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2


 
 

제 6 장

2

 

분망한 나날속에서 봄빛이 짙어가고있었다.

옥금이는 국도에서 벗어나 마을로 뻗은 들길에 들어섰다. 들에 부는 서늘한 봄바람이 치마자락에 감돌았다. 하늘에는 쪽배같은 초생달이 떠있었다. 처녀는 군에 볼일이 있어 갔다오는 길이였다.

모내기가 한창인 들판은 차츰 푸른 빛으로 변하고있었다. 그 푸른 빛의 논에서는 어린 벼모들이 한창 모살이를 하고있다.

어둠이 깃든 논벌에는 논갈이에 분주한 정종원이가 운전하는 뜨락또르의 엔징소리만 들릴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루일을 끝내고 집으로 들어가 저녁식사를 한후 담배를 태우고있거나 가족끼리 혹은 마실온 이웃과 두런두런 이야기들을 나누고있을 시각이였다.

그런데 이때 푸릿한 달빛속에서 누군가 논두렁을 걸어오는것이 눈에 뜨이였다. 옥금이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달빛아래 몽통하게 보이는 그 사람은 몸집이 크고 동작이 완만한데 손에 든 삽날이 뿌옇게 번뜩이였다. 그 사람은 현덕칠령감같아 보이였다.

그쪽에서 먼저 낮고 웅글은 목소리로 물었다.

《관리위원장 아닌가?》

《저예요, 순옥이 아버지세요?》

《음, 날세.》

그는 과연 현덕칠이였다.

《물고를 보시나요?》

옥금이가 물었다.

《음.》

현덕칠은 논두렁을 타고 행길로 나왔다.

《어떻게 된 일이나요?》

옥금이는 써레질을 맡아하는 현덕칠이 밤에 들에 나와 물고를 보는것이 이상해서 물었다. 물고를 보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기때문이였다.

《내 미타해서 논에 나와봤더니 과연 논물보는 녀석이 안보여. 벼는 원체 밤에 크니까 밤에 논물을 잘 대주어야 하는건데 집에서 잠을 자고있는지··· 저녁에 밤새 별일 없도록 물고를 잘 보구 들어가 잔다면 또 몰라.》

《···》

현덕칠의 말은 옥금이로 하여금 깊은 가책을 느끼게 했다. 원래 부지런하고 착실한 농민들은 밤에도 물고를 보았다. 현덕칠은 조합원이 되였어도 개인농시기와 마찬가지로 이일저일을 다 착실하게 하고있었다. 써레를 치는 작업을 분공받았으니 그것만 하면 되겠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조합원들은 분공된 일만을 하는것도 착실하게 하지 않고있는것이다.

《협동조합이 좋다는건 더 말할것 없다만 정작 들어와 일해보니 고칠게 많아.》하고 현덕칠이 담배를 피우며 처녀에게 말했다.

《네, 어서 말씀해주세요.》

《조합재산을 제것처럼 귀하게 여기지 않구 조합일을 제일처럼 하지 않아. 춘섭이 그 사람이 요전날 읍에 가서 비료를 한달구지 실어오는데 보니까 자기도 척 올라타고 흥타령을 부리구 있더군. 실은 비료도 무거워 소가 혀를 빼물지경인데 말일세. 그게 제소라면 힘들어하는데 타고 다니겠나? 조합소니까 아끼지 않는거야. 세워놓구 정신이 들게 욕을 해주었네.》

《···》

처녀는 무어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제1작업반 사람들이 일이 거칠더구만.》하고 현덕칠이 동안을 두었다가 말했다.

《모내기를 하구는 얼른 돌아서서 빈포기에 보식을 해야 하는데 안하더라니까.》

《잘 알았어요. 앞으로도 잘못된것이 눈에 뜨이면 제때에 충고를 주고 관리위원회에도 말해주세요. 제가 농사물계에 밝지 못해서 빈구석이 많아요. 아무때건 일깨워주세요. 순옥이처럼 생각하고 욕을 해도 다 받아들이겠어요.》

옥금은 실농군으로서 농사일을 근심해줄뿐아니라 조합원으로 조합일을 걱정해주는 현덕칠이 고맙기 이를데 없었다.

《독불장군이라고 관리위원장 혼자서야 용빼는수 있나? 조합원들이 잘 받들어야지.》하고 현덕칠은 처녀관리위원장을 위안해주며 철썩철썩 도랑물에다 발에 신은 넙적고무신을 씻었다.

《여기 논의 물관리를 누가 맡았어요?》

옥금이가 물었다.

《···》

현덕칠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옥금이는 여기가 제2작업반 구역이니까 물관리를 맡은 사람이 최근배라는데 생각이 미치였다.

《최근배아저씨지요?》

《그건 뭐 꼭 알아선 뭘하겠나?》

현덕칠이는 다른 조합원은 이름을 찍어서 말하면서도 최근배의 이름은 밝히기를 싫어했다. 그럴수 있다. 농사일에 들어가서야 최근배를 어떻게 비난하랴. 그는 한다하는 실농군이였다. 피난민으로 온 춘섭이와는 다르다. 그래서 옥금이는 최근배에게 물관리를 맡기기로 하지 않았던가. 물관리는 아무나 시킬수 없는 책임적인 일이여서 조합에서는 깐지고 농사경험이 많은 실농군들을 붙이기로 했는데 최근배도 그중에 속해있었다. 최근배는 조합에 가입한지 몇달되지 않지만 그것이 농사를 짓는 일과는 관계없지 않겠는가. 최근배가 자기 집농사를 얼마나 깐지게 하였는가는 누구나 다 알고있었다. 옥금이는 그가 조합농사도 그렇게 알뜰하게 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지금 현덕칠이가 물고를 대신 보아준 이 논이 그의 담당임을 알게 된 옥금이의 실망은 이만저만하지 않았다.

조합에 들면서 나무를 팔아 개인돈을 장만한 다음에 든 사람이다. 그래서 부기원이 그따위를 받아들이겠는가고 하는걸 조합에 들면 그때부터는 조합의 리속을 위해서 아득바득 일하겠다고 한 그의 말을 믿었고 교양하면 집단을 위하여 일을 잘할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가입하겠다고 찾아온 중농을 배척할수 없어 받아들였다. 그런데 자기의 결심과 조합의 믿음을 벌써 줴버리였단말인가? 아니, 무슨 사정이 있을수 있다. 집단에 대한 의식이 아직 채 형성되지 못했다해도 농사군의 량심이야 어디 가겠는가? 옥금이는 이렇게 고쳐 생각하고 현덕칠이와 함께 마을에 들어왔다.

관리위원회로 가는 길에 최근배네 집에 들려보기로 하였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려는것이였다.

최근배네 집 가까이에 이른 옥금이는 주춤 멈추어섰다. 최근배가 입에 담배를 피워물고 터밭에다 말짱을 박고 새끼줄을 둘러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늦도록 터밭을 돌보느라고!···)

옥금이는 왜 그런지 허전해졌다. 배신당한듯 한 서운한 감정··· 터밭을 돌보느라 농사군의 량심을 더럽히고있는 최근배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측은하게 느껴지는 생각··· 현덕칠이와 얼마나 대조가 되는가!

같은 중농이고 실농군인데도. 옥금이는 그대로 돌아서고말았다. 입이 쓰거웠다. 최근배가 한두달사이에 사람이 달라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믿었던것이 얼마나 천진스러웠던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사회주의근로자로 개조할수 있으랴.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다리맥이 풀리는것 같았다. 처녀는 몹시 시장기를 느꼈다. 아직 저녁식사전이였던것이다.

이때 골짜기막바지에 있는 정의춘이네 집쪽에서 법석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문이 항상 닫겨있고 이끼오른 높은 담장을 둘러친 과수원집은 그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수 없게 언제나 조용했었다. 그러니 누가 그 집에 가서 동네가 소란하게 떠들어대는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종원이가? 아니, 종원이는 한번 뛰쳐나온 집에 다시 들어가지 않고 한정녀네 집에 교대운전수와 함께 하숙하고있었으며 지금은 논에서 밤일을 하고있다.

그렇다면?···

마침 그쪽에서 누군가 휘적휘적 걸어오고있었다.

《저기서는 왜 떠들어요?》

《허, 관리위원장인가?》

그는 개인농이였다.

《조합원 박인수가 정의춘이와 맞붙었어.》

《아니, 무슨 일때문이예요?》

《모르나? 정의춘이가 반동노릇을 했다누만.》

《무슨 반동노릇말이예요?》

옥금은 너무도 뜻밖의 소식이여서 얼떨해졌다.

《조합소를 죽이구 창고에 불지른 반동노릇이지 뭐겠나?》

《엄마-》

처녀는 나직이 비명을 올리였다.

옥금이는 어두운 행길을 달음쳐갔다.

과수원집의 퇴색한 대문이 발쯤 열려져있는데 그안에서 박인수의 째는듯 한 고성이 들려왔다.

《미욱한체 꾀를 쓰지 말아. 네놈이 꾀를 잘 쓴다는걸 알아. 난쟁이화상에 이마가 반들반들해서. 네놈이 어떻게 남의 등을 어루만지구 간을 빼먹는지 현촌바닥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네놈이 반동질하구 배겨낼것 같애?》

옥금이가 과수원집 뜨락에 들어서니 대청마루에 박인수와 춘섭이가 정의춘이와 마주서있는데 성이 독같이 오른 세사람이 서로 삿대질을 하고있었다.

《이 쥐포수야! 내가 창고에 불을 놓았다는 증거를 대란말이다. 왜 증거를 대지는 않구 지랄치는거야?》

정의춘이가 손가락으로 박인수의 얼굴을 찌를듯이 하며 대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쨍쨍 올리는 목소리였다.

《온 동네에 소문이 짜- 한데 증거는 무슨놈의 증거! 난 그따윈 상관 안해. 반동놈이 죽인 소값을 물어내라. 내가 그 소를 잃구 마음고생하던걸 생각하면 가슴이 터진다!-》

박인수는 주먹으로 제 가슴을 두드리였다. 박인수가 독을 쓰면 무섭다고들 하는데 사실인것 같다.

《종곡값두 내놔.》

춘섭이가 옆에서 손을 내대며 응수했다.

《꼴좋다. 아들은 뜨락또르운전수를 하는데 애비는 반동질을 하구. 원체 네놈을 숙청했어야 하는거야. 도농산국장이 와서 네놈을 수탈하라구 했는데 그 말이 옳지. 네놈이 소없는 사람들한테 달구지를 빌려주구는 낟알을 한말반씩 받아서 배를 채운걸 게워놔라.》

그는 정의춘이한테서 소달구지때문에 수모당하던 일이 골수에 사무쳐있어 박인수와 같이 이 집에 뛰여든것 같았다.

대청마루 아래에는 어느새 밀려들어왔는지 구경군들이 댓명 늘어서있었다.

《이것들이 생사람을 잡는구나. 응? 야! 공화국에는 법이 없는줄 아니?》

정의춘이가 펄펄 뛰였다.

《옳지, 반동놈이 공화국을 찾는구나?》

《인수아저씨!》

구경군들을 헤치고 마루로 다가가며 옥금이가 소리쳤다.

《춘섭아저씨! 왜들 이래요? 왜 여기 와서 떠들어요?》

처녀의 야무지고 흥분에 떠는 목소리에 모두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관리위원장!》

박인수는 옥금이를 보자 한층 더 열을 올리였다.

《이 두상이 바루 소를 죽이구 창고를 불태운 반동놈과 한짝이야. 내 그래서 죽은 소값을 받으러 왔어! 이놈, 반동하구 배가 맞았다구 이실직고하지 못해?》

정의춘이도 목청을 더 돋구었다.

《이놈아, 남을 함부로 걸고들어? 네놈이 제가 소를 잘못 돌보다가 죽이구서는 이제와서 나한테 행패질을 해? 야, 하늘이 내려다본다.···》

《뭐, 행패질?》

《그만하지 못하겠어요, 예?》

옥금이도 마침내 대청마루우로 올라섰다.

《내려가자요. 이 집에서 반동을 했든안했든 그건 다 법에서 알아 할 일이예요. 이렇게 떠든다고 증명될 일입니까?》

박인수와 춘섭이는 옥금이에게 밀려내려오면서 그냥 욕설을 해대였다. 박인수의 작은 눈에서 퍼런 불이 벙끗거리였다.

《아저씨, 그만하라 하지 않아요? 근거없이 아무 소리나 막 하면 돼요?》

옥금이는 박인수의 손을 잡아끌며 구경군들에게도 헤쳐들가라고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목청을 돋구면 좋아할건 진짜 반동놈들이예요.》

《허, 그것참, 아니 관리위원장은 왜 이 두상의 역성을 드는거요?》

춘섭이가 분해하였다.

《아저씨, 그건 무슨 소리예요?》

《이런 집은 숙청해야 한다구 하지 않던가? 한데 왜 말리는가 말이요.》

《아저씨는 어디서 그런 지시를 받았어요? 도농산국장에게서요? 그럼 어디 맘대루 해봐요. 들부시구 빼앗구 하라요.》

옥금이는 싸늘한 어조로 조용히 말하고 돌아섰다.

《나머지 사람들은 다 조합사무실에 갑시다.》

구경군들이 거의다 조합원들이여서 옥금이는 그들을 데리고 과수원집 대문을 나섰다.

박인수도 춘섭이도 하는수 없이 뒤를 따라왔다.

대문안에서는 종원의 어머니가 통곡을 하고있었다. 그 울음소리는 한동안 어둠에 잠긴 현촌에 침울한 기운이 떠돌게 하였다. 관리위원회마당에 조합원들을 모여놓고 옥금이는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고 따져물었다. 알고보니 동네에 그런 소문이 나돌고있다는것이다. 옥금이는 어이가 없었지만 심중하게 말했다.

《저는 반동놈들이 퍼뜨린 소문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무서에서 그냥 놔두겠어요? 박인수아저씨, 반동놈들의 충동질에 넘었어요!》

박인수의 얼굴이 더 좁아드는것 같았다.

《놈들이 계속 뒤에서 발악하고있습니다. 우리 조합이 발전하니까 더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습니다.

저는 과수원집을 역성드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무슨 근거로 그 집이 반동이라고 말할수 있습니까? 각성을 높이는건 좋지만 무턱대고 남을 의심하면 안됩니다. 더구나 무슨 리유로 숙청을 하겠어요, 예, 춘섭아저씨?》

옥금이는 춘섭이나 박인수의 극단한 행동이 리해는 되였다. 그들의 정의춘이에 대한 반감을 탓할수 없었다. 옥금이자신이 정의춘이에게 개인감정을 품고있지 않는가. 그러나 무모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반동놈들이 바로 그것을 바라고있는것이다. 현상도는 여전히 책동하고있었다.

옥금이는 반동놈들에 대한 분개심을 근거없이 정의춘에게 터뜨릴것이 아니라 서로 합심하고 농사를 잘 짓는데로, 조합을 발전시켜나가는데로 돌려야 할것이라고 조합원들에게 호소하였다.

《우리 조합을 발전시키자면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게 일하고있습니까? 자기 자신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조합원들은 농사일을 개인농때처럼 깐깐하게 하지 않습니다. 빈포기를 제때에 보식하지 않는것만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 그리구 가슴아픈 일이지만 조합일보다 자기 집 터밭일을 더 극성스럽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조합재산을 자기 재산처럼 애호관리하지 않습니다. 짐실은 달구지에 타고다니며 조합소를 혹사하고있습니다. 반동놈들이 이런 약한 고리를 노리고 덤벼든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조합원들은 덤덤히 말이 없었다. 관리위원장의 말이 다 옳았다. 자그마한 처녀가 어찌도 당돌하고 맵짠지 나이 어리다고 함부로 대할수 없었다.

어린 처녀의 사리에 맞는 호소가 나많은 조합원들의 심금을 울리였다.

그러나 춘섭이만은 종시 옹친 마음을 풀지 못했을뿐아니라 옥금이에 대하여 불만을 품었다. 과수원집 뜨락에서도 여기 조합관리위원회 마당에서도 춘섭이는 련달아 망신을 당한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는 짐을 실은 소달구지를 탔다고 현덕칠이한테서 단단히 말을 들었는데 그것까지 관리위원장은 들추어내여 자기를 망신시킨다고 속이 아주 앵돌아졌다.

《흥, 네가 말은 잘한다만 네 속을 내가 모를줄 알구?》

그는 헤쳐가는 길에 어둠속에서 옆사람에게 투덜대였다.

《옥금이가 왜 정의춘의 역성을 드는줄 아우? 종원이를 보구 그러지요. 종원이와 정분이 났답데다. 그러니 계급적원칙이 다 뭐요?》

《함부루 말하는게 아니야.》

저쪽은 이렇게 대답해주면서도 과연 그럴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정의춘이가 반동놈들과 한 배속이 아니라해도 소문은 소문대로 돌았다. 거기에다가 관리위원장 옥금이가 정의춘의 아들과 눈이 맞아 돌아간다는 말이 그날로 마을에 쫙 퍼지였다. 그래서 옥금이는 정의춘이를 감싸준다는것이였다.

이 소문을 들은 옥금이 어머니는 딸을 앞에 앉혀놓고 그게 무슨 소리냐, 하필이면 그 령감네 아들과 정분이 난단말이냐 하며 따지고들었다. 하면서 눈물까지 흘리였다.

옥금이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또 변명해야 소용있을것 같지 않아 잠자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