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25

 

25

 

필네는 길을 버리고 숲속으로 들어섰다. 마음은 급하여 막 날아가고싶은데 길에는 왜놈《토벌대》의 시체와 부상병들을 처실은 들것이 널려있고 떼를 지어 달리는 경찰, 군대들이 무시로 오르내려서 천천히 걷기도 어려웠다.

이제 총소리가 울려오는 대홍단벌은 고대다. 총소리를 대중하여 숲을 꿰질러가면 인차 유격대를 만날수 있을것 같았다. 유격대를 만나기만 하면 뒤일은 아무래도 좋다. 오빠를 만날수만 있다면 두려울것이 없었다. 게다가 정섭이도 유격대를 따라갔다고 한다.

총총히 들어찼던 이깔나무숲이 좀 성기여지는가싶더니 빠끔히 트인 림간공지는 한참을 못가서 끝나고 빽빽한 혼성림이 나졌다. 허리까지 치는 진대가 앞길을 막고있다. 곧장 타고넘자고 허리를 실어봤으나 어림이 없었다. 어찌나 오래 됐는지 겉껍질은 다 썩어 없어지고 이끼가 검푸르게 돋아난것이 함빡 물을 먹어서 발을 갖다붙이기 무섭게 미끄러졌다. 그런 진대가 총총히 가로놓여있었다. 가까스로 진대나무를 돌아나오면 칡이며 머루, 다래의 묵은 넝쿨이 잡관목가지들을 마구 휘감고 그물처럼 앞을 막아섰다.

필네는 머리며 목덜미를 휘감는 나무가지들을 두손으로 엇바꾸어 헤치며 곧장 총소리를 따라 앞으로 갔다.

봇나무의 가는 회초리가 볼을 후려쳤다. 아래종아리는 긁히고 터져서 얼얼하다. 그래도 돌아볼 경황이 없었다. 혹시 너무나 늦지 않았을가? 이런 불안이 가슴에 차서 언제 숨을 톺아볼 겨를도 없었다.

신사동쪽에서 총소리가 울린것은 한밤중이였다. 림철종점어방에서 가소린차를 타고 달려갔던 《토벌대》가 유격대의 불벼락을 맞고 도망쳐왔다는 소문은 이튿날 아침에야 농사동까지 번져왔다. 그때까지도 필네는 똑똑히 영문을 모르고 막연한 불안속에 서성거렸다. 큰길로 경찰과 군대들이 떼를 지어 몰려갔다. 가소린차를 타고 몰려가는 패들도 있고 어디선가 자동차를 타고 쓸어드는 패들도 있었다.

아침에 불시에 먼 신사동쪽에서 몰방으로 터져오른 총소리의 메아리가 아득히 울려왔다.

윤원구가 도강증때문에 주재소에 갔다가 도강증은 못찾은대신 지금 유격대의 대부대가 신사동일판에 쳐나와서 굉장한 전투가 붙었다는 소문을 듣고왔다. 필네는 그길로 달리는것이였다. 처음에는 림철종점을 끼고 달리다가 몇번이나 놈들의 단속에 걸리는 바람에 그렇게 숨가쁘게 달렸는데도 근 2시간이나 걸려서야 신사동에 들어섰다.

신사동부근에는 왜놈군대와 경찰이 씨글씨글하였다.

필네는 놈들의 눈에 뜨일가봐 나무사이를 누비며 간신히 정섭이네 집에 뛰여들었다.

놓여나온 할아버지가 그를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어머니와 경섭이가 한꺼번에 그러안았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바로 그 집까지 오셨다는것을 알았을 때 필네는 벌떡 일어났다. 너무나 뜻밖이여서 그랬던지 너무나 기뻐서 그랬던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정섭이까지 살아돌아와서 유격대의 짐을 메고 따라갔다는것을 알았을 때 필네는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류를 물리치고 다시 대홍단으로 달렸다. 산에 숲에 왜놈들이 넘쳐나고 사방에서 총소리가 벼락치듯 하는데 어디로 가느냐고 할아버지는 엄하게 꾸짖기까지 하였었다. 그러나 제가슴에 깊이 묻어둔 사연을 불시에 터놓을수가 없어 한번 웃어보이고는 무작정 달렸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유격대를 몸소 이끄시고 오신이상 제가 무엇때문에 머나먼 길을 에돌아 금천동까지 간단말인가. 그렇게도 그리운 유격대를 지척에서 만날수 있는데··· 왜놈들이 유격대는 다 없어졌다고 떠드는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 못된놈들때문에 얼마나 속을 썩였던가.

그런데 그 원쑤놈들이 지금도 필네의 앞길을 겹겹이 막고있었다. 길로 갔으면 진작 대홍단벌에 나갔을것이다. 그러나 대홍단벌로 나가는 길은 모조리 놈들에 의해 막혀있었다. 그래서 숲속으로 들어선 길인데 대중없이 자꾸만 숲속으로 들어가다가 문득 앞이 틔여 바라보니 두지바위와 유곡쪽으로 길이 갈라지는 세가닥 길이 앞에 가로놓여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바로 낯익은 자위대놈들이 어디서 끌어왔는지 숱한 조선사람들을 잡아놓고있었다.

필네는 흠칫하여 다시 숲속깊이로 달려들어갔다. 어쩐지 총소리가 뜸해지는것이 유격대가 인차 어딘가로 가버릴것만 같은 조바심이 가슴을 휘저어놓았다. 왜놈들이 물밀듯이 쓸어들던 생각도 났다. 허지만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축지법을 쓰시는데 무슨 일이 있을라구···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은 불안과 초조감때문에 한시도 진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숲속을 어떻게 빠졌는지 진펄이 나졌다. 처음은 무작정 곧추 나가다가 보니 어느새 발등까지 빠지는게 심상치를 않았다. 하는수없이 옆으로 돌아 민틋한 등성이를 기여올랐다. 등성이우에 겨우 고개를 내밀게 되였을 때 바로 앞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보니 길손도 있고 가까운 처서판과 동네에서 왜놈들의 눈을 피해 놈들이 녹아나는 꼴을 보려고 몰려온 사람들도 있는듯 하였다.

필네는 좀 마음이 진정되여 우선 형편을 알아보자고 그 사람들틈에 가섰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마장도 안되는 등성이아래에다 왜놈들이 부상자들을 날라다놓고 치료를 한답시고 볶아치고있기때문에 더는 앞으로 나갈수 없었다.

길은 사방으로 다 막혀있었다. 마침 왜놈의 군대와 경찰이 떼를 지어 파도처럼 대홍단벌로 밀려나갔다가 증산기슭에 가서 거대한 주먹에 내질린듯 산산쪼각이 나서 구겨박히고 흩어져 달아나는 판이였다. 사람들은 너무나 신이 나서 연신 가슴을 들먹거리며 팔다리를 들썩거리고있었다.

왜놈들이 멀지 않은곳에 있었기때문에 크게 소리는 치지 못하면서도 수군수군 주고받는 감탄의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아니 저놈들이 뒤로 돌아가자고 저러는것 아니야.》

《뒤로 돌아가긴 어느 뒤로 돌아간단말이요. 장군님께서 그걸 그냥 두시겠소. 또 아까처럼 거꾸로 뒤통수를 활 문질러버리실텐데 그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짐작을 하지 말란말이요.》

웬 체소한 농민의 말에 거쿨지게 생긴 길손이 이렇게 열을 올리며 핀잔을 주었다.

《아니 이 손님은 뭘 어쨌다고 아까부터 자꾸 구박이요. 왜놈들이 원체 악착한놈들이니까 하는 소린데···》

《쉿, 조용들 하시오. 공연히 제편끼리 그러는구만. 왜놈들의 눈에 띄였다간 또 탄알받이로 끌려간단말이요.》

큰 나들이에 온듯이 두루마기까지 떨쳐입고나선 웬 로인이 길다란 담배대를 저으며 두사람을 말렸다.

필네는 어디로 뚫고나갈 길이 없을가 해서 다시 사위를 살펴보았다. 등성이아래편은 맨 왜놈들의 송장천지였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부상병들도 수없이 많았다. 그러고도 대홍단벌에서는 한패씩 달려나간 《토벌대》무리들이 한참을 못 가서 탕쳐놓은 물고기대가리모양이 되여 또 새로운 송장을 질질 끌고 몰려나오군 하였다. 왜놈들이 그렇게 무수히 쓰러지고 죽어너부러지는것을 보니 귀청이 멍멍하도록 자지러지는 총소리뒤에 가면 유격대를 만날수 있을것 같았다. 필네는 한편으로 너무나 속이 시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발을 동동 구르고싶은 안타까움속에서 싸움마당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저쪽 길가에서 왜놈들의 악착한 손길에 내몰리여 탄알받이로 된 마을사람들을 보게 되였다.

유격대는 어떻게 되였는가? 조선사람들을 방패막이로 삼았기때문에 유격대가 총을 못쏜다는것을 알았을 때 갑자기 텅 비여버린 대홍단버덩과 증산기슭 그리고 그쪽으로 밀물처럼 쓸어들어가는 왜놈들을 보는것이 끔찍하였다. 저도 모르게 살이 떨려났다. 과연 유격대는 어디에 갔으며 어떻게 되였을가.

왜놈들은 연방 총질을 해대며 증산기슭의 새초밭속으로 희뜩희뜩하다가 사라졌다. 그러자 더 좀 높은 기슭의 숲속에서 다른 대렬이 쏜살같이 왜놈들의 뒤로 달려나와 삥 둘러싸버렸다.

《아니, 저게 유격대가 아닌가?》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필네의 손을 더듬어잡으며 말했다. 필네는 로인의 손을 꼭 잡아드렸을뿐 가슴이 활랑거려 아무런 말도 못했다.

지내 거리가 멀어 똑똑치는 않으나 륙감적으로 유격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잠시 즘즛했던 총소리가 다시금 벼락치듯 하였다. 삽시에 총소리는 또다시 하늘땅에 꽉 들어찼다. 탄알이 멀지 않은 새초밭을 쓸어눕혔다.

《모두 엎드리시오. 상하겠소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사람들은 저마다 질겁해서 나무등걸뒤며 새초밭둔덕에 머리를 감추고 엎드렸다. 필네만이 몸을 감출 생각을 잊어버리고 싸움판을 바라보았다. 웨침소리, 아우성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총소리는 그냥 자지러지는데 아득히 먼곳에서 나팔소리가 울리여왔다. 왜놈들은 그 산기슭에서 아예 요정이 나는것 같았다.

필네는 달려가고싶었다. 죽더라도 달려가서 유격대를 보고싶었다. 그는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증산기슭을 향하여 내달렸다. 뒤에서 아까 말을 걸던 할아버지와 웬 아낙네가 뭐라고 소리쳤지만 전혀 가려들을수 없었다.

좀 두드럭한 언덕우에 올라섰을 때 필네의 눈앞에는 엄청난 장관이 벌어지고있었다. 방금전 그리도 기승을 부리며 온갖 떨거지들을 다 긁어모아 달려가던 놈들이 사방에서 죄여드는 유격대에 의해 칼탕질을 당하듯 얻어맞고있었다.

필네의 눈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슴새여나왔다. 그는 유격대를 보았다. 비록 한사람한사람의 형상을 가려낼수 없었으나 총창을 번쩍거리며 왜놈들을 찔러눕히는 무수한 유격대원들의 용맹한 모습을 보았다. 한순간에 평생소원이 다 풀린듯 하였다. 유격대는 살아있으며 원쑤들을 저렇게 가슴시원하도록 잡아족치고있다.

그러나 그 격전장으로 누구를 찾으러 갈 형편이 못된다는것은 첫눈에도 환히 알려졌다. 여전히 총소리가 벼락치듯 하는데 칼이 번쩍거리고 날창이 불꽃을 튕긴다. 원쑤들의 팔다리가 떨어져나가고 피와 살이 터져 새초밭이 벌겋게 물들고있다.

어떻게 저 싸움판뒤로 돌아갈수는 없을가?

그러는데 싸움판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왜놈들의 패잔병무리들이 피투성이가 되여 걸레쪽같은 부상병들과 시체들을 질질 끌고 앞길을 막아섰다.

필네는 눈을 딱 감고 이를 악물었다. 유격대를 만날 길이 막혔으나 이제는 서럽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나는 기어이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올거야. 나는 꼭 오빠와 만나게 될거야.)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이며 동네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