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1


 
 

제 7 장

1

 

강봉석이 현촌에 내려갔을 때는 현상도와 조영란의 체포, 정종원의 병원후송 등으로 한동안 끓던 소요가 잦아진 뒤였다. 그러나 그 충격과 여운이 아직 마을에 흐린 대기처럼 떠돌고있었다.

눈이 떼꾼해지고 볼이 훌쭉해진 옥금이는 바로 이러한 때 내려온 중앙지도그루빠성원들을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만났을 때처럼 반갑게 맞아들이였다. 강봉석은 군지도그루빠를 책임지고있었지만 조인철부부장에게 언약한대로 기본적으로 현촌에 내려와있기로 작정하고 이곳에 짐을 풀었다. 이것이 아마 옥금에게 더 큰 기쁨과 힘을 준것 같았다. 처녀는 농업성 부상이 자그마한 농촌마을에 직접 내려와 침식을 같이하니 정말 반갑다고 하면서 자주 그의 합숙을 찾아주었고 자기들은 잡곡밥을 먹으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부상에게만은 흰쌀밥을 지어주려고 애썼다. 강봉석이 쏘련에서 기사로 일했다는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어느날은 꼴호즈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기도 하였다. 강봉석은 꼴호즈이야기를 적게 하고 그대신 옥금이와 조합의 이야기에 더 흥미를 가지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들었다. 이 과정에 그는 옥금이에게 정이 푹 들었다.

조합원들속에서 나타나고있는 큰 사상적병집은 뿌리깊이 남아있는 개인리기주의였다. 관리위원회는 이것때문에 애를 먹고있었다.

하루는 강봉석이 군에 회의갔다가 저녁녘에 마을에 들어섰는데 조합원들이 홰불을 켜들고 관리위원장을 찾고있었다. 옥금이가 3작업반 포전에서 조합원들과 같이 조밭김을 매다가 먼저 들어갔는데 작업반장들의 저녁총화모임에 나타나지 않았던것이다. 축사나 양잠실, 리당사무실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 강봉석이도 같이 찾아나섰다.

박인수가 홰불을 들고 조밭이 있는 등성이를 올라가며 길가의 도랑을 비쳐보군 하다가 《엉?!》하고 급한 소리를 질렀다. 조밭고랑사이에 쓰러져있는 작업복차림의 옥금이를 발견했던것이다.

《뭐요?》

강봉석이와 뒤따르던 다른 조합원들이 멈추어서며 기웃거리였다.

박인수의 떠는 목소리-

《관리위원장이!···》

《관리위원장이?!》

박인수의 말을 받아외며 강봉석은 어느새 그의 손에 든 홰불을 빼앗아들고 도랑을 건너뛰며 밭고랑으로 들어갔다. 과연 처녀관리위원장이 손에 호미를 쥔채 머리를 밭고랑에 대고 불편한 자세로 모로 누워있었다.

뒤따라온 박인수가 옥금이를 안아일으키려 하며 애절하게 불렀다.

《관리위원장!··· 옥금아!···》

그 순간 처녀가 흠칫하며 일어나앉았다.

《어떻게 된 일이요?》

강봉석이 뻔한것을 물었다. 박인수의 짐작대로 처녀는 일에 지쳐 쓰러져있었던것이다.

《엄마, 내가 깜빡 졸았네.》

처녀는 손으로 눈을 비비였다. 그리고 홰불이며 홰불에 따라 그림자들이 흔들리는 사람들을 오히려 놀랍게 둘러보았다.

《여기서 자고있었구만?》

《아이, 부상동지예요?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홰불을 들고 어딜 갑니까?》

옥금이는 잠자던 사람같지 않게 급히 일어섰다.

《어딜 가긴 어딜 가. 관리위원장을 찾는중이지··· 헌데 어떻게 된 감투끈인가? 왜 여기 와서 늦도록 김을 맸나?》

옥금이와 함께 밭에서 나오며 박인수가 화를 냈다.

《나를 찾았어요? 미안하게 됐어요. 별일 없으니 어서 내려갑시다.》

《알만해.》

박인수가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누가 조밭김을 대강대강 맸구만. 그래서 지나가다 보고 다시 매느라고···》

《그냥 지나치게 되지 않아서··· 그러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댔어요.》

조합원들은 머리를 숙이고 묵묵히 서있었다. 누가 맨 밭인지는 아직 알수 없지만 어쨌든 조합원들이 자기 집 밭일처럼 김을 알뜰히 매지 못해서 처녀를 고생시킨것이다. 조합일때문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들에서 일하고 집집을 찾아다니고 작업반에서 축사로, 축사에서 뽕밭으로, 뽕밭에서 과수원으로 쉴새없이 돌아다니고 영농물자를 해결하느라 군에나 도에 올라다니며 얼마나 힘이 들고 지쳤으면 밭고랑에 쓰러져 잠이 들었겠는가. 처녀고 힘이 있고 관리위원장이라는 중책을 지녔으니 남들보다 많이 일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뛰는것이라고 응당한것으로 생각했지 누구도 옥금의 힘에도 한도가 있다는것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책임감때문이였지 옥금이도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조합세간살이의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과 책임감이 처녀로 하여금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일하도록 하였다.

모두들 옥금이와 강봉석이를 앞세우고 마을로 내려갔다. 조합원들은 뿔뿔이 헤여져가고 관리위원회에 옥금이와 강봉석이만 남았다.

《걱정을 끼쳐드려서 미안합니다.》

옥금이가 상긋이 웃으며 말했다.

《옥금동무, 우선 동무는 좀 휴식을 해야 하겠소. 쇠로 만든 사람이라 해도 견디여 낼것 같지 않구만.》

강봉석이가 진심으로 권유했다.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어떻게 제가···》

옥금이의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고 저녁밥이 되였으니 식사들을 하자고 하였다. 옥금이와 강봉석이는 배가 고팠던차여서 반가와하며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일어들섰다. 그런데 최근배가 찾아왔다.

《무슨 일이요?》

강봉석이 물었다.

《예, 관리위원장을 좀 만나뵈려구요.》

웬일인지 최근배는 풀기가 없어보였다.

《동무는 저녁식사를 했소?》

《예.》

《그런데 관리위원장은 아직 저녁을 못했소.》

《그럼 후에 오겠습니다. 내가 그걸 몰랐구만요. 그럼···》하고 최근배가 돌아서 가려고 했다.

《근배아저씨, 들어오세요. 밥이야 좀 있다 먹지요. 오셨다가 그냥 돌아서면 되겠어요? 들어오시라니까요.》

처녀는 최근배의 손을 잡아끌었다. 최근배는 하는수 없이 들어왔다.

《무슨 용건인지 간단히 말하오.》

강봉석이 말했다.

《예, 예··· 실은···》

《앉으세요.》

옥금이가 앉으며 말했다. 모두 앉았다.

최근배는 머리를 숙였다가 옥금이를 쳐다보았다. 수척해진 처녀의 얼굴은 그의 량심을 몹시 자극했다.

《관리위원장, 나를 용서하우. 아니, 나를 처벌해주우.》

최근배는 헉- 헉- 흐느끼듯 숨차하며 말했다.

《관리위원장이 다시 김을 맨 그 밭김을 내가 낮에 맸드랬소. 관리위원장이 없어져서 동네가 소란해지구 다들 찾아다닐 때 나두 나섰지만 내가 맨 밭김을 다시 매다 지쳐서 잠들어버린줄을 안 다음에는 량심이 저려와서 어디 앉아있겠던가. 그래두 최근배라 하면 현촌에서는 한다하는 농사군이였는데 조합에 들자 달라졌소. 창피스러운 일이지만 내 다 말하오.》

몹시 피로하고 배가 고픈 옥금이였으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 처녀의 눈에는 광채가 어리였다. 강봉석부상이 처녀를 생각해서 최근배보고 간단히 말하라 했지만 지금 처녀는 그의 이야기가 더 길어도 좋을상싶었다. 그런 이야기는 들을수록 기쁘고 신이 나는 이야기가 아닌가.

《아저씨는 조합에 들 때부터 리익볼 타산을 했댔어요. 그건 현촌이 다 알아요. 그렇지만 조합의 리익을 위해서 깐지게 일하겠다고 결의했기때문에 가입을 찬성했댔어요. 그랬으면··· 지금에 와서 긴말은 해서 뭘하겠어요? 창피를 느꼈다니 됐어요. 부상동지, 최근배조합원을 용서해줍시다.》

강봉석은 웃었다.

《용서해주지 않으면 이 동무가 다시 개인농이 될게 아니겠소?》

그는 정색을 하고 최근배에게 말했다.

《최근배동무, 동무야 한평생 농사로 늙어오는 사람이 아닌가. 어린 처녀관리위원장앞에 열번, 백번 잘못을 빌고 수치를 더 느껴야 하겠소. 시대가 변하고있지 않소?》

《예, 이렇게 우에서 지도사업을 내려와있는데 저도 느껴지는바가 컸습니다.》

최근배는 말도 잘하고 경우도 밝은 사람이였다.

《이보라구, 옥금위원장. 내 조합에 들기전에 나무다리를 달래서 장작을 만들어 팔지 않았댔소? 그 돈을 여기 가져왔으니 조합공금으루 써주우.》

최근배가 돈뭉치를 꺼내놓았다.

《엄마, 아저씨가 이런 생각을 다···》

《개인리기주의와 아주 인연을 끊는거우.》하며 최근배가 일어섰다.

최근배는 두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관리위원회를 나섰다. 그는 큰 근심을 던 사람처럼 거뿐해져서 행길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어쩌면?···》

최근배를 배웅하는 최옥금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나고있었다.

《부상동지, 저것 보십시오. 최근배아저씨의 걸음이 얼마나 가벼운가요. 저도 피곤이 쭉 풀리는것만 같습니다. 사람이 잘못을 고치고 개심될 때처럼 돋보일 때가 또 있을가요?》

흑진주같은 눈이 반짝이고 밝은 웃음이 넘치고있는 가무스레한 처녀의 얼굴을 쳐다보는 강봉석은 이 순간 갈라터진 처녀의 입술에서 눈길을 뗄수 없었다. 이 처녀가 지금 이처럼 기뻐하고있지만 이러한 기쁨이 찾아들기까지 그가 얼마나 애써 일하고 속을 태웠는가 하는것을 부르튼 입술이 다 말해주고있지 않는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밭김을 매다가 밭고랑에 쓰러져 잠이 들었겠는가. 그런데 이 처녀는 이제 겨우 21살난 어린 처녀이다. 이 처녀에게 어떤 정신력이 있고 어떤 신념이 있기에 이처럼 한 협동조합의 큰살림과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농사경험도 많고 힘도 센 조합원들을 앞에서 이끌고있는것인가···

저녁식사후에 강봉석은 옥금이더러 일찌기 누워 푹 쉬라고 하였다. 그러나 옥금이는 오늘처럼 기쁜날 어떻게 잠을 잘수 있겠습니까, 군에 회의갔던 이야기를 들읍시다 하고 그와 마주앉는것이였다.

강봉석은 회의에서 이번에 내려온 지도방조성원들이 조합에서 걸리고있는 문제들에 어깨를 들이밀고 풀어주며 조합원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잘할데 대한 문제 등이 토의되였다고 간단히 알려주었다.

《우리가 옥금동무를 잘 돕지 못했소. 오늘 내 그것을 절실히 느끼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이, 무슨 말씀을!··· 부상동지가 우리 조합에 와계신것만 해도 저에게는 힘이 됩니다. 그런데도 일이 바쁘다고 잘 돌봐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저희들이 지금 곤난을 겪고있는건 사실입니다. 아직 풍족하지도 못하고··· 영화에서 보니 쏘련의 꼴호즈는 굉장하더군요. 그런데서 일하시던 부상동지인데 우리 조합에 오셔서 얼마나 불편이 많겠습니까. 내의를 자주 갈아입어야지요? 어지러워지면 인차 벗어놓군 하십시오. 어머니가 다 빨아드립니다. 그리구 이건 내가 좀 구해온건데 아마 이런걸 잡수어야 하겠지요?》하며 옥금이는 커피를 한봉지 꺼내놓았다. 농민들은 커피가 어떤것인지 알지 못할것이고 옥금이도 물론 먹어보지 못했을것이다. 강봉석은 커피봉지를 한쪽으로 치워놓으며 처녀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옥금동무, 동무는 참 놀라운 처녀요.》

이윽하여 그는 겨우 이렇게 말할수 있었다. 커피와 같은 음료에 습관된 강봉석이 불편해할것 같아 걱정하는 그 기특한 마음때문에만 놀라운 처녀라고 말한것은 아니였다. 오늘저녁의 일과 또 강봉석이 이곳에 내려온후 처녀에게서 느낀 총적인 감정을 말한것이였다.

《엄마! 제가 무슨···》

처녀는 수집어했다.

강봉석이 이 어린 처녀의 가슴속에 무엇이 충만되여있으며 그의 정신력이 어디서 생겨난것인지 알지 못하고는 잠들것 같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이날밤 그는 옥금이로부터 처녀가 16살때에 아버지를 잃고 가장이 되여 네식구를 먹여살리기 위하여 어떤 고생을 겪어야 했으며 이듬해 봄에 지게로 두엄을 져나르고 황소를 길들여 논밭갈이를 하면서 어떻게 영농전선에 나서게 되였는가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다수확농민으로 된 옥금이를 만나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린 처녀가 너무 기특해서 터슬터슬한 처녀의 손을 쓸어주고 또 쓸어주시며 《장하오. 장해! 동무같은 용감한 동무들이 있기때문에 우리는 전쟁에서 꼭 승리할수 있소.》하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이야기를 들으며 깊은 감명을 받은 강봉석은 《옥금동무야말로 진정 인민의 대표자요.》하고 저도 어쩔수 없이 말했다. 옥금이는 호호 웃었다.

《엄마, 제가 무슨 인민의 대표자입니까. 농민이라면 다 저처럼 일하고있는데요.》

《옥금동무에게는 우리 농민들이 겪은 슬픔과 시련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며 대지의 주인으로 성장한 력사가 체현되여있단말이요.》

대체로 랭정한 성미의 강봉석이였지만 이 순간에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옥금은 한동안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무엇인가 할수 있었다면 그것은 우리 수상님께서 저희들을 키워주시고 이끌어주셨기때문입니다.》

강봉석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처녀의 말에 공감되였던것이다. 수령님의 손길아래서만 이 처녀가 관리위원장으로 될수 있었다. 자그마한 처녀가 큰 일군으로 성장했다. 처녀의 정신력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있었다.

강봉석은 김일이 자기에게 부탁하던 말이 생각났다. 김일은 우리 협동화의 속도가 왜 빠른가, 농민대중의 사상정신상태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옥금이와 헤여져 자기 침소에 돌아와 자리에 누워서도 그는 한동안 잠들지 못하고 생각에 잠기였다. 우리 나라의 농민들, 나아가서 우리 인민들은 확실히 남다른 인민들이다. 고생도 남달리 많이 했고 혁명성도 강했다. 특히 수령님을 받들고 따르는 마음과 충성은 놀라운것이였다. 이러한 인민들이기에 수령님께서 그들에 의거하여 협동화와 같은 농촌에서의 근본적인 변혁을 결심하실수 있은것이 아니였겠는가···

 

옥금이를 더 깊이 알게 되고 그 처녀에게서 커다란 감동을 받게 된 강봉석은 그후 처녀관리위원장의 복잡한 사업을 돕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동시에 옥금이의 개인문제에도 깊은 동정과 관심을 기울이게 되였다. 그 개인문제란 한마을에 사는 부농아들과의 관계였다. 이것때문에 강봉석이는 저으기 가슴이 무거웠다.

생활은 줄기차게 흘러갔으며 현촌의 모습도 나날이 변모되여갔다.

이 시기 전선에서 병사들이 수많이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현촌마을에도 제대군인들이 나타나 그리운 고향집방문을 두드리였다. 탄실의 남편인 《아바이전사》와 박인수의 맏아들이 귀향하여 온 마을이 떠들썩하였다. 남편을 맞아들인 탄실이는 두볼이 불타고 눈이 반짝거리였으며 새색시처럼 수집어하면서 수다스럽던 입이 조용해져서 새로운 화제거리로 되였다.

리당위원장 강명우는 군당위원장을 찾아가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자, 리당위원장감이 왔으니 약속대로 해주지요? 이제는 내가 좀 쉴수 있게 된것 같수다.》

그런데 웬걸, 군당위원장은 《리당위원장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요. 리의 어른인데 어떻게 막 갈아대겠소. 리형편을 손금처럼 알고있으며 신망도 높은 동무가 힘들더라도 더 해야 하겠소. 탄실의 남편은 조합원으로 한 1년 일을 하게 합시다. 그래 차츰 농사일과 동네일에 익숙이 되면 세포위원장을 시켜보고 그 다음에 어떻게 생각해봅시다.》하고 그를 설복시켰다. 이 소식을 듣고 옥금이가 제일 좋아했다. 옥금이는 다른 사람이 리당위원장을 하는것을 원치 않았으며 장정로력이 아주 귀한 형편에서 탄실의 남편을 박인수의 아들과 함께 조합을 든든히 받쳐줄 큰 기둥감으로 여기고있었던것이다.

《조합에 운이 트는구나! 농사가 잘되지, 가축이 늘지, 싸우러 나갔던 젊은이들이 돌아오지!···》하고 령감들은 좋아하였다.

장정들이 없는 동네에서 치마두른 아낙네들의 드살과 지휘에 기가 눌리웠던 늙은이들이였다. 조합에 운이 트이는것이 사실이였다. 즐거운 일이 련이어 생겼다. 박인수의 아들과 현덕칠의 딸 순옥이가 결혼을 하여 두집은 서로 사돈간이 되였다. 그러나 최옥금의 개인문제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있었다. 그것때문에 강봉석이는 불안스러웠다. 그는 그것이 옥금의 개인문제로만 볼수 없다고 인정했으며 옥금이를 계급적선에서 탈선하지 않도록 일깨워주는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하루는 시간을 내여 옥금이와 담화하였는데 옥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난처한 처지에 빠져드는 자신을 어쩌지 못했다.

처녀는 매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부상동지도 알고계시는지 모르겠지만 봄에 뜨락또르를 가지고 이동작업을 나왔던 정종원이라고 하는 책임운전수동무가 반동놈을 체포하는 사업에 참가했다가 척추를 상하고 병원에 누워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자위대장 장칠복아저씨가 그사이 면회를 몇번 갔다왔는데 (그 아저씨는 종원동무가 상한것이 자기때문이라고 늘 괴로와하고있답니다.) 그 아저씨는 면회갔다올 때마다 저에게 별일 없을것 같으니 마음놓으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왜 그런지 자위대장아저씨가 저를 위안하려 하는것 같고 그렇지 않다 해도 한번도 전상자병원에 찾아가보지 못한 죄스러움에서 벗어날수 없습니다. 그사이 조합일이 바쁜것도 있었지만 관리위원장으로서 그를 찾아갈 면목이 서지 않아 하루이틀 미루다보니 어느새 여름도 다 갔습니다. 부상동지,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왜 면목이 서지 않는단말입니까. 개인적으로도 그 동무는 저와 한마을에서 같이 자랐고 고중도 같이 다녔습니다. 아무리 바쁘다 한들 한 영예군인을 위하여 병원에 갔다올 며칠간의 시간을 낼수 없다는것은 더욱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종원동무에게 죄를 짓고있습니다.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처녀의 불이 이는듯 하는 눈에 물기가 핑 어리였다.

《아, 옥금동무, 진정하오.》

《제가 어떻게 진정할수 있습니까. 그 동무는 악착한 지주의 아들이고 살인자인 현상도놈을 체포하는데 참가했다가 상했단말입니다. 그러니 관리위원장이 그를 찾아가보는것이 응당한 도리이고 우선 인간적으로도 벌써 찾아가보았어야 할것이 아니겠습니까.》

강봉석이는 이 처녀가 종원이를 선뜻 찾아가보지 못한데는 다른 원인도 작용하고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떠도는 두사람에 대한 여론때문일것이다. 강봉석이자신도 그것을 우려하고있었다.

《그건 좋소.》하고 그는 우선 옥금이의 주장을 긍정해주고 계속하여 《다만 우려되는것은···》 하다가 너무 까밝히는것 같아 말끝을 흐리였다.

《우려되는것이 무엇입니까?》

강봉석은 끙끙 갑자르다가 자기의 고유한 성미대로 툭 터놓고 말하기로 작정했다.

《내 좀 묻기요. 옥금동무는 그 청년을 사랑하오?》

옥금이는 강봉석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건 어떤 의미로 묻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고중시절에 〈사랑은 뻰취우의 한숨도 아니요, 달빛아래 산보도 아니라네.〉라는 시의 한구절을 암송했던 기억은 있습니다.》

《그렇소. 때문에 나는 동무가 사랑문제에서 심중하기를 바라오.》

《부상동지, 그런데 사랑얘기는 왜 꺼냅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사랑이 어떤것인지 아직 모릅니다. 시에서만 읽었습니다.》

《동네에서 떠도는 소문은 뭐요? 조선속담에 아니땐 굴뚝에서 연기날가 하는 말이 있소. 나도 솔직히 말하지. 나는 동무가 그 소문과 여론때문에 종원동무를 선뜻 찾아가보지 못했다고 생각하오.》

옥금이는 컴컴해지는 눈을 내리깔며 작은 입을 오무리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하여 옥금이가 눈길을 들었다.

《저는··· 동무로서, 관리위원장으로서 종원동무를 병문안하러 가는것외에 다른것은 더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반대없소.》

기뻐할줄 알았던 처녀의 검은 눈에 어리는, 무어라고 한마디로 말할수 없는 감정의 짙은 그늘, 서글퍼하는것 같기도 하고 무엇을 원망하는것 같기도 하고 또 절망에 잠기는것 같기도 한 그러한 감정의 음영을 보며 강봉석은 처녀가 외웠던 사랑에 대한 그 시의 다음 구절을 상기했다.

《가시덤불과 진창길도 있으려니···》

부상으로서 강봉석은 자그마한 한 농촌마을이나 한개 군에 오래 머물러있을수 없는 몸이였다. 김일부수상도 그에게 한 둬달 농촌에 내려가있되 대리책임자를 정하고 평양에 자주 올라와서 성의 일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던것이다. 그래서 강봉석은 현촌에 박혀있다가는 성으로 올라가 그간 제기된 일을 처리하느라고 자주 평양에 머무르군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평양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마음은 현촌으로 달리는것이였다. 그리하여 김일부수상이 그에게 《부상동무. 이제는 성으로 아주 돌아오시오.》하고 말했을 때 그는 서운한 감을 억제하지 못했다.

《나도 이제는 성으로 올라와서 일해야 한다는것을 느끼고있습니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가지만은 허락해주십시오.》하고 강봉석이 말했다.

《먼데?》

《나는 현촌에 정이 들었습니다. 성에서 일하면서 그곳에 때때로 내려가 농민들과 며칠씩 생활하는 식으로 나의 농촌현실체험을 좀 더 계속할수는 없겠습니까? 아직 해결을 보지 못한 문제도 있습니다.》

김일은 걸상을 삐걱거리였다.

《정이 든것은 좋은 일인데··· 그런데 무슨 문제를 해결 못했소?》

강봉석은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자그마하고 이악하여 정열적인 처녀, 눈이 까만 옥금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것은 한 처녀의 개인문제이면서도 부농에 대한 원칙적문제로도 되는것인데··· 최옥금이가 말입니다. 그 깨끗하고 매력적인 처녀가 한마을에 있는 부농의 아들을 사랑하는것 같습니다.》

강봉석은 그 문제를 바로잡아주는것이 지도소조성원으로서뿐만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자기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과제로, 의무로 된다고 간주하고있었다.

김일은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흔히 그러는것이지만 아무런 내색도 보이지 않고 묵묵히 다음말을 기다렸다.

강봉석은 자기도 어쩔수 없이 옥금이에 대한 동정을 나타내며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동네에서 떠도는 소문이며 옥금이가 종원이의 병문안을 가지 못한 자책감에 빠져 모대기던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듣는 김일의 뚝한 얼굴이 점점 엄해졌다.

그는 불쾌한듯 한마디 툭 던지였다.

《나두 그런 얘기를 들었소.》

그리고 이렇게 계속하였다.

《옥금이의 행동이 부상동무처럼 진심으로 그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에게는 가슴아픈 일로 느껴지지만 다른 일부 사람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있소. 우리 관리위원장들이 그런데서 말밥에 오르는것이 나는 싫단말이요. 부상동무가 옥금이를 잘 설복시키는것이 좋겠소. 내 구태여 강조할 필요는 없을것 같구만. 그 처녀는 수상동지께서 관심하시는 관리위원장이요.》

그러니 옥금이가 비록 자그마한 협동조합의 관리위원장에 지나지 않지만 그 처녀에 관한것은 사소한것도 중시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강봉석은 김일이 우려하는점을 충분히 납득하였다. 부수상의 우려나 립장도 자기의 그것과 일치하였다···

현촌에서 평양으로 올라온 후 강봉석은 자기가 농민적인 안목으로 모든것을 보고 대하게 된것을 스스로 놀랍게 여기였다. 가령 성의 어느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한담을 하고있는 지도원들을 만나면 (농민들은 이 시각에도 뙤약볕밑에서 허리를 굽히고 일하고있겠는데 여기서는!···)하는 생각이 불쑥 드는것이였다. 현촌에서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농민들과 함께 논김, 밭김을 매본 강봉석이였다. 김매기라는것이 헐치 않았다. 논김매기는 물속에서 하는것이니까 시원해서 좋았지만 허리가 몹시 아팠고 어디 잠간 앉아서 쉴데도 없었다. 한편 밭김매기는 힘들면 밭고랑에 주저앉아 쉴수는 있었지만 먼지가 나고 더웠다. 하여튼 농촌의 들일은 어느것 하나 쉬운것이 없다. 빨리 기계화를 해서 이 모든 수공업적인 작업을 기계로 해야 한다. 그래야 조합원들에 대한 교양사업도 잘될수 있다 하고 강봉석은 힘들 때마다 생각했다. 그러나 기계화는 장래의 일이고 당장은 호미로 밭김을 매는수밖에 없었다.

강봉석은 재정성에 가서 돈을 내라고 할 때도 《지금 농민들은 종일 허리를 굽히고 힘들게 일하고있습니다.》하는 말을 먼저 꺼내군 했다.

특히 놀라운것은 안해가 가극극장에서 부르는 노래를 들었을 때의 감정이였다. 안해가 부르는 《예브게니 오네긴》에서의 따찌야나의 아리아가 그전처럼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뿐만아니라 저 노래가 우리 농민들에게 필요한 노래일가? 아득한 초원의 저 멀리에서 반짝이는 불빛이며 까자크의 말울음소리라든가 처녀와 총각의 쓸쓸한 리별이 우리 농민들에게 무슨 상관이란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현촌에서 농민들과 함께 보았던 군기동선전대의 공연이 눈앞에 떠올랐다. 《정든님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하고 노래하는 녀배우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수태를 머금는 숫색시의 모습까지도 형상하자 농민들은 너무 좋아서 와- 웃으며 환성을 올리였었다. 안해는 왜 생활에 가까운 노래를 부르면 안되는가? 그가 지방순회공연을 갔다올적마다 자기의 외국노래가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외국노래와 유럽노래를 감수하지 못한다고 오히려 로동자들이나 농민들을 탓하군 했는데 사실은 잘못이 안해에게 있는것이 아닌가!

가극극장의 관중들도 이전처럼 안해에게 환호와 꽃다발을 보내지 않았다.

어느날 저녁 강봉석은 안해에게 자기의 느낌을 털어놓았다.

《나는 어제저녁 가극극장에 가서 당신의 로씨야노래를 들었소. 없는 시간을 내서말이요. 그런데 관중들은 이전처럼 당신에게 환호와 꽃다발을 보내지 않더군. 이건 뭘 말하오? 공장이나 농촌에서의 당신의 실패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소.》

《당신은··· 당신은 그러니까?···》

억이 막힌듯 그를 쳐다보는 안해의 눈에 눈물이 핑 고이였다.

강봉석은 안해를 외면하며 몇달전 여기서 반가와하지도 않는데 쏘련으로 도로 들어가버리자고 하던 그 녀자의 말을 문득 상기하였다.

안해도 자기의 노래가 오늘의 우리 현실과 현실적인 감정으로부터 멀어지고있다는것을 느끼고 고민하고있는것이다.

《여보.》하고 그는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흐느끼느라 오르내리는 안해의 부드러운 어깨에 손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그만 진정하오. 그리고 좋은 방도를 모색해보기요. 가령 당신이 조선노래를 부를수도 있지 않소?》

《···》

안해는 대답하지 않았다.

《글쎄 난 음악에는 무식해서 잘 모르긴 하겠소만 당신의 목소리에 맞는 조선노래를 선택···》

안해가 머리를 드는바람에 강봉석은 입을 다물었다. 그 녀자는 서글프고 쓸쓸한 빛이 넘치는 눈으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쏘련으로 귀환하는건 전혀 불가능한가요?》하고 안해가 물었다.

깊은 생각끝에 강봉석이 대답하였다.

《그것이 정 소원이였다면 누구도 당신을 막지 않을거요.》

《당신은 자신과 나를 갈라놓고 말하는군요?》

《내 이미 수상동지의 간곡한 지적을 받은데 대해서 당신에게 알아들을만큼 말하지 않았소. 그런데도 또 그 말을 꺼내니···》

그는 김일성동지로부터 뜨거움에 충만된 엄한 지적을 받은후 그 사실을 안해에게 이야기했었다. 아마 밖의 일을 집안에 들어와서 이야기한것으로써는 그것이 처음일것이다. 쏘련으로 들어가자는 말을 안해가 먼저 꺼냈던만큼 그 녀자에게도 수령님의 말씀을 알려주는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했기때문이며 설사 그러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해도 아이들을 이국땅에 떨구어두고 안해와 함께 귀국한 그로서 그 격동된 심정을 안해에게 쏟아놓지 않고는 견디여낼수 없었기때문이였다. 안해는 다른 말이 없었다. 그래 강봉석은 안해가 충분히 납득된것으로 믿고있었다. 그런데 이제보니 아직도 안해는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있지 않는가.

강봉석은 안해와 더 말하고싶지 않았다. 얼굴과 몸매가 아름다운 안해와 안해의 유럽노래를 듣기 좋아하였고 사랑하였던 강봉석이는 그 녀자와 멀어지고있는듯 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였다. 그것은 서글픈 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