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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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동지께서 숙영지로 돌아오시니 어느새 새하얀 광목으로 만든 풍들이 여기저기 일어섰는데 련대들마다 자기 숙영지를 알뜰히 꾸리기 위하여 싱갱이였다. 땔나무를 장만해서 우물정자로 가려놓기도 하고 취사장을 널직이 잡아놓고 소랭이들을 부엌치장하듯 주런이 걸어놓기도 하고 지휘부며 우물로 통하는 길을 내고 하면서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고있다.

이 숲속에 아주 뿌리를 내리고 살 차비인듯 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묵묵히 숙영지를 돌아나오시였다. 사령부 장풍가까이로 오시니 두 녀대원이 새로 판 우물가에 앉아 열심히 무엇을 씻고있다.

금숙이를 보시는 순간 사령관동지의 가슴은 띠끔하시였다. 부대에 큰 경사가 났다거나 명절같은 때 모두가 즐겁게 웃고 떠들 때면 의례 살펴보게 되시는 얼굴이였다. 그 얼굴에 그늘이 가시고 가슴속에서 피여오르는 기쁨이 어려있을 때면 그이의 가슴은 실로 하나의 성시를 해방한것과 같은 즐거움을 느끼시였다. 그러나 그 얼굴에서 슬픔을 느끼실 때면 사람의 힘으로써는 허물어내기 어려운 요새같은것을 그 녀자의 마음속에서 느끼시는것이였다.

벌떡 일어나서 경례를 하는 금숙이의 눈가장자리는 발깃하게 물들어있었다. 그러나 얼굴빛은 밝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일부러 금숙이의 안색에는 큰 관심이 없으신듯 샘속을 들여다보시였다.

방금 판 샘이라 물은 아직 흙빛을 띠고있는데 그밑에서 대지의 맥박과도 같이 가는 물줄기가 퐁퐁 솟아서는 누렇게 흐린 물에 자그마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돌을 엎어놓은 도랑뚝으로 넘쳐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군복소매를 걷어올리고 야전밥통으로 물을 조심스레 퍼서는 무엇에 쓰자는것인지 열심히 돌을 씻고계시였다.

무슨 생각에 골몰했는지 장군님께서 다가가시는 기척도 못느끼는 모양같으셨다.

《우물을 아주 맞춤한데 팠습니다. 물이 잘 나옵니까?》

장군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놀라서 일어서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걷어올린 소매를 조심스럽게 훑어내리시며 말씀드리였다.

《샘이 면바로 터졌습니다. 높은 산속이기때문에 물이 나오겠는지 걱정했댔는데 얼마 안파서 인차 이렇게 샘이 퐁퐁 솟구쳤습니다.》

《저 하늘높이 솟은 백두산꼭대기에 물이 츠릉츠릉 괴여있으니까 웬만한데는 다 물줄기가 뻗었을것입니다. 그런데 산나물이 벌써 이렇게 자랐습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물가에 수북이 가려놓은 산나물 한줄기를 집어드시고 물으시였다. 어쩐지 그 만만한 연록색의 푸성귀에서도 이 땅의 만물에서 느껴지는 재생하는 생명의 탄력이 향긋한 풋내속에 풍겨오는듯 하시였다.

《음달에 자라는것들이 돼서 아직 성하지는 못하지만 강건너보다는 훨씬 이릅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이렇게 다르단말입니다. 가만 이건 무슨 나물입니까? 청취도 있고 참나물도 있고 별것이 다 있군. 그런데 이건 처음 보는 나물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산나물무지에서 노르께한 애잎 한줄기를 집어드시여 냄새를 맡아보시며 물으시였다.

《우리 고장에서는 무수해라고 하는데··· 청취처럼 쌈을 싸먹으면 맛이 있습니다.》

《무수해라,··· 원래 산나물이 좋습니다. 쌉쌀한것 같으면서 어딘가 심산의 향취가 깊숙이 배여있는것이 사람의 손때묻은 냄새와는 다른 탈속한 맛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숙동무는 뭘 그렇게 자꾸 씻습니까? 그건 돌이 아닙니까?》

《저는 이런 돌을 처음 봤기때문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얼굴을 붉히시며 물에 젖은 돌을 치마뒤로 감추시였다.

《돌을 처음 보다니?》

사령관동지께서는 가볍게 되물으시며 소랭이와 김정숙동지의 얼굴을 번갈아보시였다.

그러고보니 우물둘레는 이미 한절반 자갈을 깔고 단단히 다져놓았는데 소랭이속뿐아니라 삽으로 깎아낸 우물터 저쪽에 무드기 쌓여있는 자갈이 모두 여느 돌과는 달랐다.

《속돌이 아닙니까?》

《저 많은 돌을 정숙언니가 다 날라왔습니다.》

금숙이가 옆에서 말씀드리였다.

《속돌이 돼서 무겁지도 않습니다. 저는 말만 들었지 이렇게 물우에 뜨는 돌은 처음 봅니다.》

김정숙동지의 목소리는 갑자기 젖어들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다시한번 우물터를 돌아보시였다. 누가 팠는지 우물을 파기도 알뜰하게 파고 도랑도 깨끗하고 방정하게 쳤다. 풀을 깎아낸 자리도 네모반듯 하고 길도 곧게 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돌을 그냥 깔기도 아까와서 한알한알 씻어 쪽무이를 하듯 자갈을 펴고계신다.

샘속에서는 어느새 흐린 물이 구름무늬를 이루며 흘러가고 샘줄기가 있는 저밑에서 금모래가 바글바글 끓는것이 보인다. 거기에 젖은 손등을 문지르며 고개 숙이고 서있는 녀대원의 모습이 푸르청청한 숲을 배경으로 어리여있다.

물에 뜨는 돌이 있다는바람에 눈이 휘둥그래져서 아까부터 기회를 엿보고있던 재영이와 상철이가 사령관동지께서 말없이 서계시는 사이 닁큼 속돌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게 뜬단말이야?》

《야- 가볍구나.》

《맨 구멍투성이니까 뜨지, 이런 돌이 왜 여기만 있을가···》

샘물은 한점 흐린데 없이 맑아졌다.

좁다란 수면에 초록빛 숲과 푸른 하늘과 그 한끝에 걸린 하얀 구름까지 선명하게 비쳐있는데 그 밑창에서는 끊임없이 용솟는 맑은 물줄기가 바글바글 금모래를 일어내고있다.

《물맛이 좋겠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신기한 보물이라도 바라보듯 샘속을 물리지 않고 들여다보며 말씀하시였다.

《정말 얼마나 시원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물을 계속 마시면 사람의 마음도 깨끗해질것 같습니다.》

금숙이가 밝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드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서둘러 야전밥통을 정갈하게 부시여 남실남실 샘물을 길어 그이께 받쳐드리시였다.

《원래 이런 물은 두무릎을 꿇고앉아 코잔등을 적시며 흠뻑 들이마셔야 제맛이 나는건데··· 어디 맛을 봅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야전밥통을 받아드시고 껄껄 웃으시였다. 어떻게 닦았는지 칠이 벗겨진 대신 알른알른 은빛을 뿌리는 밥통굽에는 뽀얀 김이 서린듯 가는 이슬이 맺혔는데 밥통속에서도 샘에 어리였던 푸른 숲과 푸른 하늘이 그대로 어리여있었다.

《어, 시원하군.》

단숨에 밥통을 절반이나 기울이신 사령관동지께서는 가슴 한끝까지 찌르르해지는것을 느끼시며 호탕하게 말씀하시였다.

《저는 정말 철이 들어서는 이런 물맛을 처음 보는것 같습니다.》

김정숙동지의 목소리는 기쁨에 떨리고있었다.

《조선의 물과 같이 맑은 물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앞으로 세상사람들이 모두 조선의 물을 마시러 올 때도 있을것입니다. 자, 우리 꼬마들도 이 물을 좀 마셔보지.》

사령관동지의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상철이가 그이의 손에서 야전밥통을 제먼저 받아들었다. 그러나 재영이가 아까 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물전에 두무릎을 꿇고 코잔등을 물우에 갖다대자 상철이도 밥통을 놓고 그옆에 꿇어앉았다.

《허허허, 조심들하라구. 다른 사람이 보면 우물을 어지럽힌다고 말듣겠소.》

사령관동지께서는 통쾌하게 웃으시였다.

금숙이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내여 웃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였다.

돌아오는길에 사령관동지께서는 두 꼬마를 한옆에 하나씩 끼시고 숲속을 천천히 걸으시며 백두산부석에 대해 설명해주시였다.

그리고 빽빽이 들어찬 아름드리나무들을 쓸어보며 말씀하시였다.

《부석만 신기한것이 아니요. 나무들을 보라구. 동무들은 내내 밀림속에서 살다나니 나무같은것은 무심히 보는것 같은데 이것은 다름아닌 우리 조국의 나무이고 우리 인민의 재산이요. 얼마나 좋은 나무들이요! 이런 나무들을 가지고서는 큰 집도 지을수 있고 큰 배도 무을수 있소.》

그러시면서 조국을 해방한 다음 이 나무들로 높고 큰 집들을 지어 행복하게 살 그날의 휘황한 전망을 펼쳐보이시였다.

전령병들은 사실 나무에 대해서는 무심히 보아왔기때문에 그이의 말씀을 듣고보니 부끄럽기도 하였지만 갑자기 새로 돋기 시작한 이깔나무의 연록색 새 순이 더없이 찬란하고 아름답게 보이였다. 그들은 꺼실꺼실한 이깔나무의 밑둥을 끌어안고 아스라한 창공높이로 뻗어올라간 우듬지끝을 바라보며 《야- 이건 내 나무다!》하고 소리치기도 하였다.

숙영지에 돌아오시니 사령부 장풍은 이미 일어선지 오래였다.

《중대장동무.》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아직도 무엇인가 미진한지 풍안을 손질하는데 여념이 없는 오백룡을 부르시였다.

《부르셨습니까?》

오백룡은 조그마한 손도끼를 손에 든채 허리를 폈다. 이때 박덕산이 나타났다.

《마침 잘 왔습니다.》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두사람을 향하여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이 숲속에 우리 인민혁명군전사들이 와서 이렇게 기뻐하는것을 오늘은 별로 알 사람도 없지만 그 뜻은 얼마나 깊은것입니까?》

박덕산과 오백룡은 사령관동지의 말씀의 뜻을 더 깊이 새겨볼양으로 잠자코들 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잠간 두 지휘관의 얼굴을 바라보시다가 감회깊은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조국에 오기 위하여 그 무서운 행군을 했고 마침내 적을 치고 오늘은 조국의 품에 안겼습니다. 아까 상철이가 이 땅에 안기기 위하여 우리가 그 어려운 <고난의 행군>을 했구나 하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고 하던데 우리 동무들 생각이 모두 그럴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런 심정을 인민들이 알게 되면 얼마나 큰 영향을 받겠습니까? 나는 우리 인민혁명군전사들의 이런 심정을 이 숲속에 남겨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백룡은 비로소 그이의 의도를 짐작하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신중한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우리 혁명군대원들의 뜨거운 마음이 담긴 글 같은것을 남겨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을것입니다. 덕산동무,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전사들이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싸워왔으며 싸워갈것인가 하는 결의가 어린 그리고 전체 조선인민들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 구호를 남겨놓도록 합시다. 나무에 한창 물이 오를 때 나무껍질을 벗기고 좋은 글을 써놓으면 송진이 올라서 오래동안 지워지지 않을것입니다. 그러면 기념도 되고 또 여기에 목재판로동자들이나 나물 캐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수 있으니 그런 사람들이 보면 힘을 얻을수 있습니다. 원쑤들은 그것을 보면 질겁할것입니다.》

《알았습니다.》

박덕산은 힘차게 대답하고 달려나갔다.

오백룡이도 서둘러 칼을 찾아들고 뒤따라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