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7


 
 

제 1 장

7

 

밤에 조인철은 평양역으로 나가 북행렬차에 올랐다. 그는 좀 서둘러 떠났다. 책임부관이 그를 불러 시골에서 치료를 받고있는 안해에게로 당장 떠나라고 지시하였던것이다.

그래 급기야 떠났는데 차에 오르고보니 머리가 복잡한데 차라리 잘되였다는 위안도 들었다. 오래간만에 두엄냄새와 흙냄새를 맡으며 땅을 밟아보고 농촌실정도 료해할겸 현촌으로 가자. 김일부위원장의 엄한 질책에 일리가 있다. 그는 자기가 토지개혁이후 고향을 떠나온 다음 땅과 멀어졌다는것을 부인할수 없었다.

조인철은 렬차가 진동하는데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비좁은 차칸에 앉아있었다. 정전이 된후 사람들의 류동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차칸에도 려행자들이 차고넘치였다. 짐보따리들이 툭툭 부딪치고 려객들이 떠들어대며 분주스럽게 오고갔다. 하지만 그는 번잡한 차칸의 분위기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김일과의 담화가 무엇을 의미하며 그 결과로 어떤 일이 생기겠는지 알수 없어 안해와 아들을 찾아가는 이 걸음이 가볍지 못했다. 수령님께서 심려하셨다고 하기에 할수없이 떠났지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정황에서 그는 결코 움직이지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일단 떠난바에는 농촌현실을 체험하려는 뚜렷한 목표를 세웠다.

그는 물론 안해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있어 이따금씩 그것이 가시처럼 찌르군 했으며 얼마후면 가족과 상봉하게 된다는 기쁨이 문득문득 솟구치면서 다른 번잡한 상념에서 일시 벗어나군 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김일부위원장과 있었던 담화에로 되돌아가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명백한것은.)하고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였다.

(김일부위원장동지가 지금 론의되고있는 농업협동화에 대한 나의 견해를 알려했으며 그것을 알고는 대단히 불쾌해하였고 실망했다는것이다. 그러나 부위원장동지는 책상을 두드리기까지 하며 나를 질책했지만 자신이 어떻게 협동화를 해야 한다는것을 말해준것은 없지 않는가? 어떤 토대우에서 협동화를 해야 한다는건 말하지 않았다.···)

그때의 일을 돌이켜볼수록 그는 머리가 아팠다.

읍정거장에서 기차를 내린 조인철이는 가방을 들고 현촌마을이 있는 증원리를 향하여 길을 따라 걸었다. 결혼식을 하고 순실이를 데려간 후로는 일이 바빠서 와보지 못했지만 그전까지는 여러번 다녀가서 낯이 익은 길이였다.

이 길을 따라 현촌으로 처음 와본것은 왜정말기의 일이였다.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고향땅으로 내려온 그는 부모를 도와 일하면서 가난한 집살림에 보탬이 되고 힘들게 일하는 부모님들과 마을농민들에게 도움이 될수 있는 그 일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려 했다. 그는 평북도 정주에 있는 농사시험장에까지 가서 수확이 높다는 새 벼종자를 구해오기도 하고 고향마을에 뽕나무를 심어 누에고치를 생산해볼 결심도 하였다. 그가 뽕을 많이 재배하는 지방을 찾아가느라고 간곳이 청천강변의 현촌이였고 거기서 하루밤 류숙한 집이 바로 순실이네 집이였다. 가장인 현덕칠령감은 무엇때문인지 머리를 늘 빡빡 깎고다니는 장골의 근면한 농사군이였다. 그가 그렇게 황소처럼 일하는덕에 가족들은 배를 곯지 않았고 맏딸 순실이는 소학교를 졸업할수 있었다. 순실이는 말할 때와 웃을 때 웃입술이 말려올라가며 흰이가 살짝살짝 드러나는 매우 귀염성스러운 처녀였는데 조인철은 그 처녀를 처음보는 순간에 벌써 반해버렸다. 뽕나무모를 구해가지고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처녀의 연약하고 귀여운 모습이 눈에 삼삼하여 밤잠을 설치군 하다가 광복된 해 가을에 다시 현촌을 찾아가 현덕칠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청혼을 하였다.···

현씨들이 개척하여서인지 예로부터 현촌으로 불리워오는 마을은 증원리 소재지마을이였다. 큰길에서 현촌으로 꺾어드는 달구지길에 들어선 조인철은 들판을 꿰질러 걸었다. 날씨는 더웠지만 밤이 깊어 들은 서늘했다. 논에서는 벼이삭들이 한창 패고있었다.

한동안 걸어가던 그는 무엇이 불에 탄 끄스름내를 느끼였다. 별빛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논벌에 폭탄구뎅이가 아가리를 흉하게 벌리였으며 그 주변의 벼들이 불에 타고 쓰러진것을 발견하고 손으로 만져보느라니 곡식들이 자라고있는 논밭에까지 폭탄을 떨군 미제놈들의 만행에 대한 비분을 금할수 없었다.

마을에 들어선 그는 농가들도 폭격에 허물어지고 불에 탄것을 볼수 있었다.

그 페허들은 허전하고 쓸쓸한감을 불러일으켰다. 따뜻하고 포실하고 윤기흐르던 그전의 활기를 찾아볼수 없었다.

처가집 대문앞에 이른 조인철이 숨을 깊이 들이쉬고 주먹으로 대문을 무겁게 두드리였다. 먼저 개가 짖어대고 이어 아래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누구요?》하는 장모의 귀익은 음성이 불안스럽게 들려왔다.

《어머니, 접니다. 대성이 아버집니다.》

《누구라구? 이놈의 개, 조용하지 못해?》

《평양에서 왔습니다. 대성이아버지라니까요.》

《뭐? 대성이 애비가! 아이구, 령감, 평양에서 사위가 왔소.》

장모는 벌써부터 엉엉 울며 마당을 달려나왔다. 온 집안이 법석 끓기 시작했다.

《이 사람, 좀 기다리게, 내 이제···》 장모는 빗장을 뽑느라 덜커덩거리며 그냥 흐느끼였다. 대문이 열리자 자그마한 늙은이가 그의 팔에 매달리였다.

《어머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는 장모의 여윈 어깨를 쓸어드리며 인사를 했다.

《내야 잘 있지. 그래 소식을 듣구 오나?》

《예.》

《글쎄 이런 변이 어디 있겠나? 나같이 늙은건 성성한데 젊은애들이···》하며 장모는 또 흐느끼였다. 전사한 아들생각이 곁따라 왈칵 치밀었으리라.

조인철은 뜨락에서 과부가 된 이 집 며느리와 맞다들었다.

《매부, 먼길에 수고로이 오셨어요.》

눈물에 젖은 저으기 떨리는 목소리로 그 녀자가 인사하며 머리를 숙이는데 조인철이는 심장이 예리한 강철에 찔리는듯 했다.

《아주머니.》

그는 침통하게 말했다.

《뵐낯이 없습니다. 슬픈 소식을 듣고도 와보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나라가 전쟁을 하고있었는데··· 큰일을 하는 어른이 어떻게!》하면서 녀인은 오히려 순실이의 이야기로 말을 돌려 그를 위안하였다.

《누이는 일없어요. 위험한 고비는 넘겼어요.》

일곱살난 아들 대성이가 《아버지!》하고 울음섞인 소리로 웨치며 달려와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그는 아들을 꽉 그러안고 추켜올리였다. 그 순간 그는 마루에 나와선 기골이 장대한 장인을 보았다.

장인 현덕칠이가 위엄있게 말했다.

《뭣들 하느냐. 먼길 온 사람을 안으루 맞아들일 생각은 않구!》

현덕칠의 목소리는 쩡쩡 울리였는데 그가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느라고 우정 어성을 높인다는것이 알리였다.

조인철은 얼른 아들을 내려놓고 대청마루로 다가가서 깊이 머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아버님,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처까지 앓는 몸으로 와있으니 죄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음- 먼길에 수고했네. 어서 들어오게.》

그는 흐느껴우는 녀인들보다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 꿋꿋한 장인의 모습을 대하니 오히려 더 가슴이 뭉클하였다.

장인인들 어찌 속이 편하랴, 하지만 그는 빡빡 깎은 둥근 머리를 꿋꿋이 쳐들고 대범하게 사위를 맞아들이였던것이다.

어디 나갔던 처제 순옥이가 달려들어오며 또 한동안 떠들었다.

《그만해라!》하고 장인이 순옥이한테 엄하게 말했다.

모두 방으로 들어갔다. 순실은 아래방 아래목에 누워있었다.

조인철이가 허리를 구부정하고서 등잔불이 희미하게 비치는 아래방으로 내려갔는데 그를 쳐다보는 안해의 창백한 얼굴에 가냘픈 미소가 피여났다. 안해에 대한 련민과 애정이 끓어올랐으나 조인철이는 자신을 가까스로 다잡았다.

《어떻소?》하고 그는 평범한 어조로 물었다.

《이제는 괜찮아요. 피도 멎고 아픔도 덜해요. 군병원에서 수고했어요.》

그는 안해의 자그마하고 부드러운 손을 쥐여주고 위로의 말을 해주고싶었다.

그러나 약해지는 자기의 마음이 안해에게 느껴지게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꾹 참고서 장인에게로 눈길을 돌리였다.

이밤 조인철은 처가가 전쟁기간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현덕칠일가는 광복전에 령감의 꾸준한 로력으로 자수성가하여 그때 벌써 자력으로 살아나갈수 있는 자작농이 되였다. 가장 어려운 전쟁기간에 아들을 잃고 손실을 많이 입었지만 그래도 전략적후퇴시기에 숨겨둔 량곡과 소가 있고 로력자들도 셋씩이나 되여 자력으로 농사를 지울수 있었다. 그러나 물론 힘에 겨웠다. 아들의 전사통지서를 받은것으로 하여 마음의 상처가 큰데다가 풍성했던 전쟁전에 비하여 식량도 농쟁기도 부족했으며 미제놈비행기때문에 마음대로 들에 나가 일할수도 없었다. 이웃들을 도와주어야 하였다. 그들을 모른다고 할수는 없었다. 학살당한 리인민위원장네같은 집을 외면하면 그게 사람이겠는가.

그러나 시련과 난관을 이겨냈으며 알곡을 많이 생산하여 현물세를 바치고 또 전선원호미도 자발적으로 냈다. 마을에서 여전히 그는 농사일에 앞장서있었으며 높은 수확을 냈다. 아마 마을에 최옥금이가 없었더라면 현덕칠이 다수확농민으로 뽑혀 평양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했을지도 모른다.···

순옥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자코 담배만 피우고있던 과묵한 현덕칠이가 이때 끼여들어 한마디 했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옥금이가 나보다 낫다.》

순옥이는 아버지 못보게 입을 삐죽 내밀었다가 말했다.

《그러기 옥금이가 없었더라면이라 하지 않았어요.》

《아니다.》

현덕칠은 다시 담배대를 들고 뻑뻑 빨았다.

조인철은 최옥금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들을수 있었다. 그 처녀는 안해에게도 몇번 병문안을 왔었다고 한다.

밤이 깊어 순옥이는 리자위대의 야간순찰근무를 옥금이와 교대해줘야 한다면서 나가고 조인철은 마침내 안해곁에 혼자 남았다. 그는 늦도록 안해에게 수령님의 은정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순실이는 당장 평양으로 올라갈수 없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빨리 완쾌되여 일을 해야 하겠는데··· 하고 안타까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