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5


 
 

제 7 장

5

 

정의춘령감은 큰논 한배미를 갈아버리고 새 논에 보습날을 박기전에 쌍으로 소들을 메운 연장을 논두렁에 올려놓고 자기도 그옆에 걸터앉아서 부시럭부시럭 엽초를 말았다. 그는 권연을 피우기도 했지만 독이 센 엽초를 더 좋아해서 어디가나 비단천으로 만든 담배쌈지를 협낭에 넣고다니였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황소들은 새김질을 하였다.

넓은 벌에서는 올해에도 뜨락또르가 와서 협동조합의 논밭들을 세차게 갈아번지고있었다. 저 뜨락또르라는것이 얼마나 좋은가! 그는 진정 그 기계가 부러웠다. 기계뿐이 아니다. 조합에는 소들도 많이 늘어나서 지금에 와서는 누구도 정의춘이네 황소들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빌리러 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현촌에서는 정의춘이를 내놓고는 다 협동조합에 들었다. 정의춘이 혼자 개인농으로 남아있었다.

생활의 타성이라 할지 자기 보존의 본능이라 할지 나무에 박힌 옹이처럼 고집스러운 리기심이라 할지 어쨌든 정의춘이는 자기의 《과수원집》울타리에서 다른 세상으로 나오기를 몹시도 주저하였다. 그도 농촌에서 일어나고있는 걷잡을수 없는 세기적인 변천에 종당에는 자기도 합세하지 않으면 안되리라는것을 서글픈 심정으로 내다보고있었다. 《협동조합》이라는 넓은 울타리안에 종당에는 정의춘이도 들어가게 마련일것이다. 1년이나 2년후, 혹은 3년후에 그러한 결말이 도래하겠는지 하는 시간문제가 남아있을따름이다. 정의춘이는 공화국에서 부농들의 재산을 수탈하고 그들을 청산하는것이 아니라 정권에 해되는 일을 하지 않으면 개조를 해서 사회주의근로자로 만든다는 정책을 세우고있다는것을 명백히 알게 되였다. 처남 안대식이가 수탈이요 숙청이요 하며 땅땅 으르던것과는 다르지 않는가. 사실 재산을 털릴가보아 협동화가 시작된후 어느 하루도 숨을 크게 쉬고 살아본적이 없는 정의춘이였다. 그런데 로동당과 공화국정권은 개인재산을 보호해주었고 부농이라고 차별을 하지 않았으며 아들 종원이는 전상자병원에서 무료로 수술을 했고 무료로 치료를 받고있다. 이런것을 생각하면 저혼자 숱한 재산을 차지하고있으면서 남들보다 배불리 먹고 잘사는것이 불안스러웠고 로동당에서 바라는대로 협동조합에 드는것이 옳을것이다. 또 대세가 그렇게 흐르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일년이라도, 아니 한달이라도 지금의 유족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더 유지해보고싶었다. 좀 더 뻗치여보다가 볼판이다. 오늘 이때까지 살아온 《과수원집》을 버리고 그 울타리에서 나오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한해 더 농사를 지어보자··· 그는 피우던 마라초 꽁다리를 홱 내던지고 논두렁에서 일어섰다.

《이랴, 쩌, 쩌···》

소잔등에 채찍을 휘두르며 그는 새논을 열심히 갈아나갔다.

행길쪽으로 향해 갈아나가며 피뜩 보느라니 리당위원장 강명우가 걸어온다. 아마 군에 회의갔다오는 모양이다.

그냥 지나칠줄 알았던 강명우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멈추어서 담배를 피워물고 정의춘이 논가는 모양을 지켜보고있다.

(이 사람이 또 무슨 할 말이 있는 모양이군.)

차라리 욕을 하거나 꽥꽥거리면 같이 소리치며 속이 후련하게 싸움질이라도 해보련만 큰소리치는 일없이 해설하고 설복하는 강명우를 대하기 몹시 힘들어하는 정의춘이다. 그는 인간적으로는 한마을에서 같이 늙어가는 강명우를 존경하고있었다.

《정령감, 수고하우.》

정의춘이 가까와지자 그가 인사를 했다. 정의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숱한 논을 혼자서 어떻게 다 갈려 하나? 밤낮으루 갈아대두 안되겠는데···》하는 강명우의 걱정에 정의춘이는 딴전을 썼다.

《군에 회의갔다 오우?》

《회의갔다 오네. 그런데 령감, 일손이 돌아가지 않아서 땅을 묵이면 안되우.》

강명우가 오금을 박았다.

《걱정마우. 외나, 외나···》

정의춘은 소를 돌려세워가지고 계속 갈아나갔다.

그러나 그는 은근히 걱정이 되였다. 땅을 묵이면 안된다는 리당위원장의 말이 그저 입에서 불쑥 튀여나온것이겠는가? 회의에서 그게 토의된 모양이다.

이러구있다간 안되겠다. 넨장할것, 전에는 품팔이군들이 많아서 야단이였는데 그게 점점 줄어들더니 올해에는 제발로 찾아오는놈이 하나도 없다. 작년에도 저절로 찾아오지 않아서 정의춘이가 찾아다니며 삯일군들을 구해들였다. 하는수 없다. 점심이나 먹고는 삯일군들을 구해봐야지··· 그러나 정의춘이는 여기서 크게 오산했다. 작년과 금년이 또 달라졌던것이다.

오후에 이웃마을과 읍에 나가서 삯일을 해줄 사람을 구해보려고 분주히 쏘다녔지만 그는 헛물만 켰다. 우선 린근에는 자기와 같은 처지의 부농 몇세대를 내놓고는 다 조합에 들어서 일을 해줄 개인농이 없었다. 읍에 나갔더니 전에 정의춘이네 과수원에 와서 가지자르기작업을 해주군 하던 과수기술자는 국영과수농장에 들어갔고 장사군들, 수공업자들과 기타 개인업자나 건달군들도 대개가 판매생산협동조합이나 편의협동조합에 들어갔다. 처음 당하는 일이 아니지만 작년이 벌써 옛날로 되였다. 게다가 재수없게 감옥에서 나온 조영란이를 만났다. 조영란이는 현상도의 협박에 못이겨 그를 도와준 녀자로, 큰죄가 없는것으로 관대히 처분되였다. 그래 몇년 감옥밥을 먹고 나왔는데 현촌에서 살기가 무엇해서 읍에 작은 집한채를 구하고 옮겨앉았었다.

《어- 조영란이군. 임자 그래 어떻게 지내나?》하고 길에서 정면으로 맞다들어 피할수 없게 된 정의춘이가 인사를 했다.

《뭐 그럭저럭 지내지요.》

《장사를 하나?》

《이 령감이 세상일에 영 깜깜이네그려.》

조영란이는 전과자였으나 그것때문에 성미마저 변한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개인장사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소? 하구싶어두 못해요. 그래 판매생산협동조합에 들어서 일한다구요.》

일손을 구하기 어렵게 되였다. 정의춘이는 기가 꺾이여 집으로 돌아왔다. 과수원과 그 숱한 논밭의 일을 그자신과 녀편네 그리고 이웃동네의 부농네 집 며느리였던 딸, 이렇게 셋이서 어떻게 해내겠는가? 녀편네와 딸이 과수원에 두엄내는 일을 맡았고 정의춘이는 논밭갈이를 맡았는데 아무리 밤낮으로 일한다 해도 땅을 묵이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였다.

그러한 형편에서 그래도 어떻게 해보려고 버드렁거리는데 어느날 밤에 정의춘이는 리인민위원회로 나오라는 부름을 받았다. 대체 무슨 일인가? 무엇때문에 리에서 부르는가? 불안한 마음을 안고 허둥지둥 그곳에 도착하니 중절모자를 쓰고 코트를 입은 인상이 랭랭하고 칼칼한 사람이 걸상에 앉아있었다. 전에 현촌에 자주 내려와 있던 농업성 부상이였다. 근 반년만에 다시 본다.

정의춘이는 급히 인사를 했다.

《앉으시오.》

강봉석은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눈으로 정의춘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 물읍시다. 안대식이라는 사람이 당신의 처남이지요?》

정의춘이는 대뜸 입이 굳어지며 턱을 덜덜 떨었다.

안대식이는 농업성으로 승진되여간후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당장 정의춘이를 어디 삼수갑산같은데로 내쫓아버릴것처럼 땅땅 을러메였는데 8월전원회의이후 그 높은데서 갑자기 땅바닥으로 나떨어졌다. 그는 정의춘이를 부농이라고 추방해버리려 했던 그런 먼 산골로 그자신이 쫓기여갔다. 그에게는 반당종파분자들의 우두머리인 최창익의 졸개라는 수치스럽고 무서운 딱지가 붙었다.

한때 매부가 부농이여서 피해를 입었다며 꺼려하고 적대시했던 안대식이였는데 이제와서는 반대로 처남이 반국가범죄자로 락인되여 정의춘이가 그의 피해를 입게 될판이다.

(개같은놈. 현상도같은 반동놈. 그래가지구두 내가 뭐 어쨌다구? 고약한놈!)

그 소식을 듣고 정의춘이는 별별 욕을 다 퍼부었다. 그가 나동그라진것이 시원하고 통쾌했지만 다른편으로 생각해보면 그자때문에 자기가 화를 입을것 같아서 더했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땅을 묵이게 될 걱정보다 그 걱정이 속으로는 더 큰데 중앙에서 내려온 간부가 안대식이와의 인척관계를 물었으니 어찌 기겁하지 않을수 있으랴.

신음같기도 하고 대답같기도 한 소리가 정의춘의 목구멍을 긁으며 올라왔다.

강봉석이는 그 소리를 《예.》하는 대답으로 인정하였다.

《당신이 그놈때문에 박해를 받았다는 소리를 들었소. 그러나 그는 그고 당신은 당신이요. 나는 당신이 올해농사를 잘 지어 국가에 보답해야 한다고 말하고싶소.》

강봉석이 딱딱하게 말했다.

《예, 예···》

정의춘이는 불시에 속이 확 열리는것을 느끼며 허리를 굽신굽신했다.

《당신이 가지고있는 과수원이 4 500평이라지요?》

부상이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토지는 얼마나 되오.》

어째서 이런것을 묻는지 알수 없어 정의춘이는 부상의 눈치를 살피며 얼마 된다고 뜨적뜨적 대답했다.

《로력자는 몇이요?》

《셋입니다.》

《그 셋이서 그 많은 경지와 과수원을 다 다루어낼수 있소?···》

《으···》

또다시 그의 목구멍에서는 이상하고 애매한 소리가 나왔을뿐 똑똑한 대답을 할수 없었다.

《그것은 삼척동자에게도 명백하오. 다루어낼수 없소. 그런데 만일 땅을 묵이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요?》

《···》

정의춘이는 숨이 꺽 막히는것 같았다.

《모르는가요?》

《아, 압니다···》

정의춘이는 가까스로 대답하였다.

《알면 됐습니다. 나는 그것을 강조하려고 당신을 불렀습니다. 돌아가도 좋습니다.》

처음보다는 좀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으나 정의춘이에게는 그 어조가 문제로 되는것이 아니였다. 땅을 묵이면 법에 걸리게 되여있는 사정이 문제로 되고있었다. 그런데 삯일군을 구할수 없으니 땅을 묵이게 되리라는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지 않는가. 거기다가 반당분자 안대식이와의 인척관계가 있다. 그 사람같지 않는 안대식이가 화근이다. 농업성 부상이 그는 그고 당신은 당신이라면서 좋은 말로 농사를 잘 지어 국가에 보답하라고 말했지만 이제 땅을 묵이는 날이면 법에 걸리고 법에 걸리면 안대식이의 매부라는것이 계산될것이다. 그가 무서운 재난을 가져올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정의춘이는 그를 당장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정도로 미워났다.

정의춘이는 땀에 푹 젖어가지고 비칠거리며 어떻게 자기 집 대문에 이르렀는지 알수 없었다. 큰 야단났다.

정의춘이가 나간후 강봉석이는 홰불농업협동조합관리위원회로 찾아갔다.

관리위원장과 리당위원장 그리고 부기원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는중이였다.

《들어가도 일없겠습니까?》

《아 어서 들어오십시오.》

강명우가 일어서며 맞아들이였다.

《그래 정의춘이를 만나보았습니까?》

《만나보았습니다.》

강봉석이는 현촌에 도착하여 강명우와 리인민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협동조합에 들지 않는 유일한 개인농인 정의춘이네 올해농사차비에 대하여 료해한후에 그를 만나보겠다고 말했었다. 리간부들을 통해서 최근의 그의 동향을 충분히 료해한것만큼 꼭 만나보아야 할 절박감은 느끼지 않았으나 땅을 묵이면 안된다는것을 직접 강조하고 특히 그가 안대식이를 미워하면서도 안대식의 화를 입을가봐 몹시 겁을 먹고있다는 강명우의 이야기를 들은것만큼 마음을 풀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던것이다. 농업성에서 안대식이를 폭로하는 회의가 있었다. 그러나 강봉석이는 그의 피해를 그중 많이 받은 사람이였지만 입을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를 그저 무시해버리였다. 사실 안대식이가 무슨 인물이라고 그를 놓고 입이 아프게 말해야 하겠는가. 큰 인물에 붙어먹고 사는 불필요하고 무익한 인간쓰레기, 최창익의 희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쁜놈은 최창익이다. 그런데 그 최창익이한테 안대식이같은자들뿐아니라 한때 내노라하던 박창옥이도 가붙었다. 물론 강봉석은 박창옥이에 대해서는 그가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하니 직책을 존중했지 그의 실천능력이나 인간자체는 인정하지 않고있었다. 그렇더라도 어쨌든 당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높은 직위에 있었고 쏘련에서 대학을 나온 문명인이라 하던 그가 최창익이같은자한테 붙어서 반당반혁명책동을 했고 반정부무장폭동준비에도 참여했다니 분개하지 않을수 없었다. 안대식이같은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무장폭동이 준비되고있는것도 알지 못했으니 그 바람에 관대히 용서받고 산골로 추방되였다. 그렇게 던져버린다 해서 아무런 파문이 일어날것이 없었다. 그래 정의춘이를 위안해주면서 그러나 땅은 묵이면 안되기때문에 오금을 박아주었다.

《정의춘이가 자기 토지를 다 다루어낼것 같습니까?》하고 강명우가 강봉석에게 물었다.

《본인은 뭐라고 합니까?》

《그거야 뻔하지 않습니까.》

강봉석의 대답이다.

《그래서 우리도 방금 그 문제를 토론했습니다.》

《예- 그래요?》

강봉석이는 어떻게 토론되였는지 궁금했다.

《그래 어떻게 하려는것입니까?》

《조합에서 정의춘의 땅을 갈아주고 농사도 지어주어야지요. 과수원도 가꾸어주구요. 땅을 묵일수야 없지 않습니까.》

강명우가 기침을 하며 말했다.

《관리위원장동무도 같은 생각이요?》

강봉석이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고있는 옥금이에게 물었다.

옥금이의 생각이라고 다르랴. 처녀는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관리위원장의 위치에서 정의춘이가 남의 로력을 착취해서 잘살아보려는 립장을 버리고 개심되여 조합에 들도록 여러모로 애써보았으나 정의춘이는 쉽게 개심될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땅을 묵이면 그만큼 나라에 쌀이 적게 생산될것이 아닌가.

《부상동지, 어찌겠습니까?》하고 옥금이는 얼굴을 들고 대답하였다.

《하긴 그 방법밖에 없지요. 솔직히 말해서 동무들의 그 마음이 놀랍습니다. 옳습니다. 전쟁시기에도 한치의 땅도 묵이지 말자는 구호를 들었는데 지금이 어떤 시기입니까. 나는 농업성의 책임일군으로서 당신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게 됩니다.》

강봉석이가 말했다. 그러나 그는 속에 있는것을 다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웨치고있었다.

(이것이 우리 나라 농촌의 구체적인 실정이다. 부농들을 수탈도 청산도 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그들이 스스로 사회주의의 포위속에서 사멸해버리고말게 될것이다.) 하고···

···뜨락또르가 조합의 논을 다 간 다음날 논두렁을 넘어 정의춘이네 논에 들어섰다. 정의춘이가 여기까지 소로 갈아나오자면 세월이 없게 멀리 떨어져있는 논이였다. 뜨락또르가 강철날들을 번뜩이며 한번에 세이랑씩 갈아번지며 씽씽 달리였다. 한편 밭에서는 조합의 보잡이들이 쌍으로 메운 소잔등에 채찍소리를 내며 정의춘이네 밭을 갈기 시작했다. 정의춘이는 정신이 나갈 지경이였다. 처음에는 조합에서 자기네 토지를 먹는줄로 알고 얼굴이 컴컴해져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밭을 가는 현덕칠이를 붙잡고 물었다.

《여보게, 덕칠이적은이, 이거 대체 어찌자는건가?》

《무얼말이요?》

《왜 남의 밭을 승인도 없이···》

《마음놓소.》

현덕칠이는 원체 점잖은 사람이라 정의춘의 속이 들여다보였지만 욕대신 설명을 해주었다.

《땅을 묵이면 안되겠기에 조합에서 령감네를 도와주는거요.》

옆에서 듣고있던 박인수가 끼여들어 시까슬러댔다.

《관리위원장이 그러는데 씨붙임도, 김매기도, 가을도 다 우리가 맡아서 해주기로 했다니까 령감은 지주처럼 앉아있다가 가을에 〈소작료〉나 받구려. 헌데 3.7제로 받아야 하우.》

흙빛이 된 정의춘의 얼굴에서 근육이 꿈틀거리였다.

그는 다른 말없이 돌아서더니 곧장 마을로 향하였다. 대낮이고 행길이 그닥 울퉁불퉁하지도 않는데 그는 돌부리에 자주 발끝을 채우며 술취한 사람처럼 걸었다. 그리고 언덕우에 새로 지은 관리위원회로 올라갈 때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였다. 마침 관리위원회에서 나오는 옥금이를 만날수 있었다. 처녀는 불타는듯 한 빨간 머리수건을 쓰고있었다.

《관리위원장, 나 좀 보세!》

관리위원장을 길에서 만나게 된것이 다행스러워 그는 덤벼치며 찾았다.

옥금이는 아무말없이 기다렸다.

《왜 우리 밭을 본인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조합에서 가나?》하고 정의춘이는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는 처녀를 마주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현덕칠이가 도와주는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도저히 믿을수 없는 정의춘이였다. 조합에서 무엇때문에 도와주겠는가? 땅을 묵이면 안되겠기에 갈아준다는것인데,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자기의 토지를 빼앗는것이 아니겠는가? 박인수가 지주처럼 소작료나 받으라 어찌라 한 말이 그저 놀려대느라고 그러는것 같지 않았다. 사실 지금에 와서 묵이게 되리라는것이 뻔해진 그 토지를 조합이 빼앗는다 해도 할 말이 없는 정의춘이였다. 농업성 부상이 안대식이와의 관계를 물어보며 공연히 자기와 담화를 했겠는가. 미리 암시를 했고 침을 놓은것이다. 그는 바로 이런 복잡한 심리를 안고 옥금이를 찾아떠났었다.

옥금이는 정의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미리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새침해보이는 처녀는 마깝잖아 하는것 같았다. 그런데 과연 정의춘이는 어떻게 대답을 하겠는가? 갈아달라고 렴치도 체면도 자존심도 다 줴버리고 대답하겠는가, 갈지 말라고 배심을 내대겠는가! 호미난방의 처지에 빠진 정의춘이는 대답을 할수 없는것이다. 지금도 그는 그저 끙끙 갑자르기만 하였다.

《차마 갈아달라하기도, 싫다고 하기도 못할게 뻔하지 않습니까. 그래 일을 시작하고 알려드리려 했던거예요!》하고 옥금이가 말했다.

《관리위원회에서는 본인이 승인을 하건 안하건 일손이 닿지 못하는 토지를 경작해주기로 토론했어요. 땅을 묵이면 되겠어요? 그건 죄를 짓는것입니다. 비록 과수원집의 토지라 하지만 저희들에게도 책임이 있어요. 개인의 땅이건 조합의 땅이건 다 나라의 토지가 아니겠습니까?》

옥금의 말이 백번 옳았다. 그리고 조합에서는 정의춘의 땅을 먹어치우려 하는것이 아니라 한마을에서 같이 농사를 짓는 처지에서 국가적립장에서 진심으로 도와주려 한다는것이 처녀의 이야기와 말씨와 몸가짐에서 력력히 느껴졌다. 이렇게 되면 렴치가 없다고 뒤에서 비난은 받겠지만 땅을 묵이지 않게 되니 법에 걸리지 않을것이다.

조합이 정의춘이를 살려주는셈이다. 누구도 개인으로서는 그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으며 품팔이를 더는 해줄 사람이 없었지만 조합은 그를 외면하지 않고있었다. 옥금관리위원장이 구원의 손길을 뻗치였다. 전쟁시기 식구들을 먹여살리기 위하여 그 추운날 남의 집에 가서 일도 해주고 읍에도 드나들며 고생하던 처녀, 봄이 되여 농사차비에 나섰으나 지게밖에 없던 그 어리고 가엾던 자그마한 처녀가 지금은 얼마나 위력해보이고 커보이는가. 그때 남의 로력을 써서 농사짓고 집짐승들을 치고 과수원을 가꾸어 치부하며 기름지게 먹어 살이 진 배를 내밀고 살던 정의춘이는 지금 얼마나 가련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가 되였는가. 그래도 옥금이는 정의춘이를 외면하지 않았고 도와주고있는것이다.

정의춘이는 량심의 가책을 견디여낼수 없었다.

《관리위원장, 고맙네.》

그는 여전히 눈을 들지 못한채 겨우 이렇게 목메인 인사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는 깨끗한 처녀의 눈을 마주 쳐다볼수 없었고 순결한 처녀의 옆에 더는 서있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는 비틀거리며 처녀에게서 물러섰다.

옥금이는 정의춘이의 속마음을 짐작할수 있었다. 처녀도 지나간 괴로웁던 일들을 추억하고있었다. 그것은 결코 지워질수 없는 쓰린 추억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간 일이며 오늘에는 오늘의 일이 있는것이다.

《저- 아바니요.》하고 처녀는 정의춘이를 불러세우고 조용하고도 절절하게 말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수상님께 드리셔야 합니다.》

정의춘이는 돌아서서 안개가 낀듯 뽀얗게 된 눈으로 처녀를 말없이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렇다. 옥금이의 말이 옳다. 안대식이 같은것들이 자기를 청산한다, 숙청한다 하며 어디 이 세상밖으로 내던질것처럼 했지만 우리 수령님께서만은 자기같은 인간도 차별을 하지 않으시고 그 넓으신 품에 품어주시는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수령님의 뜻대로 협동조합은 부농인 자기의 농사일이 걸린것을 풀어주는것이였다. 언제나 수령님께서 바라시는대로 일하는 옥금이였다. 몸매 작은 옥금이의 후더운 인정미, 넓은 속, 큼직한 일솜씨 그 모든것의 원천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날 현촌마을은 새로운 기쁜 일을 맞이했다. 종원이가 흰이를 해볕에 눈부시게 빛내이며 마을에 나타났던것이다. 그는 마침내 침대에서 일어났으며 대지를 활보할수 있게 되였다. 그는 다시 대오로 돌아왔으며 뜨락또르를 몰고 기름진 땅을 갈아번질수 있게 되였다.

큰길에서 벗어나 마을로 향하는 들길에 들어선 종원이에게 제일 먼저 눈에 띄운것이 논을 갈아번지고있는 뜨락또르였다. 노래소리처럼 들리는 귀에 익은 동음, 연통으로 내쏘는 파르스름한 연기, 해볕에 번뜩이는 보습날··· 종원이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논뚝에 발을 걸채이며 논밭을 가로질러 달리다싶이 뜨락또르를 향해갔다. 병상에서 그처럼 뜨락또르를 타고 달리고싶어했던 욕망이 그를 걷잡지 못하게 했던것이다.

뜨락또르가 멈추어서고 운전사가 뛰여내리더니 기름묻은 모자채양을 들어올리며 반가웁게 웃었다. 잘 아는 운전사였다. 그들은 손과 팔, 어깨들을 마주 잡고 툭툭치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리당위원장 강명우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이사람, 종원이!》

《아, 리당위원장동지!》

종원이는 갈아번진 이랑을 마구 밟으며 다가오는 강명우를 향해 마주가며 소리쳤다.

《드디여 돌아왔구만!》

강명우는 그의 손을 잡고 쓸어주며 목메여 말했다.

《예, 돌아왔습니다.》

《그래, 괜찮은가? 아주 깨끗이 고쳤나?》

《그럼요. 이 뜨락또르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다시 뜨락또르에 올라 고향의 논밭을 갈수 있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어찌도 마음이 조급한지, 빨리 달리는 기차도 굼떠보이기만 했습니다.》

《기적일세! 자네가 걸어돌아온게 기적이야.》

종원이는 들고선 보따리를 매만지면서 얼굴을 저으기 수그리고말했다.

《아저씨, 이 세상에는 기적이란것이 없다는 말도 있지요. 아닙니다. 기적이 있습니다. 병도 사람의 정신에 못견딥니다. 저는 이것을 확신했습니다. 제가 옥금이로부터 김일성수상님께서 우리들의 사랑을 지지해주시였으며 아버지도 사회주의근로자라로 개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편지를 받고 온밤을 눈물로 지새울 때 의사들이 병이 악화될가봐 걱정했지만 그날부터 저는 병을 이기기 시작했고 마침내 땅을 딛고 일어설수 있게 되였습니다. 병원에서도 그 소식을 듣고 궐기했지요. 수상님은 저의 정치적생명의 은인이시고 육체적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음, 그래. 참 옳은 말이야.》

《그동안 많은것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것을 보면서 이제는 병상에 누워있는동안 하지 못한 몫까지 합쳐서 일하고 또 일해서 은혜에 보답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 이 논이 우리 논이 아닙니까?》

종원이는 뜨락또르가 갈아번지고있던 논배미를 가리키며 물었다.

강명우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과수원집〉논이지···》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도 조합에 들었군요?》

종원이는 그것이 늘 가슴에 맺혀있었으므로 제일가는 관심사였다.

강명우는 지레짐작으로 기뻐하는 종원이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발밑을 내려다보기만 하였다.

《그럼 혹시 아직도?···》

종원이는 눈빛을 흐리며 강명우와 뜨락또르운전사를 번갈아보았다. 운전사도 어딘가 다른데를 보고있었다.

《종원이.》

마침내 강명우가 말했다.

《여기 서있지 말구 집으루 가자구. 먼길에 피곤할테지?》

종원이는 얼굴빛이 컴컴하게 죽었다.

《집으루 간다구요? 어느 집말입니까!》

불시에 설음이 북받쳐오른 종원이가 웨치듯 말했다.

《〈과수원집〉에요?》

《이 사람아!··· 고정하라구.》

《아닙니다. 리당위원장동지! 저는 아버지가 이제는 조합원이 되였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배은망덕이 어디 있습니까! 이 논은 왜 갈아줍니까? 부농의 논을 왜 갈아주는가말입니다!》

펄펄 뛰는 종원이를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알수 없어 강명우는 머리를 설레설레 젓다가 손을 홱 내저었다.

《내 이런 일이 벌어질줄 알았다니까. 종원이, 이건 내가 잘못했다. 내가 너의 아버지를 벌써 교양했어야 하는건데 하도 령감이 완고하니··· 하지만 이 논은 조합에서 갈아주기로 했다. 땅을 묵이면 되겠니? 너의 아버지로서는 도저히 그 많은 땅을 다 갈수 없지 않는가. 그래서 관리위원장 옥금이가···》

종원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옥금이!··· 꿈속에서도 그리던 옥금이··· 그 처녀의 가슴에 원한이 맺히게 한 아버지인데 그래도 옥금이는···

그는 비틀거리며 향방없이 걸어갔다. 강명우가 따라오며 같이 옥금이가 있는 관리위원회로 가자고 말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옥금이를 만납니까. 네, 리당위원장동지?··· 저를 좀 내버려두십시오. 제 혼자있게 해주십시오. 가슴이 막 찢기는것같습니다.》

《알았다. 그럼 여기 앉아서 좀 기다려라.》

강명우는 가슴이 서늘해질 지경으로 랭정해지며 이렇게 말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뜨락또르는 다시 논을 갈고 종원이는 논두렁에 걸터앉아 머리를 푹 숙이였다. 이른 봄의 찬바람이 넓은 들에 거침없이 불어쳤다. 논두렁에 서있는 지난해의 묵은 풀대들이 구슬픈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있었다.

(어쩌면 좋은가. 내 어떻게 옥금이를 대하며 마을사람들을 대하겠는가. 아니다, 종원이 행동해야 한다!)

논두렁의 흔들리는 풀대들을 마구 잡아당기던 종원이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벌떡 일어섰다.

(용서할수 없다. 아버지를 용서할수 없어! 결판을 내고야말테다!)

그는 마을을 향해 바람을 가르며 달구지길을 걸어갔다. 그러나 그는 얼마가지 못하고 우뚝 멈추어섰다. 강명우리당위원장과 아버지가 마주오고있었다. 아버지는 엎어질듯 비칠거리며 허겁지겁 달려왔고 뒤짐을 지고 얼굴에 노기가 어린 강명우는 그뒤를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버지는 달려온다고는 하지만 발이 제대로 나가지 않아 금시 주저앉을것 같이 보였다. 강명우의 몹시 성난 얼굴로 보아 그가 얼마나 아버지를 되게 다불러댔는가 하는것을 충분히 짐작할수 있었다.

정의춘이는 종원의 발앞에 이르러 푹 엎어졌다. 부들부들 떠는 손이 아들의 낡은 군화와 바지가랭이를 더듬는다. 무릎걸음으로 다가들며 아들의 두다리를 껴안는다.

《얘야, 네가 이 다리로 다시 걷게 되였구나!···》

정의춘이가 헐떡이며 말했다.

정종원이는 어딘가 먼곳을 보며 말을 하지 못했다.

《종원아, 내 오늘··· 결심했다. 네앞에 무엇을 숨기겠니, 엉? 과수원, 토지, 소를 다 조합에 바치기로 마음을 돌렸다. 옥금이한테 가서 논밭을 갈아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 그 애가 수상님께 인사를 드리라고 하더라. 내 그래 결심했다.··· 이 애야, 아들아!···》

《···》

종원이는 아버지가 오늘 《과수원집》의 낡은 울타리에서 나와 새 생활의 길에 들어설것을 결심했다는것을 믿을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도 분하고 원한에 사무쳐 얼어붙었던 마음이 이내 풀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만 입속으로 《아버지-》 하고 부를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