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4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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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은 칭찬에 린색한 반면에 요구성이 매우 강했다.

며칠전, 조인철은 먼 출장지에 갔다가 오는 길로 부서에 들려 지도원들과 인사를 나눈뒤 김일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도착했음을 알리였었다. 김일은 간단히 말했다.

《나한테 잠간 왔다가오.》

조인철은 곧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김일은 《수고했소.》 하며 손을 내미는데 그의 뚝한 표정을 보아서는 반가와하는지 어쩌는지 잘 알수 없었으나 농민형의 푸수한 얼굴이라든가 서서히 움직이는 큼직큼직한 몸가짐에서 따뜻한 그 무엇이 훅훅 풍겨왔다. 조인철이 처음에는 그를 대상하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이제 와서는 여러번 상대하는 과정에 무뚝뚝하고 과묵한 외형의 내부에 충만되여있는 그의 인간적인 풍모를 느끼게 되면서 어려움이 많이 가시여졌다. 그와 가까와졌고 존경심이 커갔다.

조인철이 멀리 함경북도에 갔다온 출장보고를 끝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고했소.》하는 말을 반복했을뿐 그에 대해서는 더 다른 평가가 없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아래일군들을 지나치게 칭찬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모질게 비판하지도 않았다. 물론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나쁜짓을 했을 때는 용서가 없었지만 김일을 어지간히 파악한 조인철이는 수고했다는 그 한마디를 상당한 평가로 받아들이였다.

그간 조인철부서는 많은 일을 했다. 부부장과 과의 지도원들이 모든 도들을 분담하여가지고 나가서 농촌실태들을 구체적으로 료해장악하였다. 그리하여 총 농가호수를 장악하고 광복전의 토지소유관계와 생산수단 및 수입관계로부터 시작하여 광복후 토지개혁의 결과 그것이 어떻게 변했으며 빈농, 중농, 부농의 계급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특히 전쟁으로 인하여 생겨난 령세농민들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며 또 중농이나 부농들의 경제형편이 어떠한가 하는것 등에 이르기까지 오늘 우리 농촌의 계급적 및 경제적관계들을 종합적으로 수령님께 보고드리고 가르치심을 받을수 었었다. 또한 부서에서는 전쟁시기의 경험과 함께 특히 전후에 최옥금 등 다수확모범농민들이 시험적으로 조직한 협동조합들의 조직 및 운영경험들을 분석종합하였다. 그리고 농업협동화운동을 벌려나가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원칙적문제들을 한조항씩 수령님께 제출하여 비준받으면서 그 준비사업을 착실하게 해나가고있었다.

그러나 김일은 《수고했소.》하는 말외에 아직 이렇다할 평가를 하지 않았으며 높은 요구를 한시도 늦추지 않았다. 하긴 조인철부서에서 년중으로 결속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김일은 문건을 하나 조인철에게 내주었다.

《수상동지께서 그대로 비준해주시였소.》 하면서도 김일은 자기가 조인철에 대하여 그가 지금 함경북도에 출장가있는데 그의 열성이 대단하다고 김일성동지께 말씀드린 사실은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문건을 접수한 조인철이 의자에 다시 앉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동무네가 그동안 진행한 사업을 종합하고 분석하여 수상동지께 보고드릴수 있게 준비해야 하겠소. 수상동지께서 직접 보고를 들어주시겠다고 하시였소.》

그는 확정지은 문제와 미결문제, 제기할것들을 어떻게 준비하겠는가 하는 구체적인 방향까지 주었다.

기일이 촉박했다. 조인철은 먼 려행에서의 피로를 풀사이없이 일에 달라붙었다. 그리하여 오늘 수령님께 보고드릴수 있게 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중앙위원회로 가시여 중앙당사업에서 제기되고있는 일련의 문제들을 처리하시면서 조인철부서의 보고도 들어주시였다. 여기에는 김일부위원장과 농민부장이 참석하였다.

조인철의 보고를 들으시며 김일성동지께서는 10월달에 들어와서 림근상, 한후방녀, 최옥금 등 다수확농민들이 시험적으로 조직한 농업협동조합들의 경험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최옥금동무네 〈홰불농업협동조합〉의 조합원구성이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장악했소?》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예. 인민군후방가족, 피살자가족들을 위주로 한 령세농민과 열성농민세대 18호로 조직되였습니다. 조합원수는 모두 38명입니다.》

《경제적토대는 어떻소?》

《논 13정보, 밭 10정보, 합계 23정보의 토지에 소 5마리, 달구지 2대, 족답탈곡기 1대, 기타 연장, 기르마, 호미, 삽 등이 있습니다.》

《그게 다요?》

불필요한 질문임을 아시면서도 어쩔수 없이 묻게 되시였다.

《예···》

《빈약하군, 빈약해···》

《그래서 경제토대를 좀 갖추어보려고 중농들을 인입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광복후 토지를 분여받고 부지런히 일을 잘해서 중농이 된 농민 한세대가 가입했을뿐 다른 중농들은 다 외면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의 장인도 옥금동무가 해설사업을 하고 온 집안이 설복했지만 가입하지 않았습니다.》하고 조인철은 일반적인 문제를 떠나서 자기 가정내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저도 늦게야 알고 〈홰불농업협동조합〉의 조직실태도 료해할겸 장인을 가입시키려는 결심으로 현촌으로 내려가 장인령감에게 해설사업도 하고 설복도 했으며 나중에는 얼굴을 붉히며 목청을 돋구기까지 했습니다만 장인의 고집을 끝내 꺾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명색이 농업협동화관계 부부장인데 자기 장인 하나도 조합에 가입시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수십수백만 농민대중을 사회주의길로 이끄는 위업을 집행할수 있겠는가, 자격이 없지 않는가 하는 부끄러움과 자책감으로 머리를 들수 없습니다. 정말 수상동지를 뵐 낯이 없습니다.》

《그런데 동무의 부인은 평양에 올라왔소?》

그이께서 장인때문에 창피스러워하며 몸둘바를 몰라하는 조인철이의 마음을 늦추어주시려는 의도에서뿐만아니라 일밖에 모르는 그가 처의 병을 여전히 소홀히 하고있는것 같아서 이렇게 물으시였다.

《아직 현촌에 있습니다.》

《사람두, 어쩌면 그렇소?》

《정말 병세가 괜찮아졌습니다.》

《난 동무의 말을 믿지 못하겠소. 병세가 일없다고 한 때가 지난 여름인데 지금은 가을이 아닌가! 그런데도 평양에 올라오지 못하고 동무가 아직 합숙생활을 하고있지 않소? 혁명성이란것이 그런것이 아니요. 흔히 가족도 돌보지 않고 일에 파묻혀있는 사람을 충실하게 일을 잘한다고 평가하는데 자기 가족을 돌볼줄 모르는 사람이 당과 국가에 충실하면 얼마나 하겠소? 동무가 합숙생활을 하면서 사무실에서 자기도 한다는데 보오, 그렇게 가족과 떨어져서 되는대로 생활하며 일하니까 얼굴이 말이 아니요. 결국에는 혁명사업에도 지장을 주게 된단말이요.》

《···》

조인철은 눈굽이 불깃해서 서있었다.

《안되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즉시 송수화기를 드시고 보건상을 찾으시여 조인철부부장의 부인이 안정치료를 받고있는 현촌에 중앙병원의 의사를 보내서 움직여도 일없을것 같으면 즉시 평양에 올려다 입원시키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시였다.

송수화기를 놓으신 그이께서는 여전히 서있는 조인철이더러 앉으라고 하신후 그의 장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조인철의 장인은 중농의 범주에 속하는 전형적인 농민으로 볼수 있었다. 중농들을 두 부류로 즉 광복전부터 자작농이였던 농가와 광복후 토지개혁의 혜택으로 자작농이 되여 전쟁기간에 크게 령락되지 않은 농가로 갈라볼수 있는데 현덕칠은 앞의 경우에 해당되였다. 현덕칠은 원래 소작농이였으나 황소처럼 일하면서 자수성가하여 자작농이 된 사람이였다. 체격이 장대하고 힘이 세다고 하여 농사를 잘 짓는다는 법은 없다. 현덕칠은 우선 부지런하였고 일밖에 몰랐다. 그는 잠자는 시간과 밥먹는 시간만 손에서 일을 놓는 사람이였다. 잠도 많이 자지 않는다. 일찌감치 자리를 펴고 누워서는 코를 드렁드렁 골며 닭이 홰를 칠 때까지 깊이 잤다. 그렇게 댓시간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푹 자고 일어나서는 소한테 물을 먹이는것으로 하루일을 시작하는데 빠르지도 뜨지도 않게 쉬임없이 몸을 놀리고 갈퀴같은 손으로 무엇인가 매만지며 종일 움직였다. 밥을 먹고 상을 물린뒤 담배를 피워무는데 그 담배가 다 탈 때까지 기다리는 법이 없다. 연기를 풀썩풀썩 날리며 움쭉 일어나서는 바를 꼬든가 바구니를 엮으려고 베여온 싸리나무를 칼로 쪼개든가 하다못해 덕대에 매달린 호박이 떨어지지 않게 새끼로 감싸주었다. 김을 매는것을 보면 호미보다 손을 더 많이 쓰는것 같았다. 호미로 긁어모은 흙을 손으로 더듬어 곡식의 뿌리를 덮어주고 눌러주고 어루만지였다. 인분을 있는대로 퍼내여 흙과 섞어 썩이였고 돼지우리에 깔았던 벼짚이나 풀을 끄집어내여 웅뎅이안에 가득가득 채웠다. 채마밭에 썩힌 인분을 퍼낼적에는 그의 몸에 그 향기롭지 못한 냄새가 배여 집안사람들조차 그가 가까이 오는것을 싫어할 정도였다. 동네에서 풀거름을 제일 많이 내는 농민도 현덕칠이였다. 말은 하루 대여섯마디를 하면 그만이였다. 광복이 되자 현덕칠이는 날개가 돋친것 같았다. 현물세를 바치고도 쌀이 그득그득 남아 그는 애국미로 헌납하였다. 전쟁시기에는 전시식량증산에 한몫 하였으며 군에서 다수확농민으로 뽑히였다.··· 그러한 장인 현덕칠이 응당 협동화에도 앞장서야 할것이 아닌가 하는것이 조인철의 안타까운 심정이였다.

《전쟁시기에 그런 실농군들이 전시식량을 보장하는데서 큰몫을 담당하였고 다수확농민들도 그들속에서 수다히 나왔소. 나는 지금도 그들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소. 문제는 령세농민들이요. 우리가 조직하려는 조합은 우선 무엇이 다 부족해서 혼자서는 농사지을수 없는 령세농민들을 위한것이요. 그런데 경제적토대를 마련한다면서 중농들을 억지로 끌어넣으려 한것은 잘못이요. 아무리 집안일이라 해도 부부장동무자신이 자원성의 원칙을 어겨서야 되겠소?》

김일과 농민부장이 수령님을 따라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경험과 교훈은 무엇인가?》

이렇게 문제를 설정하시고 그이께서는 손가락을 꼽아가시며 그것은 첫째로 경험적단계에서는 조합에 들어 리익을 볼 사람들로, 다시말하여 혼자서는 살아갈수도 농사를 지을수도 없는 령세농민들로 협동경리를 조직해야 한다는것, 둘째로 경제토대가 약하기때문에 조합의 규모를 농가 15~20호, 기껏해서 30호정도로 작게 조직해야 한다는것, 셋째로 매 군에서 3~4개씩 제한된 범위내에서 경험적으로 조직운영해야 한다는것, 넷째로 조합의 형태를 여러가지로 하되 소겨리나 품앗이반과 같은 1형태, 로력일에 농민들이 가지고들어온 토지, 부림소, 집짐승, 농기구의 질과 량에 따라 15~20프로 가산해서 분배하는 2형태, 로력일에 의해서만 분배하는 높은 형태인 3형태, 이렇게 세가지로 하자는것, 그러면 의식수준이 낮은 농민들도 마음에 드는 형태를 선택하여 조합에 들게 된다는것, 다섯째로 로동계급의 국가가 이 어린 싹과도 같은 협동조합을 재정적으로, 물질적으로 강력히 지원해야 한다는것 등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우리가 이렇게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잘 운영해나간다면 가을에 가서 〈첫수확〉을 훌륭히 거둘수 있소. 그러면 중농들이 그 우월성을 실물로 보고 스스로 마음이 움직이게 될것이요. 중농들에 대한 자원성의 원칙은 이렇게 적용되여야 하오.》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경험적으로 조직하는 협동경리들을 잘 운영하여 중농들을 협동화운동에 인입시키도록 하는데서 조합의 물질기술적토대를 강화하는 문제의 중요성에 언급하시였다. 지금 령세농민들이 사상정신적으로는 준비되여있지만 경제토대가 빈약하기때문에 조합을 작은 규모로 조직할수밖에 없으며 중농들은 그것이 성공하겠는지 《두고 보자》는 립장에 서있다. 알곡생산을 늘여야 할 전후의 사정은 중농들이 협동경리에 인입될것을 요구하고있었으나 그들은 아직 그에 준비되여있지 못했다. 지금 밥을 굶고있지는 않으니 생활적으로 절박하지 않았고 또 세기를 두고 내려오는 소소유자적근성이 뿌리깊이 박혀있기때문이였다. 중농들은 자기들의 개인경리가 령세농민들의 협동경리보다 못하며 개인의 울타리를 치고 농사를 짓는것이 뒤떨어졌다는것을 현실적으로 보고 느끼기전에는 결코 개인경리를 포기하려 하지 않을것이다. 협동화운동의 경험적단계의 승리만이 그들의 마음을 돌려세울수 있다. 그런데 중농들은 총 농가호수의 60프로를 차지하고있으며 그들이 우리 농촌의 전형적인 농민들인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협동경리에 인입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이 협동화운동의 승패를 좌우하게 될것이다. (선진적인 중농들이 협동경리에 자원하여 드는것은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경우이다.)

그러므로 경험적으로 조직하는 협동조합들의 경제토대를 뒤따라 강화하여 가을에 《첫 수확》을 잘 거두도록 지금부터 예견성있게 대책을 세우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중농문제는 이처럼 관건적인 문제였다.

《다시 말하지만》 깊은 사색끝에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중농들을 잘 다루어야 하겠습니다. 조인철동무의 장인처럼 광복후와 전쟁시기에 나라의 쌀독을 채우는데 기여한 다수확농민인 실농군이 왜 령세농민들의 조합에 들려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탓하기전에 새해들어 경험적으로 조직할 협동경리들을 강화할 대책을 빈틈없이 세워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최옥금이 협동조합을 시험적으로 조직한 경험에서 주되는 문제점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하고 조인철이 말씀드리였다.

그러면 협동경리들을 조직한후 그의 경제적토대를 강화발전시킬 대책을 어떻게 세울것인가?

수령님께서는 이 문제를 수수께끼로 남기시고 당중앙위원회를 떠나가시였다.

원화리에 조직된 협동조합에 직접 나가보신 다음 대답을 주시려는것이였다.

 

이튿날 오전 10시경, 김일과 조인철부서에서 수령님께서 주신 가르치심을 어떻게 집행하겠는가 하는 연구와 토론을 하고있을 때 불시에 전화가 걸려왔다. 수령님께서 김일을 찾으시는 전화였다.

김일이 즉시 승용차를 달려 내각으로 갔다. 내각은 지난 11월에 시내중심부인 만수대언덕아래로 이사를 왔다. 마침 그곳에 폭격을 당하긴 했어도 잘 손질하면 쓸수 있는 옛 건물이 남아있었던것이다. 그래 대수리를 하고 내각이 옮겨오긴 했으나 정부청사로서 손색이 많았고 특히는 수령님을 계속 이곳에 모실수 없다는것이 누구에게나 명백했다. 새 정부청사를 지을 때까지 림시로 써야 할것이다.

그래서 내각사무국일군들과 평양시 복구건설위원회에서 새 정부청사건설을 제기하였는데 수령님께서 그것을 승인하지 않으시였다.

김일은 삐걱거리는 나무층계를 올라 널마루로 된 복도를 걸어 집무실로 향하였다.

수령님께서는 협소한 집무실안을 걷고계시다가 선채로 김일을 맞이하시였다.

《나는 방금 원화리에 갔다오는길이요.》하고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원화리는 내가 잊지 못하는 고장이요. 52년도 봄에 나는 거기 가서 품앗이반 성원들과 같이 밭벼씨를 뿌리며 하루를 보냈댔소. 그때 내가 품앗이경험을 발전시켜 협동조합을 조직해보라고 그들에게 말했었는데 오늘 나가보니 조직했더구만. 그래서 조합의 규모와 살림살이형편을 료해하여보았는데 최옥금이 조직한 조합의 형편이나 같았소. 하기야 다를수 없지. 오늘 우리 농촌의 사정은 다 같으니말이요.》

수령님께서는 원화리에 나가보신 이야기를 자상하게 들려주신후 《자, 좀 앉읍시다.》하고 걸상쪽으로 김일을 데리고 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어제 중앙당으로 가시여 경험적으로 조직하는 협동경리들을 잘 운영하며 경제토대를 강화할 대책을 어떻게 세우겠는가 하는 문제를 협의하신 내용들을 간단히 상기시키고 원화리의 협동조합을 돌아보니 더 명백해졌다고 말씀하시였다. 우리 농촌의 경우 아직 현대농기계를 요구할 형편은 못되지만 기초가 약한 건물이 허물어질수 있는것처럼 조직된 협동경리들의 경제적토대를 강화하지 않으면 경험적단계에서 협동화운동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리라는것은 자명하다.

지금 시험적으로 조직한 협동경리들의 형편은 그러한 위구를 충분히 느끼도록 한다, 일반적으로 농민은 로동계급의 지도와 방조하에서만 사회주의길에 들어설수 있으며 협동경리는 로동계급국가의 지도방조하에서만 강화발전될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협동조합들을 조직하면서 국가의 지도방조를 따라세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선 식량구입과 영농준비에 필요한 자금을 대부해주는 문제, 농기구 특히 보습을 보장하는 문제 그리고 중요하게는 부림소를 해결해주는 문제가 나선다, 여기서 농업성이 걸머진 책임이 크다 하고 수령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농업협동화운동을 물질적으로 안받침하고 행정실무적으로 지도하는데서 농업성이 잘해야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와 같이 강조하시고 잠간 생각에 잠기시였다.

농업성에서 이 사업을 누가 책임적으로 맡아서 집행할수 있겠는가? 사업능력으로 보나 꼴호즈에서 일한 경험으로 보아 성의 유력인물인 강봉석이가 적임자일수 있다. 그런데 그는 현대농기계에 토대하지 않는 협동조합은 실패할수 있다고 하면서 농촌경리의 기계화에 선차성을 부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바로 그가 마음이 돌아서기만 한다면 협동조합들의 조직에 뒤따라 국가의 물질적 및 재정적지원을 책임적으로 알심있게 할수 있지 않겠는가?

수령님께서 김일에게 물으시였다.

《강봉석동무는 요새 어떻소? 무슨 말을 하고있소?》

강봉석의 이름을 듣자 김일은 금시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럴만도 했다. 수령님께서 강봉석이를 개별적으로 만나시여 우리가 하려는 농업협동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주시고 일깨움을 주신후 그 사실을 김일에게 간단히 이야기해주었을 때 김일은 몹시 분개했던것이다. 수령님께서 워낙 성품이 관후하시여 의견을 들어보자, 기탄없이 말하라고 하시며 의견을 존중해주신다 해도 삼가할것은 삼가해야 할것이 아닌가. 일군들은 수령님앞에서 언제나 경건해야 하며 정중해야 한다. 수령님께서 협동화방침을 결심하시고 의견을 물으시는데 겸손하지 못하게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는것이 무슨 일군의 자세란말인가. 자기의 주장에서 부당한것이 무엇이겠는가를 찾아보려 애쓰는것이 옳은 태도일것이다. 김일은 이러한 립장이였다.

지금 김일은 그때의 분격이 다시 솟구쳐오르는것을 어쩌지 못하는것이였다.

《강봉석이말입니까?··· 요새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평남관개공사장에 자주 나가군 합니다.》

그는 끓어오르는 가슴을 가까스로 누르며 이와 같이 공손하게 말씀드리였다.

그러나 얼굴에 비낀 그림자는 지우지 못했다.

《아니, 협동조합에 대해서 말이요.》

수령님께서는 김일의 기분상태를 못느끼시는척 하시며 다시 물으시였다.

《그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있습니다.》

《입을 다물고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원회의에서 농업협동화방침이 결정된후에도 여전히 그것이 시기상조라고 뒤에서 말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실지로 강봉석이 그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있다는 통보가 있었다. 고민하고있다는것은 그가 당결정을 심중하게 대하고있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사실 수령님으로부터 우리가 하려는 협동화의 특성과 내용을 직접 들은 그가 그 문제에 심중히 대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절대적인것으로 믿고있는 쏘련의 경험에서 쉽게 벗어날수도 없고 한편 아직 실천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우리 협동화방침을 무턱대고 접수할수도 없는 복잡한 심리일것이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있을것이다 하고 수령님께서는 생각하시였다.

그러나 김일의 견해는 여전히 강봉석이에 대하여 부정적이였다. 그는 울기가 오른 얼굴을 들고 말했다.

《저는 강봉석동무가 입을 다물고있는것이 감정에 거슬립니다. 그가 평남관개공사장에 자주 나가있는것도 시끄러운 일들을 피하느라고 그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령님께서는 머리를 가로저으시였다.

《평남관개공사와 관련해서는 그에게서 일군으로서의 책임성과 사업능력을 보게 되오.》

그이께서는 강봉석이 그 큰 공사를 진척시키기 위하여 현장조사로부터 공사계획의 작성과 준비작업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일해왔으며 또 공사가 본격화된 지금 어떻게 현장에 대한 성적인 지도를 하고있는가 하는것만 보아도 그것을 잘 알수 있으시였다. 공사기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도 순전히 경제적인 타산이긴 했으나 가능성을 찾아낸 강봉석이였다.

《수상동지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 공사와 관련하여서는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김일이 말씀드리였다.

《그러나 농업협동화문제에 대해서는 강봉석동무가 허심하지 못합니다. 속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꼴호즈에서 기사로 일한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경험이라고··· 그의 침묵은 무언의 항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가 우리 나라에서의 협동화운동에서 앞으로 실제적인 걸림돌이 될것이라고 보고있습니다. 그가 농업성에 틀고앉아있으니 말입니다. 농업성에서 그의 발언권과 영향력은 큽니다. 조인철동무도 중앙당에 부부장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강봉석이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김일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이미 강봉석이나 또 그와 같은 사람들때문에 장차 협동화운동이 곡절을 겪을수도 있을것이라고 우려한바 있으시였다. 사실 강봉석이 저애로 될수도 있는것이다.

《그러니 김일동무의 생각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소? 농업성이 협동화운동을 행정적으로 잘 이끌어나가자면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오?》하고 수령님께서 김일이 좋은 안을 내놓을것같은 기대를 가지고 물으시였다. 김일에게는 그 물으심이 간곡한 부탁처럼 들리여 가슴이 뭉클해지기까지 했다. 수령님께서 새해들어 불을 지펴올리게 될 농업협동화운동의 성과적전진을 위해 얼마나 로고를 기울이시는가를 여기서도 뜨겁게 느낄수 있었다.

《저는 우선 강봉석이를 농업성에서 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일이 단호한 어조로 말씀드리였다.

《강봉석이를? 농업성에서?···》

뚝한 김일의 얼굴은 엄숙했다.

《예.》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시였다가 다시 물으시였다.

《그렇다면 농업성에서 누가 강봉석동무를 대신할수 있겠소? 또 누구에게 농업협동화에 대한 행정적지도를 맡길수 있겠소?》

《···》

이 물으심에 김일은 쉽게 대답을 드릴수 없었다.

《물론 찾아보면 있겠지. 우리한테 사람이 없겠소?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구만. 내가 광복후 강봉석동무를 처음 만났을 때에 그에게 우리 농업의 현대적발전에 기여해줄데 대한 부탁을 했댔소. 나는 그를 믿었고 일을 대담하게 맡겼소. 지금도 그에 대한 믿음에는 변함이 없소. 나는 강봉석동무가 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또 전원회의결정이 있은후로 고민하고있다는 말을 들었소. 여기서 그의 인간됨을 엿볼수 있단말이요.》

김일은 수령님께서 누구든 한번 믿음을 주시면 끝까지 그를 저버리지 않고 신임을 안겨주신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또 수령님께서 말씀하신 강봉석의 고민과 인간됨에 대해서도 리해되였다. 하지만 과연 강봉석이 수령님의 뜨거운 믿음에 보답할수 있겠는지? 그가 우리의 농업협동화방침을 받아들일수 없기때문에, 본질상 부정하고있기때문에 수령님의 믿음앞에서 고민하고있는것이 아닌지?···

뚝해있는 그를 보시며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진심으로 일을 하자고 하는 사람은 어차피 당의 의도를 받아들이게 되는거요. 내 오후에 강봉석동무를 만나겠소.》

김일은 의연히 불안해하는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