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3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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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는 한장한장 종이를 번지시며 반동들의 책동을 종합한 자료를 읽고계시였다. 도시와 마을, 공장과 건설장, 해안지대와 산간지대, 그 어느곳을 막론하고 적들이 책동하지 않는곳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주동분자와 피동분자를 갈라서 처리하지 않고 또 《치안대》가담자들, 월남자가족들, 자수한자들을 무턱대고 의심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면 군중을 잃을수 있었다. 특히 부농에 대해서 잘 처리하지 않으면 농촌에서의 계급투쟁이 좌우경적편향을 범할수 있었다. 일부 부농들이 농업협동화를 반대하여 파괴암해책동에 가담하고있다. 이와 관련하여 부농들을 수탈하며 청산할데 대한 목소리가 강하게 울려나오고있었다. 당내에서도 부농들을 제한하며 점차 개조할데 대한 계급정책을 우경이라고 비난하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최창익이 평남도에 가서 부농과의 투쟁을 강화할데 대하여 력설했다는것을 알고계시였다. 우리 나라 농촌의 구체적현실로부터 쏘련과는 달리 부농문제를 취급할데 대한 계급정책을 세웠지만 생활은 복잡하며 실천상에서는 난문제들이 있기마련이다. 그렇기때문에 부농들을 철저하게 소탕하여야 한다는 최창익의 역설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을수 있고 그런속에서 애매한 숙청이나 체포가 있을수 있다. 이것은 계급정책에 혼란을 가져다줄것이며 농업협동화운동에도 저해를 줄수 있었다. 계급정책과 로선이 아무리 옳다해도 그것을 집행하는 일군들에 따라 의도적으로 외곡집행되거나 또는 무의식적으로 잘못 집행될수 있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종합된 자료를 보시며 농업협동화운동에서 첨예하게 제기되고있는 부농계급에 대한 정책을 장차 어떻게 원만하고도 정확히 집행할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집착하시였다.

자료에서 구체적인 내용도 그이의 주의를 끄는것이 있었다. 현촌에서 조합의 소 3마리가 독살되였는바 이것은 부농들의 책동이였다는 간단한 자료였는데 《현촌》이라는 마을이름이 눈에 걸리였다.

(그러니 최옥금이 조직한 조합에서?···)

그이께서는 눈길을 드시였다. 창문밖에서는 때이른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고있었다. 올해는 봄철기가 앞당겨지려는 모양이였다. 그이의 눈앞에는 비를 축축히 맞으며 어깨를 떨구고 서있는것 같은 옥금이의 모습이 피뜩 스쳐지나갔다.

송수화기를 드시고 당중앙위원회 조직담당 부위원장을 찾으시였다.

《내가 방금 자료를 다 보았는데 정치위원회를 언제 할수 있겠습니까?》

예정대로 밤 8시에 시작하려 한다는 대답이 왔다. 정치위원회에서는 계급적원쑤들과 반동들의 파괴암해책동에 대처하여 내무기관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게 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몇가지 두드러지게 강조해야 할 문제들을 말씀하시고 수화기를 내려놓으시였다.

집무탁우에는 문건들이 아직도 몇건 더 그이의 비준을 기다리고있었다. 그이께서 이틀동안 황해도와 평양시의 여러 단위들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시는 사이에 쌓인 문건들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사리원시와 어지돈관개건설예정지를 돌아보시면서 3개년계획기간에 공사가 끝나게 될 어지돈관개의 물이 사리원시내중심을 운하를 파고 통과하여 어떻게 긴등벌로 흘러가게 하겠는가 하는 구상을 펼쳐보이시였다. 또한 서흥호 언제자리를 잡아주시고 이어 마동세멘트공장을 현지지도하시였으며 평양으로 들어오시여 방직공장과 곡산공장복구건설장을 찾아주시였다.

3개년인민경제계획의 첫시작으로 되는 올해(1954년)는 정초부터 무척 분망하였다. 2월 15일부터는 전국다수확농민열성자대회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 대회에 제기할 보고서초안도 수령님의 집무탁우에 놓여있었다. 그것은 오늘 아침에 그이께서 이미 읽으시였다. 농업담당 부수상이 대회에서 하게 되는 이 보고서초안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이번 농민대회는 전시농업을 총화하고 전후 농촌경리의 복구발전을 위하여 나서는 과업들을 토의하게 된다. 그런데 보고문에서는 농업생산의 실무적문제들만을 취급했을뿐 농업협동화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있었다. 그러므로 이번 대회의 성격을 옳게 인식시켜 줄 필요가 제기되고있다.

올해 농사차비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전에 농업협동조합들을 경험적으로 조직하는 사업을 일단락짓기 위하여 중앙당농민부 조인철부서에서는 눈코뜰새 없는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있다. 한것은 한해농사의 시작부터 가을걷이까지 협동경리를 일관시켜 운영해야 그 우월성이 명백히 그리고 충분히 나타날수 있기때문이였다. 개인경리로 논밭갈이나 씨붙임을 한 다음에 중도에서 협동경리로 넘어가면 여러가지 페단이 있을수 있었다. 이로부터 매 군에서 몇개씩 협동조합들을 조직하는것은 2월중에 결속을 보아야 했던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해마다 1월에 하던 농민열성자대회를 이해에는 2월로 미루었다. 대회에 새로 조직한 협동조합 관리위원장들을 참가시키기 위해서였다. 관리위원장들은 거의다 다수확농민들이였다. 그러므로 대회에서는 경험적으로 조직한 협동경리들을 강화발전시키는 문제를 중요하게 제기하며 올해부터 점차적으로 협동경리가 농업발전에서 주류를 이루도록 하려한다는것에 력점을 찍어야 할것이다. 하지만 농업협동화방침에 대하여 아직도 적지 않은 당과 국가의 중요부서들과 책임일군들이 관심을 돌리지 않고있으며 오늘 현재 우리 농촌에 900여개나 되는 협동조합들이 조직된 객관적현실을 보려 하지 않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이번 대회에서 하게 될 보고문인것이다.

900여개나 되는 갓 태여난 농업협동조합들이 얼마나 귀중한 씨앗인가. 우리 나라 농촌에 뿌려진 사회주의씨앗인것이다. 이 씨앗을 잘 키워야 한다. 현시점에서는 이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다시금 최옥금의 자그마하고 동그스름한 얼굴이 떠오르시였다. 그이께서 협동조합관리위원장들을 생각하실 때면 림근상이나 한후방녀 등 오랜 농민들과 함께 늘 이 처녀가 떠오르군 하였다. 시련을 이겨내며 대지에 피여난 한송이의 꽃과 같은 옥금이가 대견하면서도 어째서인지 애처롭게 느껴졌다. 이제는 조합을 조직하고 관리위원장이 되였으니까 힘이 커지고 농사도 더 잘 짓게 되겠지만 사실 나이도 농사경험도 어린 처녀가 어떻게 협동조합의 살림살이를 해나가겠는지 우려되였던것이다. 그 조합의 소가 세마리씩이나 독살당하였다니 더욱 왼심을 쓰게 되시였다.

옥금이로 말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든가 했을 처녀인데 너무도 일찌기 두엄지게를 지기 시작했고 고생을 체험했으며 너무도 일찌기 협동조합조직과 같은 심각한 사회적문제에 뛰여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는 비상한 현실이였다. 큰소가 나가면 작은소가 큰소구실을 하기마련이다.

수령님께서 때로 자신께서 옥금의 어깨우에 너무 큰 짐을 지우지 않았는가 걱정하는것은 이때문이였다. 그렇지만 어떻게 옥금이뿐이랴. 협동조합관리위원장들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고있는것 같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의자에서 일어나시여 창문으로 다가가시였다. 밖에서는 여전히 알릴듯말듯 보슬비가 내리고있었다. 건물의 처마밑에 매달린 고드름이 녹으면서 락수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이께서는 창문을 여시였다. 아직 추운 때여서 랭기가 훅 밀려들었다. 하지만 거기에서는 벌써 도래하고있는 새봄의 훈향이 느껴졌다. 물안개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실오리같은 비방울이 수령님의 얼굴에 알릴듯말듯 뿌려졌다. 그것은 우리 농촌의 새로운 거창한 변혁을 예고하며 재촉하듯 류례없이 일찌기 찾아오는 봄의 숨결이였다.

그이의 마음은 봄비 내리는 벌판으로 달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