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5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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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물이 노래하듯 정겨운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마을앞 시내가에 현덕칠령감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늦도록 논고를 보고 들어오다가 잠시 다리쉼을 하는참이였다.

벼들이 논에 꽉 들어차게 잘된 들에 훈훈하고 향긋한 바람이 밀려왔다. 개구리들의 합창이 맹렬했고 숲속에서 풀벌레들이 찌르륵찌르륵 우는 늦은 여름의 아름다운 밤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현덕칠의 얼굴은 침울한가.

벼들이 넘쳐나게 잘된 논들은 다 조합논들이였다. 현덕칠이네 논에도 벼가 잘되였지만 조합의 논에 따라갈수 없었다. 협동조합의 일이 날마다 잘 펴이고 농사도 올해 참 잘되였다. 그렇다고 그것이 현덕칠이에게 배가 아픈 일이거나 무슨 손해를 주어 침울해지는것은 아니였다.

자기의 개인경리와 조합농사를 대비해보았기때문이였다. 그가 조합의 농사일이 능률적이라는것을 처음 깨닫게 된것은 봄갈이에 조합원 박인수가 하루 일천평 또는 그 이상을 갈아 사람들을 놀라게 한 사실에서였다.

박인수가 국가로부터 대부받은 돈으로 사온 황소들을 잘 먹여가지고 봄갈이를 시작한 첫날, 저녁길에서 만난 현덕칠이에게 천평 잘되게 갈았다고 기쁨에 넘쳐 말했을 때 현령감은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몸이 허한탓도 있겠지만 근면하지 못해 동네에서 제일 못사는 축에 드는 박인수였다. 현덕칠은 그를 사람값에 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인수의 맏아들과 순옥이사이가 어떻다 하는 말이 돌자 순옥이를 불러다 앉혀놓고 다시 그런 소문이 돌았다가는 다리갱이를 분질러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었다. 둘째딸 순옥이를 박인수의 며느리로 준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현덕칠이 이렇듯 박인수를 얕보고있기때문에 그가 밭을 간다고 아침에 소를 몰고 나섰을적에 저게 밭을 갈면 얼마를 갈랴, 황소가 좋으니 8백평쯤 갈면 많이 갈테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천평이라··· 아마 첫날이니까 죽을내기로 해댔겠지, 래일쯤엔 기운이 빠질걸.

현덕칠은 여유작작하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다음날 박인수가 천백평을 갈았다고 했을 때 그는 심중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몸이 약하고 일할줄 모르는 박인수가 천백평을 갈다니 정말 모를 일이였다.

혹시 작업반장을 하는 병만이가 평수를 잘못 잰것이 아닌가 생각되여 현덕칠은 인수에게서 누구네밭 어디를 갈았는가고 캐묻기까지 했다. 그는 한동네사람들의 밭이나 논을 휑하니 알고있었다. 인수의 말을 듣고보니 천평을 넘으면 넘었지 못될것 같지 않았다.

(안되겠군! 이러다간 현덕칠이 망신하겠군. 《쥐포수》가 다 천백을 가는데 현덕칠이 천오백을 못하면 망신이야. 조합원들이 몰켜다니며 뭘 제대루 일을 치르겠는가고 생각했는데 인수가 일하는걸 보니 안되겠군. 내가 손가락질을 받겠는걸.)

소를 잘먹이고 잡도리를 단단히 한 현덕칠은 이튿날 새벽에 밭으로 나가 거의 쉬지 않고 땅을 갈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체 박인수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해서 견딜수 없었다. 그래 로친네가 날라온 점심식사를 한 뒤 담배를 입에 물고 봉화재 왼쪽의 등성이밭에서 일하는 박인수를 찾아갔다.

박인수는 점심전인지 혹은 점심후인지 어떻든 쉬지 않고 밭을 갈고있었다. 현덕칠한테는 인수가 마치 보탑에 매달려 소한테 이끌리고있는것처럼 보이였다.

현덕칠은 한동안 박인수가 일하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그의 입에서 《아하!》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갔다. 그는 오랜 농사군만이 제꺽 보고 느낄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실에 부닥쳤던것이다.

박인수가 갈고있는 조합원들의 밭들은 죽- 잇닿아있었는데 이제는 네밭내밭 하는 경계선이 필요없으니까 이전의 경계선이던 밭최뚝을 헐어버려서 그 경계선자리에서 소를 돌려세움이 없이 저멀리까지 계속 땅을 갈면서 나갈수 있었다. 이것은 밭갈이에서 큰 리득이다! 밭을 합치기전의 개인농일 때는 (즉 지금의 현덕칠의 경우는) 좁은 자기의 포전안에서만 돌아야 하니까 농민은 《외나, 외나!》 또는 《마라, 마라!》하고 웨치며 소를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자주 돌려세우고 보습을 자주 들어옮겨야 한다. 하루종일 밭을 가느라면 이렇게 소를 돌려세우고 보습을 들어옮기는 일이 대단한 시간과 힘을 빼앗아갈것은 뻔하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현덕칠이 네번이나 다섯번 돌아설 때 박인수는 한번쯤 돌아설것이다.

(아하! 이래서···)

현덕칠이 깊은 생각에 잠겨 돌아섰다. 땅을 합치니 조합일이 능률이 나게 생겨먹었다. 이날 현덕칠은 일천사백평을 갈아제꼈지만 기분이 상쾌하지 못했다.

그런데 밭을 합친 유리한점은 거기에만 있지 않았다. 현덕칠이는 마을로 들어오는 언덕인 달고개라는데에 밭을 좀 가지고있었는데 그곳의 땅은 사질양토였다. 이런데는 담배나 남새를 심어야 잘된다. 그러나 논밭면적이 제한된 현덕칠이는 수수나 조를 심어 알곡을 생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수확이 낮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어떤가! 토지들을 합쳤으니까 제한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달고개의 능보네 밭자리에 수익성 높은 담배와 남새를 심어 다수확을 냈다. 수수나 조가 잘되는 다른 밭에 심던 남새를 여기다 심고 그곳에 수수와 조를 심었으니 총적으로 알곡생산면적은 줄지 않으면서도 적지적작을 하여 수확고를 높인것이다. 작물배치를 합리적으로 할수 있는 이 유리성이 두번째로 현덕칠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세번째로, 옥금이 그러는데 조합에서는 논밭의 올망졸망한 300여필지를 정리하여 60필지로 만들었는데 여기서 즉 경계선이던 두렁을 없앤데서 1천이백평의 경지를 얻어냈다.

집단로동은 개인농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큼직큼직한 일들을 해제끼여 알곡생산량을 늘이고 정당 소출을 높였다. 옥금관리위원장의 지도밑에 조합원들은 2만여평의 밭을 논으로 풀었고 휴한지 8천평을 개답하여 농경지로 만들었다. 이런 큰일을 개인농이야 상상이나 할수 있는가. 국가의 방조가 또한 대단했다. 국가는 협동조합에 부림소, 종곡, 비료, 전동기, 자금 등을 우선 대주었다.

결국 조합농사는 개인농들에 비하여 훨씬 잘 되였고 이제 탈곡을 하면 조합에는 쌀이 차고넘칠것이다.··· 숱한 사람들이 몰켜다니며 제대로 일하겠는가, 건달군들은 주머니에 두손을 찌르고 구경이나 할것이고 고지식하고 근실한 사람들만이 뼈빠지게 일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몸이 허하고 일할줄 모른다고 하던 박인수가 어떻게 봄과 여름내 일했는가 하는것은 온 동네가 다 아는 일이다. 참말로 달라진것중에서도 첫째가는것은 《쥐포수》 박인수의 인품이 오른것이다. 현덕칠이는 세상의 변천앞에 당황해지며 아무말도 못했다. 그것도 화가 나는 일이다. 협동로동은 확실히 위력을 나타내고있다. 박인수가 값이 오른것도 그 위력이 뒤받침해주고있기때문이 아니겠는가···

담배를 다 태우고 삽을 들고 움쭉 일어서는데 당촌으로 통하는 행길로 누군가 휘적휘적 걸어오는것이 희미하게 보이였다. 등이 구붓한 그 사람이 기침을 했다.

(리당위원장이군.)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저쪽에서 《누구시오?》하고 묻는다.

《리당위원장인가?》

현덕칠이 맞받아 물음으로 대답했다.

《아, 현령감이구만. 여적 논에 있었소?》

《들어가는 길이요.》

《거 마을에 다 와서야 길동무가 생겼군.》

두사람은 마을로 들어가는 행길을 걸었다.

《리당위원장은 어디 갔다오는 길이요?》

현덕칠이 물었다. 기골이 장대한 그는 강명우에 비기면 장사같았다.

《당촌에 갔댔소. 거기서 협동조합을 뭇는 모임이 있어서 갔댔지요. 오늘루 우리 증원리 6개부락에 조합이 다 조직됐소. 벼가을이나 끝내구 조직들을 하라구 말렸는데 어디 말들을 듣소? 홰불농업협동조합의 농사가 잘되는걸 보구 다른 부락에서 빈농민들이 빨리 저들 부락에서두 조직해서 벼가을부터 협동하자구 들구일어나는바람에 어쩔수 없었지요.》

《···》

현덕칠이는 할 말이 없어 묵묵히 걷기만 하는데 속이 답답해났다. 그는 조합의 집단경리가 힘을 내고있다는것을 느끼고있었으나 아직 가입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하지 않고있었다. 생각을 했다해도 한해농사를 마무리짓고 가을이나 래년초에 가서 가입하는것이 옳을것이라고 보고있었다.

그러나 개인농으로 남아있는 많은 농가들은 가을이나 래년봄까지 참아내지 못하고 관리위원회에 찾아와서 조합가입을 신청하였다.

어느날 관리위원회로 광춘령감을 비롯한 여섯명의 개인농들이 옥금이를 찾아왔다. 광춘이는 전쟁시기 청천강다리를 폭격하러 왔던 미제놈비행기의 기총소사에 소를 잃은후 령락되여 힘겹게 살아온 령세농민이였다.

《관리위원장.》하고 일행을 대표하여 그가 말했다.

《우리를 조합에 받아주었으면 해서 찾아왔네. 가입을 신청하는거네.》

함께 온 빈농민들중의 한 과부가 잇달아 말했다.

《듣자니까 가입을 신청하는 빈농들이 많아서 조합의 문을 닫았다고 하던데 우리까지 받아주우.》

옥금이는 웃었다.

《광춘아바이, 숙희아주머니! 조합에서는 모든 가입신청자들을 다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오늘 가입을 신청한 여섯세대를 곧 조합원총회에서 토의하겠으니 그렇게 알고 돌아가십시오.》

옥금이는 시원스럽게 대답해주었다.

빈농들은 희색이 만면하여 관리위원회를 나섰다. 이 여섯집까지 조합에 받아들이면 조합은 총 농호수가 45호로 된다. 조직당시의 18호에 비하면 실로 2.5배의 장성이다!

옥금이는 조합이 커짐에 따라 자기의 키도 커지고 힘도 세지고 속도 넓어지는듯 한 감을 느꼈다.

한편 현덕칠령감은 어째서인지 자기가 남들이 다 가는 길에서 밀려나고있는듯 한 감을 더 짙게 느끼는것이였다.

변천하는 생활의 흐름은 세차게 굽이쳤다.

11월말, 마침내 홰불농업협동조합에서 한해농사를 총화짓는 분배날이 왔다. 민주선전실 앞마당에 쌀가마니들을 산처럼 쌓아놓았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초상화를 높이 모셨다. 오색기들을 사방에 세우고 종이테프를 늘이고 종이기발과 꽃초롱을 매달았다. 가을바람에 기발들이 펄럭거리고 종이테프와 종이기발들, 색종이들이 날리였다. 민청원들이 밤을 새여 꾸민 결산분배장이다.

분배장에는 아침부터 조합원들이 모여들어 춤판을 벌리였다. 군에서 선전일군들과 기동선전대가 나와서 북을 치고 꽹과리를 울리고 장새납을 불었다. 기동선전대원들과 함께 옷들을 깨끗하게 차려입은 조합원들이 춤을 추었다. 탄실이는 원래 놀음판에 빠지는 법이 없는 녀자라 제일 흥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숨이 가빠서 할딱거리였다. 주목되는것은 개인농들도 수태 구경나왔는데 그들은 어디까지나 구경군이여서 춤판에 끼이지 않고 그저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기만 하는것이였다. 하긴 조합의 명절이지 그들의 명절은 아니였던것이다. 구경하기 싫은것을 리에서 빠짐없이 다 구경가야 한다고 해서 억지로 나온 개인농도 없지 않았다. 현덕철이는 리에서 그런 지시가 있다 해도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인데 자존심이 강한 그였건만 어째서인지 마음이 뒤숭숭하고 북소리와 장새납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는 분배장으로 자꾸 쏠리는것을 도저히 피할길이 없었다. 마누라와 딸, 며느리는 벌써 분배장으로 구경가고 자기 혼자 집에 남아서 담배를 피워대며 갇힌 황소처럼 뜨락을 맴돌았는데 엄습하는 고독감이 그를 못견디게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도 어험어험 어색한 기침을 해가며 민주선전실 앞마당에 나타났다.

《덕칠령감두 마침내 나왔군.》

《마을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실농군인데 옥금이한테 졌으니까 조합분배장에 얼굴을 내밀기 쑥스러웠겠지. 그래두 온걸 보니 령감이 옹졸하지는 않아.》

이런 말을 현덕칠은 못들은척 하였다. 어떤 사람이 춤판을 벌린 떠들썩한 군중을 향해 결산분배모임을 시작한다고 알리였다. 북소리가 멎고 춤도 멎었다. 춤군들이 한옆으로 밀려나고 조합원들이 마당앞을 차지하였다.

민주선전실에서 먼저 관리위원장 최옥금이가 나왔다. 어린 사슴의 뿔같던 쌍태머리가 자라서 등뒤에 늘어졌다. 처녀의 뒤로 여러 사람들이 나오는데 처녀는 큰 간부인듯 한 체격이 웅장한 사람을 주석단으로 안내하였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그가 김일부수상이라고 말했다. 그의 뒤로 군당위원장, 리인민위원장, 리당위원장, 작업반장 병만이 등이 알곡가마니를 높이 쌓은곳에 설치한 주석단에 나와섰다.

조합원들은 내각부수상이 결산분배에 참가했으니 오늘의 모임이 보통모임은 아니라고, 정부에서 중시하는 모임이라고 긍지에 넘쳐있었다.

먼저 옥금이가 결산보고를 하였다. 현덕칠은 협동조합조직과 그것이 달성한 성과의 정치적의의에 대한 보고내용보다는 수자들에 기본흥미를 가지고 들었다. 알곡생산과 현금수입이 개인농시기에 비하여 1.5배의 장성을 가져왔으며 전체 생산량과 수입금에서 6프로의 공동축적금과 2프로의 사회문화폰드, 명년도 영농용 종곡과 비료교역용 곡물 등을 남겨놓고 전량을 로력일과 토지 및 역축 몫에 의하여 조합원들에게 분배하는데 분배몫을 보면 로력자당 평균 알곡이 1톤 200키로, 현금이 5,700원이라는 내용을 들은 현덕칠이는 빡빡 깎은 머리가 저절로 숙어졌다.

검사위원회 위원장의 검열보고(결산내용의 정확성을 인정하는)에 이어 분배가 시작되였다.

최옥금이는 먼저 오능보를 불렀다. 동네에서는 능보의 성이 오가라는것을 아는 사람이 적었다. 현능보로 알거나 그저 능보능보하고 불러서 성이 무엇이였던지 잊어버렸었다. 현덕칠이도 《오능보조합원》하고 옥금이가 이름을 부르고 오능보가 《예.》하는 대답과 함께 주석단으로 나가는것을 보며 그를 오능보라 하니까 어쩐지 어색하게 들리였다. 하지만 그건 뭐 별것이 아니다. 옥금이가 《알곡 115가마니와 현금 4만 1천원을 분배합니다.》하고 말했을 때 현덕칠은 자기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115가마니면 근 6톤이다. 알곡 6톤을 오능보가 벌었다. 능보네가 로력자가 좀 많기는 하지만 이건 정말 상상을 초월하지 않는가. 관리위원장은 분배몫이 많은 세대부터 불러내여 현금이 든 큼직한 봉투와 낟알량을 적은 쪽지를 내주는데 로력자가 한명이나 다름 없는 박인수의 이름을 불렀을 때 현덕칠이는 바짝 긴장하였다.

《박인수조합원에게는 알곡 50가마니와 현금 1만 2천원을 분배하여 드립니다.》

옥금이가 이렇게 말하자 현덕칠이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것 같이 핑 돌았다. 50가마니이면 2.5톤의 알곡이다. 개인농때의 3배나 되는 알곡이다···

이어 감격의 눈물에 젖은 조합원들의 토론들이 있었다. 먼저 박인수가 토론했다.

《···이게 뉘덕입니까? 이 박인수가 일을 많이 해서 번것입니까? 아니웨다. 나두 젊었을적에는 힘이 있었구 한다하는 농군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힘껏 일했지만 지주놈의 종살이를 벗어날수 없었구 우리 큰아들밑으루 태여났던 계집애는 굶어서 죽고말았습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수상님덕입니다. 수상님께서 이 가난한 박인수가 잘 살아갈 길을 틔여주시구 소, 종곡, 현금, 식량··· 뭐나 필요하고 부족하면 보내주시여 농사가 잘되게 보살펴주시구 이 가난한 박인수를 조합원으루 되게 해주신덕에 내가 오늘은 부자가 된것입니다.》

관리위원장의 보고에서도 언급된 내용이였으나 들을수록 감동이 커지는 이야기였다.

현덕칠이는 아까 누가 말한것처럼 자기가 《옥금이한테 졌다.》는것을 인정하였다. 아니 벌써 전쟁시기 옥금이가 품앗이를 무어 다수확을 냈을 때 옥금이가 자기보다 낫다고 인정한 현덕칠이였다. 그런데 농업협동조합은 품앗이에 대비도 되지 않는 풍성한 황금의 열매를 가져다주었다. 박인수가 토론을 끝내며 《영명하신 김일성수상님 만세!》를 목메여 부를 때 현덕칠이도 두손을 버쩍 들고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분배모임이 끝나자 다시 북소리 울리고 춤판이 벌어지는가운데 조합원들이 분배받은 량곡들을 소달구지로 실어나르기 시작하였다. 그곳에 더 머물러있을수 없게 된 현덕칠이는 순옥이가 찾는것을 뿌리치고 혼자서 집으로 걸어갔다. 순옥이와 같이 가느라면 그게 가만 있지 않을것은 뻔했다.

《아버지, 보라요! 후회되지요? 내 뭐라 했어요?》하고 이제와서는 오직 괴로움으로밖에 되지 않는 말을 할것이다. 그는 혼자 있고싶었다. 혼자서 깊은 생각에 잠기고싶었다.

집에 돌아간 현덕칠이는 대통을 물고 밤늦도록 웃방에 앉아있었다. 저녁도 대충 먹었다.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다.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누구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만 저녁밥을 먹으며 순옥이가 밖에서 듣고온 말을 전할 때에 그 말만은 귀담아들었다. 그것은 낮에 김일부수상이 모범적인 조합원들을 만나 담화하는 과정에 들려준 이야기로서 그날로 현촌의 집집에 전설처럼 퍼졌었다. 그 내용인즉 일군들과 설계가들이 김일성동지를 좋은 청사에 모시려는 인민들의 념원을 담아 정부청사를 선참으로 훌륭하게 지으려했는데 그이께서는 그 정부 청사건설자금을 전부 령세농민들과 협동조합에 돌려주도록 하시고 자신께서는 지금도 검소한 집무실에서 일을 보신다는것이였다. 순옥이는 협동조합에서 대부를 받아 소 세마리를 산 자금도 그렇게 마련된것이라고 자기의 생각을 덧붙여 말했다.

《수상님께서?!···》

현덕칠은 마음속 깊은곳에 층층하게 고이는 감동을 어떻게 달리 표현할수 없어 다시 담배를 태우며 묵묵히 앉아있었다. 전쟁이 끝난지 언제인데 아직도 수령님께서 검소한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계신다니 이 웬말인가. 정부청사건설자금을 전부 농민들에게 돌려주시였으니 언제가야 수령님을 좋은 집무실에 모실수 있겠는가.

(수상님! 우리 농민들이 제 구실들을 못해서···)

그는 머리를 푹 숙이였다.

순옥이는 아버지가 밤새 기침을 하며 부시럭대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로부터 열흘쯤 지나 평양에 있는 조인철이는 현촌에서 보내온 처제 순옥이의 편지를 받았다.

《···아저씨에게 한가지 중요한 소식을 전합니다. 홰불농업협동조합에서 결산분배가 있은지 닷새가 지난 이른 아침이였어요.》하고 순옥이는 썼다.

《아버지가 탈곡을 하면서 따로 골라두었던 종곡들을 헛간에서 꺼내여 달구지에다 싣더니 어머니에게 풍뎅이와 두루마기를 내다달래서 어디 가시려는지 행장을 차리시더군요. 통 말이 없으니까 우린 그저 지켜볼뿐이였어요. 이런 때 물어봐야 소용이 없다는걸 잘 아니까요. 행장을 다 차린 아버지는 그때에야 어머니, 형님, 나를 돌아보며 〈왜들 서있기만 하냐? 너희들두 다 차려입구 같이 가자.〉하시겠지요. 우리 녀자들이 그 분부를 따라 차려들 입었어요. 아버지가 고삐로 소잔등을 가볍게 때리자 우린 아버지와 천천히 굴러가는 소달구지를 따라 옥금이네 집에 이르렀어요. 옥금이네 집이자 협동조합관리위원회지요. 대문앞에 달구지를 세운 아버지가 〈관리위원장 있소?〉 부르니까 옥금이가 문을 열었어요. 〈나 좀 보세.〉 옥금이가 나오자 아버지는 대문밖에 서있는 우리 녀자들과 소달구지를 가리키며 말씀하더군요, 〈종곡과 소, 달구지를 가지고 우리집 로력자 네명이 다 왔네. 조합에 받아주겠나?〉 옥금이는 너무 좋아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심하셨군요!〉하는데 아버지는 〈결심했소.〉하시며 무거운 짐을 던것처럼 후- 한숨을 길게 뽑았어요. 나는 막 달려가서 아버지에게 매달리였어요···》

조인철은 이 기쁜 사연을 어느 기회에 김일에게 말하였다. 김일은 입을 벙글써하며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새해잡혀 1월 어느날 김일성동지께서 조인철이를 만나주시였다.

조인철이는 새해잡혀 더 젊어진듯 해보이고 얼굴이 별로 환해진것같았다.

《조인철동무, 장인이 협동조합에 가입했다지?》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조인철은 좋은일을 하고는 그것을 자랑하지 못해하는 어린 아이들의 마음이 된듯 자랑스럽게 대답을 드리였다.

《예, 홰불농업협동조합에서 첫 결산분배가 있은후 인차 가족들을 다 데리고 소달구지에 종곡까지 싣고서 관리위원장 옥금동무를 찾아가 가입신청을 하였다고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롱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러니까 이제는 동무의 옹친 마음이 풀렸겠소? 처가집의 협동화는 끝나지 않았소?》

《모든것이 수상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되였습니다.》

조인철은 후더워지는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협동화의 첫 시기에 부부장인 저자신이 직접 나섰지만 장인을 움직일수 없었습니다. 경험적단계의 승리적인 결속만이 장인을 움직일수 있었습니다. 수상동지께서 말씀하신 실물교육이 은을 낸것입니다. 〈첫수확〉을 잘 거둔 력사적과정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 고개를 끄덕이시여 그의 말을 긍정해주시였다.

《동무의 장인인 전형적인 중농이 령세농민들로 조직된 협동조합에 가입한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협동화운동의 1년간을 총화해볼수 있겠소.》

물론 1년간의 사업성과를 말해주는 통계수자가 있었다. 조인철부서에서 보고한데 의하면 년초에 모두 900여개의 협동조합이 존재하였는데 년말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9, 599개로, 그에 망라된 농가호수는 31만 6, 800호로서 총 농가호수의 32프로를 망라하는 비약적인 장성을 이룩하였다. 또한 첫해 농사에서 조합들에서는 개인농시기에 비하여 알곡수확고를 10~50프로 장성시켰으며 호당 분배몫에서도 알곡은 20~50프로, 현금은 2~7배의 장성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자들을 생동한 현실로 느끼도록 하여주는것은 지난 1년간에 겪은 가지가지 이야기들과 수령님께서 잘 알고계시거나 직접 만나보신 농민들의 모습이였다.

수령님께서 지난 가을에 중화협동조합에 들리시였을 때 다시 만나보시였던 강춘보로인의 이야기 또한 감동적이였다.

《강춘보로인의 이야기도 뜻이 깊소.》하고 수령님께서 조인철이에게 말씀하시였다.

《작년에 우리는 중화협동조합에 세번 나가보았소. 봄에 나갔을 때에는 어떤 농민들은 고개를 숙이고 우리를 바라보더니 여름에 농사가 잘 될 때에 나갔을적에는 희색이 만면하였고 가을에 나가보니 농민들은 너무 기뻐서 입이 귀밑까지 이를 지경이였소. 그래서 강춘보로인은 말하기를 〈수상님, 저는 구한국시대부터 일제시대 그리고 공화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농사를 해왔지만 금년처럼 농사가 잘되기는 처음입니다.〉라고 했소. 사실 강로인이 말한바와 같이 이 지방에서는 협동조합을 했기때문에 금년에 농사가 참 잘되였소.》

조인철은 이 말씀속에 경험적단계의 총화가 집약되여있다고 생각했다.

수령님께서는 강춘보로인의 손녀도 만나보았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날 그이께서 타신 승용차가 마을을 향하여 달려가고있는데 학교가던 아이들이 마주오다가 반기며 인사들을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시였다.

그런데 한 처녀애가 우뚝 멈추어서더니 자기앞을 지나치는 승용차를 뒤따라 달려오기 시작했다.

수령님께서는 무슨 사연이 있을듯싶어 차를 세우고 나가시였다. 처녀애는 가까이에 이르러 숨이 차서 두손으로 가슴을 만지면서도 다시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데 오목눈이 낯익었다.

《네가 혹시?···》

《녜, 제가 옥녀입니다.》

대답을 드리는 두볼이 붉게 익은 소녀의 두눈에 금시 반가움의 눈물이 핑 고이였다.

《오, 네가 옥녀로구나!》

수령님께서 소녀의 두손을 잡아주시고 품에 안아주시였다. 그사이 옥녀는 얼굴과 팔다리에 살이 오르고 살결이 맑아졌으며 무엇보다도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하던 그 애처로운 표정이 없어지고 그대신 생기가 넘치고있었다.

요새 뭘 먹느냐, 옷은 어디서 샀느냐, 집은 지었느냐 등등 그이의 물으심에 소녀는 흰쌀밥을 먹으며 옷은 상점에서 해주었고 집은 조합에서 지어주었다고 대답하였다.

《조합에서 다 해줍니다. 저는 부러운것이 없습니다. 저를 〈조합의 딸〉이라고 부릅니다.》하고 옥녀는 말씀드리였다.

《조합의 딸!》

그저 스쳐들어버릴수 없는 말이였다. 이 말속에 사회주의가 무엇인가 하는 대답이 집약되여있다고 할수 있었다. 거기서 사회주의적개조가 힘있게 벌어지고있는 우리 농촌의 새로운 정신적풍모가 느껴지고있었다.

《〈조합의 딸〉이란 말이지, 아주 좋다. 이제는 마음이 좀 놓인다.》하고 그이께서 생글거리는 옥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저으기 흥분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듯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시며 조인철이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어 경험적단계를 총화해볼 때 결함과 부족점도 있었다고 하시며 조직사업면과 경제활동면 두 측면에서의 결함을 분석하신 다음 중농들이 광범히 인입됨으로써 대중적단계에 들어선 농업협동화운동의 금후과업에 언급하시였다. 한마디로 말하여 그것은 조직된 협동경리를 조직경제적으로 공고히 하면서 그 운동을 계속 전진시켜나가는것이였다.

그이의 말씀에 접하면서 조인철은 협동화운동이 큰걸음을 내디디였지만 그 승리적결속에 이르자면 힘겨운 걸음을 계속해야 하며 실제상 어려움과 난관은 이제부터 더 많아질것이라는 예상이 들었다.

협동조합들이 우후죽순처럼 조직되고있는 상황에 물질기술적인 안받침이 따라가지 못하고있는것이 벌써 눈에 뜨이게 알렸으며 조합원들의 사상의식도 뒤떨어져있었다. 한편 반동들의 책동이 더 심해졌다. 여기서 현촌마을은 례외로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