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5


 
 

제 1 장

5

 

하루일에 저으기 지치고 맥이 빠진 강봉석은 퇴근을 하려고 걸상에서 일어섰다. 무릎에서 뚝뚝 소리가 나고 허리가 아팠다.

이즈음 그는 아침부터 밤늦도록 사무실을 뜨지 못했다. 할일이 산더미같았다.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농촌경리의 파괴정형을 정확하게 료해장악하며 복구건설의 규모와 선후차를 확정하고 거기에 드는 자금을 추산하는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대단히 긴급하면서도 규모가 컸다.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농촌마을이나 시설들이 없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전국적인 재조사등록사업이라고 할수도 있었다.

사무탁우의 전화종이 쉴새없이 울리고 국장들과 처장들이 문서들을 들고 돌쩌귀에서 불이 나도록 문을 여닫으면서 드나들었고 방안에 뽀얗게 담배연기가 떠도는속에서 한나절씩 또는 밤늦도록 협의회들이 거듭되였다. 한편 그는 상이나 농업담당 부수상의 부름을 받고 상의 사무실과 내각으로 분주히 오고갔다.

이런속에서 또 하루가 저물고 밤도 깊었다. 걸상에서 일어난 그는 주먹으로 어깨와 뒤잔등을 두루 두드리면서 사무실안을 잠시 거닐었다. 거닐면서 오늘 사업에서 미진된것은 없는가, 래일 출근하여 첫 시간에 무엇부터 해야 할것인가 하는것들을 생각했다. 일에서 빈틈이 없고 정확한 강봉석이였다. 오늘 미진된것은 없었다. 래일 내각협의회에서 상이 보고할 전후농촌경리의 복구건설계획은 오늘로 작성완료되였다. 그것때문에 어제도 오늘도 자정이 넘도록 일했다.

강봉석은 가방을 옆에 끼고 문에 쇠를 잠그고 복도를 걸어갔다. 그는 걸을 때 곁눈을 파는법없이 앞을 곧바로 보며 화기있게 걷군 한다. 곁눈을 팔며 옆에서 벌어지는 일에 흥미를 가지는것을 문명치 못한 행동으로 여겼던것이다. 접수구앞을 지나 현관을 나설 때 경비원아바이가 인사하는것도, 접수실침대에 누워 지루하게 기다리던 운전사가 용수철이 튕기듯 일어서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곧바로 걸어갔다.

뒤따라 나온 운전사가 서둘러 발동을 걸었다. 그러면서 한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하품을 했으나 강봉석은 그것도 못본체 하였다. 자정이 넘었으니 운전사도 지루하고 피곤할것이다. 그렇지만 운전사는 습관이 되여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강봉석은 원래 늦게 퇴근하는것으로 유명해진 사람이였다. 그의 가정형편을 잘 아는 운전사는 그 원인이 극장에서 언제나 늦게야 들어오는 녀배우인 안해와도 관련된다고 보고있었다. 하긴 그 짐작이 전혀 근거없는것은 아니였다. 그의 안해는 늘 한밤중에야 극장에서 집으로 돌아오군 하였으며 돌아와서는 피곤하여 곧 잠에 빠져들군 하였다. 그리고 이동공연을 다닐 때는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거기다가 아이들까지 없으니 빈집에 혼자 들어가서 무엇을 하겠는가? 강봉석은 가정생활의 온기를 그리워하며 아이들이 없는 안해가 없는 빈집에서의 공허한 시간을 술로 보충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원래 술을 좋아하는 강봉석이여서 나날이 늘어나는 술량은 그의 건강을 좀먹고있었다.

겉보기에 랭랭한 그는 사실 가정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있었으며 안해를 몹시 사랑하고있었다. 아마 그래서 그는 더욱 가정의 단란한 생활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안해가 휴식을 하고 강봉석이도 그날이 마침 일요일이여서 일찌기 집에 들어오게 되는 그런 때면 그들은 명절을 맞는 기분으로 식당에도 들려 식사를 같이하고 친구의 집도 방문했으며 무도장에서 춤도 같이 추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그가 늦게 퇴근하는 원인을 모두 가정형편과 결부시키는것은 맞지 않았다. 그것으로 하여 사업에서 지장을 받은적이 없는 강봉석은 가정생활과 국가사업을 엄격히 갈라보았다.

집에 도착한 그에게 대문을 열어준 녀인은 그들 부부가 채용한 식모였다.

폭격에 요행 살아남아있는 이 집은 해방전의 양철지붕을 씌운 살림집인데 뜨락에는 꽃밭과 수도가 있었다.

《아직 극장에서 안들어왔소?》하고 그는 안해를 념두에 두고 식모에게 물었다. 다른때 같으면 안해가 들어와있을 시각이고 또 늦어진 남편을 직접 맞이해들이든가 현관문을 열어주며 인사를 하든가 할것인데 기척이 없으니 어쩐지 허전하였다.

《들어오셨습니다.》

식모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현관에 들어서서 신을 벗는데 그때에야 안해가 나왔다.

《지금 오세요?》하며 인사하는 안해는 무슨 일때문인지 퍽 심란해하는 표정이였다.

그는 간단히 대답하고 가방을 맡기였다.

그의 안해는 얼굴이 아름답게 생기고 몸매도 날씬하였다. 입이 약간 큰것이 흠이라면 흠이겠는데 그것이 그 녀자를 가수로 되게 한 중요한 요인인지도 모르며 반대로 직업자체가 그렇게 한것일수도 있었다.

강봉석이가 저녁식사겸 밤참을 끝내였을 때 실내복을 입고 밤화장을 연하게 한 안해가 기다리고있다가 말없이 국제우편으로 온 편지 한통을 내밀었다.

그는 두툼한 편지의 보낸 사람 주소를 읽어보고 저으기 놀라며 안해를 쳐다보았다. 큰아버지네 집에 맡기고 온 아들과 딸에게서 온 편지였는데 이미 개봉되여있었다. 안해의 상심한 얼굴이 이 편지때문일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는 불안해지는 마음을 누르고 속지를 꺼내여 읽기 시작하였다.

《보고싶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아빠, 엄마 보세요.》

이렇게 아들과 딸이 제각기 쓴 편지들의 구절구절에서 부모들에 대한 그리움이 어찌도 애절하게 풍기였던지 강봉석이는 눈앞이 흐려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전쟁만 아니 일어났더라면 저는 평양에서 대학공부를 할것입니다. 평양에 있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말입니다.》하고 어느덧 성장한 아들은 쓰고있었다.

《저희들은 편안히 행복하게 잘 있습니다. 단지 부모님들과 떨어져있으니 외롭고 늘 부모님들이 보고싶습니다. 전쟁이 일어난후로는 부모님들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길가보아 걱정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 헤아릴수 없이 많습니다. 저희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부모님들곁으로 달려가고싶은 충동을 걷잡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조국의 형편이 어려우니 아직 따쉬겐트에 그냥 있으라는 부모님들의 요구가 있고 저희들도 전쟁과 무서운 파괴에 대한 소식을 들었기때문에 주저하고있습니다.》

중학생이 된 딸의 편지는 더욱 절절하였다.

《아빠, 엄마! 조국에 나가 그만큼 일했으면 이제는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어요? 그만큼 고생했으면 되지 않아요? 돌아와주세요! 오빠와 저는 아빠, 엄마의 품에 안기고싶어요. 혹시 저희들이 전쟁의 재난을 입어 재더미뿐이라는 그곳으로 갈것을 희망하는건 아니겠지요.···》

강봉석은 편지를 다 보고 책상우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얼굴을 드는 순간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안해의 큰눈에 가득 고였다가 뺨으로 흘러내리고있는 눈물을 대하자 그만 가슴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다.

《여보··· 어떻게 하면 좋아요?》

안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말이였다.

그 순간 강봉석은 나약해지는 마음을 이겨내려고 성난듯 이마를 찡그리였다.

《뭘 그러오?》

《아이들을···》

《이제는 전쟁도 끝나고 아이들도 다 컸으니 데려내와야지. 뭐 어떻게 할게 있소?》

그는 단호하게 잘라 말하고는 안해를 외면한채 얼른 일어서서 자기방으로 들어가버리였다. 그는 안해가 아이들을 몹시 보고싶어하면서도 그 애들을 조선에 데려내올 생각을 품고있지 않는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조국의 형편이 어려우니 따쉬겐트에 그냥 있으라고 아이들에게 편지한것도 그 애들의 어머니였다.

그렇기때문에 지금 어찌할바를 몰라 눈물짓는 안해를 피하였다. 하지만 그는 진정할수가 없었다.

그들부부가 조국으로 나오면서 자식들을 우즈베끼스딴에 떨구어둔것은 다니던 학교를 마저 다니도록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갓 광복된 조국에 변변한 교육시설이 갖추어져 있을리 없었고 또 생활이 안정되자면 시일이 걸려야 한다고 보았던것이다. 그러나 이국에 떨구어두고온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커갔다. 만일 전쟁만 터지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자식들을 평양으로 데려내왔을것이다. 조국이 처한 환경은 이렇듯 부모와 자식들을 갈라놓았으며 7년이 넘도록 헤여져 살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강봉석은 자기를 몹시 괴롭하는 아이들의 애절한 호소와 안해의 눈물에서 벗어나보려고 애썼다.

(너희들은 나를 리해하여야 한다. 파괴되고 불탄 이 땅우에 지금 어떤 크나큰 슬픔과 재난이 드리워졌으며 그것을 이겨내고 나라를 재건하기 위하여 어떤 거창한 일을 해야 하는지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그는 저 멀리에서 일곱해동안 외롭게 살고있는 오누이자식들을 향하여 이렇게 속으로 말했지만 랭철한 그의 리성도 가정과 자식들과 이어진 연한 감정을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그는 담배를 연거퍼 피워대며 오래동안 걸상에 앉아있었다. 그는 자식들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당면한 농업성사업에로 사색을 돌려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이 성사업에 대한 걱정과 겹쳐지면서 오히려 머리는 더욱 번거로와졌다.

안해가 들어왔다. 안해는 아까보다 좀 진정이 된것 같았다. 밤이 깊었으니 내려가 자자고 하면서 그 녀자는 불현듯 이런 말을 꺼냈다.

《신임쏘련대사가 곧 래조할것 같다고 하더군요.》

강봉석은 의아해서 안해를 돌아보았다.

《그건 어디서 들었소?》

《외무성에 있는 당신의 동료들이 한 말이예요. 대사가 쏘련의 원조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올수도 있대요.》

강봉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안해의 말이 근거없는 소식같지는 않았다. 쏘련이 조선에 원조를 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면 당신의 일도 한결 펴이겠지요. 요즘 당신은 몹시 수척해졌어요.》

《···》

강봉석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집에 들어와서 사업이야기를 하는 법이 없는 강봉석이였다.

겉으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강봉석은 안해의 말대로 쏘련의 원조가 전후 농촌경리의 복구건설에 큰 도움을 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있었다. 지금 농촌에 필요되는것은 국가의 물질적인 지원이다. 그런데 국가는, 다시말하여 공업은 농촌에 줄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