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4


 
 

제 5 장

4

 

이 분주한 봄날에 옥금이는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들에 나가있다가 점심식사하러 들어오니 부기원이 편지가 왔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참 렴치도 없지. 무엇때문에 편지질인가?》

옥금이가 편지를 받아보니 보내는 사람의 주소와 이름이 없는 편지였다. 그러나 처녀는 정종원의 글씨를 대뜸 알아보았다. 처녀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으나 시치미를 떼고 부기원에게 물었다.

《보내는 사람의 주소와 이름이 없구만요. 그런데 누구보고 욕을 해요?》

쉰살이 넘은 부기원은 머리털이 얼마 없는 번대머리에 등이 저으기 굽은 사람인데 본인의 말에 의하면 일제때 평양에 가서 기생들을 끼고 놀아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수 없어도 농사짓기가 싫어서 고향을 떠나 금전판으로 돌아다니며 한때 돈을 좀 벌어가지고 건달을 부린적이 있은것만은 분명했다. 그가 돈을 다 부려먹고 알거지가 되여 고향에 나타나 다시 호미를 쥐고 농사일에 붙은것을 보고 동네사람들이 저마끔 놀려대자 본인은 뒤머리를 긁으며 히죽히죽 웃으면서 《세상을 다 돌아다녀봐도 제 녀편네만 한게 없구 제 고향만 한데가 없다니까.》하구 자기의 건달행각을 총화지었다. 이런 인물이니 옥금이가 모르는척 하는것에 넘어가겠는가.

《관리위원장은 글씨를 보구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관리위원장의 어머니는 알아보더군.》

그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옥금이는 얼굴이 더 빨개지며 《어머니가 이 편지를 보았어요?》하고 다급히 물었다.

《아무리 제 딸에게 온 편지래두 내용은 신성불가침이니까 겉봉투만 보았지요. 보구는 과수원집아들녀석이 동네에서 사라졌으니 이제는 됐다 했는데 아직 옥금이를 못 잊어 편지질이야? 하며 당장 찢어버리겠다구 하는걸 겨우 뺏아냈소.》

부기원은 이렇게 말하면서 옥금이의 동정을 살폈다.

종원으로부터 뜻밖의 편지를 받은 옥금이는 마음속에 애틋하게 간직된 그리움과 동정이 끓어오르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어머니가 노여워할만도 하지.》

부기원은 옥금이가 말없이 편지를 쥐고만 있는것을 보고 말을 이었다.

《과수원집과 이 집은 수화상극인데 그 종원이가 철이 없다해야 할지 렴치가 없다 해야 할지 무엇때문에 편지질을 하는가 말이요. 그 애비가 이 집과 화해하자고 너절하게 광주리에 사과를 담아보내더니 아들녀석은 편지질이군. 종원이와 관리위원장이 고중을 같이 다닌건 다 알아요. 그렇지만 그건 다 어렸을적 일이 아니요? 이제야 철이 들었으면 지난일을 싹 잊고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생각할수록 정의춘령감의 행실이 고약하고 괘씸한데 종원이는···》

부기원은 말을 계속할수 없었다.

《부기원아저씨 그만해요!》하고 울분을 터치는듯 한 옥금의 목소리에 흠칫하며 입을 다물고 처녀를 쳐다보았다.

《종원동무는 왜 욕해요? 그 동무가 무슨 잘못이 있어요? 부기원아저씨는 미제놈들과 직접 싸워봤어요? 몸에 부상을 당해봤어요?》

처녀는 총알처럼 내쏘았다.

《아니, 난 저··· 허 이것 참··· 오해하는구만.》

옥금이가 더 다른 말없이 사무실을 나가버리자 그는 대머리를 쓸어만지며 열적게 웃었다.

《내가 실수를 했군. 관리위원장이 종원이를 못 잊어 하는구만!···》

옥금이는 점심식사를 하는둥마는둥 하였다 어머니도 딸도 서로 편지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아마 어머니는 딸이 부기원에게 맵짜게 한말을 아래방에서 들은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꼭 싫은 소리를 했을것이다. 그 싫은 소리를 부기원이 대신해준셈이고 옥금이가 언짢아하니 입을 다물고있는것이였다.

옥금이는 오후에 들로 다시 나가는 길에 리당위원장을 찾아갔다.

《종원동무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그런가? 그래 뭐라고 썼던가?》

《모르겠습니다. 보십시오.》

옥금이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편지를 그대로 내밀었다.

《옥금이에게 온 편지를 내가 왜 보겠나? 그런데 왜 아직 개봉하지 않았어?》

《리당위원장아저씨랑 같이 보려구요.》

별로 새침해진 옥금이를 의아한 눈으로 살펴보며 강명우는 편지봉투를 뜯었다. 그는 읽고나서 옥금이에게 주면서 말했다.

《나하구는 하등 상관이 없는 편지로군.》

옥금이는 흰 종이우에 적혀있는 전보문과도 같은 짧은 편지내용을 단숨에 읽었다.

《옥금동무, 나를 용서하오. 그리고 나를 잊어주기를 바라오.

안녕히- 종원으로부터.》

편지속지를 쥔 손이 가늘게 떨리였다.

강명우는 담배를 피우며 말이 없었다.

《이건 무슨 뜻일가요?》

이윽하여 옥금이 나직이 물었다.

《뭐 말그대루 잊어달라는거겠지. 다른게 더 있겠나?》

《그런데 편지는 왜 했는가 말입니다. 소식이 영 없어지면 자연히 잊혀질게 아니예요?》

처녀는 몹시 흥분되여있었다.

《내 말하지 않았나? 종원이는 고향을 잊지두 버리지두 못한다구··· 그러니 잊을수 없어 편지를 했단말이요. 옥금이를 잊지 못해서!》

옥금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그런 동무는 필요없어요. 아저씨는 그가 가있는곳을 알지요?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지요? 어서 주소를 대주세요··· 주소를 안대주어도 좋아요. 내가 꼭 그를 찾아내겠어요. 찾아내서 말하겠습니다. 〈좋아요. 동무 소원대로 동무를 잊어버리겠어요. 다시는 편지도 하지 말고 일생 고향땅에 발도 들여놓지 말아요. 고향을 버리고간 사람이 과연 어떻게 새 출발을 하는가 보겠어요.〉 이렇게 말해주겠습니다.》

강명우는 깊은 한숨을 쉬고나서 말했다.

《그 사람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 옥금이가 짐작한대로 나는 그가 가있는데를 알고있다. 당조직이야 모를수 없지. 성천군으로 갔는데 거기에 전쟁시기 고지에서 전사한 자기 분대 대원의 집이 있다더구나. 그 대원을 대신해서 아들구실을 하며 일하겠다고 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해서 비밀을 지키고있었는데 내 옥금이한테만 알려준다. 하지만 찾아갈 필요가 없어!···》

《왜요? 난 그 동무를 그대로 두지 않겠어요.》

《이 철부지야, 종원이는 너때문에··· 너를 위해서 종적을 감춘거야. 일전에도 내 다 말하지 않았나.》

옥금이는 무슨 방망이 같은것으로 머리를 얻어맞은것처럼 한순간 아찔해졌다.

《나때문에요?···》

《그래!》

강명우는 돌아서서 괴로운 기침을 계속했다. 등이 더 휘여보이였다.

(나때문에? 그건 무슨 뜻일가?)

리당사무실을 나와 들로 걸어가며 처녀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나를 위해서?··· 그러니 리당위원장아저씨에게는 무엇인가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했구나··· 자기의 딱하고 괴로운 처지때문이 아니라 나때문이라면, 그래서 잊어달라고 했다면?···)

이 순간 처녀는 불시에 심장이 활랑거리고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나를 생각해서 피했구나. 아 그렇다면 종원동무, 그래서 멀리 가버렸다면 그것은 잘못된거야. 종원동무는 떳떳하게 살수 있고 또 살아야 할 동무인데!··· 동무는 잘못 생각했어요!)

옥금이는 부드러운 봄바람이 부는 들길에 우두커니 서서 이렇게 종원이를 원망하였다. 종원의 아버지 정의춘이 군내무서에 불리워갔다가 죄가 없는것으로 판명되여 집으로 돌아왔기때문에 그러한 심정은 더욱 절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