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19

 

19

 

어디라없이 풋내가 떠돈다. 꽃냄샌지 풀냄샌지 분간되지 않는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콕 찌를듯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모두 코날개를 벌름거리며 그 냄새를 량껏 들이마셨다. 5월의 다양한 해빛이 따뜻이 내리쬐여 노르끼레한 석비레의 모래가 깔린 정갈한 행군길은 포근한 맛을 자아냈다.

유격대원들은 연신 코날개를 벌름거리며 숲속을 더듬기도 하고 하늘을 쳐다보기도 한다. 온갖 새가 지저귄다. 숲속을 누비고 하늘을 가르며 종횡무진으로 날아다닌다. 그것들도 꽃냄샌지 풀냄샌지 모를 그 알싸하고 향긋한 풋내에 취해서 그렇게 우짖으며 돌아치는지 모르겠다.

아름답다. 이 신선하고 그윽한 향기, 싱싱한 빛갈, 조화 그리고 포근하고 살뜰한 느낌을 어떻게 말했으면 좋으랴.

유격대원들은 《야- 저 새!》《야- 저 구름!》하고 외마디소리를 지를뿐 자기들이 느끼는 그 감동을 표현하지 못했다. 모두 입은 웃고있었으나 눈들은 자꾸만 슴뻑인다.

꿈결에도 잊지 못하던 조국이 이처럼 아름다운데 대해서 새삼스럽게 경탄하였다.

벌어질가말가 망설이며 해님의 눈치라도 보듯 하얀 꽃잎이 가느다랗게 배죽이 내민 은방울꽃의 도톰한 망울이 고비, 고사리의 덤불 한옆에 줄줄이 드리워있다. 그우에서는 아가위 역시 해빛이 눈에 부셔 차마 바로 뜨지 못하겠다는듯 제 열매모양의 망울을 드리우고있다.

벼랑에는 들나리, 길에는 냉이, 길짱구- 눈에 뜨이는 모든 나무, 모든 풀이 꽃을 간직하고있다.

이제 며칠이면 만발할것이다. 아마도 조선인민혁명군의 장엄한 총소리가 이 땅에 메아리칠 때 그것들은 짝자꿍을 치며 춤을 추듯 활짝 벌어질것이다.

삼지연은 갓 짜놓은 비단필과 같이 찬란하였다.

파란 호수를 배경으로 피여오르는듯 한 이깔나무의 신록이 줄무늬를 놓았는데 연분홍빛 진달래가 기슭에도 피여나고 물속에도 어리여 눈부신 색채의 조화를 이루고있었다.

《야-》

유격대원들은 휴식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호수가로 달려갔다. 이쪽 호수에서 저쪽 호수에로 줄달음치듯 돌아가는 동무가 있는가 하면 부석으로 이루어진 백사장가에 넙적 엎드려 코잔등을 적시며 뼈속까지 얼어드는듯 한 물을 숨도 안쉬고 들여마시는 동무도 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혜산과 무산방향에서 들어오는 길에 각각 한개분대의 감시조를 파견하시는 한편 《갑무경비도로》와 그 주변에 정찰을 내보내시고나서 정찰조원들이 돌아올동안 휴식하면서 간단히 점심도 치르고 또 앞으로 100리어간은 물이 없으니 이 맑은 물을 실컷 마시고 가자고 말씀하시였다.

점심요기들을 한후 모두 기껏 물을 마시였다. 그리고는 야전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넣었다. 그러나 잠시가 못되여 그 물을 쏟아버리고 또 새 물을 채운다.

박덕산은 마치 들놀이에 온 아이들처럼 물탕을 튀기고 뜀박질을 하고 모래불에 서로 그러안고 뒹구는 대원들의 모습을 한옆으로 바라보며 슬금슬금 혼자 걸었다.

누가 옆에 와서 집적거릴가봐 일부러 입을 꾹 다물고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속이 근질근질한게 누구와 씨름이라도 한번 안아보고싶지만 체면상 그럴수도 없고 또 대상이 될만 한 적수도 없다. 오중흡이를 만나서 좀 이야기라도 나누고싶었으나 원체 꼼꼼한 사람이라 또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7련대주변을 몇번이나 지나며 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럴바에는 혼자 슬쩍 빠져나가서 그놈의 《갑무경비도로》를 먼저 봐두는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밤 지휘관회의에서 그렇게 열을 올려 론쟁을 벌리던 일이며 자기가 체험한 뼈아픈 자책감을 생각할 때 사령관동지께서 놈들이 새로 닦아놓은 《갑무경비도로》로 대낮에 행군하여 일행천리동정하자고 하시던 그 말씀이 지금도 우뢰처럼 머리를 치는것이였다.

덕산은 행복하였다. 그리고 온몸에 자부심이 뿌듯하도록 넘쳐났다. 그러는 한편 도무지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이미 정찰조가 나갔고 감시조가 배치된것만큼 별일은 없겠지만 이제 곧 사령관동지를 그 길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할 때 더구나 궁금증을 누를수 없었다. 그러나 경비도로에 나간다는 눈치만 보이면 그 누구든 또 줄줄 묻어나올수 있기때문에 일부러 찌뿌드해서 걷자니 마음이 자꾸만 들떠지는게 훌 회파람이라도 불어질것 같아서 장히 참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큰길에 접어들었다.

덕산은 교차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과연 곧게는 내뻗었다. 길을 닦기도 잘 닦았다. 포장을 안했달뿐이지 바닥이 석비레판이라 저 큰 도시의 아스팔트길 못지 않다. 이러한 길이 300리나 뻗어있는것이다.

덕산은 처음 한동안 주변을 경각성있게 살펴본 다음 별다른 정황이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확인하자 아까부터 힘들게 다물고있던 입을 히죽이 벌렸다.

《네놈들이 보천보를 얻어맞고 너무 혼이 나서 이 길을 닦기 시작했다더니 그만하면 길은 괜찮게 닦았다. 헌데 이 길로 우리가 먼저 네놈들을 치러 갈줄은 몰랐겠지.》

덕산은 혼자 소리내여 말하고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저편 길가에 별로 꺼져들어간듯 한 곳이 눈에 띄여 서둘러 다가갔다. 바투 가서 보니 유난히 패운것 같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비가 오면 물이 좀 고일것 같았다.

《길도 더럽게는 닦았군.》

덕산은 두팔을 옆구리에 척 짚고 아래우를 살펴본 다음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꼼꼼히 길도 살피고 길가의 이깔나무숲속을 샅샅이 훑어보며 천천히 무산방향으로 걸어나갔다. 한참을 올라가니 강철룡이가 한개분대의 감시조를 데리고 경계근무를 서다가 놀라서 다가왔다. 그는 의례 련대정위가 순찰을 나왔거니 생각하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보고를 하였다. 덕산은 방금까지 입가에 떠돌던 웃음을 싹 거두고 근엄한 표정으로 보고를 받았다.

《무슨 정황이 없소?》

《개미새끼 한마리 얼씬하지 않았습니다. 좀 이상한데요. 이렇게 좋은 길에 사람그림자 하나 볼수 없으니···》

강철룡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의논조로 말했다.

《그야 그럴수밖에 있소? 어제밤회의에서 사령관동지께서 다 말씀하시지 않았소? 개통을 아직 안했으니 인민들은 다니지 못하게 하지, 그런데 왜놈들은 지금 정신이 숲속에만 쏠려있고 또 우리가 밤에 움직이려니 생각해서 지금쯤 어디서 낮잠이나 자고있을지 모른단말이요.》

《허참, 기가 막힌 일이지요.》

강철룡도 덕산이와 무슨 이야기를 좀 나누어봤으면 하는 눈치를 보이며 옆차기에서 담배쌈지를 꺼내자고들었다.

《그래도 동무네는 경각성을 늦추지 말고 잘 살피란말이요.》

덕산이는 말을 많이 했다가는 지금 자기 심중에 깊이 간직하고있는 그 어떤 소중한것이 어쩐지 그런 말속에 다 새여나갈것만 같아 다시 근엄한 표정을 짓고 감시조앞을 지나쳐갔다.

길은 여전히 곧게 열려있다. 자동차가 마주어길만큼 넓은 길이다. 굵지도 가늘지도 않는 노르스름한 모래가 차분히 깔려서 다양한 해빛에 반짝거린다.

길 좌우에 늘어선 이깔나무의 연두색 신록이 길우에까지 비치는듯 하다.

《네놈들이 우리를 잡겠다고 만들어낸 바로 그 총을 빼앗아서 네놈들을 치라고 우리 장군님께서 근 10년전에 말씀하셨지. 그래 지금도 네놈들은 네놈들이 만들어낸 총으로 얻어맞고있는데 아직도 그 맛을 몰라서 오늘은 또 이렇게 우리가 갈 길까지 닦아놓았군. 에- 너절한놈들, 그러다가는 밥 빌어서 죽도 못쒀먹겠다.》

성미가 어진 덕산이로서는 상당히 모진 욕이나 한것 같이 생각되여 기분이 후련해서 활개짓을 하며 척척 길한복판을 걸어가는데 구붓하게 휘여들어간 저끝에서 웬 사람그림자가 얼씬하였다.

덕산은 얼른 몸을 숨기려다가 멎어섰다. 찬찬히 보니 오중흡이다. 어디까지 갔다오는지 소풍이나 나온듯 몸가짐이 여간 흥그럽지 않다.

박덕산은 《으흠-》하고 턱을 한번 끄떡거린다음 길가에 소리없이 퍼더앉아 오중흡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특별히 몸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될수록 눈에 잘 뜨이지 않게 숨을 죽이고 앉아서 오중흡의 거동을 살폈다.

과연 그것은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이였다. 그렇게 무게있고 빈틈이 없으며 언제나 대오의 앞장에 서서 자신의 모범으로 사령관동지의 뜻을 받들어나가는 7련대장 오중흡이가 저렇게 10대소년처럼 놀아날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오중흡은 혼자 나지막하게 코노래를 흥얼흥얼하다가 돌멩이를 하나 발견하더니 아이들 망돌차기하듯 한발을 쳐들고 툭 걷어찼다. 그것이 아마 견준 방향으로 제대로 안갔는지 재빨리 따라가서 이번에는 반대쪽을 향하여 조심스럽게 슬쩍 찬다. 이번에는 너무 조심을 해서 그런지 거의나 나가지 않았다. 오중흡은 한쪽 다리를 들고 한참 겨냥을 하여 좀 세게 툭 찼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돌은 발딱 일어서며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그르르 돌다가 길옆으로 굴러떨어져버렸다. 오중흡은 집요하게 돌멩이를 쫓아갔다. 그러다가 주의력이 분산되기 쉬운 소년들처럼 주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머리우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에 정신이 팔려버린것이다. 오중흡은 불시에 새를 잡을 생각을 한 모양으로 한참 빤빤한 길우를 더듬다가 집어들만 한것이 없으니 방금 쫓아가던 돌을 찾아쥐고 멋지게 돌팔매질을 한번 하자고 하는데 새 두마리가 먼저 눈치를 채고 포르릉 날아나버렸다.

오중흡은 돌멩이를 겨누어든채 날아가는 새를 분한듯이 바라보며 고개를 돌린다.

박덕산은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하여 고개를 숙였다. 무릎옆으로 살펴보니 할일없이 손에 쥐인 돌을 멀리 날아간 새쪽으로 집어던진 오중흡은 문득 길우에서 삭정이토막을 발견하고 그것을 길밖으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또 무엇이 없는가 해서 주위를 살핀다. 아마 가며오며 길에 무엇이 널린것이라도 있으면 그렇게 깨끗이 거둔 모양 덕산이가 새삼스럽게 자기 주변을 돌아보아도 검부레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덕산은 어쩐지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오중흡이라 하면 조선인민혁명군의 주력부대 지휘관으로서 적들치고 벌벌 떨지 않는놈이 없다. 사실 사령관동지의 비범하고 신출귀몰한 전략전술을 몸으로 받들어나가는 그가 겪어보지 않은 위험이 없고 당해보지 않은 고생이 없다. 그렇지만 언제나 사령관동지의 새로운 전법이 나올 때마다 그 의도를 제일 깊이 리해하고 그것을 온몸에 끓어넘치는 환희로써 받들어나가는것이다. 《갑무경비도로》로 백주대낮에 일행천리하라는 사령관동지의 명령이 내렸을 때 너무나 뜻밖이면서도 너무나 기묘한 그 전술적타산에 경탄한 나머지 기쁨에 겨운 자기 마음을 묵새길길이 없어 저렇게 홀로 즐기고있다는것을 자신의 마음을 통하여 거울처럼 비쳐볼수 있는 덕산이였다. 그렇기때문에 그는 오중흡이가 어디서 주어들은 막대기를 휘휘 내저으며 다가오자 오히려 마주 일어서기가 난감한것을 느꼈다.

어쩐지 자기가 엿본것을 눈치채면 오중흡이가 면구해할것도 같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어지럽혀서는 안될 곳에 발을 들이민듯 한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오중흡이 먼저 이쪽을 발견하고 곧 평소의 그 고정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무슨 정황이 있습데?》

덕산은 오중흡이 그렇게 멀리까지 홀로 걸어갔다온것은 의례 적정을 살펴보기 위한 순찰이라는것을 자기는 다 안다는듯이 심상한 어조로 물었다.

《없습데.》

오중흡은 더 좀 그럴듯한 대답을 찾아낼만 한 여유가 없는지 단마디로 받아외웠다. 그러자 이쪽도 좀 멋적게 되여 다시 그 말을 받아외웠다.

《없습데?》

《없습데.》

《아무것도?》

《아무것도.》

그제야 덕산의 눈에 오중흡이가 쥐고있는 막대기가 띄였다.

《그 막대기는 어디서 났소?》

《이 막대기말이요?》

한동안 무슨 말인가 해서 얼떠름해있던 오중흡은 자기가 쥐고있는 막대기를 쳐들어보더니 별것을 다 묻는다는듯이 심드렁해서 대답했다.

《저기서 주었소. 왜 그러오?》

《사람두, 내가 그걸 몰라서 묻는줄 아오.》

박덕산은 오중흡의 어깨를 툭 쳤다.

《나는 동무의 심정을 모를것 같아서 그러오.》

두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것을 확인하자 별안간 와락 그러안고 어깨를 두드리다가 서로 마주보고 눈을 슴뻑거리며 껄껄 웃었다.

위대한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그이의 품에서 함께 자라며 살아도 죽어도 오직 혁명의 한길에 충성을 바쳐나가는 기쁨과 자랑이 사선을 수없이 헤쳐온 두사람의 무쇠같은 가슴을 감동의 눈물로 젖게 하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