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4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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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세농민들에게 융자적방조를 줄데 대한 내각결정이 나온후 옥금이는 읍에 있는 농민은행지점에 몇번 찾아갔었다. 지점에서는 대부를 주어야 할 대상을 장악하는중이며 현금도 내려오지 않았다고 대답하군 하였다. 그래서 기다리고있는데 소들이 독살된후에는 빨리 자금을 대부받아서 소부터 사야 하겠다는 조급증에 못견딜 지경이였다.

어떻게 되였는지 또 찾아가보아야 하지 않을가?··· 이날도 두엄을 져나르며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군당에 갔던 강명우가 그를 불러세우고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다.

《아마 네가 직접 가보는게 좋을것 같다. 농민은행지점에 가봐라. 돈이 들어왔다고 하더라. 령세농민들에게만 대부를 준다는데 조합에도 해당될거야.》

《그러면 소를 살수 있겠군요! 아저씨, 살았어요. 됐어요. 아이 좋아라!···》

옥금이는 좋아서 소녀처럼 깡충깡충 뛰였다.

《허허···》

강명우는 눈을 슴뻑이였다. 소때문에 얼마나 속을 태우고있었으면 저렇게도 기뻐하랴!

조합원들도 좋아서 환성을 올리였다.

옥금이는 조합원들의 기대어린 절절한 바래움을 받으며 읍으로 줄달음치다싶이 하였다.

그런데 은행지점에서 옥금이는 뜻밖에도 대부는 령세농민들에게만 하도록 엄격한 지시가 있었으므로 농업협동조합에는 줄수 없다는 랭혹한 대답에 부딪쳤다.

옥금이는 지체없이 은행지배인을 찾아들어갔다.

지배인은 안경속의 자그마한 눈으로 랭혹하게 옥금이의 얼굴을 더듬었다.

흥분한 옥금이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만큼 그에 대조되는 지배인의 랭기어린 얼굴은 얼음같았다. 옥금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조합원들이야말로 령세농민들중의 령세농민들입니다. 조합은 우선 령세농민들로 조직되였어요.》

《그런데 우리는 협동조합에 대부해주라는 지시를 못받았소.》

《아니 그거야 간단히 생각해도···》

《처녀동무.》

지배인이 옥금이의 말을 막았다.

《그런데 그 조합이란게 시험적으루 해보는거라지? 말하자면 해보다가 싹수가 틀리면 해산해버린다지? 그런 조합을 우리가 대체 어떻게 신용하구 대부를 하겠소? 조합이니까 대부받으려는 돈두 굉장할텐데 조합이 성공못해서 해산하면 그래 처녀 혼자서 그 엄청난 빚을 다 갚을수 있소? 어디 한번 말해보오.》

지배인은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고 조용하고 침착하게 말했다.

《엄마, 조합이 성공하지 못한다구요? 싹수가 틀리면 해산해버린다구요?》

옥금이는 지배인을 매우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그게 성공하겠는지 어쩌겠는지는 두고보아야 한다는게 일반 여론인데 그렇게 미타한 대상에 대부를 할수 없지 않겠소.》

지배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지배인동지가 그런 여론에 귀를 기울이다니, 정말 놀랍군요! 그런 여론이 돈다 해도 국가기관에서 도와주고 밀어주어 조합일이 잘되여 나가도록 하는것이 국가적립장이 아닐가요?》

《이름이 옥금이지?》

지배인이 갑자기 왕청같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연설 잘한다는 말 들었소.》

《아이참!》

《그런데 은행은 신용이 생명이요. 신용은 말로써는 담보되지 않소. 나한테는 연설이 통하지 않는다 그 말이요.》

《아니, 그렇지 않아요. 난 연설을 하는게 아닙니다.》

옥금이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중단발머리가 흐트러지며 머리카락 몇오리가 이마에 드리웠다.

《믿으세요. 두고보세요. 우리 조합은 올가을에 가서 부자가 될수 있어요. 그때 빚을 다 갚을수 있어요. 우리 조합이 계획하고있는 사업을 한번 들어보겠어요?》

옥금이는 이마에 드리운 머리카락을 쓸어올리였다. 처녀는 몹시 흥분되여있었다.

《아니, 그건 들어서 뭘하겠소. 계획이야 어디까지나 계획이지. 난 동무의 연설을 들을 시간이 없소. 난 좀 바쁘오.》

지배인이 일어섰다.

《엄마, 그렇게 피하면 어떻게 해요?》

옥금이는 책상을 돌아가 지배인의 팔을 쥐고 당겼다.

《지배인동지, 좀 앉으시지요. 내 말을 좀 들어보십시오.》

《허!》

지배인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시 앉았다.

《말하오. 그래 뭐요?》

그도 마침내 어성을 높이였다.

《우리 조합이 해보다가 싹수가 틀리면 해산할 그런 조합같습니까? 우리 홰불조합의 힘이 어떤지 제가 설명해드리겠다는데 왜 피하려 해요?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게 아닙니까?》

지배인은 안경을 벗어서 입김을 쏘인 다음 손수건으로 깐깐하게 닦았다.

《그래, 뭘 말하겠다는거요?》

안경을 쓰며 물었다.

《들어주시겠어요?》

《아니, 듣지 않아두 알수 있소. 조합의 잠재력이 큰것 같구만. 관리위원장이 이악하니 일이 잘되고 현재로두 부자나 같을테지. 에- 그러니까 더우기 조합은 이번의 대부금혜택에서 제외요.》

《네? 뭐라구요?》

그가 안경을 닦으며 어떤 계책을 짜냈는지 알만했다. 돈을 받아내기 위하여 조합의 잠재력을 설명하려드는 옥금이의 공세를 역리용한것이였다. 여우처럼 갑작수를 썼다.

《상부에서》하고 입을 벌린채 말문이 막힌 옥금이를 딱딱하게 마주보며 그는 훈시조로 말했다.

《대부금을 받을 대상들을 정확히 따져서 편향이 없게 하라는 엄격한 지시가 있었소. 전쟁시기에 잘못해서 목이 떨어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절대 그런 잘못을 범하면 안된단말이요. 은행의 규률은 엄격한거요.》

옥금이는 분기를 가까스로 누르며 침착하게 물었다.

《지배인동지에게 물어봅시다. 농업협동조합에 영농자금을 대부해주고 령세농민들인 조합원들의 식량구입자금과 주택건설자금을 대부해주는것이 정책적으로 잘못되는 일로 됩니까? 그때문에 철직될수 있다고 봅니까?》

지배인은 잠시 침묵하였다. 그는 랭랭하게 말했다.

《다시 말하는데 상부에서 조합에 대부하라는 지시가 없소.》

시끄러워진 그는 이번에는 상부에다가 밀어버렸다.

《그래서 부림소를 사야 할 필요성이 절박한 우리 조합에 대부를 주지 못하겠다는겁니까? 제생각에 협동조합에 우선 대부해야 옳을것 같은데요?》

옥금이는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분명 은행지점에서 하는 처사가 잘못된것인데 왜 물러서겠는가 하는 배심이였다.

지배인은 벌떡 일어서며 드디여 화를 터뜨리였다.

《여보, 처녀동무, 내가 처녀동무 생각대루 일하기를 원하는가, 응? 처녀가 이자리에 앉으면 그래 찾아오는 사람들의 요구대로 돈을 척척 내주게 될것 같은가. 은행은 자기의 원칙과 규률이 있단말이야. 그리구 방금 자기 입으루 조합의 힘이 강하다구 말하지 않았어?》

옥금이는 이악하긴 해도 모질지 못한 성격이였다. 상대방이 성을 내거나 우악스럽게 나오면 어쩔줄 모른다. 지금도 그는 당황해서 지배인을 그저 쳐다보기만 하였다. 지배인은 누런줄을 드리워 주머니에 넣고다니는 회중시계를 꺼내보고나서 쌀쌀하게 말했다.

《나는 어디 가야 하는데···》

옥금이는 무의식적으로 한걸음 다가서며 애원하였다.

《반동놈들이 조합의 소를 세마리나 독살했어요. 이제 봄갈이를 소없이 어떻게 합니까. 도와주세요!》

지배인은 눈살을 찌프리였다.

《조합재산을 제것처럼 관리하지 못했구만. 그러니 벌써 싹수가 틀린게 아니요?》

이렇게 말하는 지배인은 심장이 없는 사람같았다. 그는 반동놈들에게 소들이 독살된 참사를 당한 처녀관리위원장의 애절한 호소에도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원쑤들에 대한 적개심이나 피해입은 농민들에 대한 동정도 없었다.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구실을 대고 저렇게 말하면 또 이렇게 구실을 대면서 기어이 조합에 대부를 주지 않으려는 이 사람의 속심은 뭔가.)

옥금이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정도 없고 의분도 없는 돌같은 이 사람과 더 이야기를 해보았댔자 소용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옥금이는 물러서고말았다.

은행지점을 나오는 옥금이는 기대가 컸던 그만큼 무거운 실망감에 휩싸였다. 그러니 이제는 어떻게 하나. 돈이 어디 있어서 소를 사겠는가. 소없이 농사를 어떻게 짓겠는가.

소살 돈을 가지러 간 관리위원장을 목마르게 기다리고있을 조합원들을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조합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할가. 농민들의 어두워지는 얼굴들이 떠올라 옥금이는 발걸음을 허둥거리였다. 결국 관리위원장인 내 잘못이다. 은행지점 지배인이 조합재산을 제것처럼 관리하지 못했다고 한 말에서 반동놈들에 대한 증오와 피해를 입은 조합에 대한 손톱만큼한 동정도 느낄수 없었지만 다른 한편 일리가 있는 비난이기도 한것이다.

더워졌다 추웠졌다 하는 올해 2월의 날씨가 다시 변덕을 부려 쌀쌀한 바람이 불어치는 흐린 하늘아래의 들길을 걸어 마을로 돌아오는 옥금이의 발걸음은 허전하기 그지 없었다.

관리위원회에 들어가니 은행지점에 돈을 대부받으러 간 관리위원장을 기다리는 몇사람들이 모여앉아있다가 반색을 하며 맞아들이였다.

《갔던 일은 잘되였나?》

세포위원장령감이 추운데서 더운 방으로 들어오는 얼굴이 사과알처럼 빨갛게 단 옥금이를 쳐다보며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여 성급히 물었다.

양털수건을 벗으며 옥금이가 대답하였다.

《잘 안됐어요.》

《잘 안되다니?》

《협동조합에는 대부를 못한답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자위대장 장칠복이가 언제 와있었는지 시커먼 눈섭을 치켜올리며 소리쳤다.

《협동조합에 우선 대부해야지. 이건 꺼꾸루구만?》

그는 옥금이의 상세한 이야기를 듣다가 끝까지 참아내지 못하고 또 소리를 쳤다.

《그놈이 나쁜놈이군. 반동놈이 틀림없어!》

《좀 떠들지 말게. 아무나 그저 반동이겠군?》

세포위원장령감이 말했다.

《반동이 반동이라구 이마에 써붙이구 다니는가. 그놈이 협동조합이 성공못한다 어쩐다 하는게 벌써 의심스럽단말이야.》

《글쎄 나두 지배인을 좋다 하지는 않네. 하지만 반동이라구 단정하기는 아직 일러.》

《아닐세. 그놈을 잡아넣어야 해.》

둘이 떠들어대는 격한 소리를 들으며 처녀는 나직이 한숨을 쉬였다.

옥금이가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마을에 쫙 퍼지였다. 점심시간에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그 불길한 소문이 날아다녔다.

《협동조합에는 대부를 해주지 않는다는구만. 개인농한테만 준대.》

《그건 왜?》

《지시가 그렇게 내려왔대.》

《그러면 소를 다 샀구만.》

《그러니까 국가에서두 협동조합은 미타하게 보는가?》

《어디 알겠소.》

이 집 저 집에서 쑤군거리였다. 조합원들은 맥을 탁 놓았다. 오후작업에는 소달구지에 붙은 몇사람과 탄실이, 최근택이 등 핵심적인 조합원들을 내놓고 대부분이 나오지 않았다. 개인농들은 대통을 빨면서 구경하고있었다.

《넨장할, 이건 일들을 그만두자는건가?》

작업반장 병만이가 투덜대였다.

《개인농들한테는 돈을 주는데 조합에는 돈을 안준다니까 조합에 든걸 후회하여 자빠져있는게로군.》

《이건 뭐가 잘못됐네.》

세포위원장이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겨 말했다.

《손맥이 풀리게도 됐지요.》

탄실이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옥금이가 머리를 쳐들었다.

《이렇게 합시다. 일나오지 않은 조합원들을 찾아가서 설복하고 용기를 주자요.》

이렇게 말하는 옥금이 자신도 어떻게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할지 막연했다. 그러나 그냥 앉아있을수 없었다. 나온 사람들만 가지고 일한다는것도 안될 말이다. 조합의 망신이다. 옥금이는 세포위원장과 반장과 자기가 분담하여가지고 일나오지 않은 조합원들을 찾아가보기로 하였다.

옥금이는 집에 돌아가 감기약을 가지고 우선 박인수부터 찾아갔다.

인수는 감기에 걸리여 이불을 쓰고 아래목에 누워있었다. 소들을 잃은후 앓아누운 그를 보자 리해가 되고 동정도 갔으나 정작 앓음소리를 하고있는 초췌한 꼴을 대하자 옥금이는 화를 터뜨리지 않을수 없었다. 아저씨, 이게 무슨 꼴이예요, 소가 아저씨의 불찰로 죽었어요? 누구도 아저씨를 탓하지 않는데 왜 이 모양을 하고있어요. 글쎄 감기에는 왜 걸렸나말이예요? 상심하고 고민하느라 약해졌기때문이지요. 밤새껏 빈 외양간에 앉아있었다구 하던데, 그랬으면 원쑤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분발해야지요. 안그래요? 원쑤들도 책동하고 난관이 겹쌓이는데 누워있으면 어떻게 해요, 수상님을 만나뵙던 날을 잊었어요? 전쟁때처럼 이 옥금이를 도와달라요! 힘이 되여주세요!··· 이렇게 호소하며 약을 주고 나왔다.

옥금이는 눈이 휘둥그래지며 약봉투를 보지도 않고 앓던 사람같지 않게 몸을 일으키던 박인수를 뒤에 두고 춘섭이네 집으로 씽씽 걸어가면서 자기가 너무했다는 생각으로 속이 알알했다. 하지만 믿고있는 박인수에게가 아니면 누구에게 안타까운 심정을 호소하랴. 옥금이는 자기도 나약해지려는것을 가까스로 이겨내고있었다. 옥금이가 아무리 이악한 처녀이고 아버지를 잃은 원한의 피눈물이 가슴속에 그냥 고여있다 하여도 어떻게 거듭되는 타격을 이겨낼수 있으랴!

그래도 어떻게 시련을 이겨내고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이번에는 춘섭이네 집을 찾아갔으나 옥금이를 기다리고있은것은 너무도 뜻밖의 저항이였다.

춘섭이네는 형제가 합심하고 또 이웃들과 조합에서도 도와주어 그간 살림집을 한동 짓고 따로나와 살고있었다. 아직 손질할데가 많았지만 우선 살면서 마저 완성하기로 했기때문에 집모양과 주변이 어수선했다.

박인수네 집에서 끓어올랐던 흥분을 저으기 가라앉히고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는 그 집 마당으로 들어서서 주인을 찾았다. 《춘섭아저씨 있어요?》 좀 사이를 두었다가 《네》 대답하는것은 잠내나는 녀자의 목소리였다.

옥금이는 방문을 열었다. 뜨끈한 아래목에서 그들부부가 낮잠을 자고있다가 당황해하며 어물어물 일어났다. 집안에 들어가니 불을 많이 때서 후끈후끈했다. 추운날 이런 집안에 앉아있으면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을것이고 바깥일하기는 더욱 싫을것이며 늘어지게 낮잠잘 생각이 나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웬만해서는 낮잠을 자지 않는다.

《따뜻한 구들에 누웠다가 미처 일어나지 못했군요?》하고 옥금이는 좋게 말했다.

《일을 시작했어요.》

《오후에는 좀 쉬려고 했소.》하고 춘섭이는 하품을 하며 대답하였다.

《쉬다니요? 무슨 일때문에요?》

춘섭이가 너무 태연하게 말하기때문에 옥금이는 오히려 당황해지기까지 하였다.

《일은 무슨 일. 아, 관리위원장!》

춘섭이가 이마를 찌프리며 말했다.

《사실 우리 조합원들이 너무 힘들게 일한다구. 그래 내가 일전에두 한나절만 일하자구 제기했던거요. 오늘처럼 춥구 으시시한 날에야 좀 쉬여야 하지 않겠소? 어디 개인농들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던가?》

《아저씨는 우리 조합원들이 추운 날에도 왜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가 하는것을 몰라서 그래요? 조합을 뭇던 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요?》

《하여튼 너무 몰아대지 말라구요.》

춘섭이는 뒤잔등을 썩썩 긁었다.

《조합농사자 제집농사인데 여기에 무슨 몰아대구 말구 할게 있습니까? 우린 스스로 조합에 들지 않았어요?》

옥금이는 춘섭이가 조합에 가입하면서 언제부터 조합덕을 볼수 있는가고 묻던 일이 생각났다. 그는 조합과 자기자신을 동일시하는것 같지 않았다. 조합의 집단로동에서 어떤 부담이나 구속감을 느끼고있는것 같았다.

《하여튼 우린 오후에 좀 쉬겠소. 자각적인 조직이니까 마음대루 해두 되겠지?》

옥금이는 어처구니가 없어 춘섭을 빤히 건너다보기만 하였다.

《그렇다면··· 다 그렇게 제 생각대로 한다면··· 조합이 어떻게 되겠어요?》

옥금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지 않아두 조합이 견디여내지 못할것이라는 말이 돈다구. 사실 소가 세마리씩이나 죽었는데 나머지 두마리가 마저 도살당하지 않는다구 장담할수 있소? 게다가 은행에서는 돈을 안주지··· 관리위원장은 아직 젊구 세상풍파를 겪어보지 않아서 그저 쉽게만 생각하지. 뒤에서들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오. 제혼자 열성부린다구 일이 되는가. 조합원들의 말도 들으라구.》

춘섭이는 오히려 옥금이를 훈시하고있었다. 그러니 내혼자 애쓰며 조합원들은 뒤에서 딴소리를 하는가. 조합원들을 다 자기처럼 믿었으며 그들이 모두 자기를 지지한다고 생각하고있는 옥금이였다. 뒤소리가 있으리라고는 더욱 생각지 않았다. 옥금이는 머리가 아찔한 한순간을 겨우 넘기였다.

옥금이는 기가 꺾이여 춘섭이네 집을 나왔다. 그 어떤 배신을 당한듯 가슴이 쓰리였다.

처녀는 조합원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추위에 언 무표정한 얼굴들··· 다 무던하고 성실하고 친근하게 보이던 얼굴들이 불시에 쌀쌀하고 무뚝뚝하고 불만이 가득찬 모습으로 느껴졌다.

이날저녁에 옥금이는 우물곁을 지나다가 녀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춘섭이가 한 말이 근거없는 말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였다.

우물가에서 녀자들 몇이 물을 긷고있었는데 드레박이 부딪치는 소리, 동이에 물쏟는 소리와 함께 우물가에서 의례히 있기마련인 재잘거리는 녀인들의 잡담이 들려왔다.

《고중다니던 철부지체네가 어떻게 조합농사를 주관하겠다구?》

《그러기 사고가 나지 않나. 당촌무당이 옥금이한테 살이 꼈다고 했대.》

《옛말이 그른데 없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구.》

《그러니까 은행에서두 돈을 안주지.》

옥금이는 얼른 지나쳐버리였다. 물긷는 녀자들속에 조합원이 있는것 같지는 않았으며 또 어떤 녀자들인지 목소리를 죽이고 쉬쉬하며 말해서 알수 없었다. 알고싶지도 않았다. 그것을 알아서는 무엇하랴. 공연히 감정만 더 상할뿐이다. 반동놈들이 소를 죽인후 퍼뜨린 요언일수 있고 일이 터졌으니까 입이 헤픈 녀자들이 주책없이 말을 옮기는것일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동네에서 말이 돌아가고있으며 옥금이자신도 직접 듣기까지 하였다. 춘섭이는 훈시까지 하려들었다.

옥금이는 늘 다니던 길이건만 돌부리에 걸채여 몇번 넘어질듯 하면서 가까스로 집으로 갔다. 이날밤에는 하루 작업총화도 시들하게 했고 저녁밥도 먹는둥마는둥하였다.

옥금이는 몸을 뒤채기며 장차 조합을 어떻게 운영해나가겠는가, 자기에게 그럴 능력이 정말 있는가 하는 심각한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느라 잠을 설치였다.

어느덧 새날이 밝아 옥금이는 아침밥을 먹고 관리위원회인 웃방으로 올라가 앉았으나 어찌된 일인지 머리속이 공허해지면서 멍하니 출입문만 바라보게 되였다. 세포위원장아바이가 먼저 기침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그와 함께 리당위원장 강명우가 왔다. 강명우에게 인사를 하며 피뜩 표정을 살피니 그는 벌써 옥금이의 번잡한 심정을 다 알고있는것 같았다. 귀신같은 령감이다. 하긴 어제부터 조합일이 저조해지고 옥금이가 맥을 놓고있었으니 그것이 리당에 반영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강명우는 들어서며 《허, 관리위원장의 얼굴이 왜 어두워졌다?》하고 롱을 했다. 그러나 롱을 들어줄 정신적여유가 없는 옥금이는 파릿해진 얼굴로 멍석우에 그들과 함께 말없이 앉았다.

봄비가 내리는지 강명우와 세포위원장의 옷이 약간 젖어있었다. 작업반장 병만이가 《약비가 내리는군.》하고 중얼대며 토방우로 올라와서 방문을 열었다.

강명우가 그에게 말했다.

《반장동무, 우리 간단히 모임을 하려하니까 동무가 조합원들을 데리고 조직사업을 하오. 관리위원장동무, 반대없소?》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벌써 느끼고있는 옥금이는 다른 의견없다면서 오늘은 비가 오니 집안에서 할 일들을 조직하라고 병만이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지요.》

병만이가 문을 닫고 나갔다. 사무실안은 조용해졌다.

어찌도 조용한지 락수물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리였다.

이윽고 강명우가 물었다.

《어제는 종일 두엄지게를 졌다지?》

《예.》

옥금이의 힘없는 대답이였다.

《힘이 들테지?》

《···》

옥금이는 강명우를 외면한채로 대답을 피하였다. 세포위원장령감이 옹색해서 헛기침을 하였다.

《일이란건 성수가 나면 힘들지 않구 기분이 침침하면 가벼운 짐도 무거운 법이야.》

강명우는 담배쌈지를 꺼내놓고 담배를 마느라 부시럭대며 계속하였다.

《동네에서 말들이 돌아가더구만. 관리위원장두 좀 들었나?》

《들었어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대요.》

《그래··· 원쑤놈들이 안팎으루 공세를 취하고있어.》

그는 담배를 다 말고 종이에 침을 바르며 옥금이를 건너다보았다.

《리당위원장아저씨, 원쑤들이 공세를 취하는건 사실이예요. 그러나 동네사람들이 저를 두고 하는 말들에 진실이 담겨져있는것도 사실이 아닐가요? 정말이지 한집 농사도 아니고 18세대가 합친 조합의 큰 농사인데 나같은 어린 처녀가 감당해낼수 있을가요?》

《···》

담배연기를 피워올리며 강명우는 잠자코 있었다. 그는 옥금이의 고민을 듣고싶었다.

《품앗이를 할적에두 사실 농사물계에 밝은분들이 농사를 주관했댔어요. 이제는 조합이 아닙니까? 그래서 조합을 무을 때 관리위원장을 농사경험이 풍부하고 발언권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했는데 사람이 없다고 해서 나서긴 했지만···》

옥금이의 말속에는 우물가에서 들은 소리들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 깔려있었다. 그만큼 처녀는 그것이 비록 요언이라 해도 심각히 받아들이였다. 반동놈들이 농민은행지점에서 대부해주지 않는것을 기화로 내돌리고있는 여론에 넘어간 일부 농민들이 말을 나르고있다는것이 명백했지만 한편 자기가 나어린 처녀가 아니였다면 우물가에서와 같은 말들이 돌고있겠는가.

《정말 자신이 없나?》

강명우가 물었다.

《겁이 납니다. 만일 한해농사를 망치면··· 그래서 이제라도 다른 사람을 시켰으면 합니다.》

《그렇다?》

맑은 하늘같던 강명우의 눈에서 무엇인가 벙끗 했다.

《세포위원장은 어떻게 생각하오? 세포위원장은 그냥 해낼 자신이 있나?》

《?···》

《자신이 없겠지? 그러면 모두 그만두기요. 나도 리당위원장을 그만두겠소. 더 못하겠소. 리당위원장이라는 이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깨끗하게 손을 털고 나앉겠소!···》

《아니 그렇게까지 말할건 뭐요? 》

세포위원장령감이 볼이 부어 두덜대듯 말했다.

《왜,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사실말이지 내가 옥금이나 자네보다 나은게 뭔가? 나는 이 어린 옥금이보다 힘도 없고 속도 넓지 못하고 일할줄도 몰라. 가슴도 궁글었구.》

그는 쿨룩쿨룩 기침을 하였다.

《이래··· 하지만 내가 지금 리당조직을 대표하고있지 않는가. 그래서 회의도 지도하구 남을 가르치기도 하는거야. 우리는 그저 조합을 조직하구 농사나 짓는게 아니라 투쟁을 하고있단말이요.》

불시에 그의 목소리는 날카로와지며 쟁쟁히 울리였다.

《지금 놈들이 바라는게 뭐요? 조합을 파괴하고 옥금이를 관리위원장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자는게 아니요? 그래 애국렬사의 딸인 옥금이가 계급적원쑤들이 기대하는대로 되기를 바라는건 아니겠지. 엉?》

옥금이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삑 돌아앉으며 쿨쩍쿨쩍 울었다.

두 령감은 처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담배연기를 뽀얗게 뿜어댔다. 강명우의 기관지에서 무엇인가 끄륵끄륵 끓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자, 관리위원장, 그만하오.》

세포위원장령감이 말했다.

《에이참! 리당위원장두··· 가뜩이나 속이 타는 사람한테 그런 모진 말을 하다니···》

강명우의 얼굴에 주름살이 깊어지며 졸지에 더 늙어보이였다. 그는 꺼져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옳소··· 내가 너무 모질게 말했소. 어린 관리위원장이 우니 속이 떨리고 나도 울고싶소.》

《아니예요!》

옥금이가 홱 돌아앉으며 눈물이 얼룩진 얼굴로 다급히 웨치였다.

《옳게 말씀했어요. 내가 정말 철이···》

《옥금아, 힘들지? 예순살이 다 된 나도 어떨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덤비는데 사실 너한테 무거운 짐을 지워놓고 나도 근심뿐이다. 협동조합을 잘 이끌어나가도록 너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근심뿐이야.》

강명우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그가 늙고 힘에 겨워하지만 옥금이는 늘 그에게서 충고와 방조를 받았고 그에게 의지했었는데 지금 협동조합을 어떻게 운영하고 이끌어나가도록 옥금이를 도와야 할지 근심뿐이라고 하는 말은 어쩔수 없는 진실이였다. 강명우의 방조와 뒤받침에도 한도가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