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1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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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에서 돌아온 옥금이는 민주선전실에 조합원들을 모아놓고 중화협동조합에 가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은 소식을 비롯하여 조직된 협동경리의 강화발전을 위한 과업들을 알려주면서 올해에 꼭 풍년을 마련하여 기대에 보답하자고 호소하였다. 그리고 관리위원들과 몇밤을 두고 앞으로 할일을 의논하였다.

그런속에서 옥금이는 정종원이가 자기 집을 뛰쳐나와 마을에서 아주 자취를 감추어버렸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들었다. 읍에서 잠간 만났을적에 나는 삶을 새롭게 개척하려 한다고 하며 서둘러 헤여졌던 그 결심이 결국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행동으로 표현되였는가? 《과수원집》에서 나온것은 백번 잘했다고 인정되지만 그런데 그가 대체 어디로 갔단말인가? 그의 행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리당위원장이야 알고있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서 맞춤한 기회에 눈을 내리깔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더니 강명우는 《글쎄말이다. 나보고는 집에 그냥 박혀있자니 동네사람들을 대하기가 멋적고 일을 하면 자기 집의 재부를 보태는것으로 되고 놀자니 당원으로서 죄스러우니 집에서 뛰쳐나가 친척집에 거처하겠다고 말하더구만. 그런데 탈가에 그치지 않고 그후 누구도 모르는 먼곳에 가서 생활을 새롭게 개척할 결심이라면서 당원이동수속을 해가지고 떠나갔다. 어쩌겠니? 나도 차라리 그편이 낫겠다고 보았다. 종원이가 갔다고 해도 결코 고향은 잊지도, 버리지도 않을게다. 그리고 어느곳에 가있든 당원답게 생활할거야. 난 그것만은 믿는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는 그이상 더 말하지 않았다.

옥금이는 리당위원장처럼 자기도 종원이가 어디가서든 미제놈과 싸워이긴 병사답게 당원으로서 떳떳하게 생활할것이며 고향을 잊지 않으리라고 믿었으며 그가 집을 나오고 마을을 떠난 행동에 대해서도 충분히 리해되였다. 하지만 처녀는 종원이가 그리웠으며 그에 대한 동정은 애틋한 추억의 상처로 남게 되였다.

생활은 여울목에서 소란스럽게 구을고 돌에 부딪쳐 부서지기도 하지만 바다로 향한 흐름을 한순간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는 강물처럼 크고작은 사건들로 끊임없이 빚어지고 충만되면서 전진해가고있었다. 개인적인 운명들이 아무리 아프고 아물지 못하는 상처로 남는다 해도 전체적인 생활의 줄기찬 흐름은 계속되였다.

옥금이의 생활에 슬픈 일과 함께 기쁜 일도 찾아들었으니 하루는 안경을 쓴 농민은행지점 지배인이 현촌에 나타나 최옥금관리위원장을 찾았다.

《은행지점 지배인동지가 어떻게?···》

옥금이는 얼마전에 자기에게 커다란 실망과 아픔을 주었던 지배인이였으나 찾아온 손님을 차겁게 대하지는 않았다. 대회에 참가하고 큰 감격과 새로운 결의를 안고 내려온 옥금에게 있어서 지배인과 있었던 충돌은 스스로 해결되여버린 보잘것 없는 일로 느껴졌다. 하긴 지배인이 스스로 옥금이를 찾아왔다는 그 자체가 사태가 어떻게 발전하고있는가 하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아닌게아니라 지배인은 풀이 죽었고 여윈 얼굴에 턱이 더 뾰족해져가지고 옥금이에게 깊이 사죄를 하는것이였다.

《관리위원장동무, 이거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소. 내가 되게 말을 들었소. 정책에 암둔했고 인민들이 번 돈을 쥐고 인민우에 앉아서 큰소리를 치며 관료주의를 부렸소. 내 옥금동무에게 깊이 사죄를 하오.》

사실 따져놓고보면 그는 기계적으로 일한 사람이였다. 대부를 주어야 할 대상에 협동조합이라는것이 지시문에 명기되여있지 않았던것이다. 물론 정책에 암둔했고 순수 은행실무에만 충실했다.

《조합에서 요구하는대로 자금을 대부해주겠소. 내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결심한것이 아니라 엄격한 지시가 내려왔소.》

그는 입술을 푸들푸들 떨며 말했다. 옥금이 짐작컨대 평남도당에서 직접 군당이나 은행지점에 강한 추궁을 했을수 있었다. 지배인이 사색이 된것을 보아도 그 추궁이 얼마나 혹독했겠는가 하는것을 알수 있었다.

《지배인동지의 개인적인 감정은 다릅니까?》하고 웃으며 롱담까지 할 정도로 옥금이의 마음은 확 풀리였다.

《아, 그럴리가 있겠소. 무슨 말을 그렇게!···》

지배인의 얼굴과 어깨가 더 좁아지고 안경속의 눈이 허둥거리였다.

이렇게 하여 홰불농업협동조합과 군안의 다른 조합들은 많은 액수의 자금을 대부받을수 있었다.

최옥금조합에서는 대부받은 돈으로 우선 황소 두마리와 암소 한마리를 샀다. 개인한테서 산것은 비쌌지만 국가에서 팔아주는 소값은 눅었다. 박인수가 조합원 한사람을 데리고 며칠간 품을 놓고 두루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소들을 사왔다.

그런데 박인수가 소를 사가지고 마을에 나타나자 그와 소들을 둘러싼 조합원들이 롱담같기도 하고 진담같기도 한 말들을 하는바람에 박인수는 여간 실망하지 않았다.

《소는 괜찮은걸루 사왔구만.》

《저 〈쥐포수〉박인수는 일은 할줄 몰라두 리속에는 밝다네. 전에 어떤 건달이 박인수를 허술하게 보구 낡은 두루마기를 비싸게 팔아먹으려다가 꺼꾸로 박인수한테 물려서 아주 헐값으로 떼우구 내뺀적이 있네. 박인수가 독을 쓰면 무섭네.》

《그렇지만 소간수는 잘못했어. 아마 제 소가 아니돼서 그랬겠지.》

《그렇지 않아요. 박인수아저씨가 품앗이때두 그렇구 조합이 된 다음에두 그 소를 얼마나 끔찍하게 돌봤다구요. 제 소가 아니돼서 더 소중하게 다루었어요.》

《그러니까 의식이 우리보다는 상당히 앞섰군그래. 아니야, 난 박인수동무한테 소를 맡기는건 반대요. 다른 사람한테 맡겨야 해.》

《글쎄 인수아주버니가 소건사를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그건 모르겠는데요. 기왕에 소가 독약을 먹구 죽은 외양간에 또 소를 들여요?》

《왜 죽은 소귀신이 붙어있을가봐?》

《하여튼 께름직해요.》

《관리위원장, 인수동무한테 소맡기는건 결정적으루 고려합시다.》

《자- 자, 그만들 지껄여대우. 인수동무가 우는걸 못보우?》

세포위원장이 이렇게 말해서야 입담이 멎었다.

박인수는 정말 울고있었다. 소고삐를 쥐고 머리를 푹 숙이고 조합원들의 포위속에 들어있는 체소한 박인수는 조합소가 독살당한것이 꼭 자기 책임인것만 같아 늘 죄스러운 감정을 금치 못하고 사는데 지금 조합원들이 소간수를 잘못해서 죽였다고 비난을 하니 속이 쓰리고 아팠던것이다. 그렇게도 이 박인수를 몰라줄수 있는가. 이 박인수는 개인소가 아니라 조합소이기때문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온갖 정성을 다 쏟아부었었다. 자기는 해먹고싶어도 해먹지 않고 콩을 몽땅 소한테 먹였었다. 이 박인수는 집단의 귀중함을 품앗이때 뼈속깊이 체험했다. 고마운 동네사람들이 품을 모아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소도 없고 녀편네도 죽고 남들처럼 육신이 든든치 못해 일도 제끼지 못하는 이 박인수가 어떻게 농사를 지을수 있었겠는가. 굶어죽었을것이다. 그래서 옥금이가 소를 이 박인수한테 맡겼을적에 속으로 울었고 집단의 믿음에 보답해야겠다는 불같은 결심을 품었었다. 그런데 뭐 제소가 아니돼서 죽였다구? 이건 너무하구나 놀려주는거라 해두 너무해··· 이렇게 머리를 숙이고 서서 섭섭함을 금치 못하느라니 저절로 눈물이 솟았던것이다. 더구나 소들을 여기까지 끌고오는동안 그것들한테 정이 푹 들어서 떨어져서는 살것 같지 못했다. 큰눈이 순하고 어느모로 보아도 믿음직한 소였다. 다른 짐승하고는 달라서 소는 똥냄새도 구수한듯 전혀 더러운감이 없다. 일 잘하고 성미 순하고 구수한 냄새가 풍기고 주인을 잘 섬기는 소와 같은 짐승이 또 있으랴.

외양간이 비여있어서 늘 허전하고 쓸쓸했었는데 이제는 주인이 들어 코김을 내불며 여물을 먹어대고 꼬리를 휘휘 휘두르군 할터이니 텅 빈것 같던 집에 식솔이 늘고 생활의 훈향이 풍기리라. 이러한 기쁨에 취해서 소들을 끌고왔었다. 그런데 그것을, 그 기쁨과 생활을 누리지 못하도록 조합원들이 《결정적으로 고려합시다.》하고 말하지 않는가.

그는 조합세포위원장이 조합원들을 말리는바람에 더 설음이 북받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까지 했다. 그는 코를 훌쩍거리며 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소매끝으로 눈물을 훔치였다.

《아, 정말 우는구만! 에익, 정말 쥐포수는 쥐포수로다. 이 사람, 롱을 한걸세.》

《허 그것참, 속통이 그렇게두 좁다구야. 롱담두 못하겠군. 왜 엉엉 소리치며 발버둥질까지 하면서 울지 그래?》

《너무 고지식해요.》

《거 눈물을 훔치지 말게. 얼굴의 때가 벗겨지면서 얼룩이 지는구만.》

《하하하···》

《인수아주버닌 불쌍해요. 요전날 보니까 밤에 몰래 빨래를 하더군요. 집에 계집애라두 있었으면 좋겠는데 남아있다는게 코흘리개 사내애니까 아버지를 어떻게 돕겠어요. 군대나간 큰 아들이 돌아와야 할텐데···》

《그러기 내인네들이 좀 도와주라구요. 같은 조합원이 아니요?》

《말을 안한들! 이웃에 사는 차돌이네 어머니가 늘 도와주어요.》

《탄실아주머니가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구만! 남편없이 혼자 사니까 빨래감도 적겠다. 또···》

《그만하지 못해요. 이 곰보서방.》

옥금이는 허리를 굽히며 웃어댔다. 처녀는 조합원들에게 앞으로 우사를 짓고 소들을 공동으로 관리하려 하는데 그전까지는 박인수아저씨를 비롯하여 몇집에서 맡아 관리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지금같아서는 공동사육을 해도 박인수아저씨를 내놓고는 그 일을 책임지고 할수 있는 적임자가 또 있을것 같지 않다고 말하였다.

박인수는 쥐상이 환해지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자기가 맡아 관리하게 된 두마리의 황소를 외양간으로 끌고가서 긁어주고 씻어주고 배불리 먹여주느라고 해가 지는줄도 밤이 깊어가는줄도 몰랐다. 늦어서야 잠자리에 든 인수는 잠을 청하려 했으나 웬일인지 눈이 초롱초롱해지기만 하여 담배를 피워물고 초불을 켜들고서 다시 외양간으로 갔다. 낮에 실컷 보고 주물러주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가까이에서 보겠지만 또 이처럼 보고싶었으며 어느놈이 독약봉지를 들고 담을 넘어올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때문이였다. 이제는 소가 한마리인것이 아니라 두마리 즉 한짝이다. 이게 금덩어리 같은 조합재산인데 자기를 믿고 다시 맡겼다.

그는 구부정하고서 외양간안을 들여다보다가 뜨락밖으로 나가 담장을 몇바퀴 돌고 들어왔다. 그는 마치 보초를 서는것처럼 소들의 머리맡에 앉아서 새김질소리와 코숨소리를 들으며 구수한 소냄새에 취하여 시간가는줄 몰랐다. 그러다가 저도모르게 끄덕끄덕 졸았는데 온몸에 스며드는 추위에 몸이 쫄아들지경에 이르러 마침 닭이 홰를 치는바람에 후닥닥 일어섰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가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여물을 끓이기 시작하였다.

밭갈이가 시작되였을 때 박인수가 먹인 황소들은 털에 기름이 번들거리고 힘이 뻗치여 공연히 뿔질들을 하며 영각을 하였다. 마을에서 제일 잘 먹이여 기운이 왕성하기로 소문난 현덕칠이네 소와 겨룰만 했다. 행길에서 두 집 황소가 우연히 어기였는데 대가리들을 낮추고 뿔을 휘두르며 앞발통으로 땅을 허비면서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자네 소를 잘 먹였구만.》

빡빡 깎은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인 몸집이 우람찬 현덕칠이가 체소한 박인수를 칭찬했다. 마치 어른이 아이들의 장한 일을 칭찬하는것 같은 자세였다.

《형님네 소두 기름이 번질번질합네다.》

박인수가 치하하지 않아도 그것은 응당한 일이여서 현덕칠이는 말없이 연장을 짊어진 소잔등에 가벼운 채찍질을 하며 지나갔다.

박인수네와 현덕칠이네는 그들이 오늘 갈이를 하는 밭이 우습게도 반대쪽에 있어서 저녁에 역시 우연하게 다시 행길에서 마주쳤다.

《얼마나 갈았나?》

현덕칠이 먼저 물었다. 그것은 실지로 얼마를 갈았는지 알고싶어서가 아니라 일을 할줄 모른다고 늘 업신여기는 박인수가 밭갈이를 종일 하느라 수고했다는 뜻의 인사말이였다. 그런데 박인수의 대답은 뜻밖이였다.

《천평은 잘 되게 갈았지요.》

종일 일에 지치고 배가 고픈 표정이 력력한 얼굴이였으나 기쁨의 웃음이 넘실거리고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던 현덕칠이 눈섭을 찡그리였다. 그는 소를 세우고 《뭐 천평? 자네가? 거짓말을 말게.》하였다.

《하, 이 형님봐라. 작업반장이 방금전에 와서 평수를 확인했는데두? 조합에서는 조합원들이 매일 일한걸 그렇게 판정을 해서 점수를 매기는것이니까 그게 정확하우. 판정을 망탕하면 일을 적게 하구두 점수가 많아지는 반면에 많이 하구두 적어지게 되니까 판정을 심중하게 하지요. 헌데 형님은 얼마나 갈았소? 개인농은 자체루 판정할테니까 그것두 정확할테지요.》

현덕칠은 눈을 내리깔고 여전히 고개를 기웃거렸다.

《천평두 못간게 아니요?》하고 박인수는 좀 까불댔다.

《넨장할, 아무려면 내가 천이백평 아래루 떨어지겠나? 나는 지금 자네가 일천평을 갈았다는게 믿어지지 않아 그러는거야. 좌우간 두고보면 알테지. 이랴!》

현덕칠이는 박인수가 천평을 갈았다는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덕칠령감뿐아니라 박인수가 간 밭을 직접 판정한 작업반장 병만이도 머리를 기웃거리였다. 하지만 갈데없는 천평이였다.

좀처럼 믿을수 없는 일은 이튿날에도 계속되였다. 박인수는 놀랍게도 다음날에는 천백평을 갈았다.

《허, 〈쥐포수〉가 사람들을 놀리우는군!》하고 병만이는 혀를 내둘렀다.

대체 어떻게 되여 박인수가 한다하는 농사군인 현덕칠이를 따라갈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그간 영농물자를 해결하느라고 군으로 오르고내리며 바쁘게 지내던 옥금이는 박인수가 어떻게 일하는지 직접 밭에 가보고 고무를 해줄 목적으로 저녁녘에 일부러 그를 찾아갔다.

옥금이가 등성이밭들이 있는 작업장에 갔을적에 박인수는 날이 어두워지기전에 갈던 포전을 끝내려고 소를 몰아대며 보탑을 잡고 앞으로 나가는데 힘이 진하여 비틀거리는것이 눈에 확연하게 알릴 정도였다. 그는 금시 쓰러질것처럼 보였다.

《인수아저씨!》하고 부르며 옥금이 쫓아갔다.

인수는 뒤를 한번 돌아보더니 《관리위원장인가, 왜 그러나?》하고 여전히 밭을 갈아나가며 물었다.

《나가던 이랑이나 끝내구는 그만하세요.》

《왜 할말이 있나?》

《예.》

《그러지.》

밭최뚝에 이르러 박인수는 소를 돌려놓고 털써덕 주저앉았다. 그는 땀에 젖어있었고 숨을 거칠게 쉬는데 좁은 얼굴에 피로가 가득 실려있었다. 작은 눈이 떼군해지고 턱이 더 뾰족해졌다.

다리가 떨리면서 바지가랭이가 흔들거렸다.

《무슨 일루 왔나?》

박인수는 다가오는 옥금이를 쳐다보며 앓고난 사람처럼 기력이 빠진 가느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옥금이는 그의 옆에 앉으며 덥석 손을 잡았다. 손가락들이 푸들푸들 뛰고있었다.

《아저씨! 어쩌자고 이래요? 이렇게 힘들게 일하며 자신을 혹사하시는줄 몰랐어요? 벌써 와봤어야 할걸, 내 불찰이예요.》

《아, 관리위원장, 뭘 그러나? 내가 일에 재미나서 그러는데··· 내가 첫날 천평을 갈구는 나두 놀랐었네. 이게 어떻게 된거냐, 박인수두 하면 하는건가, 이런 생각이 들더구만. 그래 죽을둥살둥 모르구 하는데, 힘은 들어두 재미가 나!》

박인수는 땀이 나는 앞가슴을 헤치며 기분좋은듯 웃었다.

《아니예요. 이렇게 일하면 며칠 못가요, 쓰러질거예요.》

《글쎄, 하긴 지금같아서는 다리가 떨려서 일어설것 같지 않아. 하···》

《아저씨두 참! 래일은 하루 쉬든가, 다른 쉬운 일을 해야겠어요.》

《저녁을 먹구 한잠 푹 자고나면 일없어.》

박인수의 얼굴에 저녁노을이 비끼였다.

해는 봉화재 소나무숲너머 숨어버리였지만 그우에 뜬 구름에 붉은 빛을 뿌려주어 그 노을빛이 박인수의 얼굴에도 채색된것이다.

《좋구만. 관리위원장, 난 요새 사는 재미란게 이런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는 담배쌈지를 꺼내놓고 담배를 말면서 말했다. 손이 그냥 부들부들 떨며 잘 말리지 않았다.

《주세요. 내가 말아드릴게요.》

《엉, 관리위원장이?》

《왜요?》

《허··· 하긴 관리위원장이 학교다닐 때 휘파람두 잘 불구 뽈두 차군 했다더구만.》

옥금이는 소리내여 웃었다.

《아니 그것참, 담배마는 솜씨가 있는걸.》

옥금이가 침을 바를 여백만 남기고 재치있게 똘똘 만 담배를 내밀자 인수는 이렇게 감탄하며 받았다.

《내가 담배까지 피운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요?》

《원··· 돌아가신 리위원장이 담배를 무척 즐기셨지.》

종이에 침을 바르며 박인수는 효성이 극진했던 옥금이 이렇게 아버지에게 담배를 알뜰하게 말아드리였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박인수는 옥금이가 조합의 책임자였지만 다심한 딸처럼 느껴졌다.

《관리위원장, 나는 조합이 한집안같구만.》하고 박인수는 말했다.

《난 요새 일에 성수가 난다니까. 토지개혁때가 바루 지금 같았어. 죽은 녀편네하구 우리한테 차례진 땅을 만져보구 밟아보며 해저무는줄 몰랐었지. 지금이 바루 그 심정이야. 전쟁으루 녀편네가 죽구 가산이 다 날아나구 이 박인수는 홀애비에 알거지신세가 되였댔지. 동네사람들이 나를 돌봐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될번했는가. 그렇게 서로 돕구 의지하더니 협동조합이 되였구만. 수상님께서 농민들이 살아갈 길을 틔워주셨지. 소가 없으니까 이번에는 소를 사라구 돈을 대주시구··· 내가 눈에 흙이 들어간들 이 은덕을 잊겠는가. 나는 관리위원장이 수상님께서 우리 현촌을 몸소 찾아주셨을 때 소들을 잃고 고생하는 조합원들을 걱정하시며 안색을 흐리시더라는 말을 할적에 울었댔네. 그러니 저게 금같은 소가 아니겠나? 저게 보습을 끌구 씽씽 나갈 때면 저절루 노래가 나오네. 이 허약한 박인수한테두 힘이 나오더란말이야. 난 갈구 갈구 또 갈다가 밭에서 쓰러지고싶네. 소만 힘들어하지 않는다면 밤에도 땅을 갈구싶네. 전에는 내 혼자 먹구 살겠다구 일했지만 이제는 조합이 잘 살자구 일하지 않나. 그러니 관리위원장, 나를 그냥 놔두라구. 나를 말리지 말라구.》

눈물이 그렁한 박인수의 얼굴은 긍지감으로 빛나고있었다.

옥금이는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박인수의 심정이자 조합원모두의 심정이였다. 자기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위해서, 그 귀중함을 체험을 통하여 뼈속깊이 느끼였기에 조합을 위해서 기를 쓰고 일하고있는 박인수에게서 옥금이는 우리 농민들의 새로운 정신적풍모를 보게 되는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아, 바로 이거야. 협동화의 봄은 우리 조합원들의 마음속에 먼저 찾아왔구나!)

이 협동화의 봄을 마련해주시기 위하여 우리 수령님께서 얼마나 큰 로고를 기울여오시였던가!

현촌을 찾아주시였을 때도 그랬고 중화협동조합에서 있은 협의회때도 옥금이와 여러 관리위원장들에게 협동조합이 이제부터 해나가야 할 일들과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를 자상히 깨우쳐주시고 시련이 부닥치고 애로가 생기면 언제든지 편지를 하고 찾아오라고 당부하시던 수령님의 모습이 따뜻하고 포근한 어둠이 깃드는속에 우렷이 떠올라 처녀관리위원장은 격정의 파도에 땅이 흔들리는듯함을 금할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