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23

 

23

 

아침해살이 엷은 빛을 뿌리자 물자작가지에서 이슬이 쭈르르 미끄러져내렸다. 대로은산뒤로 불타던 아침노을이 차츰 금빛을 띠더니 어느새 수묵화같던 주위의 산발이 륜곽을 드러냈다. 숨죽은듯 고요하던 숲속에서 별안간 새들이 시끄럽게 우짖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대홍단벌은 찬란한 색조속에 온몸을 드러냈다. 어제날의 황량한 모습은 어데로 갔는가. 물자작가지에서, 묵은 새초잎에서 이슬이 무수한 금구슬처럼 빛을 뿌리고 새벽바람에 하느적거리는 진달래꽃잎들이 별무리처럼 번쩍거린다.

버덩을 넘어 저편, 7련대와의 련계를 위해 련락조를 남겨둔 찌글사한 국사당도 마치 선경의 단청무늬 령롱한 루다락같이 보인다.

어디에도 불꽃튀는 격전을 예상케 하는것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경위중대의 매복진도, 8련대와 독립대대의 매복진도 가뭇 소리없이 누워있다. 구붓한 지형에 맞게, 적들이 나타날것으로 예견되는 대홍단버덩을 향하여 매복진을 손수 펼쳐놓으신 사령관동지자신께서도 쌍안경으로 꼼꼼히 살펴보셔야 가까스로 그렇다는것을 짐작하실뿐 겉보기는 더없이 아름답고 고요한 벌판이였다.

다만 지휘처로 정하신 봇나무밑에서 좀 나가서 10m간격으로 엎드린 세명의 기관총수의 등이 보일뿐이였다.

마침내 날이 활짝 밝았다. 대홍단벌은 다양한 색조를 벗어던진 대신 생명이 약동하는 봄날 대지의 훈향을 내뿜었다.

《사령관동지, 옵니다.》

상철이가 버덩너머를 쏘아보고있다가 입안이 바싹 마른 소리로 보고를 드리였다.

《알고있소. 7련대동무들이 틀림없소.》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며 천천히 쌍안경을 눈으로 가져가시였다.

《허허허, 로획물자들을 많이들 졌구만. 인민들도 많이 따라오는것 같소.》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냥 쌍안경을 들여다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때 오백룡이가 소리없이 다가왔다.

《사령관동지, 적들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는 7련대가 도착하는 즉시로 다음 계선으로 이동해도 일없겠습니까?》

《그럴수가 있소? 그놈들이 안나타나고 어디로 가겠소. 가만 두고 봅시다. 이제 나타날것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더 볼 필요도 없다는듯이 쌍안경을 내리시더니 오백룡의 긴장된 얼굴을 살펴보시였다.

《저걸 보오. 오중흡동무가 아마 놈들을 큼직하게 해치우고 마을에서 정치사업도 괜찮게 한것 같소. 이제 이야기도 그만큼 많을거요. 이놈들을 빨리 때려엎고 그 이야기를 푸짐히 좀 들어봅시다.》

이때 상철이가 쨍쨍한 목소리로 보고를 드리였다.

《사령관동지, 적입니다. 7련대 뒤에 적이 달렸습니다.》

《어디 좀 봅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다시 쌍안경을 눈으로 가져가시였다.

아닌게아니라 7련대의 후위가 버덩에 들어설무렵 200∼300m 떨어진 숲속에서 길다란 행군종대가 따라섰는데 아침해살에 철갑모가 번쩍하는것이 똑똑히 알렸다. 얼핏 보매도 대대규모는 되는 긴 대렬이였다.

《음- 역시 오중흡동무가 일을 빈틈없이 했소. 능숙한 몰이군에게 걸린 승냥이가 갈데라고 있소, 덫에 걸렸지. 자, 모두 시작해봅시다. 상철동무는 7련대장동무에게 가오. 그리고 봉수동무는 8련대와 독립대대로! 어- 시원한 아침이로군.》

사령관동지께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신 다음 군복웃단추를 터놓으시고 싱그러운 아침바람을 량껏 마시시였다.

7련대는 여전히 서두르지 않고 대홍단 물자작밭을 건너온다. 적들도 아무런 눈치를 못채고 똑같은 간격을 두고 똑같은 속도로 따라온다. 숲도 벌판도 여전히 평온하게 누워있다. 그러나 사령관동지의 가슴속에는 벌써부터 격전의 전국면이 하나의 화폭처럼 선히 그려져있었다.

새초밭사이를 다람쥐처럼 누벼나간 상철이가 오중흡이를 만나서 몇마디 속삭이더니 되돌아 달려온다. 그앞은 바로 7련대와 경위중대의 매복진이다.

오중흡이가 매복진을 지나자 한중간에 서서 대원들을 떠밀어보내며 엎드리라고 소리친다. 그래도 적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7련대를 놓치지 않겠다는 한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혀 꼿꼿이 따라온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천천히 권총을 쳐드시였다.

그이의 신호권총이 울리는 순간 하늘을 두동강이 내는듯 한 일제사격의 무시무시한 메아리가 고즈넉하던 벌판과 광막한 숲을 뒤덮어버렸다.

7련대는 허리를 낮추고 제꺽 매복권을 벗어났다. 적들은 거대한 낫가락이 휩쓸어간 풀밭처럼 선자리에서 풀떡풀떡 엎어졌다.

산놈이고 죽은놈이고 모조리 나가 엎어졌다. 진펄이든 둔덕이든 가릴 경황이 없었다.

지휘관이 산개하라고 소리소리 질렀지만 듣고도 뜻을 모르는지 여름철 양떼처럼 한곳으로 몰려들어 비비적거린다.

성림은 자기의 사격솜씨가 결코 서툴지 않다는것을 이때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사실 여태까지 전투에 몇번 참가하기는 했지만 모두 번개처럼 치고 바람처럼 달려나가는 전투여서 언제 자기의 사격에 대해 생각해볼 짬이 없었다. 오늘은 전투의 성격자체가 매복했다가 사격권에 들어온 적을 하나하나 묘준해서 쏘는것이니 충분히 사격솜씨를 검열해볼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철갑모를 정면으로 내대고 깊숙이 풀밭에 들어박힌놈이 무슨 생각이 났는지 옆으로 기기 시작한다. 총소리가 콩닦듯 하니 아무래도 한자리에 들어박혀있을수가 없는 모양이다. 옆으로 나가봐야 그 이상 좋은 은페지는 있을것 같지 않는데 놈은 필사적으로 팔굽을 세워 상반신을 먼저 한옆으로 비스듬히 가로눕히고는 엉뎅이를 끌어붙이군 한다. 한번씩 그런 동작을 반복할 때마다 엉뎅이가 한순간씩 올려솟군하였다. 그놈은 그런것을 전혀 못느끼는 모양이다. 대가리만 깊숙이 틀어박고있으면 엉뎅이쯤 맞아도 일이 없겠다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디 한대 맞아봐라. 성림은 다음에 엉뎅이가 솟아오를만 한 높이에 묘준을 하고있다가 발끝에 긴장이 오는 순간 지그시 방아쇠를 당겼다.

탄알은 풀대를 쓸어눕히며 면바로 솟아오른 엉뎅이에 가 맞았다. 발사소리며 비명소리가 온 벌판에 차고넘쳐 소리는 가려들을수 없었으나 그놈은 그렇게도 소중히 감추고있던 대가리를 번쩍 들고 무릎을 꿇고앉았다. 손을 엉뎅이에 가져가는가싶더니 이번에는 또 어디서 날아오는 누구의 탄알을 받았는지 철갑모가 쟁그랑하고 벗겨져 달아났다. 그놈은 엉뎅이를 쓸어보려던 손을 허리우에 드리운채 천천히 모로 쓰러졌다.

적들은 대홍단벌 복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거의 앉은자리에서 몰살된듯 하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총소리는 그냥 자지러지고 적탄은 더욱 비발치듯 날아온다.

해가 이깔나무숲우에 솟아올랐다. 눈앞이 확 열리였다. 너울을 벗은듯 한 대홍단벌이 한눈에 바라보였다. 성림은 눈을 부릅떴다.

여태 어둠속에서 싸우던 적은 다 죽고 뿔뿔이 흩어진듯 한데 진펄너머 저쪽 숲변두리로 길다랗게 산개진을 친 적의 새로운 공격서렬이 보였다.

성림은 무의식중에 뒤를 돌아보았다. 사령부는 아까 위치해있던 두드럭한 등성이우에 그냥 자리잡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불뿜는 기관총옆에서 쌍안경으로 적진을 살피고계신다.

적들이 주목하는 기관총옆에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것이 마음에 걸리였다. 그러고보니 자기는 너무나 몸을 깊이 감추고있는것만 같았다. 적들도 눈을 밝히고 이쪽을 살필텐데 유독 사령부위치만 적들에게 두드러진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성림은 무의식중에 몸을 일으켰다. 풀대들이 앞을 가려 전망이 좋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기 몸을 더 많이 드러내는것이 사령관동지께 미치는 위험을 다소라도 덜어드릴것만 같이 생각되였다.

무릎을 꿇고 일어서니 한결 눈앞이 시원하게 열리였다. 굵다란 이깔나무밑둥에 내뻗친 기관총의 총신이 보인다. 그 총구에서 예광탄이 번쩍번쩍 불을 뿜는다. 그러나 사수놈은 골을 나무뒤에 틀어박고있기때문에 좀체로 조성우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놈의 총구는 분명 사령부를 겨누고있는듯 하다.

성림은 옆으로 몇걸음 자리를 옮겼다. 좀 비켜앉으면 적기관총수의 몸체가 사격권안에 들어올것 같았다.

《엎드렷! 성림동무! 엎드리시오!》

뒤에서 사령관동지의 웅글은 목소리가 울리여왔다.

성림은 엎드리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누구를 보고 하시는 말씀인가? 설마 이 불꽃튀는 싸움판에서 자기를 지켜보실수야 있는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사령관동지께서는 한팔을 드시여 엎드리라는 손짓을 하시였다. 그이의 얼굴에는 분명 따뜻한 웃음이 어리여있었다.

순간 성림은 눈굽이 지지는듯 확 달아났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적들을 살피고계실뿐아니라 우리 전사 한사람한사람을 그렇듯 세심하게 살피고계신다. 그이의 그 눈길속에 자신도 한자리를 차지하고있다는것을 의식하니 걷잡을수 없는 감동이 다시금 가슴을 꽉 채웠다.

성림은 납작 엎드려 적을 겨누었다. 눈앞이 부옇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것이다. 총소리가 귀청을 찢고 피와 살점이 흩어져 달아나는판에 눈물이라니···

싸움판에서는 응당 용감해야 하지만 이렇게 죽음을 초월해버려서는 안된다. 용감한 전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의무에 충실한데 있다.

나는 사령부를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은페하여 적을 효과적으로 소멸하여야 한다.

성림은 소매로 눈앞을 뻑 훔치고 아까 그 기관총을 겨누었다. 이번에도 철갑모만 보였다. 저놈을 정통으로 내갈기리라 결심한 그는 인내성있게 묘준을 하였다. 그제야 귀청을 멍멍하게 하는 총소리, 풀대와 진흙을 파헤치는 적탄이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것을 느끼였다.

성림은 입술을 앙다물고 다시한번 적기관총수의 철갑모를 조성우에 올려놓았다. 자칫하면 또 벗어날수 있다. 초조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숨을 천천히 내보내다가 딱 멈추었다. 그리고도 조성우에 놓인 적의 철갑모를 다시한번 확인한 다음 방아쇠를 당겼다. 철갑모는 정통을 맞고 팽그르르 돌더니 옆으로 굴러났다.

성림은 총을 내리는 순간 고개를 번쩍 들고 앞을 살폈다. 그런데 이깔나무뒤에서 기관총은 여전히 불을 뿜는다.

《동무들, 허위목표에 속지 마시오. 적들은 철갑모를 내세워놓고 그옆에 숨어있소.》

이런 목소리가 울리여왔다. 사령관동지이시였다.

해는 차츰 높이 솟아올랐다. 밤이슬이 번쩍거리던 풀대들이 목대가 부러져서 진흙탕우에 너저분하게 널렸다.

성림은 다시 서너걸음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나무뒤에 엎드린 기관총수와 부사수 두놈의 몸집이 똑똑히 보인다.

그는 자기 탄알이 날아갈 탄도를 곰곰히 머리속에 그려보며 이번에는 퍽 수월하게 겨냥하여 연거퍼 두발을 쏘았다. 적기관총은 아가리를 다물고말았다.

성림이가 기관총을 소멸하느라고 옮겨다니는 사이 적의 대렬은 눈에 알리게 설피여졌다. 이제 돌격해나가면 놈들을 일격에 물리칠수 있을것 같았다.

성림은 신바람이 나서 돌격구령을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고있는데 왕청같이 서북쪽 릉선쪽에서 적의 큰 무리가 나타나서 불질을 해댔다. 성림은 머리속이 아찔하였다. 적들은 교활하게도 허위목표뒤에 얼마 안되는 력량만 남겨두고 은밀히 측면으로 우회하여 포위를 형성하려고 하는것이였다.

성림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사령부 좌우에 그쯘히 늘어져있던 아군의 서렬은 보이지 않고 직접 사령부를 보위하던 석정의 기관총도 한자루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성림은 온몸의 피가 머리로 확 몰리는것을 느끼였다. 사령부를 지켜야 한다.

그는 중대장이 뭐라고 구령을 치는것을 느꼈으나 그것을 미처 가려들을 사이도 없이 적의 화력이 집중되는 곳을 향하여 제 온몸으로 사령부를 지킬듯이 달려갔다. 적탄이 비발치듯 하였으나 웬일인지 터럭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였다. 성림은 무엇인가 복잡하게 엉켜들던 자기의 머리속이 비발치는 적탄속을 달려가는 100m도 못되는 그사이에 시원히 정돈되고 개여오르는것을 느끼였다.

사령부를 지켜야 한다! 머리속에 남아있는것은 오직 이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어느새 중대의 서렬이 모두 익측으로 공격해오는 적을 향하여 돌아섰다. 그러고보니 아까 중대장의 구령은 바로 이것을 요구한것이였다.

성림은 정신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방아쇠를 한번 당기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여전히 침착하게 쌍안경으로 적진을 살펴보고계신다. 그런데 그앞에 있던 동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럴 때 누군가가 사령관동지를 좀더 안전한 곳으로 모셔갔으면 얼마나 좋을것인가.

앞을 살펴보니 적들의 력량은 상당히 우세한듯 하였다. 탄막은 점점 조밀해지고 놈들은 한걸음한걸음 죄여든다.

비록 아군의 방어진이 좀 설피여지기는 했으나 그만큼 매 전사가 더 정확히 쏘고 몇갑절 더 용감하게 싸워서 저놈들을 소멸해야 한다.

성림은 배밀이로 몇걸음 앞으로 나갔다. 그앞에 찍어넘긴 이깔나무의 등걸이 솟아있었다. 그렇게 홀로 삐여져나가도 두렵지 않았다. 얼마나 좋은 은페지인가. 다문 얼마라도 거리가 밭으니 명중률도 더 좋을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무리 방아쇠를 당겨도 탄알이 안나간다. 고장이 났는가? 새 총인데··· 다시 방아쇠를 당기니 빈 격침소리가 찰칵한다. 그제야 혼자 욕설을 퍼부으며 탄띠에서 알쌈을 더듬었다. 앞가슴에 가득 채워넣었던 알쌈을 언제 다 빼냈는지 탄띠가 주글주글하다.

성림은 잠시 탄알 재울 생각을 잊어버리고 메뚜기처럼 껑충껑충 뛰며 새까맣게 덮쳐드는 적진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후두두하고 손발이 절로 가드라들었다.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성림은 자신을 향하여 소리쳤다.

《정신을 차렷!》

자기 마음이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뭘 그렇게 소리치는가? 나는 나의 의무를 다 알고있다.》

성림은 전선을 좀더 넓게 바라보며 후둑거리는 심장이 가라앉기를 침착하게 기다렸다. 자신에게 믿음이 갔다. 그는 아직도 좀 후들거리는 손으로 천천히 탄띠를 더듬었다. 그것을 조급하게 빼내기전에 나머지 탄알을 다 만져보았다. 새 알쌈이 열두개 남았다. 그러니 60발의 탄알이 있다. 하나도 헛방을 쏘지 않는다면, 우리모두가 침착하게 사격을 한다면 이 탄알을 절반쯤 쓰고도 적을 소멸할수 있을것이다.

성림은 한알의 탄알로 한놈의 적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알한알 탄알을 세면서 사격을 하였다.

그러나 적은 줄어들지 않았다. 어쩐지 점점 더 불어나면서 차츰 더 가까와지기만 하는것 같았다. 이제는 사령부가 있는 둔덕으로 날아가는 적탄의 탄도를 환히 가려볼수 있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는가!

성림은 너무나 안타까와 벌떡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 순간 맹렬한 사격소리가 적의 배후에서 자지러졌다. 앞으로 죄여들던 적의 서렬이 벼락을 들쓴듯 뭉청 허물어져나갔다. 적들은 등뒤로 사격을 받고 둥지를 털리운 개미새끼들처럼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난다.

성림은 너무나 기뻐 아주 허리를 일으키고 입안으로 중얼거렸다.

《그랬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벌써 적들의 잔꾀를 꿰뚫어보시고 사령부를 지키던 동무들을 적들의 뒤로 내보내셨구나.》

그러면서 그는 싸움판한복판에 서서 어린애처럼 순진한 마음으로 껄껄 웃었다.

《네까짓것들이 감히 조선인민혁명군을 어째보겠다고··· 가소롭기란···》

성림은 침착하게 이깔나무등걸뒤에 꿇어앉아 뿔뿔이 흩어지는 놈들을 한놈한놈 겨누어 쏘아제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