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2


 
 

제 4 장

2

 

이러한 때 왕청같이 안대식이가 현촌에 나타나 또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경포리에서의 사건으로 하여 되게 말을 들은 안대식이는 한동안 조용해있었으나 요새 다시 기운이 버쩍 왕성해졌다.

한것은 그가 협동조합의 조직사업에 개입한것이 본신임무와는 별도로, 말하자면 영평군을 돕기 위하여 창발적으로 한 일이여서 도농산국장으로서의 본질적인 과오가 아니라고 너그럽게 용서를 받았고 특히는 최창익이가 오히려 그를 고무해주었기때문이였다. 최창익은 일부러 자기를 찾아와서 남달리 큰 머리를 푹 숙이며 심심히 비판하는 안대식이에게 《그런 과오는 일을 잘하려다가 범한것이니까 일없는거야. 사회주의에로 빨리 가려는 열성이 좀 지나친것이니까 비판을 하면서도 뒤에서는 좋게 본단말이야. 조금도 위축될건 없어. 그 사건은 농민부 조인철부부장 한사람에게 책벌을 준것으로 일단락 지은셈이니까 더 생각할 필요도 없어.》하고 말했었다. 그래서 안대식이는 다시 으쓱해진것이다.

안대식이는 도내 농촌들을 순회하는 기회에 현촌에 들려보기로 하였다. 조카 정종원이가 어떻게 지내고있는지. 아버지와 결별했는지 안했는지 알아보려 했으며 종원의 아버지인 매부와 자신이 선포한대로 투쟁을 벌리려는것이였다.

현촌에 지도원을 한명 데리고 도착한 그는 리인민위원장부터 찾았다. 안대식이가 이 마을을 몇번 다녀가서 안면이 있는 리위원장은 도농산국장으로 승급하여 나타난 그를 정중하게 맞아들이였다.

안대식이는 말투부터 그전과는 달랐다.

《이 집은 누가 살던 집이요?》 허리를 두손으로 짚고서 리인민위원회와 리당이 든 기와집을 턱으로 가리키며 목소리를 굵게 하고 틀지게 물었다.

《광복전에 조선인 자본가가 이 근방에 직조공장을 차려놓고 경영하고있었는데 그자의 첩이 살던 집입니다.》

《여기 직조공장이 있었는가?》

《그랬습니다.》

《거기서 뭘 짰소?》

《룡등직, 청천강직, 교직, 항라 따위 견직을 짰습니다.》

《그런데 그 공장이 어디 갔소?》

《광복후 자본가놈은 남으로 뛰고 직조공장은 녕변으로 옮겼습니다.》

《옮긴건 잘못 됐소. 이곳에 그냥 두고 확장해야지. 그 자본가가 타산없이 여기다 공장을 세웠겠는가? 북조선은 토지가 적고 척박하기때문에 쌀농사보다 축산과 공예작물을 장려해야 해. 그래야 농민들이 가난과 허리를 굽히고 호미로 땅을 긁는 고된 로동에서 벗어날수 있소.》

그는 혀가 돌아가는대로 멋을 부리며 말했다.

《여기 현촌에도 협동조합이 조직됐소?》

그가 또 물었다.

《조직되였습니다.》

《아, 그렇지. 다수확농민 최옥금이 여기서 살지. 그 처녀가 관리위원장이겠지? 불러오오. 좀 만나보겠소.》

리인민위원회지도원이 옥금이를 데리러 갔다.

안대식이는 증원리의 농사차비를 료해하면서 특히 농기구와 부림소의 부족량을 깐깐히 따졌다. 협동조합의 소 3마리가 얼마전에 독살되였다는 말을 듣고 그는 펄쩍 뛰였다.

《범인을 잡아냈소?》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는 심각해졌다.

그는 속으로 혹시 여기에 정의춘이가 개입되지 않았을가 하는 위구를 느끼였다. 만일 그렇게 되는 날이면 모처럼 얻은 도농산국장자리가 대단히 위태롭게 된다. 정의춘이가 소를 독살할 위인은 못되지만 사람일이란 모른다. 범인이 정의춘이네 집에 숨어서 책동했을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 해도 그 집에서 하루밤 피신하며 묵어갔을수 있다. 정의춘이는 식사대접을 시키고 그놈을 재촉하여 떠나보냈을수 있다. 그러나 내무서에 고발은 하지 못할것이다. 후에 범인이 잡혀서 그런것을 부는 날에는!···

결정적으로 정의춘이와 결별해야 한다.

그는 리위원장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협동화운동을 시비하는자들이 리에는 없소? 그런자들은 용서하지 말아야 하오. 부농 정의춘의 경향은 어떻소?》

리위원장은 눈이 둥그래지며 독이 오른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자기 매부를 마치 남처럼 대하며 부농이라고 꺼리낌없이 부르지 않는가.

《그 사람은 대문을 닫아매고 밖의 일에 일체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좋소. 그러나 이제 계급투쟁이 심화되면 부농들이 가만 있지 않을거요》

이때 옥금이가 들어오며 인사를 했다.

《아 관리위원장인가? 수고하오.》

그는 처녀의 자그마한 손을 덥석 잡고 흔들었다.

《소가 세마리나 독살당했다지?》

《예.》

《계급적원쑤들의 준동은 더욱 심해질거요. 원쑤들은 잠을 자고있지 않는단말이요. 동무들은 장차 부농과의 투쟁도 예견해야 하오. 우리는 사실 부농들에 대한 수탈과 청산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거요. 부농들이 틀고앉아있으면 부단히 개인주의를 부식시키고 협동경리의 발전에 저애를 주기 마련이요. 동무네 조합원들이 용기가 있으면 정의춘이를 수탈해야 하오. 조합의 토대가 약한데 응당 부농을 수탈해서 자기의것으로 만들어야 한단말이요. 옥금동무, 알만하오?》

옥금이는 이 왁살스럽고 뼈마디들이 긁직긁직하고 허우대 큰 사람의 《연설》을 놀랍게 듣고있었다. 정의춘이를 수탈하고 청산하라는 지시는 어디서도 받은데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가만 있는데 왜 청산해야 하는가. 그를 옹호하거나 두둔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지만 청산한다는것은 다른 문제이다.

머리를 다소곳이 하고있는 처녀를 향하여 안대식이는 둘째손가락을 꼿꼿이 쳐들고 흔들며 탄식조로 말했다.

《이 처녀가 아직 계급투쟁이 뭔지 모르는구만. 새세대니까 그럴수 있지. 착취계급과는 무자비해야 하오.》

그는 정의춘이를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옥금이를 데려왔던 리인민위원회 지도원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에 안대식이는 정의춘이에 대하여 료해하였다. 옥금이와 리인민위원장은 안대식이가 이 마을에 여러번 다닌적이 있고 과수원집과 처남매부간이며 그 집의 신세를 더러 지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기때문에 될수록 자극적인 말은 쓰지 않으면서 묻는 말에 대답하였다.

이윽하여 작달막하고 눈이 또글또글한 정의춘이가 지도원과 같이 들어왔다.

그는 풍뎅이를 쓰고 두루마기를 입었다.

《처남께서 오셨소?》

정의춘이는 푸르딩딩해 앉아있는 안대식이에게서 그 어떤 위압감을 느꼈던지 눈치를 살피며 허리를 굽혔다. 도농산국장으로 승급했다는것을 지도원에게서 들었을것이다.

안대식이는 자기를 처남이라고 부르는것에 그만 화가 터지고말았다. 처남이라 하면 어째서인지 하대하는 뜻으로 느껴지기때문이였다. 또 정의춘이가 처남이라 하면서 가까운 사이를 암시한것 같았기때문이였다.

《오늘부터 처남이요 매부요 하는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소. 나는 당신을 사업상 만나려 하오.》

그는 이발들을 드러내며 소리치듯 말했다.

《당신은 령세농민들과 피난민들을 일시키고는 품삯을 적게 주고있으며 반대로 소달구지를 빌려주고는 품삯을 엄청나게 많이 받는다는데 그게 사실이요?》

정의춘이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판이냐, 저 사람이 왜 갑자기 생판 모르는 남남끼리 대하듯하며 떵떵 을러대느냐 하는듯 자못 의아해하며 안대식이를 쳐다보았다.

《왜 대답이 없소?》

안대식이 독촉했다.

정의춘이는 푸들푸들 뛰는 입술을 간신히 놀리며 말했다.

《이거 갑자기 무슨 일이요? 아니 우리 집 형편을 몰라서 따지는거요?》

《그러니까 그게 사실이란 말이겠소? 당신네 고간에 가득히 찬 쌀이 다 빈농들과 령세농민들을 착취해서 벌어들인것이라는것을 인정하오?》

《나는 누구도 착취를 하지 않았소. 도농산국장어른!》

정의춘이도 독을 품으니 만만치 않았다. 마치 독을 품은 고양이처럼 동공을 좁히며 처남을 쏘아보았다.

《나는 오히려 일감이 없고 먹을게 없어 굶주리고있는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고 그 삯으로 먹을걸 주었소. 그런 사람들을 살려주었단말이요. 그리구 소가 없는 이때···》

《그만, 그만!》

안대식이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쳤다.

《마치도 자선가처럼 말하는데, 그래서 령세농민들을 동정해서 일감을 맡겼겠소? 당신이 삯일군을 쓰지 않고도 과수원을 가꿀수 있고 숱한 토지를 경작할수 있겠소?》

《나는 내 능력껏 일하오. 나는 놀고먹지 않소.》

《좋소. 그러면 자기 능력껏 일해서 번것은 떳떳한것이니까 그만한 몫을 내놓고 그 나머지 남이 벌어준것, 다시 말해서 당신을 대신해서 일해준 사람들의 몫은 우리가 수탈하겠소.》

《수탈?》

정의춘이는 공포에 질려 몸을 움츠리였다.

《빼앗겠단말이요! 우리는 그럴 권리가 있소. 지금 이 동네에서만도 숱한 사람이 배를 곯고있는데 당신은 남이 대신 벌어준 쌀을 쌓아두고 풍청거리며 살고있단말이요.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불평등을 반대하여 싸워왔소.》

정의춘이는 얼굴이 재빛이 되였다. 안면근육이 경련이나 인듯 푸들푸들 떨었다.

《착취자들과의 투쟁에서 우리는 무자비하며 형제자매를 가리지 않소. 나는 우리가 손을 쓰기전에 당신 스스로가 쌀가마니들을 이 리인민위원회앞에 실어다놓기를 권고하오. 권고가 통하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강권이 적용될거요. 강제수탈을 한다는 소리요. 가보오!》

그의 목소리는 우뢰소리처럼 울리였다. 정의춘이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옮겨짚었다. 그가 허우적거리며 문을 더듬는 순간 안대식이가 《가만!》하고 불러세웠다.

《당신의 아들이 집에 있소?》

《···》

말할 기력조차 없어진듯 정의춘이는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전선에 나가서 잘 싸운 로동당원인 아들을 봐서도 옳게 처신해야 해. 아들의 장래를 생각해야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당신이 재산을 다 조합에 넣고 조합원이 되였으면 좋겠소! 그러면 아들도 얼마나 좋아하겠소. 떳떳해지고. 듣자니 아들은 부농인 아버지의 행위가 부끄러워 밖에 나다니지도 않고 집에 들어박혀있다는데 이 얼마나 가련한가!···》

정의춘이는 대답없이 문을 열고나갔다.

옥금이는 처남매부지간의 이 《계급투쟁》마당에 자리를 같이하고 앉아있는것이 마치 바늘방석에 앉아있는것만 같았다. 어떤 면에서는 통쾌하기도 했다. 사실 정의춘이는 숱한 토지와 과수원을 소유하고있으면서 남의 로력을 사서 경작하고있으며 치부하고있다. 고간에 남아돌아가는 쌀을 나라에서 회수한다해도 잘못될것이 없을것이다.

수탈해서 배를 곯는 령세농민들에게 나누어주어도 일없을것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여기에 정종원이가 원하든 원치 않든 관여되여있으니 그가 얼마나 난처해하며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도농산국장의 말대로 그의 아버지가 개인재산을 포기하고 조합에 들면 만사는 해결되겠지만 그럴수 있을가?···

안대식이는 증원리에 한동안 머물러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그를 따라온 지도원이 정의춘이네 집에 가서 닭 두마리를 《수탈》해서 점심준비를 하는 집에 가져다주었다. 그가 한창 닭의 다리를 뜯을 때 쌀가마니들을 달구지에 싣고 정의춘의 아들 정종원이가 리인민위원회마당에 나타났다. 그는 시커매진 얼굴로 아무말없이 쌀가마니들을 부리웠다. 안대식이가 점심을 먹다말고 나가서 종원이를 만났다.

《종원인가! 아버지가 시키던가?》

《벌써 이렇게 했어야지요.》

종원이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구. 네가 잘한다! 그런데 야, 혹시 동네에서 일어난 소독살사건이 너희집이 관계된것 같지는 않더냐?》

《그건··· 나까지 념두에 두고 하는 소리요?》

《아니다. 너 무슨 소리를 하니. 난 혹시나 해서 그래··· 네가 모를수도 있지 않는가. 만일 그 무슨 이상한것이 느껴지면 제때에 신고해서 사전에 액을 면해야 해. 이건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소리다. 알만하니?》

종원이는 대답없이 빈달구지를 몰고갔다. 얼마후 과수원집대문안에서 법석 떠드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왔다 옥금이는 쌀을 실어내다 바치는 일을 가지고 아들과 아버지가 싸우는것이라고 짐작했다.

옥금이는 종원이가 왜 하필 저런 집에서 태여났을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종원이가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수 없지 않는가 하던 말을 상기하며 한숨을 지었다.

이날의 소란스러운 사건은 한동안 현촌을 떠나지 않고 반복되면서 윤색된 이야기거리의 하나로 되였다.

물론 회의갔다가 저녁에 온 강명우에 의하여 쌀은 도로 과수원집에 실려갔고 제대로 바로잡혔다. 사건을 일으킨 안대식이는 뒤처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원칙성과 혁명성을 시위하고 매부와 결별하려 했던 목적을 실현했던것이다. 정의춘이네 집에서 무슨 불길한 일이 발생하여도 그는 마치 남의 집일처럼 대할수 있었고 친척관계로 인한 화를 입지 않을수 있었다. 그러나 정의춘이와 그의 아들 정종원이가 받아안은 정신적타격은 컸을것이다.

그후 어느날 옥금이는 읍을 지나가다가 종원이와 우연히 마주쳤다. 처녀는 소를 살 돈을 대부받아보려고 농민은행지점을 찾아가는 길이였다. 소를 3마리나 잃은후 처녀는 어떻게 하면 소를 해결하겠는가 하는 생각뿐이였다. 그런 바쁜길에서 종원이를 만나게 되였는데 리당사무실에서 만난 밤 이후로는 처음이였다. 종원이는 몸에 잘 어울리지 않는 양복을 입고 머리를 수굿하고 휘적휘적 걸어오고있었다. 그가 집에 박혀있기 싫어서 읍에 있는 고중동창생들과 고중시절의 축구선수들의 집에도 놀러다니고 (그의 고중시절동무들의 운명도 전쟁기간 각이하여 부상을 입었거나 기타 리유로 집에 있는 사람이 몇명 되지 않았다.) 모교에 가서 새 축구선수들의 뽈차는 훈련도 지도해주며 전투담도 이야기해준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옥금이는 오늘도 아마 그런 일로 읍에서 돌아다니는것이라고 짐작하였다.

마을행길에서 이처럼 우연히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옥금이는 종원이에게 해줄 말들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 번잡한 읍거리에서 만났으니 종원이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주랴. 종원이가 자기를 못본체 지나쳐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옥금이는 종원이를 피하고싶지는 않았다. 이상한 일이지만 머리를 수그리고 걸어오는 그 모습에 동정이 갔던것이다.

《종원동무.》하고 옥금이는 저도모르는 힘에 이끌리며 그를 멈추어세웠다.

종원이는 흠칫하며 머리를 쳐들었다.

검실검실한 우울한 얼굴이 한순간 확 밝아졌다.

《한동네에서 같이 살면서도 만나기 힘들더니 여기 읍에서 보게 되는군요. 네?》

옥금이는 서글프게 말했다.

《난 군인민위원회에 볼일이 있어 왔댔소.》

종원이가 처녀의 타는듯한 눈길을 피하며 대답하는데 금시 얼굴이 어두운 빛으로 되돌아갔다.

《왜 리당위원장동지의 충고대로 하지 않나요? 리민주선전실에는 왜 나오지 않고··· 모교에 가서는 전투담을 얘기했다구 하더군요.》

처녀는 안타까운듯 말했다.

《옥금이도 외삼촌이라는 사람이 왔을 때 우리 집이 당한 창피를 보았지? 나는 얼굴을 들고다니기조차 부끄럽소.》

그는 석쉼한 목소리로 말했다.

《옥금이, 나는 결심했소. 나는 삶을 새롭게 개척하려 하오.》

옥금이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가,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것일가 하고 가슴울렁이며 생각하였다. 그가 어떤 비상한 각오를 한것이 틀림없었다. 종원이는 그이상 더 말하려 하지 않았으며 어째서인지 서둘러 옥금이와 헤여지려 하였다.

사실 종원이는 옥금이를 만나자 마음의 동요가 생기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그래서 급히 피했던것이다.

그런데 얼마후 삶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종원이의 결심을 결정적인 행동에로 추동한 사건이 현촌에서 발생하였다.

밤 10시경, 정의춘이네 집 뒤언덕에 있는 과수원, 찬바람이 몹시 불어대는데 사과나무의 컴컴한 그늘속에 키가 크고 버쩍 여윈 인물이 까딱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만일 온몸을 감싼 길다란 털외투자락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말라죽은 나무로 혼동할수 있었다. 그러나 퍼런 불이 뿜어나오는 움푹한 눈확속의 두눈은 그가 생명체이며 그것도 악으로 충만된 생명체라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이윽하여 솜옷을 입은 또 다른 인물이 과수원어귀에 나타났다.

당촌의 영구였다. 그는 군데군데 쌓여있는, 얼어붙은 눈무지들을 버석버석 밟으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바람이 윙- 윙- 우는 추운 밤의 과수원안이 두려울것이 없으련만 그는 본능적인 공포에 질려있는것 같았다. 오늘 그는 조영란이로부터 밤 10시에 정의춘이네 과수원안에 나타나 《대장님》을 만나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긴 그 자신이 이 접촉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정의춘이네 과수원을 접선장소로 택했는지?··· 두리번두리번 살피며 과수원안으로 들어오는데 문득 등뒤에서 《거기 서게》하는 굵은 목소리가 났다.

영구는 전률하며 홱 돌아보았다. 말라죽은 나무처럼 까딱 움직이지 않고 서있는 인물이 계속 말했다.

《가까이 오라구. 뒤는 잘 살피며 왔겠지?》

그제야 영구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걱정놓으시우》하고 그는 대답했다.

《여기 앉게.》

그들은 사과나무밑 찬땅우에 무릎을 꺾고 마주앉았다.

《말하게 왜 나를 만나자고 했나?》

말소리가 멀리 가지 않게 하려고 현상도는 혀아래소리로 웅얼웅얼 말했다.

《장칠복이가 내뒤를 캐는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아두 미타한게 하나 있었댔는데, 그게 뭔가 하면 내가 〈대장님〉의 지시를 받들고 박인수와 능보령감네 외양간에 들어가 소들을 독살한 날밤의 일입니다. 의심을 사지 않게 하려구 곧바루 당촌으로 가지 않구 봉화재수림속을 에돌았지요. 그러다보니 날이 샐녘에야 집에 가닿았지요. 나올 때 대문을 걸지 않았기때문에 가만히 당기니까 그게 안으로 걸렸습데다. 그래 몇번 덜컹거리니까 개들이 짖어대구 안에서 아버지가 나오지 않겠소. 늙은이라 새벽잠이 없으니 먼저 일어나 문을 연게지요. 또 술마시구 어디가 늦도록 놀다오느냐고 한바탕 욕을 합데다. 그 욕설을 다행스럽게 들으면서 대문을 닫기전에 밖을 잠간 살펴봤지요. 그런데 앞집 장령감이 변소보러 나왔다가 돌아가는지 뒤잔등이 얼핏 보입데다. 그까짓 이웃에서는 내가 늘 늦게 들어오는걸 아는데다가 아버지가 욕하는 소리를 들었을테니까 뭐 별일 없겠지 했지요.》

젊은 놈이 마른 침을 꿀꺽삼켰다.

《그래서》

현상도가 초조한듯 재촉했다.

《그 장령감이 장칠복의 친척은 아닌데 성이 같다해서 서로 형님 동생하는 사이지요. 그런데 그뒤 어떻게 된건지 내가 조영란이네 집에 가서 술을 사마시고 오는데 장칠복이가 얼핏 눈에 띄우더란말이요. 조영란이두 나보고 주의하라, 장칠복이 뒤를 따르는것 같다구 했지요. 장칠복이 소독살이 있은후 밤마다 리내를 돌면서 감시를 하고 조영란이두 한번 걸렸던걸 아마 아시겠지요?》

현상도는 고개만 끄덕이였다.

《그러구보니 장령감네 집에 장칠복이 몇번 왔다간것이 형님, 동생하는 사이때문만이 아니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펄쩍 들었지요. 분명 장령감이 그날 새벽에 내가 집에 들어온 일을 장칠복이한테 얘기한것 같애요.》

《자네 부친에게 나를 만나군 한다는 얘기를 했었나?》

현상도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아니요! 〈대장님〉이 가르쳐준대루 협동화는 부농들을 청산하는 놀음이다, 이제 김맬 때 잡초뽑듯이 뽑아던질게다, 그러니 협동조합이 망하게 해야 한다, 정의춘이 같은 사람에게두 알려줘서 령세농민들이 조합에 합치듯이 우리 부농들도 힘을 모아야 한다, 이런 선전사업만 했습지요.》

《그래 부친이 정의춘이를 만났댔나?》

《한번 가서 손을 맞잡자구 얘기했대요. 가만히 앉아서 망하겠나, 우리도 활동하자, 최근배같은것들을 끌어당기자 하구 바람을 불어넣었대요. 그런데 그 정의춘령감이 청산당할가봐 떨면서도 자기네는 아들이 로동당원이구 전선에 나가서 잘 싸웠는데 공화국에서 봐줄지도 모른다구 하더랍니다. 부친은 정의춘이를 만나구와서 그게 돈뫃구 재산 늘이는데는 거마리처럼 질겨두 큰일할 인물은 못된다구 했어요. 그런데서두 제 리속만 차리니까요.》

《알겠네.》

늙은 수캐 우는것같은 소리를 내는 현상도의 눈에서 퍼런 불이 쏟아져나왔다. 젊은놈은 몸서리를 쳤다.

《그래, 자네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 장칠복이한테 꼬리를 잡혔으니···》

《그놈을 죽여치워야지요.》

현상도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품에서 권총을 끄집어냈다.

《이걸루 해치우게.》

하면서 현상도는 불시에 영구에게 달려들어 권총손잡이로 그의 관자노리를 힘껏 쳤다. 두손을 쳐들던 영구는 앉은채로 옆으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번듯이 자빠지며 두다리를 쭉 폈다.

이그러지고 부어오르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나서 현상도는 권총을 집어넣고 이번에는 단도를 꺼내였다. 그리고 영구의 가슴을 타고 앉을듯한 자세를 지으며 단도로 그의 목을 푹 찔러 대동맥을 끊었다. 검게 보이는 피가 흰 김을 내뿜으며 솟구쳤다. 피비린내가 확 퍼지였다.

장칠복이가 힘들게 찾아쥐였던 한오리의 실머리는 이렇게 끊어져나갔다.

···영구의 시체를 정의춘이가 우연히 발견했다. 밖으로 뿜어나온 꺼멓게 된 피와 함께 꽁꽁 언 시체를 끌어내여 달구지에 싣고 당촌으로 싣고 가는날 온 증원리가 법석 끓었다.

개들이 종일 짖어댔다. 당촌부농네 집에서는 영구의 처가 기절해넘어지고 그의 아버지는 미친 사람처럼 말없이 집뜨락을 왔다갔다했다. 무시무시한 침묵이 부농네집에 깃들었다. 한편 현촌의 정의춘이는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웠다. 시체를 발견할 때 놀라서 얼어붙은 땅우에 풀석 주저앉은 다음부터 와들와들 떨며 혼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런데다가 내무원들이 끈덕지게 이것저것 물어보는바람에 그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쳐버렸다. 내무원들이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정의춘이였다. 시체가 그의 집 근처에서 나졌고 시체를 발견한 사람도 그자신이였기때문이였다. 이것은 현상도가 의도적으로 노린 효과였다.

사태는 여기서 머무르지 않았다. 군내무서에서 내무원들이 다시와서 정의춘이와 영구의 아버지를 각각 데려갔다. 체포인가? 그것은 알수 없었다. 그러나 도에서 두사람을 엄중취급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것은 명백했다. 현촌이라고 하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벌어진 이러한 사건은 당시의 정세를 반영하고있었다. 이 시기 대내외적대세력과 계급적원쑤들의 반공화국책동이 강화되고있는것과 관련하여 혁명적경각성을 높이며 특히 내무기관들의 역활을 높일데 대한 문제가 첨예해지고있었다. 이에 편승하여 최창익은 부농과의 투쟁에서 당이 우경을 범해서는 안된다고 들고나왔다.

평남도에 나타난 최창익은 계급적원쑤들의 책동자료를 뒤적거리며 그곳 일군들에게 말했다. 《파괴책동을 하고있는 부농들을 체포처단하는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아직 입을 다물고있거나 행동하지 않고있는 부농이라 해도 그자들이 곧 뒤따라 들고 일어날것은 뻔하니까 사전에 제거해야 하오. 이러한 기초우에서 협동화를 해야지. 쏘련에서처럼 말이요! 여기 자료에도 있지만 현촌이라는 마을에서 살해된 부농 아들놈은 후퇴시기에 〈치안대〉를 하며 사람을 죽이고도 거짓자수를 하고 태연하게 머리를 들고다녔단말이요. 적들은 이렇게 교활하고 악착하오.》

이것은 부농을 제한하며 개조할데 대한 당의 계급정책과 맞지 않는 소리였다. 그러나 협동화운동에 저항하는 일부 부농들의 책동만을 놓고보면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래서 도에서는 부농들을 엄중히 취급할데 대한 지시를 군에 떨구었으며 일부 군들에서는 그 지시를 받아물었다. 현촌에서 정의춘이 다시 군내무서에 불리워간 배경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었다.

최창익은 안대식국장을 따로 불러서 협동화운동에 적극적이면서도 매부가 부농인것으로 하여 불안해하고있는 그를 계급투쟁정신이 투철하다고 평가해주면서 《나는 자네가 중앙에서 일할 때가 되였다고 보네. 농업성에 들어가서 일하게. 거기가서 물렁물렁한 농업성에 계급적선을 날카롭게 세우란말이야. 자네가 계급성이 강하다는것을 〈얼마우재〉들도 인정하고있는것만큼 중앙기관에 승진되는 문제가 어렵지 않을거야.》하고 말했다.

안대식은 감지덕지하여 《이 은총을 잊지 않겠습니다.》하고 허리를 깊이 숙이였다. 그는 자기의 불안하고 불안정한 처지를 가리우기 위해서도 더 《적극성》을 발휘할 결심을 굳게 했다.

···계급적원쑤들과 반동들, 일부 부농들의 책동에 대한 보고서들이 군에서 도에 집결되고 도에서는 그것을 다시 중앙에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들은 자료적으로 함축되여 곧 소집되게 될 정치위원회를 앞두고 정치위원들과 김일성동지께 제출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