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3


 
 

제 1 장

3

 

김일은 담배를 입에 물고 책상에 마주앉아서 신문을 읽기 시작하였다. 시일이 퍽 지난 그 신문에는 강봉석이가 쓴 글이 실려있었다.

강봉석이에 대한 표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었다. 김일은 중앙당에서 일하기 시작한후 쩍하면 로어로 지껄이며 안하무인격으로 머리를 쳐들고서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았다. 그들은 흘레브와 빠다를 책상우에 펴놓고 먹으면서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편 쏘련출신이 아닌 사람들을 같은 민족인데도 된장냄새가 난다고 경멸하고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흔히 《얼마우재》라고 했다. 김일은 강봉석이도 그런류의 사람으로 보고있었다. 한것은 강봉석이와 이야기를 별로 해보지는 못했지만 그에게서 매우 불쾌한 인상을 받았기때문이였다. 그는 례의를 깍듯이 지키고 옷차림도 대단히 세련되고 단정했지만 언제보나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는듯 했다. 그가 현대농업에 대해서는 자기를 제1인자로 자처하고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었다. 만일 누가 농업과 관련한 무슨 의견을 내면 그는 흔히 그것을 무시해버리는것으로 대답한다고 한다.

오늘 조인철이와 담화를 한 김일은 바로 이 강봉석이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리하여 김일은 하루의 마지막일과로 강봉석이가 쓴 글을 보려고 부관에게 그 글이 실린 신문을 찾아오도록 지시했다.

강봉석을 떠도는 소문이나 외형적인 인상으로가 아니라 그의 글을 통하여 정확히 파악하려는것이였다. 그런데 그가 쓴 글을 읽어갈수록 화가 치미는것을 억제할수 없었다. 가령 《이곳에는 점차적으로 그러나 꾸준히 또 항상 농민들에게 집단주의의 감정을 교육하고···》라고 하든가 《조직적》, 《쓰딸린적》, 《사회주의적》 등등 《적》자를 문장마다 쓴다든가 하여튼 까다롭고 난해하며 복잡하고 아리숭하여 그 글은 조선사람이 썼다고 볼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러한 번역투의 형식보다 내용이 기본인데 쏘련의 사회주의건설경험을 소개선전하는 글들중의 하나로 스쳐지나갈수 있었으나 따져보면 거기에는 필자의 의도가 명백히 느껴졌다.

···레닌의 협동조합계획의 기본적본질은 그것을 통하여 전체 근로농민들을 사회주의사회의 적극적인 건설에로 끌어들이는데 있다··· 농촌에서의 락후성을 영원히 퇴치하고 농촌을 경제적 및 문화적진보의 넓은 길에로 인도하기 위하여서는 새로운 꼴호즈제도를 창설하는것이 필요하였다.··· 레닌은 자기의 협동조합계획을 국가의 공업 및 전기화의 발전과 직접적으로 련결시켰다. 사회주의적공업화에서 레닌은 농업의 사회주의적재건을 위한 결정적인 조건들과 기지들을 보았다. ···쓰딸린의 지도밑에서 공산당은 거대한 교양적, 조직적사업을 전개하였으며 농촌의 사회주의적개조를 위한 모든 조건을 준비하였다. 이 준비사업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가지는것은 국가의 공업화에 관한 쓰딸린적정책이다. 쓰딸린적 5개년계획시기에 뜨락또르와 기타 현대농업기계를 생산하는 공업을 포함한 공업의 새로운 분야가 창설되였다.···

이상이 글의 요점이였다. 이 글을 강봉석이가 우연히 썼고 또 그것이 우연히 신문에 실리였겠는가. 필자는 쏘련에서의 꼴호즈경험과 그의 생활력에 대하여서만 언급하고있을뿐 우리 나라에서의 농업협동화문제를 그와 관련시켜 언급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아직은 그것뿐인 쏘련의 경험에서 농촌의 사회주의적개조를 준비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의의》를 가지는것이 나라의 공업화라는 인식을 가지게 될것이며 나아가서 공업이 황페화된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아직 협동화를 엄두도 낼수 없다는 결론에로 스스로 유도될것이다. 즉 글뒤에 글이 있었다. 그것은 전후 우리 나라의 농촌에서 농업협동화를 예견하고계시는 김일성동지의 의도와 대치되는 견해인것이다.

《안되겠구만!···》하며 김일은 신문을 훌 밀어치웠다.

밤이 깊었다. 부관이 조용히 들어와 이제는 퇴근할 때가 되였다고 말했다.

김일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건들을 문서고에 넣어 쇠를 잠그었다. 그리고 신문을 부관에게 주었다.

그러는데 전화가 왔다. 김일성동지께서 걸어주신 전화였다.

《아직 퇴근 안했소?》

그이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는 언제나 활력에 넘쳐있으면서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였다.

《지금 퇴근하려 합니다.》

《그러면 나한테 오시오. 같이 퇴근합시다.》

《곧 떠나겠습니다.》

김일은 그이께서 그저 단순히 같이 퇴근하시려고 찾으시는것이 아니라고 짐작하였다. 퇴근하는 시간마저 사업상 담화에 바치시려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승용차를 달려 얼마후 내각에 도착하였다.

보초소에서 차를 세우고 내린 김일은 그이께서 집무를 보시는 보조집무실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이께서 마당에 나와 거닐며 기다리시는게 아닌가. 그이께서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가리키며 호위원 리경철이와 무슨 말씀을 하고계시였다. 모란봉에 무성한 나무들이 맑게 개인 밤하늘을 배경으로 컴컴한 륜곽을 드러내고있는데 그쪽에서 생신한 풀냄새와 흙냄새가 풍겨오고있었다.

《부위원장동무요?》

그이께서는 김일을 알아보시며 인사에 대답하시였다.

김일은 그이께서 밖에서 기다리시는것을 보며 미안한감을 감추지 못했다.

《빨리 오느라고 했는데···》

《사무실안은 더워서 바깥에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중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경철이를 가리켰다.

《이제는 경철이를 대학에 보내여 공부를 시켜야 하겠는데 천문학지식을 검토해보니 캄캄하구만.》

《장군님, 제 꼭···》

《그래그래, 공부를 해야 해.》

리경철이 물러갔다.

그이께서는 김일이에게 다가서시며 《오늘 하루일이 끝났으니 이야기나 하며 같이 퇴근합시다.》 하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도 밖에 좀더 서계시고싶은듯 승용차를 서둘러 타려 하지 않으시였다.

풀벌레들이 우는속에서 무더운 여름밤이 흘러가고있었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대기가 차츰 서늘해지고있었다. 가끔 반디벌레가 불을 켜고 날아다니였다.

그이께서는 김일과 같은 전우들과 함께 있을 때가 언제나 좋으시였다. 격식이 필요없고 마음이 편안했다. 그러나 백두산에서 함께 싸운 전우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실 기회가 매우 적었다. 김일과도 당중앙위원회 사업과 관련하여서만 만나게 되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늘밤 격식을 피하여 김일과 시간을 보내고싶으시였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너무 무리하시는것 같습니다.》

김일이 말씀드리였다. 그는 수령님께서 오늘 제철소와 평양방직공장을 찾으시여 파괴정형을 료해하시고 복구방향과 수행방도를 제시하시였으며 이어 긴급대책을 세워야 할 전력, 체신, 교통운수부문의 당면과업을 토의한 내각소회의를 지도하신것을 념두에 두고 말씀드린것이였다.

복구건설준비를 전쟁시기부터 예견성있게 해왔지만 정작 포화가 멎고 복구건설의 첫삽을 뜨기 시작하자 너무도 할일이 많은 반면에 시간은 제한되여있어 모두들 밤을 밝히며 밤낮으로 일하고있었으나 그 누구보다도 수령님께서 제일 시간이 모자랐다. 김일이 이것을 잘 알고있었기때문에 걱정이 되였던것이다.

《내 오늘 제철소를 돌아보니 파괴상은 예상을 초월하고있었소.》

김일성동지께서 침중하게 말씀하시였다. 부서진 벽돌과 콩크리트쪼박들, 구부러들고 터진 철관들, 뻘겋게 녹쓴 강편들이 마구 흐트러져 딩굴고있어 발을 옮겨짚기 힘들었던 구내길··· 천정이 무너져내리고 뒤틀린 철근들이 엉켜있는속에 철기둥이 앙상하게 서있는 건물의 페허··· 천정기중기들이 굴러가고 출강의 종소리 뗑뗑 울리던 산업건설의 즐거웁던 나날들을 멀리 지나간 옛일처럼 쓸쓸하게 추억케 하는 이 파괴상앞에서 그이께서는 분통이 터져옴을 가까스로 억제하시였다.

《나는 미국놈들이 다 마사놓은 제철소를 돌아보면서 이제 어떻게 그것을 다시 일떠세우며 나라가 허리를 펴고 일어서도록 하겠는지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했소. 그런데 나는 그 페허속에서 손에 자루같은것을 들고다니며 땅에 흩어져있는 볼트, 나트와 기계부속들을 주어담고있는 한 제관공을 만날수 있었소. 그건 무얼하려고 주어담는가고 물으니 이제는 전쟁이 끝났으니 평로를 돌려야 할게 아닌가 하더군. 그래 평로를 복구해낼수 있는가고 물으니 그럼 팔짱을 끼고 앉아있어야 하겠는가 하고 대답하길래 〈우리 힘으로 해낼수 있을가요?〉하고 다시 물었더니 〈우리 힘으로 안하면 누가 다른 사람이 해준답디까?〉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것이였소. 내가 너무 고마와서 그의 손을 잡아주며 〈옳습니다. 바로 그 정신입니다.〉하고 말하니 그제야 눈을 제대로 들고 나를 알아보는데 눈물이 글썽해서 어찌도 반가와하던지···》

이렇게 말씀하시는 수령님의 목소리도 저으기 젖어드는듯 하였다.

《그는 내손을 무쇠같은 두손으로 꽉 잡으며 제철소가 다 파괴되였으니 어쩌면 좋은가고 통분해하는것이였소. 그래서 나는 동무가 벌써 복구의 첫 걸음을 내디디지 않았는가, 동무는 나에게 신심을 주었고 힘을 주었다, 동무가 말한대로 우리 손으로 평로와 용광로를 복구하고 쇠물을 뽑아내자 이렇게 말했소. 나는 제철소로동계급을 만나보는 과정에 우리 손으로 복구건설을 해낼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수 있었소!》

습하고 무더운 여름밤의 대기를 울리는 그이의 확신에 넘친 말씀은 김일의 가슴도 시원하게 열어주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로동자들같은 사람들은 없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제철소로동자들이 살고있는 주택지구를 돌아보신 이야기를 들려주시였다.

그 주택지구도 놈들의 무차별폭격으로 다 파괴되여 로동자들은 가설주택이나 반토굴집에서 살고있었는데 가산이 없는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먹고 입는것이 당장 걸려있었다. 그래도 자기 살궁리를 하고있는것이 아니라 제철소를 지키였고 복구준비를 하고있었다.

로동자들에게 우선 먹을 식량을 보장해주어야 하였다. 먹어야 복구건설도 할것이 아닌가.

이야기는 농촌문제에로 이어져갔다.

《오늘 낮에 조인철책임참사를 만나보았습니다.》하고 김일이 수령님께 말씀드리였다.

《수상동지께서 적합하다고 추천하신 사람인데 다른것이 있겠습니까. 바탕은 좋은 사람입니다.》

김일은 조인철이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가 싫은 소리를 한것은 조인철이에게 영향을 준 강봉석이에 대한 불쾌감때문이였다.

김일은 무슨 일을 대함에 있어서나 분석을 복잡하게 하지 않고 간단하고도 명백하게 그의 본질을 끄집어내군 하였다. 김일이 공부를 많이 했거나 남다른 천부의 능력을 가지고있기때문이 아니였다. 그는 하나의 자막대기를 가지고있었는데 모든 사물현상을 그것으로 재여보고 맞으면 머리를 끄덕이였고 틀리면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러니까 명백하고 정확할수밖에 없었다. 그 자막대기란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의도였다.

가령 농업협동화문제를 놓고보아도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광복후를 거쳐 전쟁시기에 이르기까지 내내 군대에서 정치일군으로 일해온 그가 그 문제를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조인철이보다도 더 모를것이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 전후에 농촌경리의 사회주의적협동화를 예견하고계시며 실천적으로 중앙당농민부안에 그것을 추진시킬 부서와 담당부부장직제를 내오실 결심을 내리신것을 알고있으면 그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물론 아직 김일성동지께서는 전후에 당장 농업협동화를 시작한다든가 또 어떻게 그 운동을 전개한다든가 하는데 대하여 찍어 말씀하신것은 없었다. 김일과 토론할적에도 그러했고 공식적인 언명은 더욱 없으시였다. 다만 그것을 예견하시고 준비사업을 하도록 김일과 이야기가 있었는데 김일은 그 예견을 장래의 계획으로 보지 않았다. 그렇기때문에 김일성동지의 구상에 비추어 강봉석의 견해에 대하여 매우 못마땅하게 대하는것이였다.

(우리 경우에 어떻게 협동화를 하느냐 하는 실천적문제는 차후의 일이였다.)

조인철이에 대해서도 수령님께서 그를 적임자로 보시였기때문에 그 방향에서 그를 분석하고 그의 순진한 머리와 강봉석의 쏘련식사고를 명백히 갈라보는것이였다.

《다만.》하고 김일이 조인철이에 대한 평가를 계속하여 말씀드리였다.

《농업협동화에 대해서만은 제 생각이 따로 없고 그저 쏘련에서 나온 사람들의 말을 외우고있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그의 말을 긍정해주시였다.

《그럴수 있지. 광복된 우리 나라를 어떻게 건설하겠는가 하는 실천적문제에서 많은 경우에 사회주의를 먼저 건설한 나라의 모양을 본따지 않을수 없었소. 이러한 부득이한 사정을 리용하여 어떤 사람들은 덮어놓고 남을 모방하면서 우리의 력사와 전통마저 줴버리려 하고있소. 형편은 이렇소. 조인철동무가 광복후에 선발되고 육성된 새 일군이라 하지만 그가 황해도에서 평양에 올라와 공부한 고급간부학교에서도 기본은 쏘련의 당사를 배워주었소. 협동조합도 쏘련의것밖에 모르니까 그들의 말을 되받아외우게 되였단말이요.》

수령님의 말씀은 김일의 가슴을 무겁게 울리였다.

《사실 그렇습니다. 저는 이즈음 생각되는것이 많습니다.》하고 김일이 말씀드리였다.

《지금도 저는 수상동지께서 언젠가 저에게 이 전쟁기간에 미제놈들과의 싸움도 싸움이거니와 큰 나라들의 대국주의와 그들을 섬기고 따르는 사대주의, 교조주의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던 말씀이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고있습니다. 그런데 전후에 와서도 그런것들이 계속 우리 앞길에 저애를 줄것 같습니다. 어쩌면 더할수도 있습니다. 조인철이와 담화할 때 그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그 순진한 사람의 머리를 강봉석이가 흐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조인철이는 본바탕이 우리 바탕이기때문에 일없다고 봅니다. 빠다냄새를 풍기는 강봉석이같은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김일은 말할 때 감정을 격렬하게 로출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뜨적뜨적 느리게 표현하는 말에는 무게가 있었으며 감정은 그 말밑에서 흐르고있었다. 그의 말에는 아픈 진실이 담겨져있었다. 큰 나라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나 하려면 이건 이렇다느니 저건 저렇다느니 하며 간섭하고 훈시하려 했으며 그에 추종하는 사람들은 걸음걸음 시비하여나섰다.

수령님께서 김일의 말을 들으시며 이렇듯 무거운 생각에 잠겨 계시는데 그가 계속하였다.

《저는 강봉석이 쓴 글도 읽어보았는데 그는 쏘련식사고방식과 체취로 차있습니다.》

《그 글은 그가 쏘련의 사회주의건설경험을 소개한 글이요.》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 글이 주는 영향은 큽니다.》

《혹시 부위원장동무가 강봉석이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있는건 아니요?》

《그럴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가 꼴호즈에서 기사로 일했다고 해서 현대농업에서는 제가 제일이라고 우쭐대며 남을 깔본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실지 대상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만나볼 일이 없었고 또 그런 사람들과는 상대하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상동지, 문제는 강봉석이 한사람에 있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중앙당에 와서 일하게 되면서 좋든싫든 그런 사람들과 사업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저는 강봉석이나 박창옥같은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수상동지께서 얼마나 일하기 힘드시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상동지께서 예견하고계시는 농업협동화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진정 걱정스러워하는 김일이였다. 그렇다! 그의 걱정은 공연한것이 아니다. 지금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가 공업이 다 파괴된 현 상태에서 농업협동화문제를 제기한다면 이미 집단화의 길을 걸은 큰 나라와 그 경험을 절대시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오리라는것을 충분히 예측할수 있으시였다.

그 경험은 실천을 통해 진리성이 증명된 경험이다. 또 사회주의를 먼저 건설한 큰 나라의 경험이다. 한편 수령님께서 구상하고계시는 우리의 농업협동화계획은 아직 실천을 통해 증명된것이 아니며 그야말로 계획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강봉석이같은 사람들과 대국주의를 하는 큰 나라의 사람들이 납득하려 하겠는가. 조인철이조차도 아직은 그들과 같이 생각하고있다.

물론 조인철이는 우리의 농촌현실에 나가보면 당의 의도를 쉽게 납득할수 있을것이다. 그는 일깨워주면 된다. 그러나 강봉석이를 납득시킨다는것은 지금으로서는 어렵다. 공업화를 먼저 한 토대우에서 집단화를 해야 한다는것이 실천적으로나 리론적으로 굳어진 진리로 되여있는데 한편 우리의 공업, 특히 기계제작공업은 어떠한가. 이 순간 오늘 현지에서 직접 목격한 전쟁전의 모습을 찾아볼수 없게 파괴되고 황페화된 제철소의 파괴상이 또다시 떠오르며 수령님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구조물들의 구멍에 새들이 둥지를 틀고 들락거리며 우짖어대고 마당에 잡초들이 무릎치게 자라고있어 더 적막하고 쓸쓸한감을 짙게 하는 제철소구내··· 쇠녹냄새, 물웅뎅이의 감탕냄새, 기름이 타는 냄새가 뒤섞인 탁한 공기와 뜨거운 열기가 훅훅 풍기며 숨을 막히게 하던 구내길··· 전후복구를 시작한 현시점에서 우리 나라에는 공업이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이께서는 속이 쓰려오시였다.

《부위원장동무, 갑시다. 내 차에 타시오.》

깊어가는 여름밤의 어둠과 적막이 답답한 심정을 더해주는듯 그이께서는 승용차로 다가가시며 말씀하시였다.

얼마후 승용차는 내각이 있는 골안을 빠져나갔다. 그이께서는 교외에 있는 최고사령부지휘처에서 침식을 하시면서 시내로 출근하고계시였다. 당과 정부간부들의 주택들도 그곳 교외에 있었다.

승용차는 어둠속에서 오른쪽으로 희미한 륜곽이 보이는 김일성종합대학 청사앞 도로로 달리여 대성산쪽으로 향하였다.

곧 평탄한 도로가 나졌다. 이 길을 따라 최고사령부가 있는 교외에서 평양시내로 얼마나 자주 오갔던지 전쟁시기에 운전사는 전조등을 켜지 않고도 곧잘 차를 몰았다. 하지만 지금은 구태여 그러한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달은 아직 뜨지 않아 사위가 캄캄했으나 하늘에서 무수히 반짝이는 별빛이 논벌들과 우뚝우뚝 솟은 언덕들과 마을들을 희미하게 비치고있었다. 그것들은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가는 뒤로 획-획- 사라졌다.

별빛아래에 희미하게 보이는 농촌의 풍경은 머지 않아 가을이 오고 그러면 로동자, 사무원들에게 햇곡식으로 식량을 공급할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으며 얼마간의 안도감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이즈음 그이께서 현지를 오가시며 자주 보시는것이지만 전쟁의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벌판과 야산들, 마을들의 어수선한 모습은 파괴된 제철소처럼 보는 사람의 얼굴을 어둡게 하였다.

그이께서 한마디의 말씀도 없이 깊은 상념에 잠겨계시는데 이 침묵속에서 옹색하게 앉아있던 김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수상동지, 일없습니다. 저희들이 수상동지를 받들고있지 않습니까. 누가 뭐라든 우리 배심대로 하는겁니다. 빨찌산때도 그렇게 했지요.》

김일성동지께서 마침내 상념의 세계에서 깨여난듯 그를 돌아보시였다.

《일이 그렇게 간단치는 않소.》

국가를 건설하고 나라를 발전시켜나가는데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며 우리 배심대로 나가야 한다는것은 명백하였지만 이 진리가 실천으로 증명되자면 많은 시일이 걸려야 할것이고 많은 난관을 겪지 않으면 안될것이다. 큰 나라의 세력과 영향력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이나 맹목적으로 추종하지는 않지만 큰 나라의 기존경험을 절대시하는 사람들이나 다 헐하게 굽어들지 않을것이며 우리 당의 방침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을것이다.

《내가 래일 틈을 내여 어디 가까운 농촌에 나가보겠소. 대답은 현실에서 찾아야 하오.》하고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농촌을 알고계시였지만 포화가 멎은 현시점에서 농촌실정을 다시 료해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시였다. 현실에서 확신을 가지게 된다면 그 누가 뭐라든지 현실의 요구대로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것이다.

최옥금이 있는 현촌같은데 나가보는것이 좋겠지만 래일은 할일이 많아 평양근교의 어느 한 마을을 택하기로 하시였다.

어느덧 최고사령부가 있는 건지리골안이 가까와오고있었다.