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10

 

10

 

《아무래도 우리는 유곡에서 묵을걸 그랬나보네.》

신사동의 불빛이 빤하게 바라보이자 윤원구는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별소릴 다하우다. 유곡에서 자면 앓는 아이를 데리고 래일 삼장까지 가댈것 같소다?》

정섭은 업고있던 진호를 춘길이에게 넘겨주며 말을 이었다.

《이쪽 끝머리집이 우리 집이오다. 슬슬 따라들 오시오다.》

정섭이가 손님들이 온다는것을 알릴양으로 한걸음 먼저 달려가자 일행은 실개울우에 놓인 나무다리앞에서 주춤거리며 멎어섰다. 우중충한 숲그늘이 절벽인듯 그들앞에 막아섰다.

《아닌밤중에 이 많은 사람들이 덮쳐들면 그 집에서 딱해하지 않겠소? 내남없이 어려운 봄철인데···》

진호 어머니는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한숨을 지었다.

장대선아바이가 그런중에도 반죽좋게 위안의 말을 하였다.

《아주머니, 걱정 마시오. 그 집 형편이야 뻔하지요. 허지만 우리도 정섭이 할아버지와 모르는 처지도 아닌데 먼길을 떠나면서 문전을 스쳐지날수야 없지 않소. 앓는 아이가 둘씩 된다니까 어렵기는 하겠지만 시원치 못하면 인사나 하고 <이시가와구미>에 나가서 하루밤 묵어갑시다레.》

《참 <이시가와구미>에 나가면 되겠소다. 거기에 하칠소에서 넘어간 친구들도 있으니···》

춘길이가 또 몸을 뒤트는 진호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큰 임보퉁이를 이고 뒤전에 처져있는 필네와 김인수만이 말이 없었다.

무포어방에서 강제부역에 내몰리다나니 길이 늦어진데다 또 신작로로는 가지도 못하게 해서 결국 밤이 들어서야 지친 다리들을 끌고 신사동까지 와닿았다. 길이 지체된것도 된것이지만 그놈들에게 당한 천대와 모욕을 생각하면 밤길을 내처 걸어서라도 강을 건너가버리고싶었다. 그러면서도 필네는 기왕 신사동을 지나게 되였으니 고맙게 대해주던 정섭이의 할아버지와 심하게 앓는다는 귀여운 영섭이를 마지막으로 만나볼수 있다는것이 그런중에도 다행스럽게 생각되였다. 그 애가 아직 앓는다면 하루밤 병구완이라도 해주고 갔으면싶었다. 그러나 어둠에 잠긴 괴괴한 산골동네의 풍경은 까닭없는 불안을 몰아왔다. 아직 밤이 깊지도 않았는데 불켠 집이라고는 몇집 되지 않았다. 그중 불이 밝은 외따로 떨어진 큰 귀틀집이 《이시가와구미》의 밥집이거나 현장사무실인 모양이고 나머지는 반디불만도 못한 빤한 불빛이 숲사이로 가냘프게 새여나올뿐인데 그나마 정섭이의 집이라고 짐작되는 집에는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귀신의 화를 입은 옛말속의 동네같았다.

일행이 불안스럽게 기다리는 사이 정섭이는 서둘러 자기 집 문전으로 다가갔다. 울바자도 없는 마당에 껑충하니 서있는 가래나무아래에 서자 음침한 랭기가 확 풍겨왔다. 이게 정다운 집이 옳기는 옳은가. 잠시라도 집을 비웠다 돌아오면 동구밖에서 울리는 발자국소리만 듣고도 문을 열고 나서던 어머니, 밤이 이슥토록 자새질을 하며 피곁바를 드리다가 짐승이 나오는데 밤길을 다닌다고 꾸짖군하시던 할아버지는 벌써 잠드셨는가.

《거 누가 왔소?》

웃간 바라지가 열리면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리여나왔다. 동시에 정지간에서도 겨릅대에 불을 붙여든 어머니가 한절반 문에 몸을 기대고 《정섭이가 왔구나.》하고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정섭이는 가슴이 덜컥하였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를 쳤다. 그는 멍구럭을 가래나무밑에 내던지고 한달음에 방안으로 달려갔다.

《어머니, 무슨 일이 있었소다?》

다급하게 물었으나 어머니는 포대기를 어깨에 걸친채 등디에 겨릅대를 꽂느라고 팔을 떨뿐 말을 하지 못했다. 포대기를 걸치고있는것부터가 전에 볼수 없는 모습인데다 신색이 말이 아니게 축갔다. 웃간의 할아버지도 《어험, 어험》 하고 기침을 톺아올리며 담배대로 재털이를 두드리는것이 어딘가 기가 죽어보였다. 어머니의 포대기밑에서 선잠이 깬 여섯살짜리 경섭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앉더니 《형!》하고 까칠하게 여윈 얼굴에 반갑다는 미소를 띠고 정섭이의 잠뱅이자락밑으로 조심스럽게 다리를 어루만졌다. 전같으면 깡충하며 뛰여올랐겠는데 앓고나서 맥이 없는지 그 어떤 불행이 철없는것까지 짓눌러놓았는지 알길이 없다.

《어머니는 어디 편치 않소다?》

정섭이는 조급증을 못이겨 다시 물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등디를 향해 앉아있을뿐 말이 없다.

《네 에미가 저 경비도로 부역에 끌려나갔다가 허리를 다쳤다.》

담배를 뻑뻑 빨고있던 할아버지가 바라지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다치다니요? 어디를 다쳤소다?》

정섭이는 놀라서 어머니옆에 꿇어앉아 포대기를 쓰고있는 앙상한 어깨를 더듬었다.

《일없다. 허리를 좀 다쳤지만 이제는 기동을 한다.》

어머니는 왜 그러는지 정섭이의 시선을 피하며 다시 돌아앉았다.

《아니 부역을 어떻게 했기다 허리를 다쳐요?》

《어떻게 할게 있니, 경비도로가 급하다구 순사랑 자위대랑 떨어나서 사람을 그렇게 치고 박고 하더구나. 그래도 이제는 다 나았다.》

등디에 겨릅대를 다 꽂아놓고도 그대로 옹송그리고앉은 어머니가 아무래도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영섭이는 어데로 갔소다?》

아래웃방을 휘둘러봐야 제일 반갑다고 달려나올 영섭이는 보이지 않는다.

무엇인가 자꾸 다그쳐묻는 형의 얼굴이 무섭게 보였던지 경섭이는 어머니에게 가서 매달리며 어머니의 겨드랑밑에서 빠끔히 얼굴만 내밀고 말하였다.

《영섭이 죽었다. 토끼 잡으러 간다구 몰래 나갔다가 죽어서 할아버지가 땅속에다 묻어버렸다.》

《뭐?!》

정섭이는 비칠거리며 경섭이를 끌어안았다.

《어머니, 정말이오다?》

어머니는 포대기우에 얼굴을 파묻고있더니 애원하듯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뻗쳐 격한 아들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흐느끼듯 말하였다.

《모두 이 에미 잘못이다. 내가 그날 집만 비우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있었겠니. 활짝 꽃이 피여나서 가뜩이나 성미가 세찬놈을 집에 가두어놓고 부역에 끌려나갔더니 그사이 일이 벌어졌구나. 집에 가두었다고 가만있을 아이가 아닌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 구장이 하두 무섭게 다몰아치니 하는수없이 끌려갔구나···》

《그럼 할아버지한테 맡기면 되지 않소다. 이웃집 아낙네들한테 맡기든지···》

《할아버지가 계셨다면 무슨 일이 있었겠니, 동네에 사람이라고 남기지 않았다. 저 봉식이네 로할아버지까지 끌려가고 치갑이네 새색시까지 다 끌려갔다. 내가 아이들을 눕혀놓고 일에 손이 붙겠니. 그랬다고 그 순사놈이 그렇게 행패질을 하더구나.》

정섭이는 우들우들 손을 떨뿐 할말을 찾지 못했다.

《그 리덕선이라는놈이 그렇게 악착한놈인줄은 몰랐다.》

하고 로인이 담배연기를 시름겹게 날리며 중얼거렸다.

《기왕에 무슨 독립군 뒤바라지를 한답시고 돌아치던놈이 구장벼슬을 하더니 악착하기가 짝이 없구나. 그놈이 빚을 좀 주었다고 그러는지 우리 집에 대해서는 더 각박하게 군다. 그날도 그놈이 앓는 아이 둘을 눕혀놓은것을 제눈으로 다 보고도 강억지로 끌어내더구나. 저물녘이 다 되여 허리를 상한 네 어미를 들것에 담아싣고 돌아오니 영섭이녀석은 벌써 어디로 빠져나갔더라. 아무리 철없는것이기로서니 그놈이 죽자고 귀신한테 홀렸지. 홍역이라는게 바람만 맞으면 그르치는 법인데 꽃이 새빨갛게 피여난 놈이 그 산속까지 들어갔다 나왔으니 일은 글렀지. 그날밤부터 다 피여났던 꽃이 싹 잦아들더니 이틀밤을 까맣게 타도록 몸이 달아서 앓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

정섭이는 너무나 억이 막혀 귀가 웅웅할뿐 도무지 무슨 말을 듣는지 가늠할수 없었다.

《그럼 경비도로때문에 영섭이도 죽고 어머니도 다쳤다는거오다?》

그는 저도 뜻모를 소리를 한마디 묻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래 영섭이는 어디 있소다? 영섭이를 어디다 묻었소다?》

그는 토방에 나서며 물었다.

《진정해라. 사람의 목숨이 파리목숨같은 세상이다. 그 애가 죽지 않은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가 조련하겠니. 차라리 잘 죽었지.》

할아버지는 조용히 앉아 먼 옛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이 세상의 인간감정을 다 초월해버린듯 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잔정이 많고 그중에도 영섭이를 귀여워해서 마을돌이를 가도 끼고다니고 백리가 넘는 장에도 데리고다니던 할아버지가 어찌면 저렇게 눈물 한방울 없이 말할수가 있을가. 그것이 탕개를 지내 죄여서 매듭이 물러난것과 비슷한 허탈상태라는것을 느끼는 순간 정섭이는 새로운 타격을 받은듯 하였다. 그는 제몸도 마음도 가눌수가 없어 귀틀벽에 이마를 짓찧으며 울었다.

《얘 정섭아, 바깥에 누가 오지 않았니?》

등디목에 옹송그리고 앉았던 어머니가 파리한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저게 왠 사람들이냐?》

할아버지도 가래나무아래 들어서는 사람그림자를 보고 무릎을 일으켜세웠다.

쇠메로 머리를 단단히 얻어맞은듯 어리쳐있던 정섭이는 어렴풋이 정신을 차렸다. 자기가 이 순간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갈피를 못차리면서도 자기의 슬픔때문에 딴 사람들의 마음까지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칠소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우다. 접때 장날에 오셨을 때 고진동에서 왔다는 사람들 만나보지 않았소다? 그 사람들이오다.》

《아니 그럼 그때 구장아들한테 팔려 화룡으로 간다더니 종시 길을 떠난 모양이군. 저 처녀는 식모가 아니냐?》

할아버지는 서둘러 토방으로 내려서며 말했다.

어머니도 허리를 한손으로 짚고 마당에 내려섰다.

《어이고, 기어이 먼길들을 떠났구만. 고생이 막심하오. 날래 올라들 오시오다.》

강로인은 방금 한숨짓던 사람같지 않게 이 사람 저 사람 번갈아 인사를 나누며 엉거주춤해있는 그들을 방으로 들이몰듯 하였다.

《이사람아, 이 처녀가 우리 그녀석을 그렇게 고와하던 그 처녈세. 우리 집 아이에미가 자네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보고싶어했는지 모르네.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구. 애기엄마도 임이랑 내려놓고 들어서랑이.》

할아버지는 필네와 윤원구 처를 보고 이렇게 말하며 며느리쪽을 돌아보았다.

《우리 집 아이에미가 허리를 다쳐서 꼼짝을 못한다네.》

동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막연한 예감으로 엄습해오던 불안이 이때문이였구나 하는듯 사람들의 눈길은 정섭이의 어머니에게로 쏠렸다.

《참 아버님두, 허리 좀 다친게사 무슨 대수겠다구··· 어서 구들에 올라들 가시오다.》

정섭이의 어머니는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제먼저 방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거두었다.

남정네들은 할아버지가 거처하는 웃방에, 아낙네들과 아이들은 정지간에 자리들을 잡고 엉거주춤 앉았다.

정섭이만이 토방에 걸터앉아 골을 싸쥐고있다가 문득 일행이 아직 저녁전이라는것을 상기하였다.

그는 말없이 정지로 들어가서 아궁에 불을 살라넣었다. 아궁에서는 언제 불을 지펴봤는지 서늘한 랭기가 풍겨나왔다. 귀밀이나마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 정섭아, 네 어찌자고 그러느냐? 내가 이제 내려간다.》

어머니는 필네의 손을 잡고 한참 그 험한데를 찾아갈 생각을 어떻게 했느냐고 이야기를 하다가 아들을 보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는 가마전에 엎어놓은 가달박을 집어들고 허둥지둥 정지바당으로 내려서려고 하였다. 겉보기에도 몸이 불편한것이 헨둥하고 여간 축가지 않았는데 또 동자질까지 하러 나서겠다니 필네로서는 가만 앉아 배길수가 없었다.

《어머니, 좀 앉아계세요. 앉아서 말씀들이나 하세요.》

필네는 급히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며 진호 어머니에게 눈짓을 해보였다. 그러지 않아도 옹색해하던 윤원구의 안해는 정섭이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잡고 놓지 않았다.

《형님, 두어두시우. 필네가 가만 있자 하겠소. 우리는 여기서 살아가는 이야기나 합시다. 이 애가 홍역을 심하게 치른다더니 이제는 다 나은갑수다.》

아낙네는 진호또래인 경섭이를 쓸어보며 혀를 끌끌 찼다.

《에그, 얼마나 심하게 겪었기다 다리가 이 모양으로 새들새들 해졌을가··· 그래도 일이 없소다. 병만 들리면 살이 오르는게사 잠간입지. 그런데 영섭이녀석은 어데로 갔소다?》

눈치가 좀 무딘 편인 진호 어머니는 새삼스럽게 아래웃방을 살펴보며 물었다.

필네는 바당으로 내려서던 발을 멈추고 어머니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마실돌이를 갔소다. 아이가 어찌나 세찬지··· 밤이 깊어도 돌아올줄 모른다우다.》

《에그, 이런 산속에서 혼자 밤길 다니다가 짐승이라도 만나자고 그런당이, 원체 그 애를 보니까 부모속깨나 썩이겠더구마.》

《자식들때문에 속을 썩이는기사 어찌겠음.》

정섭이의 어머니는 턱을 무릎우에 놓으며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필네는 이 집에 무겁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어머니의 허리때문만이 아니라는것을 어렴풋이 느끼였다.

정섭이를 밀어내고 아궁앞에 앉아서 살펴보니 어디라없이 어수선한 랭기가 풍긴다. 정섭이는 방금 길을 올 때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더니 갑자기 풀이 죽어서 시리죽은 상을 하고있다. 그는 어물거리며 뒤주옆에 놓인 회땜을 한 오지항아리에서 귀밀을 가달박에 퍼냈다. 가만히 엿들으니 바닥 긁히는 소리가 난다.

《구들에 올라가라요.》

가달박을 넘겨받으며 필네가 말하자 정섭이는 멍하니 바라보더니 《뒤울안에 김치움이 있어.》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잠시후 귀밀 일은 물을 버리려고 마당에 나서보니 정섭이는 가래나무아래 팔짱을 끼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캄캄한 그믐밤이였다.

웃간에서는 장대선아바이가 무슨 말끝엔가 깽깽이소리를 내서 모두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에서도 할아버지의 웃음소리는 높았다. 아래간에서는 아이들이 김인수의 색다른 짐을 건드린다고 어머니가 경섭이를 꾸짖더니 이어 진호가 얻어맞았는지 쿨쩍거린다.

음침한 불행의 그늘은 이미 가셔지고 사람다운 생활이 이 귀틀집마당에 깃들인것만 같았다.

필네는 그럴수록 가슴이 죄여들었다. 그는 정지문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정섭이에게로 다가갔다.

《어떻게 된거예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필네의 너무나 또렷한 물음에 정섭이는 당황한듯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영섭이 어디 갔어요?》

필네는 어둠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정섭이의 얼굴륜곽을 두려움에 차서 바라보면서도 다시 물었다.

《묻지 말라구.》

《왜 그래요? 영섭인 어떻게 됐어요?》

불행을 예감한 필네의 말소리는 벌써 떨리고있었다.

《그쯤 알고있으라는데···》

정섭이는 맥없이 중얼거리더니 걸음을 옮겨놓으며 뜨직뜨직 말했다.

《필네가 진개포수한테 갔다온거랑 내가 다 알아. 하지만··· 이제는 다 소용이 없어, 그 자식은··· 죽었어.》

정섭이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행길로 걸어나갔다. 아무래도 불행의 그늘이 짙게 깔린 지붕아래 손님들을 다 칠수 없으니 밥집에 잠자리를 마련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했으나 그의 발걸음은 저도모르는 사이 영섭이를 데리고 돌배를 따러 가던 산속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뒤에서 울리는 씹어삼키는 흐느낌소리에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필네에게 공연한 소리를 했구나 하고 후회했다. 할아버지나 어머니가 그 고통을 안고서도 흔연히 손님들을 대하는데 비하면 자기의 사람됨됨이 부끄럽게 생각되였다. 하지만 필네가 그렇게도 영섭이를 귀여워하던것을 생각할 때 어차피는 알려지고말 일이니 어쩔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뚜벅뚜벅 가래나무아래로 되돌아왔다.

《진정하라구, 모두 알면 할아버지나 어머니가 더 딱해할것 아니야.》

만나서 이태째 처음 들어보는 정섭이의 진정이 담긴 조용한 말에 필네는 눈물이 그렁한 얼굴을 들었다. 아무리 어둠이 첩첩해도 자기를 이윽히 바라보는 눈에 따뜻한 정이 어려있었다.

그런것을 느낄수록 필네의 가슴은 슬픔에 차올랐다. 이 세상은 어질고 착한 사람들에게만 불행을 덮씌우는 세상인가. 웃간 바라지를 통하여 정섭이의 할아버지가 껄껄 웃는 소리가 울리여온다. 손님들앞이라고 저렇게 흔연히 웃는 로인의 앙상한 가슴이 얼마나 쓰릴것인가. 그런것을 생각할수록 설음이 북받쳐올랐다.

《그걸 이리 내라구.》

정섭이는 흐느끼는 필네를 멀끄러미 바라보더니 가달박에 손을 뻗쳤다.

필네는 정섭이의 손을 뿌리쳤다.

《어쩌면 세상은 이렇게 모질가요? 난 너무 분해서 그래요. 다 큰 애를 죽이다니···》

필네는 잠시 서서 어깨를 떨다가 입을 감쳐물고 정지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