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2


 
 

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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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새벽, 아직 수도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밤새워 일한 건설장의 로동자들도 눈시울이 무거워져 새벽잠을 청할 시간이다. 살림집들과 공공건물들과 상점들이 일떠서고있거나 이미 건설이 끝나 새 생활이 시작되고있는 거리에는 사람도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정적속에서 푸름푸름 밝아오는 새벽이였다.

이 새벽에 침상에서 일어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저택의 정원을 거닐고계시였다. 새벽이슬이 구두를 축축하게 적시였다. 그이께서는 정원의 잔디밭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으시며 사색의 세계에 깊이 잠겨계시였다. 어제 내각사무국의 소회의실에서 진행된 내각회의 휴식시간에 잠간 만나보신 강봉석이와 나누신 짤막한 대화의 여운이 지금 그이의 뇌리속에서 다시 이어지고있었다.

그 류례를 찾아보기 힘든 혹심한 파괴의 재더미를 헤치고 도시와 마을을 건설하고 빈터우에서 제강소와 제철소들, 기계공장들, 발전소들··· 한마디로 수다한 공장과 기업소들을 일떠세워야 하는 전후복구건설의 간고한 이 나날들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거대한 건설작전을 진두에서 지휘하고계시는 김일성동지께서 큰 국가적일군이나 중요한 연구사업을 하는 박사들같은 유명한 사람들뿐아니라 평범한 수다한 무명의 인간들의 운명에까지 관심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겠는가.

그이의 사색은 사람들의 운명과 많이 관련되여있었다. 그이께서는 사람문제에 관하여서는 어느것 하나도 소홀히 스쳐보내지 않으시였다. 사람들은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호상 련관속에서 존재하고 살아가고있으며 그들 개개의 운명이 전체의 운명과 필연적으로 결부되여있다. 어느 한 사람도 그에게서 무엇이든 일이 생기면 그것은 다른 사람과 련관되며 호상작용을 하기마련이니 가령 강봉석이와 같은 국가적인 일군을 놓고 생각할 때 그의 안해를 떼여놓을수 있겠는가. 그러나 물론 이런 인간들의 상호련관때문에만 결코 매 사람들의 운명에 관심하게 되는것은 아니다. 가장 평범한 인간에게도 부피 큰 책으로 적을수 있는 자기의 고민과 기쁨, 생활과 력사가 있는것이다. 이러한 매 사람들이 합치여 우리 인민을 이루며 그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뭉친 힘으로 나라의 재건이 진행되고있다.

그이께서는 강봉석이를 만나시기전에 그의 농촌현실체험정형에 대한 김일의 보고를 들을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이를 무척 기쁘게 하였다. 강봉석은 매우 힘들게 그러나 그만큼 깊이있게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체취에 적용되여가고있으며 꾸준히 《풍토순화》되여가고있다. 물론 앞으로도 그는 우리 당의 자주적인 로선과 정책의 참뜻을 깊이 깨닫고 자기의것으로 소화하여 그 집행의 앞장에 서서 나가게 되자면 노력을 더해야 할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심각한 가정문제가 해결을 기다리고있다. 남편을 따라 조국으로 나온 그의 안해는 감정과 정신, 직업과 생활의 모든 령역에서 체질을 바꾼다는것이 매우 어렵거나 지어 불가능할수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강봉석이에게 생활의 시련이 아니될수 없는것이다.

당선전사업부문, 특히 문학예술분야에서 박창옥의 관료주의적작풍과 교조주의, 사대주의사상이 끼친 엄중한 후과들이 최근에 심화되여 폭로되고있는데 그 자료들속에는 강봉석의 안해에 대한것도 있다. 그 녀자는 조선의 예술을 아시아적인 락후성으로부터 유럽적인 문명한 예술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박창옥의 사상적본질이 무엇인지를 몰랐던나머지 유럽의 부르죠아사상을 끌어들이는데서도 한몫하였다. 그리하여 그 녀자는 끝내 조선의 정서와 현실에 맞는 노래를 부르지 못한 녀가수로 남아있었으며 그것은 기필코 그 녀가수의 예술인으로서의 실패를 가져왔다. 그 녀자가 번민하고있으며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져있는데 그것은 자기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고 집단의 충고를 소화하지 못해서 그런다는 내용이 그 녀자에 대한 자료에 밝혀져있었다. 예술계에 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진 녀가수가 아니였다. 그러나 강봉석의 안해였으므로 그 녀가수의 자료를 안이상 김일성동지께서는 심사숙고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이께서는 김일에게 강봉석이 본인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시지 않고 그의 안해에 대하여 알려주시며 말씀하시였다.

《나는 광복후 강봉석동무와의 첫 상면때에 당신은 조선의 농업발전에, 당신의 안해는 조선의 예술발전에 기여해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드랬소. 강봉석은 더 말할것도 없고 남편을 따라나온 그의 안해도 우리에게는 귀중한 인재였소. 그런데 그 녀가수는 아직도 우리 인민의 사랑을 받는 가수로 되지 못하고있소. 우리는 농업도 우리 식으로 협동화를 하고 우리 식으로 발전시켜야 할뿐아니라 문학예술도 우리 식으로, 우리 인민의 정서와 생활감정에 맞고 우리 인민의 건설사업과 혁명투쟁을 고무하는데 복무하는 문학예술로 발전시켜야 하며 바로 그렇게 발전시키기 위하여 광복후부터 오늘까지 노력해왔소. 현시기에 이르러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모든 령역에서 주체를 세워야 할 필요성은 더욱 절박해지고있소. 우리는 우선 사상사업에서 주체를 세울데 대한 투쟁의 불을 걸려고 하오. 특히 쏘련식으로 사상사업을 해온 박창옥동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려 하오. 이제는 우리가 내놓고 말할 때가 되였소. 사대주의와 교조주의에 정면타격을 가할 때가 되였단말이요.》

그이께서는 이러한 환경속에서 강봉석이가 표현은 하지 않지만 안해때문에 고민하고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처럼 김일과 심중한 담화를 나눈 이후여서 내각의 소회의실에서 진행되고있는 회의에 참가한 강봉석이를 무심히 보실수 없으시여 그이께서는 휴식시간에 강봉석이를 잠간 만나주시였다.

《부상동무의 부인이 지금 시련을 좀 겪는다는 말을 들었소. 다른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고 우리의 무대에서 계속 노래를 부르도록 해야 하겠소. 나는 동무의 안해가 우리 인민의 정서와 민족적감정에 맞는 노래를 부르기를 희망하며 반드시 우리 인민의 사랑을 받는 녀가수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때 그의 노래를 우리도 들으려 한다는것을 전해주시오.》

이 말씀은 무대에서 계속 노래를 부르느냐 마느냐, 부른다면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부르고 노래를 부를수 없다면 어디로 가겠느냐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녀가수의 암담한 처지를 깊이 헤아려보시고 다시 믿음을 주시는 따뜻한 격려의 말씀이였다.

무대에서 실패를 하기 시작한 강봉석의 안해는 이즈음 사상검토를 받게 되여 극장에도 나가지 못하고 무슨 비판서를 쓰느라 안에 들여박혀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고있었다. 그리하여 강봉석은 집으로 퇴근하여 갈적마다 우울해져 집안에 불시에 들이닥친 이 회오리바람이 장차 어떻게 될지, 잦아들겠는지 혹은 더 세차지겠는지 알수 없어 늘 불안해하였다. 그런데 수령님께서 자기 안해를 구원해주시고 자기 집안에 드리운 침울한 비운을 한순간에 가셔주신것이다.

강봉석은 원래 흥분을 내색하지 않으며 안해문제같은것은 입밖에 꺼내는 법이 없다. 그러나 이 순간 그는 자기의 격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만 그것을 깊이 머리숙이고 《감사합니다, 수상동지!》하는 절절하고 짧은 인사말로 표현했을뿐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것이 더 신뢰를 느끼게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농촌현실체험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속하겠다고 한 제기를 지지해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부상동무가 현촌에 다시 가면 자기에게 그처럼 큰 인상을 남기였고 농촌생활의 정서와 대지의 따뜻함을 느끼도록 하는데 큰 작용을 했다고 말한 처녀관리위원장동무를 잘 도와주기를 기대합니다.》

그이께서는 강봉석이가 김일에게 옥금의 사랑문제를 놓고 아직 그곳에 해결 못한 문제가 남아있다고 한 말도 념두에 두시였다.

이 문제는 수령님께서 사람들의 운명과 관련하여 심사숙고하시는 문제의 하나로서 매우 난처한것이 아닐수 없었다. 그이께서는 김일이로부터 최옥금이가 한마을의 부농아들과 눈이 맞아돌아간다고 걱정스러워 하는 말을 들으시였는데 그러한 사실보다도 그것때문에 옥금이가 부농을 비호한다는 비난을 받고있다는 여론에 더 류의하시였다. 최옥금이가 과연 그럴수 있겠는가. 다수확모범농민이고 농업협동화운동의 선구자의 한 사람인 옥금이가 과연 그런 처녀이겠는가, 그런 일로 자기자신은 물론 자기를 내세워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루를 끼치고 심려를 끼칠 그런 처녀겠는가.

우리가 부농들도 사회주의근로자로 개조하려 하는 이상 부농의 아들과의 사랑을 막을 필요는 없는것이다. 물론 옥금이가 자기와 같은 처지의 청년을 사랑한다면 더 좋을것이다. 그러나 남녀간의 사랑이 어떻게 바라는대로만 엮어지겠는가. 그리고 옥금이가 사랑해서는 안될 청년을 사랑할 정도로 정치적수준이 어린 처녀는 아닐것이다. 하지만 옥금이의 사랑은 물의를 일으키고있다.

김일이까지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옥금이가 부농을 감싸주거나 타협한 일은 없고 그 부농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어쨌든 부농의 아들과 사랑하는것은 아름답지 못하며 이러저러한 여론이 나돌수 있는 전제들이 있는것은 사실이라 하면서 반대하였다.

《저는 옥금이처럼 순결한 기본계급출신의 딸이 아름답지 못한 말을 듣는것이 몹시 기분 나쁩니다.》하고 김일이 말했었다.

부농에 대한 계급정책에서 편차가 없는 김일이까지 이렇게 나오니 수령님께서는 좀 난처해지시였다. 옥금이를 만나 구체적으로 알아보기전에는 서뿔리 결론을 지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현촌에 내려가있었으며 옥금이를 잘 알고있는 강봉석이에게 잘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였던것이다.

강봉석은 그이께서 하시는 부탁에 처녀의 사랑문제에 대한 옳은 해결을 기대하시는 뜻이 담겨있음을 알고 먼저 자기의 생각부터 말씀드리였다.

《수상동지, 그 처녀는 참 어려운 문제를 안고있습니다. 그 처녀의 사랑은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더욱 그 처녀에게 동정이 갑니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시였다. 경솔하게 이렇다 혹은 저렇다 하고 평가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였다. 구체적인 마을에서의 개별적인 부농에 대한 평가, 최옥금이와 같은 처녀관리위원장이 어떻게 부농의 아들과 련결되였고 부농은 어떤 인물인데 군중의 태도는 어떠한지 하는것들을 잘 가늠해야 한다. 여기서 특히 심중히 고려해야 할것은 최옥금의 사랑이 부농에 대한 우리 당의 계급정책과 직접 관련되여있다는점이다. 부농을 제한개조한다면서 조국을 위해 목숨도 아낌없이 싸운 부농의 아들과의 사랑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어떤 후과를 초래하게 될것인가? 강봉석은 원래 부농을 쏘련식으로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니 그 사랑을 반대할수 있겠지만 김일이야 농업협동화과정에서의 당의 계급정책에서 편차가 없는 사람인데 어째서 그러는가? 처녀를 아껴서일가? 그러한 견해가 최창익같은 사람들의 부농숙청론에 어떤 날개를 달아주게 되겠는지 모른단말인가?

그러나 지금은 수령님자신께서도 간단히 결론을 주실수 없으시였다.

《부상동무, 처녀의 사랑문제이기때문에 속단하지 말고 심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우리 생활은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합니까? 생활의 검증이 있어야 하며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이께서는 이 정도의 일반적인 충고를 주실수밖에 없으시였다. 휴식시간이 짧았다. 다른 기회에 더 그 문제를 이야기해보실수 있지 않을가, 하지만 허다한 당적, 국가적의의를 가지는 문제들이 시간마다 날마다 그이의 가르치심과 결론을 기다리는데 한번 지나가버리면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금 그이께서는 이른새벽 저택의 정원을 산책하시며 옥금의 심상치 않는 사랑문제가 마음에 걸려 고심하고계시는것이였다.

 

강봉석이 현촌으로 다시 내려간것은 벼가을이 시작될무렵이였다. 안해가 평양역에서 그를 바래주었다.

먼 출장길을 떠날 때나 공식대표단에 속해 외국에 갈 때면 안해는 이렇게 그를 기차정거장에서나 비행장에서 바래워주군 하였다. 하지만 이날의 바래움은 류다른것이였다. 그전처럼 간부의 안해인 녀배우로서 멋을 부리며 손을 흔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였다. 그전처럼 두엄냄새나는 농촌으로 간다고 싫어하던 안해가 아니였다.

김일성동지께서 그 녀자에게 녀가수로서의 새로운 활무대, 참다운 삶의 길을 열어주신후 그 녀자는 달라져가고있었다. 또 그사이에 아이들이 방학기간을 리용하여 평양을 다녀가면서 머지않아 부모들을 따라 조국에 나오기를 언약하여 그들은 온 가족이 모여살게 될 행복한 가정생활의 희망을 가슴에 안고있었다.

우리 인민의 사랑을 받는 녀가수로 되기 위하여 애쓰는 안해의 전송을 받으며 농민들속으로 들어가는 강봉석은 부부간의 호흡이 한결 같아지고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아직 체험해보지 못했던 안해에 대한 그윽하고 절절한 애정에 잠겨드는것이였다. 그것은 황금의 가을이 주는 풍만하고 남성적인 감정과 이상하게 어울리면서 그의 농촌길을 류달리 기쁘게 해주었다.

현촌에 도착하니 조합원들 또한 모두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옥금이가 그의 두손을 맞잡고 반가와 어쩔줄 몰라할 때 그는 눈굽이 뜨거워지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생활이 언제나 그러한것이지만 기쁜 일만이 그를 기다리고있는것은 아니였다. 그는 현촌에 도착한 날로 자기의 어깨에 걸머져있는, 심중한 해결을 요구하는 옥금이의 개인문제에 부닥쳤다. 옥금이의 어머니가 그의 하숙집으로 찾아와서 울며 하소연하였다. 옥금이는 강봉석의 충고와 자기가 단지 동무로서 그리고 관리위원장으로서 종원이를 병문안하고 오겠다고 한 약속을 어기고 종원이와 일생을 같이하기로 결심하고 돌아온것 같았다.

강봉석은 이튿날 논벌에 나가서 벼가을하는 옥금이와 같이 일하다가 해가 기울어질무렵 마을로 돌아오며 처녀에게 전상자병원에 갔다온 이야기를 듣고싶다고 하였다.

처녀는 저으기 엄숙해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나서 그의 요구에 응해주었다.

···옥금이가 전상자병원에 도착하여 종원이가 누워있는 침대로 찾아갔을 때 몰라보게 해쓱해지고 뺨이 꺼져들어간 그에게서 살아있는것은 열기를 띠고 번쩍이는 눈뿐인것 같았다. 옥금이는 달려들어 그의 손을 쥐였다. 종원이도 손에 힘을 주며 맞잡았다. 처녀는 가슴이 찢기는것 같았다. 왜 진작 와보지 못했던가. 이처럼 반가와 말없이 손에 힘을 주며 기쁨에 넘쳐 눈을 빛내이는 종원동무에게 왜 이제야 찾아왔단말인가. 그런데도 종원동무에게서 원망의 빛이라고는 찾아볼수 없지 않는가. 종원이를 만나기전에 의사들에게서 들은바에 의하면 그는 자칫 잘못하면 하반신마비가 올수 있으며 한평생을 타인의 방조를 받아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결과를 빚어낼수 있었다. 옥금이도 종원이도 말없이 마주보는가운데 처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고급중학교 축구팀의 주장이던 종원이, 비호처럼 뽈을 몰고 상대측 꼴문으로 육박할 때 녀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몸매 후리후리하고 매혹적인 청년, 그가 지금 침대에 얽매인듯 누워 꼼짝 못하고있다. 조국을 위해, 당을 위해, 김일성장군님을 위해 청춘의 끓는 피와 육체를 바친 병사!

종원이는 처녀를 진정시키며 마지막 큰 싸움이였던 339고지습격전투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옥금이는 커다란 격동속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영웅처럼 우러러보이였다. 그 전투에서 정종원이는 전사의 영예훈장 제1급을 수여받았는데 옥금이가 요구해서 종원이는 그 훈장들을 비롯하여 여러개의 훈장과 메달들을 처녀에게 보여주었다. 옥금이는 물론 후방에서 일을 잘했다고 훈장을 두개나 받았지만 처녀에게는 포연이 끄슬은듯 퇴색한 전선병사의 훈장이 몇갑절 더 값이 있어 보이였다.

작별의 날이 왔다. 옥금이는 종원의 곁에 며칠동안 같이 있으며 시중도 들어주고 그동안 미처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고 또 했다. 추억들이 끝없이 떠올랐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러있을수는 없었다.

정작 떠나자고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서 완쾌되여 다시 뜨락또르를 몰고 조국의 풍요한 대지를 갈고 또 갈자고, 꼭 그렇게 하겠다고 고무하고 희망을 주고 맹세를 하며 헤여지는 순간 옥금이는 눈으로 바래워주는 종원이를 애타게 바라보며 내 한생을 바쳐 저 동무를 보살펴주리라 불타는 속마음을 다지였다.

처녀는 그것이 어떤 희생을 요구하며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런것은 깊이 생각지 않았다.

《기다려요, 또 오겠어요.》

처녀는 열렬히 말했다.

《부탁이요. 다시는 오지 마오. 오지 마오!》

종운이가 부르짖었다.

《아니, 꼭 오겠어요.》

처녀는 용암처럼 끓는 격렬한 감정을 그대로 안고 현촌으로 돌아왔으며 관리위원장이 조합일은 줴버리고 과수원집아들한테 빠져 닷새동안이나 병원에 가있었다며 몹시 책망하는 어머니앞에 기가 꺾인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격렬한 감정을 그대로 쏟아놓았다.

《알겠어요, 어머니? 나는 결심했어요! 종원동무가 수술을 해도 하반신을 못쓰게 되면 집에 데려다 일생 돌봐주겠어요. 종원동무는 조국을 지켜 싸운 병사이고 누구나 도와주어야 할 영예군인이예요. 조국이 아끼는 영웅전사란말이예요.》

어머니는 너무도 억이 막혀 아무 말도 더 못했으며 심장탈이 도지여 자리에 누워버리였다.

강봉석은 처녀에게 말했다.

《동무의 어머니가 어제밤 내가 도착하자마자 나를 찾아왔댔소. 딸을 길러 정의춘이네 집에 보낸다는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질것 같다면서 눈에 흙이 들어가기전에는 절대로 허용할수 없다고 했소.》

《···》

《물론 정종원이는 잘 싸운 병사요. 그런데 옥금동무는 다른 처녀들이나 관리위원장들과는 다르단말이요. 옥금이에게서는 사소한 문제도 제기되지 않도록 우리들이 보살펴주어야 할 의무가 있소. 사소한것도 최옥금에 관한것은 중시된단말이요. 김일부수상도 벌써 다 알고있는데 매우 좋지않아 하였소. 동무는 어떤 신임과 관심속에 있는지 잊었소?》

《···》

《계급적견지에 서야 한단말이요.》

(아, 그러니 그것은 안되겠구나.)

절망에 빠진 처녀는 온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결심하지 않았나?···)

처녀는 고개를 푹 숙인채 나직이 부탁했다.

《저를 여기 혼자 있게 해줄수 없겠습니까?》

강봉석은 혼자 있고싶어하는 처녀를 리해할수 있었다. 그는 처녀와 헤여져 마을로 들어갔다.

옥금인 어두워오는 들에 혼자 남았다. 가을하늘은 청청 개여있고 별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낟알향기를 실은 바람이 불어왔다. 길가의 마른 풀대들이 윙- 윙- 애처로운 소리를 냈다. 풍요한 가을이 찾아와 대지에는 낟알로 가득찼고 처녀의 가슴도 기쁨으로 가득차있었다. 그러나 한 구석이 텅 비고 헤아릴수 없는 설음이 거기에 깃들게 될줄 어찌 알았으랴.

처녀는 치마폭을 잡아당기는 들바람을 맞으며 벼들이 무겁게 고개숙이고 설렁대는 논기슭에, 달구지길가에 서있었다. 파도치는 벼바다는 처녀의 마음인듯 와- 와- 그냥 설레이면서 무엇인가 처녀에게 끝없이 술렁이며 속삭이는것 같았다. 무엇이라고 말하는것일가?···

시간이 퍼그나 흘러 벌써 밤이 되였다. 전기가 들어와 전등불이 환한 집집마다에서는 저녁식사가 한창이였다. 그런데도 관리위원장이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아 강봉석은 부랴부랴 옥금이와 헤여졌던 그 들길로 되짚어갔다. 정열적인 처녀이고 이악한 성미이니 무슨 일을 저질렀을수도 있지 않는가. 달이 뜨지 않아 들은 어두웠다. 바람은 더 불어댔다. 솨- 솨- 벼들의 설레임소리만이 들에 가득찼다. 희미한 별빛에 드러난 들길을 달려가던 강봉석은 길가에 서있는 거무스레한 형체를 보았다. 들바람에 치마가 펄럭펄럭 날리였다. 그는 옥금이였다. 옥금이는 그자리에 아직도 그냥 서있었다. 머리를 푹 숙이고···

《옥금동무!》

옥금이는 깊이 숙이였던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다만 처녀의 컴컴해진 눈빛에서 쓰리고 아픈 고뇌의 음영을 볼수 있을뿐이였다.

순간 강봉석은 그 어떤 예리한것이 심장을 쿡 쑤시는듯 흠칫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