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2


 
 

제 3 장

2

 

외삼촌의 집을 떠난 종원이는 그날로 고향마을에 도착하였다.

눈이 하얗게 덮인 들을 지나 마을어귀에 들어선 그를 제일 먼저 맞아준것은 길가의 늙은 느티나무였다.

동구길에서 우측으로 약간 치우쳐 낮은 둔덕우에 서있는 이 느티나무는 현촌의 상징이라고도 말할수 있었다. 지금 현촌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아이건 늙은이건 누구나 이 나무와 인연을 맺고있었다. 어느때에 이 나무가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시작하였으며 앞으로 얼마를 더 서있게 되겠는지 그것은 누구도 알수 없었다. 그저 태여나 철이 들면서부터 이 나무를 알게 되고 그와 친숙해졌고 늙어갔다.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 헤아릴수 없는 현촌사람들을 묵묵히 맞이했고 묵묵히 떠나보내였다. 어떤이는 《나는 이 세상을 떠나도 저 느티나무는 살아있을테지. 봄이면 잎이 돋아나고 가을이면 잎이 지고··· 더운 여름이면 그 그늘밑에서 사람들이 쉬여가고 추운 겨울이면 그 나무밑둥에 등을 기대고서 바람을 피해가고··· 생활은 여전히 변함없이 흘러갈테지.》하고 깊은 애수에 잠긴다. 어떤이는 세월의 풍상고초를 다 겪으며 끄떡없이 서있는 그 나무를 보면서 신념을 굳게 한다. 최옥금의 아버지는 놈들에게 끌려 사형장으로 가며 이런 말을 남겼다. (그날은 바람부는 늦가을이였다.)

《지금 저 느티나무는 헐벗었어도 겨울을 이겨내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게 될것이다. 그러면 다시 새잎이 돋아나고 푸르싱싱해질것이다. 오늘 우리는 비록 죽지만 조국의 미래는 푸르러 설레일 저 느티나무처럼 번영할것이다.》

고향땅을 떠나는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이 느티나무를 돌아보며 마음속 맹세를 다진다. 정종원이는 고향과 조국을 지키는 싸움의 길을 떠나며 《잘 있으라, 너 고향의 느티나무야! 내 승리하고 기어이 다시 돌아오려니 그날 푸른 잎 설레이며 나를 맞이해다오.》하는 작별의 말을 속으로 외웠었다. 그는 맹세한대로 승리하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한해가 다 저무는 겨울이여서 앙상한 나무가지들만 남아있었으나 풍만한 몸통과 얼기설기 엇갈리여 무수하게 뻗은 가지들로 하여 당당한 위풍을 잃지 않고있는 느티나무는 그 무수한 가지들에 매달리는 찬바람을 희롱하여 갖가지 음향의 휘파람소리를 내면서 승리한 병사를 맞이했다. 이 느티나무는 밑둥아리가 얼마나 굵었던지 어른 두셋이 빙 둘러싸야 손을 맞잡을수 있었고 두가닥으로 갈라져 올라간 굵은 줄기가 수다한 작은 줄기들로 갈라지고 그것들은 또다시 헤아릴수없이 많은 잔가지들로 갈라졌다. 그래서 얼핏 보면 수많은 다리를 가진 거대한 거미를 련상시켰다. 우둘투둘한 껍질은 푸릿하면서도 컴컴한 밤빛이여서 마치 털이 부르르하게 돋아난것 같았다.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알수 없으나 굵은 몸통에 껍질이 벗겨지고 말려든 큰 상처가 있어서 그리로는 아이들의 작은 몸이 들어갈수 있을 정도인데 드러난 그 희끄무레한 속살이 어슴푸레한 저녁이나 캄캄한 밤에 사람들을 놀래우군 했다. 광복전 어느날 장칠복이가 한참 난봉을 피울 때인데 읍에 가서 잘 놀고 실컷 마시고나서 늦은 밤 바람이 씽씽 부는 허허벌판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그런데 그의 앞에서 흰옷입은 어떤 형체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걸어가고있지 않는가. 그가 서면 그것도 서고 그가 걸으면 그것도 걸었다. 《귀신이다!》 장칠복이는 머리카락이 쭈삣 일어서며 당장 술이 깨였다. 겁에 질려 휘청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놀리며 그렇게 귀신을 앞세우고 마을어귀에 들어선 그는 그 흰옷입은 귀신이 느티나무의 껍질이 말려든 그 희끄무레한 속살안으로 들어가는것을 보고 걸음을 딱 멈추었다. 느티나무옆을 지나 마을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흰옷입은 귀신이 느티나무에 붙어서 지켜보고있는것만 같았다. 느티나무의 수많은 잔가지들은 벌판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아츠러운 비명소리, 휘파람소리, 흐느낌소리, 통곡소리··· 별의별 음향을 다 내는데 그것은 귀신이 내는 소리같았다. 그러나 하여튼 술먹은 기운이 있어서 눈을 감고 냅다 달려서 나무옆을 지나 집에까지 갈수 있었는데 그를 맞아들인 처는 파랗게 질리고 부들부들 떠는 남편을 보고 기겁을 했었다. 장칠복이 귀신에 접했다는 소문이 쫙 돌았다. 그때부터 마을사람들은 밤이면 느티나무옆을 지나가기 싫어했는데 그 희끄무레한 속살이 장칠복이가 앞세우고왔다는 흰옷입은 귀신처럼 보였던것이다. 아이들은 긴긴 겨울밤이면 화로불에 감자를 구워먹으며 어른들이 해주는 별의별 귀신이야기를 다 듣는데 느티나무의 귀신이야기도 짜릿한 공포에 잠겨 듣군 했다. 옛말이야기를 들은후 옥금이는 집에 갈 때 겁이 나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면 종원이가 손목잡고 데려다주군 하였다. 그러한 공포는 날이 밝고 해가 비치면 말끔히 가셔지는 법이다. 옥금이와 몇몇 모험심이 많은 애들은 낮에 느티나무에 가서 흰속살이 드러난 그곳을 만져보기까지 했다. 사내아이들은 둘로 갈라진 느티나무의 굵은 줄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밤이 오면 다시 무섬증에 시달리였다.

제대되여 고향으로 돌아오는 정종원이는 이 고향의 느티나무에 얽힌 갖가지 추억을 더듬으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였다. 느티나무는 떠나갈 때 다진 맹세대로 승리하고 돌아온 병사를 맞이하여 기쁨의 휘파람소리와 웅글은 환성을 내고있었건만 병사는 괴로움을 느꼈다. 전쟁 3년간은 사람들을 검열한 준엄한 기간이였다. 종원이는 자기가 부자집아들이라는 수치감을 지금처럼 강하게 느껴본적은 일찌기 없었다. 옥금이가 어머니의 병에 쓰려고 곰열을 얻으러왔는데 있으면서도 주지 않았다는 아버지에 대한 환멸이 다시 온몸을 전률케 하였다. 옥금이를 무슨 낯으로 대하랴! 아버지가 무참하게 학살당한 옥금이다. 그 불쌍한 처녀를 도와주지 않는 자기 아버지의 속심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평양 외삼촌이 말한대로 값을 못받을가봐서인가, 다시 들어올것이라고 본 미제놈이 두려워서인가. 아버지가 이처럼 비렬해지고 암둔해질수 있는가, 아니 원래 그런 사람이였던가? 옥금이에 대한 죄의식때문에 종원이는 머리를 숙이고 마을로 들어갔다. 탄실이라고 하는 아주머니 한사람을 만난것이 다행이였다. 자기 집의 육중한 대문을 열고 들어선 종원이를 먼저 맞이해준것은 어머니였다. 종원이는 가슴에 매달려 흐느끼는 어머니의 어깨를 붙안고 얼어붙은듯 한 눈길로 어딘가 먼 하늘을 응시할뿐 아무말도 안했다. 아버지가 뒤따라 나왔다. 종원이는 랭담한 얼굴로 아버지를 대했다. 자기 방에 들어박힌 종원이는 그 누구도 더 만나려 하지 않았다.

이튿날 리당위원장과 리인민위원장이 그를 찾아왔다. 그때에야 마을의 당조직과 어른들을 먼저 찾아봤어야 했다는 뉘우침이 들어 그후 며칠동안 리당에도 나가고 마을의 늙은이들을 찾아가 인사를 했다. 그는 이 과정에 새 소식을 하나 얻어들었는데 그것은 자기 아버지가 춘섭이라는 피난민이 빌려달라고 한 소달구지의 하루품값으로 낟알 한말반을 요구해서 서로 싸움이 붙고 동네가 소란스러워졌다는 부끄러운 이야기였다.

생각끝에 모진 결심을 내린 종원이는 전선에서 메고온 배낭에 옷가지며 세면도구며 학습장이며 하는것들을 챙겨넣기 시작했다.

《아니 너 왜 그러니?》

어머니가 눈이 둥그래지며 물었다.

《이 집에 있다간 심장이 터지고말겠어요. 고향과 고향사람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아름답고 고상한것이였어요. 그것을 위해서 나는 목숨도 아끼지 않고 싸웠지 사유재산을 위해 싸운건 아니예요.》

그는 배낭을 어깨에 걸치고 일어섰다.

그러나 어머니가 발앞에 어푸러지며 두다리를 그러안았다.

《종원아, 얘야!···》

어머니가 통곡을 했다.

아버지도 자기 방에서 건너와 부모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빌었다. 종원이는 발목이 잡힌채 피발이 선 눈을 허둥거리였다. 그는 혀를 깨물며 주저앉았다.

그리하여 종원이는 다시 자기 방안에 들어박혔다. 우울하고 무뚝뚝한 그의 얼굴과 피발이 선 사나운 눈을 집안에서 모두 두려워했고 피했다. 아버지 정의춘이와 남편이 《치안대》를 하고 월남하여 과부아닌 과부신세가 되여 집에 거접하고있는 누이는 종원이의 눈앞에 얼씬도 할수 없었다. 그를 대상하여 밥도 날라다주고 이야기도 할수 있는 상대는 오직 어머니뿐이였다.

옥금이에 대한 생각은 망각속에 깊이 묻어두려 하였다. 그 생각만 하면 그는 엄습하는 괴로움을 견디여낼수 없었다.

 

옥금이와 조합원들은 시대의 선구자가 된 긍지와 자랑을 한껏 느끼며 새해 영농준비에 나섰다.

아침에 관리위원회 마당에 모인 조합원들앞에서 옥금은 벗어든 양털머리수건을 매만지며 짤막한 연설을 하여 추위속에서도 조합원들의 가슴을 후더웁게 해주었다.

《1월달은 농한기입니다. 추워서 일하기도 힘들지요. 그래서 개인농들은 아직 뜨뜻한 구들에서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우리 조합원들은 마을에서 그중 가난하고 그중 전쟁피해를 많이 본 령세농민들이기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해야 하고 더 뛰여야 해요. 그리고 우리 조합원들은 마을에서 제일 선진적인 농민들입니다. 뿐만아니라 군적으로도, 아니 도적으로도, 아니 전국적으로도 앞서나가고있는 선구자들입니다. 우리는 벌써 지난해 가을에 김일성수상님의 말씀을 받들고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하지 않았습니까. 때문에 더욱 부지런히 일해야 하고 모범이 되여야 해요.》

더운김을 내뿜으며 조합원들은 처녀관리위원장의 연설에 공감을 표시했다.

한편 반동놈들은 협동조합의 새해의 첫 출발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놈들은 어느날 《홰불농업협동조합》의 간판을 박산냈다. 소나무를 대패로 밀고 붓으로 활달하게 조합이름을 써서 관리위원회사무실인 옥금이네 집웃방의 바깥담벽에 내다건 그 간판이 없어졌다. 옥금이는 사방 찾아보았으나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한낮이 지나서야 손도끼로 찍고 쪼개여 박산낸 간판이 느티나무근처의 길가눈속에서 나타났다. 별로 큰 손실은 아니였다. 간판을 다시 써서 붙이면 되는것이다. 그러나 반동들은 협동화에 도전하여 행동을 개시했다는 첫 신호를 주어 조합원들을 불안케 하고 사기를 저락시키려 했다. 반대로 조합에 들지 않았거나 조합을 반대하거나 협동화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사건을 소홀히 대할수 없었다.

첫걸음을 뗀것이나 다음없는 조합에 가해진 이 도전이 큰것은 아니였으나 일정하게 조합원들의 심리에 영향을 준것은 사실이였다.

조합원들앞에서 한 관리위원장 최옥금의 열정적인 연설에 공감도 하고 지지도 표명했지만 다 그런것은 아니였다. 전재민으로 조합에 든 춘섭이는 농사군들은 원래 정월달에는 춥고 농한기여서 일을 하지 않는데 조합원들만 나와 일하는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리해되지 않아 얼굴이 찌뿌둥해있었다. 날씨가 춥기도 했다.

조합원들이 춘섭이 보고 얼굴이 왜 그렇게 세끼굶은 시에미상같은가고 놀려댔다.

《이 사람 춘섭이, 조합에 들바람이나 쐬려고든건 아니겠지? 임자가 논에서 벼단을 꺼들이지 못해 안달아할 때 우리가 도와주던걸 벌써 잊었나?》

《조합일이 힘들면 정의춘이를 찾아가게나.》

《그 령감이 자기한테 굽어드는 사람들을 낯가림하며 품삯을 매기는데 아마 춘섭이는 허술하게 본 모양이지.》

《아 그거 좀 작작 떠들더대우. 넨장.》

《허허···》

조합원들이 웃어댔다.

옥금이도 소달구지들을 끌고 들판으로 나가는 조합원들과 같이 걸으며 같이 웃었다. 그러나 처녀는 곧 시무룩해졌다. 정의춘의 말이 나오자 자연히 종원의 생각이 나며 기분이 저상되였던것이다. 종원이가 귀향한지도 벌써 보름이 넘었는데 그들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이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였다.

그가 전선으로 떠날적에 들꽃묶음을 안겨주며 《종원오빠, 승리하고 돌아오세요.》 뜨겁게 바래워준 옥금이, 《응, 념려말라구.》 례사롭게 대답하며 웃으면서 출전한 종원이··· 전쟁기간 그처럼 열정에 넘친 편지들을 주고받았건만 어째서 전승의 오늘 승리하고 귀향한 병사와 그를 기다려온 처녀는 서로 만나지 못하고있는가? 전후에도 그의 소식과 그가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린 옥금이였던가···

종원이가 고향으로 돌아온 그날이였다. 옥금이가 자기 집 웃방인 관리위원회 사무실에 앉아서 장부책을 정리하고있는데 조합원 탄실아주머니가 《관리위원장 있나?》하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밑도끝도 없이 말했다.

《과수원집 종원이를 못봤겠구만?》

옥금이는 펄쩍 놀랐다.

《종원동무가 돌아왔어요?》

《좀전에 배낭을 어깨에 걸치구 마을에 들어섰다구. 내가 맨 먼저 그 사람을 만났어. 능보령감네 집 두엄을 쳐내다가 일이 있어서 행길루 나가는데 〈탄실아주머니 아닙니까?〉 이렇게 인사하질 않겠소. 키가 쭉 빠지구 얼굴이 검실검실한게 름름한 사내대장부더라니까. 나는 누군지 처음 못알아봤다구. 〈종원입니다.〉 해서야 정신이 들었지. 〈아이구, 이게 누구야? 미제놈을 쳐이기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나.〉하니까 〈그간 고향사람들이 고생많았지요. 고향소식을 종종 들었습니다.〉 이러면서 반가와 웃는 속에서두 눈물이 그렁해지더구만. 고향이란게 그런게지. 어디 멀리 갔다오면 눈물이 앞선다니까. 종원이두 그런 심정이였겠지. 그 사람은 참 마음이 착해. 제 애비하구는 생긴것부터가 다르다니까. 뚝배기봐서는 장맛이 달다구 정의춘령감한테 어쩌면 그런 아들이 태여났을가. 제 에미를 닮았어. 령감은 왜놈종자처럼 또글또글하구 난쟁이 화상에 뭐 볼품있니? 그런데 팔자는 좋아. 정말 종원이는 잘났어. 마을형편을 묻더구만, 그래 뭐 길바닥에서 길게 말할순 없구 전쟁통에 희생이 컸지만 협동조합을 조직해서 살아가구있다구 간단히 말해줬어. 생각에 잠겨 듣더니만 후에 천천히 이야기하자면서 집으로 가는것 같더니 돌아서며 옥금이가 잘 있느냐고 묻더구만.》

옥금이는 심장이 세차게 뛰였다. 형용할수 없는 기쁨과 기대가 함뿍 담긴 처녀의 눈을 황홀해서 마주보며 탄실이는 말을 이었다.

《그래 관리위원장을 하구있다구 대답했지. 그랬더니 종원이는 왜 그런지 고개를 푹 숙이구 집으루 걸어가더구만. 퍽 쓸쓸해하는것 같았어.》

《그래요?》

전쟁이 끝난후에도 오래동안 소식을 알수 없어 속을 태우던 종원이, 그가 마침내 고향에 돌아왔다! 그런데 어째서 고개를 떨구는것일가. 승리한 전선병사가!··· 무슨 곡절이 있을가?

옥금이는 당장 종원에게로 달려가고싶었다. 달려가서 《종원오빠, 축하해요.》하고 감격의 인사를 하고싶었다. 그리고 왜 쓸쓸해하는가 따지고싶었다. 그런데 탄실이가 자리를 뜨지 않고 또 조합원들 몇사람이 더 나타나서 이것저것 이야기들을 하는바람에 눌러앉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조합원들의 물음에 왕청같은 대답을 하기도 했다.

얼마 지나서 처녀는 홀로 남게 되자 솜덧옷을 집어들고 일어서서 그길로 과수원집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우중충한 정의춘령감네 기와집을 빙 둘러싸고있는 담장과 육중한 대문을 보는 순간 처녀는 주춤하였다. 대문을 두드리게 되지 않았다. 곰열과 엉킨 수치의 아픔이 아직 생생했다. 더구나 령세농민들의 로력을 착취하고있는 정의춘이에 대한 반감은 옥금이의 달아오른 심장이 저절로 싸늘해지게 하였다. 종원이가 그의 아버지와는 같지 않을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아들은 아들일것이다. 그렇지만 그 아버지의 집에 아들이 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지금 종원이가 무엇을 생각하며 아버지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르지 않는가.

옥금이는 랑만적이였던 고중시절의 녀학생이 아니였다. 종원이와 함께 고중에 다니던 추억은 아름다운것이였고 그것은 고향이라는 따뜻한 감정으로 모든것이 애틋하게 안겨올뿐이였다. 하지만 사회생활에 눈이 트이고 전쟁이라는 엄혹한 시련을 겪고보니 고향은 애틋하고 따뜻하기만 한것이 아니였다.

옥금이는 고향을 사랑하였으나 농사를 짓는 농민이 되려는 희망을 품은적은 없었다. 세월이 옥금이를 그렇게 만들었다. 중학교시절에 옥금이는 무용소조에 잠간 다녔는데 키가 작아서 그만두지 않으면 안되였다. 웬일인지 키가 크지 않았다. 그래서 손풍금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얼마후 선생님들은 이제야 옥금이가 자기 성미와 체질에 맞는 분야를 택했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본인은 손풍금이 재미있었지만 왜 그런지 전공하고싶지는 않았다. 옥금이는 작가가 되고싶었다. 처녀는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무척 즐겨했고 읽은 내용을 시간가는줄 모르고 동무들에게 이야기해주군 하였다. 옥금이 주위에 동무가 많고 늘 사람들이 붙어있는것은 몸이 작아도 아끼는것 없이 속이 넓고 정열적인 그의 성미와도 관계되겠지만 중요하게는 소설이나 영화를 본 이야기를 잘하는데로부터 비롯된 그의 이야기솜씨때문일것이다.

《이것봐. 그래서말이야, 응?》하고 옥금이는 앞에 있는 누군가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열정적으로 말한다. 그런때 그에게 끌려들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만일 전쟁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처녀는 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작가가 되려는 포부를 실현하기 위한 다음의 로정을 따라 곧바로 나갔을것이다. 전쟁은 어린 처녀에게 너무도 일찌기 큰 시련을 강요하였다. 랑만의 보라빛 너울은 벗기여졌다. 옥금이는 돌아섰다. 그리고 허전하고 쓸쓸한 감정에 잠겨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일하며 듣자니 종원이는 리당과 리인민위원회를 찾아가 인사를 했으며 강명우리당위원장이 그의 집을 방문하여 종원이를 축하해주었다고 하였다. 리의 어른들이니까 응당 그래야 할것이고 또 그럴수 있는것이다. 그러나 관리위원장으로서의 옥금이는 개인농의 집에 찾아갈 명목이 서지 않았다.

(아니, 내야 개인농의 집이 아니라 종원동무를 찾아가는것인데 왜 명목이 서지 않아?)하고 옥금이는 주저하는 자신을 책망하였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그럴수록 그쪽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옥금이는 종원이가 온 이후 밤마다 늦도록 관리위원회에 앉아있으면서 혹시 종원이가 자기를 찾아올수 있지 않을가. 나는 그 동무가 정의춘령감네 집에 있으니 가게 되지 않지만 그 동무야 왜 나를 찾아오지 못하겠어? 자존심때문일가? 하긴 그럴수 있어. 고향땅과 조국을 지켜 싸운 병사가 아닌가. 내가 응당 찾아가서 인사를 했어야지. 오늘의 상봉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러한 착잡한 생각으로 모대기였다.

그러나 결국 옥금이도 종원이를 찾아가지 않았고 종원이도 옥금이를 찾아오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는 길바닥에서 우연히 만나는것이 제일 좋은데 종원이는 대문안에 꾹 박혀있었다. 그래서 그를 행길에서 지나치며 만나기도 힘들었다. 그런속에서 어언 보름나마 시일이 흘렀던것이다. 괴로운 나날이였다. 과수원집대문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으며 종원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누구도 몰랐다. 옥금이는 얼굴이 여윌지경이였다.

옥금이는 지나간 일을 더듬느라니 저절로 가슴이 옥죄여드는듯 하여 손으로 심장부위의 도드라진 솜옷우를 만지였다.

일을 하자. 일이 제일이다. 일을 하느라면 만시름을 잊게 된다.

옥금이는 종일 마을에서 들로 오가며 두엄을 날랐다.

낮에 군당부위원장이 웬 손님을 안내하여 현촌에 나타났는데 그들은 한창 달구지에서 거름을 부리는 옥금이를 찾아왔다.

가슴이 떡 버그러진 손님은 젊은 사람이였다.

《인사하오, 옥금동무. 영평군당위원장동무요.》

옥금이는 저으기 놀랐다. 이렇게 젊은 사람이 군당위원장이라니?··· 그런데 그 사람이 배우러 왔다고 겸손하게 말하여 옥금이는 여간 당황해하지 않았다.

조합을 조직했고 일을 시작했지만 아직 어떻게 일하며 조합을 운영해나갈지 똑똑한 구상과 계획이 없었던것이다. 옥금이는 추위에 익은 볼이 더욱 빨개지며 그의 물음에 두서없이 대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