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6


 

6

 

윤원구네는 신작로까지 다가가지 못하고 안개비가 락수물이 되여 뚤렁뚤렁 떨어지는 커다란 봇나무밑에 엉거주춤 서성거리고있었다.

윤원구는 고리멜빵을 아예 벗어붙이고 척척한 나무밑둥에 기대앉아 담배를 피우고있다. 그래도 진호 어머니는 울지도 않는 진철이를 다독거리며 당장 떠날것처럼 임보퉁이가 지지누르는 목을 뽑아 신작로의 동정을 살피고있고 대선아바이와 춘길이는 책상다리를 하고 마주앉아 무엇인가 수군거리고있다. 김인수는 좀 떨어진 이깔나무줄기에 비스듬히 기대여서서 신작로를 쏘아보고있는데 그 여윈 볼이 가볍게 떨고있다.

《어떻게 된거예요?》

필네는 진호 어머니곁으로 다가가 입안의 소리로 물었으나 까맣게 탄데다 추위에 얼어들기까지 하여 더욱 앙상하게 보이는 그 녀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신작로를 눈길로 가리킬뿐 말을 안했다.

정섭이는 진호를 어머니곁에 내려놓더니 휘적휘적 신작로쪽으로 걸어간다.

《이사람아.》

대선아바이가 놀라 소리쳤다. 날카롭게 소리를 치면서도 그것이 신작로의 왜놈들과 경관들에게 들리지 않게 씹어삼키는 소리여서 높지 않은 대신 긴장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해주었다.

정섭이는 울상이 되여 어서 돌아서라고 다급하게 손짓하는 대선아바이와 춘길이를 돌아보며 알수 없다는듯이 고개를 기웃하더니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버렸다.

그가 선 곳에서 신작로까지는 불과 10m도 되나마나한 거리였다.

신작로를 내느라고 지난해가을에 찍어넘긴 크고작은 이깔나무들이 한절반 황이 든채 얼기설기 가려져있고 그것을 지나면 두어자폭으로 도랑을 쳐올린 석비레땅이 누렇게 드러나있다. 거기서 퍼올린 석비레자갈과 모래가 고르롭게 깔린 신작로-《갑무경비도로》는 방금 지나간 비에 축축히 젖어서 차분하게 뻗어있는데 그우에서 지금 한개 소대의 북선제지자위대와 자전거를 뻗친 경부보 그리고 그를 수행해온 순사사이에 옥신각신이 벌어지고있었다.

자위대대렬은 도로한복판에 멈추어서서 헤여지지도 못한채 저희들끼리 웅성거린다.

일제가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을 막는 한편 백두산기슭의 산림자원을 략탈하기 위하여 1937년에 조직한 이 북선제지자위대는 회사경비로 유지한다는것이 다를뿐 사실상 편제나 무장, 장비에 있어서 정식군대와 꼭같을뿐아니라 태반이 라남사단의 제대병들로 꾸려져있어서 전투능력이나 실전경험은 오히려 정규군보다 더 나은 능구렝이들의 무리였다.

《여보, 기무라상, 당신네 정 이러기요?》

자위대 소대장 스즈끼중위가 흰 장갑을 한손에 움켜쥐고 내흔들며 소리쳤다.

《소용없어, 소용없어. 정식군대도 통과시키지 말라는거야. 돌아가라구.》

경부보는 오만하게 팔을 내저으며 대렬을 짓고있는 자위대를 보고 소리쳤다.

《바쁘면 돌아가라는 속담도 모르는가.》

《아니 여보.》

하고 스즈끼는 경관의 팔을 잡아채며 주의를 자기쪽으로 끌었다.

《그래 당신은 유격대가 당장 강을 건늘 태세라는 통보도 못들었는가?》

《못듣기는 왜 못들어. 그 통보는 바로 내가 받아서 내가 자네네 중대장한테 전해준거야. 자네네 중대장이 지금 우리한테 와있단말이야.》

《혜산경찰서에?》

《그렇지 않구. 거기에 지금 도경찰부장각하도 나와계시구 75련대장각하도 나와계신단말야. 잔소리 말구 돌아가라구. 천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는가. 총독부에서 총독각하가 아니면 경무국장각하가 오늘래일 도착한다는거야. 뭘 알기나 하구 이래.》

스즈끼는 기무라의 입에서 연방 쏟아져나오는 어마어마한 직함들을 무표정하게 듣고있었다. 그 눈길은 《촌놈이란 할수 없군.》하는 조소를 띠고있었다.

말이 자위대 소대장이지 실상 헌병대의 끄나불인 스즈끼는 기무라가 요란하게 떠벌이지 않아도 오늘의 이 사태가 얼마나 중대한가 하는것을 짐작하고있었다. 가뜩이나 사방에 펼쳐놓은 전쟁형편이 어려운판에 조선인민혁명군이 기다리고있었던듯이 대거 춘기반타격으로 나와서 언제 강을 건너설지 모르는 형세이고보면 그 모든 어마어마한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드는것은 너무나 응당한 일일것이다. 다만 일반장교들과 경찰들에게는 아직도 이런 내막까지는 알려주지 않고있다. 그러니 얼뜨기같은놈들이 유격대가 37년 초여름처럼 쳐나온다 하고 떠들어대고있어도 그 사태의 중대성을 아직 다 알자면 아득히 멀었다. 아무리 경비도로라 하지만 한개 군과 군을 련결하는 도로를 개통하는데 총독이 나온다는것만 봐도 오늘날 조선인민혁명군의 움직임이 얼마나 큰 문제로 된다는것을 짐작할수 있겠는데··· 촌놈들같이···

그러나 어쨌든 자기네 자위대소대가 개통을 앞두고 깨끗하게 손질해놓은 경비도로로 경찰과 마찰을 일으키면서까지 그 모든 《각하》들을 앞질러 통과한다는것은 어느 모로 보나 적당치 못할것 같았다.

스즈끼는 흔연히 웃었다. 그는 장갑 쥔 손을 귀옆까지 슬쩍 들어올려 기무라에게 다 알아들었다는 뜻을 표시하고 돌아서는참 호기있게 구령을 쳤다.

《소대 차렷! 날따라 앞으롯!》

그리고는 다시한번 기무라에게 고개를 끄덕거려보인 다음 용감하게 물탕을 차며 삼장방향을 향해 숲속길로 들어섰다.

기무라는 흡족한 표정으로 자전거뻗치개의 용수철을 호기있게 걷어찼다. 너무 기세를 올리는바람에 우둔한 군화가 바퀴살까지 울려서 지르릉하고 소리를 내였다. 그 소리 역시 기무라의 허영심을 만족시켜주어서 그는 다시한번 흡족한 웃음을 입가에 짓고 막 자전거안장에 몸을 실으려다가 문득 앞길을 내다보고 이마살을 찌프렸다.

《요시다, 이리 좀 오너라!》

기무라는 그 우둔한 편상화로 자전거를 다시 뻗치고 장갑낀 두손을 절도있게 뒤로 가져다가 허리어방에서 정확하게 맞쥔 다음 길을 따라 아래우로 서성거리며 앞뒤의 전망을 살폈다.

막 자전거를 따라 달려가려고 모자턱걸이를 내리던 농사동주재소 순사 요시다는 두손을 맞비비며 상관의 곁으로 다가갔다.

《참, 여기 주재소놈들 일을 망탕 한단말이다. 저기 길이 구부러진데를 좀 보아라.》

기무라는 창대로 찌르듯이 손을 쳐들어 무포쪽으로 구붓하게 휘여돌아간 길목을 가리켰다.

《예···》

요시다는 아무리 봐야 미끈하게 잘 정리된 길이 보일뿐이라 표표한 기무라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이리 오너라!》

기무라는 요시다의 어깨죽지를 끌어다 자기앞에 내세우고 다시 문제의 그 굽인돌이를 가리켰다.

《너도 유격대가 무시로 출몰하는 일선지대의 경찰관으로서 유격대가 가장 잘 쓰는 전술이 뭣이라는것쯤 알테지?》

요시다는 이때 제꺽 대답을 해야 기무라가 좋아하겠는지 우물쭈물해야 좋아하겠는지 몰라 잠시 망설이는데 성급한 기무라는 제김에 내리엮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매복이야말로 그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쓰는 전술이다. 그런데 바로 유격대를 소멸하자고 몇해째 공사를 해온 이 경비도로에 저런 으슥한데를 남겨놓다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저 길가의 나무들을 더 쳐내야 하겠다.》

《예, 그런데 지시는···》

요시다는 잘못하다가는 자기가 관할구역도 아닌데서 애매한 봉변을 당할수 있다는것을 깨닫고 서둘러 변명하였다.

《물론 지시에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직선상에서는 좌우 5m만 나무를 치면 되는것으로 되여있다. 그러나 여기는 곡선이란말이다. 도대체 이런 곡선을 낸것부터가 잘못이다. 설계한놈들을 잡아족쳐야겠다.》

요시다는 할말을 찾지 못하고 흐릿한 하늘을 쳐다보며 내심 오늘 신수를 저주하였다. 항일유격대의 국경진출과 관련하여 대대적인 경비증강대책을 세우는 가운데 함남도, 함북도의 경찰, 군대가 모두 통일적인 지휘체계하에 들어가게 되여 어제 왕청같은 혜산경찰서의 기무라경부보가 개통을 앞둔 갑무경비도로상태를 검열하러 삼장까지 왔었다. 삼장읍내에서 하루밤을 묵은 기무라는 아침나절에 농사동을 지나게 되였는데 그를 도, 군의 경계까지 배웅하러 나온 사법주임이 호의를 보이느라고 요시다를 딸려보낸것이다. 《특설토벌대》본부가 혜산경찰서에 들어앉아있고 총독이나 경무국장이 온다 해도 거기에 우선 들릴것이기때문에 아무쪼록 자기 관할구역에 대해 좋은 보고를 해달라는 소리였다. 요시다는 속으로 딱 싫었으나 재간이 없었다. 사실은 오늘 옥암동구장 리덕선이와 청결검사를 나가게 되여있었다. 그것 역시 총독을 영접하기 위한 준비의 하나였다. 어쨌든 리덕선이와 같이 나서면 오래간만에 배불리 먹고 클클증을 풀만큼 충분히 마실수도 있는것이다. 그런데 구질거리는 비속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놈을 따라가자니 우선 숨이 가빠 못견디겠다. 그러나저러나 여기는 혜산서 관할구역이 아닌가. 그렇게 똑똑한 소리 하고싶으면 미리미리 할것이지 이제와서 왜 이 야단인가.

《요시다!》

기무라는 촌순사의 속이 환히 들여다뵈는 말상을 당장 집어삼킬듯이 노려보며 또박또박 잘라서 말했다.

《지금 어째서 도와 군의 경계를 무시하고 이런 초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갔는가 하는것을 경찰관으로서 명심해야 한다. 관할구역을 따질 때가 아니다.》

《예!》

요시다는 제 속을 다 꿰뚫어보고 하는 기무라의 말에 흠칫하여 덜컥하고 발뒤축을 모아붙이며 차렷자세를 취했다.

《너는 즉시에 저 벌목구역을 적어도 5m이상 더 넓혀서 차후 군대와 경찰의 이동에 사소한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겠다.》

《그런데 여기는 무인지경이 돼서···》

《왜 무인지경이란말이냐? 저기 수상한자들이 있지 않느냐?》

기무라는 또다시 손을 창대처럼 뻗쳐 봇나무가에 옹송그리고 앉은 윤원구네 일행을 가리켰다.

《저자들을 다 단속해라! 앞으로 이 어방에 나타나는 통행인들은 모두 단속해야 한다. 그것들을 공사에 내몰면 된다.》

《그래도 무슨 연장같은것이 있어야겠는데···》

요시다는 나무를 쳐내라는 길목을 돌아보며 엄청난 일감에 기가 차서 중얼거렸다.

《밥통같은놈!》

기무라는 빽하고 소리쳤다.

《여기 나다니는것들은 대개가 벌목부이다. 연장은 가지고있을것이다. 모자라면 <이와이구미>에 사람을 보내서 빌려오면 된다. 보아라, 저놈들도 다 도끼와 톱을 가지고있지 않느냐!》

기무라가 가리키는쪽을 돌아보니 아닌게아니라 이사짐보따리나 멍구럭같은데 도끼자루며 톱자루가 비죽이 솟아있다.

요시다는 할말을 못찾고 멍청히 서버렸다.

《오늘 오전중으로 일을 끝내야 한다. 내가 저녁에 다시 알아보겠다.》

기무라는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엉치를 잔뜩 내밀고 서서 경례를 오래도록 붙이고있던 요시다의 말상은 기무라의 모습이 나무에 가리워 보이지 않게 되자 별안간 흉맹스럽게 이그러졌다.

오늘은 신수에 옴이 붙어도 단단히 붙었다. 리덕선의 술을 놓친것은 그만두고라도 이런 어수선한 날씨에 벌목공사를 벌려야 하다니 경찰관이 처서판의 십장인가, 게다가 인부라도 똑똑하다면 모르겠다, 저것들을 데리고 어떻게 오전중으로 일을 끝낸단말인가.

그러나 기무라의 말을 생각하니 사태가 중한것은 사실이다. 설사 그것이 공연히 사람을 골탕먹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기무라가 한번 말한 이상 안하고는 못배기겠는데 항차 저 으슥한 숲속에 유격대가 숨어있다가 불쑥 달려나온다면 그 총알이 자기 가슴인들 뚫지 못할것인가.

요시다는 빠질 구멍이 없다는것을 통감하였다. 그러자 까닭도 없이 자기의 손탁에 걸려든 뜨내기들에 대한 증오가 부걱부걱 괴여올랐다.

그는 봇나무밑을 가로쏘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봇나무가로 돌아서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한곳에 모여들었다.

요시다는 칼을 한손으로 거머잡고 달려드는참 소리쳤다.

《오이, 오이, 이리 오너라. 증명서 있는가? 모두 어디를 가는가?》

요시다는 물어보나마나 뻔한 뜨내기들이였지만 어떻게 하나 언치를 걸어야겠기때문에 처음부터 사납게 굴었다.

《각자 보따리를 들고 한줄로 서서 증명서를 꺼내라. 너는 뭐야? 한줄로 못서겠는가?》

요시다는 주린 승냥이처럼 봇나무밑을 오락가락하며 소리치다가 한옆에 따로 떨어져서 어정거리는 정섭이를 보고 사납게 으르릉거렸다.

《나는 이 사람들하고 다르오다.》

정섭이는 별소리 다한다는듯이 코김을 내불며 저쪽으로 외면하였다.

《이놈아, 다르기는 뭐가 달라. 여기 와 서란말이다.》

요시다는 단숨에 거기까지 달려가서 정섭이의 어깨죽지를 잡아끌었다.

《이거 놓라요, 넨장.》

정섭이는 송충이라도 털어버리듯이 그놈의 손을 쥐여뿌리고 제발로 성큼 필네뒤에 다가섰다. 필네의 커다란 눈이 원망스럽게 정섭이를 지켜보고있었다.

《쳇!》

정섭이는 이런데서까지 공연한 화를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느냐는 필네의 말없는 책망에 대해서도 거칠게 코김을 내불며 먼 하늘로 눈길을 돌려버렸다.

《망할놈의 자식! 너 신사동 있는놈이지?》

하고 요시다는 당장 잡아먹을듯이 쏘아보다가 단단히 속치부를 해두었다는듯 턱을 한번 끄떡하고는 모두에게 소리쳤다.

《증명서는 반대로, 이렇게 내가 보기 좋게 들고있어야 한다. 글자가 반대쪽으로 되게말이다.》

요시다는 맨앞에 서있는 윤원구의 려행증명서를 들고 보란듯이 내흔들며 설명을 하다가 대선아바이와 춘길이가 증명서를 가지고 서로 쑥덕거리는것을 보았다.

《뭔가, 이자식들이!》

요시다는 다짜고짜로 그리로 달려가 춘길이의 면상을 후려갈겼다.

《아이쿠!》

춘길이가 증명서와 함께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풀썩 주저앉자 대선아바이가 그앞을 막아서며 우들우들 떨리는 소리로 말하였다.

《내가 증명서를 어느쪽으로 내대라고 했느냐고 물어서 그렇게 됐습네다. 이 사람한테는 잘못이 없습네다.》

《증명서를 이렇게 내대라고 했는데 그것도 모르겠는가? 멍텅구리같이···》

한참 무시무시한 분위기속에서 증명서를 검열했지만 도경찰부의 시뻘건 공인이 찍힌 도강증명서까지 가지고있는판이라 트집을 잡을데라고 별로 없었고 그중 증명서가 부실한 정섭이조차 그 자신이 서뿔리 신사동에 있다는것을 여러 사람 면전에서 미리 확인한셈이니 더 시비를 걸어볼데가 없었다.

그러나 요시다는 그런것쯤에 동요를 느낄 위인이 아니였다.

《에- 너희들은 민간인으로서 엄격히 통행이 금지된 경비도로를 함부로 통과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아니 여보시오.》

아까 큰길우에서 경관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대충 엿들은 김인수가 한팔을 쳐들고 말했다.

《우리는 경비도로로 가려고 하지 않았소. 길이란 천하의 공유물인데 다녔다해봐야 그게 무슨 잘못이겠소. 항차 우리는 여태 근방에 가지도 않았단말이요.》

《아, 아, 무슨 소리까? 내가 네놈들의 마음속을 다 안다. 너희가 이 길로 가려고 오지 않았는가?》

《왔다는데는 어떻단말이요?》

윤원구가 씹어삼키듯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너희들이 이 경비도로를 위해서 일을 좀 해야겠다. 이것은 제국의 안녕을 지키는 경비도로인것만큼 국민은 누구나 다 여기에 동원될 의무가 있다. 에- 그래서 이제부터 저 굽인돌이의 안쪽에 있는 나무를 깨끗이 쳐버려야겠다.》

《여보시오, 나리님.》

장대선아바이가 쳐버려야 되겠다는 길가의 나무들을 바라보다가 너무나 어이가 없어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먹고살 길이 없어 고향땅을 버리고 강을 건너가자는 사람들인데 여기서 나무를 찍느라고 지체를 하게 되면 입에 풀칠은 어떻게 하라는것인가요? 품삯은 주는가요?》

《이놈의 두상이나!》

요시다는 고리눈을 부릅떴다.

《아직 매나 적게 맞아서 품삯이나 달라는가? 애국로동에 무슨 품삯이 있는가? 두상이 매를 좀더 맞아봐야 알겠는가?》

《아이구, 나리, 내인들이랑 앓는 아이들까지 있는데··· 사정 좀 봐주시오. 이 무인지경에서 날이 저물면 어떻게 하갔나요?》

대선아바이는 통사정을 들이댔다.

그러나 요시다가 눈을 딱 부릅뜨고 《뭐야!》하고 악을 쓰는바람에 대선아바이는 미처 마무리지 못한 말을 입안에서 중얼중얼하며 삼키고말았다.

《순사나리!》

정섭이가 성큼 나섰다.

《나 혼자 이 나무를 다 치겠소.》

《호- 너나 용감한 청년이다. 그래 네가 다 베겠는가?》

《그렇소, 그러니 이 사람들은 보내주시오. 강을 건너갈 사람들인데 숲속에서 날이 저물면 어떻게 하겠소. 보시오, 이 아이는 진짜 앓는단말이요.》

《너나 다른 사람 걱정 안해도 좋다. 아이는 내려놓고 녀자도 일이나 해라.》

요시다는 진호 어머니를 향해 돌아서더니 다짜고짜 띠개에 손을 가져갔다.

《여보, 나는 그러면 일 못하겠소.》

정섭이가 소리치자 요시다는 잠시 손을 멈추고 노려보았다.

《일이나 못하겠는가? 좋다. 일이나 안하면 죽여버리겠다.》

요시다는 사납게 울부짖더니 진호 어머니에게서 억지로 아이를 풀어냈다.

《나리님, 나리님, 살려주시오. 일하겠소다. 아이를 업고 일하면 되지 않소다.》

진호 어머니는 울음섞인 소리로 애원했으나 요시다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무밑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인 진철이는 발버둥치며 울었다. 그옆에 정섭이의 큰저고리를 쓰고 쪼크리고앉았던 진호도 울음을 터뜨렸다.

《네놈이나 일 안하겠는가?》

요시다는 정섭이의 어깨죽지를 잡고 길가로 내끌었다.

《가자구. 이사람들, 가서 얼른 해버려야지 이 날벼락을 피하는수가 어디 있나.》

대선아바이가 주섬주섬 보짐속에 찔러둔 도끼를 들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