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13

 

13

 

정섭이는 윤원구네를 바래주고 돌아오는 길에 영섭이를 묻었다는 곳에 찾아갔었다. 새빨간 한갈피 흙무지가 되여버린 동생곁에 앉으니 너무 억이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 애가 이렇게 죽어서 사람의 가슴을 허벼주자고 그렇게 챙챙 감겨돌았던가. 사내자식이 새물새물 웃으며 목덜미에 매달리군 하던 모습이 눈앞에 밟혀와서 차마 눈을 뜨고있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을 감으면 이번에는 너무 열에 떠서 이틀 밤낮을 제손으로 제 입술이며 목을 피가 나도록 쥐여뜯다가 숨을 거두었다는 그 참경이 삼삼히 떠오르는것이였다.

홍역에 벌써 동생을 넷이나 떼웠다. 전에는 철도 덜 들었거니와 원체 병이 그런 병이니 어쩔수 없는 일이겠거니 하는 체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만은 얼마든지 살아날수 있는 아이를 지르밟아죽인것만 같아 아무리 달래여도 원통한 마음을 삭일수가 없었다.

《이자식아! 그래 하루를 못참아서 이 모양이 됐니?》

하고 정섭이는 새빨간 흙무지를 주먹으로 치며 울부짖었다. 아직 잘 다져지지 않은 생흙이 주르르 허물어져내릴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형을 주겠다고 돌배를 따가지고 그 추운 날 100리씩이나 말파리 꽁무니에 매달려오던 아이가 어쩌면 이렇게도 무심히 누워있을수가 있는가.

아이들 무덤이라 나무막대기에 이름석자도 써붙이지 않은 자그마한 흙무지였다. 될수록 빨리 흙으로 변하여, 될수록 빨리 산 사람들의 추억에서 사라져버리라는 구슬픈 풍습이였다. 그러나 어떻게 잊을수 있는가. 죽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는 어린것을 일부러 한지에 꾀여내여 죽인셈이 아닌가.

묘비를 세울수 없다면 내 이다음에 와서 돌배나무라도 한그루 심어주마··· 이렇게 생각하니 불시에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섭이는 혼자 동생의 무덤가에 앉아있다가 가슴이 텅 비여서 터벌터벌 동네로 내려왔다.

동네는 청결검사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삼수집의 고삭은 울바자는 순사놈의 발길에 채여서 시궁창에 구겨박히고 봉식이네 두엄무지도 사나운 닭새끼가 널어놓은듯 한마당 헤쳐놓았다. 삽들을 든 늙은이, 아낙네들이 도랑을 치겠다고 엉거주춤 허리를 구부리고 서서 지금 치갑이네 집에서 한참 목청을 돋구고있는 농사동주재소 순사 요시다와 구장 리덕선이쪽을 힐끔힐끔 살피고있다.

《춘기청결검사를 처음 받아보는가? 이게 뭔가? 문짝이나 구멍투성이다. 마당이나 쓸었는가? 여기로 총독각하께서 시찰나오신단 말 못들었는가? 쌍간나들, 돼지나 한가지다.》

치갑이는 오늘 첫떼를 띄운다고 일찌감치 물동으로 나갔으니 치갑이 어머니가 아니면 그 집 새댁이 그 험한 상욕을 먹고있을것이다.

《이사람아, 내가 어제 와서 떡먹듯이 당부했는데 이게 무슨 꼴인가? 어른들 말을 그렇게 귀등으로 듣고서야 어찌 편안하기를 바라겠는가.》

리덕선이 나서서 핀잔을 하는것을 들으니 필경 치갑이네 새댁이 그 욕을 보는 모양이다.

리덕선의 목소리만 들어도 정섭이는 밸이 꿈틀하였다. 이놈의 두상태기 우리 집에만 와봐라- 이렇게 윽벼르며 서둘러 집으로 달려가니 자기 집 역시 두엄무지며 구새통이 헤쳐지고 넘어진것이 이미 봉변을 겪고난 꼴인데 할아버지가 사닥다리를 지붕에 세우느라고 혼자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할아버지, 웬일이오다? 그놈들 왔다갔소다?》

《그래, 방금 다녀갔다. 온통 헤집어놓더니 당장 저 지붕 허물어진것을 고치라고 해서 이 야단 아니냐.》

《개자식들! 거 뭐 그놈들 하라는대로 하다가 세월 있소다. 내버려두시오다. 이담에 내가 하지오다.》

《아니다. 다른것은 몰라도 이것은 먼눈에도 인차 뜨이기때문에 지붕만은 손질을 해야겠다. 그 구장이 다시 오는 날이면 빚독촉이 성화같겠는데 아예 무슨 언터구를 잡히지 않는게 좋다.》

《그렇다고 그놈의 두상이 돈받을 생각을 잊어버리겠다구요. 저리 비키시오다. 내가 할테니···》

정섭이는 할아버지의 정상이 하도 가긍해서 내키지 않는것을 억지로 참고 사닥다리를 지붕에 갖다 뻗쳤다.

《그래도 그놈이 오늘은 순사하고 같이 와서 그러는지 빚말은 입밖에 내지 않더라. 그나저나 너는 이제 삼장엘 당장 갔다와야겠다.》

《삼장에는 왜요?》

정섭이는 사닥다리에 한발을 올려놓았다가 떨떨해서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그럴 일이 생겼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로인은 서둘러 웃간으로 들어가더니 명주수건을 들고나왔다.

《그 필네라는 아이가 이 할애비를 생각해서 명주수건 한감을 끊어넣었다기에 집에 와서 들추어보니 글쎄 이 끝에 약차한 돈을 싸매놓았구나.》

《돈이요? 얼마게요?》

《돈도 약차한 돈이다. 은전, 지전 합해서 5원이나 된다. 내가 그 어린것이 남의 나라 땅에 팔려가는것이 가슴아파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로자를 보태주지 못할망정 그 불쌍한것의 신세를 이렇게 질수야 있느냐. 냉큼 가서 돌려주고 오너라.》

정섭이는 멍하니 서서 명주수건을 받아들고 삼장쪽 숲을 바라보았다.

자기가 하칠소를 떠나면서 억지로 로자를 보태주느라고 한것이 은전 네잎-2원이였다. 필네가 집형편을 보고 너무 한심해서 그렇게 도와주면서도 자기가 성을 낼가봐 몰래 감추어두고간것을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였지만 섭섭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어째서 이놈의 세상에는 푼푼치 못한 성의도 서로 마음놓고 주고 받아들일수 없는가. 필네가 5원씩이나 되는 돈을 뭉턱 잘라내놓고 앞으로 천리 넘는 두 나라 지경을 어떻게 갈것이며 가서는 또 무슨 곡경을 치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안타까왔다.

《넨장, 남의 속은 모르고···》

정섭이가 이렇게 중얼거리며 손바닥의 돈을 다시 명주수건에 싸려고 하는데 리덕선이가 불쑥 문전에 나타났다.

바투 깎은 중대가리에 회색두루마기를 떨쳐입고 개화장을 짚은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단추를 해단 검정두루마기를 입고 다니던것이 최근에 와서는 겉모양부터 신체제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리덕선은 마당으로 들어서는참 왜가리청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니 강령감, 사람의 도리가 이럴수 있소? 내가 경찰관나으리를 모시고 공무를 집행하는중이라 사사로운 일을 꺼내기 뭣해서 입을 떼지 않았지만 그쪽에서야 어찌 그럴수가 있단말이요? 내 경찰관나으리와 함께 신개척으로 넘어가다가 아무리 해도 삭일수가 없어 다시 들렸소. 그래 손자가 저렇게 돈도 벌어왔겠다 약조한 기일도 벌써 몇번째 밀어오겠다 하다면 무슨 인사가 있어야 할게 아닌가말이요? 내 돈은 돈이 아니요?》

리덕선은 개화장끝으로 정섭이의 손에 쥐인 명주수건을 가리키며 야료를 부렸다.

《구장 이사람, 너무 그러지 말게.》

강로인은 그자리에 오금을 꺾고앉으며 담배쌈지를 꺼냈다.

《내 수중에 돈이 있으면 그 집 단련을 받기가 싫어서라도 선뜻 갖다바치겠네. 내 여북하면 그 집 빚을 졌겠나. 허지만 돈이 없으니 별수가 없네그려.》

《거 참, 말도 더럽게는 한다.》

리덕선이 그러지 않아도 푸르딩딩한 상에 사나운 빛을 띠우더니 다잡고들었다.

《하여간 좋소다. 이 리덕선이 워낙 변변치 못하다보니 인심을 쓰고도 욕을 보는게 처음이 아니지오다. 내가 원체 강령감의 칭찬을 받을만 한 위인이 못되는것은 사실이고··· 허니 제잡담하고 회계를 깝시다. 령감 말투로 보아하니 손자가 벌이를 괜찮게 해온 모양인데 내 그렇다고 공돈을 넘보는것은 없소. 피차 문세에 올린대로 아퀴를 짓고 일후 거래를 끊읍시다.》

《내 이제도 말하지 않았나. 저 애가 겨우내 처서판을 돌아다니다가 왔다는게 제 입에 풀칠하고 쥐고왔다는것이 푼전에 지나지 않네. 그 집 아들이 그 산판 마무리를 짓는데 간참했다니 대강 짐작을 하겠는데 그러는군.》

《여보시오, 강령감.》

하고 리덕선은 개화장으로 로인의 눈앞에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이 리덕선이를 뭘로 알고 그런 소리를 하오? 강령감네 집에서는 지체가 높아서 저런 돈쯤 푼전으로 아는 모양이지만 이 리덕선이는 돈발라서 저 손자가 쥐고있는 돈만 해도 큰 목돈이야. 지나가는 과객을 구들이 비좁게 들어앉히고 치를만 한 힘이 있으면 다문 얼마라도 빚을 갚아야 할게 아닌가. 원금은 다 못갚아도 리자나마 제 날자에 갖다바치고 사정을 해야 옳지, 이건 되려 돈이 있으면 더러워서도 갚겠지만 돈이 없으니 잡아잡수 하는 본때란말야, 그래 이건 돈이 아니고 뭔가?》

하고 리덕선은 개화장으로 정섭의 손을 후려쳤다.

리덕선을 보기만 해도 분이 치받쳐서 숨을 씩씩거리던 정섭은 그놈의 수작이 점점 밸을 돋구어주어서 당장 쳐넘기고싶던차에 뜻밖의 타격을 받아 수건을 떨구었다. 그러나 리덕선이 흩어진 돈을 집으려 하자 앞뒤 돌아볼 사이 없이 활 밀쳐버렸다. 리덕선은 뒤로 두어걸음 비칠거렸다.

《이건 안되오. 이건 남의 돈이요.》

하고 정섭은 명주수건과 함께 흩어진 돈을 도로 움켜쥐며 소리쳤다.

《야, 이놈 봐라! 이놈이 사람 친다.》

리덕선은 일부러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사납게 악을 썼다.

《구장, 이거 뭘 이러나. 일어나라구. 그 돈은 간밤에 묵어간 과객이 떨구고 간것일세.》

강로인은 리덕선이 하도 펄펄 뛰니 후환이 두려워 이렇게 달래며 부축해주려 하였다.

《에익 듣기 싫다. 도둑놈의 새끼들! 너 이놈! 어른 몸에 함부로 손을 댔지. 네놈이 하늘 높은줄 모르는구나.》

리덕선은 강로인을 와락 밀어던지고 무서운 기세로 일어나더니 개화장을 쳐들고 정섭이에게로 달려들었다.

짚고다니기보다는 사람을 치기에 더 편리하게 만들어진듯싶은 개화장은 정섭이의 어깨를 당장 두쪽으로 갈라낼듯이 짝짝 먹어들었다. 정섭이는 머리를 안맞자고 몸을 피하다가 이마에까지 정통으로 한대 맞고나자 머리속이 아찔하더니 다음순간 억지로 분을 누르고있던 리성의 동아줄이 끊어져나가버렸다.

《쌍놈의 두상!》

정섭이는 어림짐작으로 손을 뻗쳐 개화장 한끝이 손에 잡히자 그것을 활 잡아채서 멀찌감치 내던져버렸다.

《이놈 봐라, 어른 개화장을! 이놈! 이놈!》

리덕선은 새까만 반구두로 땅을 구르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정지간 문이 열리더니 어머니가 밤새 앓던 신열을 가시지 못한 파리한 얼굴을 내밀며 울음섞인 소리를 질렀다.

《아이구 정섭아, 네가 웬일이냐. 어서 사과해라, 어서···》

어머니는 뺑대같은 팔로 문지방을 더듬으며 토방으로 기여나왔다. 그뒤로 경섭이도 울음보를 터뜨리며 묻어나왔다.

때마침 《이시가와구미》현장사무실에서 나와 신개척으로 넘어가던 리호철이와 스즈끼가 리덕선의 악쓰는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크지도 않은 동네라 소리만 치면 온 동네가 들썩하였다.

벌써 정섭이네 집 문전에는 동네아이들이 오구구 모여들었고 가래나무뒤에서는 늙은이들과 아낙네들이 목을 길게 뽑고 마당을 넘겨다보며 살을 떨고있었다.

《보시오. 아까 말하던 그놈이요.》

리호철은 야멸차게 입술을 감쳐물더니 입안의 소리로 내뱉었다.

《그놈인가? 좋다! 내가 버릇을 떼놓겠다. 당신 아버지나 데리고 가라.》

두놈은 골목에 우글거리는 아이들을 왁살스럽게 밀어헤치고 씽하니 바람을 일구며 마당으로 달려들었다.

리호철은 아들을 보자 더 기가 승해서 악청을 돋구는 애비곁으로 다가가 핀잔조를 섞어 달래였다.

《아버지는 뭘 인간같지 않은것들한테 와서 이 봉변이십니까. 어서 가십시오. 저기서 요시다가 기다립디다.》

《아니 내가 앉아서 내 돈 꿔주고 서서 받겠다는것도 잘못이란 말이냐?》

리덕선은 아들을 향해 들으란듯이 소리쳤다.

《그것도 웬만해야지 어디 말할만 한 상대가 됩니까. 뒤수습은 내가 할테니 어서 가보십시오.》

리덕선은 못이기는체하고 개화장을 주어들더니 《이놈들 어디 보자!》하고 게두덜거리며 골목으로 빠져나갔다.

험하게 째진 정섭이의 이마를 무엇으로 처매주려고 천쪼박을 가지고 나오던 정섭이의 어머니는 호철이와 스즈끼의 어마어마한 형상을 보자 기가 질려 한자리에 못박힌듯 서버렸다.

그사이 스즈끼는 강로인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험하게 번져가는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허둥거리는 로인을 면바로 쏘아보더니 별안간 악청을 돋구어 소리쳤다.

《나쁜놈의 령감이나!》

로인은 얼굴이 거멓게 질려 왜놈을 서늘하게 마주 쏘아보았다. 여태까지는 자식들에게 무슨 화가 미칠가봐 허둥거렸지만 자기자신앞에 닥친 일에 대해서는 설사 그것이 죽음이라 하여도 두렵지 않았다.

《령감이나 나쁜놈의 령감이라는것을 우리는 다 안다. 령감이나 이름이 강··· 강···》

스즈끼는 더듬거리며 군복 웃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여 벌컥벌컥 뒤지더니 큰것이나 알아낸듯이 소리쳤다.

《령감이나 이름이 강석보, 강석보가 옳은가?》

로인은 조용히 담배쌈지를 건사하더니 말하였다.

《나는 귀가 먹어서 말을 못알아듣겠으니 할말이 있으면 우리 손자애하고나 하오.》

그리고는 웃간문을 열고 들어가버렸다.

너무 뜻밖의 반응에 닭 쫓던 개 울 쳐다보는 격이 된 스즈끼는 잠시 뗑해서 리호철이쪽을 돌아보는데 호철이가 눈을 찡긋해보였다.

스즈끼는 다짜고짜 로인이 사라진 웃간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령감, 이리 나와!》

담배를 쟁여서 부시를 켜대고있던 로인은 스즈끼를 아래우로 훑어보았다.

《나쁜놈의 령감이나, 남의 돈 떼먹겠는가.》

스즈끼는 구두발채로 한발을 구들바닥에 내짚고 로인의 앙상한 어깨를 잡아일으켰다.

《이놈! 이것 놓지 못해!》

강로인은 끌려나오면서 소리쳤지만 놈은 우악스레 마당밑까지 힘껏 잡아끌었다.

《아이구, 이게 무슨 일이요. 세상에 로인을 이럴데가 어데 있소. 말 좀 해주시오.》

하고 정섭이의 어머니가 그래도 리호철이의 소매를 잡고 애원했다. 호철이는 매정하게 뿌리치며 쌀쌀하게 말했다.

《군대가 성이 났는데 말을 한다고 소용이 있소.》

로인은 힘에 견디지 못하여 마당복판에 태질을 당하다싶이 하였다.

《에그 저런.》

로인이 일어서기보다 먼저 병든 며느리가 토방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네 이놈, 이 무도한놈들!》

로인은 일어설 기력도 없는지 한쪽무릎을 땅에 꿇은채 고개만 돌려대고 웨쳤다.

《령감상이 왜 남의 돈이나 떼먹고 물지 않는가?》

스즈끼는 허리에 두손을 짚고 당장 집어삼킬듯이 호령을 하였다.

《이놈아, 내가 누구 돈을 떼먹었단말이냐? 네놈은 에미애비도 없느냐.》

《좀 맞아나보겠는가?》

스즈끼는 당장 장화발로 걷어찰듯이 한걸음 다가섰다.

《마, 마 스즈끼상 참으십시오.》

뒤전에서 구경하던 호철이가 앞으로 나서며 스즈끼의 팔소매를 잡고 사정하다싶이 말했다.

《워낙 산속에서 궁하게 사는 백성이니 법을 잘 모릅니다. 내가 잘 타일러보겠습니다.》

《나쁜놈의 령감이나 이런 못된 령감은 감옥에 집어넣어야 한다.》

스즈끼는 호철이를 떠밀치며 다시 로인의 등덜미를 잡아일으켰다.

《에그 사람 살리우다, 아버님, 어서 잘못했다고 비시우다.》

하고 병든 며느리는 토방을 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참고참아오던 정섭이의 분통은 마침내 터지고야말았다. 그는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스즈끼의 팔목을 비틀어잡고 와락 내끌었다.

《여보, 무엇때문에 로인에게 행패요? 할말이 있으면 나하고 하시오.》

《옳지, 네놈이나 나도 알고있다, 건방진놈의 자식!》

스즈끼는 정섭이의 멱살을 틀어잡고 이를 으드득 갈더니 따귀를 철썩 올려붙였다. 정섭이의 눈앞에서는 불꽃이 날렸다. 그래도 틀어잡은 한손을 놓지 않으니 연방 따귀를 갈기던 스즈끼가 별안간 발길로 정갱이를 걷어찼다.

《아이쿠!》

정섭이가 불의의 타격을 받고 주저앉아 스즈끼는 달려들어 장화발로 사정없이 옆구리를 조겼다.

《나쁜놈의 자식이! 죽어나봐라!》

강로인이 스즈끼의 한쪽소매를 붙잡고 늘어지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여보시오, 사정을 좀 봐주시오. 철없는것이 세상물정을 몰라서 그럽니다···》

《아이구, 정섭아, 제발 잘못했다고 빌어라!》

어머니는 울음섞인 소리로 아들을 부르며 허둥지둥 다가왔다.

방안에서 경섭이가 울음보를 터뜨렸다.

골목앞에 늘어선 아이들도 모두 겁에 질려 오돌오돌 떨고있었다.

《좀 맞아봐야 정신을 채린단말야.》

호철이가 차겁게 이 광경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뭐야?》

죽은듯이 머리를 싸고 엎드려있던 정섭이가 악- 소리를 치며 벌떡 일어나더니 호철이의 면상을 나는듯이 들이받았다.

호철이는 찍소리도 못치고 마당 한가운데 나가번져졌다.

스즈끼가 쭝해서 잠시 어물거리다가 접어들자 이번에는 그놈의 정갱이를 힘껏 짓모았다. 스즈끼는 비틀비틀하고 가래나무그루에 엉덩판을 메때리며 주저앉았다.

정섭이는 이미 걷잡을수 없는 흥분상태에 이르러 두놈을 번갈아 치고 박고 발로 짓이겼다.

《네 이놈, 정섭아-》

할아버지가 그의 두다리에 매달려 아우성을 쳐서야 가까스로 진정이 되였다. 그러자 너무나 엄청난 광경에 얼이 빠진듯 멍하니 서있는 그를 강로인이 지팽이로 내몰다싶이 집에서 내보냈다.

정섭이는 그달음으로 산을 향하여 내뛰였다.

《서라! 서라!》

스즈끼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권총을 뽑아들고 달려갔다. 정섭이는 나무그루들사이를 누비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탕, 탕-

성이 머리꼭뒤까지 오른 스즈끼는 마구 방아쇠를 당기였다.

강로인이 스즈끼의 두다리를 그러안고 매달렸다.

앙상한 로인의 몸뚱이를 질질 끌며 앞으로 가던 스즈끼는 겨냥이 잘되지 않으니 연신 장화발길로 거치장스럽게 끌려오는 로인을 걷어찼다. 그러다가 종시 정섭이를 놓쳐버리자 이를 으드득 갈며 돌아섰다. 그제야 호철이도 일어섰다. 면상이 피자박이 되였다.

정섭이의 어머니가 후환이 두려워 옹배기에 세수물을 떠왔으나 호철은 물을 옹배기채 병든 녀인에게 뒤집어씌우더니 두손을 독수리발톱모양으로 벌려들고 강로인에게 접어들었다.

강로인은 그놈의 두눈에서 뻗쳐나오는 살기를 보고 이제는 빌어야 소용이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로인은 조용히 맨땅에 일어나앉았다. 그 순간 호철은 로인의 목을 덮쳤다. 동시에 스즈끼는 장화발길로 마음껏 허리를 걷어찼다.

두놈의 미친듯 한 분노와 잔인성을 견디기에는 로인의 몸은 너무나 허약하였다. 만일 강로인이 종일 견디여준다면 이놈들은 종일이라도 늙고 병든 육체를 차고 박고 비틀고 꼬집었을것이다.

그러나 놈들이 분을 풀 사이도 없이 강로인은 의식을 잃고말았다.

며느리가 울음을 터뜨리자 스즈끼는 좀 당황하였다. 아무리 그럴듯 한 구실이 있다 해도 대낮에 사람을 죽였다면 말썽을 피할수 없을것이였다.

그러나 호철은 태연하였다.

《일없소, 갑시다. 이제 피여날거요.》

그놈은 손수건을 찢어서 아직도 피가 배여나오는 코구멍을 틀어막고 나머지쪼박으로 피자박이 된 얼굴을 문대며 내뱉었다. 스즈끼가 보기에도 그의 형상은 무시무시하고 스산하였다.

《그래 어떻게 하겠는가?》

골목에 나왔을 때 스즈끼가 물었다.

《어떻게 할게 있소? 그놈을 잡아야지. 농사동주재소에 전화를 걸어 비상수배를 합시다.》

《우리 자위대를 몽땅 풀어서 산을 샅샅이 뒤지겠다. 국경초소에도 련락해야겠다. 가만 어제 이놈의 집에서 자고갔다는 놈들도 취조해봐야겠다.》

《그것들은···》

리호철은 잠시 주저하였다. 윤원구네한테는 돈을 들였고 또 한시바삐 금천동으로 들여보내야 한다. 그러나 정섭이가 내뛴 지금 그들을 취조해야 한다는것은 어쩔수 없는 일일것 같았다.

《당신 돈벌 생각만 하지 말고 국가적립장에 서란말이다.》

《여보, 내가 국가적립장에 못선게 뭐있소. 삼장국경초소에는 내가 수배하겠으니 걱정 말란말이요.》

리호철은 결김에 소리치고 간다온다 말 한마디 없이 전화가 있는 신개척 《호리모도구미》쪽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