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20

 

20

 

별빛 찬란한 무포의 밤에 벌써 대홍단에서 진행될 전투계획이 빈틈없이 세워졌다.

무포에 도착해서야 척후에 섰던 인섭이와 성림이는 화락하니 땀에 젖은 군복옷도리를 활 벗어헤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야-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만. 천문지리가 모두 장군님의 손바닥안에 들어가있다더니 이게 바로 그게란말이요. 허허허, 성림동무, 내 이 속옷을 좀 보오. 다 젖지 않았나. 야- 경비도로 한복판을 걸어올 때는 급하기도 하더니. 이름그대로 그게 어마어마하게 닦아놓은 경비도로가 아니요.》

성림은 눈을 슴뻑슴뻑하며 대답을 안했다.

그는 다른것을 생각하고있었다. 혹 정찰을 면밀히 해서 적의 도로상태를 다 알아낼수도 있을것이다. 그렇다고 그 길로 백주대낮에 전부대를 행군시킬 그런 의지, 그런 신념이 과연 또 있을것인가. 직접 경비도로를 정찰한 우리들도 등줄기로 식은땀을 흘리며 살얼음판을 건느는 심정으로 걷지 않았던가.

한참이나 동안이 지난 다음에야 성림이는 자기 생각을 말하였다.

《사실을 꿰뚫어보기만 해서도 안된단말이요. 사실을 제 마음대로 휘여잡고 제 마음대로 주물러야 한단말이요. 내 <갑무경비도로>를 땀에 떠서 걸어오면서 그걸 깨달았단말이요. 우리 사령관동지께서는 세상만물을 꿰뚫어보는 천리안을 가지고계실뿐아니라 세상만물을 혁명의 목적에 맞게 굽혀내고 휘여내는 무궁무진한 힘과 강철의 의지를 지니고계신단말이요. 안그렇소?》

《가만.》

인섭이는 잠시 눈을 껌벅껌벅하더니 무릎을 철썩 쳤다.

《참 그렇소. 천리안에다 이 통이···》

인섭이는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흥분해서 말하였다.

《저 하늘만큼 크단말이요.》

조선인민혁명군은 아침 일찌기 무포를 떠나 대홍단방향으로 숲속을 행군하였다.

대홍단벌 사득판은 지도에 표시된것보다 훨씬 넓게 보였다. 삼수, 갑산이며 무산, 청진으로 통해있는 오솔길이 나있기때문에 주변의 나무들이 도끼날을 더 맞은 모양이였다.

까치봉기슭을 에돌아 사득판에 들어서는 초입에 다 찌그러져가는 국사당이 있고 그앞에 샘물터가 있었다. 가까이에 인가도 없으니 이 국사당에 행운을 빌 사람은 길손밖에 없을것이였다. 빌어도 빌어도 아무런 행운을 안겨주지 못한 국사당은 마침내 박대를 받기 시작한듯 천 한오리, 제떡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길손들이 안명수라고 부른다는 샘물만은 예이제없이 맑게 괴여 고달픈 행인들의 목을 추겨주었다.

서쪽으로 까치봉, 북쪽으로는 증산, 동쪽으로는 대로은산에 둘러싸인 대홍단벌은 스무정보가 잘 되는 벌판인데 얼핏 보면 소털같은 물자작따위 관목들이 빈틈없이 들어차고 군데군데 동녹이 쓴것 같은 물이 질쩍하게 개핀 진펄이라 쓸쓸한 인상을 자아냈다. 그래도 철은 다툴수 없어 진펄가운데 무덕무덕 솟아난 관목덤불이며 사득판 굽도리를 따라 연분홍 진달래며 철이른 철쭉꽃이 곱게 단을 두르고 수를 놓았다.

유격대원들은 여기서 날저물 때까지 지형을 익히며 휴식을 하였다. 그사이 까치봉이며 대로은산, 삼수평과 창평, 유곡 방향으로 보초대, 전초대, 차단대가 떠나갔다. 전투를 대홍단벌에서 큼직하게 벌리기 위하여 사방을 철통같이 막아놓자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날이 저물자 먼저 7련대를 두지바위, 신개척방향으로 내보내시면서 명령을 주신 다음 따로 오중흡을 부르시여 그의 어깨에 두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시였다.

《주민지대에서 전투를 크게 벌릴 생각은 하지 마시오. 대부대가 쳐나가면 놈들은 내뛸것입니다. 더러 내뛰는놈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들어갈 때 아예 전화줄을 다 끊어버리시오. 혼이 나서 내뛴놈들이 몇십리 달려가서 보고를 하게 되면 우리가 계획한 시간에 알맞춤하게 그놈들이 일제히 쓸어들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민들을 만나서는 무포에서 결정한대로 선전사업을 위주로 해야 합니다. 개별적으로도 하고 집체적으로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하시오. 깊은 숲속에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라 처음에는 좀 놀랄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희망을 안겨주어야 합니다. 나는 그쪽까지는 못가보겠으니 나를 대신해서 불쌍한 인민들을 잘 위로하고 고무해주시오.》

《알았습니다. 우리 련대가 임무를 잘 수행해야 래일 전투가 계획한대로 진행된다는것을 명심하겠습니다.》

《됐소. 이제는 마음이 놓입니다. 그리고말입니다.》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잠시 생각하시다가 말씀하시였다.

《련대장동무도 알겠지만 정찰조의 보고에 의하면 그 신개척목재판창고에 갇혔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상하지 않게 따로 조치를 취해야겠습니다. 시간적여유를 주면 그놈들이 사람들을 해칠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임무는 제가 직접 수행하겠습니다.》

《고맙소.》

사령관동지께서는 오중흡의 손을 힘있게 잡아주신 다음 이미 저만치 멀어져간 대렬쪽으로 떠밀어보내시였다.

7련대가 떠나서 얼마 못되여 사령관동지께서는 곧 8련대와 경위중대, 독립대대를 이끄시고 신사동쪽으로 진출하시였다.

이때 박덕산이와 오백룡이가 한꺼번에 그이앞에 나타났다.

《사령관동지, 생소한 주민지구로 몸소 나가시렵니까?》

박덕산의 말에 이어 오백룡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씀드리였다.

《사령관동지, 저희들에게 명령을 주십시오. 저희들이 무슨 임무든지 다 수행하겠습니다. 지금 적들이 포태산모퉁이에서 우리를 놓치고 사방에서 모여드는데 사령관동지께서 이 밤중에 직접 생소한 동네로 나가셔서는 안됩니다.》

《동무들은 무슨 말을 합니까? 무엇때문에 내가 동네에 가면 안된단말입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만면에 넘치던 웃음을 거두시고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위험합니다. 신사동앞까지 림철이 들어갔다는데 그사이 어떤 <토벌>무력이 기여들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위대도 날친다고 합니다. 저희들 8련대가 먼저 들어가서 동네형편을 봐가며 사령부를 모시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사이 경위중대가 사령부를 모시고있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령관동지, 이번만이라도 저희들 청을 들어주십시오.》

오백룡은 사령관동지의 소매에 매달릴듯 안타까이 말씀드리였다.

《나는 동무들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수 없소. 필요한 군사적조치는 다 취했소. 내가 혁명하러 나선 사람이지 호사하러 다니는 사람이요?》

엄하신 그이의 음성에 두 지휘관은 잠시 입을 다물었으나 인차 고개를 들고 더 절절한 목소리로 다시 청을 드렸다.

《사령관동지, 여기서 신사동까지는 불과 10리도 안됩니다. 우리 련대와 독립대대가 적들을 제압한 다음 련락을 띄운다 해도 한시간이면 충분할것 같습니다.》

《제가 경위중대 전령병들을 8련대와 함께 달려보내겠습니다. 사령관동지, 잠시만 참아주십시오.》

육중한 두 지휘관의 청은 너무나 간절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캄캄하게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시였다.

《내가 2년만에 조국땅에 들어와서 벌써 닷새가 되였소. 지금 내 소망은 고생에 터갈라진 우리 조국의 어머니, 아버지들의 손등을 내 손으로 한번 쓸어보고 불쌍한 어린것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우리 조선사람들의 앞날이 결코 험하지만 않다는것을 말해주고싶은것뿐이요. 그날을 생각하며 나도 고생을 참아왔고 조국에 들어와서도 우리의 목적이 너무나 크고 중요한것이기때문에 지척에 그리운 인민들이 사는 동네를 두고도 들리지 못했소.》

사령관동지의 목소리는 떨리였다. 박덕산은 그만 고개를 깊숙이 떨구어버렸다.

오백룡이 울먹한 목소리로 말씀드리였다.

《사령관동지, 용서하십시오. 후날 제가···》

《후날은 후날이요. 내가 이제 인민들과 만난대야 몇시간을 만나겠소. 동무들이 10리를 앞질러가서 무슨 차비를 하느라면 날이 다 밝겠소.

동무들, 우리가 <갑무경비도로>를 왜 대낮에 행군해왔소? 물론 적들을 혼란에 빠뜨려서 한꺼번에 자루속에 걷어넣듯 저 대홍단벌에 몰아넣자는것이 첫째 목적이요. 다음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만큼 시간을 앞당겨서 우리 인민들과 만날 여유를 더 많이 얻기 위한것이요. 인민들과 만나서 인사도 나누고 정치사업도 하고··· 그러자면 시간이 있어야 할것이 아니요. 그래서 우리가 대낮에 놈들의 경비도로를 행군해왔단말이요. 우리 인민들을 만나서 정치사업을 하는것은 어디 가나 어길수 없는 우리 혁명군의 원칙이요. 또 이번 국내진공작전과 이해 여름에 우리가 수행해야 할 전략적과업의 하나요. 나는 우리 인민들에게로 가겠소. 고생속에 시들어가는 인민들의 쓰라린 마음을 두고 내 몸이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내 마음은 편할수 없소. 동무들, 부탁이요. 같이 갑시다. 아무 일도 없을게요. 놈들은 이미 우리 수에 걸렸소.》

사령관동지의 너무나 절절한 말씀에 두 지휘관은 더는 드릴 말씀을 잊고 눈만 슴뻑거리며 서있었다. 그러나 그이께서 단호하게 걸음을 내떼시자 두사람은 황급하게 자기 부대로들 달려갔다. 사령부호위대책을 더욱 철저히 세우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