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2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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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회에서 본 군중의 기세는 옥금이를 크게 고무하였다.

《리당위원장아저씨, 난 막 신심이 생겨요.》하고 처녀는 마을사람들이 다 흩어져간뒤 강명우에게 검은 눈을 빛내이며 기쁨에 넘쳐 말하였다.

《지금 당장 뒤쫒아가서 호별방문을 하자요.》

두뺨이 빨갛게 익은 처녀는 젊은 육체에서 뿜어나오는 흥분을 걷잡기 힘들어하였다.

《뭘 그렇게 서두르니? 래일 천천히 하지.》

멍석우에 엉뎅이를 붙이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허허 웃기만 하는 강명우가 너무 느리고 기백이 없는것 같다.

《엄마, 열이 식기전에 서둘러야 해요!》

《얘, 좀 가만 있어라. 숨이나 쉬구 보자.》

덤비는 젊은 처녀와 침착한 늙은 강명우는 늘 이렇게 량극을 이루어가지고 서로 조화가 되는것인데 호별방문도 량극이 조절이 되여 오늘밤에는 둬집 찾아보는것으로 락착이 되였다. 1차적으로 찾아볼 대상들은 현덕칠이처럼 재력이 있고 경향성이 좋은 농민들이였다. 령세농민들에 대한 해설담화는 사실상 거의 필요없었다.

처녀는 즐겁고 유쾌한 기분으로 현덕칠령감네 집을 찾아갔다. 순옥이가 별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동무니까 반가와하는것이 응당하겠지만 무엇인가 다른 기미가 느껴졌다. 아니나다를가 순옥은 마당에서 옥금이의 귀에 대고 소근거리였다.

《조합에 들자고 아버지를 설복하는중이야. 네가 마침 잘왔어. 합심해서 공세를 들이대면 머리를 끄떡할거야.》

《그럼?···》

옥금이는 오히려 뜻밖의 정황에 부닥쳐 당황해졌다.

《황소처럼 고집쓰고 계신단다.》

순옥이가 이렇게 말했다.

옥금이는 순옥이의 말이 선뜻 리해되지 않았다. 순옥이 아버지가 그럴수 있을가.

옥금이는 즐거웁게 들떴던 기분이 금시 저상되여 얼굴을 흐리면서 웃칸으로 순옥이를 따라 들어갔다.

《아버지, 조합준비위원회 위원장이 왔어요.》하고 순옥이는 그저 이름을 부르군 하던 옥금이를 의식적으로 준비위원회 위원장이라고 아버지앞에서 부르는것이였다.

《늦은 밤에 안됐습니다.》

옥금이가 인사하자 현덕칠은 《음 네가 왔니? 어서 들어오너라. 우린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하며 반기였다. 그는 언제든지 옥금이를 만나면 애정에 넘친 눈으로 대했고 무엇이든 도와주려 하였다.

오늘 옥금이가 가까이에서 보니 현덕칠은 그새 퍽 늙었다. 주름살이 깊이 패이고 관골이 솟았으며 등이 저으기 굽었다. 전선에 나간 아들이 전사하고 맏딸 순실이도 상해서 누워있으니 아무리 억대우같은 현덕칠이라 한들 어떻게 그 타격을 진통없이 겪을수 있겠는가.

《늦도록 무슨 이야기들을 하댔어요?》

옥금이는 표정을 밝게 하려고 애쓰며 물었다.

《그저 그러루한 얘기지. 어험, 어험!》

현덕칠은 옥금이를 반기면서도 어째 좀 어색해하고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이런 일은 아직 없었다. 무엇때문에 어험어험하며 어색해하는지 옥금이는 짐작할수 있었다.

《준비위원회 위원장동무.》

순옥이가 끼여들었다.

《우리 집에서는 조합에 가입하는 문제를 토론하고있었어.》

《아마 오늘밤엔 어느 집에서나 다 그 얘길거야.》

옥금이는 대통에 담배를 눌러담는 현덕칠에게 말했다.

《저는 순옥이네가 조합에 들면 좋겠어요. 순옥이네는 글쎄 조합에 들지 않아도 자력으로 농사지을수 있고 또 여태 그렇게 농사를 잘 지어오셨어요. 그런데 조합의 일이 잘되고 토대가 굳건하자면 순옥이 아버지와 같은 다수확농민들과 열성농민들이 소와 농쟁기를 가지고 들어와서 조합일을 잘 이끌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고 생각돼요.》

《···》

현덕칠은 종이로 등잔불의 불을 달아다가 대통에 가져다대고 뻑뻑 빨았다.

옥금이는 좀 더 절절하게 계속하였다.

《저는 순옥이 아버지가 어려운 때 저를 도와주신것처럼 조합이 조직되는 이때에 조합에 솔선 들어오셔서 주동적활동을 해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기대를 가지고있고 여러모로 보아 응당 그러리라고 믿고있어요.》

《옥금아.》

마침내 현덕칠이 입을 열었다.

《내가 너나 한정녀네같은 어려운 집을 도와준건 뭐 더 얘기할게 못된다. 이웃끼리 그런 정도 없이 살겠냐? 그런데 같이 농사를 짓는건 마음이 동하지 않는구나.》

《순옥이 아버지 말씀대로 다 이웃들인데두요?》

현덕칠은 빡빡 깎은 머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는데 이마에 주름이 깊이 패이였다.

《사람들이 어디 다 한결같으냐? 다 너같다면 몰라라···》

옥금이는 웃었다.

《이 옥금이가 뭐 볼게 있어요? 열성뿐이지 어디 농사를 지을줄 알아요? 우리 품앗이반 사람들이 떠밀어주고 모두들 도와주어 제가 농사를 지은게 아니예요?》

《품앗이반하구 조합이 같으냐?》

《아버지, 기본내막은 같아요.》

순옥이가 끼여들었다.

그러자 현덕칠이 꽥 소리쳤다.

《네가 뭘 안다구 그래?》

《민청원인데 뭘 몰라요?》

《민청에서 농사를 짓느냐?》

딸을 눌러놓고 옥금이에게 웅근 목소리로 말했다.

《여럿이 모여 일하면 말썽이 있기마련이다. 박인수가 나하구 손을 맞추어낼것 같으냐? 그건 근본 안될 일이다. 내야 혼자서두 농사를 잘 짓고있는데 왜 품앗이를 해야 농사를 지을수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일해야 하겠는가 말이다. 이 얘긴 그만하자. 너두 말했지. 자원성이라구···》

실망한 옥금이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그래요, 자원성이예요.》

처녀는 더 할말이 없었다. 이이상 더 해설을 할 필요가 있을것 같지 않았다. 리해부족이라면 해설을 하겠지만 현덕칠은 어리숙하거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대가 약한 그런 농사군이 아니다. 대바르며 타산과 결심이 확고한 농민이다.

아래방에서 외손자 대성이가 올라와 현덕칠이의 어깨에 매달리였다. 현덕칠은 그애를 허리잡아 끄당겨 품에 안았다.

순옥이가 아까부터 아버지한테 면박당한것이 분해서 쌔근거리고있다가 이 순간 톡 쏘았다.

《아버지, 평양에 계신 아저씨의 체면이 어떻게 될것 같아요? 아저씨도 조합이 서면 아버지가 선참 가입해야 한다고 편지에 썼지요?》

《···》

현덕칠은 잠자코 있었다.

순옥이는 한층 기세를 올리였다.

《아버지 조합에 들자요. 최근택아저씨를 보았지요? 모두 감동했어요. 그 집과 우리 집을 대비할거란 말이예요.》

현덕칠이 딸을 노려보았다.

《이년, 내 입을 다물라 했지? 조합에 들어 농사 안되면 네년이 식구들을 먹여살리겠니?》

《농사가 왜 안돼요?》

《순옥아, 그만해!》

옥금이가 순옥이를 말리였다.

《아버지앞에서 말대답질하면 되겠니?》

옥금이는 현덕칠령감이 조합과 조합농사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가입을 찬성하지 않는다는것을 명백히 알게 된 이상 더 말해야 소용없다고 생각하였다. 사위인 중앙당부부장이 편지를 했다는데도 끄떡하지 않으니···

순옥이는 옥금이를 홱 돌아보더니 일어나서 아래방으로 내려가버리였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도중에서 포기한다고 옥금에게 의견이 있는것 같았다.

옥금이는 현덕칠이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현덕칠이 외손자와 함께 대청마루까지 따라나왔다.

옥금이는 대성이의 머리를 쓸어주고 《편히 주무십시오.》하고 현덕칠이에게 다시 인사를 하였다.

《조심해가거라.》

현덕칠의 목소리가 약간 갈린듯이 느껴졌다. 그도 인정에는 무른 사람이였다. 그러나 인정과 근본적인 리해관계를 바꿀수는 없었던것 같다. 그는 우선 농사를 짓는 농민이였다.

아래방에서 순옥이가 환자인 언니에게 무엇이라고 하소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별방문의 첫걸음에서 뜻밖에도 실패를 한 옥금이는 저으기 락심하여 별빛을 받으며 집으로 향하였다.

현덕칠이 그렇게 나올줄은 정말 몰랐다. 믿음이 컸던만큼 실망이 컸다. 그는 조합농사가 잘되겠는지 안되겠는지 자신없어 한다. 하긴 옥금이도 그것을 확신성있게 말할수는 없었다. 다만 품앗이를 해본 경험에 비추어 좀 더 큰 집단으로 뭉쳐 개인소유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 일하면 농사가 더 잘될수 있고 더 잘살수 있겠다는 희망과 락관을 가지고있을뿐이다.

과학적인 타산이고 희망이라 하여도 아직 해보지 못했으니 장담을 할수는 없는것이다. 그러나 그 길밖에 다른 길이 없지 않는가. 옥금이나 박인수네 같은 농가들은 그 한길밖에 없다. 하지만 현덕칠은 지금처럼 혼자 농사지어도 살아갈수 있다. 그러니 확신이 없는 미타한 길을 왜 택하려 하겠는가.

처지가 다르니 아직은 한길을 걸을수 없다는것인데 좋다, 기어이 우리 조합농사를 잘 지어 못미더워하는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리라. 옥금이는 이런 반발과 야심이 강하게 치밀었다. 조합을 잘 조직하고 잘 운영하여 중농들이 부러워하도록 만들리라.

그렇게 한다는것이 쉽지는 않을것이다. 현덕칠이를 앞선다는것이 헐치 않다. 그는 실농군인데다가 육체적인 우월성도 있다. 그에 대면 박인수는 키가 작고 허리도 한줌만 하여 어린애같다. 하지만 개별적인 육체의 부족점을 집단로동의 우월성으로 이겨내야 할것이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조직하는것이 아니겠는가. 현덕칠이보다 농사를 더 잘 지어야 하고 강연회에서 박인수가 말한것처럼 최근배를 《눌러야 한다.》 이런 반발심이 지금 옥금이의 피를 끓게 하였다.

그런데 글쎄 과연 그렇게 될수 있겠는지? 우선 조합이 잘 조직되겠는지? 아직은 알수 없었다.

옥금이는 조용히 한숨을 쉬였다. 이렇든저렇든 가까운 이웃이고 늘 도움을 받았고 성실하고 근면한 다수확농민이며 대바른 사람인 현덕칠이가 조합에 들지 않으려는것은 옥금이에게 있어서 괴로운 일이였다.···

그로부터 이틀후 이 현촌마을에서 토지개혁이후로 그와 못지 않게 중대한 사변의 시작으로 되는 첫 농업협동조합이 조직되였다.

가입신청자들만이 민주선전실에 모여 조합의 탄생을 선포했고 관리위원장으로 최옥금이를 선출하였다.

옥금이는 강명우가 그에게 조합준비위원회 위원장을 하라고 했을 때는 순순히 응했지만 관리위원장으로 되는것은 못한다고 뻗대였다. 나이많고 농사경험이 풍부한 농민들이 많은데 애숭이처녀가 어떻게 그들을 지도하며 조합의 농사를 짓겠는가고 하면서 응당 실농군이 관리위원장을 해야 한다고 우겼다.

강명우는 처음에는 옥금이가 그저 그래보는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처녀는 진정으로 말하는것이였다.

《리당위원장아저씨, 난 정말 자신이 없어요. 겁나요.》하고 처녀는 울상을 했다.

《옥금아, 너는 결코 애숭이가 아니다. 처녀보잡이고 다수확농민이고 에- 그리고 이악쟁이지! 더 군소리말아.》

강명우는 처녀를 달래기도 하고 욕도 해가며 설복시키느라 한동안 애를 태웠다.

《그래 나이있고 경험이 풍부한 실농군중에서 관리위원장을 할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는지 네가 한번 짚어봐라. 어서! 박인수?··· 능보령감?··· 봐라, 아무리 꼽아봐야 합당한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으니 너한테 맡기는게 아니냐? 하기야 네가 근심하는데는 일리가 있어. 나이가 어리구 인생체험두 없지, 농사두 겨우 3년을 지어봤구··· 그래두 옥금이는 품앗이반을 지도해봤단말이야. 그러니까 개인경리에서는 령감들한테 질수 있겠지만 협동경리에서는 네가 앞섰다. 수상님께서 너보고 조합을 조직해보라구 말씀하셨을 때야 뜻이 계셨을게 아니냐!》

옥금이는 더 말을 못했다. 그리하여 조합을 뭇는 첫 조합원총회에서 관리위원장의 어려운 직무를 군소리없이 맡았다.

총회에서는 조합의 명칭을 《홰불농업협동조합》이라 하고 관리위원회 사무실은 림시 옥금이네집 웃칸으로 정하기로 하였다. 18호의 농가가 조합이라는 집단에 뭉치였다.

그밖에도 조합에 들것을 지망하는 령세농민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이상 규모를 크게 하여 많이 받아들일수 없었다. 원래는 좀 통이 크게 조직하려 했는데 현덕칠이와 같은 재력이 있는 농가들이 외면하는바람에 조합의 경제적토대가 문제로 되였다. 경제적토대가 약하니 조합을 크게 할수 없었다. 그래 자연히 작은 규모로 조직이 되였던것이다. 또 일하기 싫어하는 건달군들은 아직 받아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18호 38명의 인원으로 조합을 무었다. 그들의 가족까지 합치면 조합의 식솔이 98명이였다. 토지와 축력 및 농기구를 공유하되 분배몫에서 그것의 량과 질에 따라 계산해주기로 하였다.

이러한 구체적인 토의까지 거치고나니 밤이 퍽 깊었다.

《밤도 깊었는데 이만합시다. 여러분!》하고 옥금이는 민주선전실에 모인 38명의 조합원들을 향하여 격조높이 말하였다.

《군에서 처음으로 되는 우리 증원리의 〈홰불농업협동조합〉은 오늘저녁 자기의 탄생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 마을의 첫 협동조합원들인 여러분들을 축하합니다.》

조합원들은 와- 웃으며 박수를 쳤다. 자그마한 처녀의 어마어마한 선언이 웃음을 자아냈던것이다. 하지만 즐겁고 밝게 웃는 옥금이와 조합원들은 웃음속에서 엄숙한 감정을 스스로 느끼며 가슴뿌듯해지는 긍지감을 억제할수 없었다. 탄실이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옥금이는 탄실아주머니와 눈길이 부딪치자 힘있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탄실이, 박인수, 한정녀, 능보령감, 최근택이··· 얼마나 미덥고 자랑스러운 얼굴들인가.

박수를 치는 얼굴들중에는 전제민으로서 가난하게 살면서도 《자유롭게 혼자 농사짓기》를 원하여 조합에 들려하지 않던 춘섭의 얼굴도 보였다. 옥금이가 그를 찾아가서 담화할 때 그가 이렇게 물었었다.

《내가 조합에 들면 언제부터 조합덕을 보게 되오?》

좀 어처구니없는 물음이였으나 옥금이는 친절하게 그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조합은 우리가 합동한 조직이니 누가 덕을 보고 누가 덕을 입히는 관계에 있는건 아닙니다. 그러나 조합원의 권익을 집단이 옹호합니다. 결국 그게 〈조합덕〉이겠지요. 조합덕은 조합이 생긴날부터 봅니다.》

《그런데 나는 벼단을 다 꺼들이지 못했는데 이걸 도와달라구 할수야 없지 않겠소? 그건 개인으루 농사지은거니까 조합몫이 아니지 않소?》

《그건 옳습니다. 그러나 도와드릴수 있습니다.》

《정말이요?》

《엄마, 이 아저씨봐라.》

《내 조합에 들겠소.》

춘섭이는 즉시에 이와 같이 마음이 돌아섰다.

옥금이는 약속을 지켜 조합이 조직된 다음날 첫 작업으로 그 농민의 벼단들을 꺼들이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자, 그러니 소달구지삯을 한푼도 받지 않는구만. 이게 조합이구만.》

그는 연송 감탄하였다.

《이 량반이 꽤는 좋아하는군.》

박인수가 웃었다.

《좋아 안하게 됐소? 옥금위원장, 내가 못난이였소. 없는놈이 혼자 살아보겠다구 했으니 되겠소? 정의춘이한테 소달구지 빌리러 갔다가 괄세를 받던 일을 생각하면!···》

그러면서 그는 좋아서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조합에서는 조합원들의 벼단꺼들이기와 탈곡을 품앗이형식으로 도와주었다.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식작업은 새해 영농준비로부터 하기로 하였다. 그전에 겨울철을 리용하여 조합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부업을 하기로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