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6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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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김일성동지께서는 집무실을 나오시여 소회의실로 향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늘 내각협의회를 소집하시였다.

낡은 건물의 널마루를 깐 복도가 몹시 삐걱거리였다. 내각이 쓰고있는 이 건물은 전후에 대보수를 했지만 원체 왜정때의 낡은 건물이여서 복도나 층계, 어디서나 소리가 났다. 하지만 폭격에 좀 상했을뿐인 이만한 건물이 남아있는것만도 다행이다. 삐걱거리면 뭐라는가. 그것이 사무를 보는데 방해로 되지는 않는다. 건물이 낡으면 뭐라는가. 건물은 낡았지만 건물안에 든 내각의 각 부서들에는 전국 각지에서 3개년인민경제계획수행의 눈부신 성과를 알리는 소식들이 연방 날아들었고 그것들이 집결되여 수상집무실에 보고되였다. 인민들의 비상한 열의는 일부 사람들이 높이 세웠다고 의견있어 하던 3개년계획의 기한전 완수를 오히려 내다볼수 있게 하였다. 올해 《로동신문》은 첫 사설에서 《모든 힘을 3개년계획의 기한전 완수에로!》하고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호소하였다. 당의 호소에 대답하여 1월에 청진제강소 제5호회전로 화입식이 진행되였고 2월에는 황철 제2호평로가 완전히 복구되였다. 3월에는 청수화학공장 제1호석회로가 조업을 개시했으며 4월에는 평남관계 제1계단 공사를 기한전에 완공하여 통수식을 거행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와 관련하여 이 공사에 참가한 전체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에게 축하문을 보내시였다. 5월에는 길주팔프공장, 김철 제1호용광로, 부전강발전소 제3호발전기의 조업식이 있었다. 농업부문에서도 농업협동조합들이 계속 조직되는 한편 이미 조직된 조합들을 조직경제적으로 공고히 하면서 올해 영농사업에서 5월 10일까지 밭작물에 대한 파종을 끝내고 논에 모내기를 시작하고있었다. 협동조합들과 농민들의 봄파종을 돕기 위한 국가적대책들이 련이어 취하여졌다. 그중에서 주목되는것은 1955년도 영농준비사업을 성과적으로 보장할데 관한 내각결정 15호, 농기계임경소증설에 관한 내각결정 17호를 들수 있다. 내각결정 17호를 채택하도록 하신후 김일성동지께서는 3월 6일 평양농기구제작공장건설장을 찾으시였다. 이 공장은 원래 자그마한 화학공장이던것을 전후에 복구할 때 전망적으로 농기계공장으로 건설하도록 하였다. 이날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공장을 뜨락또르생산기지로 만들 구상을 펼치시며 바로 그러한 사명에 맞게 공장의 규모를 확장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렇듯 뜨락또르의 생산기지를 마련하는 문제와 함께 농촌에 대한 로력보충사업도 진행되였다. 수많은 제대군인들이 군사분계선에서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의 정든 집 방문을 두드리였으며 그리운 부모처자들과 만났다.··· 오늘의 내각협의회도 바로 농촌문제를 취급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대중적발전단계에 들어선 농업협동화운동을 더욱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대책들이 토의된다.

김일성동지께서 소회의실에 들어서시자 협의회참가자들인 관련부문 부수상들과 내각의 참사들, 농업성의 책임일군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중에는 농업성부상 강봉석이의 얼굴도 물론 보이였다. 그의 얼굴은 곡선들이 더욱 뚜렷해지고 별로 날카로운 인상을 주었으며 유난히 창백해보이였다. 그의 편지를 받아보신 이후여서 그가 남달리 눈에 뜨이고 또 그렇게 유별나게 보이는것인지? 그럴수도 있겠으나 그가 정신적시련을 겪고있기때문에 그것이 얼굴에 나타나보이였을것이다. 그는 이전과는 달리 눈길을 떨구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엄하신 눈으로 그를 보시였으나 끝내 그와 눈길이 부딪치지 않았다. 그는 분명 눈길을 피하고있었다.

《김일부수상동무가 보고를 제기하겠습니다.》

좌석이 정돈되자 김일성동지께서는 협의회를 사회하시며 말씀하시였다.

김일이 일어났다.

《우리 나라의 농업협동화운동은 짧은 기간에 광범히 농촌을 포괄하여 지금 매우 빠른 속도로 장성하고있는바 그 수는 이미 1만여개에 달하며 여기에는 총 농가호수의 40프로이상이 망라되였습니다.》

그는 그러나 이 운동이 성과적으로 진행되고있는것과 함께 량적장성에 질적공고화가 따라가지 못하고있으며 량자간에 불일치가 조성되고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미 조직한 조합들을 공고히 하지 않으면 심각한 후과를 초래할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미 조직된 협동조합들을 조직경제적으로 공고히 하고 그 우월성을 계속 발양시켜야 할 절박한 과업이 제기되고있다. 이를 위하여 농업협동경리들의 경제적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물질적재정적방조를 계속 주는것과 동시에 당과 국가의 지도방조사업에서 새로운 효과적인 방법을 적용하여야 할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김일성동지께서는 당과 국가의 유능한 일군들이 일정한 기간 대규모적으로 동원되여 농업협동조합들을 전면적으로 지도방조하는 방향에서 집중지도를 조직전개할데 대한 방도를 제시하시였다.

보고의 요점은 이러하였다. 보고에서는 실무적인 대책까지도 지적되여있었다.

보고에 기초하여 협의회참가자들이 짤막짤막하게 의견들을 내놓았다. 강봉석은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하긴 그는 농업협동화운동의 급진적인 장성과 함께 나타나고있는 결함에 대하여 조인철이에게도 이야기했고 농업성의 회의에서도 공식적으로 언명한바있기때문에 또 그러한 그의 솔직한 발언들이 그를 반당혁명분자로 락인한 세포총회보고의 기초자료로 리용되였기때문에 구태여 여기서 더 말하고싶지 않았던것이다.

《농업협동화운동에서 나타나고있는 심각한 결함들에 대하여 옳게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의견을 들으시는 도중에 말씀하시였다.

《그 결함의 중요한 원인이 협동경리들의 물질기술적토대가 미약한데도 있지만 기본은 관리일군들의 준비정도가 어리고 따라서 협동경리의 관리운영수준이 농민들이 광범히 인입되고있는 대중적단계의 현실에 따라가지 못하고있는데 있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여기로부터 집중지도사업의 객관적필요성이 제기된것입니다.》

《또 한가지 강조하고싶은것은》하고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지금 적지 않는 사람들이 농업협동화의 속도가 지내 빠르다고 말하고있는데 광복후의 민주건설과 가렬한 전쟁을 통하여 우리 농민들이 정치적으로 단련되였고 협동화가 그들의 사활적인 요구를 반영한것만큼 속도가 빠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속도자체를 가지고 시비할 근거는 없습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입을 내내 다물고있던 최창익이가 불쑥 끼여들며 적극적인 공감을 표시하였다.

《오늘 농업협동화가 농촌경리발전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다른 나라의 경우에 비추어 의문시하고있을뿐아니라 속도에 대하여 시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자리에도 그런 사람들이 앉아있습니다.》

그는 랭혹하게 말했다. 그는 안대식이를 통하여 강봉석이를 세포회의에서 한번 치고 오늘은 자기가 직접 나서서 두번째로 치는것이였다.

강봉석은 안대식이에 의하여 가혹한 타격을 받은후 이 중요한 협의회에서 다시 최창익의 공격을 당하고보니 사실 견디여내기가 힘들었다.

《협동화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농촌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의 승리가 그만큼 앞당겨지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최창익은 더욱 기승스럽게 말했다.

《오늘 협의회에서 집중지도문제를 토의하는것도 속도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빨리 하기 위해서일것입니다. 나는 특히 농업성 부상동무가 자기를 깊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는 태연자약하게 이 말을 하였다. 그러나 효과는 대단히 컸다. 왜냐하면 물에 빠진 사람의 꼭두를 더 눌러놓는격의 발언이였기때문이였다.

소회의실안에 긴장한 공기가 흘렀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 협의회가 그 누구를 비판하는 장소도 아니고 그 무슨 결함과 오유를 까밝혀내는 자리도 아닌데 최창익이 열을 올리며 지명비판까지 하는데 대하여 못마땅하게 여기고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반박하려 하지는 않았다. 긴장한 공기속에서 숨이 가빠나는것은 강봉석이 본인이였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지만 눈앞이 뿌옇게 흐려와서 부수상들과 상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최창익이에 대한 분격이 문제로 되지 않았다. 자기가 올린 편지를 받으신 김일성동지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는가 하는 불안과 초조감을 좀처럼 억제할수 없었다. 농업협동화의 빠른 속도와 관련하여 하신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최창익이 받아물고 자기를 지명비판하였기때문에 자기는 더 빠져나갈데가 없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편지를 분명 받으셨을가? 받으셨으면 왜 대답을 주시지 않을가?···

그는 감히 눈길을 들지 못했다.

문득 김일성동지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지 않아도 부상동무는 깊이 생각해보고있을것입니다.》

그이께서는 강봉석이를 타매하려는 최창익의 속심을 들여다보듯 알고계시였기때문에 최창익이가 강봉석이를 지명공격한데 대하여 그저 이 정도의 대답을 주시는것으로 스쳐지나보내시였다. 그러나 강봉석이를 간단히 용서해주고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으시였다.

하긴 그 정도의 말씀도 강봉석이에게는 충격이였다. 그이의 말씀과 엄한 눈빛만 보아도 그이께서 세포회의에서 취급된 내용들을 다 알고계신다는것을 충분히 짐작할수 있었다. 그런데 그이께서 편지를 보시였을가? 하는 불안감으로 강봉석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세포회의에서 비판된 내용에 대한 서술로 시작된 편지에서 그는 그 비판이 당의 진의도인가, 당이 자기 강봉석이를 반혁명분자로 락인하는가, 자기는 절대적으로 부인한다고, 자기는 조선의 농업발전을 위해 사색하고 일했고 그와 관련한 견해들을 명백히 주저없이 발표했고 주장했을뿐이라고 썼다. 허심하지 못하게 지내 편지를 변명하는 식으로 쓰지 않았을가?

《그런데 동무들.》하고 김일성동지께서 좌중을 둘러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다시 말하지만 빠른 속도자체에 대해서는 문제로 삼을것이 못됩니다. 빠른 속도에 질적공고화가 따라가지 못하는것이 문제로 됩니다. 질적공고화가 따라가지 못하면 속도도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보고에서도 지적하였지만 량적장성에 질적공고화가 따라가도록 하면서 이 운동을 계속 발전시켜나가기 위하여, 다시말하여 이미 조직된 농업협동조합들에 대한 지도방조를 주기 위하여 집중지도를 조직하게 되는것만큼 여기에 상응하게 지도력량을 바로 편성하는것이 중요합니다.》

그이께서는 중앙과 도, 시, 군의 당 및 국가, 경제기관의 유능한 일군들을 망라하여야 하며 규모도 수천명으로 통이 크게 조직동원하도록 하며 기간은 한 서너달 예견하되 필요하면 더 연장할수도 있고 한번에 그치지 말고 계속 조직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협의회가 끝나고 김일성동지께서 소회의실을 나가신후 모두 흩어져가는데 누군가 강봉석이를 찾았다. 강봉석은 뒤를 돌아보았다. 책임부관이였다.

《수상동지께서 부르십니다.》

그 순간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무엇인가 묵직한것이 철렁하고 떨어져내리는것 같았다. 그는 얼굴이 창백해지다 못해 푸릿해졌다. 운명의 시각이 온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강봉석이를 기다리시며 집무실안을 걷고계시다가 그가 들어서자 뚝 멈추어서시였다. 강봉석은 언제나 그러하듯 양복을 단정하게 입고있었다. 지금은 여름철이여서 흰양복에 밝은 빛갈의 넥타이를 맸다.

《부상동무가 나한테 보내온 편지를 받았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본문제로 직접 들어가시였다.

강봉석은 그이의 엄엄한 눈길을 받으며 등골로 흘러내리는 땀을 감촉하였다.

《무엇때문에 그런 편지를 썼소, 강봉석동무?》

우렁우렁한 음성이 방안을 꽉 채우며 강봉석의 머리속을 진동시키는듯 하였다.

《?!···》

강봉석은 피뜩 얼굴을 들었다가 섬광이 번쩍이는 그이의 시선에 부딪치자 얼른 눈길을 떨어뜨리였다.

《말해보오.》

《저는··· 그 사연을 편지에 밝혔다고 생각합니다.》

강봉석은 어떻게 이런 대답을 드렸는지 자기로서도 알수 없었다. 언제나 도고하고 결백한 그의 성미가 그렇게 대답드리도록 그를 이끌어간것 같았다.

《내가 말하자는것은 무엇때문에 구구한 설명이 필요했는가 하는거요. 동무의 편지를 읽어보면 우리가 아니라 바로 동무자신이 우리를 믿지 않는다는것을 알수 있소. 동무자신의 신념이 흔들리고있다는것을 말해준단말이요. 동무가 신념이 강하다면 설사 출당, 철직이 된다 한들 큰 문제가 있겠소? 행동으로 증명해보이면 되는것이 아닌가?》

(하지만 수상동지! 그 어떤 증명도 통하지 않습니다. 진실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의 이름으로 저를 처벌하고있습니다.)

강봉석은 이렇게 절절하게 말씀드리고싶었다. 하지만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설사 절해고도에 가있다 하더라도 본인이 결백하고 신념이 확고하면 그만이 아니겠소? 우리가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진정한 혁명투사들이 바로 그렇게 행동했소. 지금의 강봉석동무가 당하고있는 처지는 아무것도 아니요. 동무는 아직 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나약한 사람이요.》

그이께서는 볼편을 떨면서 무엇인가 말씀드리려 하는 강봉석이에게 틈을 주지 않으시고 다불러대시였다.

《우리는 농업협동화방침을 내놓았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기상조라 하며 머리를 내저었지만 동요하지 않았댔소. 그러나 강봉석동무가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도 간곡하게 제기하자 우리는 심중해졌소. 왜냐하면 동무에게서 인간적인 성실성과 사업에 대한 책임성을 중시하고있었기때문이였소. 그래서 동무를 돌려세워 협동화운동을 같이 해나가기로 결심하였소. 농업협동화운동이 대중적단계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속도가 빠르다고 시비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유감스럽게도 이 운동의 지도적일군인 강봉석동무도 그렇게 말한다는 통보가 들어왔고 오늘 협의회에서도 이야기되였소.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서는 말그대로 비난으로 여기고있지만 동무가 한 말은 의도가 다른것으로 보고있소. 자기가 맡은 사업에 대한 주인된 립장에서의 우려와 허심한 비판적태도라고 말이요. 누가 뭐라하든 우리는 강봉석이를 믿고있단말이요.》

세찬 흥분에 휩싸인 강봉석은 금시 숨이 막힐듯 하였다.

《수상동지!!》하고 그는 격정을 이기지 못하여 한걸음 다가섰다.

《믿고있을뿐만아니라 내 동무를 처음 만났을 때 말한것처럼 매우 귀중히 여기고있소. 내 오늘 솔직히 말하겠소. 동무가 우리 나라에서의 농업협동화를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소달구지우에 꼴호즈를 올려놓으려 한다고 말하고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강봉석이를 농업성 부상자리에서 떼버리고 농업부문에서 제거해버리자고 했소. 사실 강봉석이가 제일 큰 방해군이였고 걸림돌이였소. 그러나··· 나는 어째서인지 가슴이 쓰리였소. 나는 한번 믿음을 준 사람은 그가 배신하기전에는 버리지 않소. 나는 우리 같이 조선의 농업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키자고 약속을 한 당신을 떼버리자니 가슴이 쓰렸단말이요. 그래 내 그때 당신에게 한번 더 믿음을 주기로 했소. 물론 협동조합을 아는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였소. 강봉석이라는 인간을 버릴수가 없었기때문이요. 당신을 아꼈기때문이요.》

강봉석은 눈물이 그렁해지며 고개를 푹 떨구고 나직이 그러나 절절하게 《수상동지!···》하고 친근한 그이를 목메여 불렀다.

《그런데 당신은 나에게 보낸 편지에 뭐라고 썼소? 쏘련으로 도로 들어가버리겠다? 무슨 일이 좀 생겼다 해서 사람이 의리를 저버리려하다니. 심히 유감스럽소. 강봉석이답지 않소!》

강철을 쩡- 쩡- 울리는듯 한 추상같은 목소리-

강봉석은 온몸의 뼈가 저려났다. 그는 책상밑이나 쏘파밑으로 기여들어가고싶었다. 일생에서 그는 이렇게 부끄럽고 창피스럽고 송구스러워보기는 처음이였다.

만약 이때 그가 자기 방에 혼자 있었더라면 권총자살이라도 하고싶었을 정도였다. 자존심이 강하고 현대농업에서는 1인자라고 도고해서 머리를 쳐들고다닌 자기가 혐오스럽기 짝이 없었다. 자신이 자기의 강한 자존심에 큰 흠집을 남겼다.

(수상동지, 저를 처벌해주십시오.)

그는 이 말이 금방 입밖으로 튀여나가는것을 가까스로 억제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자기를 처벌하시려 부르지 않았다는것을 온몸으로 느끼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러니 처벌해달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속이 들여다보이는 쉬운 자기반성으로, 위선으로밖에 되지 않을것이다.

그가 어찌할바를 몰라 쩔쩔매고있는데 김일성동지의 온화한 목소리가 그의 온 넋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여보, 강봉석동무, 이 김일성이 당신을 믿으면 되지 않는가! 그밖에 또 무슨 담보가 요구되오? 말하오. 다 주겠소!···》

강봉석은 머리를 곧바로 쳐들고 그이앞으로 다시 한걸음 다가서며 흐느끼듯 말씀드리였다.

《수상동지, 저는 수상동지의 믿음속에서 오늘까지 일해왔습니다. 저에게는 다른 담보가 필요없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엄한 표정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으시고 집무탁으로 돌아가서 의자에 앉으시였다. 그리고 팔굽을 탁상에 올려놓으시고 거기에 상체를 실으며 저으기 앞으로 숙이시였다.

한동안 지나도록 말씀이 없으시였다.

어째서 이토록 애를 태우는것일가. 그의 지식과 경험, 전개력 어떤 의미에서는 천진스럽다고 보아야 할 고지식하고 정직한 성품 등을 값높이 치고계셨지만 순탄한 길을 걷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며 힘들게 따라오는 그때문에 늘 마음쓰지 않으면 안되시는 김일성동지이시였다. 그것이 어느 개별적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탓이 아니라 광복후에 조성된 우리 혁명의 복잡성에서 출발한것이였기때문에 이 각이한 출신의 간단치 않는 경력을 가진 한사람한사람을 모두 이끌고 묶어세우는 일이 그처럼 힘이 든것이였다.

강봉석이도 그이께서 자기때문에 마음쓰고계신다는것을 이 순간 온몸으로 느끼게 되였으며 또다시 뼈가 저려와 신음하였다. 그는 금방 쓰러질것만 같았다.

《김일부수상한테 가오.》

이윽하여 그이께서 저으기 누그러진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예.》

무의식중에 대답을 드리고 무의식중에 돌아섰다. (내 문제에 대한 실무적처리를 김일부수상에게 일임했구나. 과연 어떤 조치가 있겠는지?)하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던것이다. 그가 나간후 김일성동지께서는 전화로 김일을 찾으시였다.

《강봉석동무가 갈거요. 과업을 주시오. 비판은 내가 다 해주었으니까 더 말마시오.》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놓으신후 집무탁우의 필기도구들을 만져보시며 오래동안 강봉석이를 두고 생각에 잠기시였다. 현시기 계급교양과 부르죠아사상을 반대하는 사상투쟁을 강화하는것은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 나타나고있는 우경적이며 수정주의적인 경향에 대처하여 그 바람이 우리 나라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데서 매우 절실한 문제로 나서고있다. 그리하여 문학예술분야에 침습한 부르죠아사상의 여독을 가셔내는 사업을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사상교양과 사상투쟁의 열의가 비등되고있는데 이 기회에 《계급투쟁》의 간판밑에 주로 견실하고 진실한 사람들에게 비판의 예봉을 돌리여 그들을 타매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있다. 이것은 매우 좋지 못한 양상이다. 사실 강봉석이같은 사람은 속에 있는 말을 다 쏟아놓기때문에 매우 듣기가 불쾌하고 역스럽지만 조선에서의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이 진심으로 잘되도록 힘쓰고있다. 왜 이런 사람들을 제거하려 하는가? 이런 사람들은 아껴야 하며 부단히 교양개조하여 그의 지식과 경험과 성실성이 빛을 내도록 해야 할것이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그이께서는 강봉석에게 가혹하다 할 정도의 아픈 말을 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번 집중지도사업에 강봉석이를 망라시켜 이 기회에 우리의 농촌현실을 체험시키도록 할 계획이시였다. 그래서 김일부수상에게 강봉석이를 보내신것이였다. 사전에 모든 토의가 김일과 진행되였다.

김일은 찾아들어온 강봉석이를 뚝한 얼굴로 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집중지도사업에 부상동무도 망라되는것이 좋겠소. 원래는 한개 도를 책임지고 내려보내자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농업성적인 사업범위에서 아주 떨어지게 된단말이요. 그래 한개 군을 책임지고 내려가서 사업을 포치하고는 성에 올라와서 성의 일을 보고 다시 내려가 총화지어주는 식으로 하자는거요. 그런데 내 생각에는 동무가 군에 가서 다른 사람을 대리로 책임자로 시키고 기본은 리와 마을, 협동조합들에 직접 침투하여 우리 농촌의 협동화과정을 깊이 체험해보는것이 좋을것 같소. 한 둬달쯤- 그리고는 성으로 올라오오. 아마 그 현실체험이 부상동무에게는 농업협동화운동을 지도하는데서 대단히 값있는것으로 될거요. 어떻소?》

강봉석이가 기다린 《실무적처리》란 이것이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머리를 쳐들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오. 이것은 수상동지의 뜻이요. 농촌에 나가서 협동조합사업을 도와주면서 동무자신이 또한 배우시오.》

김일은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계속하였다.

《그러되 명심할것이 있소. 협의회에서 수상동지께서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하는 농업협동화의 속도가 왜 빠른가 하는것을 현실에서 체득할 필요가 있소. 그것이 어디에 기인하고있으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있는가 하는것을 협동화운동의 담당자들인 농민대중에게서 찾아보시오. 동무의 관점을 경제토대로부터 대중의 사상정신상태에로 돌리시오. 내가 부탁하고싶은것은 이거요.》

강봉석은 그의 부탁을 머리속에 깊이 새기였다.

《나는 어느 군에 가게 됩니까?》

《동무자신이 선정하오. 중앙당 농업부에서 집중지도성원들에 대한 강습을 곧 조직하는데 그 강습부터 참가하는것이 좋겠소. 물어볼것이 없소?》

강봉석은 잠간 생각하고나서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도 좋다는 뜻을 나타내였다. 군대식으로 간단명료한 김일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있는 강봉석이도 군소리를 싫어하는 성미라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집중지도성원들을 위한 강습은 조인철부부장이 주관하고있었다.

그는 중앙당회의실에서 강봉석이를 만나자 반가와하며 손을 내밀었다.

《김일부수상동지한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군에 가는것이 좋겠습니까?》

조인철은 반갑게 웃었으나 강봉석은 표정이 메말랐으며 웃지 않았다.

그러나 그전과는 다른 무엇이 느껴졌다.

《부부장동무가 정해주오.》하고 그는 말했다.

이렇게 남에게 의탁하는것이 강봉석이로서는 흔치 않는 일이였다. 조인철은 그가 김일성동지께 편지를 올렸다는것도 그 내용도 모르고있었다. 그러나 내각협의회에서 비판받았다는것과 그에 대한 세포총회결정이 기각되였다는것은 알고있었다. 강봉석이는 용서를 받았으나 심각한 교훈을 찾았을것이다. 그래서 그의 태도에서 변화가 생긴것일가?

《○○군이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강봉석은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첫날 강습이 끝난후 강봉석은 조인철이를 찾아 그의 사무실로 갔다.

《그저 담배나 한대 피우고 가려고 들렸소. 방해되지 않겠소?》

그는 비공식적인 용무로 부부장의 사무실에 들어왔으나 여전히 메마른 표정이였으며 어조는 딱딱했다.

담배들을 피우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군을 책임졌는데 너무 작지 않습니까?》

순전히 침묵을 깨려고 조인철이 이렇게 물었다. 그는 강봉석이 담배나 피우려고 들리지 않았다는것을 짐작하고있었다. 일없이 나다니는 강봉석이가 아니였다.

《아니요. 나에게는 지금 군도 범위가 크오. 나는 어느 한 마을을 택하여 내려가있겠소. 현촌에 아마 부부장동무도 잘 아는 그 최옥금이 있지요? 나는 그 처녀의 협동조합에 가있겠소.》하고 강봉석이가 말했다.

《최옥금이를 도와주면 고맙겠습니다.》

강봉석은 어딘가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그 처녀를 도와준다?··· 부부장동무.》하고 그는 머리를 들었다.

《나는 쏘련으로 도로 들어가려 했댔소.》

그는 매우 온화한 어조로 말하였다.

강봉석은 자기의 견해나 주장은 감추지 않고 다 말하는 사람이였으나 자기의 개인문제에 대해서는 말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러한 강봉석이가 조인철이에게 개인문제와 그와 관련한 내심의 이야기를 터놓는것이였다. 물론 여전히 머리를 쳐들고 말하는것이였지만 나이가 어리고 실천경험이 없고 농업에 대해서는 더욱 아무것도 모른다고 아득하게 내려다보고있던 조인철이에게 쏘련으로 들어가려 했었다는 심각한 이야기를 한다는 그자체가 그가 내심으로는 조인철이에게 머리를 숙이고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이것은 사실 강봉석이에게서는 처음 찾아보게 되는 현상이였다.

강봉석은 집중지도성원들의 첫 그루빠로 현촌을 향해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