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7


 
 

제 3 장

7

 

ㅇㅇ군에서는 최옥금의 조합이 이미 조직되여있었기때문에 그 경험을 살리면서 몇개의 경험적인 협동조합들을 편향없이 조직할수 있었다. 협동조합들을 조직하게 된 리들에서 사람들이 옥금을 찾아오기도 하고 군당위원회의 지시를 받고 옥금이가 그들을 찾아가서 경험을 이야기해주기도 하였다. 이 나날들에 옥금은 초행길을 먼저 걷고있는 자신에 대한 긍지를 한껏 느끼였다.

그러나 옥금의 일이 다 잘되여간다고는 할수 없었다. 조합이 조합으로서의 체모를 갖추고 새해 영농사업을 집단경리로 운영해나가자고 하니 하나에서 열가지가 다 생소했으며 머리를 써 연구하고 탐구하지 않으면 그저 밀려다니며 이 일 저 일 하는 식으로 세월을 보낼수 있었다.

하루는 뒤에서 늘 옥금을 돌보아주고 떠밀어주는 강명우가 처녀관리위원장을 리당위원회로 불렀다. 그래 조합원들에게 하루 작업을 총화해주고 캄캄한 밤에 리당위원회를 찾아갔다. 그런데 거기서 전혀 예상밖의 일에 부닥쳤다. 종원이가 그곳에 와있었던것이다. 물론 그들이 한마을에서 살고있고 종원이도 당원으로서 《과수원집》담장안에 노상 들어박혀있을수 없는이상 어차피 만나게 될것은 정해진 리치였다. 언제 어떻게 만나는가 하는것이 문제로 될뿐이였다.

옥금이는 리당위원회의 문을 가볍게 두드리고 조심스럽게 여는 순간 군대솜옷을 입은 사람의 뒤모습을 보며 주춤하였다. 종원이란것을 알아보지는 못했으나 늘 그의 생각을 하고있었던탓인지 군대솜옷을 보는 순간에 이상한 예감이 들었던것이다. 강명우는 기침을 쿨룩쿨룩하는데 진지한 표정이였다. 두사람사이에 진지한 이야기가 벌어지고있었다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음.》

강명우는 출입문과 마주하고 걸상에 앉아있었기때문에 들어서는 옥금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관리위원장이 왔나?》

그는 옥금이게게 그전처럼 해라를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오하기도 이상하고 뭣해서 적당히 하게를 썼다. 옥금이는 강명우와 눈인사를 주고받으면서도 신경은 군대솜옷을 입고 머리를 깎은 제대군인에게로 가있었다.

관리위원장인가 하고 강명우가 말하는 순간 제대군인이 몸을 뒤로 홱 돌리였다.

옥금이는 종원이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한 시커멓고 무뚝뚝한 사람을 보았다. 고중시절에 옥금이가 하자는대로 끌려다니던 마음이 순한 종원이의 모습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였다. 옥금이는 금방 숨이 막힐듯 하였다.

《들어와 앉으라구.》

강명우가 말했다.

옥금이는 벽에 붙여놓은 긴걸상에 걸터앉으며 목도리를 천천히 잡아당겨벗었다. 그러면서 다시 종원이를 바라보았다. 종원이는 강명우를 마주하고 눈길을 떨어뜨리고있었다.

《그럼 그렇게 하자구. 내 말을 명심하게.》

강명우가 종원이에게 말했다.

《예.》

종원이는 석쉼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솜모자를 집어들고 무겁게 일어섰다. 걸상이 삐걱거리였다.

그가 솜모자를 쓰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에 옥금이는 다급히 일어섰다.

《종원동무, 밖에서 좀 기다려요.》

총알처럼 야무진 말마디가 튀여나갔다. 바로 고중시절에 옥금이는 종원에게 그렇게 《명령》하군 하였다. 그러면 옥금이보다 거의 두곱이나 되게 키가 큰 종원이는 말없이 시키는대로 움직였었다. 지금 옥금이는 고중시절의 종원이에게 《명령》하듯한것은 물론 아니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만나게 될지 알수 없어 다급히 부탁한것이였다. 그러나 그 시절의 그 기질이 작용한것만은 사실이였다.

종원이는 옥금이쪽으로 상체를 약간 기웃했다가 밖으로 나가버리였다. 옥금이는 침울하고 무뚝뚝한 사나이로 변하긴 했으나 그가 밖에서 기다려주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옥금이와 종원이가 고중을 같이 다녔고 전쟁시기 편지도 서로 오고간 사이인것만큼 응당히 벌써 몇번이나 만나보았을것이라고 생각하고있던 강명우는 종원이를 보는 옥금의 눈에서 튕기는 불꽃이며 서로 당황해하고 어색해하는 그들의 표정과 몸가짐에서 이상한것을 느꼈던지 이렇게 물었다.

《둘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옥금이는 얼굴을 붉히며 황황히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들같구만···》

강명우는 무엇인가 석연치 못한 느낌을 버리지 못한채 계속하였다.

《내 저 녀석을 좀 닥달질해주었다. 당원이구 제대군인이라는게 제구실을 못하거든. 글쎄 영예군인이니까 집에서 안정을 하며 치료를 해야지. 하지만 집구석에 그냥 박혀있으면 내버려둔 강철이 산화되듯이 사람의 머리속에도 녹이 쓴단말이야. 그리구 뭐가 못마땅한지 잔뜩 얼굴을 찌프리고 부모들을 대하면서 시퍼래서 말도 못붙이게 한다니 이게 어디 됐는가. 그래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일이 생길것 같아서 내가 말을 좀 해주었다. 민주선전실에 나와서 마을사람들앞에서 전투담도 얘기하고 리당위원회에 와서 내 일도 좀 도와주며 시원한 바깥공기를 마시라고말이다. 관리위원장도 종원이를 도와주라구.》

옥금이는 목도리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다소곳이 하고 앉아있을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강명우는 옥금이를 부른 용건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영농계획을 빨리 세워서 관리위원회에서 토론해야 하겠다. 봄갈이때에는 네 밭 내 밭을 가르는 지경을 이루던 밭최뚝부터 싹 허물어버리자. 그러면 거기서만두 숱한 땅이 생길게다···.》

이런 식으로 자기 의견을 말해주었다. 리당위원장이기전에 농군인 강명우는 농사일에 아주 밝았다. 그는 가끔 토지개혁때 농촌위원회 위원장을 하던일을 돌이켜보면서 《몇밤을 새워도 힘들지 않았어. 나에게도 현무림의 토지가 분여되였는데 우리 작인들의 피와 땀으로 기름진 그 땅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밟아보며 〈이제는 우리 세상이구나〉하는 생각에 머리가 핑 돌더라니까.》 이런 말을 하군 했다. 지금도 그는 리당위원장을 그만두고 농사를 지으라면 춤을 추겠다고 할만큼 땅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강명우와 옥금이는 조합의 새해 영농사업을 어떻게 잘해나가겠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한동안 의논하였다.

옥금이는 강명우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자기가 미처 생각을 못했거나 타산하지 못했던것을 발견하였다. 밭갈이때 밭최뚝을 허물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부침땅을 많이 얻어내는것을 비롯하여 옥금이가 이미 관리위원들과 토론하여 새해영농사업계획에 예견한 문제들이 반복된것도 있었지만 처녀는 진지하게 강명우의 의견을 받아들이였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다른 때처럼 안정된 기분에서 진행되지 못하였다. 강명우의 조언에 옥금이는 공감하면서도 한편 추운 밖에서 기다리고있을 종원이때문에 안절부절 못했다.

(공연히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을가? 밖은 추운데··· 차라리 리당위원장아저씨한테 사실대로 말했을걸.)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강명우는 그 맑은 하늘같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면서 자기쪽으로 당기는 매력을 가지고있는 눈에 웃음을 담고 말했다.

《오늘은 그만할가? 내게 급한 일이 생겨서 어딜 가봐야 할것 같구만.》

강명우의 말이 떨어지자 옥금이는 일어서며 목도리를 둘렀다. 처녀에게는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나간것 같았지만 실은 30분도 되나마나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강명우가 제때에 담화를 끝냈던것이다. 그는 서둘러 인사하고 나가는 옥금이를 보며 (아직 어린애야.)하고 미소를 금치 못했다.

하긴 옥금이는 밖에서 기다리고있는 종원이를 만날 생각에 초조해지는 심정을 애써 감추며 태연한체 할수 없는 성격이였으며 무엇보다도 나이가 아직 어렸다. 처녀는 이제 겨우 스무살에 잡혔다.

밖에 나온 옥금이는 종원이를 찾아보았다. 가까이에서는 눈에 띄우지 않았고 먼데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아마 집으로 그냥 가버렸겠지, 종원의 무뚝뚝한 생소한 모습을 그려보며 이렇게 생각하던 옥금이는 혹시나 하여 리당위원회와 집 한채를 같이 쓰는 리인민위원회사무실을 열어보았다. 희미하게 전등불이 비치는 사무실안에 몇사람이 있는데 거기서 박인수의 고음이 들려왔다.

《우리 큰애두 곧 제대될가?》

《정전이 되였지만》하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는 종원이가 대답했다.

《정세가 긴장하니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리승만이가 미제놈들과 무슨 방위조약을 맺고 다시 전쟁을 할 꿍꿍이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미제놈새끼들!》

《저는 건강상 제대되였습니다. 혼자 먼저 고향으로 돌아와서 미안합니다.》

《이 사람 무슨 소리를··· 다 들어서 알고있네. 부상을 입지 않았나? 정말 수고했네. 훈장을 수태 탔다더군.》

종원이는 농민들에게 실례한다고 말하고 옥금이에게로 돌아섰다.

둘은 말없이 걸었다. 무엇때문에 어디로 간다는 약속도 생각도 없었다. 마을을 꿰지른 행길로 들판을 향하여 걸었다. 길바닥은 얼어있었다. 양지쪽이 낮에 좀 녹기는 하지만 그것도 해가 지면 다시 꿋꿋하게 얼어붙었다. 찬바람이 벌판에서 골안을 따라 불어왔다. 바람은 길가에 앙상한 대추나무가지에 매달리며 아츠러운 소리를 냈다.

구름 한점없이 개인 하늘에 별이 총총하였고 이즈러진 달이 창백한 빛을 비치여 행길은 제법 환했다.

《종원동무 미안해요, 동무를 전선으로 떠나보낼 때처럼 환영해주지 못했어요. 동무는 조국에 청춘과 피를 바쳤는데 승리하고 돌아온 병사를 찾아가 축하를 해야 하는데!···》

옥금이가 먼저 이렇게 말을 했지만 목이 메여 더 계속 하지 못하고 종원이를 쳐다보기만 하였다.

종원이는 솜옷을 입었건만 늘씬하고 탄력이 있어보였다. 그 젊은 육체와 컴컴하고 우울한 얼굴에서는 해볕과 바람, 흙먼지와 포연의 생생한 흔적이 풍겨왔고 생사를 판가름하는 초인간적인 혈투속에서 겪은 시련이 력력히 느껴졌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마치도 몹시 성난 사람같았다.

《하지만 종원동무!》

옥금이는 종원이의 팔을 잡고 멈추어세우며 열렬히 부르짖었다.

《나는 기다렸어요. 동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단말이예요!》

옥금이는 불시에 눈물이 괴여올랐다.

《동무는 다 모를거예요. 아버지와 막내동생은 학살당하고 어머니는 허리를 상했고 두 동생은 나를 쳐다보는데 집에는 사발 하나도 남은것이 없고 맨주먹뿐인 내가 어떻게 그 엄혹한 겨울을 이겨냈는지··· 손끝에 피가 맺히도록 일했어요. 이런때 보내준 동무의 편지가 나에게 얼마나 큰힘이 됐는지 동무는··· 모를거예요. 그후에도 계속 보내준 동무의 편지가 나를 고무했어요. 그런데도 나는 동무를 여적 찾아가지 않았어요. 저를 욕하세요! 막 때려줘요!···》 처녀는 웨치며 흐느끼였다.

갑자기 종원이는 《후-》하고 땅이 꺼지게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이러지 마오. 옥금동무···》

그는 부탁하듯 말했다.

《난 괴롭소. 가슴이 막 터지는것 같소.》

그는 자기를 이겨낼수 없었던지 벌판쪽으로 씽씽 걸어갔다.

옥금이는 뜻밖이였다. 어째서 그가 괴로와하고있는지··· 아까 강명우리당위원장도 그가 집에서 시퍼런 얼굴로 부모들을 대하며 말도 못붙이게 한다고 했다. 그러고보면 그의 우울하고 시커먼 얼굴은 단지 전쟁터를 헤쳐왔기때문만은 아닌것 같다. 옥금이는 그전처럼 그를 《오빠》라 부르게 되지 않고 그 또한 옥금이를 그저 이름만으로 부르지 않는데서 오는 서먹서먹한 거리감을 느꼈지만 그에 대한 강한 동정심이 불처럼 타오르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종원오빠-》

처녀는 그 순간 이렇게 부르며 뒤쫓아갔다.

그들은 깊은 추억이 깃들어있는 늙은 느티나무밑을 지나 이미 들길에 나섰다. 거기는 바람이 심했다. 그러나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오빠, 왜 그래요?》

옥금이는 종원이를 따라 종종 걸음을 치며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종원이는 멈추어섰다. 그는 불이 펄펄 이는 눈으로 옥금이를 돌아보았다.

《나를 원망하오. 알겠소?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수 없단말이요! 그러니 어찌겠소?··· 나를 오빠라 부르지 마오.》

종원이는 괴롭게 헐떡이며 입으로 흰김을 내뿜었다.

《진정해요. 부탁이예요. 그리구 말해줘요. 무엇때문에 그리도 괴로와하는지··· 그러면 한결 속이 가벼워질거예요.》

한동안 지나서 종원이는 이렇게 젖어드는 목소리로 안타까운듯 말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싸웠소? 지금에 와서 나에게 소중한것이란 무엇이요?···》

《오빠는 편지에 썼지요? 보리이삭패는 파란 언덕, 저 느티나무, 시름모르고 뛰여다니던 시내가, 이 옥금이와 몰래 숨어들어가 사과를 따먹던 과수원, 이런 추억이 다 귀중한 고향의 모습이더라고··· 과연 이것이 소중한것이 아니란말이예요?》

《···》

종원이는 말없이 걸었다.

《왜 말이 없어요?》

《그건 다 지나간 꿈이요.》

그는 흐느끼듯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요. 철없는 시절의 보라빛 안개에 쌓인 추억이라고··· 그래요. 고향에는 아름다운 추억만이 아니라 아프고 쓰린 추억도 있어요. 현실은 더욱 그래요.》

종원이가 무엇때문에 괴로와하고 고민하는지 대체로 짐작이 간 옥금이는 열정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종원동무!》하고 옥금이는 엄숙하게 말했다.

《나는 우리 생활의 아름다운 래일을 보고있어요. 나는 그것을 자주 공상하군 해요. 그러면 현실의 어려움과 난관이 별치 않게 느껴져요.》

종원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자기를 위안하려고 애쓰는 처녀가 눈물겹도록 고마왔다. 옥금이는 종원이가 고중시절에 축구에서 지고오는 때면 지금처럼 그를 살뜰하게 위안해주군 하였다. 이 자그마한 옥금이는 정말 유별난 처녀였다. 그러나 처녀가 고맙게 여겨질수록 종원이는 더욱 고통스러웠다. 아버지가 저 처녀의 가슴에 얼마나 아픈 상처를 입혔는가. 생각할수록 살이 찢기는듯하여 몸부림치는 종원이였다. 발밑에 엎디여 발목을 붙잡고우는 어머니를 뿌리칠수 없어 집을 뛰쳐나가지 못했는데 그 집에 머물러있는 하루하루가 종원이에게는 옥금이에 대한 죄스러움이 덧쌓이고 커지는 나날이였다.

그런데 옥금이는 어떠한 처녀인가. 온 나라가 다 아는 처녀보잡이이고 다수확농민이다. 《로동신문》에도 여러번 소개되였다. 이런 처녀와 《과수원집》아들인 자기를 견줄수 있겠는가? 3년이란 짧은사이에 사람들의 운명은 놀랍게 변하였다. 자그마한 옥금이가 지금은 조합관리위원장을 하고있다.

처녀의 외모도 변했다. ··· 종원이는 처녀와의 심한 간격을 느끼였다.

종원이와 옥금이는 서먹서먹한 상태에서 헤여졌다. 개들이 컹컹 짖어대고 느티나무의 무수한 가지에서는 바람이 여전히 소란스러운 휘파람소리를 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