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6


 
 

제 5 장

6

 

협동조합의 농사가 잘되고 살림이 커가고있을 때 현촌마을에서 크고작은 사건들이 여러건 일어났다. 누군가 종합탈곡장에 써붙인 구호를 밤새 찢어버렸고 축사에 불을 지르려했으며 한편 구구한 요언이 마을에 떠돌았다. 이러한 사건들은 아직 소를 독살한 범인을 잡아내지 못한 장칠복이를 몹시 초조케 하였다. 그는 밤마다 마을들을 순찰하느라 무릎관절염을 치료할사이도 없었다.

그러나 현상도는 꼬리를 잡히지 않았으며 이번에는 종곡을 넣어둔 창고를 불지르는데 성공하였다. 경비원이 잠든 틈을 타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불길은 깊은 밤의 현촌마을을 놀래우며 활활 타올랐다. 잠들었던 마을사람들이 깨여나 이리저리 달려다니고 동네 개들이 온밤 짖어댔다.

불은 새벽녘에 가서야 완전히 끌수 있었다. 연기에 얼굴이 얼룩이 지고 불에 머리카락이 누렇게 끄슬은 장칠복이는 숨어있는 원쑤놈을 잡아내지 못하고 늘 피동에 빠져있는 자신이 스스로도 민망스러워 침울한 얼굴로 어딘가 한옆에 서있었다. 불타다만 시커먼 벽체에서는 불을 끄느라 우물과 도랑에서 퍼다가 끼얹은 물에서 흰김이 피여오르고 꺼져가는 가느다란 연기가 아직 가물거리고있는데 리당위원장 강명우가 기침을 하며 나타났다.

그도 밤새 불을 끄느라 고생을 해서 퍼그나 수척해졌다. 그는 아마 세수를 하고 오는 길인지 여위긴 해도 얼굴이 깨끗했고 머리에 물기가 번들거리였다.

《자위대장동무, 가서 세수도 하고 아침밥도 먹소. 주제가 그게 뭐요? 그런데 반동놈들이 당신을 놀리는게 아니요?》

강명우가 화를 냈다. 그는 장칠복이가 자위대원들을 동원하여 밤마다 교대로 순찰근무를 조직하며 심지어 필요되는곳에 매복도 시킨다는것과 여기서 자위대장자신이 제일 고생하며 밤을 거의 밝히다싶이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원쑤를 잡지 못하니 동정이 가지 않았다. 더구나 동네에서는 장칠복이가 과부 조영란이를 따라다닌다는 소문이 떠돌고있었다. 강명우는 장칠복이 할 일이 없어 조영란이를 따라다닐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하고있는것만큼 그 소문을 못들은척 하고있었는데 지금 보니 혹시 그게 사실이 아닌지? 장칠복이 조영란이를 따라다니느라 예리하던 그의 눈이 멀지 않았는지? 자못 의심스러웠다. 옛버릇이 되살아나서 진짜로 그 과부의 궁둥이를 따라다니느라 반동놈을 잡아내는 일에 게을리 했을수 있다. 그래 장칠복이 해놓은게 뭐가 있는가. 조영란이에게서 무슨 단서를 잡아쥐였는가.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서 계속 그 녀자가 의심스러워 감시를 한다는것이다. 오히려 조영란이가 그를 살살 꼬이면서 속을 뽑아내는지도 모른다.

강명우가 화를 내며 놀려대듯 추궁했지만 장칠복이는 한마디 변명도 못했다. 벌어진 사태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사실 조영란이를 중시하고있었다. 아무래도 그 녀자의 거동이 수상했다.

소독살사건이 있은후 밤길에서 조영란이와 맞다들린후부터 장칠복이는 더욱 귀와 눈을 밝혀 그 녀자가 당촌의 무당에게 드나들고있다는것을 알아냈다. 장사일로 다니는지, 무엇때문에 다니는지 딱히 알수 없으나 어쨌든 의심스러웠다. 장사를 하는데다가 바람쟁이 과부여서 그 녀자가 잘 나다니기도 하고 그 집에 드나드는 남자들도 많은데 그런틈에 나쁜놈들이 깊은 밤에 움직일것이며 그것도 집뒤문으로 드나들것이다. 이렇게 추측한 장칠복이는 그 녀자의 집에 감시의 눈초리를 예리하게 돌리면서 밤늦도록 조영란의 집뒤의 은페지에 숨어서 감시하기도 했다.

한번은 그가 그 녀자의 집안을 살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점심참에 조영란이를 찾아갔다.

《어떻게 왔어요?》

대문을 열어준 조영란이가 매우 마뜩지 않게 쏘아보았다. 하지만 길게 찢어진 까만눈은 쏘아보는것이 오히려 더 매력이 있었다. 장칠복이는 그 녀자의 번뜩이는 눈빛과 매정스러운 말투에서 자기에 대한 적의감을 충분히 느낄수 있었으나 은밀한 목적이 있었고 또 과부의 육감적인 은근한 매력에 어쩔수 없이 이끌리여 능글스럽게 달라붙었다.

《왜 나는 오면 못쓴다든가? 조영란이를 좀 보러 왔네.》

《싱거운 소리 말아요!》

《허, 좌우간 술이나 좀 사먹읍세.》

《여기가 뭐 술집인가? 술을 사가지고 가야 해요. 빈병 가져왔어요?》

《그저 선자리서 꿀걱꿀걱 하지머. 이봐, 조영란이, 너무 그러지 말라구.》

《흠, 누구보구 해라야. 전에는 밤길에 뒤쫓아오더니 오늘은 아예 대낮에 나타났군?》

장칠복이는 히죽히죽 웃었다.

《글쎄 발걸음이 왜 그런지 저절로 이쪽으로 온다니까··· 그게 왜 그럴가. 응?》

《내가 알게 뭐야.》

매정하게 쏘아붙인 조영란이는 아무래도 저 자위대장이 쉽게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라는것을 간파하고 못이기는척 하고 대문안으로 들여놓았다. 그리고 이 령감이 무슨 낌새를 차린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부드럽게 대해주며 오히려 자기쪽에서 장칠복의 속을 떠보려 했다.

장칠복이는 조영란이가 차려주는 술상을 앞에 놓고 마시는데 점차 취기가 오르면서 장사와 남자다루기에 능란한 녀자의 추파에 그만 얼이 쑥 빠져나가는것 같았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눈독을 들이고 군침만 삼켜오던 욕망이 늙긴 했어도 지금에 와서 달성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환상에 빠져들었다.

《령감, 그래 정말 령감이 오늘 우리 집엔 왜 왔수? 오려거든 밤에 올것이지 낮에 왔으니 내가 수상쩍게 여기고 받자를 하겠어요? 리자위대장이니까 할일 없어 다니는것 아니지 않겠어요? 그전날 밤에는 내가 사실 좀 바쁜 걸음이여서 시끄럽게 생각하구 령감을 떼버렸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야. 호호호···》

《무슨 바쁜 걸음이였길래?···》

《빚받으러가던 길이야.》

《그래? 당촌무당한테두 빚받으러 다니나?》

한순간 조영란의 얼굴에 이 령감이 다 아는구나 하는 놀라움이 스치더니 이내 상글상글 웃었다.

《그럼, 이 무당년이 어디 꾼 돈을 제때에 줘야지. 잘못하다가는 생으루 떼울것 같애서 몇번 독촉을 했다구··· 내야 혼자 사는 몸인데 이악하지 못하면 못살아··· 령감이 날 도와줄리는 없는게구, 그렇지?》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 상대방의 속뽑이를 하였으나 호상 얻어쥔것 없이 다른 손님들이 찾아오는바람에 헤여지고말았다.

그런데 이날 조영란의 집에 가서 술을 마신 사실이 그것을 본 사람들이 퍼뜨리였는지 조영란이가 말을 돌리였는지 어쨌든 증원리에 퍼지였다. 나중에는 장칠복이가 조영란이를 어째볼가 해서 그 녀자의 궁둥이를 따라다닌다느니, 그 집 담장을 빙빙 도는걸 보았다느니, 새벽에 뒤문으로 빠져달아나더라느니 하는 추문으로 번져졌고 그것이 리당위원장의 귀에 총알처럼 날아들었다.···

《있다가 나한테 오우!》하고 강명우는 장칠복이에게 맵짜게 말하고 돌아서서 마을로 들어갔다.

장칠복이는 코수염이 축 늘어져서 《예.》하고 맥없이 대답했다. 강명우가 성내는것이 응당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실 그가 조영란이를 추적하는사이에 왕청같이 종곡창고가 불타지 않았는가.

리당에 불리워간 장칠복이는 강명우에게서 그야말로 맵짜게, 눈알이 튀여나올 정도로 욕을 먹었다. 강명우는 돌아가는 추문을 다 알려주면서 이것이 얼마나 망신스러운 일이며 혁명에 손해를 주는 일인가고 책망하였다.

장칠복이는 솔직하게 자기 비판을 했다. 조영란이에게 마음이 끌리기까지 했다는것까지 다 말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음, 새벽에 뒤문으로 빠져달아났단말이지? 그러니까 어떤놈이 뒤문으로 출입하는게 분명해. 불 안땐 굴뚝에서 연기 날가?)하고 제 궁냥은 제 궁냥대로 하고있었다.

그는 군내무서와의 련계도 더 깊이 가지였다. 그는 자기가 조영란이를 의심하며 감시한다는것을 이미 통보했고 그 어떤 징후가 나타나는 경우 련락상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하여 그 녀자를 《암까마귀》라는 대호로 부르기로 하였다. 군내무서에서는 다른 리에서 책동하다가 체포된자들의 입을 통하여 군내에서의 모든 암해행위의 지휘자가 현상도라는것을 알고있었으며 장칠복이에게도 알려주었다. 그런데 현상도가 비밀소굴을 옮겨가며 매우 조심스럽고 치밀하게 활동하고있기때문에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비밀소굴의 하나가 조영란의 집이라고 장칠복이는 확신하고있었으나 과학적인 증거는 아직 쥐지 못했다. 그래 그는 초조해하는것이였다.

장칠복이는 리당위원장한테 불리워가서 욕을 먹은날 밤에 자위대원들을 자위대사무실에 모이게 하고 일장연설을 했다.

《현상도를 잡아내지 못하고있는것이 전적으로 나에게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오. 그러나 동무들도 근무를 제대로 서지 못했다는걸 알아야 하겠소. 왜 그런가? 동네에서 내가 조영란이네 집 뒤문으로 빠져나가는걸 봤다는 추문이 돌고있는데 이건 뭘 말해주는가? 내나 동무들이 새벽에 조영란이네 집 뒤문으로 빠져나간놈을 놓쳤다는걸 말해준단말이요. 우리가 졸고있었단말이요···》

그는 조금도 기가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분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