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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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구네 일행은 점심참이 좀 지나서 삼장읍거리에 들어섰다.

이런 벽지에 이런 거리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만큼 번창하는 거리였다.

두만강기슭을 따라 양철지붕을 이은 건물들이 주런이 늘어섰다. 경찰서, 면소, 세관하는따위 관청들뿐아니라 들쭉회사며 제지회사출장소도 여기에 있고 증산일판의 숲을 갉아먹는 청부업자들도 큰놈들은 대개 이리로 모여든다.

두만강으로 흘러드는 서두수와 소홍단수의 하구도 아래우로 열려져있어서 떼군들을 위한 객주집들이 추녀를 늘여세웠고 잡화상, 포목상, 리발소, 양복점에 색주가집까지 촌스러운 화장을 하듯 커다란 간판으로 초라한 몰골을 가리우고 어깨를 비비대며 서있다.

국경다리라는것은 생각과는 달리 산골에 흔히 있는 좁다란 나무다리에 지나지 않았다. 좀 색다른것은 그 한가운데 문짝을 매달고 밤이면 자물쇠를 채우게 되여있는것이였다. 그 다리문앞에 총대를 멘 수비대의 보초놈이 서있고 이쪽과 저쪽기슭에는 각각 경관과 세관관리가 서서 통행인들을 단속하고있었다.

일행은 그 어떤 행운의 나루배라도 기다리고있을듯이 땀을 발발 흘리며 길을 다우쳤지만 정작 넘어서야 할 국경에 이르자 모두 떡심이 풀려 강기슭에 풀떡풀떡 주저앉아버렸다.

필네도 강기슭에 비뚤서하게 서있는 백양나무에 등을 대고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았다. 봄시위에 불어난데다 소홍단수와 서두수의 물을 받아안은 두만강은 어느덧 장강을 이루어 도도히 흘러간다.

무엇때문에 모두 그렇게도 서둘렀던가. 과연 저 강을 넘어가면 배불리 먹고 편안히 잠잘수 있는 생활이 있을것인가. 모든 사람이 그렇게도 못 잊어하는 고향에 돌아갈 그 길을 저 음침한 산발너머로 가면 찾을수 있단말인가.

필네는 땀발에 젖은 귀밑머리를 쓸어넘기며 볼에 와닿은 강바람의 슴슴한 물비린내를 가슴껏 들이마셨다.

그것은 다 빈말이다. 거기에 가면 무슨 수가 날듯이 안해를 설복하던 윤원구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간다. 장대선아바이며 김인수며 세상풍파 다 겪었다는 저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서 갈가. 하지만 가지 않으면 또 어떻게 할것인가. 그저 죽지 못해 허우적이는 몸부림이다.

자기에게는 그래도 강을 건너가서 유격대소식을 듣고 오빠를 찾아보겠다는 희망이 있다. 그런 자기의 가슴도 이처럼 젖어드는데 아무런 기약없이 이 기슭에 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피눈물을 뿌릴것인가.

눈물이 그렁해서 새삼스럽게 떠나온 길, 아득히 멀어진 정든 산발들을 돌아보던 필네는 옆에서 들려오는 너무나 심상한 목소리에 오히려 놀라서 귀를 기울였다.

《내가 이자 상점에서 마꼬 한갑을 샀는데 한대 피워보오.》

장대선아바이가 김인수에게 하는 말이다.

《아바이는 그냥 우는소리하더니 돈푼이나 있는 모양이요그려.》

김인수는 시답지 않게 중얼거리며 담배 한대를 뽑아물었다.

《임자들도 한대씩 태우라구. 넨장, 아무리 따라지목숨이기로서니 내가 조상의 땅을 마지막으로 하직하면서 담배 한갑을 못사피운단말인가.》

《거 로자를 아껴써야지, 이게 다 문어 제다리 잘라먹긴데···》

윤원구가 담배를 뽑아물며 핀잔비슷하게 말했다.

《아낄만 한 로자도 없네. 허 여기 물부리도 하나 있군. 그러나 저러나 담배맛이 괜찮네. 좀 슴슴한것 같긴 해도 역시 량반들 담배가 다르긴 다르군.》

하고 장대선아바이는 여태 피워보지 못한 권연의 중둥을 어색하게 쥐고 마치 처음 담배를 배우는 사람처럼 후-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히죽이 웃었다.

《여보시오, 가수선생.》

그는 침울한 눈매로 물결을 바라보는 김인수에게 별로 다사하게 말을 건다.

《그 댁은 세상 안가본데가 없다지만 이 장대선이로 말해도 열다섯에 구성군 관서면 향교리를 나서서 서른해나마를 안다녀본데가 없소. 그러다나니 고향에 대해서 남은것이라고는 구성군 관서면 향교리 16번지 하는것밖에 머리에 새겨진게 없는데 그래도 그 땅이 그냥 잊혀지지 않는것은 무슨 까닭인가? 가수선생은 손에 먹물깨나 묻혔으니 이런 리치를 알갔지?》

《그게 다 사람이 똑똑하지 못해서 그런것이지요. 잘먹고 잘사는놈들을 보시오. 그것들이 어디 고향이요, 인정이요 하는것들때문에 눈물을 짭디까?》

김인수는 그 어떤 모멸감에 불타는듯 격렬한 어조로 말했다. 장대선이도 그렇고 다른 일행도 그의 너무나 세찬 반응에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들었다.

《앞으로라도 잘살 생각이 있으면 그런것을 싹 머리속에서 걷어내야 해요.》

《허지만 선생.》

하고 장대선이는 당황하여 말하였다.

《그걸 어떻게 마음대로 하나? 사람이 고향이나 인정을 버리고야 어떻게 산단말인가?》

《그럼 별수 없지요. 한평생 따라지목숨으로 살아가야지요.》

《하기는 가수선생의 말이 옳은지도 모르겠소. 가령 이 춘길이를 봐도 그렇지. 나는 그래도 고향의 번지수나 알고있지만 이사람은 철이 들어 세상을 둘러보니 자기는 고향도 부모도 없는 어린

(광산의 정대심부름군)가 되여있더라지 않소. 이사람이 이제는 스물다섯이니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고 광산에 갖다놓으면 한다하는 선산이지만 아직도 제 고향이 어딘지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가수선생이 <타향살이>를 부르면 눈등이 벌개지거던. 저한테 무슨 고향이 있다고 <타향살이>에 눈물을 흘린단말인가.》

《에이, 아바이도 그만두라구요. 내가 언제 울었다고···》

방금까지 풀을 쥐여뜯으며 두만강물결을 눈물이 그렁해서 바라보던 춘길이가 질색해서 소리쳤다.

《허, 이사람 눈등이 또 불깃해졌군. 그러니 임자도 이 가수선생 말마따나 한평생 신수가 궁할밖에··· 헌데 가수선생, 그러고보면 또 모를 일이 한가지 있는데··· 그 댁은 봐하니 세상리치도 그만치 알고 또 사괴보면 마음씨가 착한 사람같은데 어찌자고 매번 우리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게 해주는가말이요. 그렇게 눈물을 쥐여짜면 따라지신세를 면할수 없다고 하면서말이요.》

《그야 나도 모르지요.》

김인수는 장대선아바이의 소박한 질문에 가슴이 찔린듯 잠시 허둥거리더니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참 별소리를 다 하시오. 내가 뭐 아바이들 보고 울라고 노래를 했겠소. 내가 아는 노래란 다 그런게지요. 세상이 만들어낸 노래란 다 그런 노래밖에 없단말입니다.》

《허- 세상엔 맨 슬픈 노래라··· 그러니 정말 별수없군.》

장대선아바이는 기가 찬듯이 중얼거렸다. 우스개처럼 시작된 말이 까닭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수선하게 만들어주었다. 춘길이는 무엇인가 해명을 바라듯 김인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으나 그는 어쩐지 모욕당한 인간처럼 얼굴이 살핏해서 물결만 쏘아보고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침울한 그늘이 비꼈다. 해빛이 설핏해지면서 강물에 어수선한 멀기가 일었다.

《그 객적은 소리들 그만하고 이제는 건너갑시다. 강 하나 건넜다고 설마 산천이 그렇게야 변하겠소.》

윤원구가 무거운 분위기를 깨뜨릴양으로 푸접없이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때 행길쪽에서 자전거종소리가 나더니 낯익은 왜놈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려왔다.

《오, 여기들 있었는가? 왜 그렇게 빨리들 걷는가? 도망치자고 하는가? 따라오느라고 혼이나 났다.》

돌아보니 농사동주재소 순사 요시다였다. 그놈뒤에 또 한놈의 순사가 달려있다. 일행은 까닭없이 가슴이 덜컥하여 일어났다. 무포어방에서 그놈때문에 어지간히 경난을 치른 일행은 그놈의 말상을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하였다.

《자, 빨리빨리 돌아서라. 해가 떨어지기 전에 가야겠다.》

《가기는 어디로 간단말이요?》

윤원구가 맞받아 소리쳤다. 국경에 다 온 이상 무서울것이 없다는 생각이였다. 그러나 요시다는 자전거를 돌려세우더니 태연히 턱질을 하였다.

《농사동주재소로 가자. 네놈들을 취조해야겠다.》

《무엇을 취조한단말이요?》

《그런것은 가보면 안다.》

《우리는 못가겠소.》

윤원구는 단호한 태도로 뻗쳤다.

《못가겠다? 너나 죽고싶은가?》

요시다는 자전거를 뻗치고 다가왔다. 결국 또 한놈의 순사까지 접어들어서 윤원구와 장대선아바이 그리고 춘길이는 허위단심 걸어온 길을 50리나 되돌아가 농사동주재소에 잡혀들어갔다. 나머지 일행도 그들의 뒤를 따를수밖에 없었다.

방금 조국을 떠나는 리별을 한탄하던 생각을 하면 기가 막혔다. 조국에서 쫓겨나기도 헐한 일이 아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