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4


 
 

제 1 장

4

 

이튿날.

승용차는 큰길에서 왼쪽으로 꺾어든 누런 소달구지길에 들어섰다. 달구지바퀴자리가 두줄로 패이고 군데군데 소똥이 말라붙은 우리 나라 농촌 어디에서나 볼수 있는 길이였다. 그런데 이 평양 준평원지대의 흙으로 말하면 비오는 날에는 시끄럽게 찐득찐득 달라붙고 개인날에는 돌덩이처럼 굳어지는 성질이 있는데 지금이 해가 뜨겁게 비치는 한낮이여서 승용차는 진흙이 울퉁불퉁하게 굳어진 길우를 힘들게 기우뚱거리며 굴러갔다.

농촌길은 지금 벼이삭들이 한창 패고있는 논벌을 지나 불에 타고남은 나무그루터기들이 군데군데 보일뿐인 헐벗은 야산을 구붓하게 에돌아갔다. 이런 야산들에는 흔히 애기솔포기들과 가둑나무들이 한벌 덮이고 구부러든 소나무들이 운치를 돋구군 하였는데 전쟁의 불길이 휩쓸어버리였다.

그 야산을 돌아가자 해빛이 밝은 양지쪽 산기슭에 모여앉은 크지 않은 마을이 바라보이였다.

《저 마을이요. 내가 1948년 8월, 선거때 지나가다가 들려본 농가가 저 마을에 있소.》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책임부관에게 말씀하시였다. 그때 수령님을 모시고갔던 책임부관은 다른 사람이였다. 운전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수령님께서 친히 운전사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며 그 농가를 찾아가시는것이였다.

그 마을로 들어가자면 작은 시내물을 건너야 하였다. 그전에는 이곳에 길지 않았지만 퍽 든든한 나무다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폭격에 날아가버린 모양이다. 내가에 생긴 폭탄구뎅이들이 그것을 말해주고있었다. 폭탄구뎅이들은 논벌에도 흉한 상처를 만들어놓고있었다. 다리가 파괴된후 자동차나 달구지들이 직접 내물을 건너다니기 시작하여 생겨난 길이 그곳을 에돌고있었다.

책임부관과 운전사가 차에서 내려 물깊이를 가늠해본후 승용차는 물살을 가르며 내물을 건넜다.

수령님께서 전쟁전에 들리시였을 때의 이 마을은 포실하고 유족한 생활의 윤기가 흐르는 고장이였다. 마을에는 토지개혁후 새로 지은 기와집들이 여기저기에 날아갈듯 번쩍들린 추녀를 자랑하며 솟아있었고 삶은 강냉이를 손에 든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골목으로 달려다니고있었다.

그날 수령님께서 차에서 내리시여 첫눈에 띄우는 기와집으로 가시는데 아이들이 환성을 올리며 그이를 둘러쌌다. 그이께서는 한 처녀애의 사과알처럼 싱싱한 뺨을 쓰다듬어주시며 《너희집이 어디지?》하고 물으시였다.

《저기 저 집이예요.》

처녀애는 오동통한 손가락으로 마침 그이께서 목표로 삼으신 기와집을 가리켰다.

《너희집에 가볼가?》

《그럼 난 먼저 뛰여가서 할아버지한테 알리겠어요. 할아버지는 집에서 달구지를 손질하고계셔요.》

오목눈이 유난히 새까만 처녀애는 노래하듯 조잘대고 무릎까지 오는 짧은 분홍치마를 팔랑이면서 토실토실한 두다리로 바람처럼 달려갔다.

그 기와집뜨락에서 60이 넘어보이는 로인이 과연 달구지채를 손질하고있었다. 그는 몸이 훌쭉하나 키가 크고 뼈마디들이 굵직굵직했는데 어딘가 한쪽으로 기울사한 몸가짐을 하고있었다. 로인외에 집에는 집안일을 맡아보는 맏며느리와 겨우 걸음마를 뗀 어린애가 더 있었다. 맏아들은 들에 일 나가고 다른 손자, 손녀들은 학교에 가서 보이지 않았다.

강씨로인은 수령님을 뜻밖에 만나뵙게 된 감격을 어쩌지 못하면서 두손을 앞으로 모아잡고서서 환해진 얼굴로 그이의 물으심에 대답을 드리였다. 로인의 광복전 이야기는 비참했다. 그런만큼 토지를 분여받고 대풍을 마련하고 정권의 주인이 되여 사람답게 사는 광복후의 생활은 보람차고 행복한 이야기로 엮어지고있었다. 로인은 고간문을 열어젖히고 쌀이 가득한 독들을 보여드리였다. 햇곡식이 나올 때가 되였는데 묵은 쌀을 이렇게 가지고있다는것은 광복전에 지주 아니고서는 상상할수 없었다.

《이제는 옛날 부자 부럽지 않습네다.》

로인의 입가에 웃음이 떠돌았다. 오목눈의 손녀도 그애의 손목을 잡고 뒤뚱거리며 따라다니는 어린애도 방긋방긋 웃었다. 어린아이는 아래를 드러내놓고 맨발로 다니는데 건강한 아이들이 그러하듯 씩씩거리며 이따금 무슨 소리를 지르군 하였다. 강로인일가의 얼굴들에 떠도는 웃음과 만족, 그들의 기쁨이 충분히 감득되였다. 한평생 땅과 인연을 맺고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바람이 불건 해가 뜨겁게 쪼이건 쉬임없이 일해오면서도 하늘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고 가장 멸시받고 천대받고 제일 못먹고 못입던 이 나라 농민들이였다. 농사를 천하지대본이라 하면서도 농민들을 누구나 천시하고 업수이 여겼으며 따라서 그들은 어디 가서나 허리를 굽혀야 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정권과 땅의 주인이 되여 허리를 펴고 하늘을 향해 떳떳하게 머리를 쳐들었으며 얼굴에 웃음이 넘치고있다. 주인된 자부심과 긍지에 넘쳐 일에 성수가 났다. 하지만 과연 우리 농민들의 생활이 옛날 부자 부럽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는가. 더우기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고있는 나라들에 비해보면 우리 농촌의 후진성과 우리 농민들의 소박한 생활형편이 아주 뚜렷해진다. 농촌의 기계화를 실현하고 개인경리를 집단화한 쏘련만 보아도 농민들은 얼마나 흥겹게 일하면서도 문명하고 풍족하게 살고있는가. 우리 농민들이 문명하게 잘살자면 아직 멀었다.

《아직 만족하기는 이릅니다.》

수령님께서는 로인과 함께 대청마루에 앉으시여 그에게 담배를 권하고 불까지 붙여주신후 말씀하시였다.

《우리 농민들이 이제 겨우 사람답게 살기 시작했을뿐입니다.》

강춘보로인은 담배를 황송스럽게 그러나 맛나게 피우며 그이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였다.

그이께서는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서 사는것이 조선사람들의 소원이라고 하시며 우리 농촌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가겠는가 하는 말씀을 들려주시였다.

그러나 이날 김일성동지께서 평범한 농가에 머무르시며 우리 농촌의 앞날을 설계하고계실 때, 2년후에 전쟁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할수 없었다.···

시내물을 건느고 울퉁불퉁한 소달구지길로 승용차를 달려 잊을수 없는 그 농가의 강로인일가를 찾아가시며 이처럼 지나간 일들을 더듬어보시느라니 감회를 금할수 없으시였다. 전쟁기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다들 무고한지, 지금 어떻게 살고있는지···

그런데 마을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마을에서 그전처럼 뛰여다니는 아이들을 볼수 없었으며 삶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에 띄우는것은 폭탄에 허물어지고 불에 타고 연기에 끄슬은 앙상한 벽체들만 서있는 페허들과 산기슭의 반토굴집들이였다.

웃음넘치던 누런 벼짚이영의 초가삼간 살림집들과 새로 지은 고래등같은 기와집들은 어디로 갔으며 포실한 마을의 생기넘치던 숨결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차에서 내리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불길한 예감을 금치 못하시며 강로인일가가 살던 기와집을 찾아보시였다. 분명 이 근방 어디에 있었는데? 그이께서는 내리쪼이는 해볕과 확확 달아오른 대기속을 걸어 로인일가의 집이 있던곳으로 가보시였다. 큰 돌배나무가 눈에 띄우지 않았더라면 그곳을 못찾았을것이다.

옆가지들이 폭격에 부러져나갔으나 옛모습을 보존하고있는 집뒤뜨락의 돌배나무만이 우뚝 서있고 기와집이 있던곳에는 큰 폭탄구뎅이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있었다. 폭탄을 맞고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집과 함께 강춘보로인일가의 행복도 꿈도 다 날아가버렸다. 그이께서는 억이 막혀 깨여진 벽체들과 쓰레기들사이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있는 폭탄구뎅이를 내려다보시였다.

어디선가 오목눈처녀애의 웃음소리와 씩씩거리며 기쁨의 소리를 웨치던 어린애의 숨소리가 금시 들려오는듯··· 서글픔이 가슴을 꽉 채우고 금시 목이 메이였다.

(아, 이런 불행이 기다리고있을줄이야!···)

그이께서는 옆으로 다가온 책임부관에게 말씀하시였다.

《내가 전에 들려본 그 농가가 이곳에 있었댔소. 그런데 농가는 없어지고 폭탄구뎅이만!···》

그이의 안광에서 푸른 섬광이 번개치듯 일었다. 그이께서는 슬픔과 분노를 어떻게 묵새기면 좋을지 알수 없으시였다.

《담배를 가져다주오.》

책임부관에게 고개도 돌리지 않으신채 갈리신 음성으로 부탁하시였다. 부관은 차에서 담배를 가져다올리며 진정하시기를 부탁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없이 별로 즐기시지 않지만 흥겨울 때나 괴로울 때 혹은 손님과 담화할 때 간혹 피우군 하시는 담배를 피워무시고 지나간 추억의 아픔을 진정할길 없어 폭탄구뎅이주위를 걷고 또 걸으시였다. 돌배나무밑에 이르시여 상처입은 터슬터슬한 줄기를 어루만지시였다.

폭탄의 피해를 입었어도 여름이 오자 잎들이 무성해지고 열매들이 열린 무심한 돌배나무도 이 순간에는 비애에 잠긴듯 하였다.

분하였다! 강로인과 서늘한 그늘이 드리운 대청마루에 앉으시여 더 잘 살게 될 래일의 농촌을 구상하시던 그날의 소중한 꿈과 행복을 잃은것이 분했다.···

수령님곁에 호위원만 남겨두고 강로인일가의 소식을 알아보려 잠간 자리를 떴던 책임부관이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이 집 주인아바이가 살아있다고 합니다. 저 아주머니를 마침 만나서 소식을 알수 있었습니다.》하며 그는 승용차가 서있는 동구길쪽을 가리켰다. 거기에 소달구지를 끌고가다 머물러선듯 한 흰 머리수건의 녀인이 보이였다.

《살아있다!-》

김일성동지께서 나직이 웨치시였다.

《예, 지금 저기 조밭에서 일하고있답니다.》

《조밭에서! 가보자구.》

강로인이 살아있다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직탄을 맞고 집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을것으로 생각되였던 강로인이 살아있다니!

그이께서는 책임부관과 함께 마을에서 가까운 언덕에 펼쳐진 조밭으로 향하시였다.

누렇게 팬 조이삭들이 여물면서 강아지꼬리처럼 휘여들어 건들거리는 조밭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뻘건 진흙이 굳어진채로인 조밭옆으로 난 길을 한참 걸어가는데 그때에야 밭 한귀퉁이에서 사람의 모습에 앞서 목소리들이 들렸다.

《배고프지? 이젠 그만하고 내려가자.》하는것은 늙은이의 웅글은 목소리였다.

《할아버지, 점심에는 감자밥을 해먹을가요?》

오전일을 끝내게 된것과 또 점심을 먹게 된 기쁨에 가늘게 떠는 목소리의 임자는 분명 어린 처녀애같았다.

갸냘프게 웃는 처녀애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싶다.

《그러자꾸나.》

할아버지는 선선히 대답하였다.

이어 삽을 든 로인과 호미를 든 애리애리한 소녀가 밭머리에서 옆길로 나왔다. 그들은 조밭에서 도랑도 치고 김도 매던것 같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강로인을 대뜸 알아보시였다.

한평생 농사지어오면서 꽛꽛하게 굳어지고 어딘가 한쪽으로 기울사한 몸가짐, 훌쭉하게 큰 키, 땅처럼 순박한 표정··· 그런데 이마에 퍼렇게 두드러진 피줄과 입귀에 깊이 패인 주름살은 새로운 인상이였다. 또 땀이 질벅한 목과 팔목이 드러나게 베적삼을 입고 장딴지가 보이게 껑충한 무명바지를 입고있는것은 그전이나 같았지만 어딘지모르게 퍼그나 늙고 지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로인을 뒤따라나온 소녀는 그 인상적인 오목눈이 아니였더라면 누군지 알아볼수 없게 변모하였다. 싱싱하게 혈색이 도는 뺨과 토실토실한 몸집의 그전 소녀가 아니였다.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소녀도 나이가 퍽 들었겠으나 이상하게 작아보이고 볕에 까맣게 타서 두눈만이 반들거리였다.

《로인님!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놀라며 길우에 굳어져버린듯 서있는 강로인에게로 다가가시며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시였다.

《아니! 수상님?!》

《나를 아시겠습니까?》

그이께서 격동에 높뛰는 가슴을 진정 못하시며 물으시는데 로인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듯 황급히 수령님의 두손을 맞잡았다.

《제가 수상님을 어찌 못 알아뵙겠습니까. 이게 생십니까 꿈입니까! 수상님···》

숨이 꺽꺽 막혀가며 띠염띠염 말하는 로인의 가느다랗게 뜬 눈에 금시 눈물이 핑 고이였다. 그의 이마에 두드러진 피줄이 펄떡펄떡 뛰고 두손이 부들부들 떨리였다. 시련과 슬픔을 겪으며 허옇게 센 귀밑머리, 꽛꽛하게 굳어져 툭툭 불거진 매듭들이 제대로 곱아들지 않는 거칠은 손, 수령님께서는 진정 동정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저는 자나깨나 수상님 생각이였습니다. 수상님을 다시 뵈오니 이제는 만시름을 다 놓겠습니다···》하고 로인은 말했다.

《가족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이 애가 그때 나를 집에 안내했던 애지요?》

수령님께서 로인옆에서 서있는 소녀를 가리키시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소녀는 열둬살 잘된것 같은데 작고 여윈 반면에 나이가 더 들어보이였다.

《예, 그렇습니다. 옥녀야, 인사올려라.》

소녀는 머리를 숙이며 애처로운 미소를 지었다. 어제날의 명랑하고 활력에 넘치던 소녀가 어떻게 이처럼 차거워지고 의기소침해졌는가.

《수상님, 이 애가 폭격에 부모형제들을 한시에 잃은후 이렇게 영 성미가 변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집자리에 생긴 폭탄구뎅이를 찾아가서는 우두커니 앉아있군 합니다. 사람들을 피하구 꼭 나하구만 있으려 합니다. 그래 학원에도 보내지 못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오금을 꺾고 앉으시여 소녀의 앙상한 어깨와 가느다란 팔을 쓰다듬어주시였다. 그 가느다란 팔과 작은 손으로 할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고있는 옥녀, 이 애에게 차례진 운명이 이처럼 가혹해야 하는가. 그이께서는 소녀가 쥐고있는 호미도 만져보시였다. 어른들이 쓰는 호미였다. 하긴 아이들을 위한 호미는 없다.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하는것이다.

《너 학교에는 안다니니?》

《···》

옥녀는 머리를 숙이고 오른쪽발 엄지발가락으로 왼쪽발의 흙투성이 발등을 긁을뿐 대답을 안했다.

《학원에 가면 공부도 시키고 입혀주고 먹이기도 하는데··· 네 마음은 알겠다만 학원에 가는게 좋겠다. 어떠냐?》

《···》

옥녀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로인이 소녀에게 대답을 드려야 한다고 책망하였다. 그러자 옥녀는 아까 인사할 때처럼 죄송스러워하는 애처로운 미소를 지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침울한 안색으로 일어서시였다. 그리고 어딘가 먼곳을 보시며 로인에게 물으시였다.

《그러니 그 큰 가정에서 두사람만 살아남았습니까?》

《예···》

그이께서는 몇년전에 만나보셨던 로인일가의 모습이 아직 기억에 생생하였다. 그러니 그 무던한 맏며느리도, 금방 걸음마를 떼고 뒤뚱거리던 다부진 막내손자애도, 학교다니던 손자들도, 그 애들의 아버지인 맏아들도 다 한날한시에 폭사했단말인가. 살아남은 옥녀는 얼마나 애처로운 모습으로 변했는가. 수령님께서는 전쟁시기 강로인일가처럼 참화를 당한 사람들과 가정들을 많이 보아오셨지만 평화가 온 오늘 이상하게도 심장의 아픔이 더 느껴지시였다.

《광복후에 가세가 펴이고 사람답게 살게 됐는가부다 했는데··· 정말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집니다.》

강로인의 작은 눈에서 푸른 빛이 번뜩이였다.

정말 통분할 일이다. 전쟁의 참혹한 피해는 발걸음이 닿는곳마다에서, 제철소와 방직공장, 여기 한 농촌마을 그 어디에서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며 괴로움을 자아내고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이 땅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있는것은 재더미뿐이다, 공장이나 농촌에 나가보면 침울해진다, 페허로 변한 이 나라를 어떻게 재건하겠는가 하고 개탄하고있다. 이런 생각이나 말들은 다 조선은 백년이 걸려도 다시 일어설수 없다고한 미국놈들의 악선전을 오히려 조장해주는 결과밖에 가져다줄것이 없었다. 과연 모든것이 다 파괴되고 아무것도 없단말인가? 오늘 우리 농촌이 안고있는 절박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겠는가?

김일성동지께서 이러한 문제에 부닥치게 되신것은 벌써 전쟁의 이듬해봄이였었다. 모든 청장년들이 싸움터로 떠나갔으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엄혹한 시련을 겪으면서 황페화된 농촌- 많은 우수한 모범농민들과 당원들이 학살당하고 집과 가산과 농쟁기들이 파괴 로략질당하고 가축과 부림소들이 도살당한 우리 농촌에서 새해 농사를 어떻게 짓겠는가? 봄이 오자 이 문제가 첨예하게 제기되였다. 수령님께서는 이 어려운 난국을 타개하시기 위하여 몸소 농촌으로 나가시여 농민들과 만나시였으며 식량을 위한 투쟁은 조국을 위한 투쟁이라고 호소하시면서 로력, 축력, 농기구가 부족한 조건에서 소겨리, 품앗이 등 로력협조반을 광범히 조직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농민들은 힘을 합치고 서로 돕고 이끌면서 이해농사를 지었으며 그 총화를 다음해 정초에 모란봉지하극장에서 하였다. 여기서 전시 다수확농민들이 경험을 교환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전선형편이 긴장했지만 시간을 내시여 몇몇 모범농민들을 만나보시였었다. 랭상모를 도입하여 높은 수확을 낸 신원섭, 적들에게 학살당한 시아버지와 남편을 대신하여 보탑을 잡고 알곡전선을 지켜싸운 녀성보잡이 한후방녀, 밀광조파파종기를 만들어 다수확을 낸 림근상 등 다수확농민들과 함께 나어린 처녀인 최옥금은 수령님께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키가 작아서 발밑에 나무통을 고이고 토론하였다는 최옥금이는 열여섯살때 아버지를 잃고 고급중학교 공부를 중퇴하고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는데 소겨리반을 무어 이웃들과 합심하여 다수확을 낸 이악한 처녀였다. 집단로동이 두주먹뿐인 이 자그마한 처녀의 힘을 몇배로 크게 만들었다. 이것은 매우 귀중한 경험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그후 5월 어느날 대동군 원화리에 나가시여 리녀맹위원장을 비롯한 품앗이반원들과 함께 밭벼파종을 하시며 협동로동의 생활력을 직접 체험할수 있으시였다. 전쟁시기에 심각해진 개인농경리의 제한성은 합심하지 않으면 농사지을수도 살아갈수도 없다는 집단경리의 생활적필요성을 낳게 하였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농촌경리의 파괴가 더 심해진 그 이후의 환경이나 포화가 멎은 오늘의 농촌실태를 놓고볼 때 그 필요성은 더욱 절박해졌다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전후농촌이 안고있는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열쇠도 협동로동에 있지 않겠는가. 어쨌든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할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 강춘보로인일가의 비참한 처지를 놓고 무거워진 심정으로 불에 탄 야산들과 마을들을 둘러보시는데 부관이 다가오며 마을사람들이 모였다고 말씀드리였다.

《만나봅시다. 로인님도 갑시다.》하고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가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방도를 의논해봅시다.》

로인이 그이를 뒤따랐다.

수령님께서는 언덕을 내려가시며 책임부관에게 옥녀를 데리고가서 차에 있는 과자도 먹이고 강로인네가 어떻게 살고있는지 구체적으로 료해하도록 지시하시였다.

긴 머리태와도 같은 실가지들을 실실이 드리우고 무더위속에서 조용히 서있는 길가의 버드나무밑에 다섯명의 농민이 모여있었다. 수령님의 지시를 받고 부관이 들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찾아냈던것이다.

동구길로 소달구지를 몰고가던 녀인은 마흔댓살 되여보이는데 눈이 부리부리하고 얼굴이 넙적했으며 어깨도 너부죽한것이 녀장부다왔다. 흰적삼에 검은 치마를 허리를 질끈 동여매여 입었고 발에는 검은 남자넙적고무신을 신고있었다. 쉰살넘은 한 농민은 자기를 이 세창마을 세포위원장이라고 소개하였다. 눈섭이 시커멓고 우묵한 눈확에서 검은 눈이 번쩍이였다. 철색의 얼굴에 입술이 두툼하고 광대뼈가 둥근 만만치 않은 인상을 주는 그는 자기는 원래 후방에 남아서 아낙네들과 농사나 짓고 전선원호사업이나 하고있을 사람이 아닌데 운명의 장난으로 뒤전에 물러났다고 말하는것이였다.

세포위원장이나 달구지군녀인과는 달리 세번째와 네번째 농민은 다같이 허약했고 나이도 퍽 들었다. 다섯번째의 녀성농민은 병색이 도는 얼굴을 줄곧 숙이고있었다. 그들도 다 자기나름의 운명의 곡절이 있었다. 어느 집에서나 식구가 줄어들었다. 그것도 젊고 건장한 로력자들이 군대에 나갔거나 전사했거나 놈들에게 피살당하였다. 환자인 젊은 녀인의 남편은 일시적후퇴시기에 《치안대》에 가담하였다가 패주하는 미군을 따라 월남하였다. 그 이야기를 하며 녀인은 그냥 흐느껴울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승용차에서 날라온 사이다를 고뿌에 따라서 그 녀인에게 마시라고 하였다.

《수상님, 저는 죄지은 사람의 아낙네입니다.》하며 젊은 녀자는 뒤로 물러나려 했다.

《장본인은 우리 조선사람끼리 서로 원쑤가 되여 싸우고 죽이도록 책동한 미제놈입니다. 우리가 아무 죄없는 아주머니를 〈치안대〉를 한 사람의 처라고 멀리하면 좋아할것은 미제놈뿐입니다. 어서 마시고 마음을 진정하시오.》

그러나 녀인은 흐느끼기만 할뿐 종시 사이다를 마시지 못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들에서 일하느라 땀에 젖고 해볕에 탄 농민들모두에게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도록 권하시였다. 그들이 사이다를 마시는 모습을 측은하게 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여러분들이 전쟁기간 피해를 많이 입었고 고생도 많이 했다는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수 있습니다. 폭격에 숱한 살림집들이 무너지고 야산이 불탔으며 모든 세대들이 아물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생활도 령락되였습니다. 이 아주머니가 신고있는 코가 꿰진 남자넙적고무신만 보아도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알수 있습니다.》

수령님께서 달구지군녀인이 신고있는 고무신을 가리키시였다. 녀인은 치마자락으로 급히 발을 가리우며 빨개진 얼굴로 변명하듯 말했다.

《저, 이건··· 일하기 편리해서 신고다닙니다.》

《강로인의 손녀를 방금 만나보았는데 얼마나 모습이 처량한지 눈물이 다 나옵니다.》

수령님께서는 목이 메여오시여 잠시 말씀을 못하시였다.

《그 여린 가슴에 서린 원한과 차디찬 불신을 어떻게 녹여줄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그 가느다란 팔로 할아버지를 도와 일을 하고있었습니다!···》

농민들의 주름진 얼굴들에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렸다.

《수상님! 수상님께서 괴로워하시니 저희들의 가슴이 터지는것 같습니다.》

강춘보로인이 울며 말씀드리였다.

《수상님, 그러나 미제놈새끼들이 우릴 다 죽이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를 항복시키지도 못했습니다. 마을을 파괴하고 가족들을 죽이면 우리가 주저앉을줄 알았겠지요. 아닙네다. 이 늙은게 왜 아직 살아서 농사를 짓고있는줄 아십니까. 원쑤를 갚기 위해서입니다. 그저 죽을수 없습니다. 미제놈들이 좋아하라고 주저앉아서 굶어죽겠습니까. 그래서 손녀애도 호미를 들고 들에 나오게 됐습니다.》

주먹으로 눈물을 썩썩 문대고있던 세포위원장이 강로인의 말을 받았다.

《춘보아바이가 옳게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습니다. 젊은이들이 다 전선에 나가고 당원들이 전략적후퇴때 학살당하고 마을에는 늙은이들과 아낙네들뿐이지만 한치의 땅도 묵이지 말라는 수상님의 말씀을 받들어 식량을 생산해서 전선에 보냈습니다. 수상님, 너무 괴로워마십시오.》

《수상님, 괴로워마십시오!》

달구지군녀인도 목이 메여 말씀드렸다.

《수상님, 저희들이 전쟁속에서도 올해에 좋은 작황을 마련해놓았습니다. 보십시오.》

녀인은 벼들이 꽉 들어찬 논벌을 가리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눈굽이 뜨거워나시였다. 그이께서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 못하시면서 농민들에게 담배를 권하시였다. 그들은 사양하다가 고맙게 받았다.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일일이 불까지 붙여주시였다. 농민들은 황송하여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여간 감격스러워하지 않으면서 수령님께서 담배연기를 날리시자 뒤따라 조심스럽게, 그러나 즐겁게 담배들을 피웠다.

《여러분, 고맙습니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슴그득 차오르는 격정을 터치시듯 말씀하시였다.

진정 고마운 농민들이였다. 전쟁을 이긴 인민, 전쟁의 불길속에서 단련되고 성장한 인민의 참모습을 이들에게서 보시게 된것이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이런 농민들을 가지고있는데 복구건설을 왜 못하겠는가. 강봉석이가 우리 농촌을 느릿느릿 굴러가는 소달구지에 비유하여 숨답답한 모습으로 보고있는것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허황한것인가.

수령님께서는 제철소에서 만나보시였던 제관공의 모습을 여기 농민들에게서도 볼수 있으시였다.

《나는 고마운 심정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하고 수령님께서는 강춘보로인을 비롯한 농민들에게 계속하여 말씀하시였다.

《우리 농민들이 후방에서 전시식량을 보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일했는가 하는것을 우리 후대들은 잊지 않을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전후에도 그 기세로 복구건설에 떨쳐나서리라고 기대합니다.》

그이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농민들의 얼굴도 환하게 밝아졌다.

세포위원장이 말했다.

《수상님, 저희들을 믿어주십시오. 아 전쟁때 폭격속에서도 농사를 지었을라니 이제야 두려울게 뭐 있겠습니까. 품앗이반 책임자인 이 덕녀동무를 보십시오.》

그는 달구지군녀인을 가리켰다.

《남편을 전선에 내보내고 혼자서 농사를 짓는데 소를 다루고 밭갈이하는데서 이제는 남자들보다 낫습니다. 전쟁을 이겼으니 이제부터 농사를 본격적으로 짓겠습니다.》

덕녀는 부리부리한 눈에 수집음을 담으며 당황해하였다.

그러는사이에 옥녀를 데리고 가서 과자도 먹이고 강로인이 살고있는 반토굴집도 돌아보고 온 부관이 그들의 살림살이형편을 보고드리였다. 집이 폭격맞은후 숟가락과 밥그릇조차 없어서 동네에서 모아주었다. 동네사람들도 형편이 비슷했지만 성의를 아끼지 않았다. 호미와 삽도 이웃들이 빌려주었다. 농사도 강로인을 품앗이반에 망라시켜 서로 도와주고 의지하며 같이 지었다. 이렇게 해서 강로인네는 살아갈수 있었고 올농사도 잘 지울수 있었다. 강로인이 속한 품앗이반 책임자가 덕녀아주머니였다.

《이 마을에 품앗이, 소겨리반이 많습니까?》

수령님께서 덕녀아주머니에게 물으시였다.

《많습니다. 인민군후방가족, 전사자, 피살자가족들 그리고 혼자서 농사짓기 힘든 세대는 다 품앗이를 합니다.》

《부족되는 농쟁기들은 어떻게 해결합니까?》

《마을에 야장간을 차려놓고 만들어냅니다.》

세포위원장이 대답을 드리며 마을을 돌아보았다. 거기서 무엇인가 두드리는 마치소리가 들려오는듯 했다.

《지금은 낫을 만들고있습니다. 미제놈들이 쇠붙이를 수태 날라와서 파철은 많습니다.》하며 그는 통쾌한듯 씩 웃었다.

수령님께서 그를 따라 미소를 지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정전은 되였지만 전선형편이 긴장해서 군대나간 청장년들이 당분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정, 공장, 기업소들과 도시들이 무참하게 파괴된 형편에서 국가가 농촌에 자금을 넉넉히 돌려줄수 없는 조건, 이런속에서 농촌경리의 복구건설을 해야 하는것만큼 사실 가슴이 답답해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이 마을에 와서 집들을 날려보낸 폭탄구뎅이들을 보고 강로인일가의 참사를 들었을 때는 사실 앞이 캄캄했었다고 하시며 그이께서는 그러나 이제는 답답하던 가슴이 좀 열리는것 같다고 말씀하시였다.

《여러분들의 앙양된 기세를 보니 전쟁때처럼 합심하고 협동하면 농촌경리의 전후복구건설은 문제없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다 파괴되여 아무것도 없다고 락심하여 주저앉는데 그건 우리 인민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왜 아무것도 없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쟁기간 물질적으로는 멀리 후퇴했지만 우리 인민들의 사상정신상태는 멀리 전진했다는것을 다시 확신하시였다. 이것이 중요한것이였다. 이것이 밑천이였다. 이 큰 밑천을 가지고 무엇인들 못해내랴. 농촌에서는 전시의 귀중한 경험과 이 밑천을 가지고 개인경리의 협동화를 하면 복구건설을 할수 있고 령세민문제도 풀고 먹는 문제를 풀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여 협동이 곧 살길이다.

선진경험이나 기존공식이 무슨 상관인가. 우리의 실정은 공업이 여지없이 파괴당하여 당장 농촌을 도와줄수 없고 농촌도 황페화되여있기때문에 오히려 협동을 할것을 요구하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것을 발견하시였다. 현실이 요구하며 그것을 수행할 밑천이 있으면 하는것이다.

시간이 퍼그나 흘렀다. 그이께서는 농민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시였다.

《그럼 수고를 하십시오. 나는 여러분들이 분발하여 전쟁의 피해를 가시고 다시 보람차고 유족한 새살림을 꾸리고 마을을 훌륭하게 건설해놓으리라고 믿습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그이께서는 헤여지기 아수해하는 농민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고 승용차에 오르시였다.

조금 가다가 차를 세우고 다시 내리시여 강춘보로인과 옥녀를 부르시였다.

《로인님, 농사일과 복구사업은 마을사람들과 품을 합쳐 하면 됩니다. 그러니 이 옥녀한테 더는 일을 시키지 말고 공부를 하도록 하십시오.》

《수상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춘보로인은 눈물을 닦으며 허리를 깊이 숙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