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21

 

21

 

강정섭이의 사건은 처음에 이 사건을 턱없이 과장한 리호철이와 스즈끼의 말이 삼장경찰서를 통하여 그대로 올라갔기때문에 복잡해졌다. 조선인민혁명군이 무산지구로 진출한듯 한 눈치를 뒤늦게 채고 유곡방향으로 이동해온 기무라경부보는 강정섭이가 붙잡힌 그날로 당장 자기에게 넘기라고 전화를 해댔다. 그것을 거절하자 다음날은 사까이경시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고 자위대 중대장은 경찰이 해야 할 일에 쓸데없이 나서지 말라고 스즈끼를 추궁하였다.

중대장은 포태리근방까지 나갔다가 부랴부랴 돌아와서 붉은바위, 농사동일대에 중대를 전개시키고있었다.

어쩔수없이 강정섭이를 경찰의 손에 넘기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이제는 밸풀이도 그만큼 하였으니 그것들을 데려가서 삶아먹든 데쳐먹든 띠끔할것이 없었다. 그러나 윤원구네 일행은 이제는 사건과 관계가 없으니 한시바삐 국경을 넘겨보내야겠는데 경찰에서 압수한 도강증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강정섭이를 넘겨주고 이 문제를 아퀴지어야겠다고 호철은 생각하였다.

지금 영창에는 정섭이와 할아버지, 그리고 신사동 《이시가와구미》의 만호외에 《호리모도구미》에서 역시 만호처럼 검척때 감독놈과 맞선것때문에 붙잡혀온 벌목부가 두사람, 자위대식량을 싣고가던 말파리를 진창에 굴려서 쌀이랑 밀가루를 못먹게 만들었다는 말파리군령감이 한사람 해서 도합 여섯사람이 갇혀있었다.

영창이래야 말만 요란했지 실상 그것은 가마니, 새끼퉁구리, 바줄따위를 넣어두던 자그마한 헛간같은 현장창고였다. 자위대에서 쓰게 되면서 대충 걷어내가느라고는 하였으나 지금도 헌 가마니짝들과 북데기, 새끼타래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바닥은 맨땅이고 벽, 천장 할것없이 몽땅 나무로 무은 귀틀이다. 창문이라는것은 하나도 없고 여느 집보다는 좀 클가말가한 문조차 연목감나무로 무었다. 해빛이라고는 귀틀틈새기로 새여들어오는것뿐이였다. 흐린 날은 그나마 없어져서 해가 뜨고지는것도 료량할수 없었다.

정섭이는 그래도 몸이 든든한 만호가 옆에 붙어있어서 한결 의지가 되였다. 더구나 만호는 밥집에서 했다는 유격대소식을 꽤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반절구에서 건너온 친구를 만났는데 장군님께서 유격대를 이끄시고 반절구로 쳐들어오시자 대낮같이 환하던 보름달이 갑자기 캄캄해졌다는것이였다. 적들은 장군님의 신출귀몰한 전법에 우들우들 떨기만 하다가 맞아죽고 찔려죽고 하였다. 장군님께서 떠나시자 또다시 보름달이 환하게 비치였다. 이렇게 천지조화를 임의로 하시는 우리 장군님이시니 저 악독한 왜놈들을 언젠가는 시원히 쳐눕혀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주실것이다. 이러한 만호의 말은 영창안사람들에게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을 더 북돋아주었다. 그는 지금도 강로인의 팔을 말없이 주무르고있었다.

정섭이는 가랑가랑 담이 끓는 할아버지의 숨소리를 지켜보며 입을 다물고있었다. 자기가 붙잡히면 할아버지는 놓아줄줄 알았는데 벌써 이틀째 내보내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여기서 숨을 거둔다면 어떻게 하는가?

자기의 고통은 충분히 각오하고 왔지만 눈앞에서 자기때문에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본다는것은 참을수 없는 고통이였다.

정섭이는 자기의 무력이 분하고 원통하였다.

《할아버지, 물이라도 좀 마시지 않겠소다?》

너무 숨이 가빠하는것 같아 우그러든 양은그릇에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는 물을 숟가락에 떠들며 말하였다.

할아버지는 힘겹게 눈을 뜨고 천천히 도리질을 하였다.

《물을 드시우다, 물이 아직 많수다.》

만호도 옆에서 권했다. 물이 몹시 귀하다. 매를 맞고 들어와서는 갈증이 나서 여섯사람앞에 우그러든 양은그릇으로 하나밖에 안주는 그 물을 약마시듯 한다.

《나는 괜찮당이···》

강로인은 힘겹게 입을 떼더니 정섭이쪽을 돌아보며 한숨처럼 이었다.

《내 걱정은 마오. 이 못난놈을 두고는 내가 쉬 죽을수도 없소, 에끼! 못난놈같이···》

강의한 로인은 정섭이가 잡혀들어온 때부터 벌써 몇번이나 되풀이한 그 욕설을 퍼부었다. 숨이 간간한 지금에도 로인의 기상은 엄하였다. 그러면서도 정섭의 이마에 난 험한 상처를 보고는 한참씩 뚫어지게 살펴보다가 가벼운 한숨과 함께 외면하군 하였다.

어둑시그레한 창고안인데다 눈빛이 흐리여진 로인에게는 그 상처가 가슴만 긁어줄뿐 똑똑히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정섭이는 할아버지의 화들화들 떨리는 손을 붙잡고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내가 다 잘못했소다. 할아버지, 기운을 차리시오다. 이제는 다시는 이런 일 저지르지 않겠소다.》

《못난놈! 제발로 찾아오다니···》

로인은 중얼거리듯 한마디 하고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정에 끌리지 않자는것이였다.

자물쇠소리가 나더니 문이 벌컥 열리였다. 문이 열려서도 별로 밝아지지 않는것을 보아서는 날이 이미 저문 모양이다.

《강정섭이 나와!》

전날 필네를 잡아오던 하늘소같이 생긴 스키모가 소리쳤다.

《우리 아이는 어째 찾는거요?》

하고 강로인이 방금전과는 딴 사람같이 기상이 꿋꿋해서 먼저 일어나앉았다. 하늘소는 아무 소리도 못듣는척하고 곧장 강정섭이에게로 뚜벅뚜벅 다가가 어깨를 잡아일으켰다. 그리고는 옆구리에서 포승줄을 꺼냈다.

여느날과는 벌써 잡도리가 달랐다.

《어쩌자는거요? 어디로 데려가오?》

만호가 함께 묻어일어나며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일어났다.

《이것들이 왜 이래? 죽고싶은가?》

능란한 솜씨로 정섭이에게 오라를 지운 하늘소는 창고안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네 이놈 정섭아!》

강로인은 거적우에 단정하게 일어나앉더니 엄한 소리로 불렀다.

《암만해도 네 걸음이 보통걸음이 아니다. 아무데 가서나 사람구실을 똑똑히 해라. 할애비나 에미보다 사람의 도리가 중하니라.》

하늘소는 스키모를 밀어제끼더니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사람의 도리가 중해? 령감이 엄살을 피우더니 말은 잘하는군. 교수대에 매달려서 꼿꼿이 뻗는게 사람의 도린가? 가자!》

정섭이는 영창문으로 떠밀려나가면서 웨쳤다.

《할아버지, 몸조심하시우다. 우리 할아버지를 부탁하오다···》

하늘소가 걷어차는바람에 정섭이의 말은 중단되였다. 만호가 왁살스럽게 닫기는 문짬으로 입을 내대고 소리쳤다.

《걱정 말라구, 할아버지는 우리가 돌볼테니···》

막막한 어둠이 좁은 영창안에 숨가쁘게 들어찼다. 남은 사람들은 문가에 선채로 움직일념을 못했다.

거적우에 단정히 틀고 앉았던 강로인이 별안간 캄캄한 천장을 우러러 채머리를 떨며 울부짖었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김일성장군님, 내 손자를 살려주십시오.》

서있던 네사람도 모두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바깥을 향하여 마음속으로 김일성장군님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