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3


 
 

제 6 장

3

 

저녁식사를 하고 난 종원이는 잠이 오지 않아서 들판으로 나갔다. 논벌에서는 교대운전수가 일하고있었다.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른 여름밤이였다.

그는 보물이 출렁이며 흘러가는 보뚝우에 담배를 피우며 앉아있다가 팔베개를 베고 벌렁 드러누웠다. 오만가지 착잡한 생각이 머리속을 배회하였다. 그는 공연히 고향으로 뜨락또르를 몰고 이동작업을 나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일단 뛰쳐나온 집에는 들어가게 되지 않아서 한정녀네 집에 하숙하는데 어머니가 벌써 몇번 와서 울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아버지도 한번 왔었다.

《종원아, 얘야, 너 마음을 고쳐먹으면 안되겠니? 집이 쓸쓸해서 그런다. 네 에미는 네 생각만 하면서 늘 운다. 네 에미를 봐서라도 집으루 들어오너라.》

이렇게 사정을 하는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아버지, 사람답게 살아갈 길은 오직 한길뿐입니다. 조합에 들어야 해요. 그러면 동네에서 따돌림도 당하지 않고 쓸쓸하지도 않아요. 나도 그러면 집에 들어가겠어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던 아버지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 숱한 재산을 공으로 내놓을순 없어··· 과수원만 해두 사과, 배, 복숭아가 500그루 잘되지 않냐? 평생 벌어들인게다. 내가 죽으면 네 재산이 될것들이야.》

《나는 그 재산이라는걸 바라지도 않아요. 외삼촌의 말을 들었지요? 어차피 그건 다 내놔야 할 재산이란말입니다.》

《그 안대식놈 말은 하지도 말아! 그런 인간은 우리 가문에 없어! 아니 공화국정권이 할일없어 개인재산을 막 빼앗겠니?》

《할수 없어요. 우린 같이 살수 없어요.》

아버지는 아들의 하숙집에서 물러갔다. 그는 조합에 들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던것이다. 자신의 재산과 유족한 생활, 자유, 그것과 아들을 바꾸고싶지 않는 모양이였다. 아니면 언제건 아들이 되돌아오리라고 믿고있는지?

종원이가 이동작업을 와있는사이에 그의 집은 또 한차례의 경난을 겪었다.

반동놈과 한패가 되였다면서 조합원들이 집에 뛰여들어 소값을 내라고 소란을 피웠으니 외삼촌이라고 하는 안대식이가 닭을 빼앗아 삶아먹으며 강제수탈한다 어쩐다 하며 동네가 들썩하게 만든 그때처럼 과수원집은 큰 창피를 또 당하였다. 종원이는 동네사람들앞에서 얼굴을 들고다닐수 없어 노상 뜨락또르에 붙어있든가 하숙집에 들어박혀있든가 하였다.

식사하러 다니는것도 어두울 때만 다녔다. 누구보다도 옥금이를 만나는것이 제일 괴롭다. 옥금이는 종원이를 피하는것 같았다. 그래 그들은 아직 변변히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어보지 못했다.

이야기를 했다면 사업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였을뿐이였다. 그런데 동네에서는 둘이 정분이 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상한 일이다. 오히려 둘이 서먹서먹해지고 애써 피하려 하는데 소문이 반대로 났다. 교대운전수가 웃으며 《관리위원장 처녀와는 각별한 사이라지요? 고중을 같이 다녔구 전쟁때에도 계속 편지교환을 했다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내가 책임운전수동무와 관리위원장이 어쩌다 만날 때 보면 서로 피하는것 같지만 무언지 심상치 않은것이 오고가더란말입니다. 전기가 흐르는거지요.》하고 말해서 동네에서 떠도는 소문을 알게 되였다. 그렇다면 이건 잘못된거야. 순결한 옥금이에게 죄를 짓고있는거야.

그는 안대식이가 해준 말들을 잊을수 없었다. 과연 협동화가 심화되면서 계급투쟁문제가 두드러지게 강조되고있다. 자기가 부농의 집을 뛰쳐나왔고 로동계급의 일원으로 되였지만 부농의 아들이라는 혈연관계야 어디 가겠는가. 장차 부농들을 청산할 때 계산할수 있다. 아니다! 옥금이에게 자그마한 티라도 생기게 해서는 안된다.

(지배인이 고향으로 가서 봄갈이를 하라 했을 때 싫다고 뿌리쳤어야 하는건데, 정말이지 공연히 왔구나! 우리 집이 반동놈과 한배속이라는 소문과 함께 내가 옥금이와 어쩐다는 소문을 내돌리는것을 보면 내가 여기 와있는 기회에 옥금이에게 계속 험담을 들씌워 망신을 시키고 일을 제대로 못하게 하려는것이 분명하다. 내가 놈들이 책동할수 있는 좋은 미끼로 된거야. 고향이 그리워 뜨락또르를 몰고 왔건만, 이런 후회가 생길줄 어찌 알았던가! 옥금이, 정말 미안하오, 내가 동무에게 잊어달라고 한것은 백번 잘한거요. 나는 옥금이에게 일생의 짐으로만 될 사람이요. 나를 노엽게 생각하고 성낼 필요가 없소!)

그는 이 괴로움을 가슴속에서 영영 뽑아버려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모내기만 끝나면 뜨락또르와 함께 임경소로 가버릴것이며 그후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고향에 다시 오지 않을것이다.··· 이렇게 결심하자 답답하던 속이 후련해지는것 같았다. 하면서도 어쩐지 서글퍼졌다. 노래하듯 쉬임없이 주절대며 보도랑을 흐르는 보물소리,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변함없는 고향의 검푸른 밤하늘, 저기 개울가의 컴컴한 버드나무숲, 그 개울가의 푸른 잔디밭과 버드나무숲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들, 아, 싸우는 전선의 고지에 문득 정적이 깃들 때면 떠오르군 하던 그 시절의 추억은 언제나 옥금이라고 하는 눈이 새까만 계집애와 련결되여있군 하였다. 이 고향산천을 지켜 손에 총을 들고 싸운 종원이가 아닌가. 하지만··· 떠나야 하는것이다. 옥금이를 위해서··· 종원의 눈귀가 축축하게 젖었다.

시간은 흘러 정신적으로 지친 종원이는 훈훈한 자연의 품에 안겨 어느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서늘한 추위를 느끼며 눈을 뜬 종원이는 누군가 자기옆에 앉아있는것을 보았다.

교대운전수인가?··· 아니였다.

일어나며 보니 그는 뜻밖에도 옥금이였다.

처녀는 앞에 보자기에 싼 그릇같은것을 놓고 앉아서 뜨락또르가 논갈이를 하는 컴컴한 들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겨있었다.

종원이는 심장이 다시 아프게 뛰였다. 이 처녀를 멀리하며 그로부터 영영 떠나려는 결심을 새로이 굳게 하고있는데 바로 그가 찾아온것이다. 어째서 이 처녀는 여기와 앉아있는것일가. 처녀도 돌아가는 소문으로 보아 이 종원이를 피해야 할것 같은데 어째서 굳이 찾아왔는지?···

인기척을 느낀 옥금이가 종원이를 돌아보았다.

《깨났군요?》

옥금이의 야무진 챙챙한 목소리는 류달리 따뜻하였다.

《무슨 잠을 그렇게··· 왜 여기 나와 누워있어요?》

《들바람 좀 쏘이다가 그만···》

《괴롭지요?》

뜻밖에 처녀가 이렇게 물었다. 하숙에서 자지 않고 들에 나와 들바람을 쏘이다가 잠든것이 무엇때문인지 처녀는 알고있는것 같았다. 그렇다. 옥금이가 종원이의 괴로운 심정을 알고있다는것은 처녀도 같은 심정을 체험하고있음을 말해주는것이리라. 종원이는 모든것을 처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결심하였다.

《그렇소. 괴롭소··· 나는 공연히 고향에 왔소.》하고 그는 침울하게 말했다.

《나는 종원동무가 자기를 잊어달라고 한 말을 리해할수 있어요. 리해하면서도 조국을 지켜 싸운 병사가 무엇때문에 자기를 속박하는지 안타까왔어요. 그래 옹친 마음이 풀리지 않아서 동무와 말도 하지 않으려 했어요. 그런데 밤일하는 운전수동무에게 밤참을 가지고 나오다가 여기서 자고있는 동무를 보게 됐어요.》

처녀는 흐르는 보물처럼 노래하듯 말하였다.

《들에 나와 만시름 잊고 자는 동무를 보며 끝없이 너그럽고 부드럽고 따뜻한 대지의 품에 대하여 생각하게 됐어요. 하숙집에서는 이렇게 잘수 없어 동무가 들에 나온게 아니예요? 그리고 등을 돌려댄 이 옥금이가 동네에 있고··· 하지만 들에는 따뜻한 바람과 끝없이 열린 하늘과 부드러운 땅이 있죠··· 우리는 고중시절에 유명한 시인들이 쓴 시들을 읊으며 랑만에 넘쳐 달려다닐 때 세상이 이처럼 다난한줄은 몰랐댔어요. 하지만 그때에도 지금도 어머니조국만은 변함없이 제가 낳은 아들딸들을 품어주고 먹여주고 보살펴주었어요. 종원동무, 나도 동무도 이 어머니대지, 조국의 품에서 자랐고 그를 지켜 싸웠고 그를 위해 청춘을 바치고있어요.》

처녀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구슬픈 노래처럼 들렸다. 종원이는 격해지는 심정을 가까스로 누르고있었다. 처녀는 자기자신에게나 종원이에게 다같이 고통스러운 그 이야기는 피하고있었다. 다만 종원이가 잊어달라고 한것에 대하여 그것을 조국의 대지와 련결시켜 이야기하고있는것이였다.

《어머니는 자식이 못나도 탓하지 않는다 했어요. 그런데 동무는 자기를 잊어달라고!··· 그러면 대체 어디로 가겠다는거예요. 이 땅을 떠나서? 종원동무, 나는 개개로 흩어져 살아가기 힘들어하는 우리 농민들을 협동화에로 이끌어주시는 김일성수상님의 사랑의 품이 진정한 대지의 품이라고 생각해요. 어머니대지의 참뜻은 그거예요! 그래서 동무도 뜨락또르를 몰고 협동벌을 달리고있지 않나요. 종원동무도 말했지만 동무가 몰고온 뜨락또르도 수상님께서 농민들에게 보내주신것이 아니나요?》

처녀는 《잊어달라》고 말한 종원이의 마음속 깊은데를 파고들었다. 한마디로 말하여 옥금이를 떠난것은 리해부족의 자기 속박에서 출발한것이라는 뜻이였다. 떳떳하게 대지를 활보해야 한다는 뜻이였다. 우리모두가 수령님의 사랑의 품에 안겨있다는 뜻이였다.

종원이는 처녀가 고마왔다. 옥금이의 이야기에는 저절로 눈물을 자아내는 따뜻하고 격동적인 처녀의 마음씨가 그대로 비껴있었다. 처녀의 말이 옳았다. 사실 그래서 그도 고향땅으로 뜨락또르를 몰고올수 있었다. 종원이는 그간 현촌을 떠나 성천에 있는 전사한 분대의 전사, 노래를 좋아하는 그 꼬마의 집에 찾아갔으며 그의 부모를 만나 자기의 무릎을 베고 숨진 전우를 대신하여 아들구실을 하려 한다고 했다. 종원이는 전우의 집에서 새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뜨락또르운전수양성소가 가까운곳에 있다는것을 알게 되자 그곳에 찾아가서 떼질을 하다싶이하여 입소하였다. 운전수자격증을 쥐자 그는 여기서 가까운 농기계임경소로 배치받았다. 임경소는 고향과 가까이 있었다. 그것이 이상하게도 기뻤다. 고향을 멀리 떠나 사라져버리려 한 그가 고향가까이로 배치되여온것이 은근히 기쁜것은 무엇때문이였던가? 아무리 부정하려고 애써도 그것은 한마디로 옥금이와 가까와지고있기때문이였다. 이것은 모순된 감정이고 모순된 행동이였으나 그로서도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모든 행로가 그스스로 택한것은 아니였다. 저절로 되였다. 말하자면 고향가까운 임경소로 배치된것도, 또 지배인이 뜨락또르를 가지고 증원리로 가라고 한 지시도 다 그의 의지와 희망과 관계없이 된것이였다. 하지만 그는 구태여 그것을 거절하거나 역행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뜨락또르와 함께 고향으로 왔다. 그러나 생활은 일반적인 의미로 존재하는것이 아니였다. 구체적인 환경, 구체적인 인간들, 구체적인 감정들로 존재하는것이다.

《고맙소, 옥금동무! 내 어디 가든 동무가 말한 어머니대지의 뜻을 잊지 않겠소. 대지의 아들로 참되게 살겠소.··· 그러나 나는 봄갈이를 끝내고 임경소로 돌아간 다음에는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소. 그렇다고 내가 고향을 잊는것도 버리는것도 아니요. 나의 뜨락또르가 갈아엎는 모든 땅은 나의 고향땅이나 같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동무는··· 끝내···》

옥금이는 설음이 북받치는듯 더 말을 못했다.

(옥금이, 이건 다 너를 생각해서, 너의 앞날을 위해서 내가 눈물을 삼키고 결심한것이니 나를 용서해다오, 처녀야!)

움쭉 일어서서 처녀로부터 멀어져가며 종원이는 이렇게 속으로 처녀에게 용서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