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2


 
 

제 5 장

2

 

김일의 부름을 받은 조인철은 그가 무엇때문에 자기를 찾는지 짐작할수 있었다. 김일은 이미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아니고 내각부수상이였다. 3월전원회의에서는 부수상으로 임명됨과 관련하여 그를 부위원장직에서 해임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내각으로 나가기전에 조인철이와 작별하려고 불렀던것이다.

김일은 긴말을 하지 않았다.

《동무가 나한테서 욕도 많이 먹었지.》하며 그는 서운해하였다. 반년이 넘도록 지내는 과정에 그 뚝한 표정뒤에 푸수하고 따뜻한 인정미가 넘치고있다는것을 몸으로 느낀 조인철이는 눈굽이 뜨거워났다.

《그것도 욕이라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되라고 일깨움을 좀 주신건데··· 사실 제가 자기 구실을 못해서 부수상동지의 속을 타게 하고 수상동지께 심려를 끼쳐드린것을 생각하면 아픈매를 더 맞았어야 했을것입니다. 저는 아직 장독을 더 축내야 합니다.》

조인철이 이렇게 말하자 김일의 두툼한 입술이 저으기 벙글써해지며 미소가 어리였다. 그에게서 보기드문 미소였다. 그는 언젠가 조인철이에게 장독을 몇개 더 축내야 할것 같다고 말한적이 있었는데 조인철이가 그것을 잊지 않고 상기하였던것이다. 그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 소리없는 미소가 수십마디의 말을 대신했다.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는데.》하고 그는 뜨적뜨적 말했다.

《협동화가 출발을 했으니까 사실상 제일 힘든 고비는 넘겼다고 볼수 있을거요. 그러나 〈첫수확〉이라는 높은 언덕이 눈앞에 있소. 협동화와 농업생산은 점차 일치되여가고있소. 그렇기때문에 내가 내각으로 나가면 오히려 동무네와 더 깊은 련관속에 있게 되오.》

김일은 이렇게 간단히 설명했지만 그 말속에는 많은 뜻이 들어있었다.

《동무가 나를 많이 도와주어야 하겠소.》

김일이 계속하였다.

《수상동지께서 나한테 나라의 농업을 떠맡겨주셨는데 어깨가 무겁소.》

사실 그는 어깨가 무거웠다. 그가 조인철이에게 많이 도와달라고 한것은 인사말이 아니였다.

김일의 간곡하고 진정이 넘치는 부탁의 말은 조인철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었다. 조인철의 책임도 그만큼 커졌다고 말할수 있었다.

김일은 조인철이 독자적으로 자기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나가리라고 믿었다. 지난 2월 평남도내 농업협동조합관리위원장들의 중화협동조합에서의 협의회를 잘 준비하여 성과를 거두는데 기여한것으로 하여 조인철이는 김일성동지의 평가를 받는 영광을 지니였다. 김일이 치하의 말씀을 조인철이에게 직접 전달했었다. 이것은 조인철의 성장을 보여주는 한 실례에 불과하였다. 조인철이에게 협동화운동의 첫 시작점에서 발생한 좌경적오유에 대하여 책임을 지워 엄중경고의 책벌을 적용했지만 영농기전으로 경험적인 협동경리들의 조직을 성과적으로 결속한데는 각지 농민들의 열의와 집행단위의 일군들, 당조직들의 역할과 함께 조인철부서사람들의 높은 책임성과 창발성이 크게 작용했다. 이에 대하여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일을 통하여 조인철이에게 평가의 말씀을 주시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것은 올해 경험적단계의 《첫수확》을 잘 거두는것이다. 그전에는 누구도 만족할수 없고 기뻐할수 없으며 평가와 치하를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것이다. 김일이 그것을 《높은 언덕》이라고 비유한것이 우연치 않았다.

저녁에 조인철은 밤중으로 출장을 떠나야 했으므로 집에 좀 일찌기 들어갔다. 순실이가 병원에서 퇴원한후 그는 중앙당합숙에서 나와 참으로 오래간만에 자기 집에서 안해가 지어주는 밥을 먹게 되였고 가정의 온기를 받을수 있었다. 순실이는 한달가량 쉬고 원래 다니던 국가계획위원회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래 집에서 놀면서 언제나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기에 지친 얼굴로 반기는것외에 별로 할 말이 없던 안해가 이제는 밤에 남편과 직장이야기며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신이 나서 하게 되였고 이전날의 생기를 회복하였다. 그들 부부는 외가에 있는 아들을 데려오기로 토론하고 순실이가 현촌에 편지를 띄웠었다.

《아버지-》

조인철이 방문을 여는 순간에 기다리던 아들이 달려와서 품에 안겼다. 처제 순옥이도 웃으며 앉아있던 구들에서 일어섰다.

《너 왔니? 이모가 너를 데리고 왔구나. 수고했다. 그래 부모님들은 별고없이 잘 계시나?》

조인철은 대성이를 안은채 순옥이에게 물었다.

《잘 있어요. 무슨 별고가 있겠어요. 아저씨는 협동화를 하느라 바삐 지내지만 우리 집은 그게 상관없으니까 바쁠것도 없어요.》

순옥이는 롱담삼아 행패삼아 토들거리였다.

조인철은 껄껄 웃으며 대성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들과 한동안 이야기를 하였다.

《오늘은 어떻게 된 일이예요. 대성이가 온걸 아시고 일찌기 들어오신건 아니겠지요?》

안해가 부엌에서 음식상을 차리며 물었다. 피뜩 내다보니 안해는 꽃을 수놓은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부뚜막앞에서 분주스럽게 돌아가는데 아들을 만난 기쁨에 아련한 얼굴이 밝게 빛나고있었다.

조인철은 《글쎄···》하고 애매한 대답을 했다. 오늘밤차로 출장을 가야 하는데 오래 떨어져있던 아들이 집에 왔다. 그러니 그것은 더없이 기쁘고 즐거웠지만 한편 매우 난처한 일이였다. 몇년만에 세식구가 한자리에 모였는가. 그런데 출장을 떠나기 위해서 일찌기 들어왔다고 말하면 모두 얼마나 실망하랴.

그는 안해와 아들, 처제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즐거움에 떠있는 그들의 기분을 맞추어주자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식사도중에 처제가 대성이를 일쿼세워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대성이는 첫순간에 아버이의 목에 매달리긴 했으나 오래 헤여져있은탓에 감정과 호흡이 잘 통하지 않고 아직 서먹서먹한 상태여서 아버지를 흘끔흘끔 보며 주저했다.

《어서 불러라.》

아버지가 미소를 짓고 아들을 고무해주었다. 그러자 아들은 온몸을 들썩거리며 혈기차게 노래를 시작했다. 아마 처제 순옥이가 의식적으로 배워주고 훈련시켰는지 대성이는 오또기의 우스운 모양을 몸짓으로 해보이며 노래불렀다.

 

책상우에 오또기 우습고나야

검은 눈은 성내여 뒤룩거리고

배는 불룩 내민 꼴 우습고나야

 

오래간만에 집안에 웃음소리가 꽉 차넘치였다. 어찌도 근심걱정모르고 크게들 웃어댔는지 창문이 드르릉거리기까지 하였다. 조인철이도 박수를 쳐주며 웃었다. 그러나 그의 눈길은 벽시계쪽으로 자꾸 돌아갔다. 부서의 지도원이 평양역에 나가서 차표를 사가지고 그를 데리러올 시간이 거의 되여가고있었다.

불안스러워하는 남편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있던 순실이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요? 왜 시계를 자꾸 쳐다봐요?》

《이것참 미안하오.》

조인철은 아무리 아들이 반갑고 가정의 행복이 귀중해도 더 큰것을 위하여 계획대로 출장을 떠나야 하겠다는 결심을 확고히 하며 말했다.

《순옥이에게도 안됐다. 대성아, 아버지를 욕해다구, 난 시간이 없구나.》

모두 영문을 몰라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난 지금 정거장으로 나가야 한다. 평북도에 출장떠나야 해.》

순옥이가 대뜸 《래일 떠나면 안됩니까? 회의하러 가시나요?》 하고 물었다.

회의가 아니라면 꼭 오늘 떠나야 할 필요가 무엇인가 라는 뜻이였다.

《회의가는건 아니다. 순옥이는 아까 나한테 협동화가 자기네 집에는 상관없다고 삐뚤어진 소리를 하며 아버지를 나무람했지? 아버지같은 농민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는 일이 억지로는 안돼.》

그는 그것때문에 김일성동지로부터 직접 지적을 받았던 일을 상기하였다.

《아버지를 비난할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이 잘 운영되여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하고 그는 계속하여 가족들을 설복하였다.

《나에게는 할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반면에 시간은 계속 모자란다. 내 평북도에 갔다와서 대성이랑 어머니랑 같이서 대동강구경 나가자. 어떻니, 대성아?》

《아버지, 기차타고 멀리 가요?》

대성이가 물었다.

《멀리 간다.》

《오늘밤 안들어와요?》

《안들어온다.》

《그럼 우린 또 아버지를 찾아가야 해요?》

《아니다. 내가 기차타고 갔다가 다시 온다. 너는 좀 기다리면 돼.》

《얼마나 기다리면 돼요?》

《한 열흘···》

대성이는 열흘이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속으로 따져보느라고 입술을 오물거리였다.

순실이는 묵묵히 출장준비를 서두르고있었다.

밖에서 조인철이를 찾는 승용차의 경적이 울리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