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11

 

11

 

막막한 백두밀림 한끝에 자리잡은 손바닥만 한 동네, 찌그러져가는 귀틀집추녀에 제아무리 불행의 그늘이 짙게 깔렸다 해도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 불행이 한둘, 한두가지인가, 온통 불행으로 빚어놓은듯 한 이놈의 세상에 밑천 안드는 위안의 말이나마 푼푼히 나누어주기도 쉽지를 않다. 그래서 불행에 우는 인간들이 잠못드는 깊은 밤에 골고루 바라보라고 실날같은 그믐달이 하늘 한끝에 떠서 바르르 떨고있다.

 

타향살이 몇해런가

손꼽아 세여보니···

 

바이올린의 선률이 흐느끼듯 떨더니 김인수는 눈물이 그렁해서 감기에 쉬여버린 목소리로 그가 그중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이시가와구미》밥집의 식솔들은 저마끔 귀틀벽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고앉아 그렁한 눈으로 뙤창밖의 그믐달을 바라보고있다. 신문지로 봉한것이 바람에 찢어져서 바람개비처럼 펄럭거리는데 그 짬으로 하늘 한끝이 바라보였다. 너무 담배질을 해서 담배연기와 남포등의 그을음이 마치 굴뚝을 빠져나가듯 그 펄럭거리는 종이구멍으로 꾸역꾸역 빠져나간다.

정섭이네 집에서 귀밀밥이 퍼질무렵에는 벌써 크지 않은 동네에 손님이 들었다는 소문이 퍼져서 사람 그리운 화전촌사람들이 무슨 대사집 찾아들듯 하였다. 이웃집 물동지기령감네와 삼수집에서는 두 량주가 다 오고 봉식이며 치갑이또래 정섭이의 동무들도 찾아왔었다. 밥집에는 기왕에 하칠소에 있다가 먼저 넘어온 사람들도 있어서 그들을 앞세우고 목재판로동자들도 우르르 밀려들어 밤이 깊도록 이야기판을 벌리다가 정섭이네 집 형편이 손님들을 다 치르기 어렵겠다고 해서 남정네들은 옆집인 《이시가와구미》밥집으로 옮아앉았다. 옮아앉아봐야 이야기는 뻔한 신세타령이였지만 그래도 물리지 않고 어디 가면 좀 살기 좋은데가 없는가, 이놈의 세상 언제 망한다는 소문은 못들었는가, 요즘 왜놈들이 경비도로요 뭐요 하고 돌아치는것을 보면 암만해도 무슨 일이 난것 같지 않느냐- 하는따위 이야기들을 벌려놓았다. 시원한 소리는 하나도 없었다.

《금천동에 노다지바람이 분다는 소문은 짜합데만 그게 사실은 사실이요?》

한 40나보이는 체소한 사나이가 윤원구곁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수군거렸다.

《내니 알겠소. 뭔가 불기는 불기다 숱한걸 끌어가지. 우리사 노다지바람이 불면 어떻고 진흙바람이 불면 어떻단말이요.》

윤원구는 피곤하였다. 몸도 지쳤지만 자기자신 무수히 마음속으로 되풀이해온 질문이라 이제는 대답하기도 짜증스러웠다.

《여보, 그래도 일가식솔을 다 거느리고 갈 때에는 무슨 생각이 있을것 아니요?》

상대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풍산 어디에서 이와실이를 왔다가 소를 죽이고 고삐만 감아쥐고 돌아가게 됐다는 사람이다.

《여보.》

하고 윤원구는 풍산사나이를 측은하게 바라보다가 잘라서 대답했다.

《딴마음 먹지 말고 웬만하면 집으로 돌아가우. 뭐니뭐니 해도 태를 묻은 제고장이 그래도 낫소. 나도 스물소리 들을 때 고향을 하직하고 이제는 20년가까이나 떠돌아다니며 안다녀본데 없고 못해본 지랄이 없소만 다 그식이 장식이요. 나라가 망한판에 어디 가서 잘살기를 바라겠소.》

《여보, 그래 내가 잘살기를 바라서 이러는줄 아오? 내, 내 이 고삐를 탈아쥐고 돌아갈 때 우리 집 문전에서 터져오를 통곡소리를 생각해보란말이요. 어이구 답답해라.》

풍산사나이는 입은것도 없는 앞가슴을 와락 잡아헤치며 갈비뼈가 서까래같이 건너간 가슴을 꽝꽝 두들겼다.

저편 구석 남포등의 그을음이 피여오르는 뙤창아래서는 김인수가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바이올린활을 그어대더니 취한 사람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울음 섞인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있다.

 

부평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젊은패들은 김인수를 둘러싸고앉아 저마다 마음속으로 그 구슬픈 가락을 따라부르며 버리고온 고향, 눈이 까매서 기다리는 부모처자들을 그리는듯 눈을 감고있었다. 그들은 대개가 《보국대》에 끌려온 남도내기들이였다.

정섭이는 구름노전이 새까맣게 눌어서 부스러진 등디목에 웅크리고앉아 태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있었다.

태호는 형 만호와 함께 북선제지가 도끼를 들고 백두산원시림으로 쳐들어오던 당초부터 이 증산사업구의 산판들을 두루 옮아다닌 오랜 벌목부였다. 그의 집은 멀지도 않은 운흥땅이지만 벌써 몇해째 집소식을 모르고 지낸다.

그런데 그 형은 며칠전 신개척에 있는 자위대영창에 잡혀갔다는것이다.

《형은 매를 좀 맞겠지. 매한가지야. 둔장질에 어깨가 터지나 매맞아서 어깨가 터지나 같지. 대두박이야 먹여주겠지.》

정섭이는 여전히 입을 꽉 앙다물고 들을만해있다가 노전밑을 들치였다. 비벼던진 담배꽁초 몇개를 주어서 주글주글해진 태호의 담배쌈지에서 신문지쪼박을 찢어내여 두툼하게 말아물고 캑캑 개키며 몇모금 한꺼번에 들이키였다. 아직 다 배우지 못한 담배라 독하고 썼다. 그는 눈물을 찔끔 쏟으며 담배를 다시 노전밑에 쓸어넣고 그 누군가의 목을 비틀듯 힘껏 비틀어 구겨던졌다.

영섭이가 죽은것이나 어머니가 다친것만이 불행이 아니다. 슬픔이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비좁을지경으로 들어앉아있다.

《형은 왜 잡혔나?》

정섭이는 꽉 잠겨버린 목소리로 물었다.

《왜 잡힐게 있나, 그놈들이 아무나 잡아가두었으면 하던차에 형이 말마디나 했으니까 잡아넣었지. 요즘 참 판이 무시무시하다.》

정섭이는 힐끔 태호를 돌아볼뿐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이글이글 불태우며 태호의 입에서 무엇인가 터져나올것 같은 다음말을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형이 그러는데···》

아니나다를가 태호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수군거렸다.

《저놈들이 혁명군이 다 없어졌다고 떠드는것은 멀쩡한 거짓말이래.》

《그건 어떻게 하는 소리야? 누가 보기라도 했다는가?》

《그야 나도 모르지. 형이 어디서 들었는지 그런 소리 하더란말이야. 야- 정말 전년에 보천보를 들이칠 때처럼 장군님께서 한번 이놈들을 되게 족쳐주셨으면 얼마나 좋겠나. 난 그것을 한번 보기만 하면 그자리에서 죽어도 원이 없을것 같다.》

정섭이는 태호의 입을 그냥 지켜보았지만 더는 신통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잔뜩 갈증에 시달리다가 물을 보고도 못먹게 됐을 때 목이 다 타는것처럼 금시 가슴이 터져나올것 같았다. 목을 휘저으며 바라보니 뙤창짬으로 바라보이던 그믐달도 기울어져버렸다.

밤이 이슥하여 문이 벌컥 열리더니 봉식이가 소랭이를 받쳐들고 들어왔다.

《에- 무슨놈의 날씨가 이렇게 쌀쌀한가.》

허우대가 껑충한 그는 등디목에서 진저리를 한번 치더니 《이거 우리고장 인심이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살아가기가 힘이 들어서 아무것도 대접할것이 없소다. 다 시였지만 김치국이라도 시원한 맛으로 맛들 좀 보시우다.》하고 소랭이를 방 한복판에 갖다놓았다.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갓김치였다. 철이 늦은 때라 좀 걸어졌지만 보기에도 시원한 김치물이 그득하였다.

《허, 봉식이가 색시를 잘 얻었거던.》

한 친구가 부엌에 나가 보시기와 숟가락을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

《이놈은 언제 봐야 제 형님 고마운줄 모르고 형수만 따르거던.》

하고 봉식이가 괴춤에서 불룩하게 채워가지고 나온 쌈지를 꺼내놓고 제먼저 한대 말면서 우스개소리로 응수를 했다.

모두 시큼한 갓김치를 어적어적 씹기도 하고 김치국물을 마시기도 하였다.

그러느라고 잠시 동강난 이야기의 실머리를 《보국대》에 끌려온 한 젊은이가 투박하게 이어놓았다.

《자위대가 태반 혜산쪽으로 밀려가고 나머지는 소홍단수 건너편에 구뎅이를 파고있다는데 그건 뭘 어떻게 하자는건가? 우리를 모두 그속에 쓸어넣고 묻어버리자는것은 아닌가?》

그러자 온 방안의 주의가 그 이야기에 쏠렸다.

《요즘 자위대가 몹시 갈갠다 했더니 다 그런 쪼간이 있댔구만.》

윤두소를 죽였다는 풍산의 이와실이군이 불안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갈개는게 어디 자위대뿐이요? 여태까지는 경비도로다 하고 고아치더니 래일부터는 또 청결검사를 나오겠다오다. 그 구장놈 놀아나는것은 더 못보겠더랑이.》

태호가 봉식이의 쌈지에 손을 뻗치며 퉁명스럽게 맞받아쳤다.

《해볼대로 해보라지. 아무리한들 죽기밖에 더 할라구.》

봉식이가 이러면서 김인수를 다시 집적거렸다.

《거 어떻게 하면 노래를 그렇게 눈물이 나게 잘하우다? 우리 집에서는 바라지를 열어놓고 형씨 노래를 들으면서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다 눈물들을 흘렸소다. 세상 답답한 이야기 자꾸 해야 소용 있소다? 그 빠요린이나 한번 더 들려주오다.》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그게 좋겠다고 간청을 하였다.

정섭이는 래일 또 먼길을 가야 할 사람들인데 좀 재웠으면싶었으나 그래봐야 아무도 잠들수 없는 숨가쁜 밤이니 내버려두자 생각하고 저도 귀틀벽에 허리를 기대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윽고 구슬픈 바이올린의 떨리는 소리가 답답한 가슴들을 우벼대며 또다시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정섭이의 코허리는 저도모르게 시큰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