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1


 
 

제 2 장

1

 

현촌의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청청하여 해가 저물자 벌써 별들이 반짝거리였다.

집집의 창문들에 불빛이 환해지고 로인들이 장죽을 빨며 마실을 다니고 아이들이 예전처럼 숨박곡질을 하면서 마을의 골목골목을 분주스럽게 뛰여다닌다.

벼가을을 끝낸 지금 어느 집에서나 오래간만에 햇곡식으로 지은 흰쌀밥맛을 보았다. 농민들은 흥성흥성 기분들이 떴다.

이런속에서 어느날 저녁, 그날도 햇곡식으로 밥을 일찌기 지어먹은 현촌사람들은 민주선전실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농민협동조합조직과 관련한 강연회가 있으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참가하라는 리당위원회의 지시를 해질녘에 집집을 돌며 알려주었었다.

호별로 호주가 대표로 참가하라는것이 아니라 로력자는 다 참가하게 되여있었다. 그래서 가령 로력자가 본인뿐인 박인수나 탄실이 같은 사람들은 혼자 참가하지만 로력자가 많은 현덕칠이와 능보령감네는 세명 참가하는 식으로 인원이 불어나서 농가 80여호되는 마을에서 150명 넘는 농민들이 모여들었다.

(증원리에서 리소재지마을인 현촌의 농민들만 참가하는 모임이였다.)

그들은 농가의 세대주와 그의 처와 딸, 인민군후방가족, 남편이나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 또는 집안에서 누군가 《치안대》에 가담했다가 도주하여 머리를 들지 못하는 월남자가족, 저 남쪽지방에서 피난하여 와서 사는 피난민 등 농사를 짓는다는 뜻에서는 같지만 살고있는 처지와 환경은 형형색색이였다.

마을이 다 모이니 민주선전실이 터져나갈듯이 꽉 찼다. 민청원들이 멍석과 가마니들을 날라다 깔고 난로불을 피워 방안을 덥혔으며 주석단과 연탁도 준비해놓았다. 이 민주선전실은 지주 현무림의 마름이 살던 집을 간벽들을 치고 칸들을 합쳐서 내부를 넓게 개조한 건물인데 전쟁시기 폭격에 상하고 미제놈들이 헐어다가 불을 때기도 하여 페허로 되다싶이한것을 전후에 다시 수리하였다. 이곳에서 회의도 많이 하고 영화도 보았고 예술소조공연도 하였다. 그러나 협동조합을 조직하는 문제의 강연회를 하기는 처음이였다.

조합을 조직한다는 말이 떠돈지는 며칠 잘되였다. 하긴 최옥금이를 위원장으로 하는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여 벌써 그 조직의 핵심으로 될 농민들을 장악하고있었다.

그런데 조합의 조직을 두고 내돌리는 여론가운데서 조합이 혼자서도 능히 농사를 지을수 있거나 현재 잘살고있는 농민들을 희생시켜 즉 그들을 끌어들여 혼자서는 농사지을수 없는 가난한 령세농민들과 피살자가족들에게 살길을 틔워주고 리익을 가져다주는 조직이라는 소리가 적지 않은 농민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하고있었다.

《품앗이처럼 하는게 아니요?》

《그것과는 근본 다르대요, 토지, 소, 사람, 세간살이 할것없이 말짱 다 합쳐가지구 네것내것 없이 쓰구 일하구 먹기두 같이 먹는다는구만. 그래서 이름부터 품앗이하구는 다르지 않소?》

《모를 소리군. 그렇게야 어떻게 살며 농사를 짓는다든가? 농사란 자고로 혼자서 짓게 되여있는거야.》

《그러니까 글쎄 땅도 뺏기고 소도 뺏긴다는게 아니요. 이런 벽창호같은 령감이라구야! 다시말하면 있는 집의걸 떼다가 가난뱅이한테 붙여주는거라구. 그래 저 〈쥐포수〉박인수같은게 살구멍이 생겼다구 버쩍 열성이 아니요? 무슨 준비위원이랍데다. 그 〈쥐포수〉같은게 고양이 뭘 앓듯 밤낮 우는소리만 하면서 하루 일하구는 열흘 쉬여 어디 농사를 제대로 짓고살았소? 녀편네등에 얹혀살았지. 그래 가난을 면하지 못했던것인데 녀편네마저 죽었으니 한지에 나앉은 신세 아니요. 그런데 조합이 생긴다니 형님같은 실농군들이 뼈빠지게 일하면 그걸 등쳐먹으며 팔자를 고치게 되겠지요. 헤헤···》

《넨장할놈, 웃긴 왜 웃어? 누가 뭐 그 〈쥐포수〉하구 농사를 같이 짓겠대?》

최근배라는 농민의 말에 현덕칠이는 화를 벌컥 냈다. 둘째딸 순옥이가 좋게 하던 말과는 소문이 달랐다. 박인수, 한정녀같은 사람들을 도와주는것과 땅도 가산도 다 합쳐가지고 같이 일한다는것은 판판 다른 문제다. 그러나 어느쪽이든 남의 말에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는 그는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랬다고 그는 자기가 직접 당해보기전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이런 여론과 함께 특히 소홀히 할수 없는것은 조합에 들어 리익밖에 얻을것이 없는 령세농민들속에서 일부 사람들이 여럿이 모여 일하면 합심이 되지 않고 건달이 생기며 농사를 망친다는 말에 머리를 기웃거리는것이였다. 농민들에게 옳은 인식을 주어 그들이 조합의 조직사업에 주인이 되도록 해야 하였다.

그래서 오늘 급기야 강연회를 조직한것이였다.

민주선전실에 농사군들로서 올 사람은 거의다왔다. 과수원집에서도 주인인 정의춘령감이 뒤쪽에 와앉았는데 그와 친척벌되는 사람의 말소리를 들으며 또릿또릿한 눈으로 웅성거리는 방안을 자신만만하게 살핀다. 지금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중에는 그에게 빚을 지고있거나 소를 빌려쓰고있는 가난한 농민들이 많았다. 그들은 정의춘이와 눈길이 마주치면 어줍은 미소를 짓고 공손히 인사를 보내였다. 정의춘의 눈에 들려고 그쪽을 우정 돌아보는 농민도 있었다.

정의춘이는 손바닥으로 노랑수염이 붙어있는 턱을 슬슬 쓸었다. 그렇다고 하여 정의춘이가 속이 아주 편안한것은 아니였다. 그는 어려운 때 옥금이네를 외면한 일때문에 은근히 속이 켕기여 어떻게 하든 옥금이에게 잘 보이고 옥금이를 잘 대해주려고 애쓰고있었다. 그는 아들 종원이가 자기 집보다 옥금이에게 더 편지를 자주 했다는것을 알고 이것을 리용하여 옥금이에게 접근하려 했다.

며칠전에 그는 옥금이와 길을 어기는 기회에 정전이 되였는데 종원이한테서 소식이 없으니 어찌된 일이냐, 너한테는 편지가 왔느냐고 물었다. 옥금이는 눈을 내리깔고 《안왔어요.》하고 차겁게 대답하고는 치마바람을 일구며 지나쳐버리는것이였다. 일전에 사과를 한바구니 보냈더니 그것도 되돌려 보내왔다.

그는 부아통이 터져올랐으나 꾹 참았다. 참지 않을수 없었다. 오늘저녁의 강연회같은것도 사실 자기는 협동조합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있는 정의춘으로서 참가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옥금이와 마을사람들, 리에 잘 보이기 위하여 일부러 참가하였다. 또 대체 협동조합이란것이 어떤 조직이고 농민들이 그것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고싶기도 하였다.

정의춘이말고도 이채로운 인물로는 역시 이런 장소에 올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 과부 조영란이였다. 몸집이 실하고 얼굴이 너부죽한 쉰고개를 갓 넘어선 조영란이는 남편이 죽은후 머슴과 품팔이군들에 의거하여 농사를 지어먹다가 광복후 머슴을 두지 못하게 되자 장사로 돌아선 드살이 센 녀자였다. 원래 읍의 장사군가정에서 태여났던만큼 그 일에 솜씨가 있는데다가 읍이 코앞이여서 장사하기에는 아주 편리했다. 마을사람들은 여러가지로 활동무대가 넓은 그 녀자에게 의거했다. 젊은 시절에 환한 얼굴과 실한 몸매로 하여 퍼그나 육감적이였던 그 녀자를 누구나 기억하고있다. 지금은 그 매력이 징그러운 인상으로 바뀌고있는데 그래도 아직 티는 남아있었다. 들어오자바람으로 녀편네들속에 끼여들어 말보따리를 푸는 그녀자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무엇때문에 강연회에 왔는지 알수 없었다. 그렇다고 온 사람을 보낼 필요는 없어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주석단에 리인민위원장과 리당위원장 강명우 그리고 최옥금이 나와앉자 웅성거리며 끓던 방안이 조용해졌다. 흰저고리에 검은치마를 수수하게 입었어도 애틋한 미소와 청춘의 활력이 넘치는 최옥금이와 등이 휜 강명우령감은 너무 대조가 되였다. 그런데 그러한 심한 대조는 오히려 두사람을 이상하게도 서로 어울리게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옥금이를 사랑했고 강명우를 존경했다.

옥금이는 평양에서 있은 큰 대회에서 토론도 하고 주석단에도 높이 앉아보았지만 마을사람들앞에 처음 나서는것이 부끄러운듯 수집어하면서도 반짝이는 까만 눈으로 한동네사람들을 정겹게 살펴보고있었다. 여위고 등이 휜 강명우는 쿨룩쿨룩 기침을 했다. 그는 장내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려 현촌의 조합준비위원회 위원장인 최옥금동무가 강연을 하겠다고 말했다.

강연회는 좀 길었으나 옥금이가 품앗이를 뭇던 때로부터 시작하여 수령님의 말씀을 받들고 현촌에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하기로 결심하게 된데까지를 어찌나 실감있고 재미나게 이야기하는지 농민들은 지루한줄을 몰랐다. 그런데다가 조합이 매 사람의 리해관계와 운명과 련관된것이여서 더욱 열심히 귀를 기울이였다.

옥금이의 연설이 끝나자 물어볼것이 있으면 질문을 하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앉은 자리에서 서로 옆사람을 돌아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는데 차츰 목소리들이 높아지면서 강연회장이 벌집처럼 웅성웅성 끓었다.

《자, 그만들 떠들구 모를게 있거나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들 보시오. 담배는 피우지 마우. 새별이 아버지! 녀자들도 있는 군중장소에서 실례가 되지 않겠소? 가뜩이나 덥구 공기가 탁한데···》

강명우가 말했다.

《아, 이거 내가 실수를 하는군!》

담배를 즐기는 새별이 아버지는 흥분한김에 대통에 성냥을 그어대다가 충고를 받고 쩔쩔 맸다.

웃음이 터졌다.

《뭐 아직 대통에 불을 달지는 않았으니까 용서를 합시다》

누군가 롱을 했다.

《그대신 조합에는 선참으로 들어야 하우.》

《허허···》

《넨장할놈, 담배하구 조합이 무슨 상관이야? 어험! 좌우간 말이 난김에 그럼 내가 먼저 하나 물읍세다. 그러니까 조합에는 들구픈 사람만 들갔소?》

《예.》

옥금이가 선뜻 대답하였다.

《리해관계가 있는 사람들로 조직합니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장차 농촌의 발전을 위한 선진적인 조직이기때문에 의식적이고 열성적인 농민들은 협동조합과 나라의 발전에서 자기의 리해관계를 찾게 됩니다.》

옥금이는 이렇게 대답하며 순옥이아버지 현덕칠이를 보았다. 현덕칠이가 지금 당장은 조합에 들어 품을 합치지 않아도 되는 재력이 있고 근실한 중농이지만 이런 농민들을 더러 망라시켜야 조합의 물질적토대가 갖추어지며 조합을 외면하려는 농민들을 교양하는데도 좋을것이라고 생각하였기때문이였다. 옥금이는 강연회가 있은후 첫째가는 담화대상으로 그를 내정하고있었다. 사실 담화를 안해도 농민부 부부장의 장인이니 선참으로 가입할것으로 기대되였다.

그는 지금 민주선전실 앞쪽에 둘째딸 순옥이와 며느리를 거느리고 나와앉았는데 무릎우에는 외손자 대성이가 앉아있었다. 강연회장으로 올 때 그애의 손을 잡고왔었다.

《내가 좀 묻겠소.》

바로 현덕칠이의 귀에 요언을 불어넣던 최근배가 불쑥 일어섰다.

《협동조합이란게 말하자면 큰집살림과 같은것일텐데 식구 서넛만 되여도 의합이 되지 않고 건달군이 있기마련인즉 항차 남남이 모인 큰 세간살이가 잘되여갈가요? 일을 누가 많이 하고 누가 적게 하는지 그건 어떻게 알며 가을에 가서 나누어먹기는 또 어떻게 나누어먹소? 돌아가는 말은 먹는것두 같이 먹는다는데 그러면 누가 뼈심을 내서 일하갔소? 결국은 이게 일을 근실하게 해서 잘사는 사람을 희생시켜서 저 박인수처럼 못사는 사람을 리익보게 만드는게라구 하는 말이 옳지 않겠는가, 난 이런 생각이 드우.》

이 말에 발끈한 박인수는 앞줄에서 뒤쪽으로 상체를 홱 돌리며 후들후들하는 손가락을 내흔들면서 가늘게 떠는 고음으로 소리쳤다.

《뭐가 어쨌다구? 내가 네 덕을 볼 사람 같으냐. 내가 먼저 싫다. 너 같은것 하구는 협동을 안할테니 배를 앓지 말아.》

체소하고 쥐상인 박인수는 빨개진 얼굴에 땀까지 내돋았다.

《흥, 내 그럼 임자한테 하나 묻지.》

최근배는 떡심좋게 유들유들 웃었다.

《임자는 땅 삼천평밖에 없는 알거지나 같아. 그런데 내가 소와 달구지, 농기구, 땅 오천평을 가지구 자네하구 합치면 자네는 그만큼 리가 날게구 나는 그만큼 떼우는게 아닐가?》

《너 이놈, 강연회에 와서 강연은 듣지 않고 뭘 생각하고있었어? 옥금이가 설명을 할적에 귀구멍에 말뚝을 박았댔는가? 솜뭉치를 틀어막았어?》

이렇게 웨쳐대는 사람은 수염이 시커먼 자위대장이였다.

《강연은 듣지 않고 반동놈의 소리는 귀가 항아리만 해서 듣구 다니지? 그래 대체 어느놈이 그런 반동여론을 돌려? 누구야? 말해!》

최근배는 좀 당황해서 어물어물 대답했다.

《글쎄 그런 말이 돌아요.》

《좌우간 누구든지 자네 귀에 대구 수군거린놈이 있겠지? 그게 누구야?》

《정거장에 나갔다가 대합실에서 들었소. 말한 사람은 기차타고 가버렸소.》

《하- 하- 하-》

《웃지들 말아. 반동선전을 하는데 웃고들 있는가. 엉?》

자위대장이 분기를 터뜨리였다.

《아니, 내가 반동선전을 해요?》

최근배도 불끈해지며 대들었다. 가만 있다간 좋지 않을것 같았다.

《그럼 그게 반동선전이지 뭔가?》

《쳇! 령감은 봉화재에서 신호탄을 쏴올리던 반동놈이나 잡소. 공연히 애매한 사람한테 삿대질 말구요.》

《잡는다. 내 잡아내고 말아. 네놈처럼 횡설수설하는자들의 뒤에 그 반동놈이 있단말이야. 코웃음치지 말아! 저기 조영란이는 왜 와서 입이 귀밑까지 째지게 웃으며 좋아하는거야? 반동소리 하는데 뭐가 좋아? 임자는 장사군이지 농민은 아니야. 한데 왜 와서 웃어대는거야?》

자위대장은 거의 흰자위만이 보일 정도로 눈을 희뜩거리며 조영란이에게 손가락질을 하였다.

《저 령감이 환장을 했나? 나는 왜 거들어?》

얼굴이 넙적한 조영란이가 마주 삿대질을 하며 대들었다.

《내가 뭐 령감보구 가려운델 긁어달랍디까, 그 말라빠진 등때기에다가 업어달랍데까. 그럴 사람이 많아서 걱정이요.》

소리죽인 웃음이 물결치는속에서 자위대장 장칠복이는 툭 불거진 광대뼈가 불깃해지며 분기를 어떻게 터뜨릴지 몰라 가쁜숨을 몰아쉬였지만 결국 녀인의 드살앞에서 기가 꺾이고말았다. 조영란의 열기띤, 사납게 쏘아보는 그 까만 눈이 무서운 매력으로 장칠복이를 꺾었다. 젊었을적에 난봉군이였던 장칠복이는 조영란이에게도 마음을 두었지만 그것은 그림의 떡이라 군침을 삼키였을뿐 한숨만 쉬며 어쩌지 못했었는데 그 시절의 그 미련이 30년가까이 지난 오늘까지 작용하는것일가?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그 녀자에게 느닷없이 삿대질을 하여 오히려 반발을 불러일으키는것일가? 역시 그 미련때문이였을가. 그 미련에 대한 도전이였을가. 그렇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가 그 녀자에 대한 미련과 드살때문에 당황해하며 기가 죽은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송곳같이 예리한 눈이 그 녀자를 보는 순간 어떤 불쾌한감을 느꼈던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어떤것인지 알수 없으나 어쨌든 예감이 불길하였다. 그래서 그 녀자를 거들었던것이다.

한편 조영란이는 자위대장이 사납고 큰소리를 탕탕 치군 했지만 그를 우습게 보았다. 조영란이는 그 어떤 사나이도 마음먹으면 녹여낼수 있다는 자신심을 조금도 버리지 않고있었다.

조영란의 걸죽한 입심에 말문이 막힌 장칠복이는 《그런데 왜 웃는거야.》하고 어색하게 중얼거렸다.

《우리끼리 얘기를 하다가 웃었소.》

조영란이 옆에 앉은 아낙네를 가리켰다.

《그럼 됐어. 제길 떠들어대긴 게사니고기를 먹었나?》

퍼그나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제가 먼저 떠들어대구선?》

조영란이도 혀아래소리로 종알댔다.

《가만, 진정들 하오.》

강명우가 웅성거리는 장내를 정돈하였다.

《내가 말 좀 합시다. 최근배동무가 질문한데 대해서 대답해보기요.》

그는 조합은 농민들이 가지고 들어오는 토지, 축력, 농기구에 대한 값을 지불하며 분배몫에서 계산해준다는것, 그런데 중요한것은 협동경리의 우월성이 발양되여 농사가 잘되고 생활수준이 쑥 오르면 박인수동무가 최근배동무네보다 더 잘살게 된다는것, 그때에 가서는 반대로 박인수가 《떼울가봐》 최근배와 협동하지 않겠다고 할수 있다는것 등을 협동경리의 미래와 결부시켜 설명하였다.

농민들이 웃으며 최근배를 놀려대자 그는 《내 걱정은 마오. 흥, 래년가을에 가서 보면 알게 아닌가!》하며 얼굴이 댕댕해서 맞섰다.

《그건 옳아요. 가을에 가서 보면 압니다.》하고 옥금이가 말했다.

《품을 합쳐 일함으로써 가을에 어떤 열매를 가져왔는지 하는것을 우리는 품앗이를 통하여 체험했습니다. 그렇지요. 탄실아주머니?》

《체험했다뿐이요? 글쎄 아까 회의오면서도 내 강동집형님한테 말했지만 조합이 품앗이하구는 다르지요.》 앉아서 말을 시작한 나이 30이 넘는 탄실아주머니가 일어서며 계속하였다.

《이건 몽땅 공동소유를 하는거니까. 그러나 그게 오히려 더 좋지 않겠어요? 품앗이를 하면서는 내 밭, 네 일하며 신경을 썼지만 여기서는 다 내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더 단합이 되구 일이 잘될거라구 봐요. 옥금이의 말을 들으니 원화리조합이 바로 그렇대요.》

《바로 그거요!》

강명우의 푸른 하늘같은 눈이 더욱 선명히 빛났다.

《탄실동무가 바로 말했소.》

옥금이는 미더운 눈길로 탄실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군대에 나간 탄실의 남편에게서 정전이 된후 편지가 왔다. 그는 전쟁이 끝났으니 고향으로 돌아가 당신과 함께 다시 농사를 지으며 재미나게 살아야 하겠는데 정세가 긴장되여 총을 놓을수 없다면서 혼자서 힘들겠지만 좀 더 참아달라고 편지에 썼다. 좀 더 참으며 농사를 잘 지어야지, 살아있다니 그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야 하고 탄실이는 남편의 편지를 보여주며 옥금이에게 말했었다.

기본 의지해야 할 사람들은 역시 인민군후방가족이나 전사자, 피살자가족이며 가난한 농민들이다. 아마 최근배는 지금 속으로 《그렇게 품을 합쳐 리득을 본 너희들이나 협동을 하라구, 재미를 봤으니까. 나는 그런게 없어두 잘 살터이니 상관말라구.》하고 도전하고있을것이다. 그리고 조영란이나 저 정의춘령감은 최근배의 도전을 깨고소해할것이다. 조영란이는 농사군이 아니고 정의춘이는 현촌의 첫째가는 부자이다. 물론 조영란이 토지를 좀 가지고있으며 정의춘이는 자기가 직접 밭갈이도 하고 논에 퇴비도 낸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오늘저녁 모임에는 불청객이나 같다. 옥금이는 자위대장이 조영란이를 짚으며 한바탕 해댈 때 같이 의분을 느끼였었다. 과연 무엇때문에 저 녀자는 여기 나타나고 웃어대고있는가. 그리고 정의춘이 차돌같은 이마를 반들거리며 앉아서 이쪽저쪽을 살피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있겠는가? 옥금이가 턱에 검불처럼 붙은 노랑수염을 손바닥으로 쓸며 눈이 또릿또릿해서 앉아있는 정의춘이를 보며 괘씸한 심정을 가까스로 누르고있는데 누군가 일어섰다. 앞에 앉아있던 박인수였다. 못산다고 괄세한 최근배한테 좀 짭짤하게 면박을 주지 않고는 속에 옹친것이 내려가지 않을것 같아서일가? 아니 결코 그때문만은 아닐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꼭 최근배가 나를 괄세했다 해서 하는 말은 아니웨다. 협동조합이 싫구 소가 아까우면 그만두라지요. 없는 사람들끼리 하면 돼요. 품앗이두 우리끼리 했는데 조합이라구 못하겠소? 손해보구 떼울것 같다면 그만두라구 합세다. 뭘 좀 있구 밥술이나 먹는다구 재세하는 꼴 보기 싫소. 있는 사람들은 혼자서두 살아갈수 있으니 꼭 조합에 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요. 그러나 나같은 사람은 조합에 들어야 농사를 지을수 있소. 내가 원체 신체가 든든치 못하구 근실하지두 못해서 농사군노릇을 제대루 하지 못한건 사실이지만 아들애가 군대가지 않구 녀편네가 살아있다면 지금처럼 한지에 나앉은 사람처럼 돼서 남의 괄시를 받지 않을거요. 아들이 군대갔다구 〈치안대〉놈들이 소마저 끌어다가 먹어치웠소.》

박인수의 고음이 떨리였다.

누군가 뒤쪽에서 《그건 다 아는 소리요. 간단히 말하구려.》하였다.

《내가 말하자는건 그랬어두 품앗이를 해서 살아났다는거우. 그런즉 나는 조합에 들어 더 근실하게 일하겠쉐다. 조합에는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빈들거리는 사람은 필요없지요. 합심하구 근실하게 일해서 최근배같은걸 눌러야 하우.》

《그만하우. 우리한텐 선동이 필요없소.》하고 앉은 자리에서 말하는 사람은 박인수처럼 가난한 사람이였다.

《최근배얘기는 더 하지두 마우.》

《흥!》하고 최근배는 코를 불었다.

《그러면 안됩니다. 다 한마을사람들인데 있고없다해서 편을 가르면 안돼요.》

옥금이가 듣다 못하여 말하였다.

가운데서 마치 기둥이 솟아오르듯 여위였으나 뼈마디들이 울뚝불뚝한 거쿨진 농민이 불쑥 일어났다. 옥금이가 보니 그는 최근배의 사촌형인 최근택이다.

그도 최근배처럼 재력이 있는 농민이다. 아마 최근배의 편을 들려고 일어서는것 같은데 흥분하여 긴 턱이 후들거리였다. 옥금이는 잘못하다가는 싸움이 붙을것같아 불안스러워져 최근택이를 진정시키기로 하였다.

《아저씨, 앉으시라요. 강연에 대해 물어볼것이 있으면 물어보라 했지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질내길 하자는건 아니지 않아요?》

《아니야, 따질건 따져야 해.》하고 벌써 눈알까지 충혈된 최근택이가 거세게 숨을 내뿜으며 웅글게 말했다.

《뭘 따진다는건가? 앉으래두.》

강명우도 이렇게 그를 만류하였다. 최근택이는 원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하는 법이 없는, 입이 무겁고 힘이 장사같으며 고집이 꺾쇠같은 사람이다. 젊었을적에 싸움도 많이 했는데 그렇다고 그자신이 싸움을 즐긴건 아니였다. 옆에서 싸우는것을 지켜보고있다가 옳거나 약한 사람이 밀리게 되면 의협심이 발동되여 무릎을 와들와들 떨기 시작하고 다음에는 자신을 걷잡지 못하고 긴팔을 휘두르며 뛰여들군 하였다.

아이들은 이 무뚝뚝한 사나이를 보면 피해 달아나군 했다. 옥금이도 어렸을적에 그를 무서워했고 싫어했었다.

최근택은 싸움판에 뛰여들 때처럼 긴팔을 내흔들었다.

《여보. 리당위원장. 내 말을 막지 마우. 그래 내가 언제 이런데서 말하는걸 들어봤소?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 막지 마오.》

그는 한숨을 내쉬였다. 무릎이 떨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지 다 알지 않소. 왜들 쳐다보는거요? 쌈군이구 지주 현무림의 머슴으루 말처럼 일했구 늘 배가 고파서 먹을것을 찾아헤맸소. 이 힘가지구두 동네에서 제일 머저리구실을 했소. 저 옥금이가 이제는 다 커서 연설이랑 잘하는데 아이때는 날 보기만 해도 무서워서 내빼군 했댔소. 그런데 내가 광복후에 일전한푼 내지 않고 땅을 분여받았소. 우리 장군님덕에 최근택이 땅 생기고 흰쌀밥먹게 되고 사람구실을 하게 됐소. 휴-》

그는 괴롭게 한숨을 내쉬였다. 여기까지 말하기가 조련치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좀 더 말을 해야 속이 확 풀릴수 있었으므로 그는 계속했다.

《현무림이한테 뺏겼던 힘을 제 농사를 짓는데 깡그리 쏟아부으니 논밭에서 낟알이 황금처럼 쏟아져나오는구려! 그래 소두 생기구 기와집두 생기구 재산이 생겼소. 그런데 이게, 재산이란게 사람의 량심을 어지럽히는구만. 나두 사촌동생 근배처럼 빈털터리 농민들하구 합치면 손해를 보지 않겠는가, 내 뼈심을 들이구 땀을 들인 소를 어떻게 거저 내놓겠는가 하는 아쉬운 생각에 눈이 흐려지더라니까! 그래, 내가 잘나서 재산이 생겼는가. 엉? 사람이 은혜를 잊으면 짐승만도 못해.》

그의 무릎이 눈에 띄게 흔들려서 바지가랭이가 춤추듯 하였다. 옆에서 그의 녀편네가 눈물을 닦고있었고 군중들은 깊은 생각에 잠겨 침묵을 지켰다.

《긴말 안하려우. 옥금아, 조합을 조직할 때 내 이름두 적어넣어라.》

그리고 그는 무너지듯 주저앉아서 후들거리는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였다.

《네, 아저씨! 이름을 올리겠어요.》

기쁨에 넘쳐 이렇게 대답하며 웃고있는 옥금이의 흑진주같은 눈에도 이슬이 맺히였다.

저 거쿨지고 무뚝뚝한 최근택의 마음속에 이처럼 아름다운것이 깃들어있었던가.

최근택의 심중토로는 현촌마을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것 같았다. 하지만 농민은 농민이였다. 강연회장에서는 흥분했으나 집에 뿔뿔이 헤여져가서 가족들끼리 다시 토론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흥분을 삭이고 타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날밤 현촌마을은 늦도록 잠들지 못하였다. 조합의 가입을 적극 지지한 령세농민들도 정작 이제부터 토지와 농쟁기들을 합치고 집단로동을 한다고 생각하니 혼자서 재미나게 농사짓던 옛일이 그리워지며 그 어떤 막연한 불안감이 가슴에 깃드는것을 어쩌지 못하였다. 막내아들을 재우고 밖에 나와 앉은 박인수는 토방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뻑뻑 빨면서 장차 조합일이 어떻게 되여가겠는지를 생각하였다. 사실 그는 이제와서 개인재산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전쟁통에 남은것이란 삼천평되는 토지뿐인데 그것도 따져들어가면 나라에서 준것이지 제가 뼈심들여 번것은 아니다. 미련이 있다면 토지개혁후 제땅에서 자기 소를 가지고 녀편네와 함께 재미나게 일하던 그 시절의 추억뿐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말그대로 추억으로 남았으며 그는 오늘의 집단로동속에서 살길이 열리였고 또 여기서 새로운 재미를 보게 되였다. 그래서 영광스럽게도 수령님을 만나뵈운 자리에서 내각책임참사가 협동적로동의 필요성을 말씀드릴 때 그의 말이 옳다고 자기들의 심정을 면바로 맞혔다고 지지했던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조합이 조직되면 조합일이 잘 되여나가도록 발벗고 나서서 옥금이를 도와 힘껏 일해야 할것이다! 박인수네 집에서 몇집 건너에는 건달군으로 소문난 영달이라는 사람네 집이 있는데 도박과 술로 허송세월하는 그는 조합에 들자고 하는 처에게 《너나 들려무나.》 한마디 던지고 술을 마시면서 아무런 구속없이 혼자사는 재미에 대하여 떠벌이였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누가 밥을 먹여주는가? 처가 뼈빠지게 일해서 밥을 먹여주어야 하는것이다. 평생을 남편의 구박과 고된 로동과 가난속에서 시달려오는 처는 울면서 이제부터라도 조합에 들어 집단의 힘과 방조속에 자기의 로력도 바쳐가며 일하자고 영달이에게 하소연하였다.

드문드문 도박에서 횡재도 하는 영달이는 녀편네의 하소연을 귀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영달의 처가 눈물을 흘리는속에서 이 농가의 밤도 깊어가고있있다.

최근택이는 처와 함께 소며 돼지며 탈곡기들을 어루만져보고 돌아보면서 자기의 재산에 대한 애착과 그것을 내놓아야 하는 아쉬움과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있었다.

현덕칠이네 집에서는 민청원 순옥이가 자기네도 조합에 들자고 끈덕지게 설복하고있었다. 며느리도 순옥이편이였으나 범같은 시아버지앞이여서 감히 의사표시를 못하였다. 현덕칠자신은 대통을 빨며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