨을 몰아쉬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그건 사실입니다. 나는 지난 겨울을 끝내 견디여내지 못했지요. 절벽으로 둘러막힌 후방밀영에서 그 엄광호라는놈의 독설과 고문만 겪다나니 이제는 우리 혁명의 앞길이 정말 막혔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 아무것도 귀중한것이 없고··· 그래서 그놈이 요구하는대로 자백서라는것도 써냈습니다. 이런 더러운 행동을 한 내가 분노에 대해 말한다는것부터가 주제넘습니다.》

《동무가 왜 주제넘는단말이요? 이 동무가 점점 한심한 소리 하는구만. 내 이담에 말하자고 했는데 안되겠소. 저리로 좀더 깊이 들어가기요. 내 동무에게 할 말이 있소.》

김준삼은 성림의 소매를 툭 건드리더니 나무사이로 소리없이 몸을 빼여 숲속 깊이로 들어갔다. 성림이는 잠시 주저하다가 뒤를 따랐다. 신작로와 오솔길에서 퍽 떨어진 으슥한 나무그늘에 들어가서야 김준삼은 성림을 진대통우에 앉히고 저는 서서 서성거리더니 짐짓 엄하게 말을 꺼냈다.

《내 솔직히 말해서 사령관동지로부터 동무가 이 일대 지형에 밝으니 정찰에 데리고가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다른 사람과 바꿔달라고 제기했댔소. 내 동무를 잘 모르기는 해도 짐작에 꼭 이러루한 일이 있을것 같더란말이요. 그런데 사령관동지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오? 그 동무가 한번 과오를 범했다고 그러는가? 나는 그 동무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개조하려고 애쓴다는것을 믿는다. 반절구전투때도, 구가점전투때도 그 동무는 잘 싸웠다, 그 동무가 바탕이 나쁜 사람이 아니다, 과거에도 잘 싸웠고 또 지난 행군때 과오도 범했지만 전우들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말씀하셨소. 참 성림동무, 7도구 못미쳐서 눈구뎅이에 쓰러진적이 있소?》

준삼은 갑자기 활기를 띠며 성림의 옆에 나란히 앉아 물었다.

《있지요. 아주 눈구뎅이에 묻혀서 얼어죽을번했습니다. 그런걸 김정숙동무가 까맣게 멀어진 행군대렬에서 되돌아와서 나를 구해주었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사령관동지께서 아신단말입니까?》

성림은 놀라서 준삼이에게로 마주 돌아앉아 다급하게 물었다.

《아시오. 그것뿐만아니라 성림동무가 거의 의식을 잃게 되여가지고도 적탄이 날아오자 김정숙동무를 막아주었다고 하시더군.》

《내가요?》

성림은 벌떡 일어났다.

《나는 그런 일 없습니다. 다만 적탄이 날아오는데 김정숙동무가 나때문에 거기 서있기에···》

《아마 김정숙동무가 사령관동지께 다 말씀드린것 같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정말 자기를 부끄럽게 생각했소. 나야 입으로는 전우들을 사랑한다고 떠들지만 실지 동무들에 대해 깊이 알고있는것이 없단말이요. 그때 사령관동지께서는 말씀하시였소. 이렇게 바탕이 좋은 동무도 혁명투쟁속에서 부단히 단련하여 우리 혁명에 대한 신념으로 튼튼히 무장하지 못하면 과오를 범하게 된다, 그런것만큼 이런 동무들을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기 힘을 믿고 혁명을 더잘 해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단련할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어야 한다, 조국에 와서 조국인민들이 살아가는 형편도 보고 그속에서 억척만번 죽더라도 끝까지 혁명을 하겠다는 각오도 다지고 또 자기 힘에 대한 신심도 가지게 만들어야 한다- 사령관동지의 이런 말씀을 듣고 나는 진심으로 자기비판을 했소. 그래 성림동무, 동무가 사령관동지의 이렇게 큰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소?》

성림은 말을 못하고 어깨만 들먹거렸다.

김준삼은 머리를 가슴에 묻고 깊은 회오에 잠긴 성림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진대통에 걸터앉은채 석쉼하게 갈린 목소리로 뜨직뜨직 말했다.

《우리는 그이의 사랑을 다 헤아릴수도 없고 그이의 구상을 다 짐작할수도 없소. 그러니 우리는 무슨 일이든 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신대로 꼭 그대로 집행해야 한단말이요.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촌순사 한놈때문에 소동을 일구어서야 되겠소.》

성림은 여전히 말을 못하고 서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보이지도 않는 서남쪽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미 사령관동지께서 도착하시여 자기들을 기다리실지도 모르는 청봉이 그쪽에 있었다.

《사령관동지!》

성림은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부르고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 그를 지켜보던 준삼은 본시가 쾌활한 사람이라 금시까지 엄숙하던 얼굴에 밝은 웃음을 띠우고 성림의 어깨를 툭 쳤다.

《자, 알아들었으면 임무수행에 달라붙어야지. 사령관동지께서는 동무의 참회를 바라시는것이 아니라 진정한 혁명가가 되기를 바라신단 말이요.》

《알겠습니다.》

성림은 삑 돌아서서 갈린 목소리지만 힘차게 대답했다.

《우리도 도로에 나가잡니까?》

《그렇소. 기회가 마침 좋지 않소? 경비도로때문에 나온 순사놈도 있겠다, 아는 사람도 있겠다, 뭘 알아내는데는 안성맞춤이요. 보오, 저놈들이 놀아나는것만 봐도 뭐가 든든히 있기는 있는 모양이요.》

두사람은 일부러 신작로로 해서 벌목현장으로 코노래를 슬슬 부르며 다가갔다.

요시다는 한참 악을 쓰며 사람들을 강제로 일에 붙여놓고보니 이제는 어지간히 맥이 나는지 찍어넘긴 통나무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담배를 끄스르고있었다.

등뒤로 다가간 두사람은 일부러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나리님, 문안드립니다.》

《누구얏?》

요시다는 화닥닥 놀라 뛰여일어났다.

《수고를 하시는군요. 저희들은 품팔이군인데 어디 일자리가 없을가 해서 돌아다니는판이올시다. 여기서 오늘 밥값이나 좀 벌게 해주십사고 해서 이렇게···》

《일공군인가?》

요시다는 두사람을 아래우로 훑어보며 물었다. 보매 둘 다 힘꼴이나 씀직한게 이런판에 부려먹기는 제격일것 같다. 그러나 일부러 거드름을 부리며 제빠두해서 물었다.

《예, 일공군입지요.》

하고 김준삼은 나긋나긋하게 대답했다.

《일공군노릇을 하고파서 하나요. 실은 우리들도 저 히가시목재판에서 똑똑한 일자리를 가지고있었습지요. 그런데 대차를 타고 가다가 내림받이에서 가 먹지 않아 두어차판 굴려팽개쳤소다. 이거야 신수놀음이지 나나 이 사람이 제 죽고싶어서 그노릇을 했겠나요. 그래도 구미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습디다. 손해배상을 시켜도 어찌 톡톡히 시키는지, 10년동안 고향 가서 장가들겠다고···》

김준삼의 이야기가 길게 늘어지자 요시다는

《아, 아 알겠다. 무슨 말이 그리 긴가?》 하고 손을 내저었다.

리성림이도 놀랐다. 생판 있지도 않는 이야기를 앉은 자리에서 꾸며대는데 그러고보면 실지 그러루한 이야기가 준삼의 지난날에 있었던게 아닐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수룩한 촌순사놈은 세마디안팎에 김준삼의 줌안에 들고말았다.

《좋아, 좋아, 그럼 오늘 여기서 나무나 찍어봐라. 일이나 잘하면 내가 이시가와구미나 호리모도구미에 넣어주겠다. 거기 십장, 감독 다 나하고 형님 동생하는 사이다.》

그러면서 요시다는 지금 진행하고있는 벌목공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아울러 여기에 동원된 사람들이 다 《불온분자》이기때문에 잘 감시하라고까지 하였다.

김준삼은 어느새 십장격이 되였다. 그는 공작에 필요할가 해서 주머니에 넣고나온 로획품 《미도리》담배를 요시다에게 권하면서 지금 혜산경찰서에 《특설토벌본부》가 들어앉고 래일이나 모레쯤 총독이 아니면 경무국장이 경비도로개통 겸 국경경비상태를 순찰하러 내려온다는것까지 알아냈다.

그러는 과정에 김준삼은 윤원구네 일행을 비롯한 강제부역에 동원된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

《자, 바싹 다궂자구요. 갈길이 급하다고만 말고 일을 빨리 끝낼 궁리를 하잔말이요.》

김준삼이 이처럼 열을 올리며 베여넘긴 통나무를 둔장질해서 숲속으로 굴리는데 별안간 찌륵찌륵하고 가죽포대 찢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다음순간 솨- 하고 바람소리를 일구며 통나무가 면바로 준삼의 정수리를 향하여 넘어왔다. 준삼은 둔장대고 뭐고 집어팽개치고 몸을 날렸다. 이깔나무가지가 잔등을 후려치더니 질쩍한 땅바닥에 태질을 하며 넘어졌다.

《무슨짓이야? 사람을 못봐!》

김준삼이 소리치자 나무를 떠넘긴 정섭이가 도끼를 찾아들고 수건으로 목덜미를 문지르며 곱지 않게 눈을 치떴다.

《여기 나무는 눈깔이 없어서 그렇소다.》

사람이 상하는가싶어 모두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던 윤원구며 여러 부역군들도 정섭의 비뚤어진 대답이 우스워서 소리내여 웃었다. 준삼이도 웃고말았다. 그러면서 심술을 피우는 그 청년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얼마후 담배들을 한대씩 피우자고 한곳에 몰켜앉았을 때였다. 사람들은 준삼이가 꺼림직해서 일부러 멀찍이 돌려놓고 피해앉았는데 그는 청하지도 않는 곳에 일부러 찾아와서 한가운데를 쩍 가르고 나앉았다.

《그래 임자가 나를 왜놈앞잡인가 해서 편포짝을 만들자고 한것 같은데.》

하고 준삼은 정섭이의 무릎을 철썩 치며 꺼리낌없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같은 조선사람끼리 그럴것이 아니라 해볼테면 저런 왜놈하고 해봐야 할게 아닌가.》

《왜놈하고는 못해볼줄 알고 그러오!》

정섭이도 만만치 않게 맞받아쳤다.

《왜놈하고 해본다는게 그따위 밸풀이나 해서 소용이 있는가, 해볼테면 전년에 김일성장군님의 혁명군이 보천보를 들이치듯 그렇게 본때있게 해야지 소용이 없단말이야.》

사람들은 그 한마디에 눈이 둥그래졌다. 모두 10여m 떨어진 곳에 두다리를 뻗치고앉아 건들건들 졸고있는 요시다쪽을 돌아보았다. 이게 무슨 사람이 그렇게 비위를 돋구어주더니 이제는 또 이모양으로 조심성이 없는가 하는 눈치들이였다.

준삼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야 어떻든 제 할말은 하고싶은대로 다했다.

《지금이 꼭 그때 비슷한 땐데··· 그때도 왜놈들이 조선사람들을 다 제놈들의 노예로 만들고 조선의 명줄을 아주 끊어놓자고 할 때 김일성장군님께서 강을 건너오시지 않았소. 지금이 꼭 그때 비슷하단말이요. 지금이야 그때보다 더 하지요. 지금 조선사람치고 어디 사람 사는것 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있소. 죽지 못해 살아가지. 조선은 아주 망하게 된판이란 말이요. 이런 때 조선의 혁명군이 쳐나온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래 어디서 김일성장군님의 유격대에 대한 소식을 더러 들어본게 없소?》

《우리는 그런 소리 들은게 없소.》

윤원구가 아직 준삼에 대한 의심을 풀지 못하고 단마디로 잘라매였다.

《허, 이 형님이 아직 나를 믿지 못하시는 모양이군. 그런게 아니라 나도 세상 살아가는 일이 하도 답답해서 여러분네들과 터놓고 이야기를 좀 해보자고 일부러 저놈을 얼려넘긴거요. 내가 저놈의 앞잡이는 아니란말이요.》

준삼이가 소탈한 목소리로 이처럼 솔직하게 말을 하니 어쩐지 사람들의 생각에도 앞잡이치고는 잘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느껴졌다. 림시 발뺌으로 순사를 업어넘긴것이라면 그의 말을 들어볼만도 하다. 어쨌든 그의 입에서 김일성장군님의 이야기가 나왔다는것은 희한한 일이 아닌가.

이래서 준삼이가 사람들의 가슴에 맺혀놓았던 불신의 매듭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풀어놓았을 때는 리성림이 이미 구면지기들과 인사를 나눈 뒤였다.

성림이가 광산을 떠난 뒤에 온 필네와 김인수를 내놓고는 윤원구네 일행이 모두 성림이를 잘 아는 처지였으나 요시다의 눈길이 따르고있었기때문에 마음놓고 회포를 나눌길도 없었다. 같이 톱질을 하면서, 혹은 베여넘긴 나무를 둔장질하면서 몇마디 인사를 주고받았을뿐이였다. 윤원구의 안해만은 준삼이의 롱간질에 넘어간 요시다가 아이를 보도록 내버려두었기때문에 그 어방의 나무에 도끼질을 슬렁슬렁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그런데 곱단이랑은 다 어떻게 하고 아이가 둘밖에 없소? 그 젖먹이는 내가 못보던 아인데···》

성림의 말에 아낙네는 쿨쩍거리기부터 하였다.

《야학선생이 간뒤로 아이를 둘씩이나 떼웠다우. 하나는 곱밸을 앓아서 떼우고 큰놈은 광차에 깔려죽었다우.》

《아니 진수가 광차에 깔렸단말이요? 그놈이 장난이 세차더니 종내···》

《장난이나 치다가 죽었다면 이 에미 가슴이 덜 아프겠소다. 겨우 열셋에 난걸 푼전이라도 벌어보자고 이 미련한게 광차 미는데 데리고 나갔지요. 허기가 져서 배들배들하는걸 끌고다녔더니 하루는 그 남사갱 올리굴에서 광차가 아래로 짐이 쏠리는바람에 같이 뿌리웠는데 이 죄많은것은 피여나고 그 애는 종시 숨을 거두었소다.》

성림은 힘껏 도끼를 내리쳤다. 손바닥같은 도끼밥이 찍혀나갔다.

《그래 만주에 가면 살길이 열린답디까?》

울분에 못이겨 한참 숨을 씩씩거리며 도끼질을 하던 성림은 몇참 못가서 나무가 넘어지게 된것을 보고 허리를 폈다. 이처럼 세차게 도끼질을 해서 나무가 넘어져버리면 일자리를 옮겨야 되고 따라서 이 아낙네와 이야기를 더 나눌수 없게 될것이였다.

《금천동에 노다지바람이 불었다우다.》

《금천동에 노다지바람이 불면 아주머니한테 금덩어리를 나누어주겠답디까?》

《그래도 리호철이는 거기에 가기만 하면 한밑천 잡기는 어렵지 않다는데요. 우리 진호 아버지는 이제는 술, 담배 다 끊었소다.》

《허허허.》

성림은 너무 기가 차서 한참 속궁근 소리로 웃다가 물었다.

《대체 그 리호철이란 작자가 누구요?》

《여기 군산림주사 하다가 화룡의 광주가 됐다는데 권세가 뜨르르하답디다. 륙혈포도 차고다닌다오다. 참 그 남사갱의 살짝곰보덕대 모르겠소다? 그 살짝곰보의 동생이라구 해요.》

《남사갱의 살짝곰보? 리룡철이말이요?》

《옳소다. 그 살짝곰보가 돈 떼먹고 달아났다가 붙잡혀서 징역을 산다더니 웬걸 이제 오면서 보니까 차가수물동가에서 한가스레 낚시질만 합디다. 동생이 권세가 있고 돈이 있으니 그 살짝곰보도 이제는 신수가 훤했습디다.》

《개같은놈들, 이제는 기왕 강을 건느게 됐으니 할수는 없지만 그놈들 덕에 조금이라도 신수가 펴지려니 생각지 마시우. 그저 어디 가서든 제 주먹 하나를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조선사람 못사는게 다 나라가 없는탓이란말입니다.》

《글쎄 전에도 야학선생이사 늘 그렇게 말하지 않았소다? 허지만 우리 조선이 언제 독립을 하겠다구 그날만 기다리고있겠수.》

《그렇게 기약 없는 일이 아닙니다. 아주머니, 맥을 놓지 마시오. 이제 머지 않아 좋은 소식을 듣게 될거우다.》

성림이가 진호 어머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동안 준삼이는 남정네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푸짐하게 벌려놓았다. 그는 일도 걸싸게 하였다. 도끼질을 해도 온 산판이 쩡쩡 울리게 해제꼈고 톱질을 할라치면 구수하게 흥부의 박타령을 불러넘기며 힘도 들이는것 같지 않게 쓰렁쓰렁 잘도 당겼다.

이제는 윤원구도 정섭이도 지어 김인수까지 그와 짝패가 되여 일하자고 들었다.

《세상이란 보기에 따라서 바로 뵈기도 하고 꺼꾸로 뵈기도 한단말입니다. 진펄에 살던 개구리가 금강산에 가서 허리를 쭉 펴고 일만이천봉을 바라보니 이게 웬일인가, 절승경개 이름높던 금강산이 자기네 진펄과 똑같더라는 이야기도 그게 다 눈알이 어디에 박혔는가 하는 문제란말입니다. 눈알이 바로 박히지 않으면 세상을 똑바로 볼수가 없지요. 지금 세상으로 말해도 자, 사방에 왜놈의 군대, 왜놈의 경찰, 왜놈의 말, 왜놈의 신문, 왜놈의 권세, 이런것만 보이고 조선사람 싸우는것은 보이지 않고 조선사람 힘도 보이지 않고 나중에는 제 몸에 붙어있는 이렇게 큼직하고 든든한 두주먹도 보이지 않거던요. 그래서 저따위 얼간같은놈앞에서도 벌벌 기게 된단말입니다.》

《그래 당신은 그 조선사람이 싸우는것을 어디서 봤기다 그런 소리 하우?》

윤원구는 철색도는 얼굴에 심각한 그늘을 짓고 김준삼에게서 어떤 진실을 파내보려고 끈덕지게 캐고들었다.

《참, 이 나그네가 말도 그럴듯하게는 하누만. 그러니 이 장대선이도 이 소라같은 제 주먹을 못보고 살아가는 셈이야. 허허허.》

장대선이는 아직도 준삼의 말뜻을 깊이는 새기지 못했지만 그 구수한 입담에 끌려들어 연신 턱을 끄덕거렸다.

《내가 조선사람 싸우는것 봤느냐구요?》

준삼은 윤원구의 소매자락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그래, 윤형은 저 15도구랑 반절구에서 왜놈들이 김일성장군님 부대에 되게 얻어맞았다는 소문을 못들었소?》

《아니, 그럼 그게 사실이요? 일전에 우리 토장에 다니는 말파리령감이 쉬쉬하며 그 비슷한 소리를 하더니···》

윤원구는 감질이 나서 바싹 다가들었다.

《이제 두고보시오. 김일성장군님 부대가 머지 않아 조선으로 쳐나오지 않나.》

준삼은 이렇게 사람들과 친해져서 그들의 어두운 가슴에 희망을 안겨주기도 하고 또 그들로부터 적지 않은 적정자료를 알아내기도 하였다.

요시다 역시 김준삼에 대해 대만족이였다. 그리하여 5m이상 치라는 벌목구역을 가까운곳만 적당히 치고 좀 떨어진데는 3m도 치나마나했지만 준삼이가 너스레를 떠는바람에 넘어가서 일을 아주 잘했다고 치하까지 하고 작업을 마감지었다. 김준삼과 성림이에게는 래일 농사동주재소에 찾아오면 자기가 꼭 일자리를 알선해주겠다고 거듭 약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