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17

 

17

 

필네는 불과 한시간전에 그렇게도 마음을 다잡고 걷던 그 길을 허탈에 빠져서 걸음마다 비틀거리며 되돌아왔다. 소홍단수기슭의 좁다란 오솔길에 나서니 채양버들가지가 옷자락을 잡아채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놓기도 하였다. 그래도 손 한번 움직이고싶지 않았고 몸을 피할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애초에 무엇이 자기 몸을 건드린다거나 발부리에 무엇이 걸채인다는 느낌부터 떠오르지 않았다. 하늘에는 종다리가 높이 떠서 울었다. 자유로이 내리꽂혔다가 가맣게 솟구쳐올라서는 목청껏 울어대는 그 새가 부러웠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는 필네의 눈굽에는 저도 모르는 사이 물기가 핑 하니 어리였다.

그 하늘소같은놈한테 떠밀리여 이 길을 갈 때까지는 무섭기도 하고 걱정도 스러웠지만 떳떳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호리모도구미》현장창고에는 면상에 반창고를 붙인 자위대 소대장도 있고 눈과 코가 퍼렇게 부어오른 리호철이도 있었다.

《네가 강정섭이때문에 삼장에서 모두 끌려온것을 알면서도 그 집에 갔단말이지?》

하고 리호철은 어금이속으로 씹어뱉듯이 사납게 웅얼거리고 자위대 장교놈은 격검채로 책상을 땅- 하고 내리쳤다.

《강정섭이 련락을 갔댔지?》

그럴즈음에 투박하게 무은 창고문이 쩡하니 열리더니 정섭이가 성큼 들어섰다. 그가 나타나자 방안에 우글거리던 모든 놈들이 마치 무서운 사람이라도 맞다들린듯이 황급해 돌아가며 쩔쩔매였다.

자기 역시 얼마나 놀랐던가. 할아버지가 잡히고 금천동으로 가던 일행이 몽땅 도강증을 떼운우에 자기까지 끌려온것이 모두 정섭이때문이였다. 그래도 누구 하나 그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틀림없이 놈들의 눈에 단단히 덧난것 같은 그가 잡히지 말기를 바라며 자기들의 고통을 참고있지 않는가. 그런데 본인당자가 제발로 나타나고보니 그처럼 긴장하여 뻗치고 섰던 아래다리가 매시시해나며 떡심이 풀렸다.

정섭이가 나타나자 필네는 뒤전으로 밀려났다.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쫓기다싶이 문밖에 나서고보니 허무한 생각이 났다.

정섭이는 바로 이렇게 되기를 원해서 제발로 그 무시무시한 곳에 나타났을것이다. 생각하면 그의 마음속도 알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동무들을 생각해서··· 혹시는 내 생각도 해서 그렇게 제몸을 위험앞에 내댔을것이다.

그럴수록 필네는 분하였다. 그 호철이와 자위대 장교놈이 정섭이에게 복수하려고 지지고 볶을 생각을 하면 걸음이 걸려지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들을 위하는 길이 그렇게 할길밖에는 없단말인가.

그 원쑤같은놈들을 쳐눕히고 사람들을 빼낼수는 없단말인가.

이제 정섭이가 붙잡혔으니 도강증을 내줄것이고 할아버지는 놓여날것이다. 그러나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도강증을 찾는다 하더라도 이 마음을 안고 그대로 이 한이 맺힌 땅을 떠날것 같지도 않았다.

힘들게 산을 넘어 신사동으로 내려오니 해가 기울어졌다. 저녁바람이 분다. 구새통들에서 꾸역꾸역 연기가 피여오르고 아이를 불러들이는 아낙네들의 목소리가 울리여온다.

검부레기가 날려다니는 정섭이네 집 마당에 들어서니 썰렁한 랭기가 떠도는것이 사람 사는 집같지 않았다.

그러나 마당에서 인기척이 나자마자 정지문이 열리였다.

《누가 왔소?》

이런 병약한 어머니의 목소리에 이어 경섭이가 빠끔히 바라보더니 《누나다!》 하고 달려나왔다.

어머니도 맨발바람으로 허둥지둥 뛰여나왔다.

《에그, 일없이 나왔구만. 그래 욕을 보지는 않았나?》

경섭이를 그러안고있던 필네는 어머니의 숨가쁜 물음에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욕은 무슨 욕을 보겠어요? 죄가 있어야지요.》

《죄야 그놈들이 만들면 죄지. 내가 필네를 보내놓고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더니 이제는 마음이 좀 놓이는군. 어서 들어가자구. 혹시 할아버지를 보지는 못했나?》

어머니는 먼저 방안으로 들어가다가말고 물었다.

《만나보게 하지 않아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무고하신것 같아요.》

《에그, 그만해도 다행이지.》

아직 아들이 붙들렸다는것을 모르는 녀인은 필네가 무사히 나온것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상한 얼굴에 그나마 활기를 띠였다. 그는 서둘러 오지화로에 겨릅대를 찔러 불을 붙이더니 아직도 토방에서 서성거리는 필네를 어서 들어오라고 독촉했다.

필네는 잠시 망설이다가 구들에 올라섰다. 어쩐지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실컷 울고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생각할 때 그럴수도 없었다. 선채로 둘러보니 빤한 등불아래 휑뎅그렁한 방안모습이 떠올랐다. 그제는 아래웃방에 사람이 그득했고 또 영섭이 생각에다 아이들에게 볶이노라고 미처 돌아볼 겨를도 없었던 방안이였다. 이제 모두 죽고 잡히고 한끝에 병든 어머니와 나어린 아들 하나가 남고보니 그 오돌막같던 귀틀집이 별로 휑하고 쓸쓸해보였다.

등디에 불을 켜자 어머니는 밝은 얼굴로 돌아앉았다.

《할아버지가 잡혀가셨지, 이 애 형은 어디로 튕겨났는지 모르지, 그런데다 필네까지 끌려가니 무엇을 끓일 생각이 나더라구. 마침 앞집에서 죽 한그릇을 가져왔길래 이 애를 먹이고 그냥 한끼를 굼때자고 했더니 필네를 보니까 나도 시장하구만. 조금 기다리라구. 우리 이제 감자를 쪄먹자구.》

《어머니, 나는 아무것도 먹고싶지 않아요.》

《먹고싶어서만 먹나. 아침에 나섰다는게 여태 굶었겠지. 내가 입맛 덧난대로 하면 아마 굶어죽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떻게 하겠나. 모진 마음을 먹고 어떻게든 살아갈 궁리를 해야지.》

《그럼 여기 앉아계셔요. 내가 찌겠어요.》

《에그 좀 앉아있으라는데, 오늘 종일을 돌아다니고 그놈들 단련을 그만큼 받고 또 무슨 기력이 남아있겠다구···》

필네는 어머니가 서두르는것을 보니 기가 막혔다. 아들이 잡혔다는것을 알려주면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을것 같았다. 감자를 찌겠다는것도 더는 말릴 힘이 없었다.

하는수없이 둘이 나란히 아궁앞에 앉았다. 정지구석에서 싹을 도려낸 감자 한바가지를 물함지에 쏟아놓고 숟가락날로 껍질을 벗기였다.

《그때 영섭이가 구운 감자를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왔더구만. 하칠소의 누나가 구워주더라구. 처음에는 제 동생녀석에게도 나누어주고 인심을 쓰더니 한참후에는 또 무슨 심술이 났는지 싸움질을 벌려놓고··· 에그, 그녀석이 집에 있기만 하면 소란도 피우더니 이제는 집안이 이렇게 적적해졌구만.》

새로 살라넣은 장작이 피면서 불빛이 수척한 녀인의 얼굴에 어룽어룽 진한 음영을 지어놓았다.

《어머니, 편치 않은 몸으로 이 고생을 어떻게 겪겠어요?》

필네는 시름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니 별수 있나, 할아버지만 무사히 놓여나면 감자나 묻어놓고 그럭저럭 싹트기를 기다려야지. 그녀석은 지금쯤 어디에 가있는지···》

어머니가 불시에 숟가락 놀리던 손을 멈추고 정지문밖으로 어두운 밤하늘을 내다보는바람에 필네는 무슨 죄나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어머니는 인차 생각을 돌리고 우선우선하며 말했다.

《그녀석이야 동무도 많겠다, 젊은 나이에 어디 가선들 못배길라구. 그저 불쌍한것이 내인들이라니까. 자, 대수해서 안치자구.》

한바가지 되나마나한 감자는 인차 김이 올랐다. 그것을 바가지에 담아서 또 대단한 손님이라도 치를듯이 개다리소반에까지 받쳐왔으나 어머니도 필네도 한개를 다 못먹었다. 경섭이만이 필네의 무릎에 앉아 두어개 주어먹더니 그 애도 중병끝에 또 죽까지 먹은 뒤라 인차 물러나앉고말았다.

어머니는 의례 필네가 자고갈것으로 알고 자리차비를 하였다. 밤도 깊었다.

필네도 어머니와 나란히 하루밤을 실컷 이야기나 하면서 자고싶었다. 그러면 외로운 마음도 답답한 속도 풀릴것 같았다. 그러나 객주집에서 눈이 까매서 기다릴 일행을 생각할 때 그럴수 없었다. 밤이 열둘이라도 돌아가야 한다.

《어머니, 암만해도 가야겠어요. 내가 어머니곁에서 자고싶은 마음이야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모두 너무 기다릴거예요. 래일 길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암만해도 가야겠어요. 갔다가 래일 못떠날 형편이면 다시 오겠어요.》

몇번이나 일어났다가 도로 앉았다가 한 끝에 필네는 결정적으로 문밖에 나섰다. 어머니도 더는 말리지 못하고 마당끝까지 따라나왔다.

《그저 마음이 다심해서 그런당이. 이 밤중에 누가 기다리겠다구 험한 산길로 혼자 갈고.》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캄캄한 숲속을 두려움에 차서 바라보았다.

필네는 종시 정섭이의 소식을 알려주는것이 옳은지 알리지 않는것이 옳은지 판단을 못내린채 캄캄한 밤길에 나섰다. 처음에는 길을 꽤 찾아내겠는지 조마조마하였다. 그저께 한번 가본적이 있을뿐이다. 그러나 정작 동네를 벗어나서 산길에 홀로 접어들자 차라리 마음이 가라앉았다. 차가수물동다리에서 정섭이를 만나던 지난해 여름밤은 밤길을 걷는것이 무서웠다. 짐승도 무서웠고 귀신도 무서웠다.

그러나 한해가 못됐는데 이제는 낯선 밤길을 가도 무서운 생각은 없었다. 그저 가슴이 터져나갈듯이 답답하고 서러웠다.

륙십로인인 할아버지와 친한 사람들을 구원하자고 정섭이는 제발로 그 무도한놈들앞에 나타났을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깨끗한 마음인가. 그러나 그때문에 그는 지금도 죽도록 매를 맞을것이다. 그놈들이 제 밸풀이까지 하자고들테니 때리면 얼마나 악착하게 때릴것인가.

두서없는 생각에 잠겨 걷다나니 길을 잘못들어 한참 허둥거렸다. 어느 구새먹은 나무우에서 부엉이가 귀신같이 소리를 지르며 깃을 치고 날아갔다.

그래도 무섭지 않았다.

그래 정섭이가 그 깨끗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구할길이 그 길밖에 없단말인가.

《오빠, 오빠는 지금 어디 있어요?》

필네는 안타까운 나머지 마침내 앞에 와 막아서는 나무그루에 머리를 쓸어박고 목메여 부르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